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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월 26일 제목: 삶이 지치고 낙심될 때 성구: 야고보서 5:7-11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야고보서 5장 7절로 11절의 말씀을 가지고, "삶이 지치고 낙심될 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성경의 인물 중 가장 큰 시련과 불행에 부딪혀 절망한 자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욥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 때 동방에서 제일 잘 사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들이 일곱 명, 딸이 세 명, 양이 칠천 마리요, 약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이요, 암나귀가 오백이었으며 노비도 남녀간에 많이 거느리고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칭찬할 정도로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그 같은 사람이 없었다고 하나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루만에 집이 무너져 아들 딸을 다 잃고 이방인 도적들에게 짐승을 다 빼앗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빈손 들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온 몸에 종기가 생겨서 잿더미에 올라앉아 기와장으로 자기 몸을 긁는 그런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 아내조차 와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폭언을 하고 떠났습니다. 그를 위로하러 온 사면의 친구들조차 내내 욥을 몰아쳐 네 죄 때문에 네가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고 참소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그는 탄식을 하고 낙심은 했으나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신앙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 위대한 신앙인 이라고 해서 반듯이 낙심 되는 일이 안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신앙을 잘 지키는 사람인데 왜, 불행이 다가오고 시험과 환난이 다가옵니까?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신앙인이라고 해서 너는 불행도 당하지 말고 시험도 없고 환난도 당하지 않고 낙심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면책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위대한 신앙인 중에 신앙인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칠십오세에 고향산천 떠나서 약속의 땅으로 갔으나 그에게 큰 시련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도 들어가 보니까 기근이 와서 먹을 것,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끌고 온 짐승들 다 굶어 죽고 종들과 친척들은 다 뿔뿔이 떠나가고 그는 의지할 곳 없이 큰 시련에 부딪혔습니다. 그는 위대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낙심해서 아내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왔다가 애굽의 바로 왕이 그의 아내 사래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 아내를 취해서 아내로 삼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큰 낙심되는 일입니까? 천지가 아뜩한 시련과 고난이 아니겠습니까? 훗날에 하나님이 거기에서 건져주셨지만 위대한 신앙이라고 해서 시험과 환난을 안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삭은 모리아 산에 아버지 손에 끌려가서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듣고 그는 미처 살기도 전에 죽어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를 묶어서 제단에 얹을 때 그는 깊은 절망에 부딪혔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그를 죽이지 말라고 외치지 않았으면 그의 심장에는 아버지의 칼이 박혔을 것입니다. 왜 택함 받은 이삭에게 이러한 고난이 다가오고 낙심이 다가왔을까요? 야곱도 한가지입니다. 야곱이 외아저씨 집에 20년 동안 머슴살이해서 겨우 재산을 모아서 처자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얍복강에 왔을 때 형이 400인의 군인을 거느리고 그를 죽이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그만 낙심하고 절망했습니다. 간담이 서늘하고 창자가 녹았습니다. 무릎이 녹는 것 같았습니다. 큰 시험과 환난과 낙심을 당한 것입니다. 요셉도 그렇지 않습니까? 애굽의 국무 총리였던 요셉은 열 일곱 살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애굽에 가는 미디안 대상에 팔려서 보디발의 종이 되어서 17년 동안 종살이를 했습니다. 가진 모욕과 굴욕을 다 당하고 종살이에서 겨우겨우 가정총무로 살만하니까 또한 모함을 당해서 그는 시위대 감옥에 들어가서 기약 없이 3년 동안 감옥살이했습니다. 17살에 고향을 떠나서 장장 13년 동안 그의 잔뼈가 다 굵을 때까지 그는 많은 시험을 당하고 크게 낙심했었습니다. 모세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40세에 혁명하여 나라를 구원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동포에게 배반을 당하고 그는 도망을 쳐서 미디언 광야에 가서 목자가 되어 젊은 청춘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고 눈물로 세월을 지내며 80이 될 때까지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의 절망은 너무나 켰습니다. 일어서고 앉아 있는 곳마다 눈물 자국을 남겼습니다. 물론 이 위대한 신앙인들은 종국적으로 하나님께서 다가오셔서 그들을 위대하게 사용했고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키고 우리의 삶에 거대한 빛을 던져 주었지만 그러나 그들 초기에 신앙인이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낙심도 되지 않게 하고 시험과 환난도 당하지 않도록 면해주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러면 질문합니다. 왜 신앙인에게 낙심되는 일이 다가옵니까? 왜 저 장로님에게 저런 것이 다가옵니까? 왜 권사님에게 저런 일이 다가옵니까? 예수 잘 믿고 주님 뜻대로 살려고 하는데 왜 이런 환난이 다가옵니까? 왜 저 목사님이 저런 비극을 체험합니까? 그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여러분 요사이 우리가 국민일보에 보면 지금 농수산부 장관님의 간증이 기록되었습니다. 그 장로님 간증을 보면 정말로 감동적입니다. 그의 부인이 새벽 기도를 갔다 오다가 교회 앞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해서 뇌진탕에 걸려서 수술하다가 세상을 떴습니다. 부인을 잃고 난 다음 얼마 있다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 세상을 뜨고 1년도 못되어서 아버님이 세상을 떴습니다. 계속되는 죽음에 그는 완전히 절망을 했습니다. 왜 예수 믿는 사람에게 그런 일이 다가옵니까? 물론 그는 지금 장로이며, 농수산부 장관까지 되었지만, 그러나 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향하여서 예수 믿으면서 왜 저런 일을 당하느냐? 예수 믿는 이익이 무엇이냐?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왜 시험과 환난에서 하나님이 면하게 하여주지 않았느냐? 그런 질문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에게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는데는 하나님의 면밀한 계획과 뜻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모두 다 아담과 하와의 자손으로서 아담과 하와의 혈통을 받아서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불순종하고 거역하고 반역한 죄가 마음속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하나님의 종으로서 만들어서 쓰기 위해서는 깨뜨리지 않고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많은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는 것은 우리의 아집을 깨뜨리기 위한 것입니다. 자아를 깨뜨리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의 자랑과 자기의 능력의 위대함을 의지하고 자랑합니다. 조금만 일이 잘 되어도 와! 내 지혜와 내 지식과 내 총명과 내 능력과 수단과 방법으로 일을 이루었다. 나를 좀 보아라, 자기 자랑을 합니다. 인간의 가장 무서운 죄가 교만 죄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교만 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오직 시련을 당하여 마음이 낙심될 때 인간의 자랑과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깨닫게 합니다.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는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라고 말했습니다.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교만과 인간의 자랑, 이것을 파괴하기 위해서 깨뜨리기 위해서 낙심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낙심되지 않고는 자아 중심의 아집이 깨어지지 않습니다. 아집이 깨어지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사람에게 축복이나 하나님의 일을 맡겼다가는 하늘 나라를 망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크게 복 받는 사람은 하나님께 크게 깨뜨림을 입은 사람입니다. 자아가 깨어져서 하나님 앞에 완전히 항복한 그 사람을 하나님이 복 주실 수 있기 때문에 깨뜨리기 위해서 시험과 환난과 낙심된 일이 다가 오지 않고야 깨뜨려지지 않지 않습니까? 부딪혀야 깨뜨려지는 것입니다. 깨어지는 것이 아프지 않고 깨어지는 것 봤습니까? 무릎이 부딪혀 깨어져도 아픈데 삶에 거대한 파도가 다가와서 우리의 아집을 깨뜨리려고 할 때 고통스럽고 고함치고 눈물이 안 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신앙인에게 낙심되는 일이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복 주기 위해서 그 자아를 깨트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시험이 다가오고 낙심되는 일이 다가옵니다. 자기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길로 가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인 줄 압니까? 자기 길로 가는 사람은 내 길이 좋다, 내 계획이 좋다, 그래서 내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부귀 영화, 쾌락을 취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고 고난이 다가와서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돈도 쾌락도 다 빼앗아가 버립니다. 빈손들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나의 길이 잘못 되었구나! 하나님의 길,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서 사는 길이 산 길이구나! 깨닫고 천부여 오시옵소서. 손들고 웁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내 어디로 갑니까? 그렇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낙심되어야 그렇게 됩니다. 그런 체험하여서 비로소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된 것을 깨닫고 진실하고 순수한 신앙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참으로 깨어지고 회개하게 되지요. 이사야서 55장 6절로 7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이러므로 불순한 동기로 인생을 살던 사람이 낙심하고 고난을 당할 때 깨어져서 신실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낙심된 일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시험과 환난에 부딪히고 낙심하며 눈물을 흘려 보아야 강인한 신앙 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 자식들을 기를 때 강한 자식을 기르려면 고생을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라 밥만 많이 먹고 잠이나 자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자식은 여행을 시켜라 여행을 하게 되면 여러분 고생을 많이 해야 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디 잘까 하는 모든 것을 자기가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고생스럽죠. 요사이 자식들이 부모 말을 잘 안 듣고 저항하고 쉽게 낙심하고 문제 소굴에 빠지는 것은 고생을 하지 않고 자랐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너무나 과보호해서 고통, 슬픔에 부딪혀 보지 않았기 때문에 조그마한 고난 당해도 그만 낙심하고 좌절하고 반항합니다. 강인한 신앙의 인격자를 만들기 위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시험과 환난을 보내어서 부딪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낙심될 때 그것을 극복해야 신앙의 승자가 됩니다. 이러므로 시험과 환난을 눈물을 머금고 받아들여서 그것을 기도로 소화해야 강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평안한 길만 걸어가면 절대로 강인한 신앙인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려고 할수록 강한 선지자가 됩니다. 강한 성도로 만들기 위해서는 억센 시련을 겪어야 강한 성도가 되는 것 다 알지 않습니까? 운동하는 사람이 여러분 끝임 없이 몸에다가 무거운 짐을 걸머지게 하고 육체의 한계점을 들락거리면서 고통을 가합니다. 그래야 근육이 발달하고 힘이 세지는 것입니다. 저항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에 2절로 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를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고 낙심하는 일이 다가와야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낙심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자기가 자신 만만하고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된다고 할 때는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일해 주실 틈을 내어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야, 나하고 이야기 좀 하자,'하면 '나 바빠요, 나중에 합시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야, 너희 생활에 들어가서 좀 나와 함께 일하게 하자,'라고 하면 '필요 없어요, 지금은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틈을 안 내어 줍니다. 그러나 낙심하게 될 때 그때는 하나님, 날 도와 주십시요. 주님께 기회를 드립니다. 주님이 인간 사회에 간섭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오셔서 붙들어 주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과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체험하지 만사 형통할 때 하나님을 체험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고난 당하여 주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이사야서 41장 10절에 말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여러분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사람에게 주님이 이렇게 해주시지 도움을 바라지 않는 사람에게 주님이 그렇게 해 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낙심될 때에 어떻게 해야 될까요? 낙심될 때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됩니까? 여러분 낙심이 다가와서 파멸 당하는 사람도 있고 낙심이 다가와서 오히려 그를 극복하고 더욱 위대한 삶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낙심은 파멸하기도 하고 오히려 우리를 세워서 위대한 승리자로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낙심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낙심이 다가올 때 그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낙심 당할 때 어떠한 태도로써 인생을 살아가야 되겠습니까? 첫째로, 낙심될 때 그때 만사를 제켜 놓고 우리는 교회 나오든지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부르짖을 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야고보서 5장 13절에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하나님은 오직 기도하는 사람과 같이 하십니다. 기도할 때 우리 생애 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이 역사 하거든요,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고난 당하고 낙심 당할 때 사람들을 찾아가서 자꾸 동정 받으려고 하고 위로 받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은 낙심하고 버림받은 자 편에 서지 않습니다. 원망하고 탄식하고 드러눕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고 해도 소용 없습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나요? 낙심되었을 때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에도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힘쓰며"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라고 말했으며,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볼지라도 기도하지 아니하는데 주님께서 가서 병자를 고쳐주고 도와준 적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장님이 앉아있는 그 앞을 지나갔을지라도 나중에 바디메오가 기도하고 부르짖으니 주님이 도로 돌아서서 불러서 도와주었습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낙심될 때 만사를 다 제켜 놓고 그때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자복하고 깨어지고 기도할 때인 것을 알고 기도할 처소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낙심될 때에 희망과 긍정적인 마음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마음이 낙심되면 마귀가 달려들어서 우리의 마음을 막 짓누릅니다. 그리고 난 다음 말합니다. '야, 너희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 당장 그 칼로 난도질을 처버려라, 도끼로 그 뒤통수를 찍어 버려라, 약방에 가서 약 사서 먹어버려라,' '자살해라', 여러 가지 부정적인 형태로 원수 마귀가 말을 합니다. 자살해라, 원수를 갚아라, 될 대로 되라, 포기해 버려라, 또 그런 일을 저질러서 사회 물의를 일으키고 대문짝만하게 신문 사회면에 나온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낙심될 때에 희망과 긍정적인 마음을 꽉 쥐어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원수 마귀가 와 가지고서 우리를 낙심하고 부정적인 사람이 되도록 만들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3절을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 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예수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랑을 베풀고 은혜를 베풀은 죄인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참소를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어도 주님은 낙심하여 그들은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하나님께 자기의 영혼을 맡겼습니다. 여러분 동일한 고난을 당하고 이런 일을 이긴 성경적인 인물과 성도들의 생애를 우리는 낙심될 때 살펴보아야 합니다. 저는 이 교회를 지을 때 참으로 시련을 겪고 낙심을 많이 했습니다. 그럴 때 저의 품에 늘 품고 다니던 책이 있었습니다. 성경과 조지 뮬러의 책이었습니다. 독일 사람으로서 영국에 건너가서 영어 공부하여 선교사로 가려고 하다가 너무나 많은 고아들이 길거리에 허덕이는 것을 보고 그는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요 과부의 재판장이시라는 시편의 말씀을 기억하고 고아의 아버지가 되어 아무에게도 구걸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고 오직 무릎을 꿇어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약 2-3천명의 고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시집, 장가를 보낸 그 위대한 생애에 대한 자서전을 그 책을 늘 품에 끼고 다녔습니다. 왜, 내가 낙심하고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을 때 성경적인 말씀과 그 다음 조지 뮬러의 현실 우리 세대에 살았던 인물이 하나님께 기도해서 그 어려움을 극복한 이야기가 제게는 언제나 마음속에 희망을 주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래서 낙심하지 말고 도망치지 않고 이기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심될 때 희망과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희망과 긍정적인 생각을 주는 그러한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째로, 우리가 낙심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푹 빠져서 살아야 됩니다. 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말씀 이외에는 우리에게 절대로 믿음을 줄 자가 않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대개 다 책망하고 교훈하지 낙심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베풀 수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절망에서 건질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어디에서 만납니까? 하나님을 성경 안에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없고 성경 안에서 만날 수 있음으로 우리는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깊이 읽고 묵상할 수 있고 성경 속에 푹 빠져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큰 치료의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마음에 낙심되는 요소들을 다 밀어내고 마음에 부정적인 가시를 다 뽑아 내고 마음에 믿음으로 성경은 채워 놓아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려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다시 해보자는 용기를 넣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 말씀의 위대한 힘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낙심될 때 성경 읽는 것을 계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 평상시에도 성경은 늘 조직적으로 계속적으로 연구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루라도 안 읽으면 벌써 마음에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밥입니다. 밥을 먹지 않고 활동할 수 있나요 믿음의 영양분이 바로 말씀인 이상 말씀을 늘 읽고 듣고 묵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네째로, 우리가 낙심될 때 중보의 기도를 부탁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견디기가 힘드니까 내가 낙심될 때 나에게 가장 가까운 분들, 주의 종이나 장로님, 권사님, 지역장, 구역장, 평신도, 이웃 사람들에게 기도의 도움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보의 기도라는 것은 굉장한 힘이 있습니다. 옛말에도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기도는 나 혼자 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천을 쫓고 두 사람이 만을 쫓는다고 그랬습니다. 그와 같이 힘이 있어요. 그러므로 기도의 동지가 있다는 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저는 목회자 중에 가장 축복 받은 목회자입니다. 우리 교회 70만 성도가 거의 대다수 기도할 때 한번쯤은 기도를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힘이 얼마나 큽니까? 어마어마한 힘입니다. 그 힘이 있어서 오늘날 목회도 하고 세계 선교도 하는 것이지, 제 스스로가 무엇을 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바울 선생은 매일 편지할 때 늘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자기가 개척해서 자기가 구원시킨 사람들에게 늘 바울 선생은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에 2절로 3절을 보면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저에게서 지키시리라" 이와 같이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사무엘상 7장 8절로 9절에 보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불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 응답하셨더라" 이처럼 여러분 중보의 기도는 너무나 큰 힘이 있기 때문에 내가 낙심하고 내가 어려울 때는 내 스스로 기도할 힘이 안 생깁니다. 아주 절망 상태에 있을 때 기도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날 대신해서 기도해 주도록 부탁을 하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들으시고 여러분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고 낙심될 때 여러분 무조건 감사하십시요. 감사할 조건을 따지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음으로 좋을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나쁠 때도 감사하고 성공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도 감사하고 건강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병들 때도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29편 10절로 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홍수 위에 앉아서 홍수를 수레 삼고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면 우리 눈에는 시험과 환난으로 보이지만 성경에는 그 시험과 환난의 홍수 위에 하나님이 타고 오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험이 오면 하나님도 같이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왕으로 오시기 때문에 홍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홍수가 올 때 그것을 우리는 그냥 물리치고 원망하고 발버둥을 치면 하나님이 타고 오는 수레를 물리치는 것입니다. 시험과 환난이 항상 지나고 나면 그와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축복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시험과 환난은 하나님이 타고 오는 수레입니다. 하나님의 수레를 우리가 빼앗으면 어떻게 합니까? 홍수 때 하나님은 그 홍수 위에 좌정하고 계신 것입니다. 홍수를 타고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 에 시험과 환난이 다가올 때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여 시험 당한 것 감사합니다. 환난 당한 것 감사합니다. 이 시험과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의 생에 들어와서 내가 알지 못하는 위대한 일을 내가 이루실 줄을 믿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이 시험과 환난을 통하여 선을 이룰 줄 믿습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노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섯째로, 낙심될 때는 인내할 때입니다. 마지막 고비에 처할 때는 여러분 줄을 타고 내려 가다가 줄 마지막 끝에 오면 손으로 칭칭 휘여 감고 눈감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풍랑은 때가 차면 지나갑니다. 아무리 보름달도 때가 차면 기우는 것입니다. 풍랑이 아무리 거세도 시간이 지나면 풍랑도 지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풍랑이 지나갈 때까지 눈감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낙심하고 뒤로 물러나지 마십시요.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에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나의 의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여러분 뒤로 물러가면 안됩니다. 인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련을 잘 넘기면 항상 시련의 홍수는 축복의 수레로 변합니다. 욥은 극한 시련을 잘 견디고 후에 하나님께 배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양 일만 사천 마리가 되었고 약대 6천 마리, 소 일천 겨리, 암나귀 일천 마리를 하나님께로부터 후에 축복을 받아서 전에 보다 배로 축복 받았습니다. 또 그 아들 일곱 명 딸 세 명을 낳았는데 모두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욥은 140세까지 아들과 손자 4대를 보았고 수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환난과 시험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뒤에 하나님은 그 등등 혹은 그 이상 갑절로 반드시 축복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인생을 살아갈 때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깜깜한 밤에 처할 때 동서남북이 보이지 아니할 때 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시험과 환난의 골짜기를 걸어갈 때마다 눈에 안 보이나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하셔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므로 낙심하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낙심하는 일이 다가올 때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가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