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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2월 9일 제목: 스트레스를 즐기며 살자. 성구: 이사야 40: 27-31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스트레스를 즐기면 살자”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삶의 스트레스입니다. 40대 한참 일할 나이에, 또 인생을 즐기고 살 나이에, 급사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생겨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갑자기 사무실에서, 노동 현장에서, 팔팔 젊은 사람들이 급사를 합니다. 다른 이유 아닌, 격렬한 성장 경쟁 속에서 당하는 스트레스에 견디지 못해서 결국에는 넘어지는 것입니다. 또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가지 정신적인 고통에 허덕입니다. 이것도 역시 스트레스가 넘쳐 나기 때문에 이것을 견디지 못하여 크고 작은 심신 장애로 사람들은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의사들은 우리가 앓는 질병의 70% 이상이 모두 다 스트레스 때문에 생겨난 병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고 젊은이들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매 그만 범죄에 몸을 던져서 자기 일생을 망치는 일들이 많습니다. 성경에는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고 넘어지고 자빠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시대를 묘사해서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옛날 농경생활에 자연에 묻혀 자연과 더불어 시간에 쫓기지 않고 살 때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런 과거의 생활로 되돌아 갈 수는 없습니다. 결국 오늘날의 생활 형태대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생존 경쟁을 하고 초긴장 속에 우리는 살아가야만 합니다. 이와 같은 생존경쟁은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이루어지고 쌓이는 것은 스트레스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삶을 살면서도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스트레스를 삼켜 버리며 기쁘고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없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여러분 스트레스를 이기고 오히려 스트레스 가운데서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는 우리는 스트레스에서 절대로 해방될 수가 없습니다. 인간적인 힘으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겠다고 술을 먹다가 중독자가 되고 마약에 의지하다가 일생을 망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에 인간적인 쾌락을 통해서 일시적으로 스트레스를 모면해 보려고 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자기 파멸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에 의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우리 생활에 무관심하시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대로 이사야서 40장 27절에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너무나 높은 곳에 계시기 때문에 낮고 천한 우리들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사정을 알 턱이 있느냐?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은 우리 머리털 숫자까지라도 다 헤고 계신다고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머리털은 아침에 머리 빗을 때마다 한 두개씩 뽑혀 나가는데 그 숫자를 매일 같이 하나님이 프러스 마이너를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럴 정도이니까 우리의 사정을 모른다고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내 원통함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는데 성경은 말하기를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탄식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풀어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에 무관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한 성령님의 대답이 즉시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나 견문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호세아서 4장 6절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실상과 자격을 하나님의 성령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야웨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알파요 오메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 우리 세상 삶도 오래 사신 분이 인생 경험으로 모든 만사를 알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백발이 되신 분은 육체적인 힘은 없어도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많은 삶의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도 젊은 사람은 경솔하게 행할 때가 많지만 나이가 들게 되면 지혜를 얻게 되어서 모든 것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지혜롭게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나이가 많으신 분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시작의 하나님이요. 끝의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알지 못하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오늘까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뿐아니라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서 9장 5절로 6절에 보면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어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라고 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다 지으셨으니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모를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어머니 뱃속에서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보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의 하루가 지나기 전에 우리 일생을 하나님의 책에 기록했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사정을 소소히 다 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성경은 하나님은 피곤치 아니하시고, 곤비치 아니 하시다고 말한 것입니다. 시편 121편 4절에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지만 피곤치도 않으시고 곤비치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피곤하고 곤비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나 지친다, 나 지금 쉬게 하라, 하나님, 도와주소서, 나 지금 자는데 왜 야단이야.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 할수 없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피곤치도 아니하시고 곤비치 아니하시고 주님께서는 언제든지 그 능력으로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은 명철히 한이 없으시다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11장 33절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명철이 한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다 아시고 그 문제에 대한 해답도 하나님은 모두다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럴 뿐 아니라 이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나타나서 역사 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피곤한 자에게는 그는 능력을 주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오늘날 심신이 사람들은 피곤해져 있습니다. 혹은 생활에 지쳐서 피곤해 있습니다. 가정 생활에 지쳐 버린 사람도 있고 투쟁력을 잃어버리고 될 데로 되라,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그만 인생을 내어 던져 버린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사야 42장 3절에 보면 “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상한 갈대라고 꺾어 버리고 꺼져가는 등불이라고 확 불을 끄지 않습니다.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등불조차도 주님께서 붙들어서 그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극히 무능한 자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능력을 주셔서 다시 일으켜 세워 살려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복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신다고 했는데 가장으로서 능력을 상실하고 무능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가장으로서 힘을 주시고 아내로서의 능력을 상실했을 때 아내로서의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부모로서의 능력을 상실했을 때 부모로서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직장인으로서의 능력을 상실했을 때 직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능력 주시기를 원하시고 사회 생활에 적응력을 상실했을 때 하나님은 힘을 주셔서 사회에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2절에서 13절에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무능자에게는 힘을 더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와 같이 하나님의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나의 대한 것은 모르며 나의 원통한 것도 수리해 주시 않는다고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기를 원하시고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원하시고 계시는 좋으신 아버지란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와 같은 하나님을 우리가 안다면 이 땅에 살면서 야웨를 앙망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앙망한다는 것은 수평적인 생활 관심에서 수직적인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예배하며 기다림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부다 땅만 보고 삽니다. 위를 쳐다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한다는 것은 땅만 보고 살지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앙망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를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하나님과 우리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곤비하고 피곤하고 스트레스에 걸리고 넘어지는 것은 수평적인 인생을 살기 때문에 이 땅에서 다가오는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을 견디질 못해 쓰러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를 쳐다보면 위에서 우리가 능히 이 세상에 스트레스를 이기고 스트레스를 삼키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위를 앙망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야웨를 앙망하고 새 힘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예배하는 것은 이 수평적인 인생 생활을 잠시 잊어버리고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께 공경하는 마음을 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는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5장 1절로 3절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목마른 자 물로 나아오고 돈없는 자 와서 하나님이 주시는 포도주와 젖을 값없이 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앙망하고 예배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포도주와 같은 즐거움을 주시고 젖과 같이 영양분이 듬뿍 담긴 하나님의 은혜를 주셔서 마음에 즐거움과 마음에 힘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하루의 시작 전에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이사야서 33장 2절에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주님은 아침마다 우리에게 붙들어 주는 팔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제일 먼저 야웨를 앙망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찬송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의 오른 팔이 나타나서 그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웨를 앙망한다는 것은 말씀을 깊이 있게 듣고 읽어서 하나님과 가까워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가까워집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 대화가 있어야 가까워지지. 아무리 사랑하는 친구들이라도 오래 떨어져 있으면 멀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웃 사촌이라는 말은 이웃이 우리와 피와 살이 섞이지 않아도 가까이 있어서 늘 대화를 하기 때문에 멀리 있는 사촌보다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19편 49절로 50절에 보면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여러분 주의 말씀이 마음속에 소망이 있게 하고 곤란 중에 위로가 되고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는 역사를 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듣고 늘 읽어야 됩니다. 우리가 주일날도 말씀을 듣고 수요일날 공부도 하고 또 구역 예배에 나가서 서로 말씀도 나누고 또 우리가 성경을 매일 읽음으로 하나님 말씀과 같이 있으면 자연적으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과 친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을 가슴속에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시로 기도하되 매일 특별한 시간을 내어서 기도하고 마음의 짐을 하나님께 맡겨 버려야 됩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야웨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고 말씀하셨으며, 시편 68편 19절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짐을 지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적고 큰 모든 짐을 지시는데 우리가 기도하고 맡겨야 주님이 짐을 져 주시지 우리가 억지로 걸머지고 하나님께 맡기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강제로 짐을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감당치 못할 짐 지는 것을 원치 아니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수시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서 짐을 맡기고 또 매일 같이 특별한 시간을 내어서 적어도 30분 한 시간 이상 야웨와 함께 대화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여러분 마음속에 강물 같이 넘치는 하나님의 평안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수시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묵상해야 됩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세상일만 생각하지 말고 하늘의 일을 생각 하십시요. 하나님은 보좌에 계시고 예수님은 그 보좌 우편에 계시는데 위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감사하고 찬송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입술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이런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서 우리는 야웨를 앙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평적인 인생만을 살지 말고 수직적인 인생을 살아서 늘 하나님을 쳐다보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생활이 땅의 일로 온통 심신이 사로잡힐 때 스트레스에 걸립니다. 그때 그것을 잠시 중단하고 하나님과 하늘나라에 관심을 기우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스트레스의 줄은 다 끊겨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라는 스트레스의 힘이 우리를 막 묶어 놓아도 우리가 하늘을 쳐다보면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가 오면 그 줄이 다 끊겨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야웨를 앙망하고 사는 삶은 진실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참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넘쳐날 수 있고 인생을 여유를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매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찬양한다는 것은 야웨를 앙망하는 것이요 이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내리시는 은혜를 통해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주일 예배 드림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생의 압력에서 해방되고 스트레스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고 여러분이 또 한 주간 동안 인생의 짐을 지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겨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어야 정신적인 질병에서 육체적인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고 건강한 심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째로 성경에는 그렇게 하면 새 힘을 얻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야웨를 앙망하면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어떻게 새 힘을 얻느냐? 여러분이 하나님을 앙망하고 있으면 자아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수평적인 삶만을 살고 있으면 모든 수고와 괴로움이 짓누르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면 자기는 버림받고 고독한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좌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웨 하나님과 함께 만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참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이러므로 버림받고 고독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14장 18절로 20절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보십시요. 하나님 앞에 있으면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는 것을 알고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예수 사람이 된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죄악에서 해방되고 하나님과 원수 된 담이 무너졌으면 치료와 기쁨을 받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며 사망과 음부를 이긴 사람이라는 새로운 자기 이미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롭게 된 자아 이미지를 가지고서 살아가기 때문에 용기와 힘이 100배로 생겨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이 지식을 마음속에 하나님 앞에 확실히 가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면 새 힘이 오는데 그것은 성령이 주시는 새 힘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기다리면 하나님의 성령이 반드시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성경에 생수라고 말했습니다. 너희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그러면 너희 배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생수는 피곤과 갈증이 다 채워지는 것입니다. 인생에 피곤하고 외롭고 슬프고 갈증이 생겼을 때 하나님이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삶의 갈증을 채워주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힘이 생깁니다. 무더운 여름철에 뙤약볕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갈증에 잡히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완전히 지치고 쓰러집니다. 그러나 거기에 시원한 생수를 마시고 나면 얼마나 시원한지 몰라요. 우리가 어릴 때는 요사이와 같은 이런 소다나 사이다만 코카콜라나 펩시 콜라나 이런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밭에서 일하다가 갈증이 나면 우물물을 길어다가 거기다가 된장을 섞던지, 그렇지 않으면 간장을 섞어서 마시면 아주 시원해집니다. 저는 옛날에 그것을 많이 마셔봤는데 그러면 새 힘이 일어나는데 우리 인생에 지치고 피곤한 사람은 아무리 간장 섞은 물을 마셔도 소용이 없어요. 성령의 생수가 오면 시원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또 새 바람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생기가 다 죽었을 때 새 바람이 불어오면 생기가 돋아납니다. 성령은 새 바람으로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지치고서 피곤하여 완전히 기운이 쭉 빠졌을 때 성령의 생기가 우리에게 부어지는 것입니다. 요사히 “기(氣)”라는 말을 많이 쓰지 않습니까? 기가 죽었다, 그 사람 기가 다 빠졌다, 기가 나간 사람이다, 기가 나가고, 기가 빠지고, 기가 없는 사람, 아무리 침을 맞아도 안돼요. 거기에는 기도하면 성령의 생기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성령은 위대한 “기”인 것입니다. 성령의 기가 들어오면 우리가 완전히 살아나게 됩니다. 눈알이 또렷또렷하게 되요! 그리고 또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5절에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우리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그 뜨거운 마음이 넘쳐나면 그만 용기가 생깁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께 내가 사랑받고 있는데 이 세상 사람이 나를 어찌할 것이냐? 용기와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해지면 우리 마음속에 새로운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 7절로 8절에 보면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귀신도 쫓겨 나가고 치료도 받고 마음속에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쁨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꿈과 환상을 주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주리라고 했는데 소망이 다 없어지고 절망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성령은 와서 우리에게 내일에 대한 새로운 기도와 소망으로 채워주시고 꿈을 주시고 환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래서 일어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은 도전에 대한 응전의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용기와 담력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용기를 잃어버리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의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정치인도 용기를 잃고 사업가도 용기를 잃고 일반 시민도 용기를 잃고 앞으로 나아갈 힘과 담력을 상실합니다. 힘과 담력을 상실하면 아무 일도 못해요. 히브리서 10장 35절로 38절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지 않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꿈을 가지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되겠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오셔서 그렇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웨를 앙망하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면 어떻게 될까요? 독수리를 날개치면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독수리가 여러분 날개치며 올라갈 때는 땅에서 올라가는 상승 기류를 타고 확 올라갑니다. 여러분 참새가 나는 것은 헥, 헥, 헥, 헥 이러다가 그냥 나무가지에 앉아서 헉 헉 헉 합니다. 그것은 그냥 자기의 날개 힘으로 가니까 그렇게 날개를 빨리 쳤다가 나중에 기증맥진 하지요? 독수리는 자기의 날개 힘으로 날지 않습니다. 상승기류를 타고 쫙 올라갑니다. 여러분 인생을 사는 것도 하나님을 앙망하고 성령의 힘을 얻어서 사는 사람은 ‘믿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데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헉 헉 헉 헉 있는 힘을 다해서, 그러고는 아이고 나 죽어 합니다. 그러고도 별로 올라가지도 못합니다. 그 날개 치고 뭘 올라가요? 우리는 야웨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매주일 예배 드리고 난 다음에는 남은 주간에는 하나님과 함께 믿음으로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두려워하거나 불안에 떨지 않고 ‘믿습니다;로 날라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 결과로 달음박질을 해도 곤비치 않습니다. 달음박질 한다는 것은 뛰는 것 아닙니까? 쫓기는 인생, 숨가쁘게 뛰며 스트레스가 쌓여도 기진맥진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경쟁 사회에서도 우리가 달음박질 안 할 수가 있어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눕고, 또 여러가지 삶에 쫓길 때가 많습니다. 돈에 쫓기도 환경에 쫓기고 노동력에 쫓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세상에서는 피곤하지만 야웨를 앙망하는 사람은 하늘에서 힘이 임하여 있기 때문에 달음박질해도 곤비치 않습니다. 달음박질하면서도 마음속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달음박질할 수 있습니다. 6.25사변때 제가 부산 대천동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물이 없어서 물장수가 오면 물을 삽니다. 나는 그것을 늘 기억합니다. 그 대천동이 죽 고갯길입니다. 그러면 그 위에서 물장수가 리어커에 물을 잔뜩 싣고서 뛰어 내려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겨울철에 이마살을 찌푸리고 그렇게 내려옵니다. 그런데 제가 물을 살려고 병원 앞에 서 있으면 꼭 한사람 물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물을 리어커에 싣고 내려가면서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그러면서 찬송을 부르며 내려와요. 물을 살 때 아저씨는 늘 그렇게 기쁩니까? 마음이 늘 기쁩니다. 왜 기쁩니까? 예수님이 가슴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선생도 예수 믿으십시요. 그때 내 생각에는 예수 믿어도 별나게 믿는다. 예수는 교회에서 믿지 뭐 길거리에서 믿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24시간 그 생활 속에 주님이 같이 계셔서 그 삶의 곤비함 속에서도 그것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기쁨이 있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성경에는 야웨를 앙망하면 걸어가도 피곤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걸어간다는 말은 생활과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어서 평안해지는 사람들은 온갖 오락을 추구하다가 그것에 지쳐서 도박이나 마약이나 알콜중독으로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걸어가는 것도 여러분 쉽지 않습니다. 갑자기 생활에 여유가 생겨서 이제는 아침 늦잠을 자고 평안해지고 돈도 많아지고 순식간에 인생이 지쳐져서 그 다음에는 과소비 하기 시작하고 파멸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고 생활의 여유가 생기고 모든 것이 평안해져도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여유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올바르게 살 수 있는 지혜와 힘이 주어지기 때문에 걸어가도 여유있는 삶을 살아도 야웨를 앙망하는 자는 항상 새롭고 피곤치 않게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이 세상에 현실적인 삶이 점점 더 각박해지고 어려워지고 삶이 굉장히 심해짐으로 수평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정신적인 장애와 육체적인 질병과 가정적인 파탄과 생활의 고통으로 허덕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유의 주 되신 하나님이 계심으로 우리는 야웨를 앙망하고 살 때에 야웨께서 우리에게 새 힘을 허락하여 주셔서 언제나 큰 기쁨과 소망과 힘을 가지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먹으며 스트레스를 즐기며 스트레스를 이용하며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이 생존 경쟁을 피할 수는 없고 나이가 들수록 세계적인 삶의 생존경쟁 속에 형언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쌓이게 됩니다. 가정도 스트레스에 파괴되고 생활도 스트레스에 무너지고 마음도 병들고 정신적인 장애도 가져오고 사회도 어수선해집니다. 사람들은 여유가 없어 부딪히기만 하면 물고 찢고 싸웁니다. 아버지 이런 가운데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평안과 기쁨으로 물댄 동산 같이 살 수 있는 길은 야웨 하나님을 앙망하고 사는 길 밖에 없사옵나이다. 우리 아버지여 그러므로 우리 모든 사람들은 생수의 근원되는 야웨 하나님을 모시고 있음으로 야웨를 앙망하고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수평적인 인생을 살지 말고 수직적인 인생을 살게 도와 주셔서 항상 하나님을 쳐다보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며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서 스트레스를 이기고 성령의 상승 기류를 타고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같이 아버지 유유자적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좋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 거룩한 성령의 은혜로 주의 백성들에게 가득하게 채워 주시옵소서. 상승 기류를 타고 날아 올라가는 독수리처럼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 소망 사랑이 가슴속에 가득 차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오늘 병든 자가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님께서 다 병을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주께서 우리의 치료의 제물이 되셨으므로 주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오늘 이 시간에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모든 질병의 뿌리를 뽑아버려 주시옵소서. 마귀의 일을 멸하여 주시옵소서. 천지의 대주재이신 우리 아버지여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건강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기쁨이 없는 자에게 마음에 기쁨이 샘솟듯이 넘쳐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마음의 모든 슬픔과 우울을 예수 이름으로 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께 내어 놓사오니 주께서 그 짐을 맡아 주장하여 주시옵시고 주의 한없는 명철을 통해서 주의 백성들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시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 앞에서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악한 마귀의 모든 궤계를 모두 다 물리쳐 주시옵시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 우리 아버지여 감사를 드리옵고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