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2월 16일
제목 : 하나님께서 변화를 주시려 하실 때
성구 : 렘48: 11-12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서 변화를 주시려 하실 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이 끊임없이 향상되고 발전되며 변화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예레미야서에 하나님은 변화되지 않은 모압에 대하여 이렇게 경고를 내리고 있습니다. 모압은 옛날부터 편안하고 포로가 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마치 찌꺼기가 많은 포도주처럼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겨 부어 정제되지 않은 것 같아서 탁하고 맛이 좋지 아니하고 향기도 좋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압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모압이라는 포도주 그릇을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기울일 자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인이나 국가 사회가 변화되지 않고 발전되지 않을 때는 포도주 그릇을 기울이듯이 우리들을 기울여 시련과 환난을 통해서라도 변화 받는 개인과 사회, 국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첫째로, 변화를 갖고 오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는 필요하다면 포로가 되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포로라는 것은 신체적 생활적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우리가 요셉을 한번 보십시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포로 되어 간 것을 기억하시죠? 요셉은 나이 17살에 아버지와 고향을 떠나서 애굽에 종으로 포로로 잡혀 간 것입니다. 포로가 된다는 것은 신체적 생활적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응석받이로 자랐습니다. 고집이 세고 자기 잘난 체 하고 형제들과도 우애하고 화목하지 못하는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준수한 소년이었지만 그러나 그 인격적으로 찌꺼기가 많았었습니다. 마치 정제되지 않은 포도주처럼 그 찌꺼기가 가라앉지 아니하고 냄새가 나고 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요셉을 변화시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17살 때였을 때 형들이 목축하는 하는 곳에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음식을 가지고 문안 갔다가 형들에게 배반당하고 잡혀서 미디안 대상에게 팔리고 애굽으로 보디발의 집에서 종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종이라는 것은 인권이 전혀 없습니다. 짐승 보다 더 못한 삶이었습니다. 그 고통과 괴로움 그 슬픔에 짓밟히고 좌절의 몸부림을 쳤습니다. 요셉은 10년의 종살이에서 깨어졌는데 그 다음 또 모함을 당해서 3년 동안 시위대 감옥에 갇혀서 기약이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요셉은 깨어져서 아집이 세고 자기 중심으로만 생각하던 그 아집이 그 고난을 통해서 산산조각으로 깨어졌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겸손해졌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아니면 자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신을 깨닫고 아주 겸손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형들에 관해서 원한을 품고 이를 갈고 원수로 생각하고 언제나 원수를 갚겠다고 한 그것이 긴 세월 동안의 고통을 통해서 다 정화되었습니다. 이제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믿고 의지하는 위대하고 향기로운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13년 동안 종으로 포로 되어 한없는 심신의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그가 사람이 달라진 것입니다.
창세기 50장 20절에 보면 형들이 나중에 와서 요셉을 두려워하여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요셉의 자비를 구할 때 그는 말하기를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이와 같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생각하는 도량이 깊고 큰 아량을 가진 위대한 인물로 그는 변화를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변화시키려고 할 때 우리를 포로로 잡아가는 것입니다. 반드시 전쟁에서 적군의 포로로 잡혀가는 것만 포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질병의 포로가 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병들면 우리의 신체적 자유를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집을 깨트리고 겸손하게 낮추고 우리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려고 할 때 우리를 질병의 포로가 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질병에 잡히면 사회활동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하고 있고 싶은 곳에 있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도 먹지 못합니다. 행동하고 싶은 데로 행동하지 못합니다. 완전히 신체적인 구속을 받고 자유를 상실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으로 자리에 드러누워 있으면 그로써 인간이 허무한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깨어지고 자기가 겸손하게 낮아지고 그리고 남과 원한된 것 다 용서해 주고 전적으로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기고 의지하고 기도하는 이러한 사람으로 변화를 받습니다.
사람이 포로가 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포로 되었을 때 변화 받지 아니하면 그 포로 생활에서 해방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변화시키기 위해서 포로로 잡아 놓았기 때문에 변화를 받아야 그 포로 생활에서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부도가 나서 감옥에 갇히기도 하는 것입니다. 잘 살아 보려고 열심히 애를 써봐도 친구들에게 사기도 당하고 담보로 내어놓은 집들도 다 날라가고 배신당하고 그래서 하루아침에 빈털털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자기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이 부도를 내고 낭패를 당하고 경제 사범으로 잡혀서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제 자기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돈도 없고 사업체도 날라가고 모든 것 다 사라졌습니다. 마음도 자유를 잃어버리고 신체와 생활에도 자유를 잃어버리고 절망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렇게 깨어지게 될 때 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는 내가 할 수가 없습니다. 천부여! 오시옵소서. 손 들고 옵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던지 망하던지 성하던지 쇠하던지 이제는 주님만을 의지하고 나갑니다. 그리고 전심전력으로 회개하고 기도하게 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되고 변화를 받은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포로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고난을 당하게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우리의 신체적인 속박을 가지고 오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께서는 변화되지 아니하고 술에 찌꺼기가 가라앉음 같아서 냄새가 나고 발전과 향상을 하지 않은 개인이나 사회가 국가에게 거대한 타격을 가하여서 하나님께서는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로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포로된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병들고 사업에 낭패를 당하고 또 사고를 당해서 자유를 잃고 포로가 되어서 깨어지는 과정을 지낼 때도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긴다고 말한 것입니다. 상등품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포도를 짓이겨서 터뜨린 후에 한 그릇에 담아 놓으면 찌꺼기가 갈아 앉습니다. 그러면 다른 그릇에 붓고 또 거기에 부어 놓으면 또 찌꺼기가 갈아 앉으면 또 다른 그릇에 붓고 이렇게 해서 찌꺼기를 정화하고 순수하고 향기나고 맛있는 포도주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순수한 포도주와 같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합니다. 우리 개인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도 하나님은 그렇게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변화시키기를 원하시는 개인과 사회와 국가는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는 그런 과정의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그릇이 쉬운 그릇이 아닙니다. 어떤 그릇일까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환난의 그릇에 담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환난의 그릇에 담다 보면 환난은 밖에서 불어오는 풍파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환난이 다가옵니다. 자식들로 말미암아 환난이 다가오게 하고 부부간에 논쟁으로 환난이 다가오게 하는 것입니다. 가족들간에 투쟁으로 환난이 다가오기도 하고 친구에게 배신당하는 환난, 사업이 무너지는 환난, 경제적인 고통을 당하는 환난, 지금 우리 한국이 당하는 이 환난과 같은 그릇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제는 엉망이 되고 노사간에 갈등이 있어서 서로 물고 찢고 싸우고 정치인들은 정당끼리 물고 찢고 싸우고 경제는 엉망이 되고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모든 것이 환난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것이 바로 환난의 그릇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환난의 그릇에 담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여러분 환난의 그릇에 담길 때 그 환난의 그릇에서 많은 찌꺼기가 갈아 앉는 것입니다. 무슨 찌꺼기가 갈아 앉습니까? 자기를 의지하던 자만심이 가라앉습니다. 환난을 당하고 보니까 인간이 자기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자신 만만한 자신이 다 가라앉아 버린 것입니다. 모든 일이 내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 인간의 계획과 인간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발걸음을 옮기는 이는 야훼이시다. 내 힘으로 안 된다는 것은 환난을 통해 깨달아서 자기 의지의 찌꺼기가 가라앉습니다. 자기 자랑의 찌꺼기가 가라앉습니다. “뭐, 내가 이만하면 되었다, 내가 굉장히 잘 났다” 하는 그 자기 자랑의 망상의 찌꺼기도 가라앉는 것입니다. 자만심도 가라앉고, 교만도 가라앉고, 불순종의 찌꺼기고 가라앉는 것입니다.
시편 25편 16절로 18절에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곤란에서 끌어내소서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환난의 그릇에 우리를 담아서 흔들어 제끼고 찌꺼기를 갈아 앉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이 여러분 하나님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올림픽도 치르고, 세계 박람회도 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세계 부유국에 들어가게도 하고 무역량이 열한번 째이기도 하고 OECD도 가입을 하고 이러므로 말미암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정부나 우리의 기업인이나 노동자나 국민들 전체가 자만하고 자기를 자랑하고 교만하고 불순종하고 과소비하고 방탕했습니다. 이래서야 냄새가 나고 찌꺼기가 꽉 들어 찬 하등품 포도주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리를 환난의 그릇에 갖다 놓은 것입니다. 이 환난의 그릇에 우리가 담겨서 온 나라와 국민 전체가 환난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니, 자연적으로 우리가 잘랐다는 자기 의지, 자기 자랑, 자만심, 교만, 불순종이 가라앉고 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젠 자랑할 것이 뭡니까? 수치와 곤욕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아세아에서 제일 꼴지 가는 그런 나라가 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에서 자랑을 하겠습니까? 겸비하고 깨어지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있겠습니까? 이래서 주님은 환난의 그릇을 통해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주님께서 이 환난의 그릇에서 다시 곤고의 그릇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곤고라는 것은 밖에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서 오는 풍랑입니다. 밖에서 다가오는 풍랑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는 풍랑이 바로 곤고인 것입니다. 곤고는 내적인 고통입니다. 마음속에 열등의식, 좌절감, 미움, 분노, 시기, 질투, 불안, 공포, 이러한 것이 마음에 불어올 때 마음이 곤핍스럽습니다. 잠이 오지 않습니다. 분노로 말미암아 이를 갈고 있습니다. 물고 찢고 싸웁니다. 이와 같은 곤고의 그릇 속에 넣어지면 마음속에 다가오는 고통과 괴로움이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가정의 곤고의 그릇에 들어가면 부부간에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그 고통 속에 몸부림쳐야 됩니다. 가족들간에 분쟁 속에 휘몰아 들어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한 형제들간에 분쟁을 하고 나라와 나라가 갈리고 사회와 사회가 갈리며 여러가지 정신적인 고통을 많이 겪습니다.
곤고의 그릇에 담긴 형상은 여러분 보십시요. 이번에 신문에 보면 여당이나 야당이나 모두 다 곤고의 그릇에 담겼습니다. “내가 먹었다, 네가 먹었다, 네 자식이 먹었다, 내 자식이 먹었다, 내 자식이 심판 받아라, 네 자식이 심판 받아라” 다른 사람이 대외적으로 보면 우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마음에 심한 고통에 잡혀 있는데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면 그들 마음속에 곤고함이 한이 없을 것입니다. 이 곤고함의 그릇에 담겨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로마서 7장 24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가 깨어지면 건져낼 수 있습니다. 내 자아라는 우상이 깨어지고 자기라는 우상이 깨어지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남과 타협이 이루어지면 이 곤고라는 그릇에서 하나님이 건져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핍박이라는 그릇 속으로 다시 부어 넣습니다. 신앙 때문에 다가오는 고통이 바로 핍박인 것입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가정에서 핍박당하고 예수 믿기 때문에 사회에서 도외시 당하고 예수 믿기 때문에 국가적인 고통을 당합니다. 지금 파키스탄에서는 예수 믿는 촌락을 이슬람 교인들이 습격을 하여 3천여 명의 예수 믿는 성도들이 집도 다 잃어버리고 직장도 다 잃어버리고 길거리에 서서 나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당회를 열고 파키스탄에서 고난 당하는 기독교인들을 위한 우리 교회의 특별한 원조 계획을 토의하려고 합니다만, 이것이 핍박으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고통인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처처에서 이슬람교도들에 의해서 기독교인들이 당하는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정신을 차려야 됩니다.
이 핍박의 그릇에 우리가 들어갈 때 그 핍박의 그릇에서 가라앉는 찌꺼기가 무엇입니까? 핍박을 당할 때 냉랭한 신앙 생활을 회개합니다. 가짜는 떨어져 나가고 냉랭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핍박을 당할 때 더 열심히 뜨겁게 부르짖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과 타협하여 살아온 삶을 전부 다 회개하고 자복합니다. 핍박의 그릇이 다가오면 비로소 기도가 부족한 것을 회개하고 기도하게 되고 헌신이 부족한 죄를 회개하고 헌신하게 됩니다. 이러한 찌꺼기가 갈아 앉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1편 15절로 16절에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핍박을 당할 때 비로소 순수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붓는 그릇이 기근이라는 그릇입니다. 여러분 기근이라는 그릇으로 다시 부어 넣으면 기근은 직장이나 직업을 잃고 생계가 어려워집니다. 직장이나 직업을 잃고 생계가 어려워지면 그때 가라앉는 찌꺼기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까지 직장이 바쁘다 직업이 바쁘다고 하고 성수주일 하지 아니하고 교회를 받들지 못하고 십일조도 드리지 아니하고 주님과 동행하지 아니하고 살았던 모든 찌꺼기가 가라앉습니다. 직장 잃어버리고 직업이 망했을 때에 비로소 내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바로 보고 살고 수평적인 인생을 살고 수직적인 인생을 살지 못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지 못했다는 이러한 죄를 회개하고 이러한 찌꺼기가 다 가라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또 하나님은 적신이라는 그릇으로 우리를 부어 넣을 때가 있습니다. 적신이란 전쟁이나 큰 시련을 통하여 완전히 빈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집도 잃어버리고 가족도 잃어버리고 우리는 적신이 됩니다. 이 적신이 되는 그러한 체험을 우리는 6.25를 통해서 해 보았습니다. 6.25 전쟁을 통해서 우리는 가족도 잃어버리고 집도 잃어버리고 가진 것 다 잃어버리고 피난 대열에 빈손 들고 설 때가 있었습니다. 이 적신이 되었을 때 가라앉는 찌꺼기는 뭡니까? 이 세상 자랑, 이 세상 욕심이 다 허무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또 헛된 것이 이 모든 것이다. 세상 자랑, 세상 기쁨, 세상 쾌락, 세상 욕심을 따라 뛰어 왔는데 적신이 되고 보니, 이 세상 것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물거품입니다. 빈손 들고 와서 빈손 들고 가는 구나. 이것을 철저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로 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수직적인 인생을 살지 아니하고 땅만 보고 사는 삶은 결과적으로 이 적신이 되면 그 찌꺼기가 가라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위험이란 그릇 속에 다시 부어 넣습니다. 위험이라는 것은 예측불허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언제 자기에게 고통이 다가올지 모릅니다. 이 위험이란 예측불허 하는 상황 속에 뚝 떨어져 그 그릇에 들어가면 가라앉는 찌꺼기가 있습니다. 인간의 자신감인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의지하는 것, 이 자신감 이것이 다 찌꺼기가 되어서 가라앉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내 인생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위험 속에 둘러 쌓이면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안개나 구름에 가려서 오직 불안과 공포심만 꽉 들어찹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가 가진 것은 무엇입니까? 오직 마음을 다하여 주님만을 의지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내 생명의 보호자 되시고 하나님만이 내 생명의 보장이 되시고 하나님만이 나를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44편 3절로 4절에 “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이 인생을 하나님은 사랑해 주시고 하나님은 돌보아 주시니, 그때 마음을 다해서 위험이 다가올 때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만을 따라가는 그러한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칼이라는 그릇에 우리를 부어 넣을 때가 있습니다. 칼이라는 것은 순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칼이라는 그릇에 부어져서 죽음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 찌꺼기는 무엇입니까? 세상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세상을 분토와 같이 등지고 하나님이 예비한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경험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한 사람에게는 순결이라는 그릇 속에 집어넣어서 온 세상을 다 버리고 하늘 나라의 영광 속에 들어가도록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정 20장 24절에 바울이 말하기를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는 바로 칼의 그릇 속에 담겨진 자기 체험을 말한 것입니다. 이래서 주님께서는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저 그릇에서 또 저 그릇으로 우리를 옮겨 담는 것은 찌꺼기를 가라앉히고 순수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 변화 받은 사람은 어떠한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의 사람, 소망의 사람,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리고 용서와 사랑이 있는 그런 사람을 만들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우리를 정의로운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5편 1절로 2절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의롭게 사는 사람을 만들기를 원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정적이고 부정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여기에 은행가도 먹고, 정치인도 먹고, 정부도 먹고, 관리도 먹고, 우리 신문에 여러분 한 중소기업자의 피눈물을 흘리는 통분의 소리라는 것을 들었지요. 1억 3천만원 짜리 건물을 짖는데 3천만원을 뇌물로 먹여야 되었다. 1억 3천만원 건물을 짓는데 3천만원 뇌물을 먹이고 그리고 무슨 사업을 합니까? 그러나 이것이 우리 현실인 것을 우리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정치, 경제 현실에 정의가 살아나지 아니하고는 절대로 경제적인 부흥이 있을 수 없습니다. 고비용 저효율이라고 하지만 고비용이 어디에 나갑니까? 고비용이 전부 다 떡값 주는데 고비용이 다 들어갑니다. 떡 값 안주고 움직여 줘야지요? 이러한 것이 변화되지 않고는 한국의 현실이 변화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이 환난의 그릇, 곤고의 그릇에 넣어서 고통을 가하는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도록 주님께서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정직해야 됩니다. 우리가 정직한 것이 결국에는 나에게 이익이 되고 사회에 이익이 되고 국가에 이익이 됩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정직하면 손해 본다. 정직하지 않아야 이익을 본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크나큰 병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와 같은 시련 속에 밀어 넣는 것입니다.
우리는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우리가 하늘 나라에 충성하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향해서 충성스러워야 됩니다. 나 혼자만 살겠다고 하면 자기도 죽고 남도 다 죽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겠다면 나도 살고 집단도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주님께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유다서 1장 20절로 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세속에 물들지 않는 그런 순수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탐욕을 벗어버린 사람을 만들기를 원합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가장 무서운 것이 탐욕입니다.
여러분 오늘 지금 문제를 일으킨 모든 이들이 탐욕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까? 욕심이 잉태하니까 죄라는 과녁을 벗어난 빗나간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죄가 장성하니까 결국에는 죽음이 다가오지요. 탐욕이 우리를 망치는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자기의 분수대로 가기의 주어진 분량대로 살지 아니하고 탐욕을 가지고서 욕심을 부리면 비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부정 부패가 이렇게 만연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되기를 원합니다. 빌립보서 2장 3절로서 4절에 “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온유하고 겸손해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러한 삶을 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한국에 다가온 큰 풍랑은 하나님께서 한국인, 한국 사회, 한국 정부등 모두에게 변화를 가져오라고 경종을 울리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변화 받아라’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국가도, 변화를 받아라. 회개하고 변화되지 아니하면 이 세계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변화 받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그 그릇에서 옮깁니까? 찌꺼기가 가라앉아야 그 그릇에서 옮겨주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변화되지 아니하면 이 시대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변화는 우리 자신부터 교회에서부터 일어나서 이번 기회에 한국 사회가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썩은 것은 도려내고 병든 환부는 수술해 내고 그리고 정부로부터 정치인, 기업인, 노동자, 그리고 일반 사회인, 더구나 한국의 빛과 소금이 된 교회, 우리 자체가 크게 회개하고 변화 받을 때 하나님은 이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는 하나님의 진리의 손길을 주님께서 중지시켜 주실 것입니다.

변화만이 살길입니다. 우리는 변화 받아야 됩니다. 예수님 앞에서 개인이나 교회나 사회나 국가가 변화 받아야 됩니다. 변화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최후에 김정일과 그 집단을 사용해서라도 우리에게 변화를 강요하도록 큰 환난이 다가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환난이 다가오기 전에 주여, 나는 변화 받습니다. 주여 내가 회개합니다. 주여 우리를 변화 시켜 주시옵소서. 다 변화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술의 찌꺼기 위에 앉음같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아서 냄새도 변하지 아니하고 색깔도 변하지 아니하고 향도 변하지 않은 썩어진 이러한 상황 속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 나라가 모압처럼 되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모압은 술에 찌꺼기가 앉음 같아서 하나님이 이 그릇을 기울일 자를 보내겠다고 했는데 내 아버지의 환난이, 곤고가, 핍박이, 기근이, 적신이, 위험이, 칼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매일 매일 우리가 회개하고 변화 받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정부로부터 변화 받게 도와 주옵소서. 정치인이 변화 받게 도와 주시옵소서. 기업인과 노동자가 변화 받게 도와 주시옵시고, 사회와 국민이 우리 교회가 변화 받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변화 받아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이러한 변화가 다가와서 큰 시험과 환난을 피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야웨 하나님이여 우린 회개하고 자복하고 변화를 받사오니 변화 받는 사람마다 질병의 포로생활에서 놓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모두 질병에서 치료를 받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건강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삶의 포로에서 해방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모든 고난의 그릇에서 빨리 회개하고 찌꺼기를 털어버리고 해방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환난의 그릇, 곤고의 그릇, 핍박의 그릇, 시련의 그릇에서 해방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주의 자비의 손길을 베풀어서 안수하여 주시옵시고 모두 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심을 감사하옵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