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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2월 23일 제목: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성구: 눅3:22-25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갈릴리 해변가에 나오셨는데 날씨가 아주 청명하고, 훈풍이 불어오고, 바람은 명경알처럼 맑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시고 '우리 저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곧장 배를 준비해서 예수님을 모시고 노를 저어서 갈릴리 호수를 건너서 거라사 지방을 향해서 가고 있었습니다. 하도 날씨가 청명하고 훈풍이 불어오고 기분도 좋은지라 제자들은 그만 그 가운데에 들떴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간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얼마 있지 아니하면 예루살렘에 예수님이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등극할 것이요, 자기들은 예수님을 따라서 다 출세하고 슬픔과 고통은 사라지고 가난과 헐벗음과 멸시와 천대는 없어지고 부귀 영화 공명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상상에 너무 흥겨워지고 즐거워졌습니다. 이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미래에 대한 꿈을 이야기한다고 예수님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예수님과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것조차 잊어 버렸습니다. 전부 자기 생각에만 몰두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꽃을 피웠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서 그들은 어떻게 좋은 집을 사서 그 좋은 집을 꾸리고 살 것이란 것, 자기의 처자들이 어떻게 잘 먹고 잘입고 잘 살게 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을 존경하고 부러워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자기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고 그만 거기에 도취해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 때에 서서히 하늘은 먹장구름이 끼어 가고, 저 북쪽 헬몬산에선 거센 바람이 몰아쳐 불어오기 시작하지만 순식간에 온 갈릴리 호수가 물 끓듯이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갈릴리 호수는 보통 지면보다 600여척이 낮기 때문에 바람이 위로 불어 가면 진공상태가 이루어져서 물이 막 뜁니다. 순식간에 온 갈릴리 호수 전체가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 제자들은 놀라서 배를 바로 잡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가서 호화롭게 살 옛 꿈이 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경황이 없습니다. 죽음과 맞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부귀 영화 공명도 다 사라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절박한 상황에서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발버둥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 어부로서 바다에서 뼈가 굵어 배를 어떻게 저을지 알지만 너무 거센 풍랑이 불어옴으로 도저히 배를 바로 잡을 수가 없습니다. 순식간에 배가 하늘로 떴다가 그냥 내동댕이치는데 물이 배에 가득해 집니다. 열심으로 물을 퍼내고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를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절망에 들어섰을 때에 이제는 갈릴리 바다에 전부 익사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자 정신이 번쩍 든 것이 예수께서 그들과 같이 배를 탔다는 그 사실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배를 탄 것만 알았지, 그 동안에 예수님이 같이 계신 것을 몰라서 예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보니 예수님은 저 배 한 모퉁이에서 팔을 베개하고 쿨쿨 주무시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천둥 번개가 치고 요란스럽게 바람이 불어도 예수님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그대로 주무시고 계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가서 예수님을 흔들어 깨웁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보시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들이 언제 예수님이 함께 탄 것을 기억했었습니까? 그들은 자기들의 삶의 설계의 꽃을 피우고 예수님이 타신 것을 기억도 하지 아니하였는데 죽게 되니까 예수님을 기억한 것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처해서야 예수님을 깨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사 일어서서 바람과 바다를 바라보고 고요하라. 잠잠하라 말씀하시니 순식간에 울던 아이가 울음을 그치듯이 히죽히죽하더니만 울던 바다와 파도가 잠잠했습니다. 제자들은 너무 놀랐습니다. 그렇게 천지를 진동하던 바람과 파도가 순식간에 조용해질 수 있느냐? 이 누구기에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매 자연 조차 명령에 순종하여 잠잠해지는가?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믿음을 어디에다 두었느냐!" 얼마 있자 거라사 지방에 도착하고 그들은 무사히 육지에 닿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은 우리에게 굉장히 큰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 모두 삶이란 배를 타고 이 세상을 건너가고 있습니다. 이 제자들이 배를 타고 예수님과 함께 갈릴리 호수를 건너 간 것처럼 우리는 인생이란 바다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우리 인생의 배에 함께 타시고 주님께서 천국의 저 피안까지 건너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배를 탔으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탄 인생의 배에서 우리의 태도를 올바르게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그 배 안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중심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중심이 되면 안됩니다. 거기에다가 예수님이 우리 삶의 최대 관심사가 되어서 우리의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모든 것이 예수님 중심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는가, 그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끊임 없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대화를 계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침 점심 저녁 언제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께 기도하는 대화를 그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하지 않고 우리가 잘못하면 예수님을 주무시게 합니다. 어떻게 해서 우리의 삶 속에 인생의 배에 예수님을 주무시게 하고 우리 스스로 혼자만 배를 타고 가는 그런 어려움을 겪게 될까요? 여러분 우리가 자아가 삶의 중심이 될 때에 예수님을 잠재워 놓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종교적인 인본주의로 주여, 주여 하면서도 자기 중심으로 삽니다. 예수님은 그냥, 곁에 두고서 필요할 때만 부르짖지 그 이외에는 주님에게 아무런 권리도 주지 않습니다. 내 중심으로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삽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을 잠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생활, 사업 성취 등이 최대의 관심이 되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저녁 늦게 누울 때까지 자기 생활, 자기 사업, 자기 성취만 생각하고 그 일에만 몰두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때 예수님을 잠재워 놓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도우심을 필요로 느끼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뭘 특별히 나를 도와줄 수 있을고? 내가 무슨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하냐! 그래서 예수님의 도우심을 필요하지 아니한 그런 심정이 될 때 예수님을 잠재워 놓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와 섬김이 귀찮아지고, 삶의 악세사리로 변할 때, 왜 주일이 이렇게 빨리 다가오느냐! 주일이 왔어도 그저 빨리 빨리 그 의식을 집행하고는 돌아가야 되겠다. 그렇지 않으면 주일날 놀러가고 오후 늦게 와서 형식적으로 한번 예배 보고 떠나갑니다. 이것은 안보는 것 보다 못합니다. 주일 오전 중에 좋을 때 골프 치고 등산하고 놀러갔다가 오후 느즈막하게 교회에 와서 안녕하십니까? 하고 나가는 예배는 모욕적인 것입니다. 이런 예배는 차라리 안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양심을 속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예수님을 잠재웁니다. 이러한 삶이 되면 벌써 환난과 풍랑은 이미 예견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은 마귀가 볼 때 이때 이 사람을 침몰시켜야겠다. 예수님을 잠재워 놓았을 때, 예수님이 간섭하지 않았을 때 이때 이 사람을 침몰시켜야 되겠다. 그래서 순식간에 풍랑을 가지고 와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도 그와 같이 신앙이 잠든 사람들 예수님을 잠재워 버리고 자기 인간의 육체로 사는 사람들을 잠에서 깨우치기 위해서 이러한 거대한 풍랑을 마귀가 가지고 오더라도 허락해 주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잠에서 깨어 일어나게 하도록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10장 10절에 보면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라고 했는데 도적이 언제 옵니까? 잠들어 있을 때 오지 환히 깨어 있을 때 도적이 옵니까? 베드로 전서 5장 8절에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했는데 근신하고 깨어 있지 못할 때 이런 거대한 풍랑이 우리의 인생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삶의 거대한 환난과 시련을 당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보통 사람들은 최선, 최대의 노력으로 대응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이 제자들처럼 자기들은 어부들이요, 평생에 뼈가 굵도록 배를 젓고 고기를 잡으면서 살았기 때문에 능히 풍랑을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힘을 다해서 노를 저어 보고 하지만 여러분 마귀가 사람을 죽이려고 작정을 하고 풍랑을 가져올 때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그것을 이겨 나갈 수가 없습니다. 제자들이 풍랑을 많이 만났지만 갈릴리 호수에서 그렇게 무시무시한 풍랑을 당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이 풍랑의 배후에 마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송두리째 침몰시켜 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잠든 틈을 통해서, 영적인 잠을 잘 때 송두리째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켜 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거대한 풍랑을 당했을 때 우리의 힘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때에 우리들은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주님을 잠에서 깨워 일으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아니하면 주님께선 잠에서 깨어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해야만 잠에서 깨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우리의 사업에서 우리의 나라에서 주님이 깨어 일어나십니다. 주님을 깨우지 않고는 그 풍랑을 잠잠하게 재울 수가 없습니다. 그 풍랑의 배우에 있는 원수 마귀를 묶고 내어 쫓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깨우지 못하면 침몰 당하고 맙니다. 파멸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풍랑을 당했을 때 회개해야 하는데, 무엇을 회개해야 될까요? 인본주의 적인 삶을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은 디모데후서 3장 1절로 5절에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고 자궁하며 교만하면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 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종교적인 인본주의, 종교를 안 가진 것은 아닙니다. 나는 배속에서부터 예수 믿었습니다. 나는 세례 교인입니다. 나는 교회에 출석합니다. 하면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완전히 인본주의로 사는 사람, 이러한 사람이 풍랑에서 깨어져서 완전히 회개하고 참으로 주님께 돌아오는, 그래서 그리스도를 모시고 중생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삶의 거대한 환난과 시련을 당했을 때 이 세상과 세상의 것만을 추구하고 산 삶을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로 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분수를 저버리고 욕심을 낼 때에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기 분수대로 예수님을 섬겨갈 것이지, 예수님을 제켜놓고 부귀 영화 공명을 생각하다가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지금도 풍랑 맞는 사람이 정치계, 경제계에 많지 않습니까? 다 욕심 때문에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 결국에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세상과 세상의 것만을 추구하고 산 삶을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관하여 무관심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삶을 살면서 세상 일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부귀 영화 공명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그리스도의 대해서 무관심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가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우주와 역사의 최대 관심사가 예수님인 것입니다. 그 최대의 관심사가 예수 그리스도인데 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무관심하고 변두리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관하여 절대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우리의 삶을 가장 하나님 중심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주님에 관하여 무관심한 저를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지 않은 것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임금은 교회에 계시지 않습니까?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지 않습니까? 교회를 위해서 일하고 교회를 섬기고 교회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그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그 의를 구하는 것은 예수님이 이 자리에 계시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항상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사는 삶이 그 의를 구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 나라를 구하지 않고 그 의를 구하지 않고 자행자재하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만 따라 산 죄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죄를 회개하고 주님에 대한 경배와 사랑과 헌신이 마음속에 살아날 때 주님은 깨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에 대한 경배, 우리 주님에 대한 사랑, 헌신이 도로 살아나야 되요. 주여, 주여, 나를 용서하시고 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부르짖어 기도하게 될 때 주님은 우리의 삶의 배에서 잠을 깨고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로 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에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삼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살겠다는 그러한 마음의 부흥이 일어날 때 우리 주님께서는 잠에서 깨어 일어나는 것입니다. 셋째로, 풍랑을 잠잠케 하는 예수님을 보십시다. 예수님께서 잠에서 깨어 일어나자 온 천지가 캄캄하고 거센 바람이 불어오고 파도가 치고 배가 순식간에 뒤엎어질 그런 위기에 주님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은 알파요 오메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 주께서 바람과 파도를 보시고 '고요하라 잠잠하라' 말씀하시니 즉시 숨죽은 듯이 잠잠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꾸짖었었는데 귀도 없고 눈도 없는 자연이 주님의 꾸짖으심을 들었겠습니까? 꾸짖은 이유는 그 풍랑 배후에 마귀가 있었기 때문에 마귀를 꾸짖은 것입니다. 파도가 무슨 예수님의 말을 듣습니까? 귀가 있습니까? 주님이 꾸짖으신 것은 그 파도를 일으키고 바람을 일으킨 배우의 세력을 꾸짖은 것이고 배후의 세력이 물러가니 현실 문제는 즉시로 고요하고 잠잠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우리에게 오신 것은 우리 인생의 풍랑을 잠잠케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에덴에서 나오자 거기에서부터 거대한 폭풍이 발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나오자마자 인생을 죽이려는 마귀의 역사가 일어나서 거대한 풍랑이 인생에 일어난 것입니다. 인생에게 다가온 거대한 풍랑은 바로 죄악의 풍랑인 것입니다. 죄악이 거대한 풍랑으로 일어나서 인간을 죄의 노예로 잡고서 계속해서 죄의 능력으로 지옥으로 끌고 갔었습니다. 누가 죄의 풍랑을 잠잠케 할 수 있습니까? 그 다음 고독과 미움과 분노와 절망의 풍랑이 인간에게 휘몰아 쳐왔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버림받자 온 우주에서 버림받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물고 찢고 싸운 것이 인간의 역사인 것입니다. 거대한 고독과 미움과 분노와 절망의 풍랑에 인간들은 시달리고 있습니다. 인간은 또한 질병의 풍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마음이 병들고 육체가 병들고 생활이 병듭니다. 인간의 삶은 한 평생 병과의 싸움에서 몸부림을 치다가 가는 것입니다. 이 질병이라는 거대한 풍랑 이것을 어떻게 우리가 이겨 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거기에 또한 보태어서 슬픔의 풍랑이 있습니다. 인간은 즐거운 날보다 슬픈 날이 더 많습니다. 울면서 태어나서 울면서 인생을 떠나는 것이 우리의 삶의 과정이 아닙니까? 너무나 많은 슬픔이 우리의 삶 속에 다가오고 우리는 마음에 슬픔으로 말미암아 상처투성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슬픔의 거대한 풍랑을 누가 이겨낼 수 있습니까? 여러분 또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간이 자기 계획대로 일이 됩디까? 낭패와 실패, 저주와 가난의 풍랑은 인류 역사를 통해서 끊임없이 휘몰아 쳐왔습니다. 우리가 항상 두려워하는 것은 헐벗음과 굶주림이 아닙니까? 바로 우리 휴전선 건너편에 북한의 이천만 명의 동포가 지금 겪는 것이 거대한 굶주림의 풍랑 속에 빠져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이 거대한 굶주림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까? 가난은 나라도 못 도운 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망과 지옥의 풍랑도 휘몰아쳐 오고 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사망은 와서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지옥은 크게 입을 벌리고 모든 사람들을 지옥으로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이 인간의 풍랑을 누가 잠잠케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교육으로 과학으로 모든 인간의 힘을 총동원해서 이 풍랑을 잠잠케 하려고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노력을 해왔지만 풍파는 세어지기만 합니다. 잠자지 않습니다. 이 풍파를 누가 잠잠케 합니까? 이천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리고 여섯 시간 매달린 이후에 주님께서 풍랑을 향하여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가 다 이루었다" 이 한마디가 인생의 풍랑을 잠잠케 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죄악이 잠잠해졌습니다. 미움과 버림받음이 잠잠해져 버렸습니다. 질병과 슬픔이 잠잠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저주와 고통이 잠잠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죽음과 지옥이 잠잠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서 예수님을 우리 마음속에 깊이 모셔드릴 때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죄악은 사라지고 죄악의 풍파는 잠잠해지고 용서와 의가 가득하게 되며 미움과 버림받은 풍랑은 잠잠해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충만해지고 질병과 고통은 잠잠해지고 치료와 건강이 다가오고 슬픔 대신에 그리스도의 기쁨의 태양이 마음속에 비취고 저주 대신에 아브라함의 축복이 우리 마음에 가득하게 되며 죽음과 절망 대신에 천국과 영생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 풍파를 잠잠케 하신 이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이외에 아무도 인생의 풍랑을 잠잠케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인생의 배에서 예수님을 깨워 일으켜야 됩니다. 풍랑을 잠잠케 하려고 다른 인간의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노력해 봤자 헛수고입니다. 잠잠해지지 않습니다. 풍랑은 더 거세어지고 나중에는 급기야 침몰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깨워야 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하신 예수님을 깨워 일으켜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신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 일으켜야 되는 것입니다.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하리라는 예수님을 깨워 일으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어떤 풍파에 시달리고 있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오리라고 했지만 여러분이 예수님을 잠재워 놓고 말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 일으키는 대 회개 운동이 일어나고 주님께 헌신의 역 사가 일어나면 주님은 오늘날도 깨어 일어나서 여러분의 인생의 풍파를 향하여 고요하라. 잠잠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평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너무나 거대한 이 변화를 바라보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가 뉘기의 바람과 파도를 명하매 순종하는고? 삽시간에 그 거대한 풍랑이 잠잠해졌으니 제자들이 마음속에 기이하게 여길 만도 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여러분이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서 일으키면 모든 주위 사람들이 놀랄 만큼 순식간에 우리의 인생에 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비칩니다. 바람이 잠잠해지고 고요함이 가득합니다. 오늘 저 사람 어떻게 된 거냐? 저 사람이 예수 믿더니 저런 변화가 다가 왔다. 오늘날 여러분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종교적인 지도자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냥 종교적인 지도자이지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은 아니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님을 오직 영적인 구주로만 오해하고 영적인 문제나 해결하지 우리의 현실 생활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는 주님께선 무관심할 뿐 아니라 거기에 대한 능력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오직 내세의 능력자로 장차 올 세상에서 주님께서 다스리지 지금은 다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은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권과 물권을 다 손에 쥐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올바르게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우리의 믿음을 살아있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것입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 믿음이 종교적인 곳에만 있느냐? 너희 믿음이 영적인 구원에만 있느냐? 너희 믿음이 오직 내세에 일어날 일만 믿고 있느냐? 왜 현재의 풍랑을 잠잠케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느냐? 현재 너와 함께 있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느냐? 주님께서 오늘 그것을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풍랑을 꾸짖어 잠잠케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5장 11절에 보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령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고 말씀했었습니다. 베드로 전서 5장 9절에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현재의 마귀의 역사를 대적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도 "마귀를 대적하라 그러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의 세계만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오늘날 역사와 인간의 운명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조국의 실정이 바로 풍랑을 만난 일엽편주와 같습니다. 매일 신문을 보던지 TV의 뉴스를 듣던지 우리 한국이 지금 처한 처지가 거세게 요동하는 일엽편주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아우성을 치고 앞날을 바라보지 못하고 불안과 초조와 절망에 있습니다. 이때 우리 국민 개개인과 교회는 회개하고 부르짖어 주님을 잠에서 깨워 일으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 풍랑은 우리가 자초한 것입니다. 왜? 호화, 사치, 방종하고 과소비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가치관을 상실한 사회는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 한국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산업 모든 분야에 가치관을 잃어버렸습니다. 전부 이기주의와 독선과 쾌락에만 빠져 있습니다. 이 가치관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데 풍랑이 안 다가올 수가 있겠으며 마귀가 이 나라를 무찔러 버리려고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다시 한번 가치관을 회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먼저 앞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정부도 정당도 사회 단체도 노동 단체도 조국과 민족 앞에 설 수는 없습니다. 조국과 민족은 영원합니다. 나라와 민족이 사라지면 모든 것은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올바른 가치관에 서야 됩니다. 그 가장 올바른 가치관이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참된 가치관을 회복해야 예수님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이 파도를 잠잠케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파도를 잠잠케 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회개하고 부르짖을 때가 왔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아는 교회가 회개하고 부르짖어야 될 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회와 국민들도 회개하고 부르짖어야 될 것입니다. 돌이켜야 됩니다. 변화 받아야 됩니다. 새로와져야 되는 것입니다. 가치관이 정립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이라는 갈릴리 바다는 잠잠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들은 개인의 삶에 풍랑을 만나기도 하고 인류로서의 삶에 풍랑을 만나기도 합니다. 갈릴리의 풍랑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인생에게 다가오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로 나타나는 인생고의 풍랑을 잠잠케 해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가 당한 우리 사회와 우리 국가 현실의 풍파를 잠잠케 하시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직 문제는 우리가 회개해야 되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중심으로 서지 못한 죄를 회개하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만 되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 국민 전체가 호화 사치 낭비 방종에서 돌이키고 회개해야만 되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남만 회개하라고 하고 남만 변화 받으라고 하지 말고 자기가 회개하고 자기 스스로가 변화 받게 도와 주시옵소서. 내 아버지 하나님이여 원하오니 이 민족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대한 회개 운동이 일어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서로 계속해서 물고 찢고 싸우며 남의 결점만 파헤치고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아니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만 가르치다가는 멸망 받고 말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여 원하오니 지금이라도 그 풍파에 침몰하기 전에 내 아버지 교회가 성도가 나라가 민족이 하나님 앞에 돌이키게 도와 주시옵시고 회개하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