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997년 3월 2일 제목: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할 때 성구: 시 23: 4-5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할 때"라는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인간은 전지 전능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하루에도 자기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또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와 사고와 고난스러운 일 때문에 늘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나나 내 가족이나 내 주변에 오늘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것인가? 늘 불안합니다. 이 마음의 불안과 초조, 혹은 공포를 어떻게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극복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까요? 여러분 시편 기자 다윗은 시편 23편에 여기에 대한 놀라운 말씀을 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여기에는 다윗의 깊은 신앙에 대한 계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닌다는 말은 정말 우리의 삶 속에 극한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골짜기란! 삶의 희망이 사라지고 오직 죽음의 절망적인 가장 고독한 골짜기, 황량한 삶의 시련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시련이 너무 깊어서 이제는 살 희망조차 잃어버립니다. 살길이 망막하게 되는 이러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밝은 골짜기가 아니고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조금도 앞을 바라볼 수 없는, 빛이 사라진 고난의 어둠이 짙게 덮인 골짜기인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 정치권이나 우리 경제나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그러한 처지와 같습니다. 우리가 신문을 보든지, 라디오 TV를 듣고 보든지 모든 이야기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간 이야기인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살아날 수 있을까? 과연 우리에게 희망이 다시 있을까? 우리가 제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이러한 질문이 우리 국민들의 가슴을 메아리 칩니다. 그러나 여기에 다윗은 말하기를 내가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도와줄 자 없는 처참한 처지에서도 결코 파멸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그런 곳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임할 것이라고 다윗은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주님의 약속입니다. 내가 자격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기르시는 양이기 때문에 비록 양인 우리들의 눈에는 아무 것도 안보이고 느낄 수가 없어도 주님이 지팡이를 가지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막대기로써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역사를 계속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절망에 처해있을지라도 전지가 아득할지라도 그 가운데에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목자이신 하나님이 와서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해서 감각을 초월해서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현실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요셉의 체험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고 잘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만 형들에게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작정을 하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온 요셉을 붙잡아서 옷을 벗기고 그를 마른 우물에 처넣었을 때 그는 무덤의 골짜기로 내려앉았습니다. 진실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려갔었습니다. 그에게는 빛이란 전혀 없었습니다. 그 허허벌판에 형들이 마른 우물 속에 그를 던져 넣어버리고 그대로 떠나가 버리면 그는 살아갈 희망이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그는 모든 것이 끝장이 나고 절망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보면 그 혼자 마른 우물에 혼자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 들어와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믿는 자 마음속에는 위대한 소망입니다. 마른 우물에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 들어와 있어서 그렇기 때문에 얼마 있지 않다가 주님께서 그 형들의 마음을 변화시켜서 아라비아 대상들이 올 때에 '우리 동생을 저 곳에 던져서 죽이는 것보다는 팔아서 돈벌이하자'함으로 '은 20냥'에 종으로 팔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분 바로 주님께서 같이 계셔서 요셉의 생각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아라비아 대상들에게 종으로 팔려 끌려갈 때 그는 이제 소망의 빛이라고는 한줄기도 없었습니다. 나이가 겨우 17살인데 아버지를 떠나서 이제는 전에 가본 적이 없는 애굽으로, 그것도 종으로 끌려가는 처지에 있으니까 빛이란 한줄기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처절한 절망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라비아 대상의 종으로 끌려가면서도 그가 몰랐던 것은 하나님도 함께 아라비아 대상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요셉 혼자 내려가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같이 내려간다는 것은 어떠한 극한 상황에 처해서도 하나님이 떠나지 않고 같이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애굽에 종으로 끌려가는 그 길은 애굽의 총리 훈련학교로 유학가는 길이었다는 것을 그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는 종으로 끌려간 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유학의 길로 끌고 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그렇게 엄격하게 틀린 것입니다. 그는 10년 동안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했습니다. 그는 외롭게 종살이했습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고향을 그리워했습니다. 매일 눈물로 세월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 종살이하는 가운데 하나님도 함께 요셉과 있다는 사실을 요셉은 몰랐습니다. 목자는 언제나 양과 같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은 언제나 자기 혼자 외롭고 고독하게 종으로서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러나 종살이하는 그 곳에 야웨께서 함께 계셔서 매일 매일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39장 1절로 6절에 보면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시위 대장 애굽 사람이 보디발이 그를 그리고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여기에 보십시요. 요셉은 종살이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생각이나 감각을 초월해서 요셉과 같이 계심으로 그가 하는 모든 일을 형통케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통의 하나님께서 요셉을 종으로 해서 형통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고 또 잡혀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이런 불행이 어디에 있습니까? 왜 내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만 다가오느냐? 나는 왜 죽을 일만 당하느냐? 그는 탄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시위대 감방에 갇혔는데 그 감방에 야웨께서 따라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지 아니하시고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끝까지 따라 붙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그 감방에서 요셉을 형통케 만듭니다. 창세기 39장 21절로 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물 안에서 요셉과 같이 하시고 종으로 끌려온 생활 속에서도 같이 계셨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이 그 감옥에 같이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시편기자 다윗이 말한 것처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어느 곳에 가나 주님께서 형통케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절대로 없습니다. 우리들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종종 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알아야 될 것은 절대로 내 형제나 부모나 친구가 다 나를 떠난다 할지라도 주님은 그 사망의 골짜기에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고 나의 삶 전체에 주님의 능력으로 형통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 위대한 소망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들어가서 천지를 알아볼 수 없을지라도 그곳에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여러분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친다고 말한 것입니다. 원수는 나를 끊임없이 참소합니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가지고 나를 할퀴고 참소합니다. 그리고 망하게 하려고 하고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면 원수의 보는 앞에서 진수 성찬을 차립니다. 원수의 보는 앞에서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얻게 하십니다. 시편 118편 6절로 7절에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야웨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심으로 원수가 오면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편에 서서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나를 치는 것이 아니라 야웨를 쳐야만 나를 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웨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를 형통케 하심이라 시편 100편 3절로 4절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를 기르시기 때문에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를 형통하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름 부은다는 것은 특별히 구별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시편 20편 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바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서 우리 하나님께서 별도로 제켜 놓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능력의 팔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4절로 15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진수성찬을 차리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를 발라서 내 잔을 넘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잔이 넘친다는 것은 만족하고 풍성한 축복을 말합니다. 원수 앞에서 파멸 당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 앞에서 오히려 만족하고 풍성한 축복을 우리에게 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시편 21편 5절로 6절에 "주의 구원으로 그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으로 저에게 입히시나이다. 저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우리가 바울과 실라의 빌립보 전도 사건을 통해서 잘 볼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관원에게 잡혀서 많이 얻어맞았습니다. 성경은 사도행전 16장 22절로 24절에 보면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복음을 증거하다가 잡혀서 원수들에게 얼마나 맞았겠습니까?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빌립보 감옥에 끌려가서 깊은 곳에서 착고에 튼튼히 손발을 채웠습니다. 몸에는 피가 흐르고 배는 고프고 쓰리고 습기는 차고 벌레는 기어올라오고 손발이 착고에 묶였으니 드러누울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가장 고통스러웠습니다. 원수들은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너희 하나님이 어디에 살아계시냐! 복음을 증거하다가 잡혀서 깊은 감옥에 들어가서 도울 자 없으니 잘 되었도다. 그러나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그곳에서 원망이나 불평 탄식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에 26절에 보면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여기에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진수성찬을 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냥 빌립보를 뒤흔들어서 옥터가 다 흔들리고 착고가 다 풀리고 문이 다 열려버리고 만 것입니다. 거기에 있는 간수장이 놀라서 뛰어 들어와서 '선생이여 어찌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바울이 말하기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날로 바울과 실라를 모셔와서 목욕을 시키고 진수 성찬을 차려서 대접하고 바울과 실라에게서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고 예수 믿고 구원받고 이제는 감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방에서 진수 성찬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날에 바울과 실라가 로마 사람인줄 알고 재판도 안하고 때려서 감옥에 가둔 것이 겁이 났기 때문에 그곳에 있는 지사가 직접 와서 바울과 실라를 모시고 도시 밖으로 내보낸 것입니다. 원수들이 그들을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주시고 기름으로 발라서 잔이 넘치게 만들어 주고 만 것입니다. 그 결과로 빌립보에 튼튼한 교회가 서고 하늘나라가 왕성하게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 다윗의 시편 말씀을 우리가 기억하고 첫째로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하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 나의 양을 위해서 나의 목숨을 버리노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어떠한 환경에도 주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아우슈비츠의 유태인 수용소 캠프에 이런 글이 벽에 쓰여 있었습니다. 매일 마다 수많은 유태인이 끌려와서 가스실로 들어가서 처형을 당했는데 그곳에 "구름으로 태양을 가려도 구름 위에 태양이 있는 것을 믿는 것처럼 지금은 환난과 고통 밖에는 없지만 그러나 어딘가에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 그 신앙 고백은 놀라운 고백인 것입니다. 여러분 구름이 아무리 하늘을 가리워도 구름 위에 태양이 있는 것을 아는 것처럼 우리의 환경이 아무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같이 계신 하나님은 우리와 24시간 늘 같이 계신다는 이 사실을 알고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늘 하나님을 생각하고 마음에 용기를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1장 8절에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로 6절에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 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이러므로 우리는 요셉이나 바울이 체험한 것처럼 어떠한 처지에 있어도 절망하지 말아야 됩니다. 왜? 눈에 안 보여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정복할 수 있어도 하나님을 정복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누가 우리를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둘째로, 하나님과 성도는 목자와 양의 관계임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에 있어 양은 목자를 믿고 따라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양이 어디에 푸른 초장이 있고 어디에 쉴만한 물가가 있는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목자만이 아십니다. 양은 목자를 바라보고 전폭적으로 믿고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로 28절에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목자와 양의 관계란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목자로서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고 지도하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을 마음에 알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목자 되신 하나님만을 처다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섭리를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을 보십시요. 하나님의 초월적인 섭리는 우리의 지혜를 초월합니다. 그가 애굽에 끌려갈 때 종으로 끌려간다고 생각을 했지만 하나님의 초월적인 섭리는 그를 총리가 될 수 있는 훈련 학교로 데리고 갔던 것입니다. 그가 억울한 누명을 덮어쓰고 너무나 억울하고 답답하게 변명 한마디 못하고 실컫 보디발의 손에서 얻어맞고 난 다음 시위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그는 그곳에서 기약이 없습니다. 3년 동안 그곳에서 썩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시위대 뜰이 바로 국문총리로 올라가는 다음 단계인 것입니다. 요셉은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섭리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 보다 높고 크십니다. 저 하늘이 높음 같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높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섭리하신 것을 우리가 읽어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이신 것을 안 이상 우리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내어 맡겨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섭리를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한국에 정치적으로 이렇게 혼란스럽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다가오고 사회적으로 국민들의 마음이 분분하고 하지만, 제가 하나 아는 것은 우리 한국에 오만 제단이 있고 십만 주의 종이 있고 천만 성도가 있어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초월적인 섭리가 이 가운데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초월적으로 섭리하기 때문에 인간의 지혜나 총명을 초월해서 내일에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언가 하나님이 만들어 내어놓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개혁을 우리의 정치계나 우리 경제계에 우리의 사회에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는 우리의 지혜와 지식을 초월해서 하나님이 크고 비밀한 일을 나타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섭리를 항상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나의 좁은 지혜나 지식을 믿고 내가 불안하고 초조하면 스스로 파멸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느긋한 마음을 품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마음을 평안히 생각하고 주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겨 버린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책임을 저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그 품에 기대어서 우리가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초월적인 섭리를 믿고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는 그런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네째로, 항상 긍정적으로 사물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 주를 믿는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사물을 보면 안됩니다. 전지 전능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시니 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사 그 아들 예수를 보내시사 몸 찢고 피를 흘려 구원을 해주신 이상 나는 하나님께 중요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유 없이 나를 파멸시킬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흥하는 것도 망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합쳐서 종국적으로 선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조건하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플러스 사고방식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요. 십자가는 플러스 표입니다. 예수님을 끌어안으면 모든 것이 플러스가 된다는 그 말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마이너스 인생을 살지만 예수님을 품에 안고서 살면 종국에 가서는 플러스가 됨으로 우리는 마음속에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의 가슴속엔 부정적인 생각에 꽉 들어차 있습니다. 우리의 대통령, 우리의 정치권, 우리의 노동자, 우리의 사용자, 우리의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 꽉 들어차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안고서 긍정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소용돌이가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변역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권의 소용돌이, 경제계의 소용돌이, 사회적인 어려움, 이런 것이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이것은 내일에 옥동자를 낳으려는 하나의 진통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진통 없이 좋은 것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이 고난이 내일의 더 위대한 삶의 창조하는 하나의 진통인 것을 알고 오히려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진통이 없이 어떻게 내일의 옥동자를 낳을 수가 있겠습니까? 언제나 구로가 있어야 자녀를 얻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사회의 현재의 구로는 더 나은 대한민국을 낳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정적으로 말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것은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나 바울이나 실라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원망하고 탄식했으면 자살을 했던지 스스로 파멸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 극심한 환경에서도 꿈과 환상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역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말과 긍정적인 행동을 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다섯째로 여러분 우리는 기뻐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다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왜 기뻐하느냐?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고 난 다음 너무 너무 쓰라린 핍박에 그만 낙심했습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가 식음을 전폐하고 낙심하고 있는데 그 부인이 상복을 입고 대청 마루에 앉아서 땅을 치고 웁니다. 마르틴 루터가 깜짝 놀랐습니다. '여보 누가 세상을 떠났소?' '세상을 떴습니다.' '누가 떠났소?' '하나님이 세상을 떴습니다.' '무슨 그런 망발을 하오! 하나님이 왜 세상을 떴다는 것이요?' 부인이 딱 정색을 하고 남편을 쳐다보며 '하나님의 종이 된 당신이 그렇게 절망을 한 것을 보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안 뜨고야 어떻게 하나님의 종이 그렇게 절망을 합니까? 그렇게 당신이 절망을 하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뜬 줄 알고 지금 상복을 입고 통곡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마르틴 루터가 깨달았습니다. 그렇다 당신 말이 맞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내가 왜 절망을 할 수 있느냐!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웜스의 종교재판을 향해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리로다' 용감하게 찬송 부르고 그는 나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주 안에서 기뻐해야 됩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떴으면 여러분은 상복을 입고 초상을 치십시요. 그러나 주님이 살아 계신 이상은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머리털 하나까지 하나님이 세신 바 되었다고 했는데 왜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어도 주 안에서 여러분 기뻐해야 합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할 때 다윗의 신앙 고백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능력을 줍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회에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내가 비록 사망하여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나이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진수 성찬을 차리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 다윗의 노래를 우리가 항상 부르면서 불안과 초조를 이기고 하나님과 함께 승리의 행진을 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현재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비록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는 것 같고 사방이 원수에게 둘러 쌓여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같이 계심으로 우리는 넉넉히 이기게 됨을 감사합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라고 말씀 하셨사오니 우리 아버지 주를 바라보고 기뻐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즐거워하게 도와주옵소서. 오늘은 거룩한 성찬일입니다. 우리 아버지 이처럼 사랑하사 그리스도의 몸을 깨어서 양식으로 주시고 피를 흘려서 음료로 주실 지경인데 어찌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우리에게 주지 아니 하시겠냐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오늘 주를 바라보고 불안과 공포와 초조를 이기고 기쁨으로 나아가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