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3월 23일
제 목 :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성 구 : 시 53:1-6

오늘 전 여러분과 함께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도저히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을 사건을 갖고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과연 누가 믿어줄 것인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성자 이사야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쓰시고 오셔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온갖 모욕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을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사건을 사람들이 비웃고 믿어주지 않을 것을 미리 아시고 탄식하여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라고 하셨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성육신과 대속을 위한 고난의 사건은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특별한 계시를 주시면 직감으로 깨닫고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로 21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사야 53장 1절에 “야웨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전한 것을 보통으로는 믿을 수가 없어도 야웨의 팔, 즉 성령께서 나타나셔서 성령이 마음 문을 열어주시고 계시하시면 믿어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은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훨씬 뛰어넘은 인간 스스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오직 야웨의 팔이 나타나서 우리의 마음 문을 열어주셔야 우리가 그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은 우리를 위한 놀라운 대속의 삶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 성경을 통하여 깨달아야 될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 지상의 삶 전체가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서 사셨다는 이 사실을 우리가 마음 깊이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그 자체로부터 벌써 대속의 삶은 시작한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2절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예수 그리스도는 빈한한 가정의 딸 마리아를 모친으로 삼고 성령으로 잉태된 것입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600여년 전에 이미 그리스도의 탄생이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다고 말했었습니다. 이것은 조금도 명문 대가가 아닌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가정의 딸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정혼한 남편도 목수 요셉이었습니다. 목수 요셉과 정혼하여 서로 동침하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를 요셉의 아들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양아버지 요셉도 조금도 명망있는 분은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목수로서 하루하루 중노동을 하고 그 대가로 먹고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신 그 자체가 너무나 빈한합니다. 로마의 황제가 모든 사람은 고향에 가서 호적하라는 명을 내리셨으므로 그를 따라 베들레헴에 가서 호적하려고 했으나 이미 내려온 사람들이 다 여관에 들어갔기 때문에 여관에 들 방이 없어 할 수 없이 짐승의 우리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마리아는 해산했습니다. 짐승의 우리에서 해산했다니 오늘날의 거지와 같은 삶 아닙니까? 그리고 누일 곳이 없어서 강보에 싸서 짐승이 여물을 먹는 구유에 예수님은 뉘여진 것입니다. 정말로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 탄생이나 삶이 세상의 관심이나 흠모를 받을 대상이 전혀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 전체가 너무나 가난한 삶이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인하여 너희를 부요케 하려고 하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데 왜 그렇게 명망이 없는 집에서 태어나시고 또 그 태어난 처지가 이렇게 열악하고 가난하고 비참했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리스도의 탄생 그 자체가 우리 삶을 대속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담과 하와 이후로 쫓겨나서 우리의 삶이 너무나 가난하고 저주받고 처참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주님이 이 삶을 대속하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그 인간의 가난과 저주의 짐을 걸머지고 태어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에서 말씀하신대로 원래 부요하신 분입니다.
히브리서 1장 1절로 3절에 보면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요 만물을 유지하시는 분이시요 만물을 상속으로 받은 후사이십니다. 이렇게 부요하신 자가 왜 우리를 위해서 그처럼 처참하게 가난하게 되셨습니까?
성경은 여기에 말씀하기를 “그의 가난함으로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시고 가난한 형편에 태어나시고 가난한 삶을 사신 것은 바로 우리의 가난을 대신 짊어지고 그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주님께서는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가난을 벗어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은혜를 받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실 때 가난을 함께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예비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반역을 함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 가난을 자초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다시 가난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축복을 받고 살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그 탄생과 생활에 지극한 가난을 걸머지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 그 자체를 대속의 삶으로 우리가 보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그 가난과 찌들어지게 궁핍한 삶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가난을 다 대신 짊어졌다는 것을 알고 그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예비하신 은혜 속에 들어가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요한 삶을 주어서 살게 하셨다는 것을 생각하고 믿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 우리가 감사하며 살아야 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멸시와 천대를 받은 삶입니다. 이사야서 53장 3절에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의 삶의 처지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다고 성경에 말하고 있는데 유대인의 종교인들에게 멸시당하고 버림받았습니다. 유대 종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단으로 낙인찍고 예수 그리스도를 던져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정부에게 무시를 당하고 버림을 받았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지식인도 부유층도 예수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삶은 간고를 많이 겪었습니다. 간고와 질고를 많이 겪었는데 가는 곳마다 핍박을 당하고 풍찬노숙을 하며 멸시와 천대를 받고 귀중히 여김을 받지 않았습니다.
성경 마태복음 8장 2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 천군과 천사들이 받드는 그분이, 만유를 지으신 그 분이 이와같이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의 종교나 정치에서 멸시받고 버림받은 자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세상의 무식한 자나 가난한 자, 고통받는 자의 친구가 되시려고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 31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만일 고관대작과 교통하시고 부자들과만 교통하신다면 이 세상의 버림받은 자, 멸시받는 자, 천대받는 자, 무식한 자들은 예수님 근처에도 오지도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종교나 정치에서 멸시 당하고 버림받은 자와 친구가 되고 무식한 자나 가난한 자와 벗이 되기 위해서 자기 스스로를 내어던져서 멸시와 천대와 구박을 받는 삶을 살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도 또한 대속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외되고 인정받지 못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의 벗이 되어서 저들을 주님은 건져내어서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의 자리에 들어오게 하려고 주님 스스로가 그 험한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절로 29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이와같은 세상의 쓰레기들을 주님이 품고 그들을 일으켜서 하늘나라를 상속받게 하는 위대한 반열에 들어서게 하시려고 스스로를 내어던져서 비참한 삶을 자처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가 깊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약하고 고난당하고 버림받은 자의 편에 서서 고통을 함께 걸머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같이 비천하고 고통당하고 버림받은 자와 함께 거하시며 저들의 짐을 지시고 저들을 그 삶에서 건져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통하면 좌절과 절망, 고통과 버림받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의 사역은 또한 우리를 치료하기 위해서 스스로 고난을 짊어졌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53장 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한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 5절에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도 그렇고 유대인들이나 불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관해서 큰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반역한 이단자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벌을 받아 등에 채찍을 맞고 피투성이가 되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중대한 오해입니다. 실상은, 하나님의 진실은 그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며 로마 사람들에게 매를 맞아 등어리가 갈기갈기 찢어져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함을 짊어지고 병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그 고난을 주님께서 감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질병은 근본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처음 피조 되었을 때 에덴에서는 질병이나 죽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반역과 타락 이후 인간의 영이 죽자
그 다음 육체도 병들어 쓰러지고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역에는 죄의 용서와 병고침이 항상 함께 하여 치료가 하나님의 뜻인 것을 분명히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 속에 병자를 치료하지 않은 때가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죄를 용서하고 구원한 것과 병자를 고치는 것이 그의 일의 사역이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주님께서는 병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원래 하나님은 인간이 병들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3절을 보면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병의 치료의 대가를 지불하시기 위해서 결연히 채찍을 때리는 사람에게 등을 내어놓고 고난을 자초하셔서 우리의 병을 대신 다 갚아버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서 병 고쳐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주님에게 동정하는 것도 아니고 구걸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고난을 받으셔서 우리의 치료를 위한 대가를 다 지불하시고 치료의 제물이 되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가 날 위해서 피 흘려서 값주고 사놓은 건강과 치료를 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치료를 구할 때는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담대하게 예수 이름으로 구해야 돼요. 마귀가 아무리 우리 기도를 막더라도 우리는 거기에 좌절하지 말고 끝까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이 확실한 줄 알았은즉 밀고 나아가서 믿음으로 마귀의 진을 훼파하고 치료를 획득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고난을 겪은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우리의 죄를 근본적으로 대속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말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라고 했는데 이 세상에 허물없는 사람 봤어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허물이 있습니다. 허물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사회 생활 중 범하는 수많은 인간관계의 죄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허물 많은 인생을 누가 구출하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손이 찔리고 발이 찔리셨습니다. 상징적인 것입니다. 사람은 손으로 죄를 짓고 발로도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허물을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우리의 속건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속건 제물이란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은 허물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제물로 드릴 때 주는 제물, 영어로는 “Trespass Offering"이라고 말합니다. 이 제물을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 10절에도 “야웨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속건 제물로 드림으로써 수많은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리며 몸부림을 치며 고생하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아니하고 온전히 죽을 때까지 제물이 되신 것은 우리 일생의 손발로 짓는 수많은 허물의 죄를 대신 갚아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으로 인함이라”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범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거역한 원죄와 또 수많은 작은 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영혼을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속죄 제물로 바쳤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해서 지은 죄는 속죄 제물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아서 그는 그의 영혼이 찢어지고 상하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육체가 찢어지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웠던지 마태복음 26장 39절에 보면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고 그는 통곡하고 울었습니다.
주님 앞에 속죄 제물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했으니 완전히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세로부터 그때까지 하나님과 나뉘어진 적이 없습니다. 주님이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주님 안에 함께 계셨지만, 그러나 속죄 제물이 되었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한 그 아들 하나님이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컸던지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는 탄식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최대의 두려움이었습니다. 우리가 영혼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지옥에 떨어져서 하나님께 버림받고 분리된 삶을 살아야 될 것을 주께서 대신 갚아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하기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징계를 받으시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징계 받아 쫓겨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버림받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그 결과 징계 받아 에덴에서 쫓겨났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진리가 있는 곳에서 쫓겨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동산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바로 그 징계를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하나님께 버림받았기 때문에 사람과도 교통이 끊어지고 하나님과도 교통이 끊어졌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기를 “아! 내가 목마르다!” 그렇게 하셨습니다. 육신의 목마른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는 영혼의 갈급함으로 말미암아 몸부림을 쳤습니다. 불러도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랑하는 제자들은 다 그를 버리고 갔습니다. 천지의 아귀같은 원수들만 아우성을 치고 그를 모욕합니다. 지옥의 귀신들이 총동원해서 그를 공격합니다. 그 속에 그의 고독함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징계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쫓겨난 것을 대신 갚음으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징계를 받은 대가를 통해서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고 하나님과 교통이 회복되고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이 우리를 친자녀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에베소서 2장 16절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께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의 화목 제물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란 태어날 때부터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순간까지 모든 순간 순간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나를 위한 제물로서 주님께서 사신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잘 8절에 보면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진 것은 자기 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마땅히 형벌 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허물을 대신 짊어지고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가셨다는 것을 누가 이해를 해주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세계 역사가들이나 일반 사람들은 하나의 순교자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종교나 철학을 증거하다가 핍박을 받아 죽었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는 우리의 인생을 구원하시려고 하는 깊은 하나님의 대속의 의미가 있으며, 그 대속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죽으심은 하나도 남김없이 우리를 살리기 위한 희생의 제사였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믿고 참된 자유와 해방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진리를 알고 진리로 말미암아 우리는 해방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마음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저주로 속박되어 있습니다. 죄악으로 속박되어 있습니다. 질병으로 속박되어 있습니다. 가난으로 속박되어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로 속박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러므로 자유롭지 못합니다.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자기 자신을 보고 해방과 자유를 얻어야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아담과 하와가 우리에게 메어준 것은 종의 멍에였었습니다. 에덴에서 쫓겨 나오자마자 그들은 우리의 목에 하나님과 원수된 멍에를 메어주었습니다. 우리에게 평생의 가난과 헐벗음과 굶주림으로 사는 저주받은 멍에를 메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질병으로 고통하다가 죽어야 될 멍에를 메어주었습니다. 결국에는 지옥으로 떨어질 멍에를 메어주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벌써 이 멍에를 무겁게 걸머지고 노예 생활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스스로 해방될 수 없는 것처럼 아무도 이 멍에를 꺾고 스스로 해방되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멍에를 꺾은 자는 오직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 받으심으로 이 멍에를 꺾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하여 가난의 멍에는 꺾어졌습니다. 허물의 멍에도 꺾어졌습니다. 죄악의 멍에도 꺾어졌습니다. 질병의 멍에도 꺾어졌습니다. 버림받은 멍에도 꺾어졌습니다. 사망의 멍에도 꺾어졌습니다. 이 진리를 알고 우리는 마음속에 자유를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굳세게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멍에를 향하여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단호하게 대적하고 물리쳐 버리고 우리는 주를 향하여 해방된 자신을 선언하고 믿고 감사하고 찬송하며 나아가야 될 것입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나님의 아들이 너희에게 자유를 주면 너희가 참자유를 얻겠다”고 했는데, 오늘 이 고난 주간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걸머지고 처참하게 찢기고 고통을 당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를 준 이 사실을 마음속에 깊이 받아들이고 주님의 소원인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그리스도의 소원을 믿음으로 다 받아들이시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을 겪으시고 태어난 그때로부터 죽어 무덤에 들어간 그 시간까지 그리스도의 33년 동안의 삶은 고난이 누적된 삶이요 피투성이의 삶이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고 자유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로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요 저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어린양같이 그릇 향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웨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켰도다 우리 아버지여 그리스도의 고난을 우리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그 진리를 통해서 오늘 이 시간 모두 다 해방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목에 얹혀진 무거운 멍에가 다 꺾어지고 쇠사슬이 다 풀리고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그리스도의 역사가 풍성히 넘쳐나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 신유기도 -
날 위하여 하나님께 버림 당하고 날 위하여 가난과 고초를 감당하시고 날 위하여 십자가에 몸찢고 피흘리신 예수님! 그 크신 대속과 은총을 진정으로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그 대속의 은총에 의지해서 우리 병든 자들은 치료를 주님 앞에 간절히 간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으며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그러므로 우리는 당당하게 우리 아버지 앞에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값주고 사신 치료를 간구하오니 예수 이름으로 고쳐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주셔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질병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치료하여 주시고 깨끗하게 만들어 주옵소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질병과 고통은 각자의 몸에서 떠나갈지어다! 해방될지어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가난과 저주의 삶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음으로써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저의 가난하심으로 인하여 우리를 부요케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가난과 저주의 사슬에서 해방되고 그 멍에에서 놓여남을 받게 도와주시옵소서. 모두다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게 도와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원수된 담이 무너지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게 되었사오니 성령의 은혜가 오늘 강물처럼 넘쳐나게 도와주시옵시고 우리 아버지의 임재하심이 우리 영혼속에 가득차게 도와주옵소서. 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주의 자녀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진정으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