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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3월 30일 제목: 역사적 부활과 체험적 부활 성구: 고전 15장 12-22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역사적 부활과 체험적 부활”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실제적인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은 이천 년의 긴 역사를 통해서 수많은 역사학자, 과학자, 고고학자, 생물학자, 진화론자들을 통해서 어떻게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과 그 시체를 찾아서 예수께서 부활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혈안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수님의 무덤도 그 시체의 흔적도 찾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세계적인 종교의 창시자가 무덤이나 시체나 남은 뼈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실제로 상식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동일한 세계적인 종교 창시자들 즉, 유교의 창시자 공자나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나 이슬람교의 마호메드등은 모두 무덤이나 뼈나 사리가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무덤도 뼈도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은 성경대로 죽으셨다가 성경대로 3일 만에 부활하사 승천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첫째, 우리가 예수님의 역사적인 부활의 사실을 분명히 마음속에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덤에 들어가신지 3일 만인 주일 아침 일찌기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에 오늘 우리 교회가 서고 그 부활의 토대에 서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처음 부활하실 때 처음 예수님을 만난 자가 바로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다른 여자들과 같이 와서 천사가 예수께서 부활했다는 소식을 전하여 그 소식을 듣고 빈 무덤을 보고 막달라 마리아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그 소식을 알리고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와서 무덤 속을 들여다 보았으나 시체가 없는 것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은 돌아오고 막달라 마리아는 혼자 앉아 울고 있다가 예수님이 그를 만나 주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산지기인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예수님이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만지려고 하나, 예수님은 만지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직 내가 나의 하나님께 올라가지 못했다. 내게 손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예수님은 곧장 다른 제자들에게 가는 여인들을 만나서 그 앞에 “평안하뇨?” 주님께서 축복하시고 여인들은 너무나 놀라서 감격했습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제일 먼저 여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위에 절망해서 두문불출하고 있던 베드로에게 나타나서 부활하신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셨고 그 다음 낙심해서 낙향하여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주님이 나타나서 빵을 뗄 때 눈을 열어 그리스도인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후 주일 오후 10제자에게 친히 나타나서 “평안하뇨”하고 그들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일주일 후에 도마와 함께 또한 11제자에게 나타나서 주님이 도마 앞으로 나와서 네 손을 내밀어 내 손에 넣어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고 믿지 않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할 때 도마가 내 하나님이여 나의 주님이시여 하고 항복했던 것입니다. 그후에 주님께서는 갈릴리 디베랴 바다에서 예수님의 제자를 만나겠다고 하심으로 디베랴 바다에 내려가서 제자들이 그곳에서 이른 아침에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구어주신 떡과 생선을 먹고 베드로가 다시 한번 주님께 헌신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는 갈릴리 산에서 주님이 또 제자들과 함께 만나셨고 그 다음에는 오백여 형제에게 주님께서 일시에 나타나시고 오백여 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바울 생전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 다음 주님께서 야고보에게 나타나셨으며 그 후에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감람산에서 승천하셨습니다. 부활의 한 사건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40일 동안 체험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확실성을 증명해 주신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들이 말하기를 제자들이 너무 예수를 사모한 끝에 꿈이나 환영을 보았다고 하는데 40일 동안 이 많은 사람이 똑같이 꿈이나 환영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사실은 역사상에 있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그 살아 계신 것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확실히 증명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은 목숨을 내어 걸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온 천하에 전파했고 유독 기독교 신앙만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에 기초하고 교회가 설립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구주가 아니라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체험적인 면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만 앉아 계실 뿐 아니라 오순절 날에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성령을 통하여 우리들의 마음속에 강림하셨습니다. 우리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은 직선도 아니고 평면도 아니고 입체도 아닙니다. 마음은 우리가 물량으로 채울 수 없지만 우리 속에 분명히 마음이 있고 이 마음이 바로 여러분 안에 영혼의 집이며 이 마음이 바로 하나님이 와 계시는 성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키가 크다고 영혼이 큰 것도 아니요, 키가 작다고 영혼이 작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 마음은 물량적으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제 3차원의 세계를 뛰어 넘은 4차원 이상의 세계에 속한 길이나 넓이나 그 부피를 잴 수 없는 그러한 존재입니다. 그게 우리 마음입니다. 그 속에 우리 영혼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혼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아버지 보좌 우편에 계실 뿐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금 와서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못하리니 예수님은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내 안에 또 내가 예수님 안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임재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냄새 맡을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우리의 영혼 속에 부활하신 영광으로 들어 와서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속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와 계시면 어떠한 역사가 일어납니까? 무엇을 위해서 예수님이 우리 속에 와 계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죄를 이기시고 의를 부활시키는 능력으로 역사하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으로 제하시고 죄의 세력을 멸하시고 장사지내 버리고 부활하셔서 이제 의의 능력으로 우리 속에 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의의 사람으로 부활 속에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주시되 의의 부활의 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내가 그리스도의 의의 능력에 잡혀서 그리스도와 함께 의로운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 가운데에 와 계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부정과 불의가 얼마나 꽉 들어찼습니까? 그러나 그 가운데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의로운 자로 일어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의로써 부활하시고 바로 부활하신 그 의의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서 의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여 주님은 나의 의가 되시니 나에게 의의 부활을 주옵소서’ 우리가 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여러분 속에 또한 진리의 부활로 와 계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거짓을 다 제하시고 거짓을 다 멸하시고 주님이 진리로 부활하시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 속에 참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와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진리의 부활을 우리 마음속에 체험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거짓으로 꽉 들어 찬 세상 속에 참 진리를 가지고 그리스도는 우리 가운에 부활하셔서 진리를 전파하는 역사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예수님은 부정 부패를 멸하시고 거룩함을 부활시키는 주님으로 와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우리를 거룩하신 사람으로 부활시키고 우리 속에 거룩함을 가득히 부활시키기 위해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 거룩함이란 바로 신의 성품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신의 성품을 당신의 거룩한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채우시고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사람이 되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 속에 원수됨과 미움을 제하시고 사랑을 부활시키는 주님으로 와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사랑으로 부활하시어 역사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움과 원수됨은 우리의 생활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도적질하고 멸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소극적으로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남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사랑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서로 물고 찢고 싸우고 죽이면 한 사람도 생존할 수 없습니다. 이 사랑은 우리 스스로 속에 생겨 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랑의 부활을 우리 마음속에 갔다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은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계심으로 주님 주께서 내 마음속에 사랑의 부활을 주시옵소서. 주와 함께 사랑의 사람으로 저가 부활해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끝임없이 부탁해야 됩니다. 우리 속에 부활의 예수님이 와 계십니다. 그분은 사랑의 부활의 주님인 것입니다. 그는 우리 속에 사랑으로 부활을 가져다주는 자원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 사랑의 부활을 늘 부탁하고 의지하면 그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활하고 넘쳐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 가정에서 우리 사회에서 우리 이웃에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고 남에게 선을 베풀면서 살 수 있는 그래서 이 세상이 참으로 살기 좋은 이러한 역사를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병을 정복하시고 치료와 건강을 부활시키는 주님으로 와 계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주님께서는 치료와 건강을 부활시키는 주님으로 우리 속에 와서 계신 것입니다. 우리 속에 와 계신 예수님은 바로 치료의 주님, 건강의 주님, 치료를 부활시켜 주시고 건강을 부활시켜 주시는 원천으로 와 계신 것입니다. 이 마음속에 계신 예수님을 간절히 찾고 찾으면 주님은 우리에게 치료를 부활시켜 주시고 건강을 부활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질병과 고통에서 해방되어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마음의 슬픔과 고통을 제하시고 기쁨과 평안을 부활시키는 주님으로 우리 속에 와 계신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에도 우리 속에 계신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와 평강과 희락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와서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속에는 평강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 평안과 기쁨의 능력으로 우리 속에 이것을 부활시켜서 가득히 채우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 가운데 저주와 가난을 물리치시고 아브라함의 형통과 복을 부활시키는 주님으로 와 계신 것입니다. 저주가 꽉 들어차고 슬픔과 가난이 꽉 들어찬 곳에 주님은 부활의 영광으로 이 어둠을 다 헤치시고 우리 속에 형통을 부활시키고 축복을 부활시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저주와 가난을 물리치시고 아브라함의 형통과 복을 부활시키는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한국 땅에 지금 저주의 안개구름이 덮고 어둠이 캄캄하게 내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헤치고 우리에게 형통과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저주와 가난을 정복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 속에 들어와서 형통과 축복을 부활시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간절히 찾고 그를 섬기면 그리스도는 형통과 축복을 우리 마음을 통해서 우리의 생활 속에 부활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사망과 음부를 이기시고 부활과 천국을 주시는 주님으로 우리 가운데 와 계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속에 사망의 세력을 미워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셔서 그 부활을 우리에게 주시고 주님이 예비한 천국을 우리 속에 주시기 위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주 예수님은 보좌 우편에 계심과 동시에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이 부활의 능력을 가지고 와 계시며 이 부활의 역사를 행하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따뜻한 봄의 햇살이 비취면 어름과 눈이 녹고 순식간에 온 땅 속에 부활의 기운이 가득 차서 파릇파릇 새 생명들이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와 절망, 저주와 죽음의 얼음얼은 우리의 가슴속에 그리스도의 부활의 따뜻한 태양빛이 들어오면 우리의 모든 심신이 살아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시며 우리에게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의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 부활하신 예수님은 실제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지금 들어와 계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주님께서는 우리 속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주여 나의 속에 의의 부활을 주시옵소서. 나의 속에 화목과 사랑의 부활을 주시옵소서. 치료와 건강의 부활을 주시옵소서. 기쁨의 부활을 주시옵소서. 형통과 축복의 부활을 주시옵소서. 생명과 천국의 부활을 주시옵소서. 예수를 향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무엇이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속에 계신 예수님에게 우리가 이렇게 구하면 주님께서 시행할 것입니다. 세째로,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살려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너무 알지 못합니다. 옛날에 중앙대학을 창설하신 임영신 여사의 어머니가 선교사들의 전도를 받아서 제일 처음 예수를 믿고 그 다음에 물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목사님이 늘 가르치기를 ‘물세례를 받을 때, 문답할 때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서 죽었느뇨? 라고 하면 나를 위해서 죽었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시요.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니까 그 할머니 하는 말이 나는 구원을 안 받아도 좋으니까 자식만 잘되면 돼요. 할머니 그게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할머니가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이 필요하지 자식들만 잘 되기 위해서 교회를 나오는 것이 뭐가 필요합니까? 그래서 이제 알겠다고 말했습니다. 선교사님이 앉아서 “예수님이 누구를 위해서 죽으셨죠?” 그랬더니 “당신을 위해서 죽었어요.” 예, 목사님이 가르치실 때 나를 위해서 죽었다고 하니까 목사님 자기를 위해서 죽었다고 말을 한 줄 알고...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와 나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해요. 왜, 예수 믿느냐! 예수 믿으면 그냥 복을 받는다고 하니까 무조건 교회 가서 믿어 보자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를 내가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세상에 오지 아니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도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 부활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때문에 그는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우리는 항상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은 바로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서 우리를 심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심판하고 우리의 반역을 심판하고 우리의 질병을 심판하고 우리의 가난을 심판하고 우리의 죽음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예수를 통해서 이미 심판 받은 사람입니다. 다시는 더 이상 심판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해방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면 심판에서만 해방되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생명을 우리가 그리스도 속에서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새로운 생명, 사랑의 새로운 생명, 건강의 새로운 생명, 형통의 새로운 생명, 영생 천국의 새로운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 부활하셔서 이 예수님이 우리 속에 와 계심으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심판 받았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활의 새로운 생명을 얻은 사람이 되었다는 분명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 없이 그냥 의식적으로 형식적으로 예수를 믿어서는 효과가 없습니다. 우리 속에 계신 예수님은 위대한 역사를 베푸시는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나와 함께 죽고 장사지내고 나와 함께 부활하신 예수님, 그러므로 심판을 제하시고 부활을 주신 예수님, 이런 지식을 우리가 분명히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났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옛 사람은 저기에서 심판을 받고 그리고 부활의 그 아침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무덤에서 새사람으로 부활했다. 그리고 나는 새사람이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로마서 6장 4절로 11절 말씀을 들어보세요.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며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며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다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이와 같은 마음의 지식을 가지고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저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옛 사람은 다 장사 지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죄도 장사되고 미움도 장사되고 질병도 저주도 죽음도 장사되어 버립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들어와 있음으로 이제는 나는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한다. 의의 생명 가운데서 행한다. 사랑의 생명 가운데서 행한다. 나는 건강의 생명 가운데서 행한다. 형통의 생명 가운데서 행한다. 영생 천국의 생명 가운데서 행한다. 이렇게 바라보고 이렇게 생각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마음속에 굳건히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가고 이제 나는 새 것이 되었습니다. 육체의 사람은 십자가에서 다 지나가 버리고 신령한 사람으로 부활해서 오늘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은 육체의 사람이 아니요 이제는 신령한 사람인 것입니다. 신령한 사람은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더 이상 나를 육체의 사람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나는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믿지 않는 모든 세상 사람들은 다 육체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이 죽었기 때문에 육체로 삽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십자가에서 육체의 사람을 멸하고 부활의 아침에 그리스도와 함께 신령한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제는 부활의 신령한 힘으로 살아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새 말과 새 노래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말이 달라져야 됩니다. 옛날 육체의 사람의 말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옛날 육체의 사람은 늘 죄악된 말을 사용하고 늘 미움과 원한과 시기와 분노와 질투의 말을 쓰고 있습니다. 늘 고통과 괴로움을 노래처럼 말하고 슬픔을 이야기 했었습니다. 못 살고 망하고 패한 것을 말했었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육체의 사람이 사용하는 말을 이제는 버리고 여러분은 이제 새 말을 하고 새 노래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정의에 대해서 말하고 진리에 대해서 말하고 거룩함에 대해서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화목에 대해서 말하고 사랑에 대해서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건강에 대해서 말하고 치료에 대해서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축복에 대해서 말하고 형통에 대해서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희망에 대해서 말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명과 천국에 관해서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기쁜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육체의 사람들이 부르는 좌절과 절망과 슬픔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희망찬 노래를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노래를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기쁨의 노래를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찬송으로 우리 마음이 충만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새 사람이 되었은즉 새 말과 새 노래와 새 생각으로 우리는 충만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이 위대한 부활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속에 계심으로 내 속에 계신 예수님께 늘 감사를 드려야 됩니다.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부활하신 예수님 내 속에 들어와 계시고 나의 삶을 부활로써 감싸주시고 내 삶을 부활로써 채워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미해야 됩니다. 히브리서 13장 14절로 16절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찬미의 제사를 우리는 끊임없이 드리며 살아야 될 것입니다. 아담 이후 인류의 절망을 짊어지고 무덤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3일만에 이 모든 것을 이기시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심으로 영원히 믿는 자에게 참 생명의 자유와 해방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인류나 우리 개인 뿐 아니라 우리 현재의 어지럽고 캄캄한 사회, 국가, 정치, 경제의 혼돈 속에서도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이 모든 죽음과 절망을 이기시고 부활의 승리와 영광을 주신 예수님이 교회 중에 계시고 내 안에 계시고 이 나라 가운데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예수를 바라봐야 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힘차게 바라보고 이 부활의 능력에 우리가 찬미할 때 죽음은 생명으로 어둠은 빛으로 절망은 소망으로 가난은 부요로 추는 아름다움으로 변화되는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역사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로 이 시간에 그 모든 영광과 능력으로 여러분 속에 들어와서 계신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옛 사람을 십자가에서 심판하여 버리시고 에수님을 통해서 우리 옛 사람을 장례 지내 버리시고 예수님을 통하여 승리한 사람으로 부활시켜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속에 그 부활의 모든 영광을 가지고 들어오셔서 우리 마음속에 의를 부활시키시고 사랑을 부활시키시고 건강을 부활시키시고 형통을 부활시키시고 천국 영광과 소망을 부활시키시고 부활의 기운으로 가득하게 채워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예수님을 우리는 바라보고 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 예수님을 노래하고 이 예수님을 찬양하고 이 예수님과 함께 삽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러므로 새 사람으로 신령한 사람으로 옛날 것은 다 벗어버리고 멍에를 다 깨어버리고 자유과 해방을 만끽하며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진실로 그리스도 안에서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살아계신 예수님 부활의 영광과 능력으로 우리 마음에 와 계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그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 각자의 몸 속에 치료를 부활시켜 주시옵소서. 건강을 부활시켜 주시옵소서. 생명을 부활시켜 주옵소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사망을 다 멸하셨사오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다 심판을 받아 우리가 병든 몸, 앓는 몸, 절망적인 몸이 다 심판을 받았사오므로 아버지 우리는 해방된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것에서 해방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이여 예수 이름으로 모두 다 고침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기와 생명이 넘쳐나서 사망의 얼음과 눈이 다 녹아버리고 생명의 파릇파릇한 치료가 넘쳐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악한 사망의 세력은 떠나갈지어다. 질병은 묶음을 놓아라. 물러갈지어다. 예수 이름으로 치료가 넘쳐나게 될지어다.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기와 생명으로 치료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야웨 하나님 아버지 우리 생활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괴로워 하는 자가 많습니다. 우리 아버지 그리스도가 오셔서 이 모든 흑암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저주를 멸하시고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야웨 하나님이여 그리스도가 오늘 부활의 능력으로 형통으로 부활하여 주시옵시고 축복을 부활시켜 주시옵소서. 하나님 부활의 영광과 생명이 우리 가운데 넘쳐나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가 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형통하며 강건하게 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이것은 예수 안에서 우리가 얻을 특권이요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의 믿음이옵나이다. 아버지 한 사람도 남김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은총을 누리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면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 줄을 확신하옵나이다. 지금 함께 살아야 됩니다. 사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와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으로 천국을 가지고 사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