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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4월 6일 제목 :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성구 : 시23:4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빛만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어두움도 지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축복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우리를 깨뜨리시고 변화시키기 위하여 환난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통하게도 하십니다. 이사야 45장 7절에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일생동안 크고 작은 골짜기를 지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만일 일생동안 전혀 환난과 어두움의 골짜기를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이요 그 사람은 사생자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나는 골짜기는 어떤 골짜기이며, 그 곳을 지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첫째로, 우리가 지나는 골짜기 중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문자 그대로 죽는 골짜기요, 캄캄하여 한치의 앞도 바라볼 수 없는 그런 골짜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와 같은 골짜기로 우리를 통행하게 하실까요? 여러분 우리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신앙의 악심과 인본주의적인 우상을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를 깨뜨리기 위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 가장 큰 악입니다. 예레미아서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인간이 이 우주에서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영원한 책임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복잡한 일이 없습니다. 오직 인간이 해야 할 일은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내 개인적으로도 한가지 일, 즉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해요. 가정에도 사회에도 국가도 사업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만 해결이 되면 다른 문제는 자연적으로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흐뜨러졌기 때문에 모든 일이 실타래처럼 흐뜨러지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흐뜨러지고 하나님을 등지고 인본주의 우상을 섬기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게 함으로 그 인본주의적 우상이 다 깨어지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인간 중심 이외에 어떤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 그런 인본주의, 이것을 하나님은 미워하십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자기를 신으로 삼고 자기를 우상으로 삼고 자기를 예배합니다. 이러한 우상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잘못된 마음가짐과 사상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산산조각으로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불순종의 삶과 세상적 욕심, 탐심을 깨뜨리기 위해서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언제나 올무에 걸리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삶을 살기 때문인 것입니다. 한 가정의 자녀도 부모에게 잘 순종하면 자녀들이 어려움에 처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공부하라고 하는데 공부하지 않고 나쁜 친구하고 돌아다니고 게임이나 하고 그러다가 잘못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순종하고 산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데 우리를 길로 인도하지 않을 턱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지 말라는 곳으로 곁길로 가고 울타리를 뛰어 넘어가고 또 골짜기로 내려가기 때문에 시험과 환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기는 하되 순종치 않는 신앙 생활은 적당주의 신앙입니다. 예수 안 믿는 것은 아니예요. 예수 믿어요. 교회도 나와요. 그러나 일단 사회 생활에 들어가면 신앙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세상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고 말하고 똑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적당주의적인 신앙, 이런한 신앙은 미구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대로 내버려 놓지 않습니다. 그를 깨뜨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욕심을 품고 정의와 진실을 짓밟을 때, 그대로 내버려두면 죄를 짓고 사망을 향해서 들어갑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습니다. 지금 우리의 한국의 한보 사태를 좀 보십시요. 정태수씨라는 사람이 5조원의 강철 공장을 만들면서 자기 돈 백십억만 놓고. 텔레비젼에 뭐, 억대, 천대, 말을 하니까 이젠 돈을 어떻게 헤야려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이게 만원 짜리인지 얼마 짜리인지 알 수가 없어요. 자기 돈 백십억을 내놓고 5조원을 은행에서 끄집어내어서 자기 철강 공장을 지었는데 이런 탐욕이 어디에 있습니까? 자기가 그 탐욕에 들어가서 그 일을 하자니까 정상적으로는 안되지요. 이러므로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습니다. 죄라는 것은 삐뚤어진 길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뇌물을 주고 정치인을 끌어들이고 은행가를 끌어들이고 온갖 권모술수를 다해서 지금에 와서 자기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떨어지고 수많은 사람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떨어지게 합니다. 여러분, 탐욕이라는 것이 언제나 우리를 파멸로 이끕니다. 정의가 따라오지 않는 권력은 탐욕으로 변화되어 권력으로 말미암아 망하고, 돈도 정의가 따라 주지 아니하면 그 돈이 부패로 향해서 사람을 망치게 하고 마는 것입니다. 언제나 음식에 소금을 치듯이 권력에도 정의의 소금을 쳐야 하고 돈에도 정의의 소금을 쳐야 됩니다. 정의가 없으면 모든 토대가 무너지고 죄를 짓게 되고 결국 죄를 짓게 되면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망에 이릅니다. 자기도 죽고 남도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욕심을 품고 정의와 진실을 짓밟는 이러한 죄를 짓는 사람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게 하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면 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벗어 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축복을 받아서 형통할 때 교만해져서 오만 방자히 행하고 자기 자랑에 심취할 때 자기를 우상화하는 이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깨뜨려야 합니다. 시편 107편 10절로 11절에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고 오만 방자하게 행할 때 흑암의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의 쇠사슬에 매인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죽음에 이르는 시련과 고통을 통하여, 캄캄한 절망을 통하여 우리를 깨뜨리시고 항복하게 하시고 그래서 믿음과 순종과 충성스러운 성도로 하나님이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택하신 자녀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는 악심을 품고 인본주의에 서고 불순종과 욕심과 탐심으로 말미암아 잘못된 길로 걸어가고 오만 방자하게 행할 때 주님께서는 이를 깨뜨리기 위해서 주님께서 어둠도 창조하시고 환난도 창조하시는 능력으로 사망과 음침한 골짜기를 만드셔서 그리로 집어넣으십니다. 그곳에서 시험과 환난과 고통을 당하게 하고 주님께서 깨뜨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3절로 14절에 보면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켜서 새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지난 골짜기는 아골 골짜기, 즉 괴로움의 골짜기입니다. 여러분 아골이라는 말은 우리 말로 번역하면 괴로움, 슬픔, 고통의 골짜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골 골짜기로 우리를 지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에 다가오는 골짜기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골의 골짜기도 있습니다. 아골 골짜기라는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여리고 평지에 와서 여리고를 점령할 때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리고가 무너지거든 아무도 그 속에 들어가서 그 금, 은, 동, 철이나 아무 물건도 손대지 말라. 모두 다 하나님께 바쳐 놓아라. 누구든지 물건에 손을 대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범죄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리고를 점령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기고만장했습니다. 여리고 다음엔 아이 성인데, 아이성은 여리고 성보다 작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말하기를 여호수아 대장이여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이 기개를 가지고 있으니 우리 백성들이 다 올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3천명만 올라가면 아이 성 같은 것은 문제가 없이 넘어뜨립니다. 그래서 백성 중 3천명을 뽑아서 아이 성에 파견했는데 그들은 아이 성 임금에게 쫓겨서 완전히 패하고 그들 중에 36명이 전사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백성들의 마음이 다 물로서 불음 같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백성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이여 이 백성을 애굽에서 끌어내어 광야를 통해서 이제 여리고 평지까지 데리고 와서 여기서 멸하시려고 하나이까?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으니까 하나님이 말씀하기를 너희 백성이 내 물건을 훔쳐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벌을 받게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물건을 훔친 사람을 색출하려고 했습니다. 이래서 모든 이스라엘 지파를 다 모아 놓고 제비를 뽑으니까 12지파 중에서 유다 지파가 걸렸습니다. 유다 지파 중에서 제비를 뽑으니까 세라 족속이 뽑혔습니다. 세라 족속 중에 제비를 뽑으니까 삽디가(家)가 뽑혔습니다. 삽디가(家)에서 제비를 뽑으니까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말했습니다. 아간,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였느냐 솔직히 고백을 해라, 아간이 말하기를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뛰어 들어갔는데 한 집에 들어가니 금과 은과 보석과 아주 귀한 외투가 있는지라. 탐이 나서 그만 그 금과 은과 보석과 외투를 훔쳐다가 내 장롱 밑에 감추어 놓았나이다. 사람을 보내니까 그 외투와 금과 은과 보석이 다 나왔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아간과 그 처자와 그 모든 보물을 다 끌고 아골 골짜기로 내려갔습니다. 여호수아서 7장 25절로 26절에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그래서 야웨의 진노가 그치고 난 다음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아이성을 공격할 때 아이성이 함락되고 아이성을 멸절하고 점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아골 골짜기를 통해서 아간을 잡아서 죽여야만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지금 우리 한국이 아골 골짜기를 지나고 있지 않습니까?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우리는 아골 골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국민이 다 우울합니다. 우리는 신문 보기가 두렵고 텔레비젼을 보기가 두렵습니다. 어디에서 어디까지 문제가 확대될지 모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냐구요?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하지 않는다고요? 왜 잘 되어 가는 나라가 이렇게 되느냐고요? 아간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나라의 아간을 잡아서 처치해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속이고 이 나라 이 민족에게 돌아갈 것을 자기가 손아귀에 넣은 부패한 권력, 부패한 자본가, 이 아간을 잡아서 아골 골짜기에서 처치해야 나라가 안정이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어물적해서 물러갈 성질이 아닙니다. 정치적인 타협으로 해결될 것은 아닙니다. 국민 전체가 고통 속에 빠졌습니다. 우리가 전쟁에 지고 있습니다. 경제 전쟁에 지고 생존 경쟁에 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고통을 당하고 엎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그냥 기도한다고 응답해 주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아간을 잡아서 처치하라. 아간을 정리하지 않고는 내가 복을 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어찌하든지 우리 한국은 우리 검찰에서 지금 칼을 뽑았지만 우리 국민 전체가 보는 앞에서 아간이 정리되면 이 나라에 다시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의 생활도 한가지입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 정의와 진실, 충성과 거룩함들을 짓밟은 아간이 있으면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이 없어요. 하나님 앞에서 정의를 짓밟아 버리고 진실을 은폐하고 충성과 거룩함을 짓밟아 버리고 난 다음 겉만 번지르하게 해서 주여, 주여, 아무리 부르짖는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속에 아간을 잡아 없애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자복하고 하나님 길에서 어긋나가는 우리 자신의 생활 속에 있는 아간을 잡아서 우리가 처치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은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아골 골짜기는 슬픈 것이지만 아골 골짜기에서 아간을 처지하고 나면 주님께서 그것을 소망의 문으로 삼아 주겠다. 거기에서부터 소망이 열리고 하나님의 복이 임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하나님 앞에 어물적하게 넘어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아간을 잡아 없애야 합니다. 교회에 있는 아간을 잡아 없애야 합니다. 우리 사회와 국가 속에 있는 아간을 잡아 없애야 정의와 진실이 서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눈물 골짜기가 있습니다. 시편 84편 6절로 7절에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여러분! 눈물 골짜기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 민족의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며 눈물을 펑펑 쏟고 자기를 낮추어 회개하는 골짜기의 체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눈물 골짜기를 통하지 아니하고 축복의 샘물이 솟아오르고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외친 복음의 제일 처음 시작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회개가 천국의 가장 기초적인 조건입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 매일같이 가슴을 치고 마음을 찢는 회개, 그 눈물 골짜기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은총 속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냥 종교나 믿고 형식적으로 의식적으로 왔다갔다 하는 이것은 아무 효과 없습니다. 주여, 주여, 부르는 자마다 하늘 나라에 들어올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가 들어온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형식주의와 의식주의를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눈물 골짜기를 통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앗수르의 수도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무너지게 될 형편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종 요나를 하나님이 시켜서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고 했습니다. 니느웨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40일 만에 멸망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에 대해서 진노하셨습니다. 니느웨는 큰 도시입니다. 요나가 사흘 길을 걸어서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이 소식을 듣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백성들이 그냥 통회하고 자복하고 베옷을 입고 잿더미에 올라 앉았습니다. 이 말이 니느웨 임금님에게 전해지자 임금님이 친히 자기의 조복을 벗고 삼베옷으로 갈아입고 잿더미에 앉아 통회하고 자복하고 칙서를 내려서 모든 니느웨 백성들은 남녀 노소할 것 없이 전부 금식하고 짐승들까지라도 입에 풀을 데어 주지 말고 전부 금식하고 통회하고 자복하며 만군의 야웨 하나님께 눈물로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말했습니다. 혹시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켜 우리를 살려줄까 알 수가 없다. 요나는 앗수르를 미워했습니다. 항상 이스라엘을 침략하기 위하여 기회를 엿보는 앗수르를 향해서 외치기는 하지만 앗수르가 회개하는 것은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니느웨, 온 백성들이 다 회개하고 통회하니 하나님이 멸하겠다는 생각을 돌이켰다고 말한 것입니다. 눈물로 회개하고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멸망하기로 작정한 나라와 도시도 마음을 돌이켜 구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가 얼마나 큰 역사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살 길은 회개 밖에 없습니다. 우리 민족이 지금 어려운데 처한 것은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가야 됩니다. 남북 통일도 눈물의 골짜기를 통해서 우리가 민족이 회개하고 부르짖고 외칠 때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남북통일이 사람의 힘으로 되나요 하나님의 힘으로 되는 것입니다. 요나서 3장 7절로 8절, 10절을 보면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눈물 골짜기에서 많은 샘이 솟는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샘은 생명의 근원 아닙니까? 목이 갈하면 죽지 않아요? 물을 먹지 않으면 죽지 않아요? 그러나 샘물을 마시면 살잖아요? 생기가 돌잖아요? 우리가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면 하나님께서 그 눈물 골짜기에 샘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울며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는 곳에 생명의 샘이 솟아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샘물은 솟아올라야 합니다. 그러면 많은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샘은 개천이 되어 흘러 생명체를 번창케 합니다. 에스겔서 47장 9절을 보면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여 모든 샘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 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이 샘물이 이르는 곳에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습니다. 바로 회개의 골짜기에서 눈물을 흘리면 눈물 흘린 그곳이 많은 샘의 근원이 되어서 자기가 먹고 살고 그리고 이 샘물이 넘쳐나서 흐르는 곳마다 각처에 모든 것이 살아나고 번창하기 시작합니다. 샘물이 있는 곳에는 도시도 이루어지고 촌락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과 번영이 이 눈물의 골짜기를 통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하기를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이른 비라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야웨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자복하고 눈물을 흘리는 그 사람 속에 생수가 넘쳐흐를 뿐 아니라 성령의 단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이 오시면 개인적인, 사회적인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광야에 꽃이 만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어둠이 변하여 빛이 되고 무질서가 변하여 질서가 되고 죽음이 변하여 생명이 되고 추가 변하여 아름다움이 됩니다.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고 난 다음 창세기의 아름다운 세계가 창조된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거대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개인적인 변화 뿐 아니라 한 사회적, 국가적인 변화, 산천초목에까지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 성령의 역사는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통회하고 자복하는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한 번창과 형통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아골 즉 괴로움의 골짜기, 그리고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 우리는 깨어지고 변화 받아 진실히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여 돌이켜서 근신하게 되어 비로소 하나님께서 힘을 더 주시고 힘을 주셔서 능력을 얻고 시온의 하나님 앞에 큰 영광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사람을 보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 항상 좋은 일만 있다고 우리가 희희낙낙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필요합니다. 아골 골짜기가 필요합니다. 눈물 골짜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골짜기를 통할 때 진실로 회개하고 자복하고 깨어지고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바로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하고 있습니다. 아골 골짜기를 통하고 있습니다. 눈물 골짜기를 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지고 아간을 잡아서 처치하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부르짖을 때 우리는 그 골짜기를 통해 나올 때는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나옵니다. 더 거룩하고 더 변화 받고 더 신앙이 좋고 더 훌륭하고 더 축복 받고 더 능력 있고 힘있는 나라와 민족이 되어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했습니다. 이 골짜기를 통할 때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성도들이 되고 우리 국민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지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을 멀리 하고 등을 돌리고 인본주의로 살아온 죄를 다 깨뜨려 주옵소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욕심과 탐심을 따라 살고 불순종하고 산 죄를 회개하오니 이를 다 용서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 아버지여 교만하고 오만하며 자기 자랑을 하고 산 죄를 다 사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아골 골짜기를 통하는 우리들, 아간을 다 잡아 처리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상처를 도려내고 수술하지 않고 그대로 붕대만 감아 놓으면 전체가 다 썩어 죽을 것입니다. 아골 골짜기에서 내 아버지 이스라엘을 괴롭힌 아간을 잡아서 그를 처치하고 하나님이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준 것처럼 우리 나라도 아버지, 우리 나라를 망치는 아간을 잡아서 정리하고 그것이 소망의 문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 국민 전체가 눈물 골짜기로 통하며 통회하고 자복하고 전부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 탓이요, 나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내 탓으로 생각하고 내가 회개하고 자복하고 근검절약하고 소비생활을 조심해서 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회개하게 도와 주옵소서. 아버지여 모두 다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신문을 볼 때 텔레비젼을 볼 때 나는 아니다 전부 이웃 탓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내 한사람, 한사람이 눈물 골짜기로 통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속에 샘이 솟아오르게 도와 주시옵소서.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그 샘물을 마시고 살 수 있는 그러한 사람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성령도 우리를 도우시고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우리가 모두 다 이 기회에 변화 받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