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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4월 27일 제목: 광야에 계시는 예수님 성구: 요 6:1-13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광야에 계시는 예수님" 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마치 광야에 놓여 있는 상태입니다. 정치도, 경제도, 남북관계도, 사회 인심도 다 거친 광야에 놓여 있습니다. 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고 안주할 곳이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도와줄 수 있습니까?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옛날 이스라엘 갈릴리 근처 베세다 광야에 남녀 어린이까지 합쳐서 약 만여명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주님과 함께 있어 해 질 무렵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허기져서 기력을 잃어버리고 여기저기 풀밭에 주저앉거나 드러누워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빌립을 향하여 빌립아! 우리가 어디에서 떡을 구하여 이 사람들로 먹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질문하셨습니다. 그때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이미 그가 어떻게 하실 것을 알고 계셨으며 단지 빌립을 시험코자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시험해 보시려고 하셨을까요? 첫째로, 빌립이 광야에서 굶주린 그 군중들 가운데 서 계신 예수님께서 저희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을 때 무엇을 보고 있는가를 시험해 보셨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그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무엇을 보는가?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빌립이 무엇을 보는가를 시험해 보셨습니다. 여러분 빌립이 본 것은 무엇입니까? 빌립은 그 광야를 보았습니다. 인적이 없고 오직 사막같이 막막한 광야, 그 광야만 보았습니다. 그 다음 빌립이 본 것은 많은 수의 군중을 보았습니다. 도저히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수가 거기에 모인 것을 보고 그는 마음속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다음 빌립이 본 것은 자기 주머니에 돈이 없음을 보았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말씀하기를 "빌립이 대답하여 가로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먹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돈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저는 돈이 없습니다" 그 다음 빌립이 본 것은 떡 살 곳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광야에 돈이 설혹 있다고 할지라도 어디에 가서 살 수 있습니까? 떡 살 곳이 없는 것을 그는 바라보았습니다. 그 다음 빌립이 또 바라본 것은 시간이 늦은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먹을 때가 아니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저 가는데 언제 떡을 사서 먹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빌립이 바라본 것은 모두 다 없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모자란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결과로 빌립은 자동적으로 그 마음이 부정적으로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빌립은 완전히 마음이 부정적으로 되어 예수님께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제자 중에서 안드레가 있었습니다. 안드레는 성격이 차분하고 별로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빌립과 달리 보았습니다. 똑같은 제자로서 똑같은 광야에 있었는데 안드레가 본 것은 빌립과는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광야지만 광야 중에 서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었습니다. 물론 광야다. 그러나 광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광야 가운데에 있는 예수님을 집중해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물론 많은 군중이 있다. 이 많은 입을 먹이려면 굉장한 돈이 필요하겠지만 그러나 군중 가운데에 서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안드레는 또한 예수님의 뜻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뜻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굶어서 가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고 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는 것을 보니까 주님의 뜻은 이 사람들을 먹이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깨달아 알았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예수님의 권능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죽은 자도 살리시고 문둥이도 깨끗게 하시고 귀신도 쫓아내시고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을 행하는 권능의 사자인 것을 그는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비록 시간은 늦었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시간의 주인 되심을 그는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시간이 이르다 늦다는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시간의 주인인 것을 그는 바라보았었습니다. 그러므로 안드레는 모든 부정적인 여건 가운데서 그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는 결과적으로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함께 계심으로 무엇이 능치 못하심이 있겠는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예수님이 같이 계시지 않느냐! 이래서 똑같은 광야에서 똑같은 어려움에 처한 처지에서 빌립은 할 수 없는 것을 바라보았지만 안드레는 할 수 있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빌립은 없는 것을 바라보고 안드레는 있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빌립은 부족한 것을 바라보고 있고 안드레는 만족한 것을 바라보았었습니다. 빌립은 현실을 바라보았지만 안드레는 현실 가운데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눈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은 광야요! 없는 것이요, 부족한 것이요, 절망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할 수 없다, 못한다. 안된다는 부정적인 마음의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배워야 할 것은 물론 광야입니다. 물론 군중이 많아요. 물론 돈도 없습니다. 물론 떡 살 곳도 없어요. 물론 시간도 늦었습니다만 언제나 그 가운데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개인의 삶 속에 여러분의 가정에 우리의 사회 국가에 여러 가지 어려운 시련과 고난이 많이 닥쳐옵니다. 정치적인 고난도 다가오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다가오고 사회적인 어려움도 다가옵니다. 북풍도 불어오려고 합니다. 시련이 잔뜩 다가옵니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가 그러한 것만 바라보면 낙심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가운데에 그 광야에 예수님이 와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면 마음속에 용기가 생깁니다. 광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계시고,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계시고, 떡 살 곳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곳에 계시고, 시간이 늦은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그곳에 계심으로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시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계시면 아무 것도 두려워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똑같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도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서 그들의 신앙의 기도는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시험해 보시고자 하는 것은 광야에 있을 때 무엇을 보는가? 그것을 시험에 보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환경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해서 그는 낙제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드레는 모든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서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안드레는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주님이 시험하는 것은 꿈이 있는가를 시험해 보십니다. 꿈은 하나님의 능력을 담는 그릇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은 결코 나타나지 않습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사막을 지나 가데스바네아에서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직전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때 12정탐꾼을 보내어서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와서 보고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열명의 정탐꾼은 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현실적인 장애물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우리가 가본 땅은 산은 높고 골을 깊어 하늘을 찌를듯한 성벽과 네피림의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고 자기들은 메뚜기같다고 비하했습니다. 우리가 들어가지 못한다. 그 땅을 우리가 점령 못한다. 우리의 자손들이 또한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그들은 광야에 가서 현실만 보았습니다. 그들의 보는 관점에는 하나님을 제켜 버렸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간 사람 중에 두 사람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꿈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현실보다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땅의 백성은 다 그들의 밥이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땅은 그들의 땅이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심으로 하나님과 그들이 함께 하기 때문에 그들은 현실을 이기고 현실을 뛰어 넘어 꿈을 꿀 수가 있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즉, 하나님이 같이 계심으로 이 곳에 있는 네피림의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이 있지만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저들의 보호자들은 떠났고 저자들은 우리의 밥이다. 이 땅은 우리의 것이다. 그들은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이 없는 현실주의자 10인을 심판하시고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렸습니다. 꿈꾸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40년 동안 생존시켜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현실주의자가 되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만 바라보고 그곳에 제약을 받아 나는 못한다, 안된다, 할 수 없다. 절망이다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꿈이 있는 사람은 현실에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과 더불어서 더 위대한 꿈을 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심으로 나는 살 수 있다. 나는 이길 수 있다. 나는 성공할 수 있다. 나는 전진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저버리는 것입니다. 열두 정탐꾼 중에 꿈이 없는 10명과 그들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다 광야로 몰아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그 후손을 데리고 그들이 꿈 꾼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꿈을 오늘 하나님께 보여 드리세요.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내일을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현실에 우리 한국의 환경이 심히 어렵습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또 북한 관계에서 어려움이 산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만 바라보고 우리는 끝장났다. 이제 모든 것은 망했다. 이제는 손을 털어야 되겠다. 우리 외국으로 이민이나 가자. 돈이나 뽑아 가지고서 해외로 도망치자. 이러한 사람들은 꿈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해외에 도망을 쳐도 그곳에서 말라 죽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같이 하는 사람은 꿈이 있는 사람입니다. 광야에 있어도 겁날 것 없습니다. 사막에 있어도 겁날 것 없습니다. 도시 가운데서도 겁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같이 계심으로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우리가 살아갈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이 있는 백성은 절대로 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자랑스러운 성도인 김순근 박사님, 옥수수 박사님께서 저희 예배에 참석을 했는데 나는 김박사님의 생애에 대해서 굉장한 감동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꿈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프리가 나이제리아에 굶주린 그 박토에 가서 꿈을 가지고 강냉이 종자를 개발해서 슈퍼 강냉이를 만들어서 아프리카의 굶주림을 건진 사람입니다. 이제 또 아프리카에서 우리 북한의 굶주리고 있는 동포들에게 먹을 것을 생산해 주기 위해서 슈퍼 강냉이를 만들어서 북한에 종자를 줌으로 북한에서 슈퍼 강냉이를 통해서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그 꿈을 가지고 지금 북한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김순근 박사는 우리 자매 교회인 대구순복음교회의 성도인데 우리 한국 사람으로서 처음으로 노벨상 후보에 지금 올라가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우리 김박사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노벨상을 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김박사님이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꿈을 먹고살고 꿈을 따라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프리카와 같은 오지에 들어가서 십수년을 그곳에서 꿈을 키우면서 슈퍼 강냉이를 발명하고 지금도 북한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꿈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꿈꾸는 사람을 통해서 위대한 역사적인 기적과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망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꿈이 있는가 없는가를 시험해 보시고 난 다음에 꿈이 있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빌립과 안드레는 여기에서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빌립은 현실주의자였으므로 꿈이 없었습니다. 빌립은 그저 광야만 보았고 군중 많은 것을 보았고 돈 없는 것을 보았고 떡살 곳 없는 곳을 보았고 시간이 없는 것을 보았고 그러고 난 다음에 절망해 버리고 그는 꿈을 꾸지 못했습니다. 할 수 없다고 그는 결정지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꿈을 가진 사람입니다. 안드레는 똑같이 빌립과 함께 광야에 있었지만 그는 광야만 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계심으로 할 수 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예수님이 같이 계심으로 광야가 변하여 이곳에 잔치상이 될 수 있다. 이 수많은 군중들이 다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돈이 없어도 주님은 기적을 행하실 수 있다. 그 방법은 모르겠지만 내가 믿고 순종하면 주님의 기적이 일어난다. 예수님이 계심으로 안드레는 꿈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꿈을 못가졌지만 안드레는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에 비록 나는 힘이 없고 무능력하고 돈도 없지만 예수님이 계심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위대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꿈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 참으로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지금 교회 5만개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5만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아무리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이곳에 예수님의 몸이 오만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이 5만개나 있는데 주님께서 한국이라는 광야에 와서 계시는데 이 주님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결코 부정적으로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꿈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아브라함이 나이 100세가 되었고 그 아내가 90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꿈만 가지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그를 이끌어 밖으로 나가서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별을 셀 수 있는가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라함이 야웨를 믿으니 야웨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을 끌고 나와 하늘의 뭇별을 바라보게 한 다음에 그의 자손이 별과 같이 많으리라는 꿈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는 그 꿈을 얻고 난 다음에 자기의 늙은 것과 자기 아내의 늙은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꿈 속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꿈을 통해서 아들 이삭을 허락해 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과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같이 계시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있기 때문에 꿈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이 없는 빌립을 제치고 꿈이 있는 안드레를 사용해서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이 시험해 보신 것은 믿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시험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예 주님을 따라 나서지 못하죠. 믿음을 어디에다 두었는가 이것이 문제인 것이죠. 빌립은 믿음을 어디에 두었습니까? 빌립은 그의 감각을 믿었습니다. 오감각을 믿었습니다. 그는 그의 이성을 믿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경험을 믿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믿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가 얻은 정보를 통해서 볼 때는 나는 못한다, 나는 감각을 통해서 보니까 내가 못하는 일이다. 내가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이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경험을 통해서 볼 때라도 이런 일은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내 자신의 능력으로 안된다. 그러므로 나는 못한다. 여러분 잠언서 28장 26절에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자기의 마음을 믿었기 때문에 여기에 빌립은 미련한 자가 되었습니다. 자기의 대답은 자기 스스로를 통해서 주는 대답인 것입니다. 그러나 안드레의 믿음은 달랐습니다. 안드레는 광야에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은 것입니다. 안드레는 자기는 할 수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광야 가운데 서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마음속에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좋으신 하나님으로 백성들을 굶겨서 보내시지 않을 줄을 굳게 믿은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깜짝 놀랄 기적을 행하실 것을 마음속에 믿었습니다. 그 믿었기 때문에 빌립은 아무 것도 안하고 못한다고 앉아 있을 동안에 안드레는 군중들에게 가서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소년을 찾아내고 그 오병이어를 가지고 주님께 왔습니다. 그가 주님이 기적을 행할 것을 믿지 않았으면 그런 바보 천치 같은 일을 할 턱이 있어요? 남자만 오천명, 부녀자 합쳐 기만명이 있는데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무엇을 한다는 말입니까? 모든 사람이 기절초풍을 하고 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는 오병이어를 주님께 믿음으로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에 주님께 믿음의 씨앗을 심기 위해서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내가 주님께 믿음의 씨앗을 심으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실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실 것이다. 오병이어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것은 안드레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었으면 그런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이 합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빌립을 시험해 보시고 난 다음 빌립은 낙제생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빌립은 환경만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은 자기의 위에 뛰어넘는 꿈을 못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꿈꾸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빌립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주님을 믿고 기적을 기대하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빌립과 한 팀이 되어서 일하기를 거부하시고 안드레와 한 팀이 되셔서 주님이 일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안드레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통해서 꿈을 가졌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통해서 기적이 일어나는 믿음을 가지고 보릿떡 다섯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안드레와 한 팀이 되어서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하고 만 것입니다. 주님이 축복을 해주심으로 오병이어가 남자만 5천명 부녀자 기만명을 배불리 먹고 남을 조각을 거두니 12바구니에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예수님은 오늘날에도 광야에서 와서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에만 계신 줄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교회당에만 계신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광야같은 세상에 와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세다 광야 같은 한국 땅에도 지금 와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문이나 라디오나 텔레비젼을 보면서 우리 대통령의 모습이나 보고 정치인 모습이나 보고 그리고 한보 청문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볼런지 몰라도 그것만 보면 전부 빌립이 되고 맙니다. 그 건너편에 우리 한국의 광야에 와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와 계신 것을 바라보면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한 나머지 예수님을 놓쳐 버려서는 안됩니다. 현실에 정치나 경제나 사회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서 부정적이 되어 예수님을 놓쳐 버리면 안됩니다. 베드로가 물위로 걸어가다가 바람과 파도를 보고 두려워 하다가 그는 예수님을 놓쳐버리고 물에 빠졌습니다.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하면 예수님을 놓쳐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끝까지 예수님을 쳐다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고 꿈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내일의 꿈과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없으면 우리는 꿈도 가질 수 없고 내일을 바라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시는데 어찌하여 우리가 꿈을 가질 수가 없습니까? 예수님이 계시는데 어떻게 내일의 희망을 가질 수가 없습니까? 예수님이 갈보리 십자가에 높이 달려 몸찢고 피를 흘려서 우리를 값 주고 사셨는데 어찌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음에 꿈을 품지 못하는 것입니까? 꿈을 품지 못하면 내일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꿈이 있어야 믿음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환경과 자신을 바라보고 낙심하여 절망하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는 환경과 자신을 가지고서 우리가 살 바에야 교회에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환경과 자기를 믿을 바에야 교회에 왜 나옵니까? 교회는 환경과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고 우리 운명을 변화시킬 하나님을 믿으러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것은 기적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왜 기적이 안 일어나요? 하나님을 안 믿으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교회에 나옵니까? 교회 나와서 우리가 주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운명과 환경에 간섭해서 변화시켜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그 하시는 말씀을 곁에서 들으시고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회당장의 딸이 죽었을 때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가 믿음을 굳세게 가져야 됩니다. 우리는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 그리고 크고 비밀한 일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믿고 최선을 다해서 믿음의 씨앗을 심고 기적을 기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라는 광야에 오만교회가 있고 즉, 예수님의 몸이 오만개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만의 선지자들이 있고 천이백만의 주님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이 한국의 광야에 현재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있다는 것은 이 땅에 예수님이 있다는 것과 한가지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꿈과 믿음과 희망을 가꿔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7절로 10절에 보면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화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너를 여와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인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또한 12절에서 13절에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를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질 때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야웨 하나님은 변역지 아니하십니다. 볼찌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러나 주님은 빌립하고는 함께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안드레와 같이 하셨습니다. 다 같은 교회 교인이라도 주님께서는 광야를 바라보는 사람하고 같이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하고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바라보고 꿈을 잃어버리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같이 하지 않습니다. 더 나은 것을 위해 꿈을 안고서 나아가는 사람과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을 믿고서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과는 같이 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과 주님이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광야의 문제는 해결이 됩니다. 그 굶주린 수많은 사람은 먹여줄 수 있습니다. 정치 문제나 경제 문제나 북한 문제도 해결이 됩니다. 왜,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너희는 내가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 주리라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가운데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노라. 이 자리에 계신 예수님은 여러분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두 손을 활짝 내미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와 함께 가자 나와 함께 의논하자 나와 함께 꿈을 꾸고 나와 함께 믿고 나와 함께 기적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비록 광야 같은 삶을 살고 있어도 우리 가운데 예수님이 와 계심으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무섭지 않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어떻게 부족한 것이 많아도 이것을 채우고도 남음이 있는 예수님이 계심으로 끄덕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감각으로 의지하지 말고 이성도 의지하지 말고 자기 경험도 의지하지 말고 자기 실력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과 함께 일하며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기적이 일어날 것을 바라보고 꿈꾸고 믿고 나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