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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5월 4일 제목: 나무 위에서 본 예수님 성구: 눅19:1-10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누가복음 19장 1절부터 10절에 있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성을 지나갈 때 그곳에 있는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세리장이요 굉장히 부자였습니다. 그 당시의 세리장은 언제나 부자죠. 왜냐하면 그들은 로마를 위해서 유대인에게 세금을 갈취해서 바치는 사람들인데, 정상적인 세금만 로마에다 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자기들의 이익을 보태어서 세금을 갈취하기 때문에 굉장히 일반 군중들에게 원한을 사고 원수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세리장 삭개오는 그러한 권세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 상당히 큰 부자였는데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무언지 모르게 마음에 공허가 있고 돈으로써 채울 수 없는 허탈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가 보니까 예수님 오시는 길에 군중들이 길에 빽빽하고 매워 서 있었습니다. 그는 키가 작아서 사람들의 머리에 가리워서 예수님을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므로 그는 뛰어가서 예수님 오시는 길목에 뽕나무에 기어올라갔습니다. 세리장으로서 상당히 존경받을 수 있는 처지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뽕나무에 기어올라가서 갈급한 마음으로 잔뜩 예수님을 내려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길로 지나가시다가 뽕나무 밑에 서서 뽕나무에 있는 삭개오를 보시고 '삭개오야, 내려오라.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그러자 삭개오는 기쁘고 즐거워서 내려와 예수님을 집으로 영접하고 그가 하는 말이 '주님, 오늘 주님이 우리 집에 들어 왔으니, 내가 내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남에게 탈취한 재산은 4배로 갚겠다'고 말했습니다. 식구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인색한 삭개오에게 어떻게 이 거대한 변화가 왔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오늘날 이 집에 하나님의 구원이 이르렀다 그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인자에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 깊은 진리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지위나, 명예나, 권세가 있으면 행복할 줄 알지만 지위나, 명예나, 권세를 아무리 가져도 그 마음속에 공허는 이러한 것으로 채울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기 전에는 결코 평안과 만족이 없습니다.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을 발견하기 전에는 내 마음속에 평안이 없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세리장처럼 오늘날 사람들은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을 무섭게 추구하지만 그러나 그 속에는 결코 마음의 만족과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야만 마음속에 참 만족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오늘날 예수님을 찾으려고 무척 애를 쓰지만 사람들의 머리에 가리워서 예수님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보려고 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막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철학자를 통해서 예수님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철학자의 머리에 가리워서 예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철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의 머리가 가리워서 예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또 어떠한 사람들은 종교가의 머리를 통해서 예수님을 바라보는데, 그 머리에 가리워서 예수님이 또 보이지 않습니다. 종교가들은 생각하기를 예수님은 종교적인 신념을 위해서 순교를 당한 하나의 순교자로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사회주의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바라보려고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한 사회의 개혁자였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의 대변자였다. 그런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바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정치가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려고 하면 그들은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한 정치가였다. 군중 선동가였다.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 간 하나의 정치적인 지도자였다. 그런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운동권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아보려고 하면 예수님은 바로 운동권의 지도자였다. 예수님은 사회의 개혁을 위해서 그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뭐, 이런 정도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예수께 찾아오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머리에 가리워서 예수님을 증거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고 하는 사람은 철학자나, 종교자나, 사회 운동가나, 정치가나, 혁명가나, 이런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려고 하면 큰 실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려고 해도 사람들이 너무 앞에 많이 서있었고 그는 키가 작고 사람들의 머리에 예수님이 가리워서 볼 수가 없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의미 심장한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여러분이 사람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이나 주의를 통해서 예수를 바라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우리에게 보여 주지 못합니다. 삭개오는 예수를 바라보기 위해서 뛰어가서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뽕나무에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처럼 오늘날도 우리가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려면 나무 위에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나무 위에 올라가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결코 바라볼 수 없습니다. 어떤 나무에 올라갈까요? 갈보리 십자가 나무 밑에 가서 그 위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나무 위에 올라가신 예수님을 정확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나무 위에 올라가서 거기에 매달려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무 위에 올라가서 바라본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일까요? 첫째로, 나무 위에서 바라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몸 찢고 피를 흘려서 우리의 죄악을 다 짊어지신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나무 위에서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시고, 속건제물이 되시고, 번제물이 되셔서 하나님 앞에 지은 죄, 사람 사이에 지은 죄, 자기 마음으로 지은 모든 죄를 영원히 청산하신 우리의 구세주가 되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학자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유대인들에게는 걸리는 것이겠지만,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세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나무 위에 올라가 보아야 비로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영원히 청산하시고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누구든지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예수를 바라보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용서와 의를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나무 위에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원수 된 담을 헐어 버리시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성령으로 부은 바 되게 만들어 놓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나무 위에 올라가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비로소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 친아버지가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친자녀가 되고, 하나님은 당신의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우리를 성화시키시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나무 위에 올라가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비로소 우리들은 하나님의 용납함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하나님과 우리가 대화가 이루어짐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째로, 나무 위에 올라가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슬픔을 다 짊어지고 가셨으며 우리의 질고와 고통을 나무 위에서 다 담당한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얼마나 우리가 슬픔이 많습니까? 한국에만 슬픔이 있는 것이 아니라, 뉴질랜드에도 슬픔이 있습니다. 하늘 아래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 슬픔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 위에 올라가면 예수님은 실로 우리 슬픔을 다 짊어지고 갔습니다. 예수님은 슬픔의 아들이었습니다. 모든 인류의 슬픔을 다 짊어지고 그리고 우리의 모든 질병과 고통을 걸머졌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저가 우리가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심이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나무 위에서 비로소 예수님은 손을 활짝 내밀고 슬프고 병든 자를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무 위에 올라가서 본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알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슬픔과 우리의 질병과 연약을 짊어지고 간 것을 알게 되고 그 곳에 우리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나무 위에 올라가신 예수를 바라보면 그리스도는 그곳에서 아담과 하와가 가지고 온 저주를 대신 다 짊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에덴에서 쫓겨 나갔을 때 그는 저주를 가지고 왔습니다.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그리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사는 고통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때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여러분 인류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저주가 따라 갔습니다. 그래서 들에 가면 들이 저주를 받고 집에 들어오면 집이 저주를 받고, 떡 반죽 그릇을 만지면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고, 인류는 저주를 떠나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마에 땀을 흘리고 고통 가운데 슬픔과 눈물 가운데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무 위에 올라가 보면 그 저주를 예수님이 담당하신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서 14절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나무 위에서 예수님은 아담과 하와가 가져온 그 모든 저주와 슬픔을 대신 다 짊어지고 나무에서 청산한 것입니다. 오늘 나무에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우리 마음속에 저주 대신에 아브라함의 축복이 우리의 몫인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저주의 가시채에서 놓여남을 받았으며 저주의 슬픔에서 해방된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나무 위에 올라가면 그곳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죽음을 대신 죽으시고 주님이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신 사실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나면 심판을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죽음, 나의 죽음을 걸머지고 그 죽음을 십자가에서 죽여 버렸습니다. 여러분의 죽음은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나의 죽음도 십자가에서 파멸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죽음을 십자가에서 끌어안고 파멸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사망을 이기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나무 위에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우리는 바울처럼 담대히 말할 수 있습니다.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완전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 위에 올라가서 바라본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친히 우리를 위해서 사망의 길을 멸하시고 천국 길을 열어 놓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무 위에서 우리를 보고 말씀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무 위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희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영원한 미래는 현재보다 영화롭고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것을 소망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한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나 죽는 것이 없는 영원한 고장에 들어갈 수 있는 처소가 바로 나무 위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른 곳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리석게 우리가 철학자의 머리를 통해서 또는 사회주의자, 혹은 정치가, 혹은 운동권, 이런 사람들의 머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고 하면 그 머리에 가리워서 예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무 위에 올라가 보면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사야서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 나무 위에서 예수님이 이것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삭개오처럼 오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나무 위에 올라가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자세히 알아보십시다. 그리스도만이 참 하나님으로서 참 사람이 되어 오셔서 죄 없이 일생을 사시고 여러분과 나의 죄와 질병과 저주와 절망, 죽음을 나무 위에서 다 청산하시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영원한 자유와 해방이 있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예수님이 오셔서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오늘 너희 집에 유하여야 되겠다'고 하신 말씀대로 나무 위에 올라가신 예수님을 확실히 바라보게 되면 주님은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내가 너희 집에 유하여야 되겠다' 예수님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깨달은 사람의 마음속에 주님께서 와서 거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하시는 예수님, 화목케 하시는 예수님, 치료하시는 예수님, 형통케 하시는 예수님,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너희 집에 유하여야 되겠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올바르게 바라보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들어와서 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삭개오의 집에 예수님이 들어오자마자 삭개오가 변화되었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으로서 피와 눈물도 없이 세금을 갈취하는 사람입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오는 그 사람이 예수가 들어오자 거대한 변화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하고 그에게 경배하여 말하기를 내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갈취한 것을 4배로 갚겠다. 그 가족들이 놀라서 기절초풍을 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변화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같습니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 예수님이 들어오게 되면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변화가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여러분께서 그리스도를 하나의 종교나 철학으로, 하나의 의식으로 받아들인다면 필요 없습니다. 다른 종교는 그러할지 모르겠지만 예수님은 여러분 속에 들어오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변화시킵니다. 그리스도가 들어오면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삶을 사는 사람이 예수가 들어오면 그 죄의 생활을 저버리고 이제는 의를 향해서 살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다가와야 됩니다. 변화 없이 그냥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그는 살았다 하나 죽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가 들어오면 변화를 받습니다. 여러분, 또 그리스도가 들어오면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랑하게 되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말미암아 세속과 분리되어서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거룩하게 되고 말이 거룩하게 되고 행동이 거룩하게 되고 또 거룩한 친구들과 함께 모여 살게 되는 것입니다. 환경적인 참으로 거대한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무 위에서 우리 속에 들어오면 우리의 마음속에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성경은 말씀한 것처럼 마음속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뻐하게 되고 우리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며 생산적이게 됩니다. 부정적이게 안됩니다. 파괴적이게 안됩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그 마음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도 건강해지고 육신의 질병도 사라집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면 여러 가지 질병들이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심신에서 사라지고 우리는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가 돌아오면 우리의 생활 속에 변화가 다가오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된 나라들을 보십시오. 옛날에는 구라파나 영국이나 미국이나 가난한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미개한 나라들이었습니다. 문명은 아시아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중국에서부터 인도에서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집트에서 문명이 발상되었고 거기에 사람들이 문명의 생활을 할 때 구라파나 영국이나 미국은 가난하고 미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서 복음이 유럽으로 전파되자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나라마다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하는 일마다 하나님이 은총과 복을 주어 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구라파가 물질적으로 부흥하게 되고 영국에 복음이 증거 되자 영국은 온 세계를 손아귀에 넣었습니다. 이 뉴질랜드까지도 영국이 점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이 미국으로 전파되자 미국은 그 광막한 대지가 변화되어서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가는 곳마다 저주를 제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가져오는 거대한 변화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지금 이 정도 사는 것도 6.25 사변이 난 이후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크게 왕성하여 5만 교회, 1,200만 성도가 모였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서 저주가 제하여지고 하나님의 형통함이 다가와서 이렇게 잘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이제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는 대로 그와 같이 우리 한국을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5만 교회가 있고 1,200만 성도가 있다는 것을 언제나 계산에 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로 말미암아 우리 한국은 다시 경제적으로 부흥하고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성장하고 발전하게 됩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은 들어가는 곳마다 가시와 엉겅퀴를 제하고 저주를 제하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가져오는 놀라운 운동력을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각자의 마음속에 끝없는 희망을 주십니다. 우리는 이 땅을 행인과 나그네와 같이 지나갑니다. 이 땅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언제고 우리의 생명의 날이 끝나면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져도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우리가 확실히 아는 믿음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소망찹니다. 우리가 나이 먹어서 늙고 죽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삶 속에 변화가 다가옵니다. 예수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면 마치 삭개오가 변화된 것처럼 우리는 정의로운 사람으로 변화되고 우리는 진실하고 참된 사람으로 변화되며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세속에서 거룩한 무리에 속하게 되며 탐욕을 저버리고 분수대로 살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그로 말미암아 자연적으로 내가 용서함 받은 것처럼 남을 용서하고 내가 하나님께 사랑 받은 것처럼 남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마음속에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운동력이 우리의 마음속에 생겨납니다. 단순한 종교나 철학이나 윤리나 도덕의 강령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셔서 성령으로 우리 속에 와서 운동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우리들은 항상 오! 주여 나의 삶 속에 위대한 변화를 가져와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 내가 간구하노라 하신 말씀대로 이와 같은 거대한 변화의 움직임이 우리 속에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오자 삭개오의 생애와 그 집안이 다 변화된 것처럼 오늘 예수께서 여러분 속에 들어와 계심으로 여러분이 이 변화의 위대한 성령의 바람에 잡히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거에서 자유를 얻고 해방됩니다. 여러분은 사망의 세력과 죄악과 저주와 절망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변화된 위대한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삭개오처럼 뛰어가서 십자가 나무 위에 올라가서 그곳에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차게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얻은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고 변화의 행진을 해 나가십시다. 여러분 자신이 변화될 뿐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을 통해서 우리 사회와 국가가 변화될 것입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성도 개인과 가정과 우리 한국 사회와 국가가 거대한 변화를 가져오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늘 나라의 영광이 가득 차게 도와 주시옵소서. 가는 곳마다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도와주옵소서. 오늘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아버지 간구하오니 믿지 않는 자는 오늘 모두 다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가운데에 병든 자 귀신에 묶인 자 고통 당한 자는 오늘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고침 받게 도와 주옵소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나니 너의 모든 질병과 고통과 원수 귀신은 각자의 몸에서 떠나갈지어다. 마음에서 물러갈지어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우리 하나님이여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내밀어 안수하여 주시옵시고, 모든 사람을 치료하고 해방시켜 주시고 승리하고 축복 받게 만들어 주옵소서. 오늘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