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997년 5월 25일 제목: 골리앗을 이긴 다윗의 비밀 성구: 삼상17:31-49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골리앗을 이긴 다윗의 비결"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 시대에 블레셋의 군대가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습니다. 사울의 군대가 마주 나가 항오를 벌리고 대결한지 40일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군대중 골리앗이란 거인이 매일 같이 나와서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심히 도전함으로 이스라엘의 군인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때 다윗의 아버지 이새가 다윗에게 전쟁에 나간 그 형들을 위문하고 음식을 전하고 오라고 함으로 나귀에 음식을 싣고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다윗이 전쟁터에 도착했을 때 또 다시 골리앗이 나와 한참 시위를 하고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협박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분개한 다윗이 자원하여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나아가 골리앗과 싸워 물 맷돌로 골리앗의 이마를 쳐서 넘어뜨리고 칼로 목을 베어 대 승전을 이스라엘에 가져다주었습니다. 사울의 군인중 역전의 용사들도 다 겁에 질려 못하는 일을 초립동 소년 다윗이 해낼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오늘날 우리들도 수많은 거인 골리앗과 같은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거인들을 물리치고 승리하기 위하여 다윗이 이긴 승리의 비결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첫째로, 다윗이 골리앗을 쳐서 물리치고 이긴 비결은 다윗의 가슴속에 그는 꿈을 품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항상 그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이 계시고 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해 주시고 자기와 함께 계신다는 이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들은 그냥 세상에 취해서 사는데, 다윗의 마음속에는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는 그 하나님과 같이 산다는 그러한 꿈을 늘 마음속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양을 칠 때 사자나 곰이 아버지의 양을 물고 갈 때 다윗은 하나님이 같이 계시는 꿈을 품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 그들을 쳐서 죽였습니다. 감히 초립동 조그마한 소년이 사자나 곰을 대항하여 어떻게 나아갈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몸은 작고 키는 작았지만 그 마음속에 꿈이 컸습니다.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안에, 그가 하나님 안에 있는 꿈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사자나 곰을 대항하여 나갈 때 자기 힘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나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는 나아가서 사자를 치고 곰을 치고 양을 입에서 빼앗아 내고 덤벼들면 수염을 잡고 쳐서 사자나 곰을 죽였는데 그것은 자기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 마음속에 꿈을 품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다윗은 골리앗을 만났을 때 그 사자나 곰 중의 하나로 보았습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거인이라고 해도 사자와 곰처럼 우직스럽고 강하지는 않다. 그리고 다윗이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꿈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꿈을 품고 하나님 안에서 골리앗을 바라 볼 때 골리앗은 사자나 곰 한 마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골리앗을 쳐서 죽이고 이스라엘에 대 승리를 가지고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은 다윗은 그 마음속에 꿈을 품고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꿈에 취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그 꿈을 항상 생각하고 항상 묵상하고 그 꿈속에 살았기 때문에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그가 함께 나감으로 말미암아 사자와 곰도 골리앗도 그를 당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한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인생들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갈보리 십자가 밑에 나와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구원을 받고 변화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우리 마음속에 꿈을 품고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꿈꾸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냄새 맡을 수 없고 맛볼 수 없고 손에 잡을 수 없는 것을 우리는 꿈을 가지고 마음속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 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우리는 그 안에서 마음속에 꿈을 품습니다. 우리의 죄가 용서받고 우리를 의롭게 해 주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는 꿈을 품은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품에 안겨 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와 함께 살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꿈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께서 안개와 같이 모든 슬픔을 다 쓸어버리고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질병을 대신 담당해 주시고 예수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고 우리 마음속에 소망을 얻으며 우리가 치료받고 건강하게 된 자화상을 가지고 꿈을 품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비록 지금 내가 병들고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그것은 현실입니다. 그러나 현실에 대적할 때 현실로 대적하면 안됩니다. 마음에 꿈을 품고 현실을 대적해야 합니다. 아무리 눈에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려도 아무리 병들고 고통스럽고 관절염이 심장병이 걸려 있어도 나는 예수를 바라보고 마음속에 꿈을 받아들인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병을 이기고 건강하게 된 나의 모습을 꿈꾸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꿈을 품고 현실에 대결하면 꿈을 품은 자가 언제나 이깁니다. 꿈은 현실보다 강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고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경제적인 고통이 있고 가난이 있고 슬픔이 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가난과 저주를 다 청산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신 모습을 바라보고 이것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나는 아브라함의 복 받은 사람이라는 꿈을 가슴속에 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꿈은 십자가에서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꿈은 십자가에서 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고 매일 매시 내 마음속에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은 나의 모습을 꿈꾸고 그 꿈을 마음속에 품고 현실의 가난과 슬픔과 저주와 불안을 대결해 나가면 꿈을 품은 자가 언제나 이깁니다. 현실은 꿈에게 지고 마는 것입니다. 현실을 현실과 부딪히면 우리가 안되지만 현실을 꿈을 품은 사람, 꿈과 부딪히면 현실은 물러가고 꿈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한 이유는 꿈이 없이 현실에 대하면 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꿈을 품고 현실에 대하면 꿈이 현실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우리는 죽음에 처했을지라도 주님께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고 부활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부활이요, 생명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고 영생을 얻은 꿈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망이 오더라도 우리는 영생을 얻고 천국이 우리 것이라는 꿈을 품고 있는 이상 바울 선생이 말하는 것처럼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을 능히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천국과 영광의 꿈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나 아무리 현실이 고통스럽고 괴롭고 어둡고 깜깜해도 마음속에 꿈을 품고 나가는 사람 앞에는 어둠과 절망은 다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이 현재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으로 좌절되고 고난이 꽉 들어차 있어도 우리 한국의 지도자들이나 한국의 성도들이 한국의 국민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내일에 대한 꿈을 품고 나가면 그 꿈 앞에 현실은 다 정복되고 마는 것입니다. 꿈을 잃어버렸을 때 절망이 다가오는 것이지 꿈이 있을 때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다른 사람보다 탁월한 것은 그는 비록 교육도 없고 시골에서 양떼나 치는 조그마한 초립동 소년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꿈을 마음속에 품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의 꿈 가운데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꿈속에 있었으므로 사자를 보아도 겁나지 않았습니다. 곰을 봐도 겁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역전의 용사들이 다 겁을 먹고 도망을 치는 골리앗 앞에서도 그는 겁이 나지 않았습니다. 왜 그는 꿈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있는 꿈을 품고 있으니 하나님 앞에 골리앗은 사자와 곰보다 더 못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품고 나가자 현실은 꿈 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것입니다. 사자도 죽고 곰도 죽고 골리앗도 죽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과 제가 갈보리 십자가 밑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이 오중 복음과 삼중축복의 꿈을 품고 나가면 우리의 현실의 어떤 어려움도 우리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우리는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다윗이 승리한 것은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막연하게 그는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시편 23편은 다윗이 그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았던 모든 진리와 지식을 그려 놓은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선하신 목자인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나쁜 하나님이 아니라 좋은 하나님인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내게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 나를 푸른 초장에 인도해 주시고 쉴만한 물가로 이끌어 주시며 내 생명을 끊임없이 소생시켜 주시고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참으로 좋은 목자라는 것을 그는 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대한 지식이 그는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내게 하나님은 좋게 해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한 그런 신앙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환난 중에 통해도 하나님은 함께 계셔서 건지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러므로 어떤 환난이 다가와도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는 꿈을 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인도해서 나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해서 더 연단 받고 더 능력 있고 더 씩씩한 사람으로 나올 것을 그는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이 그는 부럽지 않았습니다. 환난에 처하여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뚜렷했었습니다. 그는 원수들이 쳐들어올지라도 원수의 목전에서 하나님은 진수성찬 차리시고 내 머리에 오히려 기름을 발라 성령충만해서 높이고 잔을 넘치게 만들어 주는 좋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를 바라보고 두려워하지 않고 원수가 오면 원수 앞에 진수성찬 차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고 인자하셔서 종국적으로 그를 천국 아버지 집에 데려가서 영원히 살게 할 것이라는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갖지 못하고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인지 나쁜 하나님인지를 분별하지를 못하고 내 마음속에 의심을 가지고 있고 환난에 처하게 될 때 하나님이 나를 버렸나보다 원망하고 탄식하고 불평하고 원수가 오면 겁이 나서 도망을 치고 정말 천국이 있을 것이냐! 없을 것이냐! 마음에 불안정을 가지고 있으면 담대한 신앙으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는 분명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요동치 않습니다. 우리 순복음교회의 교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용서하고 의롭게 하시고 우리와 화목케 하시고 성령과 사랑을 부어 주시고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기쁘게 하시고 우리 병을 제하시고 마귀를 멸하시고 십자가를 통하여 저주와 가난을 물리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며 천국과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대속의 은총을 베풀어주신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 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는 아버지의 종국적인 뜻을 우리는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온전한 지식을 아는 사람만이 어떠한 일에도 이겨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알지 못하고 희미하여 오른편도 왼편도 아니고 중도도 아닌 방황하는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결코 성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째로, 다윗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이란 환경이나 감각을 초월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눈으로 보는 것을 믿고 귀를 듣는 것을 믿고 냄새 맡고 맛보고 손으로 만지는 환경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환경으로 좋아지면 할렐루야를 하고 환경이 어려워지면 좌절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육체적인 감각적인 믿음입니다. 우리는 신령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령한 믿음이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게 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는 육체적으로는 감각적으로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은 없어도 거기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에 의지해서 사는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환경의 협박에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신앙 고백을 하면서 살아 나가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요. 다윗이 골리앗을 대항하여 나아갈 때 골리앗이 간담이 서늘하게 무시무시한 협박을 했습니다. 그는 키가 구척 장신이었습니다. 그는 귀가 크고 눈이 종달만했습니다. 그는 산이 쩡쩡 울리는 소리로 다윗을 향해서 저주를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에게 주리라. 얼마나 간담이 서늘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환경이나 골리앗 같은 것을 바라보고 두려워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기 때문에 담대한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로 47절에 보면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신앙이란 바로 고백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그 믿음이 입술의 고백으로 나온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에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 마음속에 원수 앞에서 강하고 담대한 신앙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강하고 담대한 신앙 고백을 했고 이 신앙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한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입으로 자꾸 신앙을 부정합니다. 나는 못해요 나는 안 돼요. 할 수 없어요. 망했어요. 능력이 없어요. 나는 패해요. 이와 같은 부정적인 신앙 고백을 합니다. 이것은 원수에게 박수를 쳐주는 것입니다. 원수에게 함께 합작을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더 힘을 얻지요. 원수는 자기 말에 동의해 주고 원수에 동참을 해 주니까 원수야 더 힘을 얻지요.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다가 입술의 잘못된 부정적인 고백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원수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원수에게 짓밟히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믿었으면 그 믿음을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강하고 담대하게 고백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삶 속에 고백하는 신앙 이것을 놓치면 안됩니다. 사람이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알려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보면 압니다. 입술의 말에 신앙적인 고백이 나오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입술의 말에 부정적인 고백이 나오면 신앙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나이가 85세 때에 하나님이 자식 주실 것을 말씀했을 때 그는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밤에 데리고 가서 하늘의 별들을 헤아리게 하고 꿈을 갖게 하고 네 자식이 저와 같이 많을 것이라고 할 때 그는 믿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는 강하고 담대하게 그 믿음을 신앙 고백했습니다. 85세에 하나님께서 꿈을 보여 주었지만 100살이 될 때까지 그는 아직 아들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입술로 고백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이름이 아브람이 아브라함, 즉 많은 민족의 조상이요, 그 아내 사래가 사라로, 즉 여주인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85세부터 시작해서 장작 15년까지 계속해서 늘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많은 민족의 조상이다. 내 아내는 여주인이다. 이와 같이 그는 끊임없이 신앙 고백을 하고 그 고백대로 하나님이 100세 되었을 때 아들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들은 다윗과 같이 강하고 담대한 신앙고백을 하고 신앙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이 세상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삽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네째로, 다윗은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담력이 없으면 초립동 소년이 사자나 곰을 대항하여 싸울 수가 없습니다. 마음에 담력이 있기 때문에 용감해서 사자나 곰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담력이 없이는 블레셋의 거인을 향하여 물 멧돌만 가지고서 대적해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떨려서 어떻게 나갑니까? 그러나 그는 스스로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어서 강하고 담대한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백성들이 강하고 담대함을 잃어버리고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하고 물러갈 때 그들을 다 싹 쓸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우리가 들어가서 점령하자. 강하고 담대한 말을 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구출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했지만 우리들 본인 스스로는 보니 메뚜기와 같다. 우리는 쳐들어가지 못한다. 우리 처자가 다 잡힐 것이다. 우리는 애굽으로 돌아가자 이렇게 말한 사람은 광야로 다 회진시켜서 다 멸망시켜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여호수아를 보고서 어떻게 격려했습니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확실한 꿈을 주신 후에 강하고 담대하라고 거듭거듭 강조했습니다. 여호수아기 1장 5절 6절에 보면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그 다음 여호수아 1장 9절에 보면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시니라 하시니라" 여기에 여호수아 1장에 무려 3번이나 하나님은 꿈도 주시고 약속도 다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에게 부탁한 것은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마음을 강하게 먹고 지극히 담대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꿈이 있고 지식이 있고 믿음이 있어도 담대히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파도치는 밤바다에서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올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배 위에 다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여기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고 주시거든 내게로 오라 하소서. 굉장히 담대한 사람입니다. 주께서 오라.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 거세게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데 베드로는 예수님이 오라는 말을 듣고 배를 잡고 뱃전에 발을 내렸습니다. 또 빠질까 싶어서 배를 잔뜩 잡고 있으니까 발이 둥둥 뜬 줄 알았더니 발이 물에 자꾸 빠지거든요. 그러나 베드로가 나중에 담대함으로 뱃전에 잡은 손을 떼어 버렸을 때 그는 물위에 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왜 수제자가 되었습니까? 다른 제자들보다 지식이 많고 학문이 많아서 그렇게 되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담대했습니다. 다른 어떤 제자들보다도 모험심이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수제자로 삼은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담대한 사람을 취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역전의 용사들이 다 두려워서 벌벌 떨 때 소년 다윗이 강하고 담대하게 투구도 쓰지 아니하고 갑옷도 입지 아니하고 목자의 옷 그대로 입고 그는 물 멧돌 하나를 들고 나갔다는 것은 그 마음속에 얼마나 담력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다윗이 우연히 골리앗과 싸워서 요행히 이긴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윗이 일반 사울의 군인들과 다른 점이 바로 꿈이 있고 지식이 있고 믿음이 있고 담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에 많은 고난의 골리앗과 부딪히게 됩니다. 그때 다윗과 같은 자세와 인품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이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밑에 나와서 우리는 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항상 꿈꾸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꿈을 가슴에 품고 현실에 부딪히면 이깁니다. 꿈이 없이 현실에 부딪히면 박살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한 분인가 이것을 분명히 아는 지식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주신 하나님인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으로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보는 것으로만 행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강하고 담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밀고 나가면 하나님이 같이 하셔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정치적인 경제적인 우리의 가정적인 생활에 골리앗이 우리 발 앞에서 거꾸러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모실 그릇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그릇이 되면 오늘날도 하나님은 그 놀라운 능력을 여러분을 통해서 나타내게 되실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변역지 아니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오늘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꿈이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도 없이 희미한 생활을 합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습니다. 극히 마음이 유약하고 두려움에 떨고 허약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서 오늘날 역사할 수가 없는 것을 보고 탄식하고 계십니다. 야웨 하나님이여 오늘 원하오며 기도하오니 주께서 꿈을 품은 사람들이 다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분명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게 도와 주시옵시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순종하고 살아가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