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6월 1일
제 목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
성 구 : 엡 5:15-17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에도 여러 자식 중에 특별히 기뻐하는 자식이 있고 속상하게 하는 자식도 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성도 중에서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녀가 있는가하면 하나님이 속상해하고 슬퍼하고 답답해하는 그런 자식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의 기도가 상달되고 하나님의 영광에 의한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되고 우리의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성경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 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우리 하나님을 이와 같은 정성으로 사랑하면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자식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시고 특히 그를 기뻐하신 이유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없는 중에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특별히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사람들은 대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맡고 맛보고 만져보는
감각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고, 감각적으로 믿을 수 없으면 배척합니다. 인간은 자기가 경험한 것이나 이성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믿지만, 경험도 하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무조건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나이 85세가 되어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하루는 아브라함을 밤중에 불러내셔서 천막 밖에 나와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헤아리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한참동안 별들을 헤아리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아, 네 자손이 저 하늘의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믿었습니다. 자기 나이가 85세가 되고 자기 아내의 나이가 75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생각으로는 경험이나 이성을 통해서 볼 때 전혀 자녀를 가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너의 자녀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 하시며 아브라함을 기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달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사람으로 오셨다는 이 사실은 경험으로 우리가 알 수 없고 인간 이성으로 생각해서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배척합니다. 또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 죽으시고 장사된 지 3일만에 부활했다는 사실도 수많은 사람들이 감각적으로 경험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믿을 수 없다고 배척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죽었다가 부활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이를 믿는 사람을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셔서 이런 사람을 우리 하나님은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전적으로 믿어주는 사람을 아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크게 기쁨을 받은 것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절대로 자기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좋다고 하면 무조건 좋습니다. 하나님이 나쁘다고 하면 무조건 나쁩니다. 그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낳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이 모리아 산에 데리고 가서 각을 떠서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기가 막힌 말인 것입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하고 귀한 내 생명같은 아들을 번제를 드리라니, 이게 말이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옳습니다, 나쁩니다 그런 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자기가 주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 친자식이라도 하나님이 번제로 드리라고 하면 그것을 좋다고 인정하고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사흘 길을 걸어 그 아들을 모리아 산에 데리고 가서 그는 장작을 펴놓고 그 아들을 묶어서 장작 위에 놓고 칼을 들어 잡으려고 할 때 하나님의 천사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아들 이삭에게 손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 외아들이라도 아끼지 않고 내게 내놓았은즉 네가 나를 참으로 사랑하는 줄 아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 줄 압니까? 빌립보서 2장 5절로 11절을 보십시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여러분 이것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 복종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복종을 기뻐하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을 기뻐하시고 그를 지극히 높여준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로 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을 정죄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야웨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야웨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야웨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명한 것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자기 좋은 생각대로 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고 만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는 하나님을 절대로 복종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는 하나님의 은택을 기억하고 찬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은혜를 베풀어주어도 그 은혜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제가 소련이 붕괴되고 난 다음 소련부터 시작해서 여러 소련 위성국에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했는데 한 특이한 사항은, 소련이나 소련 위성국 사람들은 얼굴에 표정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길거리에 걸어다니는 사람들도 모두 다 얼굴이 석고와 같습니다. 희노애락의 감정을 조금도 얼굴에 표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소련이나 그 위성국 국민들에게 아무리 좋은 일을 해줘도 결코 감사하다는 말을 안 합니다. 참으로 충격을 받을만합니다. 돈을 줘도 으례히 받아서 집어넣어 버리고 감사하는 마음 하나도 안 가집니다. 옷을 사줘도 그냥 가져가 입어버리고, 감사하긴 뭘 감사해, 구두를 줘도 신으면서 감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랜 세월 동안 국가가 그들에게 자꾸 주기만 했기 때문에 받아먹었으니 그 결과로 받는 것은 정상적으로 생각합니다. 안 주는 것이 고약한 놈이지 주는 것은 아무 감사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시작해서 소련에 가도 위성국에 가면 아무 것도 안 줍니다. 줘봤자 감사 안 하는데 내가 뭐하러 줘? 안 줘도 감사 안 하고 줘도 감사 안 하는데 줄 필요 있겠느냐 그런 생각입니다.
여러분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많은 은택을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셨는데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하는데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주실 턱이 있어요?
시편 103편 1절로 5절에 “내 영혼아 야웨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웨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총을 주시는데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죠.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구원으로 보이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와 같이 행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몸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몸에 깊은 관심과 정성을 다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그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의 삶에 깊이 관심을 기울이고 성심껏 협조하고 도움을 베푸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10장 30절로 35절에 보면 강도 만난 사람의 비유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그는 자기의 피의 웃물에 드러누워서 구원해 줄 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데 그곳에 한 제사장이 지나갔었습니다. 제사장은 율법을 집행하고 율법을 보존하고 해석하는 율법주의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은 사람을 비난합니다. 잘못하면 법에 의해서 비난합니다. 사람을 꾸짖습니다. 잘못을 판단합니다. 잘못을 징벌하지 율법이 사람을 구원해 주는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잘하면 그뿐이죠. 정상적이죠. 율법이란 것은 사람이 잘못할 때 비난하고 꾸짖고 판단하고 징벌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제사장은 피투성이가 된 강도 만난 사람 곁에 와서 꾸짖고 판단하고 징벌하고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도울 수가 없습니다. 율법은 좋은 이웃이 되지 못합니다. 그 다음 잠시 후에 레위 사람이 내려왔습니다. 총총걸음으로 내려오다가 이 불한당 만나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보고 그대로 지나갔습니다. 레위 사람은 종교의식을 집행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의식을 집행하는 사람은 내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만 지키는 것입니다. 겉치레를 하는 것입니다.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 그냥 일하고 마음이 없으므로 그냥 적당히 하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의식주의자가 우리를 건져내지 못합니다. 이 레위인은 피투성이 된 사람을 그저 겉치레로 한번 들여다보고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 한번 머리라도 두들겨주고 속마음이 없기 때문에 도움을 베풀지 않고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도 좋은 이웃이 될 수 없습니다.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사람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곳을 여행하다가 이 사람을 보고 가까이 와서 말에서 내려와서 그를 동정해서 불쌍히 여겼습니다. 이래서 그는 포도주를 그의 상처에 붓고 붕대로 매고 그를 짐승에 태워 주막에 데리고 가서 그를 돌봐 주었습니다. 이는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이것이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가서는 사마리아인처럼 되어야 전도가 됩니다. 요새 우리는 북한 문제로 굉장히 골머리를 앓습니다. 최근에도 보니까 양식을 실은 배에 북한 군인들이 총칼을 들고 와서 양식을 빼앗아서 군용 트럭에 싣고서 군량미로 가져가 버렸습니다. 늘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한 그대로 북한에 우리가 쌀을 보내주면 북한의 전력을 증강시키는 것 밖에 안 된다고 염려한 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북한의 주민들이 강도 만나 피투성이가 되어 굶주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난하고 꾸짖고 판단하고 징벌하는 율법주의자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의식적으로 겉치레로 체면 세우기 위하여 적당히 도와주고 말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은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고 아픔을 함께 나누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이웃이요, 이러한 사람을 주님이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들은 율법주의적, 의식주의적으로 대하지 말고 정말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어찌하든지 북한의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여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모른 체하고 지나가면 절대로 안됩니다.
사람이 가장 비참한 것은 배고플 때인 것입니다. 어떠한 일에도 울지 않는 사람이 배가 고프면 웁니다. 나는 일정 시대에 우리가 살던 때를 기억합니다. 학교 갔다가 집에 들어와서 “엄마 있어?” 밭에 일하러 가고 없습니다. 부엌에 들어가서 살간을 보면 깨끗이 다 씻어서 정리해놓고 먹을 것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솥뚜껑을 열어보면 빈 솥입니다. 그러면 할 수 없이 배고파 밖에 나가서 목화가 되기 전에 달래가 되어 있습니다. 목화가 되기 전에 피어있는 달래를 잔뜩 먹고 우물가에 와서 물을 떠서 꿀꺽 꿀꺽 마시고 나면 허기증이 가셔집니다. 저는 그때를 기억합니다. 사람이 배고프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든 북한의 군량미가 되는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도움을 베풀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강도 만나 피투성이가 된 이웃을 사랑해줄 때 주님이 그러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이 사랑하는 자는 교회를 잘 받들어 섬기는 사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 죽기까지 충성한 그 아들의 눈에 보이는 지상의 몸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무엇보다도 몸된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것입니다. 교회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하나님의 눈동자에 손을 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가장 위험한 것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상처 입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그렇게 지극히 사랑하고 돌보시고 세워진 이 교회를 잘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을 받는 길인 것입니다.
잘 섬긴다는 것은 열심히 모이기를 폐하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처럼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열심으로 주님이 오시는 날이 가까워 올수록 교회에 모이기를 피하면 안됩니다. 주일날, 수요일날, 시간 있으면 새벽 기도, 철야 기도에 모이기를 열심히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과 시간과 몸을 드려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1절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주님께 십일조 꼭 드리고 특별한 헌물을 드려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을 때 헌물 드리고 또 내가 시간 내고 몸 드려서 열심으로 주를 섬기는, 그래서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는 사람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교에 힘써야 합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처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하나님의 최대 관심이 복음 증거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은 제 2의 관심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대 관심은 복음을 증거하여 영혼들을 구원해서 그리스도가 세운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참예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국내외 선교에 힘쓸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껏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교회를 쪼개서는 안됩니다. 교회를 사분오열시키면 그리스도의 몸을 상처 입힌 죄를 범하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합니다.
에베소서 4장 3절로 4절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어떠한 충돌이 있을지라도 몸 된 교회를 쪼개서는 안됩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하나님께 크게 범죄한 것은 교단이 갈라지고 교회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한국이 크게 복받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 하므로 큰 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열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역사를 파괴해서는 안됩니다. 성령을 슬프게 하는 일을 저질러서는 결코 축복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넷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고 종교적인 의식과 형식은 다 지키면서 밖에 나가서 살 때는 세속에 취해서 안 믿는 사람들보다 한 술 더 떠서 세상 죄를 짓고 살면 안됩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 교인들이 이처럼 많지만 한국의 현실 생활이 부정과 부패와 거짓과 세속으로 꽉 들어찬 것은 성도들이 교회에서 예수 믿지 밖에 나가서 예수의 향기를 전혀 날리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언제나 큰 사건이나 부정부패가 있으면 그곳에 걸려든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이 꼭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 교회의 거대한 병폐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양적으로 많지만 질적으로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취약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로 16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 나가서 어두움을 밝히는 빛으로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9절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나가서 거짓과 타협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는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거짓과 타협해서,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공사를 하면 부실공사를 하고 거짓공사를 해서 재료 빼먹고 돈 빼먹고 건물이 무너지게 하고 혹은 비가 새게 하고 갈라지게 하는,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 무슨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물건을 만들면 거짓 제품을 만들어서 얼마 쓰지 않고 다 못 쓰게 되게 하는 그러한 일을 하고, 혹은 거짓 식품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먹고 암을 유발하고 중대한 병에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거짓 식품을 만듭니다. 콩나물에 농약을 뿌려서 남이야 죽건 말건 빨리 성숙하게 해서 돈벌겠다는 행동, 거짓 상표 붙여가지고 가짜 제품 만들어서 범람하게 하는 것, 거짓 광고하여 인신매매 하는 것, 거짓 약품 만들어서 먹고 살려고 먹었다가 죽게 만드는, 이 세상의 어두움의 세력이 얼마나 거짓으로 꽉 들어찼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 사람은 얼마나 많이 속았던지 어느 곳에 가서 묻든지 뭘 살 때는 이거 진짜요? 그렇게 묻습니다. 그러므로 외국에 가다보면 한국 사람에게 물건 파는 사람은 꼭 말합니다. “이거 진짜입니다. 이거 진짜입니다” 그럽니다. 우리는 가짜, 거짓에 너무 속아왔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빛으로서 거짓을 밝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두움은 두려움입니다. 빛은 마음의 안심을 가져다줍니다. 캄캄하고 어두워도 두렵지 않아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어느 곳에 가나 사람들에게 평안과 안심을 갖다주는 이러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빛은 또한 생명의 원천입니다. 여러분 모든 식물은 빛 공장입니다. 모든 나무와 풀은 식물의 엽록체가 빛에너지를 받아서 뿌리에서 흡수한 수분과 공기 중에서 흡수한 탄산가스로 탄수화물을 생산해서 여러 가지 우리가 먹는 양식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잡수시는 모든 식물과 동물은 다 빛에너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실제로 빛을 먹고 삽니다. 쌀도 빛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소고기를 먹어도 그 풀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빛을 먹고 삽니다. 하나님이 첫째 날에 빛을 만든 이유를 거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빛이 만물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처럼 우리는 생명의 원천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지 말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도와주고 살려주고 생명을 주는 이러한 사람들이 되어야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우리보고 소금이 되라고 말하는데 소금은 맛을 내고 부패를 막습니다. 소금이 맛의 조화를 가져오듯이 우리는 대인관계에서 화평과 조화를 가져와야 됩니다. 아무리 맛이 없어도 소금 좀 치면 아주 맛이 생깁니다. 우리가 사람들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들어가면 조화를 가져오고 화평을 가져오고 기쁨을 가져오는 그런 사람이 돼야지, 예수 믿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마다 불안을 가져오고 싸움을 붙이고 쪼개놓고 이렇게 하는 건 소금이 아닙니다. 그는 쓸개가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50절에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이 미각의 즐거움을 가져오듯 함께 살기에 평안하고 즐거움을 가져와야 되는 것입니다. 소금이 있으면 우리가 미각에 자극을 얻어 음식도 잘 먹잖아요. 함께 살기에 편안하고 즐거움을 가져오는 그런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소금이 부패를 막듯이 돈, 권력, 힘이 부패해 가는 것을 우리는 가는 곳마다 막아야 합니다. 정의가 서게 하고, 진실이 서게 하고, 충성함이 있게 해야 합니다. 세속에서 거룩함을 가져오고, 탐욕을 막고, 용서와 사랑을, 온유와 겸손을 가져오는 이런 우리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보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에게 복을 내려 만성천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손을 펴서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0절에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해 보라”고 했는데 오늘 이 말씀대로 우리가 실천하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되어서 여러분이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우리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게 되실 것입니다.

- 기도 -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는 입술로 주여 주여 하고 종교적인 의식과 행사는 집행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지 못 하고 지은 죄가 너무나 많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다윗처럼 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즐거워하는 이러한 성도들이 다 되게 도와주옵소서.
오 하나님 아버지여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신자 되지 말게 하옵소서.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의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온전히 충성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교회를 사랑하고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신유기도 -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주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언약 맺은 사랑받는 백성이 된 것을 감사 드립니다. 우리 아버지 우리가 옷을 찢지 않고 마음을 찢으며 죄를 회개하고 주 앞에 나올 수 있게 해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간구하오니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해주시고 우리를 더욱 회개시켜 주시옵시고 더욱 헌신하게 도와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 충만 충만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이기고 죄악을 이기고 세속을 이기고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우리가 빛이 되고 소금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길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야웨 하나님이여 몸이 병든 자를 고쳐주시옵소서. 병든 몸 가지고 주님을 섬길 수도 없고 가족을 섬길 수도 없고 이웃을 섬길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간구하오니 주의 피흘리신 은총으로 모든 육체의 병을 고쳐주시옵소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주의 치료의 능력이 나타나서 모두다 건강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없는 중에 믿습니다. 하나님이여 권능을 베풀어주셔서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병든 몸을 그대로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야웨 하나님의 기적이 모든 사람에게 채워주시옵소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하신 하나님 그 무거운 짐을 주님께 다 가지고 나왔습니다. 우리 주님이여 맡아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을 감사하옵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