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6월15일
제목: 사마리아 여인의 절망과 희망
성구: 요4:1-26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사마리아 여인의 절망과 희망"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사마리아로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한 영혼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주님은 강행군을 하셔서 정오에 사마리아의 수가성에 도착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수가성 우물가에 앉아서 어떤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개 정오에 해가 쨍쨍 비취는 때는 물을 길러 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침에 물을 길러 오고 저녁에 물 길러 오지 정오에 물 길러 오는 사람은 없는데 예수님은 누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정오에 한 여인이 물동이를 몇 개 걸머지고 물을 길러 왔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그 영혼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께서는 갈급하여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우물가에 도착하자마자 그 옆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본체도
아니하고 그대로 우물에 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여자여 내게 물을 좀 주십시요, 여자가 예수님을 쳐다보고 난 다음 투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 남자가 아니요? 유대인은 사마리아 사람을 개로 취급하는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당신은 당신에게 물을 달라는 내가 누군지 알았더라면 내게 오히려 물을 달라고 구했을 것이요. 내가 당신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라. 그러자 그 여자가 깜짝 놀라서 아니 당신은 물 기를 두레박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에서 물을 길러 내게 생수를 주시겠다는 것입니까? 이 우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판 우물이요 그와 그의 짐승들이 다 이곳에서 마셨는데 당신은 야곱보다 크니이까? 그 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그 속에서 영원히 솟아나는 생수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싱긋이 웃으면서 예수님을 보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생수를 내게 주어서 나로 목마르지 않고 이곳에 다시 물길으러 오지 않게 하옵소서. 네 남편을 데리고 오라. 당신은 과
거에 남편 다섯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지금 사는 사람은 남편도 아니요 오다가다 만나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자 그 여자가 깜짝 놀라서 이제 보니 당신은 선지자이군요. 우리 조상들은 이 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당신네들은 예루살렘에 예배하는 처소가 있다고 하는데요. 예수님이 아니라 이곳도 말고 예루살렘도 말고 이제 하나님을 예배할 때가 오나니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느니라. 이 사마리아 여인이 말하기를 나는 그런 것은 몰라요. 메시아가 오면 이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로 당신하고 이야기하는 그 분이 메시아니라. 이 여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눈 앞에서 살아 있는 메시아를
보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영혼을 밝혀 주었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인 것을 알자마자 그 온 몸 전체가 녹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물동이를 던져두고 사마리아 동네로 들어가서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는 이 사마리아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분과 하고 싶어합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제가 볼 때는 상당히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규수요, 지식도 있고 학문도 있고 미모의 여성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여자들은 사회 진출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오직 그들은 결혼해서 자기 인생을 펼쳐갈 뿐이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산업 모든 면에 추호도 공헌을 할 수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의 꿈은 훌륭한 남편을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자기의 인생의 희망을 달성하고 싶은 것이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이래서 이 여자가 결혼을 했는데 우리는 아마 상상 속에서 이 여자가 다섯 번 결혼하고 다섯 번 이혼한 그 사연을 한 번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제 생각으로는 그 여자가 사업가하고 결혼을 했다고 추정을 해 보는 것입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야! 사업가하고 결혼해서 신바람나게 사업을 해 보자 이 공장도 세
우고 저 공장도 세우고 이곳에서 장사도 하고 저곳에서 장사해서 돈을 많이 벌면 호의호식을 하게 되고 좋은 집을 짓고 살게 되고 자녀들도 잘 기르고 교육도 잘 시킬 것이요, 또 남편과 함께 자녀들과 해외 여행도 다니며 정말 호사스러운 삶을 살 것이라는 그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그는 사업가를 찾아서 결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사업가와 결혼해서 얼마 살지 않아서 하나둘 그의 꿈이 낱낱이 깨어지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업을 하려고 하니까 남편을 보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나가면 사업상 필요하다고 저녁 늦게 들어 올 때도 많고 어떤 때는 사업상 출장하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외국에 가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만나 볼 수가 없습니다. 그 뿐 아니라 언제나 돈이 없어서 절절 기면서 자기보고 돈을 빌려 오라고 하지요. 빚내 오라고 하지요. 빚에 쪼달 리고 이자에 쪼달립니다. 그리고 생산한 물건이 판매가 잘 될까 걱정하고 또 판매가 안 될까 걱정하고 또 재고가 누적되면 이것을 어떻게 할까 걱정하고 하루도 마음이 편안할 날이 없습니다. 가장 괴로운 것은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또 잘못하면 부도가 나서 있는 것 다 날아가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루도 편하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남편하고 늘 말다툼을 하게 되고 나중에는 애정이 사라졌습니다. 이 여자가 생각하기에는 사업가하고 살아서는 앞날에 아무 희망도 없다. 꿈을 펼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사업가하고 이혼해 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여자는 나는 이제 사업가하고는 결혼해서 살지 않겠다. 다시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신바람나게 정치가하고 한 번 결혼을 해 봐야 되겠다. 그래서 두 번째 이 여자가 결혼한 사람은 정치가라고 나는 생각이 됩니다. 그의 생각에는 정치가하고 결혼하면 정치가는 만인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또 정치적으로 권력도 있으므로 권력에 돈도 따르고 권력이 있고 돈이 있고 신바람 나게 살 수가 있다. 그리고 또 얼마나 자존심이 고양되지 않느냐! 모든 사람들마다 다 굉장한 집안이다. 굉장한 사람하고 결혼을 했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정치가하고 사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겠다고 생각을 해서 그는 정치가하고 결
혼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다고 보니까 정말 정치가하고 결혼한 것이 큰 후회가 되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왜, 정치를 하자니까 돈이 필요한데 돈을 모으자니까 별 도리 없이 사업가하고 연락을 해야 되고, 그리고 남의 눈을 속이고 부정적으로 돈을 모으게 되고 부정적으로 돈을 모으게 되니까 언제나 관에 들킬까 싶어 가슴이 덜컥거렸습니다. 그리고 정치인들과 함께 하고 보니까 신사적인 면을 가지려고 하다 보니 그들은 끊임없이 서로 모략하고 중상하고 헐뜯고 남을 죽이려고 하는 그런 세계 속에서 인간의 정에 메마르고 환멸을 느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정치가들은 또 권력의 해바리기 노릇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느 정당에 속해 있던지 정당의 지도자의 얼굴만 쳐다보고 해바라기처럼 따라다녀야 합니다. 정치적인 권력을 얻어서도 언제나 해바라기 인생이요 언제 또 권력을 놓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늘 찾아가서 사람들에게 아부해야 되고 얼마나
절을 했던지 허리가 구부러질 정도가 되었었습니다. 가만보니까 정치가의 아내가 된다는 만인의 종노릇을 하고 사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점점 세월이 흘러가니까 그 장미빛 꿈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정치가의 아내로서의 아름다운 꿈을 펼칠 줄 알았는데 정치의 세계 속에 오직 환멸을 느끼고 말았습니다. 남편과 다정하게 이야기할
시간도 없고 남편은 가정을 하숙생활로써 생각하고 가정에 와서 아내와 자녀들과 식사도 같이하지 못할 정도로 바빴습니다. 이래서 그 때문에 종종 남편하고 말다툼도 하게 되고 그 결과로 애정은 사라지고 이 여자는 생각하기를 결국 정치가하고 결혼해 받자 아무 목적도 없고 꿈도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만 그 남자하고 이혼을 하고 말았던 것
입니다.
이렇게 마음대로 이혼을 하고 재혼하는 것을 보게 될 때 이 여자가 얼마나 자기 집안 가문이 힘이 쎄고 또 훌륭한 가문이고 인물이 기가 막히게 잘났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되나요? 이래서 이 여자는 또 자기의 꿈을 피우기 위해서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 세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생각하기를 이제는 사업가도 싫다, 정치가도 싫다, 학자하고 결혼을 해야 되겠다. 학자는 사람이 신사적이고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를 잘 돌보아 줄 것이다. 그리고 학자들은 이상주의자이기 때문에 현실에 도취되지 않고 이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으로서 대화도 잘하게 되고 정말 애정도 깊이 나눌 수 있는 멋있는 사람이요, 멋있는 직업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학자는 인생을 심오하게 바라보기 때문에 서로 깊은 인생의 철학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삶을 이야기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해서 그는 학자하고 결혼을 택했는데 결혼의 단꿈이 사라지기도 전에 학자를 보니까 언제나 자기 서재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아요. 책하고 씨름을 합니다. 아침 먹으라고 해도 나오지 않아서 끌고 나와야 아침을 먹을 수 있습니다. 목욕조차 안하니까 아예 세수대야에 물을 가지고
덮어씌워야 목욕을 하지, 그렇지 아니하면 늘 책하고 붙어삽니다.
나는 우리 교회에 자매님 한 분 가운데 대학 교수하고 사는 분인데 그분은 생화학자였습니다. 내게 울면서 신앙 상담을 왔습니다. 나는 이 사람하고 살아야 됩니까? 안 살아야 됩니까? 왜냐? 집에 와서 날 보고 몰모트 쥐를 기르라고 하는데, 쥐를 잔득 기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쥐에게 공양을 해야 하는 쥐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데 이 분이 학교 갔다 오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내가 아니고 여보! 쥐 어떻게 되었어. 그럽니다. 이러니 내가 쥐보다 못한 인생이 살아서 뭐합니까? 이 사람은 항상 책하고만 살고 쥐하고만 살고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시녀요, 쥐어머니로서 있습니다. 너무 원통하고 분통해서 하루는 쥐를 다 치워 버렸습니
다. 그러니까 하루는 오더니만 나를 간절히 찾아요 여보, 여보, 이제야 나의 중요성을 알았는가 보다 하고 기쁘게 뛰어가니까 쥐를 어떻게 했어? 그 말에 자기의 꿈은 산산조
각으로 깨어졌다. 자기는 쥐를 위해서 존재하지 남편은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남편하고 못살겠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내가 들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모두 다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서 사는데 학자들은 학문에 치중하고 학문에 열정을 가지기 때문에 좀처럼 정신을 다른 데에 팔 수가 없지요. 그리고 학문을 한 사람은 대개 가난합니다. 생활이 어렵지요. 그리고 학문하는 사람은 그 깊은 학문의 세계 속에 살기 때문에 대화가 안됩니다. 이야기를 해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요. 이러므로 그는 마음에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야 이 꽁생원 같은 학자하고 못 살겠다. 이것은 정말 가슴이 답답하고 숨막힐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학자에게 내 꿈을 펼칠 수가 없다. 이래서 학자하고 이혼을 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네 번째 그가 생각하기를 이제는 이 세상 다 떠나서 어부하고 결혼하여 살겠다. 어부하고 결혼해서는 얼마나 좋겠느냐? 내 귀를 소라 껍질 바다 소리를 그리워하오. 이렇게 소녀 시절에 읽은 시도 있는데 이와 같이 어부하고 같이 결혼해서 살면 얼마나 좋겠느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바다를 산책하며 오존을 가슴 깊이 마셔들이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 속에 낭만과 기쁨을 느낄 수가 있지 않겠느냐. 또 우리 남편이 생선을 잡아오면 신선하고 펄펄 살아 있는 생선을 먹을 수 있느니 이 또한 얼만 즐거운 것인가? 그리고 해변을 함께 손잡고 거닐면서 황혼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 이것이 정말 좋은 생활일 것이다. 그래서 어부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어부하고 결혼을 하고 얼마 있지 않아 보니까 이것은 이상과는 틀려요. 자기 남편이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갔는데 바람이 불고 일기가 나쁘면 배가 파선할까 싶어서 돌아올 때까지 마음이 졸이고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항상 하늘과 구름을 쳐다보고 사는 삶을 살게 되고 그리고 남편이 고기를 잡아오면 신선한 고기를 먹을 줄 알았는데 신선한 고기에 손을 데니까 남편이 벼락같은 소리를 합니다. 야 이 신선한 고기는 팔아서 돈을 만들어야 되지. 이제 물이 한물 가고 썩어서 눈이 불투명한 생선은 이것은 집에 가서 먹어. 이러니 신선한 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썩은 고기 밖에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고기잡이가 잘 되면 웃고 고기잡이가 잘못 되면 우는 그러한 삶이요, 평안히 없고 어디에 황혼에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갑니까? 남편이라고 돌아오는 사람의 온 몸에는 고기 비늘 냄새 때문에 도저히 코를 쥐지 않고는 같이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하기를 어부하고 못 살겠다. 이것은 도저히 상상과는 너무 어긋난다. 이래서 어부하고도 또 그만 두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래서 다섯 번째 그는 이제 마지막 결심을 하고 이제는 농부하고 결혼을 해 보고 이래서 안되면 인생을 집어치워 버려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농부야말로 시골에서 종달새 소리를 듣고 잠을 깨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닭을 키워 키운 닭의 계란을 먹을 수 있지 않느냐! 익어 가는 곡식 속에서 삶의 의미를 묵상해 볼 수 있고 도시의 공해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느냐! 그리고 염려 근심 도시의 삶을 다 털어 버리고 이상적인 정원의 삶을 살 수 있으니 나는 농부와 결혼을 하겠다. 그래서 그는 농부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얼마 안 살아 보니까 농부의 생활에는 일년 내내 고생입니다. 겨울 동안에는 농사 짓기 위한 준비를 하고 봄이 되면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나가서 김 메고 곡식 심고 온갖 수고하고 여름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가을에 추수하는 것도 쉽지 않고 괴롭습니다. 그가 남은 것은 농약 중독으로 말미암아 골치가 아프고 몸에 여러 가지 병든 것 밖에 없습니다. 또 거기에다 보태어서 그는 농부의 아내가 되고 난 다음부터 거울을 들여다보기 싫습니다. 얼마나 얼굴이 거칠어졌던지 얼굴에 화장도 하고 얼굴을 귀하게 가꾼 지가 언젠지 헤아려 볼 수가 없습니다. 몸은 새까맣게 타고 피부는 거칠어지고 벌써 늙은이의 형상이 나타났었습니다. 그는 환멸했습니다. 그는 농부의 생활에 종달새 소리를 듣고 일어나고 그리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피어난 꽃을 보고 아름다운 과일을 먹고 낭만적인 삶을 살겠다는 것이 실제 돌아보니 농부 생활보다 힘들고 거칠고 고달픈 삶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인생의 꿈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 여인은 다 포기하고 농부하고도 이혼하고 이제는 여섯 번째 오다가다 만난 사람과 삽니다. 그는 꿈도 없고 이상도 없고 모든 것을 다 버렸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사람이 만나기 싫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아침에 많은 사람이 물 길러 오는데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 저녁에 우물가에 많은 사람이 오는데 그 사람들과 대화를 피하기 위해서 아무도 안 오는 뜨거운 정오에 그는 수아성 우물가에 가서 물을 길러 온 것입니다. 그는 오직 마음속에 공허 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삶의 의미와 가치도 다 잃어 버렸습니다. 이상과 꿈은 다 산산조각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럴 때 그가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사정을 보시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말라진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남편을 바꾸고 직업을 바꾸고 환경을 바꾸면 새로워지고 이상이 이루어지고 꿈이 찬란해질줄 알지만은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말라진다. 첫째 남편의 물을 마셔도 목말라지고 둘째 남편의 물을 마셔도 목말라지고 셋째, 넷째, 다섯 번째 우물물을 바꾸어 마셔도 역시 목말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이상이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에게 사람이 말하는 그 희망과 꿈이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남의 밭에 콩이 굵어 보이는 것처럼 내가 또 그 사람의 위치에 있으면 또 다시 다른 사람의 밭이 콩이 굵어 보이는 것입니다. 남의 집 자녀들이 다 훌륭하게 보이고 남의 집 남편이나 아내가 더 훌륭하게 보이고 남의 직업이 더 훌륭하게 보이고 남의 삶이 더 훌륭하게 보이지만 인생에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분 참된 이상과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배반하고 타락한 이후로 인간의 삶에는 언제나 죄악과 저주와 절망과 고통과 죽음이 끝임없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인간의 진실된 꿈과 행복이라는 것은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말라지고 만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자 마자 그는 순식간에 그의 인생의 모든 좌절과 고통과 괴로움이 눈 녹듯이 살아 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는 다섯 번이나 결혼하면서 그가 가졌던 꿈과 환상이 다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지치고 피곤하고 고통스러웠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자 마자 그리스도가 그 영혼 속에 들어오자 위대한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예수님은 철학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종교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의식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어떤 지식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거대한 변화의 능력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서 우리를 값주고 산 예수님은 의의 능력을 가지고 들어오며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 충만의 능력을 가지고 들어오며 기쁨과 치료를 가지고 들어오며 주님은 형통과 축복을 가지고 들어오며 영생 복락과 천국의 영광을 가지고 여러분 속에 들어와서 여러분을 완전히 변화시켜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순식간에 그는 변화를 받았습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그것을 순식간에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사마리아 여인은 그 가슴속에 그렇게도 갈급하게 찾던 의와 평강과 희락을 순식간에 얻게 된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순식간에 얻게 된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물댄 동산과 같이 변화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일어나서 물동이를 던져 두고 시내로 들어가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위대한 변화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인간의 수양과 도덕으로 죄 짓지 말라 의롭게 살아라 거룩하게 살아라 참되게 살아라 올바르게 살아라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아무리 교육을 하고 가르쳐도 교육하고 가르치기 때문에 훌륭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진리를 실천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의를 몰라서 불의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거짓을 몰라서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의롭게 살아야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참되게 살아야 될 줄을 알고 있습니다. 충성스럽게 살아야 되고 거룩하게 살아야 되고 탐욕을 버리고 살아야 되고 용서와 사랑을 하고 온유와 겸손을 하고 살아야 될 줄 알고 있습니만 그것을 시행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아무리 수양과 도덕을 닦아도 이곳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될 때 그것을 시행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그 힘이 들어와서 우리를 붙잡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이 명령하지 않아도 불의보다도 의를 선택하고 거짓보다도 참을 선택하고 배반보다도 충성을 선택하고 세속보다도 거룩함을 선택하고 탐욕보다도 평상심을 선택하고 미움보다도 사랑을 원수를 갚는 것보다도 용서를 오만보다는 겸손을 그리고 완악함 보다는 마음속에 순종함을 스스로 시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위대한 점인 것입니다. 사람이 이 능력으로 거듭나게 되면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떠나서 인간이 어떠한 이상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뛴다고 하더라고 결국에는 그곳에 가보면 실망밖에 없는 것입니다.
허무와 무의미와 공허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오직 참 삶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속에 들어올 때 나는 모든 인생의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과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의 부조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역시 배고프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죄 짓고 외로움이 있습니다만 그것을 능히 극복하고 이겨 나갈 수 있는 끊임없는 생명수가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인위적인 생수를 마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속에서 생수가 강같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넘쳐 나와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오늘 우리 교회에 모인 성도들과 인공 위성을 통해서 예배 드리는 모든 교회에서 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이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이 예수를 만난 것처럼 우리 중심으로 예수를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회에그냥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과 형식적으로 교회오는 것이 아니고 참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거대한 성령의 변화의 능력이 우리 속에 샘솟듯이 넘쳐 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그리하면 너의 배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나리라는 이 역사가 우리 모든 성도 속에 일어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