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6월 22일
제목: 소망의 하나님
성구: 열왕기하7:1-8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소망의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구약의 시절 엘리사 때에 아람왕 벤하닷이 요람왕이 다스리던 북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둘러싸매 사마리아의 성내에 기근이 극에 달하여 자기 자식을 잡아서 삶아 먹는 비극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엘리사는 왕의 사자에게 예언하기를 내일 이맘 때면 성문에 밀가루와 보리와 넘쳐나서 싼 값에 매매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왕의 한 장관이 그 말을 듣고 비웃어 말하되 하나님께서 하늘에 창문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엘리사는 네가 눈으로 보나 먹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단단히 잠가 놓은 성문밖에 네 사람의 온 전신이 문둥병에 걸
려서 문드러진 환자 네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성안에 들어간즉 성이 굶주리니 그곳에서 죽을 것이요, 우리가 여기 앉아 있으면 이 자리에서
굶주려 죽을 것인즉, 그러므로 음식이 있고 입을 것이 있는 아람 군대에게로 향해서 우리 투항하자. 가서 살려 주면 살고 죽이면 죽자. 그래서 그들은 일어나서 희망을 향하여 행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네 사람이 행진을 하기 시작하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걸어가매 아람 군대가 큰 말과 병거와 군대의 외치는 소리를 듣게 함으로 그들이 황혼에 놀라서 저녁을 지어먹으려고 하다가 그만두고 다 혼비백산하여 맨발 벗고 그대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을 치고 말2았던 것입니다.
문둥이들이 진에 도착해 보니 군인들은 온데 간데 없고 어지러운 신발과 의복만 흐트러져 있고 천막에 들어가니 은과 금과 먹을 것이 잔뜩 있습니다. 잔뜩 먹고 숨기고 감추고 그 다음에 이 사실을 성에 보고하매 성에서 와서 조사를 해 보니 사실이 그런지라 성문을 열고 온 시민이 다 나와서 아람 진을 약탈하매 얼마나 밀가루와 보리가 넘쳐 났던지 성문에서 헐값으로 매매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장관은 군중들을 통제하다가 밟혀서 보기는 보아도 먹지는 못하고 죽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이. 이스라엘의 군대도 아니요, 장관도 아니요, 왕도 아니요, 재벌가도 아니요, 학자도 아니었습니다.
네 사람의 문둥병 환자였었습니다. 왜 네 사람의 문둥병 환자를 주님은 사용하셨을까요? 장관이나 군대나 재벌이나 학자나 모두 다 절망하고 희망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이 네 사람의 문둥병 환자는 비록 문등병이 걸리고 온 전신이 문드러지고 절망적인 존재였으나 그들은 희망을 향해서 전진해 나갔습니다. 절망을 향해서 걸어가지 않고 좌절하고 절망하여 주저앉아 있지 아니하고 실과 같은 희망이라도 있는 곳을 향해서 희망을 찾아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사람들과 함께 동행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좌절하거나 절망하거나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저버립니다.
그러나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갖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을 가지고 희망을 향해서 단결하여 나아가는 개인이나 집단이나 국가는 주께서 함께 행진하여 주시고 적을 물리치고 위대한 승리와 복을 받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희망을 향해 뛰는 경주인 것입니다. 희망이 우리의 생애 속에 성취되어 살기 위해서는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나의 삶에 대한 뜻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우리 인생을 다 알고 계시고 우리 머리털 수도 헤아리고 계십니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지으시고 그 가는 길을 정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류 한사람 한사람이 태어나서 걸어갈 길을 다 예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정해 놓은 그 길을 선택해서 걸어가야 희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길을 떠나 내 뜻대로 삶의 길을 개척하려고 할 때 고통과 좌절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서 에덴을 예비하시고 아담을 위해서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는 행복한 삶을 예비해 놓았습니다. 아담을 향한 뜻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며 사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길을 택하지 아니하고 마귀의 꾀임을 받아서 아담은 자기의 탐욕의 길을 택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어서 자주 독립하여 살겠다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간 그 길은 어둡고 깜깜한 절망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은 나이 75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나가자 그는 거대한 희망의 한보를 내디뎠으며 그 앞날은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모세도 한가지입니다. 81살에 하나님을 만나고 그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고 430년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나갔으매 그는 많은 시련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만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희망의 길을 열어 주고 그의 삶은 희망을 따라 살아가는 위대한 축복의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위해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일생을 살아갈 모든 계획과 뜻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예비한 길이 어느 길인지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날 위해서 예비해 놓은 그 길을 따라 가야만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희망차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곳에는 오직 암흑과 절망밖에는 없습니다.
북한을 보십시오, 김정일과 그 일당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의 탐욕에 서서 우상천지를 만들어 놓았을 때 하나님을 거역하고 나가는 그들에게는 암흑과 절망밖에 없습니다. 온 땅에 굶주림으로 꽉 들어차고 죽음이 온 북한 땅에 꽉 들어차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희망을 잃어버린 곳입니다. 왜냐? 하나님이 정하신 뜻을 저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뜻은 모두 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며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살기를 원하는 것인데, 그 아들 예수를 배반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인본주의로 서고 하나님 없는 삶을 살게 될 때 그는 희망의 길을 저버린 것입니다. 절망의 길을 선택해서 나간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희망의 고지를 향해 전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그 뜻을 우리가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열심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해서 정직하게 그 길을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정직한 길을 가노라면 평탄한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불의와 부정을 따라가게 되면 가시밭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중대한 잘못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정과 부패를 해야 잘 살 수 있고 희망에 도달할 수 있다고 잘못된 마귀의 꾀임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꾄 사단의 음성에 오늘날도 사람은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직하게 살면 손해가 난다. 부정 부패로 살면 잘 살수 있다. 그렇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정과 부패의 길은 험한 가시밭길입니다. 정직한 길만이 오직 우리의 살에 평탄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한보 사태를 보십시요. 부정과 부패를 통해서 자기의 꿈을 실현하려고 하다가 자기의 일생을 망치고 수많은 사람의 삶을 파탄에 처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 부정적인 길이 바로 파탄의 길이요, 정직의 길이 평단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가 희망을 달성하고 나갈 때 정직의 길을 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실하여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불성실하면 모든 사람에게 불신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말에 용두사미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작은 크게 했다가 끝은 희미하게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하든 한번 손을 대었으면 끝까지 그 일을 전력을 기울여 잘 성취하는 이것이 성실인 것입니다.
우리가 정치를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성실하게 국민을 위해서 일해야 될 것이요, 사리사욕을 쫓아 용두사미로 나아가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물건을 생산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으로 돌보아서 인류 상품을 만들어서 내어놓으면 어느 곳에서나 팔립니다. 그러나 우리 오늘날 한국의 생산품처럼 불성실하게 겉은 번지르하면서 속은 잘못 만들어 놓아서 사람이 쓰다가 불평과 원망과 탄식을 하는 그러한 일이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성실보다 더 좋은 재산이 없습니다. 사람의 인품도 그래요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 처음부터 끝까지 성실하게 책임을 지는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추앙을 받고 존경을 받습니다만 불성실한 인간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아니하고 나중에 버림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근면해야 성공하는 것입니다. 게으르고야 어떻게 잘 살 수 있습니까? 이솝 우화에도 보면 베짱이는 한 여름 내내 놀다가 겨울이 되니 그때에 먹을 것이 없어 개미의 집에 가서 음식을 동냥하다가 얼어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여름 땀을 흘려 가며 열심히 양식을 모은 개미는 겨울에 추위가 와도 그들은 따뜻한 굴에서 충분한 양식을 갖고 살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게으르고서야 절대로 잘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열심히 부지런히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충성스러워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조그마한 이해 상관으로 쉽게 배반하고 쉽게 도망을 치는 이러한 사람은 아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한 가지 삶에 소명을 받았으면 거기에 충성을 해야 합니다. 자기의 속한 집단에 끝까지 충성할 줄 알아야 됩니다. 의리의 사람이 되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추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근면하며 충성스러운 이러한 인격적인 요소가 없이는 우리가 무엇을 해도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우연히 성공이 굴러들어 오지 않습니다. 축복도 우연히 굴러들어 오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애 속에 눈에 안 보이는 이런 인격적인 품성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자원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자원 없이 아무 일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있어서 우리는 정직하고 성실하고 근면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또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학교에 가서 수학 공식이나 머리에 몇 개 많이 넣고 영어 단어나 몇 개 많이 넣고 그리고 꽤나 부리고 사기나 치고 적당히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중대한 오해인 것입니다. 이러한 악을 행하는 사람이 순식간에 얼마간은 흥할 지 몰라도 나중에 파탄의 구렁텅이는 헤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그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전 인격을 다해서 정직하고 성실하며 근면하고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일로 매진하면 처음 당분간 신속한 성과가 없다고 하더라도 점점 태양이 떠올라 중천에 오르는 것처럼 그들은 종국적으로 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희망에 이르기 위해서는 신념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희망으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시련이 있습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희망을 향해서 가는 곳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희망이 아닌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희망의 땅에 들어갈 문전에 도달했습니다. 한 발자국만 들어서면 바로 희망의 땅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때 가데스바네아에서 12정탐꾼을 보내서 40주 40야를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오게 했는데 그 중에 10명은 절망의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희망으로 가는 곳에는 반드시 장애물이 있는데 그 장애물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극복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절망적인 소식을 가져 왔습니다. 우리가 가 본 땅은 주민을 삼키는 땅, 산은 높고 골은 깊더라 성벽은 하늘을 찌를 것 같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낙 자손 대장부라 우리가 스스로 비교해 보아도 우리는 메뚜기 같더라 우리 처자들이 사로잡힐 것이요 우리는 결코 그 땅을 점령할 수 없다. 그들은 절망의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절망의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마음이 물 부은 듯이 연약해 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 통곡하고 울면서 우리 장관을 세워 다시 애굽의 종살이로 돌아가자고 말한 것입니다. 오직 희망에 대한 말을 한 것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말을 하기를 그 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 그 땅의 주인은 떠났고 우리가 들어가면 점령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들어가자.
그러나 희망의 말을 하는 사람들을 돌을 들어 쳐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이 영광의 구름 가운데에 나타나셔서 절망적인 보고를 한 10사람의 대표를 나오라고 하고 그 자리에서 즉살시켰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저버린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로 회진하여 40년 동안 그들은 다 광야에서 소멸될 때까지 주님이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가졌던 여호수아와 갈렙만 데리고 그 후손을 이끌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망하는 사람과 같이하지 않습니다. 희망을 져 버린 사람,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말을 하는 사람과는 하나님이 같이하지 않습니다. 희망을 향해서 줄기차게 달려가는 사람과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희망을 향해서 나아갈 때는 반드시 그곳에 많은 가시밭 엉겅퀴가 납니다. 고난과 시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용감하고 담대하게 개척해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서 보면 여러분 덴마크는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연합군과 전쟁을 해서 패했습니다. 남부의 기름진 슈레스비아와 홀쉬타인 두 주를 빼앗겨 버리고 덴마크는 북극의 광막한 유틀란드 반도밖에 없었습니다. 유틀란드 반도는 언제나 얼어붙어 있고 진눈개비가 내리고 늪지가 있고 습지가 있고 나무는 나지 아니하고 버린 땅입니다. 이젠 덴마크가 살수가 없습니다. 전쟁에 져서 막대한 경비를 썼고 또 배상금도 지불해야 되고 전쟁에 돌아온 청년들은 일거리가 없어 대낮에도 술주정뱅이가 되어 있고 아낙네들은 외국인들에게 몸을 팔아야 먹고사는 그 비극적인 상황에 있었습니다. 덴마크는 다시 살아 일어날 수 없다는 그런 처절한 절망에 처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1864년도였는데 이 일대 위기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자고 외친 두 분이 있었습니다. 그 한 분이 그룬트비 목사입니다. 그는 역경에서 도전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자 나라를 사랑하자 자연을 사랑하자는 운동을 일으켜 처처에 농민 학교를 설립하고 성경을 가지고서 사람들에게 정신 무장을 시키고 희망을 갖도록 정신에 부흥을 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말씀을 통하여 그 처절한 절망 가운데 희망을 불어넣어 주시고 그리고 공병 대령으로 제대한 달 가스 대령은 밖에서 잃은 국토 안에서 찾자는 이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꿈과 희망을 부여하고 동토 늪지대 북풍 부는 유틀란드를 개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곳에 나무를 심어야 곡식을 심을 수 있으니까. 아무리 나무를 심어도 죽고 심어도 죽습니다. 그래서 알프스 산 나무를 개간하고 개간해서 결국에는 그 동토에서 살아 일어날 수 있는 전나무를 개발했습니다. 이 전나무를 해변가에 심고 모든 밭에 방풍림으로 심었습니다. 그러자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자 서리가 내리는 것이 중지됐습니다. 어름이 얼지 않았습니다. 바람을 막았습니다. 그 땅의 늪에서 물을 퍼 헤치고 그곳을 옥토로 개간해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 결과로 백년 이내에 덴마크는 세계에서 제일 가는 낙농국이 되었으며 또한 공업국이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수입이 많은 잘 사는 나라로 변화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희망을 향해서 줄기차게 나가자는 그룬트비 목사와 달가스 대령은 그들 앞에 수많은 고난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자원을 활용하여 고난을 극복하고 위대한 승리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 6절을 보면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이와 같이 여러분 우리는 신념을 가지고 역경을 극복하고 나아가야 희망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희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내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후사를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나 가나안 땅을 방황하면서 25년 동안 하나님께서 언약을 주지 않았었습니다. 그는 75세에 약속을 받았는데 100세가 되어서 비로소 하나님께서 허락하사 그들 청춘을 새롭게 하셔서 사라에게서 아들을 낳으니 그가 이삭입니다. 그는 25년 동안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언약을 주셨다고 해서 바로 내일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면 안됩니다. 모든 성공은 오래 참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오래 참아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에 있는 일본의 역사를 제가 잠시 살펴보고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BC 16세기와 17세기 사이에 일어난 것인데 일본의 전국 시대입니다. 일본이 여러 제국으로 나누어졌다가 일본을 통일하는 통일 일본 시대에 세 사람의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 장군이 오다 노부나가 장군, 도요도미 히데요시 장군, 도꾸가와 이에야스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이 세 사람들의 성품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그 세 사람에게 물은 질문이 있습니다. 뻐꾹새가 울지 않으면 당신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오다 노부나가 장군은 울지 않는 뻐꾹새는 모가지를 잘라 버리겠다. 그런데 그는 일본 전국을 거의 통일하다시피 했으나 너무 부하들을 가혹하게 대하고 무정하게 대했기 때문에 부하의 반란을 받아서 그는 나중에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성격이 급해서 울지 않는 뻐꾹새는 목을 잘라 버리자는 사람이 스스로 자기의 목을 자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그 뒤에 일어난 장군인데 그는 울지 않는 뻐꾹새가 있으면 강제로서라도 울게 만들겠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울게 만들겠다 했습니다. 그는 일본 전국을 통일하고 한국에 두 번이나 침략하여 임진왜란을 일으켜서 수많은 고통을 한국에 끼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에는 일본 전국을 통일했으나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에 뻐꾹새를 울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했을 때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 그것이 도꾸가와 이에야스인데 이 사람은 일본 전국을 통일하고 300년 동안 막부 정권을 세워서 일본을 번창케 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의 장군이지만 뻐꾹새가 울지 않으면 목을 잘라 버리겠다. 안 울면 강제로서라도 울게 만들겠다. 이 두 사람은 다 지나가고 뻐꾹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 하루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기다리겠다는 그 사람이 일본 전국을 장악하고 일본을 오늘날 통일된 나라로 만든 것입니다.
가까운 이웃의 예를 들었지만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으려고 할 때도 한 숨에 배 부르려고 하면 안됩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눈물 모아 한강,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적은 것부터 출발해야지 순식간에 목표에 도달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적은 일로부터 시작해서 충성스럽게 열심을 다하면 세월이 흘러가면 희망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1958년 40년 전에 불광동에서 천막을 치고 가마니 깔고 교인 다섯 명으로 시작한 우리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그때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 하루만에 대 교회를 이루겠다고 하다가 안되었다고 포기했다면 오늘날 여의도 순복음 교회는 없습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이루어지는데는 그 천막과 가마니 깐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4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긴 세월을 통해서 희망에 도달한 것입니다.
인간의 삶이란 희망을 찾아 몸부림치며 나가는 것입니다.
삶의 참 행복과 기쁨이란 희망이 성취될 때 얻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희망을 저버리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기쁨도 행복도 없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성취될 때 참 기쁨과 행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지도자인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는 국민이나 개인에게 희망을 빼앗아 버리고 희망을 없는 국가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희망을 향해 전진하는 사람과 함께 행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다가오는 많은 절망과 좌절은 더 큰 희망의 문이 열리는 곳입니다. 다시 말하면 절망은 더 큰 희망이 태어나는 산실이라는 것을 알고 절망이 다가올 때 주저앉지 말고 그곳에서 빛이 오는 희망의 빛을 찾아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최대의 희망은 천국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서 올 자가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케 하시고 천당 문을 열어 놓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의 최대의 희망인 것입니다. 이 예수를 모신 사람은 마음속에 이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깜깜하고 고통스러워도 희망의 빛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영원을 향한 희망의 빛줄기가 비추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이 다가와도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은 예수 안에 영생 있고 천국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시리라 천국은 영원한 희망의 처소입니다. 그는 세월이 흘러가고 또 흘러가고 영겁의 세월이 흘러가도 천국은 희망이 넘치는 곳입니다. 희망이 넘치는 곳이기 때문에 기쁨도 넘치고 행복도 넘치는 것이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사람이 이 세상에 살 때에 희망을 잃어버리면 하나님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맙니다. 내 아버지 북한은 지금 동토, 희망을 잃어버린 땅입니다. 국민들이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오직 죽음과 슬픔과 절망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대한민국 땅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이번 달보다 내년은 금년보다 나아질 희망이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며 넘치는 희망을 가지고 있음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우리 모든 성도들이 결단코 희망을 저버리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럼 네 사람의 문둥이가 절망에 앉아 있을지라도 희망의 빛을 향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이 같이하신 것처럼 아버지 우리가 희망을 향해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마음을 가지고 멀리 바라보고 나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 가운데에 위대한 성취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는 희망을 가진 백성들임으로 희망을 가슴속에 안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고 희망스러운 말을 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희망을 향해서 전진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