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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27일 제목: 믿음과 순종 성구: 삼상 15:22-23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믿음과 순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강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얻기 위해서 철야도 하고 금식도 하고 기도도 받고 노력을 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참으로 좋은 것이고 또 우리 신앙 생활에 유익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가 아무리 믿음이 강해도 그 믿음에 따른 순종이 없으면 그 믿음은 파산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 교훈은 우리들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의 1차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는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허공을 바라보고 '믿습니다'라고 고함치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들어야 그 말씀에 의해서 그 믿음을 가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위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75세가 되었을 때 영광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야웨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이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계시를 받고 난 다음에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믿음이 솟아오르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주셨으니 약속을 우리가 믿을 도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셔서 우리가 믿었지만 온전한 순종이 따라야 그 믿음이 역사하지 온전한 순종이 따르지 아니하면 믿음은 파산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그는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출발을 했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보니까 너희 본토를 떠나라고 했는데 아브라함은 본토 땅은 떠났으나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모든 사람을 다 수레에 싣고 갔습니다. 본토를 수레에 싣고 그는 떠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완전한 순종입니다. 떠나기는 떠났으나 본토의 것은 아무 것도 가지고 말고 떠나라고 했는데 본토를 모두 다 수레에 싣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했는데 그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남으로 친척 아비집 식구를 데리고 떠났었습니다. 그러므로 믿기는 믿고 출발은 하였으나 순종이 불완전한 순종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믿음은 파탄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가나안 땅에 이르고 나니까 창세기 12장 10절에 보니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고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고 가라고 한 그 땅에 복은 커녕 극심한 기근으로 말미암아 그가 고향 땅에서 가지고 온 모든 짐승이 다 죽어 버리고 종들이 다 도망쳐 버리고 완전히 빈 손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애굽으로 내려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믿음도 파산되어 버렸습니다. 마음에 믿음을 잃어버리니까 이제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살아가려고 할 도리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내와 함께 조카를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그 아내의 아름다움 때문에 그만 아내를 바로에게 시집 보내고 말아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에서의 그의 인생은 처참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내 조차 바로왕에게 강제로 시집 보내버리고 그는 완전히 파탄에 이른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는 회개하고 자복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을 돌이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시 그를 긍휼히 보셔서 하나님이 그 아내를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를 돌려 받고 그의 조카와 함께 하나님이 처음 명령하신 대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두번째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의 시도인 것입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제는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가자. 그러나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 그 마당에도 아브라함은 또다시 불완전한 불순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보니 창세기 13장 1절에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올 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 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에 롯을 또 데리고 갔습니다. 지긋지긋하게 아브라함은 자기의 친척 아비집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롯을 떠나야 하는데 하나님이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그 아내만 데리고 가라고 했는데 그는 믿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믿습니다 했지만 그러나 순종을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가나안 땅에 올라갔는데 또 다시 큰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여러분 순종을 하지 아니하면 아무리 믿어도 시련이 끝나지 않습니다. 창세기 13장 7절에 보면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가나안 땅에 올라갔는데 아브라함의 가축, 그리고 롯의 가축이 거할 수 있을 만한 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풀과 물을 구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가 싸우고 그 결과로 종들의 싸움은 아저씨와 조카의 싸움으로 번졌습니다. 이래서 그 이웃에 있는 다른 족속들에게 모범이 되지 못하고 창피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아브라함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이 처음 명령하신 대로 순종하겠다고 결심하고 롯과 헤어지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13장 8절로 9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라함은 마음속에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친척과 아비집을 온전히 떠나기로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가나안 땅에 오실 뿐 아니라 이제는 온전히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롯과 서로 헤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면 그 믿음이 순종을 통하여 이제는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니까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비로소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아 이제는 너는 높은 언덕으로 올라오라고 한 것입니다. 창세기 13장 14절로 17절에 보면은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 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했을 때 아브라함의 믿음은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받아들여서 아브라함에게 비로소 말씀하셨습니다. 높은데 올라 와서 고개를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그 땅을 네게 주리니 영원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비로소 바라봄의 법칙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는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바라보고 그것을 소유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그 바라봄의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고 축복을 해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여러분 아브라함은 상당한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 비로소 믿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구나 믿음대로 순종을 하지 아니하면 믿음은 역사를 할 수 없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1차 믿음과 순종의 생활에서 믿기만 하고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따라 나왔다가 하나님이 역사하지 아니하므로 믿음이 파산되고 그는 애굽으로 내려가서 아내까지 빼앗기는 처참한 삶을 살았고, 2차 믿음과 순종에서 그는 믿습니다 라고 하면 하나님이 그냥 돌볼 줄 알고 롯을 데리고 갔는데 롯과 분쟁이 일어나서 온 이웃이 다 바라보는 앞에서 롯의 목자와 자기의 목자가 싸우고 아저씨와 조카가 싸우고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시 믿음은 끝까지 순종해야지 순종하지 않는 믿음 그 자체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결심하고 뼈를 짜르는 그러한 슬픔을 감내하고서 그는 조카와 헤어졌습니다. 조카와 헤어지고 이제는 하나님이 처음 말씀한 대로 네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그 말씀대로 하고 나니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온 가나안 땅을 다 주겠다는 약속을 주시고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그것을 마음속에 소유하도록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입술로 '주여, 주여' 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난 다음 '믿습니다'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조건에 부합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나에게 물질적인 축복을 주고 내 사업을 번창케 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그것은 올바르게 믿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삶의 풍성한 축복을 주기로 약속한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 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네 십일조와 네 헌물을 내 창고에 들여 내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에게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 하는지 보라' 여기에 반드시 그 믿음에는 순종이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을 물질로써 하나님께 십일조와 헌물을 드려 심고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리 믿는다고 외쳐도 그 믿음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내가 주여 내 영혼을 구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습니다. 그러나 나는 무교회 주의자입니다. 나는 교회는 안 다닙니다. 그러면 그 믿음은 무슨 믿음입니까?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왜? 교회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너희가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 너희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두 세사람 이상이 모여 있는 교회에 와야지. 그러므로 믿음이란 반드시 조건에 순종이 있어야 그 믿음이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그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 이것을 점점 회복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세째로, 아브람의 3차 믿음과 순종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이르고 난 다음 그 나이가 이제 한 80세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말씀 없이는 새로운 믿음이 출발되지 않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 오는 믿음은 순종을 통해서 다 이루어졌는데 또다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5장 2절로 5절에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나이 80이 넘으니까 마음에 조바심이 생겼습니다. 왜 사래가 아직 어린아이를 낳지 못했으므로 후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모든 재산은 자기 집에서 기른 종 중에 제일 우두머리 엘리에셀에게 상속을 줄 수 밖에 없다고 그는 생각하고 하나님께 그렇게 고하니까 하나님께서 아니라 네 아내의 몸에서 태어난 자가 너희 상속자가 되리라. 그리고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서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한 것입니다. 너희 하늘의 별들을 헤아려 보라 아브람이 별들을 헤아리니까 너희 자손이 네가 헤아린 별들처럼 많을 것이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 믿음을 의로 여겼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또 다시 믿음은 말씀을 받고 그 다음에는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마음속에 심어진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확인해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아브라함은 말씀을 받았고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그 마음속에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바라보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다시 순종의 문제가 걸립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내를 통해서 아들을 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으면 그 말씀대로 순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불완전한 순종을 했습니다. 그 나이 85세가 되었을 때 그만 마음에 의심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내 나이 85세가 되었는데 아직 자식을 못 낳았습니다. 어떻게 85세 노인이 어떻게 자식을 낳느냐! 그렇게 마음이 흔들 흔들 한데, 아내가 와서 그에게 말을 합니다. 여보! 내가 당신을 위해서 아들을 못 낳을테니 죄인 중에 죄인입니다. 후사를 이어주지 못하는 죄가 얼마나 큽니까? 그러므로 이제 나는 희망이 없으므로 나의 여종 하갈을 당신에게 드릴테니 내 여종을 데리고 가서 후사를 얻으십시오. 그래서 당신은 후사를 가져야 됩니다. 자꾸 사래가 아브람을 꾑니다. 아무리 꾀도 하나님께서 사래를 통해서 네 후손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순종해야 하는 데, 그만 아브람은 여기에서 믿기는 믿었으나 순종에 또 다시 낙제 점수를 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기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내 사래가 주는 여종의 하갈에게 들어가서 자식을 얻으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갈이 잉태하자 이 가정에 큰 분란을 일으켰습니다. 아무리 믿어도 순종을 하지 아니하면 그 결과로 믿음은 파산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창세기 16장 4절로 6절에 보면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을 하였더니 하갈이 잉태하매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나의 받은 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이 무슨 가정의 변고입니까? 하갈이 잉태함으로 말미암아 그 여주인 사래하고 다툼이 생기고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과 사래와 가정 분쟁이 생기고 온 가정이 난리판이었습니다. 결국에는 사래가 하갈을 내어쫓는 비극이 생겼습니다. 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완전한 순종을 했더라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서 이런 일이 생기지 아니할 것인데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었으나 그러나 순종을 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의 믿음을 이루려고 하다가 이런 비참한 상황에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육에 따라서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을 출산했는데 그 이스마엘로 말미암아 가정에 큰 고통이 있었고 그 결과로 여러분 오늘날 이스라엘과 아랍이 지금까지도 피 흘리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적자와 서자의 싸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은 이삭과 야곱 아닙니까? 그런데 이스마엘은 바로 서자입니다. 아브람의 서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적자와 서자 사이에 무지무지한 싸움이 지금까지고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믿는 것은 좋았지만 그가 순종을 잘못한 결과로 그 나쁜 열매를 지금도 거두고 있고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아브람은 또 다시 가나안 땅에 들어오고 난 다음에 자손 문제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으나 불완전한 순종 때문에 큰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된 것입니다. 네번째, 이제 아브람의 제4차 믿음과 순종의 시험인 것입니다. 아브람은 크게 회개하고 그의 자손은 그의 아내 사래로 말미암아 올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새긴 것입니다. 회개했습니다. 이제는 자기 나이가 점점 먹어 들어가서 99세가 되었습니다. 사래의 나이 87살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이젠 자식을 가진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습니다. 사래의 태가 죽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자식을 갖지 못합니다. 그래도 이제는 아브람은 크게 경험을 했기 때문에 결심을 했습니다. 자기가 믿었으면 끝까지 순종을 한다. 끝까지 자기의 후손이 사래를 통해서 올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99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름을 바꾸어 주시고 내 이름은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다. 이제는 열국의 아비가 된다. 네 아내의 이름은 사래가 아니라 사라다 여주인이다. 아직 자식을 얻지도 못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는 사라로 열국의 아버지 여주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이를 통해서 믿음을 얻는데는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해서 믿음이 강해지고 그 다음에는 입술로 시인함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은 폭발적으로 강해진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여기에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래서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은 믿음이 역사하는 법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읽고 들어서 성령이 우리의 마음속에 약속의 말씀을 주셔야 믿음이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씀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흥분해서 주여, 고함을 치고 믿습니다. 라고 고함을 아무리 쳐도 그것은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말씀이 있어야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었으면 바라봄의 법칙으로 말씀이 이루어진 모습을 바라볼 줄을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했으면 그 다음에는 입술로 고백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 사라 많은 민족의 조상, 여주처럼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입술로 고백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믿음이 폭발적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끝까지 믿었습니다. 이제는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순종하고 사라가 낳는 자식을 자기 후손으로 얻겠다고 결심한 결과에 100살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서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주니 그 이름이 이삭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믿고 끝까지 순종하면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이 온전히 이루어졌는지, 안 이루어졌는지 최후로 시험해 보시고 난 다음 축복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축복은 바로 믿음과 완전한 순종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 이삭이 약 20여세가 될 정도로 자랐을 때 너무너무 아브라함에게는 귀하고 좋은 아들입니다. 그 아들과 함께 밥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일하고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최후로 다가왔었습니다. 창세기 22장 1절로 2절을 보니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 귀한 아들을 모리아 산에 데려와서 그를 잡아 각을 떠서 불로 태워서 번제로 드리라니? 이야말로 온 영혼을 뒤흔드는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그는 그 명령을 받았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이젠 아브라함은 믿음과 순종의 많은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 마음속에 믿었습니다. 왜? 성경에 하나님께서는 너희 후손을 이삭으로 말미암느니라 했는데 그러므로 죽여 버리면 후손이 안 생길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변할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가 죽여 놓아도 하나님이 잿더미 속에서 일으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은 초자연적인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기적적인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네 후손은 이삭으로 말미암는다고 했기 때문에 아무리 내가 이삭을 죽여서 각을 떠서 불로 태워 버려도 그 잿더미에서 하나님이 이삭을 도로 살려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완전한 순종을 하도록 결심했습니다. 창세기 25장 5절에는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도 돌아오리라 하고" 모리아 산 밑에 종들을 두고 창세기 22장 9절로 11절에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네 아들 이삭에게 손대지 말라" 그는 이제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비유컨데 이미 아들을 죽인 것과 같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없어 중지를 안 시켰다면 그는 그 아들을 칼로써 찔러서 죽여 번제로 드렸을 것입니다. 그 결과로 아브라함의 완전한 믿음과 완전한 순종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창세기 22장 15절로 18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마임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은 형언할 수 없는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 바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씨에서 예수님이 태어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국 중에 하나인 우리들도 오늘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복을 받는 이 자리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앞에서 믿습니다하고 고함을 쳐도 그 믿음이 순종의 실천이 없이는 파산하고 마는 것입니다. 반드시 믿음에는 그 믿음에 따르는 모든 일을 순종해야 믿음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일생은 말씀에 대한 믿음과 불완전한 순종과 그 결과 삶의 파탄과 시련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 바른 믿음과 온전한 순종과 넘치는 축복을 받는 진리를 그는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와중에서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법칙도 점차적으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믿음은 말씀을 듣고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고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강하게 역사한다는 사실을 아브라함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경험을 통해서 우리 자신도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다음에는 바라봄의 법칙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바라보고 그리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입술로 고백하는 이러한 신앙을 배워서 실천해야 될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아브라함은 원숙한 신앙과 순종에 이르고 우리들의 믿음의 조상이 되고 넘치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우리 아브라함의 이 생애를 통해서 결코 감정적인 외침이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고 그리고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실한 말씀의 약속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그리고 100%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을 타협하면 안됩니다. 순종에 등한히 하면 믿음은 시련에 걸리게 되고 파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성도들이 왜? 내가 믿었는데 아무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런 말을 하는데 믿기는 믿었으나 순종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련과 파탄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었으면 온전히 순종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오늘날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말씀을 통하여 마음속에 믿음을 얻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바라봄의 법칙도 사용하고 입술로 고백을 해서 믿음이 강력하게 역사하도록 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믿습니다를 외쳐도 우리가 순종하지 아니하면 믿음은 시험에 빠지고 파탄에 이르고 맙니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믿기는 하지만 순종하기를 등한히 합니다. 아브라함도 75세에 하나님을 믿고 나왔으나 순종이 불완전하므로 수많은 시험과 환난과 파탄을 경험하고 난 다음에야 100살이 되어서 비로소 온전한 믿음과 온전한 순종으로 들어간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깨닫고 온전히 믿고 온전히 순종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우리 구원의 약속인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하나님 말씀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었으니 이제는 온전히 순종하여 성수 주일하고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감사하고 찬미하며 우리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은 믿음이 순종으로 온전하게 되어서 구원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