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8월 31일
제목: 충성스러운 종
성구: 눅 19:12-27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충성스러운 종"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에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충성스러운 자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에 열 므나의 비유를 보면 한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멀리 갈 때에 그 종들을 불러서 각각 한 므나씩 열 명에게 나누어주었는데 훗날 왕위를 받고 돌아와 종들을 불러 회계할 때에 한 종이 와서 말하기를 주인께서 열 므나를 각각 나누어주신 중 나는 한 므나를 받아 그것을 열 므나로 만들었습니다. 착한 종아 네가 한 므나로 충성스럽게 일을 하였은즉 그러므로 열 고을을 받아라. 그리고 한 므나를 받아 다섯 므나를 만들었습니다. 잘 했다 너는 다섯 고을을 받아라. 그러나 한 므나를 받아 그것을 천에 싸두었다가 그냥 가져온 사람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을 밖으로 내 쫓아라 그 한 므나를 빼앗아서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어라. 있는 자에게는 더 주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 조차 빼앗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님께서는 주님이 맡긴 일에 충성스럽게 일하는 자를 축복하시고 많은 상급을 주시고 충성스럽게 일하는 자에게는 더 큰 은혜를 주신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타락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충성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는 바로 충성심을 시험해 보는 과일인 것입니다. 아담은 자기의 탐욕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 버렸습니다. 그 결과로 아담도 버림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들의 관한 최대 관심사는 바로 충성심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여 섬기느냐! 그렇지 않으냐!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살펴보는 것입니다.

첫째로, 욥의 충성을 우리 한번 알아보십시다. 욥은 성경에 하나님이 굉장히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순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로서 하나님께서 그를 대단히 칭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하나님 앞에 주의 사자들도 와 있고 사단도 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사단이 욥을 참소하러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보고 네가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는 순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나니라고 말하자 사단은 말하기를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요. 욥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이유는 다 이유가 있고 조건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모든 하는 일을 산울로 두르시고 손으로 그가 하는 일에 복을 내려서 창대케 하므로 그가 하나님을 섬기고 충성을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손을 내어 뻗어 그를 쳐 보십시요. 그는 당장 돌아서서 하나님을 욕하고 배반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귀는 욥을 참소하고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순수하게 하나님을 이용해서 복을 받으려고 하는 탐욕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귀 앞에서 욥이 얼마나 충성스러운 사람인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 욥을 마귀의 손에 맡겼습니다.
이래서 마귀는 내려가서 욥을 쳤습니다. 그는 물질과 자식을 빼앗으므로 욥이 돌아서서 하나님께 충성을 버리고 배반할 줄 알았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아들이 일곱이요, 딸이 셋이었습니다. 그리고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많은 종이 있었는데 하루만에 이 모든 짐승 떼들을 적군을 동원해서 다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들과 딸도 대풍을 만나 큰형 집에서 잔치하고 있을 때 집이 무너져 다 죽어 버렸습니다. 이쯤 되면 욥이 하나님을 저버릴 줄 알았는데 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기 머리털을 밀고 그는 옷을 찢고 꿇어앉아서 내가 어머니 배 속에서 빈 손 들고 나왔으니 또 빈 손 들고 들어가올찌라.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요 빼앗아 간 이도 하나님이시니 범사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을지어다라고 욥은 절대로 입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과 자기의 소유물과 바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하나님께 또 욥을 참소해서 만일 욥이 건강을 잃으면 반드시 돌이켜서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매 마귀가 와서 욥을 쳐서 정수리부터 발뒷꿈치까지 악창이 나게 했습니다. 그는 옷을 입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죽이 터지고 고름이 철철 흘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잿더미에 올라앉아서 기와장으로 몸을 긁고 있는 비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심히 육체가 고통스럽고 아래 위가 병들어도 욥은 절대로 입을 열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하나님께 향한 충성심은 조금도 변화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단은 그 부인에게 들어갔습니다. 가장 친하고 환난과 고통을 함께 겪는 그 부인에게 가서 부인이 욥을 참소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당하고도 하나님께 충성심을 버리지 않았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라! 그리고 그 부인은 남편을 떠났습니다. 그것은 욥에게 끝없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말하기를 여자여 당신은 참으로 어리석은 여자다. 어떻게 좋을 때만 하나님께 충성하고 고난 당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느냐!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욥의 네 친구들이 욥을 위로하러 왔는데 사단은 그 욥의 네 친구를 통해서 욥을 굉장히 공격하고 공박했습니다. 네가 중대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네가 이렇게 하나님께 심판 받는 것이다.
욥은 '나는 죄를 지은 적이 없다. 내 양심이나 내 행위에 죄를 지은 것이 없는데 왜 내가 고통 당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을 하나 그 네 친구들은 번갈아가며 욥에서 온갖 협박을 다하고 공격을 가했습니다. 너는 하나님께 중대하게 죄를 지어 버림받게 된 것이니, 너는 죄를 회개하고 너 자신을 낮추지 않고는 버림받을 것이다. 욥을 꺾고 낙심시키려고 했었습니다. 그래도 욥은 결코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기 23장 10절로 11절에서 12절을 보면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이 모든 시험에도 욥은 하나님께 향한 충성심을 결코 변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후에 하나님께서는 욥을 크게 기뻐하사 전보다 배로 축복을 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욥을 통해서 큰 영광을 받고 사단은 체면을 다 잃어버리고 완전히 거짓의 아비로 드러나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욥을 통해서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때에 반드시 이해상관이 있어서 섬기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복을 받기 때문에 조건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빼앗겨도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실을 증거한 것입니다.
나는 우리 구역장 한 분이 암으로 심히 고통을 하고 죽을 때에 제가 그 곁에 가서 예배를 보아드리고 구역장한테 말을 했습니다. '구역장님 이렇게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을 보니 내가 민망해서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무정한 고통 속에 혹시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아니하냐고 물으니까 그 구역장님이 그렇게 앓다가 눈을 딱 바로 뜨고 나를 쳐다보더니 '목사님 내가 이렇게 무정하고 고통스러울 지라도 어떻게 머리를 하늘로 두고 있는 인생이 하나님을 원망할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이 고통 당하는 것, 무슨 이유로 당하는지 나는 해석을 못하겠지만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내가 죽으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요 그러면 내가 왜 고통을 당하는지 하나님이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실 것입니다만 나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 말에 내가 굉장한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어떤 설교를 들은 것보다도 더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고난과 괴로움을 당하면 곧장 돌아서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신앙이 얕을 뿐 아니라 사단의 꾀임에 쉽게 넘어가서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욥처럼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는 이 충성심을 가진 사람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여러분 우리가 신약 성경에서 알아보고 싶은 것은 예수님의 충성심과 그 시험을 보십시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님이라도 그가 사역을 하기 전에 충성심을 시험해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가 30세에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께 이끌려 광야로 가서 마귀의 시험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시험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그를 이끌고 광야에 가서 마귀의 시험을 받게 한 것입니다. 그가 40주 40야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해서 굉장히 배가 고팠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시험하는 자 마귀가 와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마태복음 4장 3절로 4절에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굉장히 배가 고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창조적인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그것을 이용해서 말하기를 당신이 배가 고프지 않느냐! 세상 말로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구복부터 먼저 채워라 구복부터 먼저 채우고 하나님이 있지 네가 굶주려 죽을 지경인데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 구복부터 먼저 채워라. 그렇게 사단이 시험했습니다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구복부터 먼저 채우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배가 고플지라도 하나님 말씀부터 먼저 지키는 것이다. 그는 단호하게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에 조금도 요동치 아니하였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예수님께 명예욕과 충성심을 맞바꾸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5절로 7절에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예루살렘 성전에는 하나님을 경배하러 온 이스라엘 대표자들이 잔뜩 모였습니다. 사단이 말하기를 '당신은 명예를 얻기 위해서 왔지 아니하냐! 온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세상의 구주가 되기 위해 왔으니 이런 좋은 기회에 예루살렘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라 하나님의 천사들이 전부 당신의 종이 아니냐! 그러면 천사들이 당신의 발을 받들어 부딪히지 않고 사뿐히 내리면 그 장면을 본 모든 예배에 온 사람들이 다 당신을 경배하고 칭찬하고 당신을 따라올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명예를 위해서 권력을 남용하라. 너 명예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권력을 사용하라. 그렇게 꾀었습니다. 그러므로 명예욕을 위해서 하나님께 충성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권력을 탐욕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은 단호하게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 하나님의 권력을 사용하는 그러한 인생이 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명예를 잃어버릴지라도 명예욕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권능을 남용하는 일은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원수 마귀는 세상 권력과 충성심을 비교했습니다. 너는 세상 권력 있는 것이 좋지 아니하냐! 그러므로 충성심을 버리고 너의 권력을 먼저 찾아라. 마태복음 4장 8절로 11절에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미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 드니라" 오늘날 세상 권세라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뛰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요사이 정치 계절이 다가오고 대통령 선거가 12월에 있는 지라 오늘날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대통령 선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권력을 얻기 위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 같은 것 헌신짝 같이 버리는 크리스찬들도 많이 있습니다. 권력을 얻는다면 성수 주일도 버리고 다 버립니다. 먼저 권력부터 취하자. 하나님을 이용해서라도 권력을 취하자. 마귀는 예수에게 와서 바로 권력욕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이 모든 세상 권력은 내게 넘겨준 것이 아니냐! 내게 절하면 내가 세상의 모든 권력을 너에게 주겠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은 제켜 놓고 권력부터 먼저 취하라.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이용해서 권력부터 먼저 취하라. 그때 예수님은 단호하게 주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를 섬기지 난 권력 때문에 사단을 섬기지는 않는다. 그러자 마귀는 아무리 예수님을 시험해 보아도 예수님의 충성심을 빼앗을 수가 없기 때문에 마귀는 떠나가고 천사가 와서 수종들은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이라도 충성심을 시험해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십자가의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통해서도 순식간도 하나님께 향한 충성심을 버리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충성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로 11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음이라는 것은 가장 부끄러운 죽음이요 극형입니다. 자기의 제자들 앞에서 원수들 앞에서 옷을 다 벗김을 당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는 그 분이 무력하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찔려서 처참한 모욕을 당하고 죽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12영이나 더 되는 천사를 보내어서 나를 건져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줄을 안 이상 그는 죽기까지 충성을 다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크게 하나님은 기뻐하셔서 그를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시고 만물이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충성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입니다.

세째로, 우리가 충성스럽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에 어떠한 요소가 있어야 되겠습니까? 충성심이란 어떤 것입니까?
여러분 충성심이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마음에 사랑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데 어떻게 충성을 합니까? 나라에 충성하자고 하면서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에 충성합니까? 애국애족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나라에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어야 하나님께 충성을 할 수 있는데 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구속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낳으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 아들을 보내사 몸 찢고 피를 흘려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를 그 품에 안아 주지 않았습니까? 이런 큰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셔서 지금도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육신의 장막집을 떠나는 날이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책임지고 하늘에 있을 곳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아름다운 처소를 예비해 놓으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러한 큰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이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가 뜨거운 마음의 사랑을 가져야 충성심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편 100편 3절로 4절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다음 충성심은 하나님에 대한 외경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존경하고 두려운 마음이 있어야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절대로 충성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그런 마음을 우리는 가져야 됩니다. 왜 하나님을 경배해야만 합니까? 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이신 것입니다. 우주와 만물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하나님이 경외하실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은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권자 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생사 화복도 주장하시고 나라와 민족과 세계의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절대 주권자에게 우리가 경배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은 심판주인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비웃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저항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무식한 행동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몇일 후 몇일 후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됩니다. 주님이 강림하는 시기가 늦어진다 할지라도 우리의 죽는 날은 늦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면 칠십이요, 강건하여 팔십이면 육신의 장막집을 떠나가야 되고 그리고 그가 육신 속에 살 때에 행한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 준엄한 심판을 행하시는 지엄하신 심판주 하나님을 볼 때에 우리는 두려워하고 경배해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 우리가 충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충성심의 요소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과 순종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거기에 전심 전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여기에 열 므나를 나누어 준 사람 중에 한 사람은 한 므나를 가지고 열 므나를 만들고 또 다른 사람은 한 므나를 가지고 다섯 므나를 만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 주인이 준 일에 대해서 충성스럽게 일한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되 충성스럽게 섬기는 것입니다. 성수주일하고 십일조 드리며 하나님을 경배하고 몸 드려 시간 드려 물질 드려 섬기며 내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충성스럽게 섬기고 전폭적으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 이것이 바로 충성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믿지 않는데 어떻게 충성하며 우리가 순종하지 않고 어떻게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러므로 우리 하나님 명령에 절대로 순종하고 우리는 믿고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충성심의 요소는 자기의 이해 관계를 초월한 현실인 것입니다. 욥도 마귀가 이해 관계로써 욥의 충성심을 시험했고 예수님도 이해 관계로써 예수님의 충성심을 흔들어 본 것입니다. 사단은 언제나 우리의 이해 관계를 가지고 와서 '야 너 하나님을 섬기면 손해 난다. 오늘 주일 교회에 가면 손해 난다. 십일조 드리면 손해 난다.'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의 욕심, 이해 관계를 가지고 충성심을 흔들어 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의 이해 관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충성심을 버리는 것은 그 신앙이 아주 보잘 것 없는 신앙인 것입니다. 한푼의 가치도 없는 신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자기에게 손해가 나고 고통이 다가오고 죽음이 다가와도 충성을 변하지 말아야지요. 여러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도 우리 안중근 의사나, 이러한 애국자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청춘을 다 버리고 자기의 미래도 버리고 고통을 다하면서도 나라를 사랑 한 것입니다. 나라에 충성했지 않았습니까?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이해를 일치 시키고 내게 어떻게 손해가 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께 충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서 그들이 비록 바벨론 도의 도백이었지만 그 지위와 명예와 권세를 헌신짝 같이 버리고 우상에 절하라고 할 때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우상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그들을 붙잡아서 다시 우상에 절하지 아니하면 칠 배나 뜨겁게 한 불에 넣겠다고 할 때에 왕이여 그렇게 하시더라고 우리 하나님은 능히 우리를 건지겠거니와 비록 건지지 아니 할 지라도 왕의 우상에 절하지도 아니하고 섬기지도 않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들은 목숨을 바친 충성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구덩에 들어갈 때에 제 네번째 사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불꽃 가운데 그들과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었으며 불이 그들을 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의 이해 관계를 초월한 헌신이 있어야 충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 겸손이 있어야 충성이 되는 것입니다. 조금 일해 놓고 난 다음 날 보소 내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지 날 좀 보소. 자기를 자랑하려고 하는 이런 일은 아무런 영광이 없습니다. 자랑 긍(矜)자 한 자에 모든 수고와 노력이 헛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일을 했으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복음 17장 7절로 10절에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일 다하고 난 다음에도 우리가 마땅히 할 일을 했지 우리가 칭찬들을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마땅한 일을 했습니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이런 겸손함을 가지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야 충성이 되지 조금 일하고 난 다음에 내가 이런 일을 하고 내가 이런 일을 했는데 그러면 그 충성은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무익하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요구하시는 것이 충성심입니다. 인간의 충성심에 대한 시험이 없이 인간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거나 복을 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 되는 것보다 더욱 귀하고 복된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적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 것입니까?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며 주님께 온전히 충성하여 하나님께 큰 기쁨이 되고 사단은 한 길로 왔다고 일곱 길로 도망을 치고 하나님께서 열 고을을 맡길 수 있는 그런 축복 받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 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날 사람들은 모두 다 탐욕에 묶여서 자기의 이해 상관을 가지고 모든 것을 바라보며 예수 믿는 사람들조차도 하나님 배반하기를 떡 먹듯이 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입술로써 주여 주여 하나 그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신앙을 갖되 형식적으로 의식적으로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어린 아이 때에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 신앙이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에도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충성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이 복을 주려고 해도 줄 수 없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가 과연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종인지 생각해 보게 도와 주시옵소서. 거짓된 신자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의 잘못된 걸음을 회개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잘못된 신앙을 회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전히 충성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서 살던지 죽든지 흥하던지 망하던지 성하던지 쇠하던지 주님께 맡기고 헌신하고 충성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