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0월 12일
제목: 삶의 한계
성구: 로마서 12:3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삶의 한계"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인간은 신이 아닌고로 삶의 모든 면에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이 한계를 무리하게 뛰어 넘으려고 하다가 낭패를 당하거나 파멸을 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옛날 중국의 청나라 시황제는 불로장생의 영약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중국을 통일하고 난 다음 부귀영화 공명을 다 손에 쥐고 나니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남 동녀를 동원해서 불사약을 구하기 위해서 보냈지만 그들이 구한 불사약을 먹고도 그는 49살에 죽고 말았습니다. 영원히 살고 싶은 그가 불과 49살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마땅히 생각을 그 이상의 품지 말라고 했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삶의 여러 과정에서 믿음의 분량, 즉 능력의 한계를 주신 것입니다. 그 한계를 뛰어 넘으려고 하면 그것이 곧 탐욕이 되고 탐욕에 잡히면 죄를 짓게 되고 죄가 자라면 파멸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역사를 통해서 아담의 파멸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고 영적인 존재로서 하나님과 대화하며 동산을 함께 거니는 이와 같은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신기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까? 사람이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고 대화를 하며 하나님과 함께 동산을 걷는 다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입니까?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모든 생물에게 이름을 주며 그들을 다스리는 능력을 주어서 하늘의 새나 땅의 기는 짐승이나 물 속에 있는 물고기나 다 아담과 하와를 두려워하고 그를 따랐습니다. 그의 지혜가 얼마나 많았던지 모든 짐승에게 즉석에서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땅을 정복하는 능력을 주어서 땅의 임금 노릇하게 만들었습니다. 땅의 왕노릇 하도록 하나님께서 운명지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에게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의 모든 실과는 다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아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선악이라는 것은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좋다 나쁘다의 결정은 주권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한 집안에도 부모가 좋다 나쁘다 결정하지 자식들이 좋다 나쁘다 결정을 하지 않습니다. 한 회사에도 사장이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지 사원들이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선악의 결정은 주권자에게 있습니다. 우주의 선악 결정은 주권자인 하나님만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사람이 달려들어서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우주의 주권자가 둘이 생겨나게 됩니다.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남아 있지 스스로 주권자가 되어서 하나님과 경쟁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악과의 시험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것이 아담과 하와의 한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밑에서 온 만물을 다스리는 왕 노릇하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존재의 한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와서 아담과 하와에게 이 한계를 뛰어 넘으라고 자꾸만 충동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너희도 선악을 분별하며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어라 하나님 밑에서 하나님 섬기고 살 필요 없다고 충동했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자기의 한계점을 뛰어 넘으라는 충동과 유혹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그만 하나님을 반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독립을 선포했습니다. 인본주의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한계점을 뛰어 넘으려고 할 때에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ㅤㅉㅗㅈ겨나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육체를 가진 자가 이제는 병들이 죽을 수 밖에 없도록 심판 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로 말미암아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서로 심한 갈등과 고통 속에 살면서 자녀를 낳고 가난과 슬픔 속에 살다가 사라지도록 심판 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하거나 하나님이 정해 놓은 한계를 뛰어 넘으려고 할 때에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벨탑의 교훈을 잘 압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로 노아 후손들이 왕성하게 자라서 셈,함,야벳의 자손들이 왕성해지자 그들은 떼를 지어서 시날땅으로 모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날땅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반역할 공작을 세웠습니다. 창세기 9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이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고 명령했습니다. 한 곳에 모여 살지 말고 온 땅에 흩어져 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시날땅에 모인 노아의 후손들은 니므롯을 임금으로 삼고 정면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도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창세기 11장 3절로 4절에 보면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하게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하나님은 땅에 흩어져서 살라고 했는데 니므롯을 임금으로 삼은 그 후손들은 모여서 우리 땅에 흩어지지 말자 하나님의 정해 놓은 한계점을 뛰어 넘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흩어지지 말고 우리 함께 모여서 떼를 지어서 살자 그리고 성과 대를 하늘에 닿게 하여 하나님과 우리 보좌를 같이 하자 그리고 장차 하나님이 어떠한 홍수 심판을 내려도 우리 끄덕없이 살아 남을 수 있다. 우리가 하늘 꼭대기에 닿도록 쌓아 올리자 이야말로 꼭 하나님과 동등 되기를 원한 아담과 하와와 똑같은 범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이름을 내자 인본주의를 하나님의 이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유명해지고 우리 이름을 내고 우리 인본주의로 살자 하나님이 주신 한계를 뛰어 넘을 도모를 한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들이 도모가 결국 심판을 받게 됩니다.
창세기 11장 5절로 8절에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아무리 인간이 도모해서 하나님이 정해 주신 한계를 뛰어 넘으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정해 주신 줄을 건드리자 마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자손들이 시날땅에서 바벨탑을 쌓아 지면에 흩어지지 아니하고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아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고 인본주의로 인간의 이름을 내자고 할 때에 하나님은 그들이 한계를 뛰어넘는 것을 보시고 언어를 혼잡케 하므로 그들은 다 흩어져서 성을 쌓지 않고 서로 흩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대결해서 이길 자가 없습니다. 세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운명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준 제한이 있습니다. 이 한계를 우리가 아는 지혜를 가져야 됩니다. 현대의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26절로 27절에 보면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이 땅에서 사는 연대를 정해 놓으시고 그들의 거주의 한계를 정해 놓았다. 나라의 국경을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중국은 중국, 한국은 한국, 일본은 일본, 하나님께서 이미 경계를 정해 놓으시고 그 한 나라의 연대를 정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통해서 보면 정치가, 군사 전문가들이 일어나서 이 하나님이 정해 놓은 연대와 경계를 허물어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제국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많습니다.
최근 역사를 보더라도 1934년에 나치스 독일은 로마 제국을 제1제국으로 하고 독일 제국을 제2제국, 나치스 지배 체제를 제3제국이라고 칭하고 일어났었습니다. 그래서 나치스 일당 독재체제를 통해서 히틀러가 총독자리에 오르고 그들은 눈부신 외교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경제가 번영하고 군비를 확장하고 유럽 최강국으로 발전하자 온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히틀러는 온 유럽을 제패하고 세계를 아리안 민족으로 제패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켜 즉시로 폴란드, 헝가리, 유고,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이태리 등 닥치는 것마다 삼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각 나라에 국경을 정해 놓았는데 연대를 정해 놓았는데 하나님이 정해 놓은 그것을 무시해 버리고 자기의 제국을 건설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그 바벨탑의 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1945년 그는 미국 유럽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제3제국은 무너지고 소련이 베를린 침공하기 전에 히틀러는 자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한계점에 도달하다가 파멸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아시아에서부터 일본 제국의 멸망을 보십시요. 천황을 살아 있는 신으로 숭배하고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일으켜 온 동남아를 다 먹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일본은 일본으로 남아 있고 한국은 한국으로 남아 있으라고 했는데 그 경제를 무시하고 한국을 병탄하고 중국을 병탄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온 동남아를 다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해준 한계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에 미국 원자탄이 투하되고 8월 9일날 소련이 전쟁에 참전하게 되고 8월 15일에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하고 만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또 가까운 최근에 구소련 공산주의의 멸망을 우리는 볼 수 있었습니다. 1917년 레닌의 혁명을 통해서 1922년에 공산당 일당 독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스타린 독재, 무시무시한 추방, 살상 그리고 국경을 넓혀서 동구라파를 전부 위성국으로 삼고 심지어 북한까지 위성국으로 삼았습니다. 온 세계에 공산주의 마수를 내밀어 세계를 속국화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정면 도전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한 국경을 허물어 버리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온 세계를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온 세계는 종국에 가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예수님 만이 손아귀에 넣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외에 온 세계와 온 민족을 하나로 통일해서 임금이 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입니다. 결국 소련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70년만에 그들은 무너지고 소련의 위성국은 다 독립하고 그들은 국경을 찾고 나라를 찾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각 나라에게 주신 연대가 있고 각 나라 국민의 경계를 정해 놓았습니다. 이를 뛰어 넘으려고 하다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합니다. 지금 북한과 남한이 휴전선으로 갈라진 것도 종국적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섭리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충분히 회개하고 깨어지고 하나님 중심으로 설 때까지 하나님이 그 경제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 경제를 인위적으로 아무리 무너뜨리려고 해도 무너지지가 않습니다. 김일성이 1950년 6.25사변을 일으켜 이 선을 무너뜨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처참한 고난을 당하고 이 선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여러분 휴전선이 무너지는 것은 하나님이 무너뜨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정치력으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경제력으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 남북이 통일되는 것은 우리 민족이 회개하고 자복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오면 하나님이 즉시로 무너뜨려 주시는 것입니다. 연대와 국경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고 여기에 도전하는 자는 하나님께 도전해서 결국 멸망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될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로, 건강과 생명의 한계를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 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인간의 생명은 120살로 하나님이 한정해 놓았습니다. 요사이는 공해가 하도 심하고 과로하고 또 음식을 잘못 먹고 해서 70년 80년도의 살기 힘들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과로하지 아니하고 적당히 운동하고 좋은 음식을 섭취하면 120살까지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생명의 제한을 해 놓은 것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어도 아무리 장기 이식이 발달되어도 하나님이 정한 이 연대는 뛰어 넘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저항을 할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과 생명의 한계를 우리가 알고 하나님이 주신 이 건강을 감사히 받아들여서 하나님이 주신 한계를 지켜야 됩니다.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는 쉬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건강의 법칙입니다. 6일동안 일하고 7일째는 여러분처럼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면 하나님이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한계를 지켜야 됩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한계를 무너뜨리고 내가 건강하다고 자랑하면서 그대로 밀고 나간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에도 나의 아주 친한 국제적인 친구가 한 사람이 세상을 떴습니다. 내가 1936년 2월 14일 생인데 그는 1936년 2월 13일생입니다. 나보다 하루 빨리 낳습니다. 그렇다고 늘 자기가 형이라고 주장을 했었습니다. 내가 이번 브라질을 갈 때에도 전화를 걸었습니다. '잘 있냐! 잘 있다고' 그런데 요 몇일 전에 세상을 떠버렸습니다. 퀸튼 에드워드 목사님입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니라. 그는 언제나 나에게 말을 하기를 '건강하다. 자기는 튼튼하다고 자기는 100세까지 살 수 있다'고 그래서 한국에 와서 밥을 먹으면 고추장을 한 수저씩 떠서 먹습니다. 눈도 깜짝하지 않고. 그런 사람이 순식간에 가버렸습니다. 나는 건강과 생명의 한계를 알고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법칙을 지켜 살면 그 한계대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항상 무리하고 건강 할 줄로 생각하면 큰 잘못입니다. 무질서한 식생활 유해식품을 먹고도 건강할 줄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사이는 소고기도 015 대장균 때문에 잘못 먹었다가는 죽는다고 하는데. 사실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너희 수명은 120살이 될 것이니 그러므로 고기를 먹으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고기 먹기 전에는 700세 800세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수명을 120세로 정하고 난 다음에는 고기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빨리 죽을 테니까. 빨리 죽고 싶거들랑 고기를 많이 드십시오. 성경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가에게는 죽음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을 하는데 그렇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나는 언제고 죽을 수 있다. 그러므로 경건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내 스스로를 잘 돌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여러분 경제적인 여건에도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돈이 한없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가계는 파멸하고 맙니다.
잠언서 24장 27절에는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밭에서 예비하고 그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밖에서 장사하고 밭에서 수확하고 그것에 맞게끔 집에서 집을 세우라고 말했었습니다. 계산하지 아니하고 수입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냥 잔뜩 자꾸 지출하고 자꾸 확장해 나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수지를 타산 맞추어서 살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빚 내가면서 호화사치 생활하고 빚 내가면서 해외 여행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자기의 경제력의 한계를 알아야 되요. 빚내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보면 망합니다. 오늘날 많은 우리 대기업, 중소기업들이 펑펑 넘어지는 것, 어떻습니까? 호경기 때에 그냥 빚을 내어 가지고 자기의 한계를 무시하고 막 확장을 했다가 이제는 불경기가 다가오니까 도저히 빚 감당을 할 수 없으므로 무너지지 않습니까?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게 행동했더라면 자기의 한계를 알고 행동 했더라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지 않았겠습니까?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불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제가 브라질에서 설교하면서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가 날개 쭉지가 부러진다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돌아오니까 많은 우리 성도들이 목사님 날개 쭉지가 뿌러지는 것이 아니라 다리가 찢어지는 겁니다. 그렇게 말합디다. 그래서 내가 설교를 잘못 했어요. 뱁새가 황새를 따라 가려고 하다가 다리가 찢어집니다. 자기가 황새인지 뱁새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알고서 살면 됩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기 때문에 그를 생각하고 지혜롭게 처신 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4장 28절에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망대 세우는 것도 먼저 계산해 보고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 세워라. 군사 일만을 가지고 저쪽에 이만을 가지고 오는 적군하고 싸울 때 계산해 보고 도저히 안되겠거든 미리 사람을 보내어 화친하라고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산하는 인생을 살아 한계점을 알고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다 거부가 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을 다 대통령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을 다 장군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을 다 70만 성도를 가진 목회자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는 것입니다. 그 분량을 알고 그 분량을 따라 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나아가서 하나님이 분량을 더 크게 만들어 주시면 거기에 따라 살아야지, 하나님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 내가 나아가 보자 할 때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처참하게 멸망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권력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권력을 주셨다고 해서 그 권력을 가지고 내 멋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력에도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따라서 나라와 민족을 부강하게 하라고 하신 것이지 권력을 사용해서 개인 치부하고 개인이 잘 먹고 잘 살게 되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자기의 한계점을 모르고 욕심이 잉태하면 부정부패를 행하게 되고 부정부패를 행하면 사망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목사 40년을 했는데 제가 목사 40년을 할 동안에 대통령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모릅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왔다 갔고, 노태우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도 왔다 갔고, 김영삼 대통령도 금년이면 또 가고 가만히 보니까 목사직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40년을 한 강단에서 설교하고 있는 동안에 권력을 잡은 대통령은 추풍낙엽같이 떨어졌습니다. 우리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인 것입니다.

네째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알면서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내어 주신 믿음의 분량을 알아야 됩니다.
고린도전서 7장 17절에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뛰어 넘으려고 할 때에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7절에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분량이 있습니다. 그 분량을 뛰어 넘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한국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한국사람으로 태어난 우리가 머리를 노랗게 칠하고 코를 높인다고 해서 미국사람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까만 머리 그대로 살아야 되고 납짝코 그대로 살아 됩니다. 그것이 행복한 것입니다.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항상 한계를 뛰어 넘으려다가 파멸 당한 임금, 정치가, 군인, 재벌, 권력가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삶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이상의 욕심을 품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5절로 17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주님께서 남자로 태어나게 하심은 남자로 살아야지 성전환해서 여자 되려고 하지 말고 주님이 여자로 만들었으면 성전환하여 남자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주님께서 조용기 조씨로 만들었으면 김씨 되려고 애쓰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분량을 알고 믿음을 알고 그 한계를 따라서 우리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살면 하나님이 우리를 분량대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한번 나서 죽는 한계점을 안다면 영원히 살 것처럼 교만하게 날뛰지 말고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예비해 놓았으니 에수 믿고 구원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점을 아는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천년 만년 살 것같이 내 주먹을 믿으라고 고함치는 사람은 한계를 모르고 까불다가 지옥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이것도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운명의 한계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도 겁나지 않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제켜 놓은 죽음 저 건너편의 한계를 뛰어 넘은 영생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이 땅에서 깨어지고 회개하고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을 섬겨 영생을 취하고 이 땅에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이 주신 한계를 따라서 스스로 자기를 지혜롭게 행동하며 사는 사람이 복 받고 살게 되고 파탄에 이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여! 우리 민족에게 우리 한계를 깨닫는 지혜를 주옵소서. 우리 경제가 지금 국민 소득 만불에 불과한데 마치 4만불 5만불 되는 일본이나 미국처럼 생각하고 한계를 뛰어 넘으려고 하다가 경제가 파탄에 이르고 생활이 어렵게 되고 맙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사생활에도 한계를 알고 국민적인 생활에도 한계를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권력에도 한계가 있고 재물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주신 한계점을 깨달아 지혜롭게 생각하고 지혜롭게 말하고 지혜롭게 행동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한계를 도전했다가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는 일이 없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여 우리는 다 인생으로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70년 80년 살다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한계점을 알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수 있는 길은 예수 믿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 대신하여 십자가에 몸 찢고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예수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어 영원히 살도록 만들어 주신 우리 아버지를 감사 드리옵나이다. 아버지 오늘 저의 설교를 들은 모든 사람들 한 사람도 남김없이 인생의 한계점을 깨닫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게 도와 주시옵시고 영원 천국을 얻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