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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0월 19일 제목: 나는 선한 목자 성구: 요한복음 10: 11-16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나는 선한 목자"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가끔 TV에서 아프리카 초원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의 세계를 보고 그들의 비정한 생존 경쟁의 현장에 몸서리 칩니다. 목자가 없는 짐승 떼들이 비가 오지 않을 때는 풀을 찾아 대이동을 하며 이럴 때에 병들고 약한 짐승은 죽고 튼튼한 짐승만이 살아 남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공격해 오는 사나운 짐승들의 예리한 이빨이 언제 그들을 희생으로 만들지 알지 못하는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목자가 있는 양떼는 그렇지 않습니다. 양떼의 모든 삶은 목자가 책임지고 돌보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매일매일 살아가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경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생존 경쟁은 단지 가까운 이웃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촌 전체를 상대로 삶의 투쟁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삶이 지치고 피곤하며 항상 불안과 초조함 속에 살며 삶의 스트레스를 먹고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사는 삶은 그 내용이 확연히 다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인들과 별 다름 없는 삶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하늘과 땅같이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선한 목자 예수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과 확연히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창조주인 것입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는데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참 하나님이 참 사람이 되어 오셔서 우리 사람 가운데 목자로 오신 것을 생각해 보십시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신 그 완전한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의 목자가 되기를 자청하셨으니 이런 목자를 우리가 모실 수가 있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요. 큰 기쁨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은 또한 사랑의 목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율법의 막대기로 치기 위해서 오지 아니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약점을 들추어내어 막대로 친다면 우리 주님 앞에 견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무한한 아가페 사랑을 가지고 왔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약점은 당신이 걸머지시고 우리를 큰 사랑의 손길로 품에 품어 주시고 어루만져 주시는 사랑의 목자로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로 15절에 보면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여러분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 다고 하신 예수님은 실제로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몸을 찢고 피를 흘리고 온갖 고난을 다 친히 겪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선한 목자로 다른 말로 말하면 나는 좋은 목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인 것을 우리가 알고 우리 생애가 얼마나 변화가 됩니까? 그 좋은 하나님이 좋은 목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을 생각할 때에 얼마나 감사합니까? 선한 목자는 양과 운명을 같이 한다고 말했습니다. 삯군은 이리가 오면 자기 양이 아니므로 버리고 도망을 치지만 목자는 자기 양이므로 양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고 목숨을 같이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좋은 목자로서 우리와 함께 목숨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운명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살았을 때만 우리와 같이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할 때도 우리의 손을 잡고 걸어가 주시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에까지 주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어서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항상 힘을 주시는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로 30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기 때문에 아무나 예수님 앞에 가까이 나갈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섭고 도도하고 오만하고 교만했더라면 아무나 예수 앞에 가까이 나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합니다. 따뜻하고 부드럽기 때문에 어린아이라도 병든 자라도 상처 입은 자라도 죄 있는 자라도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겸비하기 때문에 주님은 가장 낮은 자라도 주께서 함께 손을 잡아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온유하고 겸비한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인생의 짐을 지어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목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많습니다. 개인문제, 가정문제, 생활문제, 자녀문제, 사업문제 이러한 문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더구나 오늘날 한국에 경제적인 여건이 어려워지니까 직장을 잃어버린 사람, 사업이 무너지는 사람, 부도가 나는 사람, 경영이 곤란에 처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러할 때에 우리가 마음에 고통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발버둥 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할 때에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은 예수님이 우리의 짐을 담당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짐을 안 맡아 주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쉴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선한 목자께서 우리의 짐을 맡아 주겠다고 하실 때에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에 혼자 짐을 지지 말고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서 눈물 흘리며 부르짖으며 고함치며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우리 목자에게 나가서 기도할 때에 목자는 와서 우리의 등을 두들겨 주시고 우리를 품어 주시고 우리의 짐을 맡아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 주리라'고 말씀하셨으니 때를 얻을 때나 못 얻을 때나 주님 앞에 나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선하신 목자 양에게 생명을 주되 풍성히 주는 목자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으려면 못살아야 되고 가난해야 되고 헐벗어야 되고 굶주려야 선량하고 훌륭한 신자가 된다. 예수 믿고 난 다음에 복을 받아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한 것은 세속적이요 타락한 신자다 이렇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은 만물을 소유한 하나님이요 물질을 하나님이 지으셨는데 왜 물질이 나쁩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등지고 세속을 따라서 물질을 썩은 데에 사용할 때에 이것이 나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주의 영광을 위해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 물질적으로 생활적으로 복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도리인 것입니다. 여러분 자식이 떡을 달라고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자가 누구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아버지도 자식에게 좋은 것 주기를 원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하나님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에 하나님은 인색하고 사납고 몰인정한 하나님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마귀가 우리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모습을 언제나 심어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우리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도적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느 목자도 자기 양을 잘 먹여서 양이 토실토실하고 건강하게 되면 훌륭한 목자입니다. 목자가 양을 안 먹여서 마른 양이 되고 비실비실 쓰러진다면 그건 훌륭한 목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되 풍성히 주시는 좋은 목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목자는 양을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양은 목자의 소유물이며 재산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우리 소유물이나 우리 재산을 귀하게 간직합니다. 공산주의가 망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공산주의는 개인의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자기 집도 없고 자기 소유물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당과 국가 소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일을 한들 내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일할 의욕을 잃어버리고 열심히 일하지 않습니다. 일하는 흉내만 냅니다. 그리고 시간을 때우면 국가가 월급을 주고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의욕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경쟁이 심해서 살기가 곤란하지만 그러나 일단 모든 사람은 자기의 소유물이 있고 재산이 있기 때문에 자기 소유물과 자기 재산을 아끼고 보호하고 열심히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세계는 경쟁이 치열하지만 모든 산업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경제가 향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당신의 소유물, 당신의 재산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재산을 해치고 자기의 소유물을 해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시편 100편 3절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하나님의 소유물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소유자가 없는 버림받은 방랑하는 그런 양이 아닙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의 목자가 양인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여러분 더구나 유대 광야에 가보셔서 알겠지만 얼마나 광막합니까? 유대 광야는 정말 광막한 광야입니다. 거기에 골짜기는 얼마나 깊은지 천길 만길입니다. 그곳에 어디에 풀이 있고 어디에 물이 있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그 천길 만길 골짜기에 떨어져 죽을 것이고 광야에 허덕이고 물도 없고 풀도 없는 곳에 굶주리고 목말라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유대 광야에는 반드시 목자가 있어야 살아 남습니다. 요한 복음 10장 3절에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우리 주님은 우리를 양으로서 우리의 이름을 알고 우리를 불러서 우리를 인도해 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을 믿어야 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 나이 75세에 부르셔서 길도 지도도 모르는 아브라함을 갈대아우르에서 가나안까지 인도하고 그 지리적인 것뿐 아니라 그의 평생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종살이 했을 때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를 인도해 내시고 광야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까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를 믿자마자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 와서 거하십니다. 성령이 구름기둥과 불기둥 같이 우리 속에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속에 주신 성령이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구름기둥과 불기둥 같이 우리 마음속에 소원을 일으켜 주시고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모략과 재능으로 성령이 우리 가운데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의 주위 환경을 조성하시고 환경을 만들어서 우리로 하여금 이 길이다. 이 길로 가라. 이 길로 오라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자 없는 양 같이 방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 속에 계신 성령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속에서 밖에서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민수기 15장 41에 보면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 하여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우리의 인도자, 우리 목자는 우리를 이끌어 가는 인도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목자를 기다리고 믿고 순종하여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양이기 때문에 양은 자기의 생각이나 자기의 길로 가서는 안됩니다. 양은 목자를 기다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목자가 우리를 이끌어 가기 때문에 우리 목자이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기도하고 야웨를 앙망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지. 성급하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선악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선악을 결정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 좋아도 하나님 생각에 나쁠 수가 있고 하나님의 생각에 나쁜데 우리 생각에는 좋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선악의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므로 선악과를 우리가 따먹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앙망하고 목자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어린양으로서 목자를 기다리고 믿고 있으면 목자가 우리를 인도할 터이니 그 인도함에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7에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주님의 양이 아닙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를 따르면 우리의 주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어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하시는 우리 하나님 앞에 우리는 전적으로 우리의 인생의 길을 맡기고 하나님이 인도하기를 기다려야 됩니다. 절대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어 가지 않습니다. 세째로, 목자는 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이끌기 위한 것인데 예수님이 푸른 초장을 당신의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일구어 놓았습니다. 그것이 갈보리산 십자가 밑에 있는 주님의 푸른 초장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우리를 누이시는 곳은 바로 용서와 의의 목장인 것입니다. 그 피로써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하셔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용서와 의의 목장을 이루어 놓으셨으며, 주님은 하나님과 우리의 죄를 없애시고 하나님과 화목시켜서 화목과 사랑과 성령충만의 목장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심으로 우리를 치료하시는 치료의 목장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저주를 제하시고 가시와 엉겅퀴를 제하시고 가난을 제하시고 절망을 제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으로 우리를 기르시는 축복의 목장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망과 음부를 제하시고 천국과 영생 복락을 주시는 목장을 만들어 놓고 주 우리 목자께서 십자가 밑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밑에 주님이 이루어 놓은 이 오중복음의 목장으로 오늘날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항상 십자가 밑에서 주님이 예비하신 이 오중복음을 묵상하고, 이 오중복음을 믿고, 이 오중복음을 감사하고 있으면 이것이 그 풀을 뜯어먹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우리가 알고, 이 진리를 묵상하고, 이 진리를 감사하고, 이 진리를 믿고 나갈 때에 주님은 그 축복으로 우리를 채워 주셔서 부족함이 없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 십자가 밑에서 쉴만한 물을 마시게 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그리하면 너희 배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나리라 하셨습니다. 이는 저들이 받을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십자가 밑에 나가서 기도하면 마시는 것입니다. 묵상은 먹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은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먹고 기도해서 우리가 성령의 물을 마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양식으로 풍족히 먹고 하나님의 물을 마시고 우리의 생명이 소생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뜨거운 태양에 시들어지고 열기에 힘을 잃고 쓰러지고 넘어질 수 밖에 없을 때라도 십자가 밑에 나가서 오중복음을 먹고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한 은혜를 받고 나면 우리의 영혼이 소생해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납니다. 기쁨이 살아납니다. 평화가 살아납니다. 행복이 살아납니다. 살아갈 힘과 용기가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17절에 보면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임이러라" 우리의 목자는 우리를 생명수 샘,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목자는 양을 의로운 양, 거룩한 양, 은혜의 양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매일 같이 더 의롭게 만들어 주시고 더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고 더 은혜가 충만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5편 12절에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 말한 것입니다. 우리를 의인을 만들어서 은혜로서 충만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네째로, 우리의 목자는 양을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눈에 안 보이는 마귀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 마귀가 사람 속에 들어가고 환경에 들어가서 온갖 분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마귀가 현재 눈에 보이면 마귀가 아닙니다. 그러나 눈에 안보이는 영적인 이 마귀가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오고 우리 가족에게 들어오고 우리 이웃과 사회에 들어와서 이것이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님은 이 마귀에게서 우리를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더러운 마귀, 악한 마귀, 거짓말하는 마귀, 점치는 마귀, 사기치는 마귀, 연약하게 하는 마귀, 병들게 하는 마귀, 온갖 마귀들이 득실거리는데 이 마귀들이 와서 우리에게 붙어 우리에게 고통을 주려고 할 때에 우리 주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를 이 마귀에게서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바 되었으니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함이라. 여러분 보십시요. 다윗이 아버지의 양을 칠 때에 그 양을 먹기 위해서 사자와 곰이 찾아 왔습니다. 그때 다윗이 사자와 곰 앞에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서 사자와 곰을 공격하고 사자와 곰의 입에 있는 양을 빼앗고 그를 쳐서 죽였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양은 우리를 말하고 다윗은 바로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킬 뿐 아니라 우리가 사탄에 묶여서 혹은 물렸을 때는 가서 빼앗아 내고 우리를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양을 위하여 우리 목자는 싸우십니다. 성경에는 뭐라고 말했습니까?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가 온다고 버리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원수가 오면 우리에게 힘을 주시기 위해서 진수성찬 차려서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마귀에게 공격을 받고 시험을 당하고 고통을 당할 때에 주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용기와 힘을 주어서 우리가 능력이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압도하고 이길 수 있도록 우리 목자는 우리를 힘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목자는 우리를 위해서 친히 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수 가에 와서 이제는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했습니다. 뒤에는 애굽 군대가 잡으러 오지요 앞에는 홍해수가 막혔지요 그들은 좌절과 절망에 처하여 이제는 몸부림을 쳤습니다. 완전히 샌드위치가 되었습니다. 그럴 때에 목자가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둘 줄로 압니까? 모세가 말하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오늘날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것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이 애굽 사람을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홍해수를 가르시고 이스라엘을 건너게 하시고 애굽 군대로 홍해수 안에 다 들어오도록 유도하셔서 물이 넘쳐 흐르게 하셔서 다 잠겨 죽게 만드신 것입니다. 여호와는 오늘날도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가만히 내버려놓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로 29절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여러분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셨는데 누가 여러분을 빼앗아 갈 수 있단 말입니까? 여러분 스스로가 주님을 배반하지 않는 이상은 주님은 절대로 빼앗기지 않습니다.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어떻게 여러분을 빼앗아 갑니까? 그리고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항상 우리의 짐을 져주시는 목자는 순종과 믿음과 헌신의 멍에 밑으로 들어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고 믿고 헌신해서 주님께 순종하며 시편 68편 19절처럼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처럼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님, 우리의 짐을 한번만 진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져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잠언서 3장 5절로 6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양은 목자가 있기 때문에 목자 없는 다른 모든 동물이 겪는 모든 고통을 당하지 않습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사나운 짐승의 공격, 상처나 병 들었을 때 돌보심 등은 목자가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를 믿는 사람은 일반인들과 똑같이 삶의 모든 시련과 과정을 지나지만 확연히 다른 것은 주께서 항상 목자로서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전능하신 목자, 사랑의 목자, 선하신 목자로서 양인 우리들을 책임지고 돌보아 주시는 목자이신 것입니다. 오직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항상 우리들의 목자이신 주 예수님을 섬기고 기다리고 믿고 순종하고 실천해 살아갈 때에 우리는 두려움이 없이 안연히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목자 없는 버림받은 들짐승이 아닙니다. 주야로 우리를 살피는 목자가 돌보는 우리에 있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 받은 귀한 양들인 우리들이 항상 목자 되신 주님과 함께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는 목자 없는 버림받은 들짐승이 아니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친히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우리 속에 들어오게 해 주시옵시고 피로 인 쳐주시고 성령으로 채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오 우리의 전능하신 목자, 선하신 목자, 능력이 많으신 목자, 우리를 먹이시고 기르시고 돌보시고 지키시고 이끌어 주시는 목자이신 주님 감사합니다. 더구나 세상이 어수선하고 사회가 무질서하고 생활이 곤핍할 때에 우리는 광야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집니다. 찬바람이 불어오고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고 먼지가 드날리고 어느 곳에 피난처가 있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이때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님의 품에 안기게 도와 주시옵시고 예수님을 앙망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눈에는 안 보이나 성령으로 우리와 시시각각 같이 계시고 이끌어 주시는 예수님께 의지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선한 목자 되신 우리 구주여, 항상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