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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0월 26일 제목: 하나님의 의냐, 사람의 의냐? 성구: 엡베소서 2:8-9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의냐, 사람의 의냐?"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올라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방법은 인류 역사를 통하여 인간들이 항상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것은 인간들이 인간의 힘으로 하늘에 닿는 사닥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바로 노아의 후손들이 쌓은 바벨탑도 그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 이래 지금까지 인간은 피땀어린 노력으로 종교나 철학이나 수양이나 도덕적 훈련을 통하여 애써 보았지만 하늘에 닿는 탑이나 사닥다리는 놓지 못하고 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땅으로 사닥다리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이 외아저씨 집에 가는 길에 해가 저물어 들에서 돌을 베개하고 잘 때입니다. 야곱이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자기가 자는 머리맡까지 사닥다리 내려져 있고 그 사닥다리로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닥다리는 인간이 그 노력으로 만든 사닥다리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드셔서 내려주신 은혜의 사닥다리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은혜의 사닥다리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성경에는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은혜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은혜는 값없이 그냥 주는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평생을 가만히 살펴볼 때에 이 땅에서 은혜 입은 두 분이 있습니다. 우리 최자실 목사님과 존 허스턴 목사님입니다. 제가 1958년 신학을 졸업하고 올 때 갈 때가 없었습니다. 저는 철푼 한푼 없었습니다. 어디 가서 어떻게 교회를 개척할지 모르고 정말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동기동창이었던 우리 최자실 목사님이 저 대조 마을에 가서 천막을 사서 치고 그곳에서 저를 동역자로 불러 주었습니다. 저는 그때에 만일 최자실 목사님이 대조 마을에 가서 다 떨어진 천막이지만 그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깔고 저를 동역자로 불러 주지 않았으면 어느 곳에 가서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터전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때에 우리 최자실 목사님이 저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3년 동안 목회하면서 600여명의 성도들을 얻게 된 것입니다. 평생에 천국 가신 우리 최자실 목사님이 저의 첫 길을 이끌어 주신 그 은혜를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값없이 복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그 다음 존 허스턴 목사님입니다. 1961년도에 그가 미국에서 모금하여 서대문에서 땅을 사고 쌀 창고가 되었지만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난 다음에 저를 동역자로 불러 주었습니다. 그때는 서대문 그 비싼 땅에 건물을 짓고 목회를 한다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보다 힘든 일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빈 털털이가 어떻게 서대문에 나올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존 허스턴 목사님이 아프리카 선교사로 계시다가 한국에 와서 부흥회를 인도하다가 저와 인연이 맺어졌습니다. 그가 미국에 건너가서 모금하여 한국에 와서 서대문에 땅을 사고 그곳에 교회를 짓고 저를 동역자로 불러 주어서 저는 아무런 경제적인 수고 없이 다 지어놓은 교회에 와서 그곳에서 목회를 하여 1974년도까지 약 만 이삼천의 성도가 되도록 성장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만일 그 존 허스턴 목사님이 그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주지 않았으면 오늘 여의도로 나와서 이 교회를 지을 수 있는 터전은 마련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주장하여 주셨지만 그러나 존 허스턴 목사님이 저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제가 잊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지금도 우리 고 최자실 목사님과 지금 살아 계신 존 허스턴 목사님이 제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서 보답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은혜라는 것은 이 땅에 살면서 내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에 값없이 복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은혜라는 것은 헬라원어로 '카리스'라고 말을 합니다. 헬라 사람들은 옛날에 산천의 경치를 바라보고 아름다운 것을 볼 때에 카리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음악을 듣고 마음에 감동이 들어오고 기쁠 때에 카리스라고 말을 했습니다. 또 그렇지 않으면 아주 훌륭한 행위를 볼 때에, 덕성스러운 행위를 볼 때에, 참 효성스럽다. 참 사회의 공덕을 세우니 훌륭하다. 이때에 카리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기에도 아름답고 듣기에도 좋고 함께 있기에 덕성스러운 이런 모습을 보았을 때에 은혜롭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정말 주님은 값없이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며 버림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죄악 속에서 스스로 몸을 정결하게 할 수가 없고 죄악의 굴레에서 우리 힘으로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율법을 지키려고 해도 지켜지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윤리 도적적인 삶을 살려고 해도 거짓으로 꽉 들어차 있습니다. 아무리 죄악을 청산하려고 해도 인간의 힘으로 죄를 청산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 이름으로 십자가에 올라가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가혹한 고통을 당하시면서 우리의 죄를 다 대신 청산해 주셨으니 이 은혜는 도저히 말로 형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 3장 24절을 보면 "그리고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조금도 값을 지불하지 아니하고 빈손 든 그대로 못난 그대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실 때에 우리의 일생의 죄가 청산되고 의롭다함을 얻어 일생의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취급을 받고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서며 마귀의 참소를 받지 아니하는 이러한 자격을 얻게 된다는 것을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인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이 없이 누구든지 믿는 자들에게 값 없이 댓가 없이 공짜로 주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은혜를 받고 나면 여러분 은혜는 우리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 헬라 사람들이 아름다운 산천의 경치를 보고 은혜롭다, 좋은 음악 소리를 듣고 은혜롭다, 도덕성이 있는 행동을 보고 은혜롭다고 하는 것처럼 은혜가 우리에게 오면 그 은혜가 우리를 변화시키는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인격은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음악 같은 성품, 훌륭한 행동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난 다음, 술주정뱅이가 변화되어 성결한 삶을 사는 것을 얼마든지 보며, 도적질하는 사람들이 힘써 일하여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는 것도 많이 보았으며, 마약 중독자가 변화되어 전도자가 된 것도 많이 볼 수 있으며, 음란하고 방탕하며 가정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이 좋은 남편, 좋은 아내, 방종한 자녀가 돌아와서 훌륭한 자녀가 되는 이러한 것을 우리가 많이 보았습니다. 예수를 믿고 은혜가 임하면 그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기적의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그대로 우리가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믿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해도 은혜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었는데도 은혜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고린도 후서 6장 1절로 2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은혜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지위, 명예, 권세, 부귀, 영화 얻는 데만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은혜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은혜에 대해서 적대적인 사람도 많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9절에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여러분 북한 같은 곳을 보십시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든지 증거하면 국법에 위반되어 그는 추방당하거나 총살까지 당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적대적인 행동을 취합니다. 소련에서 소련의 하원과 상원이 결정해서 기독교의 복음 전파를 금지시키고 옐친이 그것에 서명을 했습니다. 소련이 무너지고 난 다음 잠시동안 소련에 복음 말씀을 증거할 기회가 주어져 있었으나, 이제는 소련이 국법으로 기독교의 복음 증거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은 은혜에 대한 적극적인 적대 행위인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이요 손으로 태양을 가리려는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여러분과 같은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 5장 2절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합니다. 왜냐하면 쉬이 나타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나를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곳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원한 영광의 처소로 인도하여 갈 것이기 때문에 은혜를 받은 우리들은 그 소망을 가지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기대감에 넘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둘째로, 이 성경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구원이 우리 스스로가 애쓰고 힘써서 우리 속에서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서 무엇이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일이 나겠느냐고 했는데 우리 사람들 속에서 과연 우리를 구원할 만한 그 무엇이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노력과 애씀으로 구원을 생산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얻은 영적인 죽음밖에 없습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깜깜한 영적인 죽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활의 저주 속에 살고 있습니다. 삶은 수고와 고생 속에서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이 어려움입니다. 그 다음에는 육체적인 질병과 죽음이 우리 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실존적인 절망에 처한 사람입니다. 죄책의 절망을 안고 있습니다. 허무와 무의미를 가슴에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과 무의 절망을 가슴속에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존재 속에서 구원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종교와 철학을 만들었어도 구원은 만들지 못합니다. 왜? 스스로 속에 구원이 없습니다. 스스로 속에 죽음밖에 없습니다. 절망밖에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인간이 구원을 스스로 산출해 낼 수가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이외에 우리가 다른데서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선물은 값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귀히 선물을 사서 이웃에게 주는데 이웃이 그것을 돈으로 사려고 한다면 모욕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선물은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물은 내가 받을 가치가 있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는 사람이 원해서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16절에 보면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내가 원해서 선물을 받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달음박질해서 선물을 주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자원하셔서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선물로 변화 받은 위대한 인물 한 분을 늘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영국의 존 뉴턴입니다. 그는 위대한 복음 전도자요, 찬송가 작가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선장이었고 그 어머니는 경건한 신자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외아들 존 뉴턴을 낳아서 정말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려고 열심히 기도하며 잘 가르치고 밤낮으로 기도해 주었는데 일곱 살 때에 어머니가 소천했습니다. 그렇게 삐뚤게 자라다가 3년 후에 학교를 그만 두고 11살 때에 아버지의 소유 노예선에서 선원 생활을 해서 아주 성격이 거칠어졌습니다. 그 다음 영국 해군에 종사하다가 탈영하여 잡혀서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잡는 일에 종사하게 되었습니다. 노예를 잡아서 파는 일에 종사하다가 그는 22세 때에 영국으로 가는 배에 올랐는데 북대서양에서 극심한 폭풍을 만나 거의 침몰 지경에 이르자 회심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뉴턴은 어머니의 기도를 떠올리게 되었고 항상 호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성경을 꺼내 들고는 내 어머니의 하나님 이시여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저에게 단 한번의 기회를 주시옵소서. 저를 죽음에서 구해주시면 내 일생을 주님께 바치겠다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폭풍에서 구원받자마자 그 기도는 깜쪽같이 잊어버리고 30세까지 노예를 잡아서 미국에 갔다 파는 노예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30세에 그 양심의 고통과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서 그것을 청산하고 33살에 영국의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54세에 영국 런던의 한 교구의 목사가 되어 영향력을 크게 미치고 말년에 노예 매매 폐지 주장 캠페인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가 수많은 찬송시를 썼는데 그 대표적인 시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라는 이 놀라운 은혜의 찬송시를 적었습니다. 말년에 그는 나의 기억력은 이제 거의 다 쇠퇴하였으나 그러나 두가지 사실만은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나는 크나큰 죄인이었으며 그리스도 크신 구세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에서 구원받던 이 두 가지 사실만은 나는 잊지 않고 기억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하늘 나라에 가서 3가지 놀라운 현상을 보게 될 것인데 첫째는 틀림없이 와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하늘에 와서 보니 하늘에 모두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라고, 둘째는 하늘 나라의 문턱에도 가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사람들이 은혜로 하늘나라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라고, 셋째는 나 같은 사람이 하늘 나라에 들어와 있음을 보고 또 놀랄 것이라고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무시무시한 노예 상인도 그가 회개하고 돌아섰을 때에 하나님이 구원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이 사람이 행한 좋은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물은 주는 사람이 원해서 주는 것이므로 감사하게 받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 얼마나 지극히 큰지요. 에베소서 2장 4절로 7절에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같이 값없는 벌레 같은 인생을 예수님과 함께 살리시고 함께 하늘에 올라서 지금 영적으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보좌 우편에 함께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와 이 사랑을 무슨 말로써 우리가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므로 선물을 주거들랑 선물은 감사함으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물에 대해서 잔소리하면 안됩니다. 북한 정부처럼 우리가 쌀이나 강냉이나 선물을 보내는데 온갖 조건과 요구를 다 하면서 얻어먹는 사람이 찬밥 내놔라 더운 밥 내놔라 온갖 조건을 다 내세웁니다. 이렇게 하니까 줄 마음이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선물은 무조건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셨음으로 우리가 감사하게 선물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기쁘시게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고 더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 성경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인도 남부의 진주를 캐는 노인이 언제나 저의 가슴속에 메아리칩니다. 거기에 진주를 캐서 생업을 하는데 한 홀아비가 아들을 키웠습니다. 20세에 장성하니 이 아들은 아버지의 생명같이 귀한 아들입니다. 이 아들이 늘 내가 세계에서 제일 큰 진주를 캐서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어느날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 청년은 깊은 바다에 다이빙해 들어갔는데 2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올라오지 않습니다. 너무 깊이 들어가서 진주조개를 캐다가 질식해 버린 것입니다. 한참만에 시체가 되어 떠오른 그 청년은 입에 큰 진주조개를 물고 떠올랐는데 그 진주를 빼서 보니 세계에서 제일 큰 진주가 그 조개 속에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울며 울며 그 아들 시체를 화장하고 그 진주를 비단으로 사서 품에 품고 다녔습니다. 품에 품고 자고 품에 품고 먹고 품에 품고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이제 나이도 많고 하니 히말라야 산에 가서 마지막 자기 생애를 마치겠다. 히말라야산까지 기어서 죄를 속죄하는 그런 행위를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보통 히말라야 산까지 기어가면 팔과 다리가 살점이 다 떨어져서 뼈만 남습니다. 그런데 그가 외롭고 괴로울 때에 이웃에 있으면서 늘 죽도 끌여다 주고 의복도 같다 주고 돌봐준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선교사 부부를 찾아갔습니다. 나는 이제 속죄를 받기 위해서 히말라야 산까지 무릎으로 기어서 가게 되는데 이 진주조개, 내 아들이 캔 진주를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나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신 선교사 부부 당신에게 선물로 드립니다. 그 비단을 열어 보니 굉장히 큰 진주가 있습니다. 선교사 부부가 너무 놀라서 선교사가 당장 지갑을 꺼내서 돈을 계산해서 주려고 하니까 노발대발합니다. 당신은 내 아들의 생명을 내가 몇 푼의 돈으로 팔아먹을 줄로 생각하느냐? 당신 정말 날 잘못 알았다. 내가 당신이 내게 은혜를 베풀어주었기 때문에 선물로는 이 진주를 줄 수 있어도 내가 돈은 받을 수가 없다. 그 진주 도로 내놓아라 호통을 치며 그 진주를 낚아챘습니다. 그 때 선교사가 말을 하기를 영감님 내 말 한 마디 들어 보십시요. 당신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무릎과 팔목으로 기어서 히말라야 산까지 올라가서 그 피 흘린 대가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데 그 더러운 피의 대가를 받고 하나님이 구원해 줄 줄 압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그 아들의 생명의 대가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선물로는 줄 수 있어도 값으로는 팔지 않습니다. 당신의 아들의 생명의 대가인 이 진주를 제게 선물로는 줄 수 있어도 댓가를 받고는 절대로 팔지 않겠다고 호통한 당신처럼 하나님도 그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서 값 주고 사준 이 진주 같은 구원을 믿음으로 값없이 주시지 절대로 더러운 대가를 받고 주시지 않습니다. 이 말에 그 노인이 깨달았습니다. 그 노인이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맞았습니다. 내 아들의 생명도 나는 돈 받고 팔 수 없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서 주신 구원을 내가 공로로써 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예수를 구주로 믿고 값없이 구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바로 유대인들이 크게 실패한 일이 거기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셔서 우리에게 값없이 구원을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그는 꼭 자기들이 행위로써 값 주고 살려고 하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값없이 주시는 것을 자꾸 값을 내고 사겠다고 함으로 하나님은 더럽게 여기사 그를 버리고 값없이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이방인들은 주님께서 오늘 여러분과 저처럼 기쁘게 구원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2절로 3절에 보면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바로 유대인들이 지식을 좇아 믿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로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은 끝났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다 완성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1장 9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각보다는 자기의 생각을 더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자기의 지혜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인간의 지식으로 대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열심도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행위를 저버리고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무엇입니까? 먼지와 티끌보다 못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행하는 일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비평하고 판단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주시는 의 대신 자기가 의를 내세우려고 합니까? 하나님의 지혜보다 사람의 지혜가 더 똑똑합니까? 하나님의 지식보다 사람의 지식이 많다고 생각할수 있는 것입니까? 어리석고 무지한 행위를 버리고 우리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항복하고 무릎을 꿇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우리가 선물로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고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행위를 따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하셨으니 오늘 이 시간에 누구든지 속에 여러분과 내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라 오직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하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몸 찢고 피를 흘려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로 자랑하고 사람으로 자랑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겸허하게 낮아져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구원을 받고 영원히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하나님과 함께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크신 은혜와 구원의 선물을 생각할 때에 가슴이 벅차 말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는 행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행위는 오직 죄지은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나무라지 아니하시고 용서와 사랑과 구원의 은혜와 선물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아버지 이 복음 우리 믿고 주님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았은즉 이 복음을 온 이웃과 온 천하에 전하여 때가 늦기 전에 모든 듣는 사람을 구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구원을 얻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 봤자 일생이 분초와 같이 지나가 버리고 남는 것은 허무와 절망과 슬픔과 고뇌밖에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사람이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자기 목숨 하나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사람이 자기 목숨과 무엇과 바꾸겠습니까? 하나님이 두 손을 활짝 내밀고 내가 너를 구원하겠다고 할 때에 믿음으로 그 품에 안기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