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 9일
제목: 예수님을 모시는 길
성구: 마가복음 5장 25-34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을 모시는 길"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제가 옛날 불광동에 개척할 때에 어떤 농부의 아내가 저에게 찾아 와서 상당히 근심 어린 얼굴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난 오랜 불교 신자이고 절에 가면 눈앞에 부처님이 있어서 부처님을 바라보고 소원도 말을 하고 기구(간구)도 했는데 교회 오니까 아무 것도 없고 십자가만 있는데 정말 너무나 마음이 답답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계신 주소를 가르쳐 주시면 제가 편지를 보낼테니, 목사님 주소 좀 가르쳐 주십시요. 제가 그런 질문을 처음 받았습니다. 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나도 주소를 잘 모릅니다.라고 하니까 아니! 주님의 종님이 하나님의 주소도 모르면 하나님과 연락을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좀 기다려 달라고 내가 주소를 한번 찾아보겠다고. 그래서 가만히 성경을 찾아보니까 옛날에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만났는데 에덴동산도 없어져 버렸죠. 이스라엘 백성이 나올 때에 광야에 성막에서 하나님이 만나 주셨는데 성막도 없어졌지요. 그 다음 솔로몬 성전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 주었는데 솔로몬 성전도 없어졌죠. 그 다음에 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바로 이 땅에 찾아 오셔서 주님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예수님이 하나님의 주소시다. 예수님은 오늘날 어느 곳에나 계셔서 우리가 믿을 때에 찾아오는 것이다. 내가 그 자매님을 만나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주소를 알았습니다. 빨리 가방에서 종이와 연필을 꺼내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님의 주소는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주소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계시고 예수님도 하나님 안에 계시고 예수님은 성령으로 아무 곳에나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모두 다 하나님을 만나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만 바로 모시면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제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모실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실 수 있는 준비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성경에 보면 12해를 혈루병으로 앓은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여인은 하루 이틀도 아닌 1년 2년도 아닌 12해를 혈루병으로 앓았으니까 그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는 많은 의원들이 가서 많은 고통을 받았고 재산도 탕진하고 그리고 몸은 더 나빠졌습니다. 또 혈루병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부정한 병입니다. 혈루병을 앓는 환자가 앉은 자리가 부정하고 만진 물건이 부정하고 접촉한 사람이 부정하기 때문에 혈루병 앓은 여인과 가까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나올 수가 없고 성전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문둥병이나 혈루병 앓은 여인은 부정한 병이기 때문에 격리되어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여자는 자기의 남편도 자녀들도 떠나도 부모와 형제도 떠나서 외롭게 혼자 격리되어 살았습니다. 아무도 이 여자는 부정한 여자이니 같이 있거나 그 여자에게 손을 대려고 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피를 흘리고 이제는 빈혈이 극도에 달해서 얼굴을 들어 하늘을 쳐다볼 수 없습니다. 온 몸 전신은 다 쇠약할 데로 쇠약해지고 일어나고 앉는 것도 힘이 듭니다. 그런데 또 부정한 병이기 때문에 아무도 와서 그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암묵이요. 절망이었습니다. 희망의 빛이라고는 추호도 없었습니다. 이젠 죽음의 날만 기다리고 있는 처절한 절망에 처한 여자였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사람이 와서 그에게 예수를 전도해 주었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예수란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시는데 그를 만난 사람은 문둥이도 고침을 받고 앉은뱅이와 절름발이도 일어나고 죽은 자도 살아난다고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이 영혼 속에 불빛이 번쩍였습니다. 아니 문둥이가 낫는다면 나 같은 혈루병도 낳을 수 있지 않겠는가? 나도 그러면 절망하지 않고 다시 건강을 회복해서 기다리는 남편에게 자녀들에게 돌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나도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녀의 마음속에 희망의 불빛이 번쩍했습니다.
여러분 바로 복음이 하는 역사가 그것인 것입니다. 복음이란 절망에 처한 자들에게 놀라운 소망을 주는 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죄인에게 용서받은 소망을 주고 버림받은 자에게 다시 화합할 수 있는 소망을 주고 병든 자에게 치료의 소망을 주고 좌절과 절망에 처하고 가난하고 헐벗은 자에게 축복과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소망을 주고 죽는 자에게 영원한 천국과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소망을 주는 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종교는 우리에게 소망을 줄 수 없고 율법은 우리를 더 묶어 놓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저는 한 주일 동안 필리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소망의 목말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6.25사변 당시에는 필리핀이 우리 보다 훨씬 잘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들이 나쁜 정치 하에서 나라가 완전히 피폐되었습니다. 일반 대중들이 너무나 못삽니다. 국민 소득이 700불에서 800불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소망이었습니다. 나는 전력을 다하여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소망을 주려고 했고 소망을 받은 분들은 물을 만난 고기처럼 뛰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소망을 잃으면 모든 힘을 다 놓쳐 버립니다. 소망을 잃은 사람에게는 말할 힘조차 없습니다.
이러므로 이 혈루병 앓는 여인에게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것은 그것은 바로 소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망이 믿음을 통해서 오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으므로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이 들어와서 우리 마음속에 어두움을 밝히고 소망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복음이 들어와야 개인도 살고 가정도 살고 나라가 사는 것입니다. 정치가 우리를 살리는 것 같지만 정치가 어떻게 우리를 살립니까? 사회 제도와 개혁을 아무리 해 놓아도 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이상 아무리 개혁을 해도 그것이 또 부패하고 또 부정하고 또 부패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대통령도 사람이고 사회도 사람이 만들고 국가도 사람이 만들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모시고 변화를 받아 소망 차게 되면 그 나라가 소망 차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절망적인 여인은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마음에 소망이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자신에 대한 새로운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꿈을 꾼다는 것은 좋습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젊은이가 꿈을 잃으면 허랑방탕하게 되지요. 가장이 꿈을 잃으면 가정을 돌보지 않고 술주정뱅이나 도박을 하다가 망하지요. 한 국가와 민족이 꿈을 잃어버리면 그 나라와 민족은 망해 버리고 식민지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언제나 희망찬 꿈을 가질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에도 우리가 선택하는 대통령이 누가 되든지 우리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잘 살 수 있고 남북이 통일될 수 있고 세계 안에 우뚝한 민족으로 일어날 수 있는 그러한 희망을 주어야 되지 대통령 될 사람들이 서로 헐뜯기에 바빠서 서로 발가벗기에 바쁩니다. 나중에는 완전히 쫙 발가벗고 난 다음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 국민들 앞에 서서 이제 그 벌거벗은 대통령이 어떻게 민족을 이끌어 갈 수 있겠습니까? 지금 무엇이 잘못 되어도 보통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희망을 주려고 해야지 국민에게 희망 줄 것은 제켜 놓고 정권만 손에 쥐겠다고 상대방을 비방하고 헐뜯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이러한 것은 벌써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필요한 것이 희망입니다. 우리는 이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이 난국에서 이 남북 대치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내일에 대한 찬란한 희망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희망을 심어주면 우리는 일어나서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자가 무능해서 희망을 심어 주지 못하면 우리는 다 좌절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혈루병 앓은 여인은 그 복음을 듣고 난 다음부터 그의 마음속에 희망을 얻었습니다. 그는 앉으나 서나 그 마음속에 꿈을 꾸었습니다. 자기 병이 낳고 자기 몸을 이쁘게 단장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그리고 기다리는 남편에게 돌아가서 너무나 자유롭게 서로 만나서 포옹하고 어린 자녀들을 품에 안고 즐거워하며 가정을 세우고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서 서로 식사를 하고 서로 즐겁게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단란하게 살아가는 이러한 꿈을 마음속에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그 꿈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 꿈을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새롭게 꿈을 꿀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 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여자에게 꿈을 빼앗은 자는 바로 원수 마귀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꿈을 심어준 이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종교적인 멍에를 메우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윤리와 도덕을 가지고 협박과 공갈을 치려고 주님이 오신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오신 것은 우리를 건져내서 희망을 주고 우리에게 새로운 꿈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올라갔나요.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을 받으면서도 내려오지 않았나요.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걸머지고 그곳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새로운 꿈을 허락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새로운 꿈을 심어주기 위해서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하기 위해서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말미암아 죄 많은 우리가 죄 용서를 받고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죄인이 어떻게 의롭게 됩니까? 자고 나면 죄요,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다 죄요,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이 누가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우리의 죄가 머리털보다 더 많습니다. 그럼 우리가 무슨 윤리와 도덕적인 행동을 해서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용서받을 길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죄인들에게 꿈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올라가서 우리의 일상의 모든 죄를 당신의 몸에 짊어지시고 몸을 찢고 피 흘려 다 청산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에게 이제는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꿈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를 흘려주셨기 때문에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무너지고 원수된 담이 무너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활짝 손을 내밀고 찾아와서 우리 품에 품어주시고 우리는 하나님 품에 안겨서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 이 놀라운 꿈 말로 다 할 수 없지요.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ㅤㅉㅗㅈ겨나고 난 다음 광야에서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괴로워 그는 다시 에덴으로 돌아오고 싶어서 에덴의 문에 왔지만 그곳에 천사들이 화염검을 가지고 에덴 동산을 지키고 있으므로 그들은 에덴에서 ㅤㅉㅗㅈ겨난 이후로 에덴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스럽고 괴로워서 에덴에 문 밖에 와서 에덴을 바라보고 통곡을 하고 운 적이 한 두번이 아닐 것입니다. 그들 앞에 꿈은 사라졌었습니다. 에덴의 문은 단단히 닫혀 버리고 말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ㅤㅉㅗㅈ겨난 하나님의 품안으로 우리는 도로 찾아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닫혀진 에덴 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열려서 우리는 아버지의 자녀가 되고 아버지는 우리 하나님이 됩니다. 우리는 그의 택한 백성이 되고 왕 같은 제사장이 되고 거룩한 나라가 되고 그 소유된 백성이 될 수 있는 꿈을 가질 수 있으니 우리가 예수 믿고 나올 때에 하나님 앞에 우리 마음이 꿈이 부풀어 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 당한 것, 여러분과 나를 영적으로 육적으로 치료를 베푸는 놀라운 희망과 꿈을 주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병원에서 버림받고 약으로 나을 수가 없고 이제는 당신은 죽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할 때에 어디에다 우리가 희망을 줄 수 있고 어디에다 꿈을 꿀 수가 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쳐다볼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기 때문에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에게 나음을 허락하여 주셨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우리가 꿈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고통스럽고 괴롭고 절망이지만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나는 필리핀 성회 동안에 그런 장면을 많이 보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여기 비디오에서 보았지만 한 젊은 자매, 그는 몸에 암이 다 퍼져서 절망에 처했었습니다. 이제는 살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회의 소문을 듣고 와서 복음을 듣자 마자 그 영혼 속에 큰 새로운 꿈과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는 말씀을 듣고 주님이시여 빈 손들고 가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르짖어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성령의 불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늘 몸이 고통스럽고 이 등뒤에 혹까지 붙어 있어서 괴로웠는데 그 길로 그 암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나는 마지막 주일에 한 할머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남편이 직장암으로 그 암이 밖에까지 나와서 엉덩이 밖으로 암이 나와 그것이 ㅤㅆㅓㄲ어서 냄새가 나고 앉아서 있지를 못하고 그런 고통 가운데 절망에 처해 있었는데 집회의 소식을 듣고 그 부인이 남편을 데리고서 나왔는데 병자 위한 기도를 할 때에 엉덩이에 손을 얻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기도를 받고 집에 갔는데 자고 나니까 아침에 그 암덩어리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임하여서 고쳐주고 그 할머니가 웃는데, 남편을 대신해서 강단에 나와서 얼마나 간증을 하고 깔깔하고 웃는데 그 웃음이 희망차고 꿈에 넘치는 것이었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우리 영감의 엉덩이를 보니까 암덩어리가 사라졌다고, 이렇게 굵던 암덩이가 온데 간데 없다고...
여러분 사람이 희망을 얻고 새로운 꿈을 얻는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릅니다. 희망도 없고 꿈도 없으면 왜 삽니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과 꿈을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필리핀에 가서 제일 강조한 것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면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가난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외친 것입니다. 너무나 가난하고 헐벗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꿈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왜 저주를 받았습니까?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진 창조주가 왜 가난한 마리아의 몸에 태어나고 누울 곳이 없어 말구유에 눕고 33년의 세월 동안에 풍찬 노숙을 하고 거지 생활을 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저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을 저의 가난하심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요 꿈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니 이는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라 꿈을 가져라. 예수를 쳐다보라 환경을 바라보지 말라.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 난다. 가난을 제하고 저주를 제하는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남으로 현실을 바라보지 말고 꿈을 품어라. 잘 살 수 있다는 꿈을 품어라.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는 꿈을 품어라. 꿈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그 꿈을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준다고 거듭거듭 외쳤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디에서 좌절과 절망한 사람들이 꿈을 얻을 수가 있습니까?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아들이 거센 고통과 괴로움을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꿈을 준 처소가 바로 갈보리 십자가 아닙니까? 우리가 그 앞에 엎드려 울고 흐느끼며 그곳에서 새로운 나의 꿈을 가슴속에 품을 때에 그 꿈이 우리를 변화시켜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꿈은 천당 꿈이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천당 꿈을 꿉니까? 예수 십자가 아니고 어떻게 천당 꿈을 꿉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죽음을 대신 죽어 주시고 대신 장사했다가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골짜기를 환한 부활의 빛으로 밝혀 놓았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천당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다는 꿈을 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 믿으니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다고 한 그 꿈을 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원한 부활의 새 생명의 꿈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혈루병을 앓는 여인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꿈을 가진 것처럼 여러분과 나도 그리스도 십자가 밑에 나와서 옛사람을 잊어버리고 지난날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꿈을 꿀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꿈을 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벅차게 마음속에 나의 새로운 꿈을 안고서 꿈 가운데서 우리가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꿈은 얼마 있지 아니하면 믿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혈루병 앓은 여인은 그가 새롭게 되는 꿈을 꾸고 있다가 꿈이 믿음을 산출했습니다. 이제는 그의 마음속에 반석같은 믿음이 들어왔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내가 주님을 만나서 그 옷에 손을 대면 낫는다는 확실한 믿음이 들어온 것입니다. 꿈은 믿음의 어머니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꾸지 않기 때문에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꿈을 가지면 꿈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믿음을 산출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우리가 꿈을 안고 우리가 새벽기도 나오고 마음속에 꿈을 안고 철야 기도하고 마음속에 꿈을 안고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마음속에 꿈을 안고 내가 집에서 들에서나 직장에서나 기도하면 성령은 꿈을 안고 기도하는 사람 속에 믿음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꿈은 바로 믿음을 담는 그릇인 것입니다. 그릇이 없이 여러분 무엇을 담을 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비가 와도 장독간 뚜껑 덮어놓으면 물이 한 방울도 장독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바로 믿음을 담아 놓는 그릇이 꿈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꿈이 없기 때문에 믿음을 못 가지지요. 성령이 믿음을 주려고 해도 꿈이 없는데 어디에다가 믿음을 담겠습니까? 그러므로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꿈을 갖고 기도하게 되면 성령께서 믿음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그 마음속에 믿음이 충만해졌습니다. 이제는 조금도 겁나지 않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겁나지 않습니다. 혈루병으로 어지럽고 태양을 쳐다볼 수 없어도 겁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믿음이 들어 왔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이 들어오면 바라는 것의 보증이 이미 마음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증거가 확실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지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으면 이 산들을 명하여 저 바다에 던져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속에 꿈을 품으면 성령이 꿈을 통하여 우리에게 믿음을 내어 주고 우리가 믿음을 갖고 있으면 이제는 믿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입술로 고백하면 그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입술의 고백인 것입니다. 혈루병 앓는 여인의 신앙 고백을 보십시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그는 일어나 앉아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낳는다 내가 그 옷자락에 손만 대면 나의 모든 고통은 사라진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혈루병 앓는 여인의 집 옆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그는 몸이 아프기 때문에 주님을 찾아갈 수 없습니다. 찾아갈만한 돈도 없습니다. 그를 이끌어 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혈루병 앓는 여인처럼 희망을 가지고 그리고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소가 어딥니까? 예수님의 주소가 바로 우리 가슴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희망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우리가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입술로 신앙을 고백하면 예수님이 찾아올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찾아올 수 있는 길도 만들어 놓지 아니하고 예수님이 어디 계시냐고 외치고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아야지요.
요사이 여러분 생물학자들은 철새들이 떠나간다고 걱정을 하는데 철새들이 와서 살 수 있는 늡지대를 만들어 주면 철새들이 오게 되어 있는 것이요. 늡지대를 없애버리기 때문에 철새가 오지 않는 것이요,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이 안 온다고 불평할 필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올 수 있도록 말씀을 듣고 절망에서 소망을 가지고 꿈 속에 살며 마음속에 믿음을 품고 입술로 믿음을 고백하면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하루 갑자기 그 여자에게 소문이 들려 왔습니다. 예수님이 집 밖에 지나가신다. 당연히 지나가시죠. 예수님이 그렇게 지나가신 이유는 이 여자가 그 믿음을 실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주님이 지나가시는 것입니다. 이 여자는 뛰어 나갔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군중들을 헤치고 그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러 들어가는데 군중들에게 밀려서 이리 쓰러지고 저리 쓰러집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고 일어나서 기어코 손을 내밀어 예수님이 옷자락에 손을 대자 마자 번개같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그는 순식간에 혈루병에서 고침을 받고 만 것입니다. 슬픔은 변화여 기쁨이 되고 절망은 변하여 소망이 되고 죽음은 변화여 삶이 되었습니다. 한없이 고통스럽고 어지럽던 그 몸은 새로워지고 그 심장은 힘차게 붉은 피를 뿜어내고 혈기방장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즐거움이 순식간에 다가오고 순간에 운명이 달라지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는 발걸음을 멈추시고 뒤를 돌아보시면서 누가 내 몸에 손을 대었다. 제자들이 웃으면서 주님이여 이 많은 사람들이 밀고 당기고 손을 대었는데 누가 손을 대었다고 말을 합니까? 아니다. 내가 오도록 기다리고 내가 와서 역사하도록 기다리고 마음을 준비한 사람이 여기에 손을 대어서 내 능력이 그리고 흘러들어갔다. 이 여인이 떨고 나와서 내가 손을 댔습니다. 네가 희망을 가지고 네가 꿈을 가지고 네가 믿음을 가지고 입술의 고백을 하며 내가 올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내가 너희 믿음에 끌러 왔느니라! 주님이 말씀은 안해도 그 말인 것입니다. 딸아 안심하라 너의 믿음이 너를 고쳤으니 평안히 가라!
여러분 이와 같은 준비가 끝나면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혈루병 앓는 여인이 있는 곳을 지나가시면서 혈루병 앓는 여인이 믿음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처럼 여러분과 저도 우리 마음속에 믿음의 역사만 가지면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필리핀에서 한 자매님이 제게 찾아와서 목사님! 나는 몸이 너무나 아파서 한국을 찾아가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국에 갈 수 있는 돈도 없고 몸이 너무 아프고 환경이 되지 못했습니다. 나는 늘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이시여 주님은 내가 직접 못 보나 주의 종이 우리 필리핀에 오면 내가 그에게 안수 기도만 받으면 내가 낳겠나이다. 혈루병 앓는 여인처럼 이 여인은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겠다는 꿈을 가지고 그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업인 선교연합회의 설교를 끝내고 밥을 먹는데 그 분이 뛰어 올라왔습니다. 한번만 내게 손을 얹어 주십시요. 그래서 내가 밥 먹다 말고 내가 일어나서 손을 얹어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순식간에 성령의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는 그 병에 깨끗이 나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준비만 되면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장터에도 찾아오시고 산꼭대기에도 찾아오시고 사무실에도 찾아오시고 교회에도 찾아오시고 혼자 있을 때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혈루병 앓은 여인처럼 복음을 들으십시요. 말씀을 듣고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마음속에 희망과 꿈을 가지십시요. 과거를 잃어버리고 현재를 내어 던져 버리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고통과 괴로움이 있는 과거를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그것을 다 벗어 던져 버리고 십자가를 통하여 나의 새로운 인생을 받아들이십시요. 새로운 꿈을 꾸십시요. 그리고 새로운 믿음을 가지십시요. 새로운 입술의 고백을 가지십시요. 예수님은 그 자리에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 곳이 바로 예수님의 주소인 것입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흑암은 광명으로, 무질서는 질서로, 죽음은 생명으로, 추는 미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슬픔은 변하여 기쁨이 되고 춤이 되는 것입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기뻐 춤추며 그의 기다리는 남편에게 사랑하는 자녀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실망에서 소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의 세계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 됨 같이 내가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것이 우리 주님이 여러분에 대한 간절한 소원인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건져내고 당신의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꿈을 믿음을 주고 능력을 주고 승리를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도 마다하지 아니하시고 올라가셔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무슨 말을 다 하겠습니까? 우리 아버지여 오늘 원하여 기도하오니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사람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희망을 저버리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희망을 갖고 새로운 꿈을 얻게 도와 주시옵소서. 새로운 꿈을 가슴 가득히 담고 살게 도와 주시옵시고 꿈속에 믿음이 넘쳐나게 도와 주시옵시고 입술의 고백, 믿음의 고백을 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예수님과 항상 손을 잡고 기적에서 기적을 체험하며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