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 16일
제 목 :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성 구 : 살전 5:16-18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1620년 영국의 청교도들이 국교를 주장하는 정부의 혹독한 핍박을 피하여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가 자유롭게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102명이 메이플라워라는 조그만 범선을 타고 항해함으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65일이 걸려 구사일생으로 거친 대서양을 건너 미국 동부 플라이머스에 상륙했습니다. 그해 겨울 혹독한 추위와 풍토병과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말미암아 그만 절반 가량의 이민 온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지어 이듬해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얻은 후 그 동안 농사를 도와준 인디안들을 초청하여 하나님께 크게 감사 예배 드린 것이 추수감사절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수많은 역경과 고난으로 꽉 들어찬 경우에도 불구하고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아니하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갖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이것을 크게 기뻐하사 그 미국을 풍성히 축복해 주셔서 오늘날 지상 최강이요 최대의 부자나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들도 이 미국의 청교도처럼 역경과 환난과 어려움에 처할 때 어떠한 태도로써 인생을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어렵고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지극히 가까운 곳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첫째로, 너희는 항상 기뻐하라 이것이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슬퍼하고 탄식하고 부정적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마음에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즐거움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떡해야 항상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있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기뻐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을 때 그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부모에게 미움을 당하거나 부모 없는 고아가 되었을 때 마음에 슬픔과 좌절이 가득 차게 되지 않습니까? 부모에게 사랑을 받는 어린이들은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혹은 남편의 사랑을 받는 부인들의 얼굴에 광채가 납니다. 그것은 남편이 부인을 사랑해주기 때문에 그 마음속에 기쁨이 있습니다. 부인의 사랑과 따뜻한 손길의 돌봄을 받는 남편은 어깨가 쭉 펴지고 가슴이 뿌듯하며 용기와 힘이 생기고 나가서 활동할 때 기쁨과 즐거움이 마음에 충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서로 이웃간에 사랑하면 이웃간에 기쁨이 충만하고 웃음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분의 사랑을 받는 것도 기쁜데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 우리가 기뻐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를 흘리기까지 해주셨는데 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난 다음 마음속에 기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 찬송에 보면 “주의 사랑 비칠 때 기쁨 오네 근심걱정 물러가고 기쁨 오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비쳐올 때 우리의 영혼 속에 기쁨이 넘쳐나고 즐거움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보면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되면 주님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님의 우편에는 즐거움이 넘치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마음속에 기쁨을 갖고 살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사람이 늘 우울하고 좌절하고 절망한다면 그는 잘못 믿는 것입니다. 그는 신앙 속에 들어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속성은 기쁨이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기쁨이 부은바 되는 것입니다.
시편 4편 7절에 보면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기쁨을 주셔서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갖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뻐하라 이것이 너희 힘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슬퍼하면 힘이 다 쫙 빠져버립니다. 그러나 기쁨이 충만하면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신바람이 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하더라도 신바람이 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쁨으로 말미암아 신바람이 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신령한 사람이 된 것을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옛날 육체의 사람이 되어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에 포로가 되고 마귀의 노예가 된 삶을 살다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육의 사람이 멸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을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받으라” 하나님은 우리를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새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죄악을 벗어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죄의 유혹과 죄의 모든 힘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은 새사람입니다. 옛사람 육체의 사람은 죄의 노예가 되나 신령한 사람은 죄를 지배하고 죄를 다스리며 죄를 쫓아내는 능력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신령한 사람이 되므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육체의 사람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소외되고 멀리 떠나고 외롭고 고독한 사람이지만 신령한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기뻐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육체의 사람은 마귀의 지배를 받고 육신의 질병과 고통의 노예가 되어있지만 신령한 사람은 마귀를 짓밟고 쫓아내며 예수 이름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또한 육의 사람은 이 세상의 저주의 노예가 되고 가난에 끌려가며 좌절하고 절망하지만 신령한 사람은 이제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살므로 운명과 환경을 지배하며 저주를 내어쫓고 가난을 짓밟아 버리고 아브라함의 축복으로 넘치는 삶을 살수 있게 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또한 육의 사람은 멸망하는 사람입니다. 육체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변화된 신분을 생각할 때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옛사람을 생각하지 말고 새사람을 생각해야 되며 옛말을 하지 말고 새말을 해야되며 옛노래를 부르지말고 새노래를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으므로 새로운 꿈과 환상을 가지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이름이 천국에 녹명된 것으로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됩니다.
누가복음 10장 19절로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모심으로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돼 있습니다.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하늘에 우리 집이 있고 천국의 시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져도 염려하지 아니할 것은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네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 있는 곳에 나도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주님과 함께 있을 사람들은 그 이름이 하늘에 녹명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실 사람들은 그 이름이 하늘에 녹명되어 있으므로 언제나 당당하게 하늘에 올라가서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우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원한 영광의 처소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마음속에 기뻐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기쁨을 택하고 슬픔을 택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즐거움을 택하고 우울과 좌절을 택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이 세상을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선택해야 됩니다. 그림자를 선택하는 사람은 언제나 처마 밑에 있고 나무그늘에 있어서 언제나 그림자 속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찬란한 태양빛 아래 가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태양빛을 택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뜻은 슬픔을 택하지 말고 기쁨을 택하며 좌절을 택하지 말고 즐거움을 택해서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 앞에 방실방실 웃는 모습으로 나올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쁘게 받아주시고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의 개인의 가슴속에도 기쁨으로 채워 넣으십시오. 여러분의 집에 들어가서도 기쁨으로 가정을 채워 넣으십시오. 여러분의 일터에도 주위환경에 기쁨을 전파하십시오. 즐거움을 전파하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온통 기쁨이 충만할 때 모든 사람들이 신바람이 나며 생기가 넘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살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는 오늘날 기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왜 사람들이 그렇게 운동경기에 열광합니까? 별로 기뻐할 것이 없기 때문에 운동 경기를 통해서 속시원한 기쁨을 주기 때문에 기뻐하고 나이 어린 박찬호가 왔는데 온 세상 사람들이 그를 영웅으로 만드는 이유도 그들이 그 경기를 통하여 그 마음속에 기쁨을 얻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기쁨은 영혼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것이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감각으로 느끼지 않지만 쉬지 않고 우리는 숨쉬고 있습니다. 우리는 깨어있을 때도 숨쉬고 의식이 없이 잠잘 때도 숨은 자동적으로 쉬고 있습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죽어요. 영적인 호흡은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마음을 하나님 중심으로 해서 찬양하면 손으로 일하면서 마음은 하나님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몸은 부지런히 세상에서 일하면서도 마음은 찬양해요. 잠을 잘 때라도 성령의 폭풍에 휘말려 마음속에 늘 하나님께 기도하고 늘 찬양하며 살고 아침에 깨어나면 은혜가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한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은 항상 하나님을 사모하며 우리의 마음과 육체가 일할지라도 영은 기도하고 찬미하며 지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을 성령충만케 해서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숨을 쉴 때는 산소를 흡입하고 탄산가스를 내뿜는 것처럼 우리는 항상 기도를 통하여 성령을 모셔들이고 죄악을 토해내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고 우리 마음속의 죄악을 토해내고 그래서 우리 속에 하늘나라의 신령한 은혜가 충만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바로 하나님과의 사랑의 대화인 것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정을 깊게 하며 더 나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대화가 단절되면 오해가 오해를 낳고 미움이 미움을 낳아서 나중에는 큰 파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북한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려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늘 거짓말하고 속이고 발을 뻗고 대화를 안 하려하고 대화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화를 하면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게 되기 때문에 북한은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면 그 나라가 무너지므로 그것을 못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정부 차원에서나 민간차원에서 대화를 하려고 하는 것은 대화를 통하여 서로 이해하게 되고 동정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이웃과 너무나 담을 쌓고 있으면 이웃간에 정이 없습니다. 이웃간에 담을 쌓지 말고 엘리베이터에서도 서로 즐겁게 인사하고 시장터에서도 만나면 대화하고 인사하므로 이해와 동정과 사랑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대화가 단절되면 미움이 쌓이는 것입니다. 대화가 계속 되면 미움은 떠나가고 사랑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과의 기도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매시 하나님과 대화하면 하나님과의 이해와 동정과 사랑이 깊어지고 하나님도 우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시고 우리도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하고 하나님과 손을 잡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전혀 기도하지 않다가 나중에 어려움을 당할 때 그때 가서 갑자기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달라고 부르짖으면 하나님과 우리가 전혀 이해와 동정과 사랑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일할 수가 없습니다. 평소에 늘 기도해 놓으면 하나님과의 동정과 사랑이 깊어져서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주께 부르짖으면 주님이 오냐 내가 있다 순식간에 와서 우리 손을 잡고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절로 2절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때에 너를 듣겠다고 했는데 듣는다는 것은 뭐냐하면 기도하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구원을 베풀기를 원하고 계시지만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때를 헛되게 보내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기 성경에는 바울 선생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 하나님이 지금 보좌에서 놀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를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는 데 이 하나님의 역사를 헛되게 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헛되게 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헛되게 하는 것은 기도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은혜 베풀 때 너를 듣겠다고 했는데 듣기 위해서는 부르짖어야죠. “너희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큰 비밀, 비밀은 우리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계획하지도 않았어요. 사람이 꿈꾸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서 문이 열리고 그런데서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돼요. 외쳐야 돼요. 성경에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하셨습니다. 간구라는 것은 간절한 기도를 말하는 것이요, 간절한 기도라는 것은 정성이 담긴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도 정성을 담습니다. 제가 어릴 때 우리 할머니와 같이 살았는데 저희 아버님이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떨어지고 가산을 탕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생하게 될 때 이른 새벽에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추운 날도 할머님이 일어나셔서 밖에 나가서 그 찬물에 머리를 감습니다. 난 너무나 놀랬어요. 할머니하고 같이 살았으니까 할머니가 새벽 4시반이나 5시에 나가면 따라가는데 그 추운데 얼음을 깨뜨려서 추운 물에 머리를 감고 빗으시고 난 다음에 장독간에 조그만 그릇에 냉수를 떠서 얹고 난 다음에 비는 것입니다. 우리 할머니는 열렬한 불교신자였는데 기도할 때 는 꼭 하나님께 기도해요. 보통 때는 늘 나무아미타불 하는 사람이 그 장독에 물을 올려놓은 다음 하늘의 하느님 웃물에 세수하고 곡식에는 제비같은 내 아들 살려주십시오. 내 아들 살려주십시오. 내가 속으로 보통 때는 불교를 믿고 기도할 때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참 괴이하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 할머님께서 70이 넘으셔서 제 전도를 받아 예수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세상에 믿지 않을 때도 기도할 때 정성을 드리기 위해서 냉수에 머리를 감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 너무나 정성이 없어요. 기도하는데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정성을 드려야 하는데 전혀 정성을 드리지 않고 그냥 기도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오히려 모욕을 느끼지 않습니까? 우리가 적어도 기도를 드리려면 그럴 정도로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고 그런 다음에 이른 새벽에 와서 기도하든지 철야 기도하든지 금식 기도하든지 기도하고 우리의 귀한 것, 물질 드려서 하나님께 제물 삼고 정성을 바쳐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어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이와 같은 부르짖고 간구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영적인 자아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로 8절에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우리가 기도하고 구하여서 과실을 자꾸 맺으면 우리가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신령한 과실을 맺고 마음의 과실, 건강의 과실, 생활의 축복의 과실을 맺으면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하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과실을 맺게 하겠다고 말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끊임없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뜻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좋을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좋지 않을 때도 감사하고
일시적으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감사하는 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망과 탄식은 상처를 깊게 하나 감사는 치료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과거에 슬픔을 당했던 일, 과거에 원망할 일, 과거에 고통 당한 일을 생각하고 지금 자꾸 그것을 불평하고 원망하면 과거의 상처가 도로 살아나서 우리의 상처가 곪아터지고 점점 더 고통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를 들어서 좋지 않은 것조차도 감사하면 감사는 위대한 치료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상처 입은 모든 것을 말끔히 씻어주고 치료해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빌립보서 4장 4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성경축시가인 마테오 헨리는 하루는 저녁 설교를 하고 집에 돌아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안 죽을만치 얻어맞았습니다. 그는 실신하여 쓰러져서 아침 새벽 이슬을 맞고야 비로소 실신한 자리에서 깨어났습니다. 망신창이가 되도록 얻어맞고 사람들이 그를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집에서 치료를 받고 난 다음 건강을 회복해서 교회에서 강단에 섰을 때 그는 세 가지 강도 만난 일에 대한 감사의 설교를 했습니다. 첫째로 그는 말하기를 내가 강도를 맞아도 얻어맞긴 얻어맞았으나 안 죽은 것을 감사합니다. 죽을 수도 있는데 얻어맞고도 안 죽고 살아났으니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둘째로 그는 말하기를 나도 예수 안 믿었으면 저런 강도가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데
나는 예수 믿어서 강도가 되지 않고 목사가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강도가 와서 내 돈은 빼앗아 갔으나 내 믿음은 뺏어가지 못 했으니 감사합니다. 빼앗아갈 수 없는 보화를 가졌으니 감사합니다. 그는 강도 만나서 얼마나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강도 만난 것을 감사함으로 그 마음의 치료를 받았습니다. 남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입은 상처가 감사할 때 모두다 치료받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축복을 감사하면 그 행복이 지금도 넘쳐나는 것입니다. 과거의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면 과거의 행복의 물줄기가 지금까지 이어져서 지금 마음속에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면서 현재를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 투정은 자기와 듣는 자를 불행하고 괴롭게 만듭니다. 대개 하루종일 회사나 세상에서 일을 바쁘게 한 남편들이 집에 돌아와서 부인에게 동정을 얻으려고 여보 오늘 어땠어? 물어보면 오늘 죽을 고생을 했어. 상사에게 꾸중을 듣고 밑에 놈들 말 안 듣지 물건 판 곳에서 물건 값 안 내지. 오늘 고생 많이 했어. 그렇게 하면 부인에게서 동정을 받을 줄 아는데 그걸 듣는 부인은 마음이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여러분 원망과 불평과 투정은 자기와 듣는 자를 괴롭게 하고 불행하게 합니다. 남편이 하루종일 회사에서 일하고 돌아왔는데, 집에서 오늘은 어땠어? 물어보니까 오늘 말도 못 해요.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 애들은 말을 안 듣지 빨랫감은 많지 빚쟁이들은 빨리 돈갚으라고 그러지 사는게 아냐 그러면 회사에서 수고하고 온 남편의 마음이 고통스럽기 이루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남에게 동정을 받으려고 나약한 투정을 하지 말아야 돼요. 회사에서 여간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집에 들어오면, 여보 오늘 어땠어? 하면 좋았어! 오늘 당신이 기도해주고 해서 오늘 힘내서 잘 했어. 오늘 우리 저녁에 즐겁게 지내자! 그러면 듣는 부인이 기분이 좋고 용기가 납니다. 또 남편이 집에 돌아와서 여보 오늘 어땠어? 물어볼 때,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오늘 집에서 일도 열심히 해서 집안도 깨끗이 청소하고 애들 투정이 좀 많았으나 잘 다스려주고 얼마나 사는 것이 기쁜지 몰라요 좋아요. 그러면 남편이 기분 좋고 확 용기가 생깁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꼭 동정을 받으려고 투정하고 자기가 얼마나 고생했다는 것을 알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아주느냐 하면 듣는 사람이 속으로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긍정적인 말, 적극적인 말, 창조적인 말, 기쁨의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꼭 이렇게 하세요. 그렇게 해야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현재를 감사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따릅니다. 어떤 형편이건간에.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좋지 않은데 왜 감사해야 하냐고 말합니다. 병들었는데 감사해야 돼요? 사업이 망했는데 감사해야 돼요? 부도났는데 감사해야 돼요? 도적 만났는데 감사해야 돼요? 그럼요! 왜? 감사해야 하나님이 능력을 끌고 와서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셨으므로 병들었을 때 감사하면 치료하는 구원이 다가오는 것이요, 화가 날 때 감사하면 복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다가오는 것이요, 도적 만났을 때 감사하면 도적을 잡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운명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감사해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하고 더 악하게 만들어버리고 설상가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감사는 곧 하나님의 능력을 불러와서 119 불러오듯이 하나님의 능력이 감사할 때 다가와서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울면서도 감사하고 억지로 감사하고 생각할 수 없는 처지에서도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할 것은 그것에서 구원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린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노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를 감사하면서 살아야 돼요.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우리는 코앞에 일어날 일도 알지 못합니다. 미래를 알지 못하므로 언제나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미래를 손안에 잡고 있는 그분을 알고 있습니다. 미래를 운전하는 그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분이 나의 목자요 나를 인도하고 이끌고 보호하고 살피고 돌보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사람은 미래를 염려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고 다가오는 내일을 기쁨으로 기대하고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미래를 하나님 없이 바라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손길을 통하여 미래를 바라볼 때 우리는 희망차고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미래는 무엇입니까? 천국의 영광의 약속을 우리가 갖고 있지 않습니까? 요한계시록 22장 3절로 5절에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의 운명인 것입니다. 이렇게 찬란한 미래를 가진 사람들이 현재를 감사하며 찬송하며 지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행을 하는 사람은 여행이 괴롭고 숙소가 좀 좋지 않고 또 산에 오르고 내리는 것이 고통스러워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왜냐하면 여행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곳에서 살라고 하면 원망과 불평할 것입니다. 굴속에 들어가서도 보고 좋다 좋다 하는 것은 여행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행인과 나그네와 여행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땅에는 영원한 처소가 없습니다. 우리는 잠시 잠깐 후에 이 땅을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나가는 이 인생 길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 나은 내일을 바라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꼭 농사를 지어서 감사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1년 살아온 삶의 결실, 은혜의 열매, 생활의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우리 모든 삶 전체에서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은혜를 받고 무시하는 사람,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도 있지만 은혜를 감사로 받는 그 사람이 복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에게도 은혜 받은 것을 감사해야 되겠지만 햇빛을 주시고 공기를 주시고 물을 주시고 삶을 주신 우리 하나님께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너무나 쉽고 다 알려진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실천하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기뻐하지 않고 슬퍼하고 기도하지 않고 탄식하고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한 죄를 오늘 다 씻어내게 도와주시옵시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오늘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고 힘쓰고 애쓰는 우리들이 되어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기림을 받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