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3월 22일
제목: 다윗, 사울 그리고 골리앗
성구: 삼상 17:31-37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다윗, 사울 그리고 골리앗"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블레셋의 대장군 골리앗 앞에서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과 그의 군대는 풍전등화와 같았고, 다윗은 당당했습니다. 그들은 다같이 하나님의 선민이며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울과 그의 군대는 골리앗의 기세에 눌려 혼비백산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어린 목동 다윗은 의기양양하여 골리앗의 기운을 압도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들은 현재 우리 나라를 엄습한 IMF 경제난국을 골리앗처럼 바라보고 있습니다. IMF 경제난국인 골리앗의 기세에 눌려 파산 당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IMF 경제난국이란 골리앗의 기를 억누르고, 그 기를 꺾고 오히려 더 큰 발전과 성공을 가져올 것인가는 우리들의 신앙 의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어떻게 해서 다윗은 골리앗을 정복했는데 사울과 그 군대는 골리앗 앞에서 혼비백산하고 뒤로 물러갔습니까?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현실의 잘못된 상황을 통분히 여기느냐, 그렇지 않느냐? 여기에 관건이 있습니다. 사울은 골리앗의 모욕적인 도발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도망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래서 골리앗이 와서 고함을 치고 산천 초목이 쩡쩡 울리면 사울과 그 군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공포로 말미암아 숨을 곳을 찾는다고 모두 다 땅에 기고 엎드리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의 도전 앞에 무너지는 이스라엘의 군대의 사기를 보고 통분히 여겼습니다. 사람이 현실의 어려움을 바라보고 통분히 여기지 아니하면 그 어려움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사무엘상 17장 26절에 보면 "다윗이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이 골리앗 앞에서 혼비백산하여 모두 다 꼬리를 감추고 도망을 치는 이 마당에 소년 다윗은 통분히 여겼습니다. 이것이 무엇이기에 감히 사신 하나님의 군대를 이렇게 모욕하는가? 골리앗 앞에 도망을 치는 이스라엘 군대를 보고 그는 마음에 굉장히 통분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사울과 다윗의 다른 점입니다. 사울은 통분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그저 겁에 질려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절절 매었지만 다윗은 그 행실 없는,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보고 마음 아프게 여기고 원통하여 여기고 분노를 느낀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에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이라고 성경은 마태복음 5장 4절에 말했습니다. 우리들의 현실적인 상황을 바라보고 마음에 애통하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쓰지 않습니다. 우리가 현실 IMF라는 이 골리앗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애통하고 원통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이 민족이 여기에서 구출함을 받고 나올 수가 있고 하나님이 이 민족을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상황을 바라보고 통분히 여기는 정치인들이 많이 생겨나야 합니다. 정치인들이 이것을 보고 가슴을 치고 통분히 여기고 마음에 울분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달려들어야지 나라야 흥하든 망하든 우리야 당리당략만 얻으면 된다. 그까짓 것 생각할 게 있느냐. 국민이야 헐벗고 굶주리든 죽든 살든 우리만 권력을 얻고 행사하면 된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다면 하나님이 그러한 나라는 도와주지 않습니다. 현실적 상황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며 통분히 여기는 정치인들이 있어야 합니다.
현실적 상황을 바라보고 통분히 여기는 실업인들이 있어야 합니다. 어찌하든지 탐관오리나 해서 돈이나 벌지, 나라야 흥하든 망하든 돈이나 벌면 된다. 이러한 실업인들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회사는 망하고 사원들은 다 길거리에 허덕여도 나는 뒤로 돈을 많이 빼돌려서 나만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면 되고 돈보따리 싸서 외국으로 도망을 치면 된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나라는 망합니다. 통분히 여기는 실업인들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해서 나라가 이 꼬락서니가 되었으니 우리가 뼈를 깎는 고생을 다하더라도 나라를 살려야 되겠다. 우리가 스스로 빼돌린 주식이라든지 집이라든지 다 팔아서 사업에 투자하고 빚을 줄이고 나라를 살려야 되겠다. 직장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되겠다. 통분히 여기는 그러한 실업인들이 있어야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통분히 여기는 노동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노동 분쟁만 할 것이 아니라 누가 잘 했다 못했다 하지 말고 이제 있는 힘을 다하여 3D 직종의 일이라도 부지런히 하고 더 많은 시간 과외의 시간을 내어서라도 경제 건설에 피땀을 흘리고 노력을 하겠다는 그와 같은 통분히 여기는 노동자들이 생겨야 되고 통분히 여기는 국민들이 생겨나서 호화 사치 낭비를 버리고 어찌하든지 절약하면서 나라 경제를 살리겠다는 마음이 생겨야지 또 다시 호화 살롱에 사람들이 자리가 메이도록 꽉 들어차고 백화점에 외제품 코너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축복을 해 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통분히 여기는 자만이 분발하여 개혁과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개인의 삶도 한가지입니다. 개인의 삶도 자기의 현실적인 삶의 모자람을 바라보고 마음에 통분히 여겨서 눈물을 흘리며 각오와 결심을 하는 그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은총과 사랑을 배풀어 줍니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나는 세태를 따라 그냥 살아가면 그뿐이다 흥하든 망하든 알 것이 무어냐 이렇게 하면 그러한 사람을 누가 하나님이 도와주겠습니까? 처자를 잘 먹여 살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통분히 여기는 가장이 있어야 하고 남편과 자녀들을 잘못 돌보아주는 것을 통분히 여기는 주부가 있어야 하고 부모를 잘 섬기지 못하고 또 열심히 공부하지 못하는 이 현실을 통분히 여기고 가슴을 치는 그러한 자녀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이면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과 그 군대가 골리앗 앞에서 일신의 보호를 위해서 도망치기에 바쁠 때에 목동 다윗은 골리앗에 대해서 통분히 여겼습니다. 이 어쩐 일인고. 어찌 감히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고,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는 통분히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을 사용하지 않고 어린 다윗을 사용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대한 확실한 지식이 있어야만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17장 33절에 보면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겠다고 그러는데 사울은 하나님의 말은 한 마디도 안 했습니다. 사울은'다윗 너는 아직 어린 소년이고 저 골리앗은 어릴 때부터 용사요 장군이라 네가 나가서 싸워 그를 이기지 못한다' 여기에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종교는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위기에 처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그러한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비록 조그마한 초립동 목동이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체험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4절로 37절에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었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이 얼마나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체험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사울은 하나님에 대한 말도 안 했는데 다윗은 내가 비록 어린 소년이요 목동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셔서 사자도 치고 곰도 치고 사자의 이빨과 곰의 발톱에서 나를 건진 하나님께서 이 블레셋 사람에게서 나를 능히 나를 건져 주신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체험적인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하고 그를 극복하려고 하면 하나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현실 환경만 바라보고 두려워하고 떨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까?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 그 하나님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갈보리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그 십자가 위해서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 죽으면서 우리에게 전달하는 하나님의 메세지를 우리가 분명히 안다면 우리는 어떠한 위기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서 6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메세지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는데 이 메세지를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어야 골리앗을 대적할 수 있습니다.
이 메세지는 무엇입니까? 용서와 의의 메세지가 십자가에서 넘쳐 나오는 것을 듣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너의 모든 죄를 내가 용서한다. 네가 믿기만 하면 내가 의롭게 만들어 준다. 그러므로 용서와 의를 받으라.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 메세지를 받고 회개하고 용서와 의를 받아 당당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우리를 초청하고 있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멀리 있던 너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너희를 가깝게 하였느니라 나에게 오면 내가 너에게 성령을 부어주고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겠다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메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내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확신을 얻고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이 나의 친 아버지가 되시고 나는 그의 친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가슴을 펴고 당당할 수가 있습니까? 곰이나 사자를 보고 두려워하겠습니까? 골리앗을 보고 두려워하겠습니까? 천지와 만물을 지은 하나님이 내 친 아버지가 되고 내가 친 자식이 되니 그 아버지께 기도하고 성령을 의지하고 나가는데 무엇을 두려워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므로 십자가 위해서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하나님의 메세지를 우리가 분명히 알아듣고 깨달아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치료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저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메세지에 귀를 기울이고 그 하나님의 메세지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질병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우리가 암이나 폐병이나 관절염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는 골리앗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메세지를 십자가에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을 하셔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우리에게는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오늘도 하나님은 축복과 형통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귀 담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려 함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전달해 오는 그 메세지에 귀를 기울여서 그 메세지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저주에서 해방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난에서 자유를 얻을 수가 있고 마음에 큰 신념을 얻고 나갈 수 있고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은 천국 영광의 초청을 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 땅에 우리 장막 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는 영원한 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메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영원한 집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에게 전달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해 주시는 그 메세지를 우리가 분명히 듣고 마음에 깨달음을 얻고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얻으면 우리의 앞날에 우리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한 확신을 얻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사울은 인간적으로 골리앗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두려워했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골리앗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우리의 개인의 운명이나 국가적인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십자가를 쳐다보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달한 이 오중복음과 삼중 축복의 확실한 메세지를 마음에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 메세지에 의지해서 우리의 환경에 다가오는 골리앗을 바라보고 두려워 말고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세째로, 우리가 담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담대함이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사울과 그 군대는 골리앗이 한번 외치니 모두 다 혼비백산하여 달아났습니다. 담력이 없습니다. 두려움으로 꽉 들어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담력을 가지라고 말을 합니다. 모세가 죽었을 때 그 모세 다음으로 여호수아를 세우시고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실 때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여호수아서 1장 5절로 9절에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기에 보십시요. 여호수아가 이길 수 있는 길은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거듭거듭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내가 너와 같이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똑같은 말씀 아니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볼찌어다 세상 끝날 까지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그러므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여러분 강하고 담대한 마음이 없으면 우리가 우리의 운명에 처한 골리앗을 넘어뜨릴 수가 없습니다.
사울은 강하고 담대한 마음이 없었어요. 사무엘상 17장 24절로 25절에 보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더러는 가로되 너희가 이 올라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비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하게 하시리라" 너무 너무 두려워해 가지고서 왕이 하는 말이 골리앗을 이기는 사람에게는 내가 내 딸을 주고 사위로 삼고 이스라엘에서 자유케 하여 마음대로 살도록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두려움으로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나 강하고 담대한 다윗을 보십시요. 사무엘상 17장 32절에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이스라엘의 역전의 용사들이 다 도망을 치는데 조그마한 목동이 와서 그를 인하여 낙담하지 말지라 내가 가서 싸우겠다. 그는 담대했습니다. 하나님은 담대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환경을 바라보고 겁이 나서 움추려서 뒤로 물러가는 사람 하나님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신념을 가지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눈을 부릅뜨고 용기와 힘을 가지고 담력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겁장이는 하나님이 절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담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히브리서 10장 35절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담대하기 위해서는 항상 말씀을 묵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8절에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우리 하나님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하면 하나님과 친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마음에 담대함이 생기고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제가 매일같이 여러분에게 일독성경을 읽으라고 하는 것은 매일 일독성경을 읽음으로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고 정보를 얻고 하나님과 친해지기 때문에 이 세상일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담대하기 위해서는 깊이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나님 앞에 깊이 기도하고 나면 마음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다 안개 구름 같이 사라지고 그 대신에 용기와 담력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돕기 위해서 보헤사 성령님을 보내 주셨기 때문에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가 중대한 일을 당할 때는 내 마음에서 고개를 숙이고 성령님, 성령님이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합니다. 성령님 나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편 3편 6절로 7절에 "천만인이 나를 둘러 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빰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성령이 일어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순종의 삶을 살아야 담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살면 양심이 고통스러워 담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삶을 살 때에 마음에 거리낌이 없고 우리 마음속에 담대함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네째로, 불가능에 도전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울왕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믿음이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할 수 없다 안 된다 못한다는 것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믿음으로 도전을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33절에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했었습니다. 다윗을 보고 너는 저 골리앗과 못 싸운다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윗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7절에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다윗은 불가능에 대해서 도전하기를 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안 된다고 말할 때에 다윗은 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불가능에 도전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자기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도전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로 2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었으면 태산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었으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우라 이것은 도저히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데 도전하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불가능에 도전하고 나가는 것이 하나님 믿는 사람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고 타당성이 있는 일을 하지만 하나님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불가능에 도전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지식과 꿈을 가지고 불가능에 도전하면 하나님이 같이 하십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 중에 10정탐꾼이 40주 40야를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왔을 때에 그 열 사람은 도전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성은 높고 땅은 황폐하고 또 사는 사람들은 다 대장부라 우리는 메뚜기 같다 우리는 못 들어간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아니라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우리 들어가자. 하나님이 원하시면 우리는 점령한다. 도전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불가능에 도전하지 않는 열 사람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광야에서 다 멸하시고 불가능에 도전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후손을 데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오늘 현실에 IMF의 경제적 위기를 당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우리는 절망이다 안 된다 망한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도전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내 믿은 대로 될지어다 태산을 향해서 우리가 믿음으로 도전하면 골리앗은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기적을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이성주의자였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8절로 39절에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투구를 그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전쟁에 이길려면 자기 왕이 입고 있는 군복을 입고 자기가 하는 놋투구를 쓰고 자기의 갑옷을 입고 자기의 칼을 차야 된다. 이러한 완전 무장을 하지 않고는 전쟁에 이기지 못한다. 그는 이성주의자였습니다. 합리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과 같이 있는데 무슨 특별히 투구가 있어야 이기고 갑옷이 있어야 이기고 칼이 있어야 이기느냐?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내 있는 그대로 가도 이긴다 그 말인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언제나 계산에 넣지 않았습니다만 다윗은 자기의 하는 일에 언제나 하나님을 계산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기적을 기대했기 때문에 사울상 17장 40절로 44절에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블레셋 사람이 점점 행하여 다윗에게로 나아오는데 방패 든 자가 앞섰더라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그런데 여기에 다윗이 뭐라고 대답을 했습니까? 다윗은 나는 사울의 투구를 쓰고 사울의 갑옷을 입고 사울의 칼을 가졌다. 현대식 무기로 무장했으니 나오라 그렇게 말했습니까? 아닙니다. 다윗은 그의 하는 일에 언제나 하나님을 보태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계산에 넣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로 47절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여기에 사울과 다윗의 다른 점이 있습니다. 사울은 현대 무기를 가지고 나아가야 골리앗과 대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윗은 있는 그대로 목자의 제구 물 멧돌 다섯 개를 들고서 하나님이 같이 계심으로 하나님이 싸워 주신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 있어서 안 믿는 사람들은 자꾸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동원을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우리의 삶 속에 십자가를 플러스해서 언제나 하나님을 계산에 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계산에 넣지 않지만 우리 개인이나 우리 가정이나 우리 국가가 위대한 능력을 나타내려면 하나님을 계산에 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저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저가 너를 돌보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계산에 넣으면 천지와 만물을 지은 하나님이 같이 계시는데 무슨 인간의 투구나 갑옷이나 칼이 그렇게 소중한 줄 압니까? 우리에게 있는 그것만 가지면 충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입니다. 시간과 공간과 역사와 시대의 조류와 인간의 환경과 운명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불어오면 모든 문제가 끝장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IMF 경제 난국이라는 것도 우리가 자꾸 인간적으로 애를 쓰고 힘을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 어려운 문제에 하나님을 보태면, 하나님을 계산에 넣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한번 명령하시면 모든 것이 다 끝장 나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어려움은 먼지와 티끌같이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우리 계산에 넣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개인과 국가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블레셋 장군 골리앗 앞에 선 사울과 다윗는 똑같은 이스라엘인이요 하나님의 선민이었고 하나님의 선민의 특권을 똑같이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을 패장지졸이요 다윗은 승리의 장군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신앙 자세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IMF 경제 위기의 골리앗 앞에선 우리들이 다윗처럼 바른 신앙과 생활 태도를 가지면 넉넉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IMF라는 경제난국의 골리앗 앞에 서서 혼비백산하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똑같은 이스라엘 백성인데 사울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칠 때 다윗은 당당히 서서 그 골리앗을 쳐서 넘어뜨리고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 교회 우리 성도들,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이 모두 다 다윗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현실의 생활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통분히 여기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고 믿음으로 나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운명과 환경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시키고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야웨 하나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살아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합니다. 우리 아버지 아픈 데 손을 얹고 주를 앙망하오니 주의 권세와 능력으로 우리 병을 다 고쳐 주시옵소서. 우리 손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 주셔서 마귀의 일을 멸하여 주시옵시고 질병을 뿌리 뽑아버려 주시옵시고 치료의 권세와 능력이 나타나 주시옵소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질병과 고통은 각자의 몸에서 떠나갈지어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라.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예수 이름으로 간구하오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개인 문제, 가정 문제, 생활 문제, 사업 문제 여러 가지 문제에 짓눌려 있습니다. 이 문제들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아버지 태산을 옮기는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간구합니다. 야웨 하나님이여 이 모든 문제들을 옮겨 주시옵시고 해결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써 변화를 받게 도와 주시옵시고 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직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업이 재기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게 도와 주시옵시고 일용할 양식을 얻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이 넘쳐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용기와 힘을 얻고 나아가 불가능에 도전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며 새로운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적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