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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4월 12일 제목: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 성구: 빌립보서 3:10-12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절대 절망에 대한 절대 소망의 선포입니다. 인간은 아담의 타락 이후 죄책과 정죄의 절망, 삶의 허무와 무의미의 절망, 죽음과 무로 돌아가는 절망에 처하였습니다. 인간의 어떤 노력도 죄에서 해방될 수 없고, 온데도 갈데도 모르는 한시적인 삶속에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없으며,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절망을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으로 오셔서 인간을 대신하여 죄와 허무와 죽음을 짊어지시고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의 죄를 깨끗이, 영원히 청산하시고 우리에게 영생토록 하나님을 섬기는 삶의 목적과 가치를 제공하시고 사망과 무를 깨끗이 정복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절대 절망에서 절대 소망을 가져오신 분이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절망 사건은 정복되고 소망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바울 선생은 이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과 그 고난을 깊히 체험하고 알기를 원했습니다. 첫째로, 그는 그리스도와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고자 했습니다. 고난이 있고 난 다음에 부활이 있는 것이지, 고난 없는 부활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구원 사건을 깊이 이해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단지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에 바울사도는 십자가에 우리가 함께 동참함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복음을 전파할 때나 복음을 들을 때에 다 알고 있는 사실인 것입니다. 우리가 멀리 갈보리산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거기에 매달린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죄를 담당하시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버림받았으며 우리의 병을 짊어지시고 앓으시고 우리의 저주를 받아 매달리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복음은 초등학문적인 복음이요. 초등학문적인 예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걸음 더 깊이 나아가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고등학문적인 이해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바로 이 초등학문적인 십자가 이해를 뛰어 넘어 고등학문적인 그리스도 고난의 이해를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3절로 8절에 보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세례 받는 것은 우리가 목사님에 의해서 물에 장사된바 되고 목사님의 손으로 물에서 일으킴을 받는 것이지만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을 우리가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2절에 보면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고난에 대한 고등적 이해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멀리 예수님을 상대적으로 바라보고 객관적으로 내 죄를 위해서 죽었다고만 믿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죽고 장사된바 되고 부활했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합하여 버림받은 상황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질병에 대하여 죽고 저주에 대하여 죽고 죽음으로부터 음부로부터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므로 모든 관계가 끊어지고 해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자세히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목사님께 찾아와서 목사님, 예수 안에서 우리가 죽었다고 말하는데 죽는 것이 무엇이며 부활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때에 목사님께서 내가 가르쳐 주겠다. 너희 가장 미워하는 친구 중에 한 사람 중에 죽은 사람이 있느냐? 있습니다. 그러면 너가 점심도시락을 싸서 그 공동묘지에 가서 점심을 먹으면서까지 아침부터 저녁 내내 그 친구를 향하여 욕을 실컷 하고 오너라. 그러면 죽는 것이 무엇인지. 부활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겠다. 그래서 그 사람이 점심도시락을 사사 친구 묘지에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죽일 놈, 이 못난 놈, 이 고약한 놈. 내내 욕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목사님 욕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래, 그럼 한번 더 해라. 너희 친구 중에 굉장히 사랑하고 좋아하는 친구 중에 죽은 사람이 있느냐? 있지요! 너희는 그 무덤에 가서 점심 먹어 가면서 정말 사랑한다고 있는 말을 다해서 칭찬을 하고 격려를 하고 오너라. 그래서 그는 그 무덤에 가서 친구를 보고 친구야 사랑한다. 아름다운 친구요 좋은 친구요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너는 얼마나 훌륭한지 모른다 그렇게 칭찬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자 목사님이 시킨대로 다했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그럼 내가 네게 묻겠으니 대답하라. 그 미워하는 친구도 하루종일 욕을 하니까 친구가 뭐라고 하더냐! 아무 말도 안합니다. 그러면 그 사랑하는 친구에게 하루종일 칭찬을 하고 사랑한다고 했는데 뭐라고 대답을 하느냐!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왜 아무 말도 안하느냐! 그거야 죽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아니하지요. 그래 예수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반응을 안하는 것이 죽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 반응을 그치고 버림받은 상황에 대하여 반응을 그치고 질병에 대해서도 저주에 대해서도 죽음과 음부에 대해서도 반응을 안하다 그와 관계가 끊어진 것을 죽음이라고 말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 세계와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은 죄와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서 우리는 버림받은 상황에서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서 질병에 대해서도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서 저주와 고난에 대해서 우리는 죽었습니다. 우리는 사망과 음부에 대해서 죽고 그와의 관계가 깨끗이 청산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세계와 우리는 단절되고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깊이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함께 고난받고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내고 우리의 옛사람이 깨끗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청산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고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을 알기를 간절히 소원한다고 말했습니다. 둘째로, 바울 선생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알려 한다고 간절히 축원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부활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머물러 계시지 아니하시고 부활하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으면 우리가 그 안에서 함께 부활 할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로마서 6장 5절로 8절에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힘으로 죽은 것도 아니고 우리의 힘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감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것입니다. 이 성경 안에 제가 손수건을 넣습니다. 그러면 이 성경을 책상 위에 놓으면 손수건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성경을 들면 손수건은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이 성경책을 포장해서 미국으로 보내면 손수건은 어디에 있습니까? 역시 미국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냐? 손수건은 이 성경 안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넣어 주심으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 에서 함께 못 박히고 예수님이 죽을 때에 함께 죽고 무덤에 들어 갔을 때에 함께 들어가고 그리스도가 부활할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함께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의 의미를 깊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께서 죄를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공짜로 죄를 이기기 의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이기고 의로써 부활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버림받음을 이기고 화해와 사랑과 하나님의 가족으로 부활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버림받았으나 화해와 사랑과 하나님의 가족으로 구원한 것처럼 그 안에서 여러분도 함께 부활해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고 하나님의 권속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질병과 고난을 이기고 치료와 건강으로 구원한 것처럼 여러분들도 예수 안에서 질병을 몸을 벗어버리고 질병을 벗어 던져 버리고 건강과 치료로 부활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저주와 낭패를 이기고 축복으로 부활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망과 음부를 이기고 영생과 천국으로 부활한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지나간 과거와 완전히 새롭게 된 것을 우리가 구분할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십자가에 죽고 장사 지낸바 되어서 옛사람은 다 지나가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사 우리는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권속이 되고 치료받은 사람, 축복 받은 사람, 천국 영생을 얻은 새사람이 되어 버린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된 사실을 우리 마음속에 인식하지 아니하면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기독교 신앙이란, 종교나 의식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삶의 바탕에서의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의 극치는 골로새서 2장 13절로 15절에 볼 수 있습니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 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옛사람을 다스리는 율법을 모두 다 십자가에 못 박아서 제하여 버리고 다시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율법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율법은 옛사람을 주장하지 새사람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사와 권세는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다스리던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주님이 다 무장해제해 버리시고 모두다 파괴해 버리셨습니다. 마귀는 그러므로 옛사람을 다스렸지 이제 이 새사람에게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새사람에 대해서는 마귀는 이미 무장 해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신앙의 극치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4절로 6절에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말한 것처럼 이제 우리 신앙은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일으키사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우리를 하늘 보좌 우편에 앉히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여의도 순복음 교회 앉아 있지만은 실제로 영적으로 볼 때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은 예수 안에서 보좌 우편에 앉아 있습니다. 왜냐 예수님께서 보좌 우편에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우리들은 몸은 여기에 있으나 이미 속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보좌 우편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만일 우리의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순식간에 우리는 보좌 우편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의 극치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율법도 다 청산되어 버리고 마귀의 정사와 권세도 다 해체되어 버리고 사망은 물러가고 여러분과 나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에서 그리스도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때만 되면 이것이 우리에게 실제로 나타나게 되실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의 극치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 안에 왕 노릇해야 하는 것입니다. 왕이란 다스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철폐하시고 버림받은 모든 세계를 다 청산하시고 질병과 저주와 죽음을 주님께서 멸하시고 부활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부활했으면 우리가 왕 노릇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이상 더 종노릇하지 않습니다. 죄의 종이 변하여 죄를 다스리는 왕 노릇해야 하는 것입니다. 버림받음의 종노릇한 우리들은 이제 버림받음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권속으로서 화해와 사랑으로 왕 노릇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저주의 종노릇한 사람은 저주를 벗어나고 그리스도의 축복 아브라함의 복에서 다스리며 왕 노릇해야하고 사망과 음부에 종노릇한 사람은 사망과 음부를 벗어나서 생명과 영생과 천국 안에서 왕 노릇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종살이는 끝났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옛사람은 지나가고 새사람이 되어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택한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왕 노릇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스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모든 흑암의 세력을 다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모든 것을 다스리고 우리의 인생을 파멸케 된 사망도 우리는 다스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바울 선생은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을 알게 하고 그 부활의 권능을 알고 싶다. 그는 말하기를 어찌 하든지 나는 이루려 하노라 바울은 자기의 삶 속에 어찌 하든지 그리스도의 부활이 넘쳐나는 그 체험 속에 살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깨달아 알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것을 알았은즉 이제는 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삶 속에 살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다시는 사망이 그리스도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는 항상 구하는 자로서 승리자로 거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우리들은 늘 부활의 생명을 체험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엄청나게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보태어서 그 이론을 실제로 체험하려고 맹렬히 사모하고 노력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1절로 12절에 보면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그는 맹렬하게 부활의 삶 속에 깊이 들어가서 나중에 최종에 완전히 부활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실제에 참여하도록 전심전력으로 노력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도 바울 선생처럼 부활에 참여하며 더 깊은 부활의 삶을 우리가 체험할 수 있을까요?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 보다 내년은 금년보다 더 부활의 깊은 생명 속에 들어가서 왕 노릇하며 살 수 있을까요? 그렇기 위해서는 첫째로 예수님과 함께 한 죽음과 부활을 깊이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말하기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모르면 아무리 주님이 예비해 놓은 것도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3절 처럼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죽은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우리 옛사람 우리 혈육의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합하여 세례를 받으므로 이미 실제로 하나님 앞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고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6절로 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와 같이 우리가 마음속에 새로운 진리를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와 함께 확실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장사. 그 외적 표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지내고 죽었으니 이제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새 삶으로 부활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무덤 내 무덤, 예수 부활 내 부활, 그리스도와 함께 한 죽음과 부활에 대한 신앙을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생각이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1절에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우리가 생각이 어떠하면 그 사람도 그러한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했는데 우리의 생각이 이제는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나는 예수 안에서 죄에 대해서는 죽었다. 예수 안에서 버림받은 상황에 대해서 죽었다. 예수 안에서 질병에서 죽었다. 예수 안에서 저주와 가난에 대해서 죽었다. 예수 안에서 사망과 음부에 대해서 난 죽어 버렸다.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다 청산하고 죽어버리고 그리고 나는 이제 새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의 사람이 되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식구와 권속이 되고 사랑과 성령 충만을 받았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치료와 건강을 얻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과 영생을 얻은 사람이라는 이 생각이 바뀌어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왔다갔다 하면서 생각은 언제나 옛 생각으로 꽉 잡혀 있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이 완전히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안 믿는 사람과 무엇이 다릅니까? 마음의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회개라는 것이 뭡니까? 헬라어로 메타노이아인데 메타노이아라는 말은 마음에 생각과 느낌이 달라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여러분께서 생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말고 그것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받아들여서 여러분의 생각이 완전히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이제는 옛사람이 아니고 새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십자가를 통하여 죽고 다시 부활한 자신을 늘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는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해야 합니다. 언제나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여러분 마음속에 그 한 폭의 그림을 그려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저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매달려 죽어 장사지내버리고 내가 저 십자가를 통하여 옛사람을 청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부활했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꿈꿔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이란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한 모습을 바라보면 영광에서 영광으로 그 모습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는 자나깨나 십자가를 통하여 변화된 내 모습을 마음속에 꿈꿔봐야 되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의 위대한 힘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바라봄의 법칙을 아브라함에게도 사용하게 하고 야곱에게도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들은 십자가를 통하여 내가 죽고 장사된 바 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한 새사람이 되어 의의 사람이 된 것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한 권속과 가족이 되어 하나님과 대화하며 하나님과 뜨거운 사랑 가운에 함께 사는 모습을 늘 마음속에 바라보며 내가 질병을 벗어버리고 건강하게 된 모습을 바라보고 저주와 고난을 벗어버리고 아브라함의 축복에 참여한 내 모습을 바라보고 사망과 음부를 다 벗어나서 천국과 영원한 낙원의 생활을 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꿈과 환상이 여러분 마음속에 뜨거움 믿음을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네째로, 여러분은 간절히 사모하며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2절로 13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이것을 행동으로 옛사람에 대해서 저항하고 행동으로 새사람이 되어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죄가 오면 죄에 몸을 드리지 말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떠나갈지어다 저항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와서 버림받았다고 말할 때에 원수 귀신아 물러가라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권속이 되었노라. 너희 질병은 물러갈지어다 너희 저주는 물러갈지어다 낭패와 실망은 물러가라 사망과 음부는 떠나갈지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을 몸에 죄가 마귀가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항해야 합니다. 우리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옛사람이 다가오게 될 때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그리고 새사람이 된 것을 우리는 입으로 시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친자녀가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치료함을 받았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 영생이 내 것이다. 원수 마귀야 물러갈지어다. 이미 죽은 육체의 사람에 저항하고 부활한 새사람에 대해서 입으로 시인하며 우리는 순복해야 될 것입니다. 부활절은 그 특정한 한 날의 예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은 우리의 개개인의 삶 속에 계속되는 체험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바울 사도가 말한 것처럼 매일 같이 죽고 매일 같이 부활하는 삶의 연속이 되어서 점점 깊은 부활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왕 노릇하며 부활의 생명에서 우리가 헤엄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부활의 능력에 잡혀서 살다가 주님 오시는 그날에 우리는 완전히 부활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죽을 몸이 영원히 살 몸으로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천국에서 살게 되실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사도 바울 선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의 참예하여 부활의 체험 속에 들어가려고 노력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사건을 객관적으로 일어 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보지 말고 주관적으로 나와 함께 일어난 체험으로 받아들이게 도와 주시옵소서.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함께 일어남으로 옛사람이 청산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새사람으로 일어나서 부활의 생명 아래서 내 운명과 환경을 다스리는 왕 노릇하는 삶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좌절과 절망은 영원히 정복되고 영원한 희망이 우리의 것이 된 것을 알고 절대 절망을 절대 희망으로 변화시킨 그리스도 안에서 늘 희망차고 기쁨이 넘치고 늘 창조적이 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모든 성도들이 가슴속에 부활의 영광이 충만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부활한 그리스도와 함께 동참함으로 부활의 역사가 끊임없이 일어나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일이 기도와 믿음의 생활 속에 나타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