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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10일 주일설교 제목: 복된 가정의 길 성구: 에베소서 5:22-6:4 설교: 조용기 목사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복된 가정의 길” 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만물이 싱그럽게 자라고 천지에 생기가 충만하며 소망과 젊음과 기쁨의 계절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경제적인 한파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기업은 무너지고 좌절과 절망 속에 하루에 30여명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이 땅에 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가정들이 흔들리고 생활고의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이때일수록 우리의 최고의 보루는 가정입니다. 상처 입은 삶이 치료를 받고 낙심될 때 희망과 용기를 얻으며 따뜻한 사랑으로 이해와 동정을 얻을 곳은 가정과 가족 밖에 없습니다. 이러므로 이때일수록 우리는 가정의 중요성과 가족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아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첫째로, 가정의 시작과 조건을 우리가 알아보아야 합니다. 모든 일에 근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독신주의자들이 생겨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실 때에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셨으므로 하나님이 좋지 않다고 하셨으니 사람에게 좋을 리가 만무합니다. 창세기 2장 18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또한 21절로 22절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오시니”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었을 때 아무렇게나 짓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께 가장 가깝고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 놓은 그릇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세 인격으로 계셔서 뜨거운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고독한 하나님이 아니시고 하나님 안에는 삼위의 뜨거운 사랑의 교통이 있습니다. 어떤 종교에는 자기의 하나님은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영원무궁한 역사 속에 유일한 하나님으로 혼자 고독하게 우주에 살았다면 이는 참으로 무시무시한 하나님입니다. 혼자서 살면 사랑을 줄줄도 모르고 사랑을 받을 줄도 모르고 그야말로 그는 무섭고 고집스럽고 악마화된 신이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자 유일하게 영원히 거한다는 하나님은 바로 악마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한 하나님이시지만 그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아들이 계시고 성령이 계셔서 사랑 가운데서 하나가 되시고 사랑 가운데 완전한 하나이면서 역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가 있어서 뜨거운 사랑으로 교통하고 교제하고 있었으므로 우리의 하나님은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으며 또 사랑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지으시는 놀라우신 은혜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고독하게 우리가 살기를 결코 원치 않았습니다. 사람도 가정이란 이 하나 속에 남편과 아내와 자녀가 있어서 뜨거운 사랑 중에 교통하고 함께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이 이루어지는 조건은 성경에 창세기 2장 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고 말했습니다. 가정을 이루기 전에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부모와 함께 한 가정에 살고 있더라도 심리적으로 부모의 권위와 간섭을 떠나서 독립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에 불행이 다가오는 것은 고부간의 갈등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첨예화되어서 언제나 그로 말미암아 가정에 큰 불행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단호하게 하나님께서 가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남자가 결혼하면 부모의 간섭과 부모의 지배를 떠나서 독립하라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한 집에 살더라도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면 그는 심리적으로 부모의 간섭과 지배에서 떠나서 독립을 해야 가정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는데 왜 사람들이 하나님의 그 명령을 저버리고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지배하에 있고 부모의 간섭 하에 있고 부모가 다스리는 그 밑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끝없는 분쟁과 갈등과 알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에는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될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내와 법적으로 연합하라고 말했습니다. 요사이는 아내와 법적으로 연합하지 아니하고 서로 만났다가는 헤어지고 헤어졌다가는 만나고 하는 무질서한 삶을 살고 있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19장 4절로 6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결혼은 여러분 하나님께서 직접 간섭하셔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의 중요성은 여러분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 전능한 능력으로 짝지어 주시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생활이 연합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결혼해서 살면 내 뜻과 내 것이 없이 함께 살아야 합니다. 저는 항상 미국이나 구라파에 가면 도저히 문화적인 차이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은 거기에는 남편의 것과 아내의 것이 분명히 분리되어 산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많은 목사들 친구들 미국이나 구라파에 있는 사람들. 월급 받으면 절대로 마누라에게 월급 주지 않아요. 왜 월급을 안 주냐고 하니깐 내가 벌은 돈인데 왜 내가 마누라에게 줍니까? 꽉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푼 두푼 달라고 할 때만 주는데 제가 그것을 모르고 외국에 가서 설교할 때에 나는 아직 결혼한지 오늘까지 월급 봉투 구경해 본 적이 없다 월급은 바로 우리 집사람에게 직행으로 가고 내가 필요하면 한푼씩 타 쓴다고 하면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느냐? 네가 벌은 돈을 왜 아내에게 주느냐? 그러나 성경에는 보면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여자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될지라고 했으니 하나가 되었으면 너것 내것 살필 필요 없습니다. 함께 살아야지요. 그런데 그 나라에 가보면 물건을 사면 장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은 남편이 샀다 이것은 아내의 돈으로 샀다. 이것은 내 돈으로 사고 이것은 네 돈으로 사고 .. 왜 그러냐고 하니까 이혼할 때에 복잡하지 않고 네것 내것 정리해서 가져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은 공동으로 사는 것은 될지라도 하나가 되어 사는 것은 아닙니다. 네것 내것 할 수 있나요 운명 공동체로써 함께 먹고 살다가 가는 것이죠? 그러므로 생활이 연합되어야 합니다. 생활이 연합하지 않고 서로 이기주의가 되어서 분리해서 살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은 부부가 아닌 것입니다. 또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따로따로 분방해서 살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요사이 보니까 30대에 벌써 서로 결혼하면서도 분방에서 따로따로 사는 사람이 많다고 말을 하는데 고린도전서 7장 5절에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란 것은 이런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서 이루어져야 올바른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부부의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 부부가 함께 살면 서로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요사히 남녀동등권이라고 해서 우리 모두 똑같다고 하는데 실제 여러분 똑같지 않습니다. 남자가 다르고 여자의 모습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들이 생활 과정이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 않습니까?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동등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의무와 책임은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경에는 부부의 조건을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그런 제국주의가 어디에 있느냐? 그런 노예주의가 어디 있느냐? 아내는 무엇이기에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나 여러분 이것은 아내가 남편보다 인권으로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을 이루고 살기 위해서는 그들이 각각 해야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가정을 수레로 비교하면 한 사람은 앞에서 끌어야 되고 한 사람은 뒤에 밀어야 됩니다. 두 사람이 다 뒤에서 밀어도 안되고 두 사람이 다 앞에서 끌어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되로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러냐? 먼저 하나님이 아담을 짓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아담에서 하와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하와보다 먼저 낳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위해서 지은바 된 것이 아니라 하와가 아담을 위해서 지은바 된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지은 바 된 것이 아니라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 지은바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창조적인 섭리에서 순서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수족이 병들지 아니하면 불구가 되지 아니한 이상은 머리에게 복종합니다. 머리가 명령하는데 수족이 복종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중풍병에 걸린 사람, 그렇지 않으면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사람, 뭐 이런 사람일 것입니다. 아내도 인격적으로 병들지 않은 이상 남편의 권위에 복종해야만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로 24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우리 주 예수님께 절대로 복종하는 것처럼 아내도 남편에게 복종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모든 남편의 권위에 도전하고 남편의 말에 반박하고 남편과 경쟁을 하려면 그런 것은 가정을 파괴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편들에게 물어 보면 언제 아내가 제일 밉느냐? 남편의 권위를 무시할 때에, 남편을 남편답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저나 내나 하고서 남편에게 대항하고 남편을 짓밟고 남편의 권위를 무시하게 될 때에 남편은 아내를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아내는 절대로 남편의 권위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남편을 가정의 머리고 삼고 남편을 리더로 삼고 그래서 남편에게 좋은 말로 조언하고 남편을 받들어 주어서 남편과 함께 인생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아내는 남편의 그늘에 숨고 남편 뒤에서 남편을 밀어주고 남편을 앞세우고 훌륭한 남편을 만들어 주면 따라서 아내도 똑같이 훌륭한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남편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요사이 IMF 한파로서 그 남편이 명예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가장으로서 자신이 없고 아버지로서 자신을 잃었습니다. 자기의 몇몇 친구가 명예퇴직을 하고 난 다음, 남편의 자격도 잃어버리고 아버지 자격도 잃어버려서 살 의미를 상실하고 자살했습니다. 자기도 자살할 충동을 많이 느꼈습니다. 이젠 집에서도 갈 곳이 없습니다. 하루는 좌절하고 낙심해서 갈 곳이 없어 등산이나 가야겠다고 나오는데 직장에 나가는 부인이 노란 종이 쪽지 하나를 손에다가 지어 주더랍니다. 그래서 그 노란 종이 쪽지를 가지고 산 위에 올라가서 혼자 앉아 그 쪽지를 펴 보니깐, 그 쪽지에 이렇게 씌여 있습니다. 여보, 당신은 직장을 잃어도 내 남편이요. 돈이 없어도 내 남편이요. 훌륭한 사람이 되어도 내 남편이요. 못 나도 내 남편이요. 당신이 있는 곳에 나도 있고 당신 가는 곳에 나도 가고 당신 사는 곳에 나도 살 것이요. 그러므로 절대로 낙심하지 마시요 당신은 어디까지나 우리 집에 가장이요 우리의 머리요 우리는 당신을 받들고 당신과 함께 살겠습니다. 그 쪽지를 읽고 난 다음 얼마나 마음에 감동이 되고 눈물을 흘렸던지 이래뵈도 나를 인정을 하는 아내가 있구나! 그렇다면 내가 용기를 잃을 필요가 있느냐! 내가 직장도 잃고 돈도 벌지 못하고 못난이지만 그래도 나를 남편으로 삼고 나를 머리로 삼고 나를 리더로 삼아주는 아내가 있으니 내가 뭘 못하겠느냐! 애라! 풀빵 장사라도 하자. 그는 어느 회사의 부장이었는데 그 길로 나가서 옷을 다 벗어제끼고 풀빵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풀빵 장사를 하면서도 마음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떳떳한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존경하는 아내가 있고 자식들이 있으니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못하겠느냐! 얼마나 내가 떳떳하냐! 그래서 그 글을 적은 것을 보고 제가 깊이 감동을 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무시와 멸시를 당하면 그는 인생을 저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어떠한 역경에 처해서도 아내가 인정해 주고 존경해 주고 그 권위를 받들어 주면 어려운 일, 고달픈 일, 위험한 일을 해도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을 경외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33절에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을 헐뜯지 않습니다. 자꾸 부정적으로 남편을 남에게 비교해서 아무개보다 못하다, 남보다 돈도 못 번다, 남보다 인물도 못나다, 남보다 키도 작다, 남보다 맵시도 없다 이렇게 하면 그것은 완전히 자기의 집기둥을 허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경외하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하나님을 언제나 예배하고 찬미하고 감사하지 않습니까? 아내를 남편을 늘 감사하고 남편의 잘된 것을 칭찬하고 남편을 경외하는 이러한 일을 하는 현명한 아내가 되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 헐뜯어서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누워서 침 뱉기입니다. 그 모든 것이 자기 얼굴에 떨어집니다. 남편은 아무리 못나도 아내에게는 존경을 받는다는 그 자부심 때문에 삽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남편을 하나님을 예배하듯이 예배해 주는 것 좋은 일입니다. 당신 참 훌륭해요, 잘 났어, 능력있어, 당신을 내 남편으로 삼은 것 나 기쁘게 생각해요 그것 왜 돈 안드는데 그것을 못합니까? 말로써 왜 못합니까? 그러나 그러한 조그만 말 몇마디가 남편에게 천배 만배의 용기와 힘을 주고 자부심을 주고 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더구나 오늘날 IMF 한파 속에 남편은 직장을 잃고 또 잃을까 두려움과 공포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할 때에 가장 버팀목이 되어 주고 힘이 되어 주는 것은 아내인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아내가 뒤에 굳세게 붙잡아 주면 이러한 사람은 좌절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운명의 거센 파도를 헤치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성경에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함 같이 하라고 말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 25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항상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하면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부모 슬하에서 부모의 사랑을 자꾸 받고 자랐기 때문에 사랑이란 것은 그냥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하면 아내에게 마땅히 나는 사랑을 받아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잘못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에 사이하고 남편과 아내의 사이하고는 다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남편은 사랑을 주는 위치에 있지 사랑을 받는 위치에 있지는 않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구원을 베풀어주신 것처럼 우리는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에서 아내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사랑해야 할 것이냐! 자기 몸 같이 사랑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몸 같이 사랑하라 사람은 자기 몸에 대한 관심보다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없습니다. 자기 몸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깨끗하게 하고 쉬게 하고 즐겁게 하고 여기에 최대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28절로 30절에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이 지체임이니라” 그러므로 아내에 대한 깊은 관심을 기울여 주는 것이 남편의 사랑입니다. 아내의 행복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 주고 또 아내에게 관심을 기울여서 많은 시간을 내어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또 아내에게 필요한 물질을 공급하고 아내를 돌보아 주는 이러한 관심을 기울이는 이러한 사랑이 남편에게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은 세상 앞에서 자랑스러운 아내로 내세우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를 헐뜯고 못난이로 만들고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운 존재로 만들면 남편의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25절로 27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 교회를 아름답고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내세우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남편도 아내를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흠이나 점이 없는 사람으로 내세우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시집식구들 앞에서 친구들 앞에서 친척들 앞에서 자랑스러운 아내로 이렇게 내세우는 이와 같은 아량을 가진 남편이 되어야 참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내가 남편이 미울 때가 있는데 언제 가장 밉느냐? 그렇게 물으니깐 삶이 무의미할 때에 남편하고 같이 살다가 이것이 아닌데 내 인생이 이것이 아닌데 내가 기대한 삶이 이것이 아닌데 내가 시집 와서 이게 뭐냐? 모든 것이 허무하고 무의미할 때에 그때 남편이 미워진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남편이 친정식구 비난할 때에 친정 어머니나 아버지, 친정 식구들을 비난할 때에 그때 남편이 미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아내에게 미움을 받는 남편이 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부간에 함께 살려면 끝없는 이해와 동정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결코 완전한 남편도 없고 완전한 아내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분은 하나님과 천사밖에 없고 인간은 불안전하기 짝이 없습니다. 산을 멀리서 보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푸른 나무가 울창하고 꽃이 피고 그러나 실제 산에 가보십시요. 돌맹이가 있고 ㅤㅆㅓㄲ은 것이 있고 나무 등어리가 있고 얼마나 보기 싫습니까? 산과 사람은 멀리서 볼 때에 아름다워도 가까이 있으면 흠점과 결점이 수없이 많은데 하물며 부부간에 한 지붕 밑에서 한 솥에 밥을 먹고 살게 되면 그 모든 불안전한 인격이 노출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서로 부딪히고 부조화하고 그리고 뭐 이런 남자가 있느냐! 이런 여자가 있느냐! 어찌하다가 이런 남자와 결혼 했느냐? 어찌 하다가 이런 여자와 결혼 했느냐? 이런 실망스러울 때가 많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호 비난과 강압을 통해서 절대로 상대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남편이 협박과 공갈로 폭력으로 아내를 변화시킬 것 같지만 그것은 안됩니다. 아내도 남편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태어날 때에 하나님께서는 벌써 각자 개성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개성은 아무리 쥐어 박는다고 해서 변화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개성은 하나님만 변화시키지 사람은 절대로 변화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상대를 최대한으로 이해하고 동정하고 그리고 사랑의 손을 잡고 사는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결혼식 주례를 할 때에 머리 속에 그런 상상을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한 팀이 되어서 인생을 뜁니다. 우리 국민학교 운동회에 가면은 서로 발을 묶고 난 다음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고 뛰는데 그것 하나 둘 맞추어서 잘 뛰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서로 서로 자기가 먼저 가려고 해서 찌그덕 찌그덕 하다가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발을 한 곳에 묶었으면 둘이 이제 보조를 맞추어서 자기 욕심 내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가 빨리 뛴다고 앞서가지 말고 자기가 너무 늦게 뛴다고 뒤에 가지 말고 서로서로 상대를 이해하고 동정하여서 보조를 맞추어서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면 잘 뛸 수 있습니다. 결혼생활이란 이와 같이 보조를 맞추는 것입니다. 남편이 자기 잘 났다고 해서 무조건하고 아내를 막 끌고 갈 수도 없는 것이고 또 아내가 잘 났다고 해서 남편을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서로가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해서 보조를 맞추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고 부부간에 싸워 받자 이익 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다른 싸움을 싸워서 이기는 자도 있고 지는 자도 있고 이기면 이익이 되고 지면 손해가 되는 것이지만 부부간의 싸움은 이겨도 손해고 저도 손해입니다. 이기면 찬 밥 먹고 지면 인격적인 모욕감을 느끼게 되고 부부간의 싸움은 절대로 이겨도 안되고 저도 안됩니다. 안 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저도 35년여 동안 살아오면서 싸움도 많이 해보고 투쟁도 많이 해 보았는데 돌이켜 보면 싸움 한 것마다 손해가 났습니다. 질 때는 덜 손해가 나고 이길 때는 손해가 더 났습니다. 이제 60이 넘으니까 지혜를 얻어서 절대로 안 싸웁니다. 내가 손해 날 것을 왜 합니까? 아예 입을 딱 다물고 몸을 낮추면 돼요. 문이 문턱이 낮으면 내 몸을 더 낮추면 되지 않습니까? 문턱이 낮은데 왜 서서 들어가려고 합니까? 아내가 마음이 속이 좁으면 내가 더 좁으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싸우지 않고 조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행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그러므로 상대의 모든 죄를 덮어 버리고 못난 것을 내가 운명인 줄 알고 걸머지고 조화를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부모와 자식의 조건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식은 부모의 사랑 가운데에 태어났습니다. 자식은 부부의 사랑의 공통 분모인 것입니다. 부부간에 그냥 있는 것보다는 자식이 생기면 자식은 강한 공통 분모로서 부모와 자식 사이를 묶어 놓고 부부 사이를 묶어 놓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은 사랑을 줄이 되어 부부를 하나로 강하게 묶어 놓습니다. 부부야 남남이죠. 백년을 살아도 남남입니다. 남남끼로 모여서 삽니다. 그러나 자식을 낳으면 자식에 대한 사랑은 천륜의 사랑으로 그 아버지도 내자식이고 엄마도 내 자식입니다. 그 자식에 대한 사랑이 부부를 강하게 묶어 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들이 자녀를 키울 때 주님의 훈도로써 교육해야 합니다.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입니다. 내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기업임으로 이것을 잘 길러서 하나님께 바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었으며 시편 127편 3절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은 내 개인 소유물이 아니므로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죽이고 살리고 하지 못합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 난 것처럼 자기의 자식을 죽여서 장독간에 파 뭏어 버리고 얼마나 안 먹이고 때렸던지 6살 먹은 애가 3살 밖에 안되는 그런 처지의 자녀의 교육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짐승도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자식은 과보호해도 안되고 무조건 사랑해도 안됩니다. 어린이을 학대하는 것은 더욱 안되지요. 잠언서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부모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자녀들을 잘 교훈하고 그 모범을 보여서 자녀들은 부모의 삶 속에 그 모범을 보고 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어떻게 사는가 그것이 자녀들에게 깊은 인상을 갔다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예수를 잘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드는 이것이 자녀 교육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의미와 목적과 가치와 자원을 주는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음에 살아갈 의미와 목적과 가치가 없이 공부만 많이 시키고 머리 속에 잔득 많이 넣어 놓으면 아주 지혜롭고 교활한 악마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가 이 영적인 신령한 삶 속에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집에 있을 동안에 부모와 함께 사랑의 많은 추억을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그냥 내버려두면 안됩니다. 부모와 함께 놀아 주고 함께 대화하고 함께 휴가를 보내고 해서 자녀들의 추억 속에 부모와 같이 한 많은 역사적인 추억을 만들어 놓으면 이제 거꾸로 되어서 부모가 늙고 자녀가 이제 성인이 되어도 그 추억으로 말미암아 부모와의 사랑의 끈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부모와의 이와 같은 추억이 하나도 만들어지지 아니하면 나중에 자녀들이 장성하면 부모와 아무런 관계가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때 부모가 많은 자녀와 잊을 수 없는 그런 추억을 만들어 주십시요. 그리고 부모는 부모의 욕망을 이루는 도구로써 자녀를 삼지 말고 자녀의 모든 소질을 잘 살려서 자녀가 참으로 하나님이 주신 소질대로 성장하도록 그렇게 만들어야 됩니다. 내가 못한 장관 되라고 하고 내가 못한 판사 되라고 하고 검사 되라고 하고 내가 못한 대통령 되라고 하면 됩니까?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주신 개성과 자질이 있습니다. 그것을 개발해서 키워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식의 부모에 대한 조건도 있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렇게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절로 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라리라” 부모는 하나님 아버지의 대리입니다. 왜 대리이냐 하면 처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직접 만들었으나 그 다음 자녀는 하나님을 대리해서 아담과 하와가 자녀를 낳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대리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로써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무시하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공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부모 공경하는 것을 하나님이 얼마나 원하셨던지 부모를 공경하면 네가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주신 십계명 중에 네 계명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계명이고 여섯 개의 계명은 인간 관계의 계명인데 인간 관계의 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효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러므로 인간 윤리 도덕의 가장 근본이 바로 효에 있습니다. 효를 짓밟아버리면 인간관계의 모든 윤리와 도덕은 시작부터 다 파괴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효는 모든 인간 윤리와 도덕의 근본으로 성경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은 모두 다 이 계명을 지키라 지키지 아니하면 벌을 주겠다고 했는데 오직 한가지 인간 관계의 첫째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상급을 명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세상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 부모를 공경하면 그것은 세상에서 하나님이 잘 되게 하고 오래오래 살게 만들어 주겠다는 축복의 조건을 붙여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계명 중에 오직 부모 공경 계명만이 축복을 붙여 놓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가 부모 공경하기를 원하며 부모 공경을 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여러분 잘 되고 장수하려거든 부모에게 효도하십시요. 다른 복잡한 것 없습니다. 잘 되고 장수하려고 온갖 수단 방법 하지 말고 부모에게 효도하면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잘 되고 장수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틀림없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은 조화있는 가정 관계와 가족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가정이 어지럽거나 흔들리고 깨어지면 매서운 추위나 폭우가 쏟아지는데 갈 곳 없이 들이나 길거리에 내어버림을 당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환경과 생활이 어려울 수록 더욱 굳게 가족 중 자기의 위치와 책임을 다하고 가정을 힘차게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확실히 정립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면 어떠한 어려운 폭풍우가 다가오고 어떠한 환경에 어려움이 다가와도 그를 능히 이겨 나갈 수가 있습니다. 앞에서 끌어 주고 뒤에서 밀며 상처입은 사람들은 가정에 와서 이해를 받고 동정을 받고 위로를 받고 치료를 받고 함께 스크럼을 짜고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만큼 무조건 하고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처소는 다른 곳에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모든 곳에서는 비평하고 평론하고 헐뜯고 미워하는 것입니다. 경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큰 사랑으로 이해와 동정, 치료와 은혜를 얻을 수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이 주신 교훈을 통해서 우리는 훌륭한 남편 훌륭한 아내, 훌륭한 아버지 훌륭한 어머니 훌륭한 자녀가 되어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가정 가운데 이 땅에 낙원을 이루어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이 땅에서 피할 수 있는 요새요 피난처는 가정 밖에 더 있습니까?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이렇게 뭉쳐진 이 단위는 끈끈한 사랑으로 뭉쳐진 단위이고 여기에는 이해와 동정과 사랑이 하나가 된 단위 입니다. 아버지 가정의 단위가 흐트러지면 사회도 국가도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 나라가 지금 경제적인 위기에 처하고 언제 직장을 잃고 어려움을 다가올 지 모르는 이때에는 더욱 가정이 끈끈하고 뜨거운 사랑으로 뭉쳐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상처 입었을 때 함께 합쳐서 치료해 주며 어깨어 걸머지고 엎고 안고 나가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가정에 넘쳐 나게 도와 주시옵시고 가정에 하나님의 은총이 퍼부어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 우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고 아버지의 품을 찾아 온 잃어버린 자식 살아 왔고, 죽은 자식 거듭나서 돌아온 자식들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늘 나라 식구가 되고 권속이 되었사오니, 아버지여! 우리의 모든 상처받은 몸과 영혼을 고쳐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 병든 자 예수 이름으로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그 마음을 고치시고 육체를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전능하신 아버지는 병을 고치시는 야웨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으신 공로를 통해서 모든 사람 손을 얹은 그 아래 있는 병을 주님께서 도말하시고 병의 해독을 멸하여 주시옵시고,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깨끗이 고쳐 주시옵소서. 모든 질병과 고통은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각자의 몸에서 떠나갈지어다. 고통은 사라질지어다. 야웨 하나님이여! 우리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주님께 나왔습니다. 우린 오늘날 경제적인 위기와 한파 속에서 불안과 공포, 초조와 좌절과 절망을 맛보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여 오늘 주님 앞에 두손 들고 나왔사오니 주님께서 우리 손 붙잡아 주시옵시고 주님께서 흑암을 제껴 주시옵시고 광명한 빛을 비춰 주시옵소서.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은혜와 사랑과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기적과 도움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들풀도 하나님께서 입히시고 까마귀도 주님께서 먹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이겠습니까? 우리 아버지여! 주의 자녀들을 돌보아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이 모든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 위에 나타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