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6월 28일
주일설교


제목: 주인과 종
성구: 눅15:11-24
설교: 조용기 목사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주인과 종”이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주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한 주인을 다른 주인보다 중하게 여기거나 또한 한 주인을 다른 주인보다 등한히 여기게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집에 두 주인이 산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거기에는 반드시 엄청난 분쟁과 갈등, 심지어는 폭력 행사까지 있을 것입니다. 한 집에는 한 주인 밖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읽은 이 말씀에는 주인과 종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한 시골에 아버지가 두 아들을 데리고 많은 종들을 거느리고 큰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아버지는 그 아들들을 잘 다스리고 종들을 거느리고 그리고 농사를 잘 지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그리고 물론 아버지는 그 농장의 재산과 아들을 소유하고 다스리며 경영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아무리 아들이라고 해도 아버지 주인 밑에 아들 종으로써 일을 했지 아버지를 주인으로 섬기며 복종하며 살아 왔지 모든 선악의 결정은 아버지가 했지 아들들이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들이 독립해서 분가하기 전에는 아버지 밑에 있을 때는 아버지의 권세하에 있고 아버지의 주인으로 섬기는 아들 종으로써의 삶을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둘째 아들이 어떻게 되었든 그 마음속에 자기도 주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왔습니다. 아버지를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것보다는 자기가 아들 종으로 있는 것보다는 자기 스스로가 주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5장 11절로 12절에 보면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아버지의 주권을 벗어나서 서로 주인이 되어 자기 삶의 선악을 자기가 결정하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결정하고 살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들이 결정하기를 이제는 자기도 주인이 되었으니 아버지의 권세 밑에 살 필요가 없다. 아버지를 따라 살 필요가 없다. 그래서 자기가 판단하여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로 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류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주인이십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은 주인으로써 군림하셨지 우리와 똑같은 지위를 가지고 군림하지는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 하나님 나라에서 아담은 종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아들이라도 아들 종이었습니다. 주인 아버지를 절대 섬기고 복종하는 아들 종으로 살아야지 동등한 주인이 되지 못합니다. 자기의 삶의 선악의 선택과 결정을 스스로 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만이 선악을 결정하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는 주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주인 하나님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들이 직접 주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자기들이 직접 좋고 나쁜 것을 결정하는 주인 행세를 하고 싶었습니다.
창세기 3장 4절로 6절에 보면은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그래서 그들은 주인을 박차고 스스로가 주인이 되도록 선포를 했습니다. 이젠 우리가 주인이다 우리가 좋고 나쁜 것을 결정한다. 한 에덴에 두 주인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자연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ㅤㅉㅗㅈ겨났습니다. 스스로 먼 세상 나라로 가서 주인 행세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야기의 둘째를 보면 주인이 된 둘째 아들의 삶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주인이 되자 아버지 주인으로부터 멀리 떠나 타국으로 갔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3절로 14절에 “그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 방탕하여 그 재물을 허비하더니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고 말한 것입니다.이 아들은 자기가 주인이 되자 아버지 주인 밑에 있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제는 두 주인이 함께 살수 없으니 아버지 주인을 떠나 자기 스스로 독립해서 먼 나라로 아버지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나라로 갔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인이 되기는 되었으니 선악을 마음대로 선택할 때에 선을 택하지 아니하고 악을 택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악한 마음을 따라서 그 돈을 가지고 주지육림 속에 살며 허랑방탕하여 모든 재산을 낭비하면서 살았습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재산을 허랑방탕하고 사니 얼마 안가서 그 재산이 다 소비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다가오니까 이제 자기 스스로의 생명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의식주 문제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주인은 주인인데 자기 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는 이젠 낭패된 주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아담과 하와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 주인을 저버리고 스스로 주인 되겠다고 해서 먼 나라, 즉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세상으로 나와서 그가 선택한 것은 선을 택하지 않고 악을 택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로 21절에 보면 아담과 하와는 육체가 되어서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멀리 떠나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을 따라 허랑방탕하면서 아담과 그 후손들은 지금까지 살아오고 그러므로 말미암아 마음에 자본도 다 낭비하고 지구의 자원도 다 낭비하고 물고 찢고 싸우고 경쟁하는 가운데 피투성이가 되어 좌절과 절망적인 세계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처참한 기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도저히 이 스스로 주인이 된 둘째 아들은 다가오는 기근과 궁핍한 삶을 해결할 수 없어서 그 도시의 어떤 사람에게 부탁하여 들로 나가서 돼지치기가 되었습니다. 돼지를 친다는 것은 유대 사회에서 가장 천한 직업입니다. 그런데 돼지를 치면서도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도 얻어먹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배가 고파 쥐엄 열매를 나누어 먹으려고 하다가 돼지에게 물려서 온 전신에 돼지가 물은 상처가 꽉 들어 차 있는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 주인을 떠나 스스로 주인이 되었으나 이제는 돼지 소굴에 들어가서 돼지와 함께 사는 가장 처참한 주인이면서도 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인간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이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시편 49편 20절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인간은 원래 존귀하나 스스로 주인이 되겠다고 해서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서 주인 행세를 하다가 주인은 주인인데 실력 없는 주인, 능력 없는 주인, 자기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하는 주인이 되어 처참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서 2장 13절에 보면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인간이 주인이 되어 스스로 잘 살아 보겠다고 여러가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산업의 웅덩이를 팠는데 그 웅덩이는 물을 저축하지 못한 터진 웅덩이 입니다. 그것으로써 결코 만족함이 없습니다. 인간은 그러므로 주인은 주인이나 낭패하고 좌절에 처하고 절망적인 주인입니다. 영혼도 파멸되고 마음도 찢기고 육체도 병들고 생활도 저주에 허덕이는 비극적인 그러한 주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이야기 세번째 단계를 보면은 이 둘째의 아들이 실패한 주인으로서 처참한 지위를 생각하고 마음속에 큰 깨달음으로 갖게 된 것입니다. 주인이 되었으나 주인 행세를 할 능력이 없는 자신을 발견할 때 그는 그 마음속에 비통함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가만히 돼지 소굴에서 생각해 보니 아버지 주인이 얼마나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는 주인 노릇을 하되 사랑이 많고 자비하고 긍휼하며 아들들을 잘 돌보아 주었으며 종들에게도 얼마나 친절한지 먹을 것이 풍성했고 종들도 가혹하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생각해 보니까 우리 아버지는 참으로 좋은 주인이었다. 그런데 나는 주인 선포를 하고 나와서 이와 같이 실패한 주인이 되고 주인 행세를 했으나 주인이 될 능력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의 스스로의 죄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그는 생각하기를 이제 나는 주인이 될 자격이 없다. 주인 스스로 살아가려고 하나 능력이 없다. 이러므로 아버지께 회개하고 돌아가서 주인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요, 아들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라 주인 종보다도 더 못한 날 품팔이 일꾼으로 써달라고 아버지께 간구하며 돌아가자. 이것이 참 회개인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주인이 되었다가 이젠 깨어져서 완전히 종보다 더 낮은 날 품팔이가 되겠다는 깨어진 마음, 이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아무리 회개한다고 해도 나는 주인입니다. 주인 대접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원래 아버지가 주인이고 아들은 어디까지나 아들로써 아들 종으로 아버지를 섬기고 믿고 순종하고 따라야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18절로 19절에 보면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갔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젊은이는 완전히 회개하고 이제는 절대로 주인 행세도 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지도 아니하고 품군의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간청하면서 아버지께로 돌아가겠다고 마음에 큰 변화를 받고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실한 회개입니다.
오늘날 주인 행세를 하다가 영혼도 안되고 범사도 망하고 병들고 처참하게 된 인간이 하나님께로 여러분 돌아가려고 하면 어떻게 돌아갑니까? 당당하게 인본주의로 나를 주인으로 취급하면서 받아 주소서. 그렇게 돌아가서 하나님이 받아줄 것 같습니까? 우리가 깨어지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이제는 주인이 아닌 완전한 종으로서 하나님 앞에 돌아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의 주인도 아닙니다. 내 개인도 내가 소유하지 아니하고 나의 현재도 미래도 내가 소유하지 아니하고 천부여 의지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나도 내 것이 아니요 주의 것이요 나의 현재도 미래도 내 것이 아니요 다 주인의 것입니다. 이제는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의 종으로서 주님을 믿고 섬기고 따라 살겠습니다.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신실한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편 51편 17절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상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깨어져서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깨어지는 마음, 종으로 변화된 마음, 완전히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긴 마음, 이런 마음을 우리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네번째 단계를 보면은 이제 아버지 주인의 품으로 깨어져서 돌아가는 아들 종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깨어져서 종의 심정으로 아들은 돌아갑니다. 이제는 절대로 아버지 앞에서 아들 행세도 안 할 것이고 이젠 주인 행세도 안 할 것이고 아버지만이 유일한 주인이요 우리 아버지 앞에 전적으로 순복하고 믿고 따라가는 종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그는 돌아갑니다.
누가복음 15장 20절로 24절에 보면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이 아들이 종이 되어서 그 마음이 깨어져서 돌아올 때 아버지는 이 아들을 기쁘고 즐겁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이 아들이 주인이 되어서 아버지를 박차고 떠날 때와는 너무나 다른 형상인 것입니다. 그는 얼굴을 숙이고 어깨가 축 늘어지고 그는 교만한 마음 다 깨어지고 아버지 앞에 눈물을 흘리며 나는 이제 아들이라는 일컬음을 받기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주인 행세는 죽어도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품군의 하나로 종의 밑에 부림을 받는 품군에 하나로 여기에 돌아옵니다. 아버지여 날 받아 주시옵소서.
아버지는 벌써 이 아들의 심정을 알았습니다. 그는 깨어지고 변화 받고 이제는 참된 종의 위치에 돌아와서 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버지는 이 아들을 크게 사랑했습니다. 그 가정의 주인은 아버지 밖에 없습니다. 아버지 이외에 다른 주인이 아들이라도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사 그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갔다 입히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돼지 소굴에 있어서 다 떨어지고 냄새나고 더러운 옷을 입고 있습니다. 소위 적은 주인 행세하다가 그 주인은 넝마를 입은 거지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넝마로 전락한 아들에게 냄새나는 옷을 벗기고 제일 좋은 옷을 갔다 입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나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넝마같은 옷을 벗겨버리고 제일 좋은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인 행세하다가 죄악의 넝마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음란하고 더럽고 추악하고 시기, 분노, 질투로 다 너덜너덜해진 넝마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우리가 종이 되어서 회개하고 돌아오면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값 주고 산 희고 너무나 정결하고 의로운 옷을 입혀 주는 것입니다. 넝마의 옷을 벗기고 좋은 옷을 입히라.
이사야 61장 10절에 보면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신랑이 사모를 쓰고 신부가 자기를 보물로 자기를 단장함 같이 아름다운 옷으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입혀주시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옷을 입혀라.
시편 30편 11절에 보면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를 띠우면 우리가 기뻐 뛰며 춤추는 그 놀라운 은총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종으로 돌아올 때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옷으로 입혀 주시지만 종이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스스로 주인이 되겠다고 할 때는 다 썩어진 넝마를 옷을 입고서 돼지 소굴에 사는 이런 비극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주인 되시는 그 아버지는 말하기를 반지를 갔다 끼우라 하신 것입니다. 반지라는 것은 여러분 아버지가 아들이 되었을 때 끼어주는 반지입니다. 그 반지는 아버지의 이름과 아들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반지를 끼워라. 그가 주인이 된다고 할 때는 반지를 던져 내어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종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는 그를 아들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반지를 끼워라. 그가 반지를 받아들이면 이제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주인이 되겠다고 건방진 소리를 하는 않는 아버지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반지를 끼워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을 처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결코 그러나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아들 종입니다. 아들은 아들된 종입니다. 머슴입니다. 절대로 하나님과 동등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과 겨루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선악을 자기 마음대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이제 아들 종이 되었은즉 좋고 나쁜 것은 아버지가 결정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이것은 좋다 이것은 나쁘다 아버지가 결정한대로 우리가 순종하지 내 마음대로 이것이 좋고 이것이 나쁘다고 적은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하다가는 이것은 또 다시 ㅤㅉㅗㅈ겨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 아들이 되었어도 끝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하나님의 선악 판단에 따라가는 우리들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아버지는 말하기를 신발을 싣기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적은 주인 노릇하다가 돼지 소굴로 들어가서 신발도 신지 못하고 맨발 벗고 인생을 사는 패배한 비참한 주인이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발가락은 깨어지고 발톱은 빠지고 발은 돌에 부딪쳐 피가 났습니다. 걸레처럼 되었습니다. 거기에 아버지가 이제는 신발을 신겨라. 아프지 않게 이젠 신발을 신겨라.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주인 행세를 하다가 우리의 발이 누더기가 되었습니다. 발이라는 것은 우리의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행위는 도덕적인 행위도 누더기가 되고 우리의 마음의 행위도 불안, 공포, 초조, 좌절, 절망으로 누더기가 되고 우리의 삶도 낭패와 실망, 가난과 저주, 가시밭 엉겅퀴 길을 걸어가면서 누더기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는 평안의 복음을 예비한 신발을 신기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평안의 복음을 예비한 신발을 신겨라.
우리가 종으로써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하여 놓은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할 것을 다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라고 하신 것입니다. 종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은 자기를 섬기는 자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가시에 찔리자 아니하고 엉겅퀴에 짓밟히고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평안의 신발을 신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살찐 송아지를 잡으라 그리고 우리가 먹고 즐거워하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었으니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탕자가 돌아오매 아버지는 그가 이제는 주인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아들 종으로 돌아온 것을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주인이 되어서 나갈 때는 아들을 잃어 버렸습니다. 주인이 되어서 나갔을 때는 그 아들은 죽은 자식입니다. 그러나 그 주인의 행세를 버리고 깨어져서 아들 종으로 돌아올 때에 그는 죽은 자가 살아나고 잃어 버렸다가 도로 찾은 아들로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주인 행세를 해서 자기 인본주의에 서서 자기의 인생을 자기 스스로가 선택하며 선악을 판단하며 살아갈 때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자식이 된 것입니다. 멀리 멀리 버림받고 먼 세상 나라로 떠나가 버린 자식이요 또 스스로 주인이 된 행세를 하는 자식은 죽은 자식입니다. 이미 하나님 품을 떠나서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은 잃어버린 자식이요 죽은 자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미 영적으로 죽어 버렸기 때문에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그대로 가다가는 나중에 세상 끝에 모두 다 영원한 지옥의 불로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회개하고 돌아와서 이제는 주인 행세를 하지 아니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며 잃어버린 자리에서 죽은 자리에서 다시 복구해 들어오면 아버지는 기쁘게 받아들여서 우리를 위해서 살찐 송아지를 잡습니다. 그리고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살찐 송아지는 하나님께서 믿음 소망 사랑으로 살찌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살찌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살찌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물댄 동산같은 마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해 주시며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인생을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제는 헐벗지 아니하고 굶주리지 아니하고 버림받지 아니하고 소외되지 아니하고 아버지 나라에서 아버지 품에 안겨 아버지와 함께 인생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보면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담의 서투른 주인 행세가 오늘날 지구상의 전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 왔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주인 행세를 하지 말고 아버지 앞에서 아들 종으로서 믿고 섬기고 순종하고 따랐으면 하나님 아버지 주인이 모든 것을 돌보시며, 주인이 가정을 돌보지 종이 돌보는 것은 아닙니다. 그랬으면 우리가 아담 이후 대대로 너무나 잘 살고 이 땅이 비좁으면 온 우주로 나가 살았을 것인데 아담의 서투른 주인 행세로 영원한 주인 되신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오늘날 온 지구상 전 인류에게 무시무시한 재앙이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인본주의의 주인 행세를 하나 항상 죄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탐욕의 노예가 되고 절망적인 존재가 된 것이 오늘날 인생이 아닙니까? 인생은 죄책과 정죄의 절망에 허우적거리고 허무와 무의미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죽음과 영원한 멸망의 절망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것이 오늘날의 인생이 아닙니까? 이제 우리의 살길은 무엇입니까? 이제 우리의 살 길은 참 주인 되신 하나님. 영원하신 주인 되신 하나님. 유일무이의 주인 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주인 하나님. 전지 전능 무소 부재하신 주인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하여 돌아와야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영원 무궁하신 주인 되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찾기 위해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가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높이 높이 달려 고난 당했었습니다. 그는 몸이 찢겼고 그는 피를 흘렸습니다. 그는 가장 고통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곤욕과 처참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주인 되겠다고 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온 그 모든 죄를 당신이 다 짊어지고 당신이 다 하나님 앞에서 갚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하여 이제 우리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온 죄를 다 용서함 받았습니다. 원죄도 자범죄도 용서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께로 나오면 이제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신다는 것은 이제는 내가 주인인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종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러 온 것입니다. 내가 자신 만만해서 돌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돌아온 것입니다. 내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순종해서 사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스스로 내 인생도 소유하지 않습니다. 나의 현재와 미래도 내가 소유하지 않습니다. 내 스스로가 선악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을 섬기며 주님을 믿으며 주님을 순종하며 주님께서 선악을 판단해서 결정해 주는 대로 따라가겠다는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서 장사지내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따르는 아들 종으로서 나옵니다. 여러분과 나는 이제는 주인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나는 아들 종입니다. 우리는 아들이면서도 종입니다. 주인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입술로 주여, 주여 하면서 주인 행세를 합니다. 아들 주인 행세를 합니다. 자기가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자기가 자기 마음대로 선악을 결정합니다. 오늘 주일 교회에 가고 싶으면 가고 안 가고 싶으면 안 갑니다. 십일조 드리고 싶으면 드리고 안 드리고 싶으면 안 드립니다. 놀려 가고 싶으면 가고 안 그러면 안 갑니다. 자기가 아들 주인 노릇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 아무리 주여 주여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멀리 멀리 먼 나라에 떠나 계십니다. 주인이 되었으니 두 주인이 있을 수가 없어요. 멀리 멀리 먼 나라에 떠나 있습니다. 살아있다고 하나 죽은 자인 것입니다. 멀리 떠나서 죽은 자가 아무리 하나님께 부르짖은들 하나님께서 응답할리라 만무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교회에 와서조차도 아들 주인 노릇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아들 종입니다. 이제는 옛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유일무이한 주인 되신 하나님을 섬기고 삽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삽니다. 하나님을 받들고 삽니다. 하나님을 믿고 삽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삽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종으로 취급하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친아들로 취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힙니다. 기쁨의 옷으로 옷 입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들이 되었다는 표시로써 성령으로 인을 쳐 주십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성령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인 성령을 우리에게 쳐서 인을 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신발을 신겨 주셔서 더 이상 찢기고 상처 입고 살지 않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살찐 송아지를 잡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살찐 살을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탕자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은 결코 주인이 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닙니다. 아들 종 아들 머슴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받들고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럴 때에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곳에서 함께 살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계신 그곳에 아들 종도 같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주인 행세를 했습니다. 주인 안 믿을 때는 말할 필요 없이 주인 행세를 했거니와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도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하나님 아들이라고 말하면서도 아들 주인 행세를 했습니다. 아버지 주인 제켜 놓고 자기 마음대로 선악을 판단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살았다 하나 죽었으며 하나님 가까이 왔다고 하나 먼 나라에 떠나가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여 이 시간에 우리 진실로 깨어지고 회개해서 이제는 아버지께 돌아올 때에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아 주시옵소서. 종의 밑에 부림을 받는 품군의 하나로 보아 주시옵소서. 결코 주인 행세를 하지 않습니다. 이제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자격도 없습니다. 종이 부리는 품군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깨어지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으로 나오는 우리들이 되도록 보혜사 성령이여 도와 주시옵소서. 이래서 종의 아들로서 하나님 앞에 가까이 있고 죽은 자로서 살아난 사람으로 하나님과 가까이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아무 막힌 담도 없고 우리가 우리의 삶의 참 모습과 위치를 분명히 알아서 그곳에 굳세게 서서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