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998년 7월 12일 제목 : 쓴물과 단물 성구 : 출 15:22-27 저는 오늘 '쓴물과 단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서 큰 기적으로 홍해수를 건너서 스르 광야로 들어왔습니다. 삼백만이 줄을 지어서 광야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는데 가도 가도 풀 한 포기 나지 않고 물 한방울 없으며 하루를 지나는 동안에 그들이 물을 찾았지만 한 방울의 물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참았습니다. 이튿날이 되었는데 태양은 작열하고 땅은 화로같이 활활 타오릅니다. 그들의 몸의 수분은 다 증발되고 갈증으로 죽는 것 같았습니다. 짐승들도 쓰러지고 보는 자들은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틀을 또 참았습니다. 사흘째 아침부터 무더위가 광야를 휩쓸었습니다. 그들은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입술이 터지고 입술에서 피가 흐릅니다. 모든 사람들이 물을 달라고 아우성 칩니다. 모세야 물을 달라. 모세야 물을 달라. 그러나 그 광야에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곳에, 땅이 놋같이 굳어진 그 형편에 어디에서 물을 얻습니까? 그래서 사흘째 강행군을 하다가 갑자기 선발대에서 좋은 소식이 들여왔습니다. '물을 발견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첨벙첨벙 그 연못으로 뛰어 들어가서 물을 마시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와서 뒹굴고 난리입니다. 그 물은 독이 있는 물이었습니다.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물을 마신 사람마다 토하고 뒹굽니다. 이제는 민심이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이제는 죽기 아니면 살기입니다. 그들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모세를 향해서 모세야 모세야 우리를 이곳에 와서 죽이려고 광야로 이끌로 나왔느냐? 사태가 험악해졌습니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하니까 하나님께서 바로 그 물가에 한 나무가지를 지시하는지라 그 나무가지를 꺽어서 물에 던졌더니 순식간에 물이 달아졌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그 물을 한껏 마셨습니다. 그리고 갈증이 해소되었습니다. 민심이 온화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 규례를 행하면 내가 애굽사람에게 내린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야웨임이니라. 그러시고 곧장 그들을 엘림 오아시스로 인도했습니다. 거기서는 물샘 열둘이 물을 콸콸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려 칠십주가 바람에 날립니다. 그곳에서는 새들이 노래하고 아름다운 과일이 열매를 맺고 푸른 풀밭이 조성되어 있고 낙원 같았습니다. 그 물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을 쳤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참으로 중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다 영적인 이스라엘로 이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우리는 다 목말라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에 목마르고 희망에 목마르고 기쁨에 목마르고 꿈에 목마르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이 목을 추기기 위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목마름은 채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 인류가 이 지구의 광야 위를 지나가면서 모두 다 목말라 있습니다. 인심이 살벌해지고 시기 분노 질투로 꽉 들어차 있습니다. 여러분 가장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첫째로 우리의 가슴속에 있는 이 쓴물을 달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인간의 가슴속에는 큰 연못을 파놓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쓴 물의 연못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 가슴에 쓴 연못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쓴물이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매일같이 이 쓴물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시고 그러니 사람들의 마음이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이 쓴물은 도대체 어떠한 쓴물인 것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너무나 잘 보는 죄악의 쓴 연뭇물입니다. 우리의 가슴속에는 이 죄악의 쓴 연못물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죄악의 쓴물을 우리가 매일 마십니다, 그 죄악의 쓴물을 마시므로 우리는 죄악의 포로가 되고 있습니다. 죄지을 마음을 안 가지려고 해도 죄의 쓴물을 마시기 때문에 지식이 있는 자나 무식한 자나 능력이 있는 자나 능력이 없는 자나 우리는 다 불의하고 부정하고 부패하며 거짓말하고 사기치며 불결하고 세속적이며 탐욕으로 꽉 들어차며 시기하고 질투하고 분노하며 교만하고 오만합니다. 이것은 모두 다 쓴물을 마신 결과로 마음에 독이 올라서 그런 것입습니다. 이 마음의 쓴물은 교육으로 제해 보려고 해도 안 됩니다. 교훈으로 제해 보려고 해도 안 됩니다. 윤리 도덕적인 교육을 시켜도 마음의 독이 오른 것은 그것으로 제할 수가 있습니까? 안됩니다. 더 많은 법관을 세우고 더 많은 감옥을 만들고 더 많은 사람을 옥에 넣어도 그로써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냐? 그 가슴속에 쓴물이 솟아오르는데 그 쓴물을 단물로 만들기 전에는 인간의 노력과 방법으로는 죄악의 쓴물을 달게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죄악의 쓴물을 제할 수 있습니까? 큰 문제입니다. 또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세속과 분노와 탐욕과 미움의 쓴못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여러분 태어날 때부터 세속으로 가득찹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하나님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하나님은 생각조차 아니하고 하나님을 내어 쫓아버리고 마음속에 오직 세속만 꽉 들어찼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만 가슴속에 출렁입니다. 그 결과로 다가오는 것이 미움이요 분노요 살상입니다. 또한 우리는 가슴속에 질병과 슬픔의 쓴물이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마음에 병들고 육체에 병들고 생활에 병들고 인간은 즐거운 시간보다 슬픔이 더 많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에 잠들기까지 많은 슬픔을 마시면서 삽니다. 혼자 사는 사람도 슬프고 부부간에 함께 사는 사람도 슬프고 부모 자식간에 사는 사람도 슬프고 동포끼리 사는 사람도 슬프고 외국인과 합쳐도 마음속에 언제나 사람은 슬픈 이야기를 하고 슬픈 노래를 부르고 슬픔 가운데 삽니다. 출렁이는 이 슬픔의 쓴 연못물을 어떻게 우리가 처리할 수 있습니까? 또한 우리의 가슴속에는 저주와 가난의 쓴 연못물이 있습니다. 여러분 태어날 때부터 저주를 우리는 가슴속에 안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저주의 연못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모든 것은 죽어갑니다. 모든 것이 사그러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들은 이 세상에서 저주의 쓴 연못물을 마시고 그 가운데서 발버둥치다가 일생을 그칩니다. 저주의 결과는 가난입니다. 우리는 마음도 가난하고 육신도 생활도 가난한 것입니다. 이 쓴 연못물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러나 가장 처절한 것은 죽음과 절망의 쓴 연못물인 것입니다. 죽음의 쓴 연못물을 마시고 우리가 이 땅에서 생명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생명의 즐거움이란 반짝하다가 사라지고 죽음의 고통은 늘 다가옵니다. 그리고 죽음의 쓴 연못물을 마시고 우리들의 마음도 영도 생활도 사망의 노예가 되었다가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 쓴 연못물을 달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이 쓴 연못물을 달게 하기 위해서 정치가를 원망하고 대통령을 원망하고 수상을 원망하고 혹은 시장을 원망하고 남편과 아내를, 부모와 자식을 원망하고 쓴물을 달게 해달라고 고함을 칩니다. 무슨 힘으로 쓴물을 달게 합니까? 더구나 IMF 한파에서 우리 한국에는 지금 기업이 도산되고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기업을 향해서 정부를 향해서 문제를 해결하라 직장을 보장하라고 고함을 치지만 정부는 정부대로 빚더미에 올라 앉았는데 무엇으로 보장을 합니까? 기업은 기업대로 문어발식 확장을 하다가 완전히 들통이 났는데 무엇으로써 보장을 합니까? 오늘 여의도에 십만여명의 노동자들이 와서 고함을 친다고 하지만 거기에 대한 해결책이 없습니다. 해결책을 두고서 안 주면 서로 밀고 당길 수 있지만 정부도 대답이 없고 기업가도 대답이 없고 노동자도 대답이 없습니다. 이 쓴물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누가 이 쓴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모세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가 기도하매 하나님이 한 나무가지를 지시하시는지라. 그 나무가지를 던지니 물이 달아졌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기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쓴물이 나무가지를 던져서 달아졌으니 이것은 사람의 지혜나 지식이나 총명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사람들 개인의 문제나 사회 국가의 문제도 사람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해결 방책이 없어요. 여기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크고 비밀한 하나님의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디에서 그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역사를 가져올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던질 나무가지가 있습니까? 성경은 보면 한 나무가지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던져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나무인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나무를 쓴 연못물에 던져 넣으면 쓴 연못물이 달아지는 것입니다. 죄악의 쓴 연못물에 십자가를 던지면 그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죄악의 쓴 연못물이 용서와 의의 단물로 변화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죄 지을 생각이 많고 죄에 묶인 사람도 십자가를 던져 넣으면 죄악의 쓴물이 달아지고 죄의 능력이 사라지고 마음속에 의와 평강이 가득차고 희락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십자가를 우리 마음속에 던져넣으면 그 쓴 연못물이 성령의 생명의 법이 역사하므로 기적으로 달아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용서의 단물, 의의 단물, 평화의 단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흉흉한 인심이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세속과 탐욕과 미움의 쓴 연못에 십가가를 던져넣으면 십가가를 통하여 하나님이 이 세속의 쓴물을 달게 하고 미움과 탐욕의 쓴물을 달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계시로 꽉 들어차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들어오면 세속 속에 하나님이 강림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움이 변화되어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탐욕이 변하여서 평상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하나님의 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수양과 도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마음의 세속과 탐욕과 미움의 쓴 연못물이 십자가의 나무를 던져넣으면 이렇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은 위대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우리가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변하여 포도주로 만드신 우리 하나님이 오늘 그 변화의 능력을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영혼 속에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20절에 보면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십자가를 통하여 세속에 묻힌 우리들을 하나님은 안아주시고 화목케 하시고 하나님 품에 안아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질병과 슬픔의 쓴 연못물에 십자가를 던져 넣으십시요. 질병과 슬픔의 쓴 연못물에 십자가를 던져넣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치료와 화평의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치료받고 그 치료가 우리 온 몸으로 넘쳐나며 우리 생활에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치료의 복음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치료의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병과 슬픔의 쓴 연못물에 십자가를 던져넣으면 치료와 건강과 기쁨의 단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참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까?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 권세라는 것은 반짝하는 기쁨 후에 더 많은 슬픔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희락이 극하면 거기에 반해서 슬픔도 더 많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쁨은 그와 정비례해서 또한 슬픔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를 끌어안으면 십자가를 통해서 마음속의 모든 질병을 다 치료하시고 우리의 슬픔을 다 제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여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기쁨과 행복은 다른 그 무엇과도 결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십자가를 끌어안아야 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질병과 슬픔의 쓴물을 다른 것으로 아무리 달게 하려고 해도 달아지지 않습니다. 쓴물이 솟아오릅니다. 거기에 십자가의 나무를 던져 넣으십시요. 그러면 달아집니다. 변화 받습니다.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주와 가난의 쓴 연못에 무엇으로 그 물을 달게 하겠습니까? 어떤 정책으로 어떤 원조로 어떤 IMF로 이 저주와 가난의 쓴 연못물을 달아지게 할 수 있나요? 아닙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에서 우리가 살아보자 우리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마음을 가지고 백성은 정부를 원망하지 말고 정부는 백성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노동자는 임금자에게, 임금자는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우리가 다 변화되어 손과 손을 마주 잡고 함께 나아가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은 우리 가슴에 있지 이 세상의 정책이 있지 않습니다. 어떤 특별한 사람의 리더쉽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서 문제의 해답이 다가옵니다. 마음의 가슴속에 저주와 가난의 쓴 연못물을 마시고 분노하고 고함치고 노도와 같이 헐뜯고 물고 찢으면 여러분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 물고 찢으면 망할까 조심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분열하면 망하고 사회와 가정이 분열되면 황폐하게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주와 가난의 쓴 연못물에 십자가를 던져넣으면 아브라함의 축복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 마음을 달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저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하심으로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십자가를 마음에 던져 넣음으로 이 저주와 가난의 쓴 연못물을 달게 변화시켜서 꿈과 희망을 얻어야만 하겠습니다.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을 얻고 쓴물이 달아져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삶의 자세와 태도를 취하고 서로가 서로 손잡고 나아가면 이 민족의 문제가 해결되고 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음과 절망의 쓴 연못에 십자가를 던져넣으십시요. 십자가를 던져넣으면 영생과 부활과 천국의 소망의 단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누가 죽었다가 살아났습니까? 여러분 위대한 종교는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철학도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죽었다가 부활하신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곧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 가슴에 끌어안으면 우리 죽음이 쓴물이 달아집니다. 죽음의 절망의 쓴물이 달아집니다. 우리 마음속에 영생과 부활과 생명의 단물로 출렁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당신의 계명과 율례를 주시기 전에 쓴물을 달게 해서 그것을 먼저 마시게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람들에게 아무리 율법과 계명을 주어도 마음에 쓴물이 넘쳐나서 좌절과 절망에 있는 이상 그 계명과 율례를 지킬 힘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이 달아져야 계명과 율법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지킬 힘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더 많은 경찰서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더 많은 감옥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쓴물이 가득한 사람들을 아무리 법으로 다스리고 감옥에 집어넣어도 그들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변화를 가져오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슴에 던져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변화가 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변화가 와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받아들여서 새사람으로 변화되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렇게 변화가 되면 둘째로 이 성경 말씀에 성도의 의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5절로 26절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여러분 마음에 쓴물이 달아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계명과 율례를 주신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계명과 율례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5장 3절에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잠언서 14장 34절에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잠언서 15장 9절에는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 마음의 쓴물이 달아졌으면 의를 행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마음에 쓴물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거니와 의를 행할 힘도 없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소용이 없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셨는데 마음의 쓴물이 달아진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극히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신을 섬길 리가 없습니다.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했는데 십자가를 통해서 마음의 쓴물이 달아진 사람이 예수님만 예배하고 찬미하지 우상를 보고 절할 리가 없습니다. 우상을 미워하고 우상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했는데 예수로 말미암아 마음의 쓴물이 달아지고 내 마음에 기쁨과 영화를 주셨는데 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겠습니까? 그럴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우리 교회는 주일을 성일로 지키는데 우리 마음이 예수로 말미암아 달아지면 우리가 교회에 오는 것이 그렇게 기쁘고 행복하고 즐거운데 아무리 가지 말라고 해도 교회를 오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서 가는데 누가 막을 수 있습니까? 이와 같은 마음의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옛날에는 부모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것은 내 마음이 편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슬프고 고통스러운데 부모나 형제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가 행복해야 이웃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여러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한강에 투신 자살하러 가는 사람을 따라가면서 이웃을 사랑하시요. 이웃을 사랑하시요 그러면 그 사람 뭐라고 하겠습니까? 너나 사랑해라 그러고 한강에 뛰어들어갈 것입니다. 자살할 사람이 무슨 이웃을 사랑해요. 그러나 마음이 달아져서 자기가 행복해지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처자도 사랑하고 자기의 부모도 공경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고 하는데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고 나의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이 왜 남을 죽입니까?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면 남을 죽이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 믿고 내 마음이 기쁨이 넘치고 삶의 가치와 삶의 소망을 가지고 있는데 왜 남을 죽입니까? 그리고 남을 살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고 애를 씁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직업을 잃고 홈레스가 된 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간음하지 말라 그렇게 말했는데 여러분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도덕이 있는데 왜 간음을 합니까? 스스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의 양심을 거역하고 자기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그러한 행동을 안할 것입니다. 도적질하지 말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왜 도적질해요. 우리 필요한 것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왜 남의 것을 도적질하겠습니까? 네 이웃을 거짓 증거하지 말라. 이웃을 사랑해서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이웃이 잘못 되라고 거짓 증거하고 이웃을 고소하겠습니까?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 이웃이 잘 되면 시기하고 분노하고 질투한다고 그러는데 여러분 왜 우리가 이웃을 탐하겠습니까? 이웃을 축복해 주어야지. 우리 한국에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을 이제는 내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웃는다고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왜 배가 아파요. 우리가 잘 되면 박수를 치고 좋아해 주어야지. 그러므로 우리가 쓴물이 달아지면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킬 힘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쓴물이 달아지지 아니하면 계명을 아무리 주어도 그 계명을 지킬 힘이 없어요. 그러므로 십자가를 부여잡기 전에는 아무런 계명이나 율법을 주어도 그것을 지킬 힘이 없습니다. 율법을 준 그 사람이 또 그 죄를 지으니까요. 이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어야 율법과 계명을 지킬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규례를 지키는데 우리 교회는 물세례를 주니까 물세례를 받아야 될 것이고, 또 성찬 예식이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떡과 잔을 받고서 우리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이 셋째로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쓴물이 달아지고 마음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 율례를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거기에 대해서 댓가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댓가가 뭐냐? 하나님께서 야웨 라파로, 곧 치료하시는 의사로 우리에게 당신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여러분 애굽사람에게 내린 질병이란 세상에 횡행하는 질병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면 세상에 횡행하는 질병을 하나도 우리에게 내리지 않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치료의 의사가 되어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그 다음에는 오아시스인 엘림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오아시스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데 그 엘림은 어떤 곳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7절에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물샘 열둘과 칠십주의 종려는 하나님의 선택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나하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칠십인의 장로가 모여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칠십인의 제자들을 모아서 하나님은 천국의 기초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민을 위하여 하나님은 예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을 위해서 예비하십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쓴물이 달아지고 하나님의 율례와 계명을 지키니까 그가 친히 예비하신 오아시스인 엘림으로 이끌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도 오아시스인 엘림을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 엘림은 어떤 곳입니까? 열두 샘물은 신령한 축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칠십주의 종려나무는 성공과 부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곳에는 열두 샘물이 넘쳐 흐릅니다. 여러분 생각만해도 그 뜨거운 사막 가운데 맑은 샘물 열두덩이가 솟아오르니 얼마나 시원하고 상쾌하고 생명이 넘칩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엘림으로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이 생명으로 넘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덕목이 우리 마음속에 넘쳐나며 의와 평강과 희락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넘쳐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사야서 58장 11절에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엘림을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92편 12절에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종려나무는 바로 성공과 번창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이 오아시스인 엘림으로 인도하는데 열두 샘물 생명의 생수가 넘치고, 종려 칠십주 이것은 우리의 번창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 번영과 축복을 말합니다. 이러한 곳에 와서 그 샘곁에 장막을 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엘림은 바로 요한삼서 2절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영혼이 잘 되는 것은 열두 샘물이 솟아오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범사에 잘 되는 것은 칠십주의 종려나무가 상징하는 것입니다. 강건함은 나는 너희 병을 치료하는 야웨라고 말슴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곳에 우리의 장막을 칩니다. 우리의 육체가 바로 장막집 아닙니까? 그곳에 우리가 살아가는 장막집은 바로 엘림인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끌어안고 변화를 받고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를 지키고 살면 하나님은 우리의 장막집을 바로 엘림에 장막을 치고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는 그곳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엘림에 장막을 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열두 샘물이 솟아오르고 칠십주의 종려나무가 바람에 휘날리는 바로 오아시스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지 말고 우리가 진실로 이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우리 마음속에 끌어안고 마음의 쓴 연못물에 던져서 우리의 마음에 변화를 받아들이십시요. 이런 여러분의 결심과 각오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끌어안으면 하나님의 기적과 권능이 여러분을 변화시키고 달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힘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계명도 지키고 율례도 행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엘림에 장막을 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잘 되는 곳에 장막을 치고 범사가 형통하는 곳에 장막을 치고 강건한 곳에 장막을 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선민들을 위해서 예비한 처소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예비된 처소에 우리가 살아가면 IMF 한파가 어떻든 세상의 고통이 어떻든 그것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왜 사막 가운데 하나님이 예비한 오아시스인 것입니다. 이 사막 가운데에서 하나님은 오아시스에 여러분의 육신의 장막을 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근본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희망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고 내일이 있습니다. 뒤로 돌아서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광야에서 비록 방황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쓴 연못물을 달게 하려고 이천년전에 우리 주 예수님을 보내사 십자가에 못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위대한 변화의 능력을 가져온 십자가를 자기고 있으므로 우리 마음의 쓴 연못물에 십자가를 던져 모두 다 달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다 예수 십자가를 받아들여 변화를 받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율례와 계명을 지키고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계명과 율례가 구원받는 조건은 되지 않지만 예수 믿는 사람이 계명과 율례를 지킬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엘림의 오아시스로 이끌어 주십니다. 아버지 구원은 예수 믿어 받지만 축복은 계명과 율례를 지킴으로 오아시스 속에 장막을 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며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를 지키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이 하루하루 자고 깨도 하는데 매일같이 우리의 육신의 장막이 오아시스인 엘림에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을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매일같이 우리 속에 샘물 열둘이 쾅쾅 맑은 샘물을 솟아올리고 종려 칠십주가바람에 날리는 하나님의 은총 속에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여 오늘 마음과 몸에 쓴 연못물을 가지고 고통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공로로 모든 심신의 병을 고쳐 주시옵소서.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팔의 능력이 나타나사 안수하여 주시옵시고 마음의 쓴물이 달아지게 도와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마음의 병을 고쳐 주시옵시고 육신의 병을 고쳐 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치료의 물결이 솟아오르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니의 영광이 나타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삶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방황하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 불쌍히 보아 주시옵소서. 직장을 잃은 사람, 사업이 낭패에 처한 사람, 도산한 사람, 여러가지 수고와 괴로움이 많습니다. 우리 아버지여 오늘 이 시간에 오셔서 그 쓴 연못물을 달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좌절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고 꿈과 희망을 갖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친히 관여하사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옵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든 성도들의 생애 속에 하나니의 은혜가 넘쳐나고 주의 영광이 임하여 주시옵시고 성령 충만 은혜 충만 믿음 충만 소망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여 모든 일에 이기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