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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8월 9일 주일설교 제목: 바람을 보지 말라 성구: 마태복음 14:24-33 설교: 조용기 목사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바람을 보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벳새다 광야에서 남자만 5천명 부녀자 수만명을 기적으로 먹이시고 난 다음 날이 어두워지매 제자들을 독촉해서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주님은 산에 올라가서 홀로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밤 사경쯤 되어서 우리 제자들이 아직까지도 바다 한 가운데 있습니다. 바람이 너무나 불고 물결이 거스림으로 제자들이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가 전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바다 가운데서 지치고 피곤하고 고달파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구출하러 물위로 걸어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환한 불빛 가운데 다가오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 줄 알고서 고함을 쳤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므로 베드로가 주시거든 나로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니 베드로가 담대히 물위를 걸어가다가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는지라 곧 물에 빠졌습니다. 주여 내가 죽겠사오니 나를 살려 주소서. 예수님께서 곧 와서 그를 구하시며 꾸짖으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그리고 그를 데리고 배 위에 올라오니 곧 바람이 잔잔해지더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대단히 많습니다. 첫째로, 여러분 우리는 베드로처럼 담대한 믿음의 모험을 행해야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눈에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말씀에 입각해서 담대히 나아갈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는 엄청난 믿음의 모험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갈릴리 바다에 풍랑이 일었는데 그것도 밤입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그곳에 바람은 불고 파도는 높이 치는데 그곳에 주님께서 물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바라보고 그 주님께 담대하게 요구를 했습니다. 주시거든 나로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여러분 진짜로 주님이 아니고 유령일 수도 있습니다. 선원들은 말하기를 바다에서 유령을 보면 그 배가 파산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풍랑이 이는 바다에 예수님이 아니고 유령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주시거든 나로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주님께서 오시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물위에 떠올랐다가 내려앉았다가 떠올랐다가 내려앉았다가 하고 계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겁이 나서 배에서 움추렸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의 말씀을 믿고 그는 배 밖으로 나가 물위에 한 발자국을 디디고 저벅저벅 주님께로 향하여 걸어갔습니다. 인류 역사상 물위를 걸은 첫째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그가 나갈 때에 바닷물조차 그를 빠뜨리지 못했습니다. 성경 로마서 10장 17절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의지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갈 때에 어떠한 환경이든지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제자들이 있었지만 베드로만이 이 기적을 체험한 것은 베드로는 담대한 믿음으로 모험을 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여러분 모험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주의 말씀을 의지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담대히 실천해야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형편도 풍랑 이는 갈릴리 바다와 같습니다. IMF라는 풍랑이 일어나 파산할 위기에 우리 나라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어려운 때에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오고 혹은 제자들을 찾아온 것처럼 우리에게도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너희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5만 교회가 있고 1천 2백만 성도가 있는데 5만교회와 천이백만 성도가 풍랑을 만났는데 주님께서 내버려 놓고 안 찾아올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날 이 나라에 찾아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만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로 하여금 이 풍랑을 짓밟고 주님께로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주님을 찾고 이 시간에 주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씀으로 의지하고 그 풍랑 이는 바다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향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 풍랑을 짓밟고 걸어나가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에만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에 의지하면 안됩니다. 감각에 의지하면 안됩니다. 오직 주의 말씀에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많은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이 말씀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갈라디아서 3장 13절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저주를 받았으므로 나는 환경이 어떠하든지 아브라함의 축복 속에 있다는 사실을 굳세게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풍랑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말씀입니다. 말씀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풍랑이 어떻게 되든 우리는 주신 말씀을 부여잡고 말씀 가운데 서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을 기억하십시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가난을 걸머지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부요함을 얻을 수 있다는 이 사실을 우리는 굳세게 부여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환경이야 어떻든 우리는 상관 할 것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풍랑 가운데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풍랑이 없는 데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바람 소리가 나고 파도가 치는 그 가운데서 주신 주의 말씀을 우리는 굳세게 부여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 3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하는 말씀을 힘차게 부여잡아야 됩니다. 어떠한 환경이 되어도 우리 주님은 우리 영혼이 잘되면 범사에 잘 되고 강건케 해 주신다는 이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가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에 한번 귀를 기울여 보십시요. 얼마나 은혜롭고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마태복음 6장 25절로 34절에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결국 먹고 입고 사는 삶은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어떠한 환경에도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 천지와 만물을 경영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에 살게 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우리는 하늘 나라 백성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고 경영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지 못할 무능력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의 말씀을 기억했을 때는 그 물결 속에 그 바람 속에 유유히 걸어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오늘 이 시점에 예수님의 말씀을 늘 마음속에 묵상하고 말씀에 사로잡혀서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어떠한 역경도 기적적으로 헤치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여기에 보면 베드로가 그만 잘 가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물에 빠진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는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그가 처음 출발할 때도 바람과 풍랑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람과 풍랑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주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주님만 바라보고 걸어가기로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걸어가다가 그만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말씀과 주님만 바라보지 아니하고 그는 바람을 바라보고 물결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믿음을 선택하지 아니하고 감각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즉시로 믿음의 사람이 아닌 감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말씀을 부여잡고 주님을 바라볼 때는 믿음의 사람으로 강하고 담대하고 모험을 가지고 기적을 기대하고 나아갔는데 그가 말씀과 주님을 저버리니까 그만 바람과 파도를 보고 두려워하는 감각적인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주님께서 그를 보고 꾸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여러분 말씀을 놓치면 믿음이 적어집니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감각을 의지하면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어야 믿음의 사람이 되고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의심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도 놓쳐버리고 말씀도 놓쳐버리고 그 다음 의심하게 되고 그는 두려워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두려워하면 문제가 생겨납니다. 두려움은 예수님과의 관계인 믿음을 빼앗고 기적을 없애 버립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생각하며 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있으면 두려움이 다 ㅤㅉㅗㅈ겨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예수님이 나와 같이 계시고 나를 사랑하시는데 어디 두려움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말씀을 놓쳐버리면 두려움이 들어오고 두려우면 형벌이 따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반드시 거기에 적합한 벌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성경 욥기 3장 25절에 보면 욥이 말하기를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면 마귀는 바로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그것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폐병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폐병이 걸립니다. 늘 암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암에 걸립니다. 늘 망할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패배할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패배합니다. 사고를 당할 것을 늘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고를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으면 우리는 믿음에서 떠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서 떠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있을 때는 주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자복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회복하고 말씀을 받아들여서 믿음을 복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속히 두려움에서 나와야지 두려움 가운데 처하면 바로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치고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 생활에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베드로가 두려워하지 않을 때는 물위로 걸어갔으나 그가 두려워 할 때는 그가 물에 빠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그대로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면 여러분 경제적인 위기 상황은 온 천지에 가득합니다. 경제적인 붕괴와 퇴직, 실직, 부도, 기업의 파탄, 가정 파탄, 홈레스, 거기에다가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쏟아져서 홍수의 피해도 막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TV나 라디오나 신문이나 잡지나 소문을 들으면 바람 소리가 요란하게 들립니다. 모두 바람입니다. 경제적인 붕괴의 바람 소리, 퇴직의 바람 소리, 실직의 바람 소리, 부도의 바람 소리, 기업의 파탄의 바람소리, 가정 파탄의 바람 소리, 홍수의 바람소리, 우리에게 부정적인 바람 소리가 요란하게 들립니다. 베드로처럼 만일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말씀에 서는 것을 버리고 바람 소리를 들으면 우리 마음속에 믿음은 다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 선택을 잘 해야 되는 것입니다. 바람 소리를 듣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는 주 예수의 말씀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바람은 왔다가는 지나가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바람은 변화무쌍합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말씀 위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온 천하가 다 나를 버려도 예수님은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올라가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무한한 댓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주님은 여러분을 한없이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주의 말씀에 서고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바람 소리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께서 예배드리고 집에 돌아가서 TV를 켜면 요란한 바람 소리가 들립니다. 라디오를 틀어도 요란한 바람 소리, 신문을 보아도 요란한 바람 소리가 들립니다. 바람 소리를 들으면 마음속에 공포가 다가오고 좌절과 절망이 다가오며 물에 빠져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바람을 바라보면 빠져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을 돌이켜서는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여러분 교회에 잘 오셨습니다.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두 세사람이 함께 모이면 신앙의 불이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 잘 오셨습니다. 우리는 생활에서 계속 함께 모여서 우리가 신앙으로 격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말씀을 묵상하는 것을 버리면 안됩니다. 말씀만이 어려울 때 믿을 수 있는 만세반석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늘 읽고 생각하고 묵상하고 말씀이 늘 내 영혼 속에 영양이 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를 하십시오. 시편 50편 15절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계속해서 어려움이 닥칠 때에 주님께 도움을 간구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부정적으로 말하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것은 우리들이 생각 안 해도 말 안 해도 꽉 들어차 있습니다. 동서남북 어디를 보아도 부정적인 것이 있고 부정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 백성이므로 말씀을 따라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말을 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여도 좋습니다.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려도 좋습니다.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좋습니다. 내 집이 침수 당하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좋습니다. 그 부정적인 것 다 있습니다. 그것을 또 내 마음에 다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그런 환경 가운데에도 예수님께 서야 되고 주의 말씀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뭐라고 말을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침수를 당하고 가재도구를 잃어버려도 먼 눈으로 바라보면 주님은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오히려 유익 되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주의 말씀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 없다’, ‘못한다’, ‘안된다’, ‘좌절이다’, ‘절망이다’라고 하지 말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는 긍정적인 자세로 늘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부정적인 친구를 피해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친구는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지만 나쁜 친구는 여러분에게 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언제나 불평하고 원망하고 탄식하는 부정적인 친구는 여러분에게 이익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음속에 자꾸 쓸데없는 생각을 던져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웃 사람이 자기의 쓰레기 더미를 여러분 안 마당에 막 던지면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자꾸 던져 주십시오. 그럴 사람 있습니까? 왜 내 안 마당에 쓰레기를 던졌느냐? 당장 치워라. 안 그러면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말을 하겠지요. 그런데 이웃 사람이 와서 여러분의 가슴속에 쓰레기를 막 던져 줍니다. 부정적인 말, 파괴적인 말, 비난하는 말, 사람들을 모욕하는 말, 쓰레기 더미를 잔뜩 던지는데 그걸 입을 벌리고 덥썩 덥썩 받아 먹고 소화가 안되어 가지고 껄껄거리고 마음속의 신앙도 잃어버리고 마음이 우울해지고 마음이 슬퍼지고 마음이 고통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사단은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들의 가슴속에 쓰레기 더미를 막 던집니다. 부정적인 것을 막 던져요. 이런 것을 받아들이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정적인 것을 내어 뱉어 버리고 부정적인 친구를 사귀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을 떠나가 버리십시오. 결국에는 여러분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땅을 보고 살지 않고 하늘 보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랑천을 쳐다보고 살지 않고 한강 쳐다보고 살지 않고 우리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쳐다보고 사는 것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이상 우리는 주위에 있는 바람을 바라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바람이 여러분의 가족을 통해서 불어오든 이웃을 통해서 불어오든 이웃의 입을 통해서 나오던 바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말씀에 서고 예수님만 바라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베드로가 물에 빠졌습니다. 그는 주님을 바라보고 말씀에 서지 않고 바람을 바라보다가 두려움이 들어와서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젠 생명의 위험에 처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잘못된 것을 신속히 회개했습니다. 주여 내가 죽겠사옵나이다. 나를 건져 주소서. 베드로는 자기의 잘못된 선택을 회개했었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냥은 구출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이 두 마디가 모두 우리들의 선택에 관한 꾸짖음입니다. 적은 믿음은 말씀을 놓쳤기 때문에 적은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말씀만 잡고 있었으면 적은 믿음이 아니지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의심하였다는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감각에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손으로 만지는 감각에 의지하면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6절은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만일 신앙에 실패해서 환난과 고통의 홍수에 빠져 들어가면 주님께 즉시로 우리의 잘못된 신앙을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믿음으로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내가 말씀을 등한히 한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그리고 주님보다도 감각을 의지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할 때에 예수님은 오셔서 베드로의 손을 잡고 배 위에 올라오니 바람이 잔잔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낭패와 절망의 바다에 빠질 때는 불성실한 신앙과 불순종을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과 마음과 몸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 아담과 하와가 처음 지음 받을 때는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영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 영적으로 살았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의 지혜는 영의 수단과 방법이요, 인간의 육체의 감각도 살아가는 지팡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영이 죽으매 이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을 잃었기 때문에 자기의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수단과 방법으로 살고 모든 감각을 통해서 살게 된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여러분 영적인 삶인 것입니다. 주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을 보고 믿음으로 살라고 하면 도무지 믿음으로 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죽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구주로 모신 우리들에게는 영이 살아남으로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살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감각으로 살고 인간의 지식으로 살던 삶을 초월해서 이젠 영적으로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살고 믿음으로 살고 순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힘이 영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성령을 따라서 우리가 살게 될 때 우리는 낭패와 실망을 이기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손을 잡고 살기 위해서는 감각을 의지하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의 인간의 좁은 지식과 지혜와 총명 같은 것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에 폭우가 쏟아지니까 인간의 힘이란 너무나 무능력하고 무력하기 짝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번에 이 폭우를 보고 인간의 힘이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얼마나 풍전등화와 같다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릎 꿇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면 주님과 함께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졌을 때 그의 감각적인 삶을 회개하고 인간의 지적인 삶을 회개하고 다시 영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를 건져 주셨습니다. 자기의 지혜로 건진 것이 아닙니다. 육체로 헤엄쳐서 건진 것 아닙니다. 주님이 건져서 배로 데려온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의 인간의 육체의 힘으로 우리를 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지혜와 총명으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무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시면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사람이 되어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기도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영이 와서 역사하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 하늘에 움직이는 저 많은 구름떼를 하나님의 성령만이 움직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로 움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영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영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으로 영이 죽었을 때에 인간은 불가불 인간의 지혜를 의지하고 감각을 지팡이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공포에 떨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을 때 다시 우리의 영이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삶을 갖게 되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성령님과 동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과 한 식구가 되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요 믿음으로 사는 삶이요 순종으로 사는 삶이요 기적을 산출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인생의 배에 오르시면 모든 파도가 잠잠해지고 목적지에 잘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마치 갈릴리 풍랑 이는 바다 일엽편주에 떠 있는 이와같은 상황이지만 우리가 오직 말씀에 서고 주님을 바라보고 영적인 삶을 살 때에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도 이기고 승리하고 축복을 받고 목적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환경을 바라보면 온 천지에 바람 소리가 요란합니다. 우리 아버지 그 바람 소리를 듣고 여기 저기 수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낭패와 실망을 당하여 삶을 포기하고 좌절과 절망에 처하는 개인과 단체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 이 바람 소리를 듣지 말고 우리가 말씀을 상고하고 주님만 바라보면 물위로 걸어가고 또 주님이 우리 배 속에 들어와서 바람을 잠잠케 해 주시는 것이옵나이다. 아버지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이 시점에 육체적인 감각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인간의 좁은 지혜와 지식과 총명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신령한 영적인 사람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말씀으로 살고 성령으로 살고 기도로 살고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번 이 기회에 모두 다 신령한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역사가 일어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고 그 말씀 위에 서서 아버지께 간구합니다. 저희에게 다가온 모든 어려운 역사를 멸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마음에 병이 든 사람도 있고 육체에 병이 든 사람도 있는데 아버지 하나님이여 이 병을 도말시켜 버려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간구하오니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과 권세가 나타나주셔서 이 병의 뿌리를 뽑아버려 주시옵시고 병을 멸하여 주시옵시고 이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건강과 자유와 행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비와 긍휼의 아버지여 주 예수 이름으로 아버지를 앙망하고 주의 말씀을 믿사오니 주님께서 기적을 베푸소서.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고 말씀하신 주님! 오늘 주님께서 모두 다 일으켜 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여 고통과 괴로움 속에 주님께 나왔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이 있사오나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오니 주님의 오른팔의 능력이 나타나사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여 주시옵시고 이 절망을 소망으로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직장을 주시고 사업을 주옵소서. 재건하여 주옵소서. 축복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주옵소서.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게 만들어 주옵소서. 우리 아버지 앞에 서서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게 만들어 주옵소서. 우리 아버지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