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8월 23일
주일설교


제목: 꿈이 있는 자만이 생존한다.
성구: 행2:17-21
설교: 조용기 목사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꿈이 있는 자만이 생존한다”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인간은 그 가슴속에 꿈을 품고 산다는 것입니다. 꿈이란 현재의 것이 아닙니다. 꿈은 내일의 사건을 지금 마음속에 현재처럼 늘 비추어 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재 없는 것을 즉, 미래적 사건을 마치 현재 있는 것처럼 마음에 비추어 보는 것이 꿈입니다. 꿈을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인류 문명의 발전은 그것이 정치, 경제, 군사, 산업, 과학, 예술 등 그 무엇이든 간에 꿈꾸는 사람들에 의해서 창조되고 발전되고 있습니다.
저는 40년의 목회 생활을 뒤돌아 볼 때에 현재 제가 체험하고 있는 모든 것이 한때 저의 마음속에 꿈꾸고 있던 것들이었습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면서 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곤궁한 처지에 빠졌을 때라도 저는 성령님의 은혜 중 항상 마음속에 그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로 우뚝 선 꿈으로 가득 채워 놓았던 것입니다.
수많은 경우 운명과 환경이 칠흑같이 어두울 때도 마음 속 꿈에 취해서 살아온 경험이 마음속에 떠오릅니다. 지난 세월 돌이켜 보면 성령께서 주신 꿈들이 운명과 환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내일의 삶을 창조하는 능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현재 우리 조국은 너무나 어두운 터널을 통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고난과 역경이 파도처럼 엄습해 오고 있습니다.
이 거센 풍랑 속에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가슴에 품고 억척스럽게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나아가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꿈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성공적으로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구약시대에 보면 75세가 된 노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꿈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3, 40대 젊은 청년이 아닙니다. 75세 이미 인생을 은퇴한 그분에게 한번은 영광의 하나님이 나타나서 그 마음속에 찬란한 꿈을 심어 주었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3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것은 정말 가슴 벅찬 꿈이었습니다. 도저히 자기 머리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내일에 대한 꿈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가슴속에 심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주신 그 꿈을 따라 고난의 숲을 헤치고 그의 아내의 손을 잡고 조카를 데리고 하란에서 모은 모든 재산과 종들과 일가 친척을 모두 거느리고 가나안 땅을 향해서 출발했습니다. 그가 출발한 것은 가슴속에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이외에 가나안 땅에서 그를 초청한 사람도 없었고 그곳에 와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준비를 해준 사람도 없었습니다. 단지 그는 가슴속에 하나님이 주신 불타는 꿈을 안고 그 황막한 사막을 지나서 가나안 땅을 향해서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와보니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기근이 다가왔습니다. 한발로 말미암아 초목은 다 불타고 우물물은 다 말랐습니다. 따라온 사람들은 다 실망해서 도로 돌이켜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오직 남은 것은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가슴속에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고향을 떠나서 꿈을 안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했으므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들은 역경을 당하여 도로 다 옛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가슴속에 꿈이 있는 아브라함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 살 길을 찾아 오히려 애굽으로 내려갔고 애굽에서 그는 말할 수 없는 수욕을 당했습니다. 그 아내를 빼앗기고 바로가 그를 궁중에 있으면서 바로의 도움을 받아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는 수욕과 수난을 당하면서도 그 마음속에 꿈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살하지도 아니하고 파탄에 이르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을 믿고 기다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다시 회개시켜 돌이키시고 그 아내를 돌려주심으로 그 아내를 데리고 꿈의 고장 가나안으로 돌아 올 수가 있었습니다.
가나안에 돌아와서도 조카 롯과 목초지 싸움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조카 롯도 짐승과 목동이 많고 아브라함도 짐승과 목동이 많아서 그들이 좁은 초장을 가지고 아저씨의 목동들과 조카의 목동들이 서로 싸웠습니다. 그래서 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은 조카에게 말했습니다. ‘조카야 우리 둘이 헤어지자 원래 하나님께서 너를 떠나서 오라고 했는데 내가 너를 데리고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난을 겪어야 했다. 우리 헤어지자. 네가 동으로 가면 내가 서로 가고 네가 남으로 가면 내가 북으로 가겠다’ 그런데 조카는 저 요단들을 바라보고 소돔과 고모라 들을 바라보니 물이 넉넉하고 초지가 많은지라 그곳을 택해 갔지만 아브라함은 마음에 꿈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가나안을 떠나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에 있으라고 말했으므로 가나안에 풀도 많지 않고 물도 많지 않지만 그 가슴속에 꿈을 안고 그는 그 자리에 남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더 큰 꿈을 주시고 희망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3장 14절로 16절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그래서 또 다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슴 벅찬 꿈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의 손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꿈 속에 하나님은 이 땅을 소유하도록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가슴 벅차게 그 땅이 다 자기에게 주어진 땅인 것을 믿음으로 소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꿈을 품에 품고 고향 산천을 떠나 왔고 또 꿈을 마음속에 품고 가나안 땅에서 아직 자기 소유가 되지 아니했으면서도 믿음으로 소유된 것을 알았었습니다. 그가 85세쯤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것도 또한 꿈이었습니다.
창세기 15장 5절로 6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자녀를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시고 하늘에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고 헤아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꿈 속에 그는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땅의 티끌보다 많을 것을 마음속에 믿었습니다. 실제로는 아직까지 소유하지 못해도 그는 꿈을 소유하고 그리고 믿음으로 그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로 나중에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 아들 이삭을 얻었으며 그 후손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에게 복을 주시려고 할 때에 그 마음속에 꿈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 꿈을 부여잡고 있으면 수 없이 난관이 다가오고 고통이 다가와도 그 꿈이 그 사람을 이끌어가고 그 꿈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꿈을 저버리면 내일이 없습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꿈이 없는 개인도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역경을 겪을 때에 마음속에 꿈을 버리면 안됩니다.
세계 제 1차 대전이 끝나고 난 다음에 미국에서는 그 당시에 미국의 백만장자 4천4십3 명의 생애를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그들 중에 교육을 받은 사람도 있고 못 받은 사람도 있고 상속을 얻은 사람도 있고 못 얻은 사람도 있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도 있고 여러 가지 환경이 있었지만 그 4천4십3명 백만장자는 똑같은 동일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한 사람도 남김 없이 그 사람들은 삶에 분명한 목표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지러운 목표가 아니라 무엇을 하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그 다음 그들의 가슴속에 열화같이 불타는 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굽히지 아니하는 열화같은 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떠한 역경을 당해도 쉽게 꺾이거나 뒤로 물러가지 않은 억척같은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동일한 점이 있어서 그들은 모두 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에서 백만장자들이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가슴속에 품는 꿈은 허망한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마음속에 품으면 아무리 우리 삶에 역경이 다가와도 그 꿈이 있는 이상 꿈이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꿈이 우리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경 말씀 가운데 주님께서 내가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아브라함의 손자인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했습니까? 여러분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쌍둥이를 배속에 잉태했습니다.
로마서 9장 10절로 13절에 보면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왜 똑같은 쌍둥이 형제인데 하나님께서는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했습니까? 외면적으로 볼 때는 에서는 호남아였습니다. 그는 털이 부슬부슬하게 많고 얼굴이 붉고 키가 크고 장대한 어깨가 떡 벌어진 호남아였습니다. 사냥하기를 좋아하고 웃기를 좋아하며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동생 야곱은 모든 면에서 남자답지 않고 여성과 같았습니다. 체구도 형에 비해서 왜소하고 몸도 희고 매끈매끈하고 얼굴도 곱살스럽게 생겼으나 교활하고 거짓말 잘 하고 꾀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외면적으로 볼 때는 그 누가 보더라도 에서를 사랑하고 야곱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했습니까? 에서는 외면적으로 볼 때에 호남아였고 훌륭한 사람같이 보였지만 꿈이 없었고 야곱은 교활하고 사기성이 있었지만 그 마음속에 꿈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이 없는 에서는 버리시고 꿈이 있는 야곱은 사랑하사 하나님께서는 그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왜냐하면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의 명을 잇는 장자의 명분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 다음에 에서의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데 그 하나님에 대한 꿈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배가 고파 왔을 때에 동생이 죽을 끓이는 것을 보고 죽 좀 달라고 하니까 야곱은 꿈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에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야곱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형에게 말했습니다. ‘형, 장자의 명분을 팔아. 그러면 내가 팥죽 한 그릇을 주겠다’ 형이 말하기를 ‘내가 배 고파 죽겠는데 장자 그까짓 것 뭘 하겠느냐. 팔았다’ 그리고 장자의 명분을 팔고 팥죽 한 그릇을 받아먹는 이 정도로 그는 꿈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꿈과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꿈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교활한 수단을 써서라도 형에게 장자의 명분을 빼앗아서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야겠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에서를 버리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6절로 17절에 보면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꿈을 버린 자는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지 아니하고 버려 버리는 것입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으나 그는 하나님의 축복의 대, 즉 아브라함의 족보를 잇겠다는 간절한 꿈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보다 그는 아직 믿음이 약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눈이 어두운 것을 기화로 형의 옷을 입고 형 흉내를 내어서 아버지에게 자기가 형이라고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다 받아서 그 대를 이으려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도무지 하나님에 대한 관심도 없고 자기의 대를 이을 꿈도 갖지 아니하고 매일 매일 창 던지고 활 쏘면서 짐승 잡아 먹고 사는 삶의 희락에만 빠져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잠언서 29장 18절에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한국어 번역에는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했습니다. 에서는 묵시가 없습니다. 꿈이 없습니다. 꿈이 없으므로 방자하게 행하고 그는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가슴 속에 꿈을 가지는 것과 꿈을 가지지 않은 것은 천양지차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이 없는 개인이나 꿈이 없는 백성은 버리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12 형제 중에 유독 요셉만이 꿈이 있었습니다. 열한 형제들은 그냥 짐승치고 먹고 사는 것만 즐거워했지 그 가슴속에 내일의 꿈이 없었으나 하나님은 요셉에게 내일에 대한 원대한 꿈을 넣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했으나 꿈은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으로 꿈을 가진 사람을 보호하고 만들어가고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가 형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종으로 팔리고 보디발의 집에서 잔뼈가 다 굵도록 고생을 하며 종살이 했지만, 그리고 그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으나 꿈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 이상 결코 그는 소화될 수 없고 버림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그의 가슴에 품은 꿈대로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시면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는 꿈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성령께서는 우리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 주므로 그 꿈과 환상을 가지고 우리를 만들어가고 변화시키고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어럽고 고통스러운 시절을 통합니다. 이러할 때에 우리의 정부나 우리의 정치인이나 우리의 기업인이나 우리 노동자나 우리 국민 전체가 내일에 대한 영롱한 꿈을 잃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꿈을 잃어버리고 그냥 방자하게 행해서 될대로 되라고 하면 아무도 그 사람을 도울 수가 없고 하나님도 그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비록 현재의 환경에 눈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꿈을 품고 있으면 그 꿈이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꿈을 통하여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을 품지 않는 개인이나 가족을 버림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오늘날 우리가 어디에서 꿈을 얻을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무슨 꿈을 우리의 가슴속에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꿈이요 우리들의 꿈인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십자가의 꿈을 우리의 마음속에 심기를 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서 십자가에 못 박아 피를 흘리셨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인류를 구원하는 꿈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꿈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이 이룩할 인류와 세상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꿈을 우리 가슴속에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꿈이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꿈은 무엇일까요? 십자가의 대속을 통하여 사람들이 믿어 용서와 의를 선물로 받기를 하나님은 꿈꾸시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온 인류의 죄를 다 청산하고 난 다음에 주님은 사람들이 이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 뜻대로 용서를 받고 의롭게 될 것을 꿈꾸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꿈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꿈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여 주셔서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5절로 6절에 보면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했으며,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꿈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꿈을 창세전부터 꾸고 계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용서와 의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돌아올 것을 꿈꾸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꿈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용서와 의를 받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대속을 통하여 성령이 다스리는 천국이 우리의 마음에 임하실 것을 꿈꾸고 계셨습니다. 이 땅엔 마귀가 신이 되고 마귀가 임금이 되어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고통을 가지고 인류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를 흘려서 아담이 지은 죄를 다 청산함으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 나라를 세우시고 예수를 모신 사람들 가슴속에 하늘 나라가 임하실 것을 하나님은 꿈꾸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그냥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가 예수를 통해서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꿈인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 5장 5절에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통해서 하늘 나라가 임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속에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과 나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있어도 마귀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마귀가 우리의 신도 아니요 우리의 임금도 아닙니다. 마귀가 우리를 다스리고 통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도 예수를 모심으로 하나님의 꿈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나라가 우리 속에 임하여 오는 것입니다. 이제 천국이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고도 못하리니 천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은 우리의 임금이 되시고 우리는 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우리는 하늘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경영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며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냐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깁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가 여러분 속에 들어왔으며 여러분이 바로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예수님이 임금이 되시고 성령이 여러분을 점령하여 주장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우리 속에 임하는 것이 하나님의 꿈이었는데 이 예수를 모셔들임으로 하늘나라가 여러분 속에 들어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꿈이 여러분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은 인생들이 마귀의 굴레를 벗어나고 모든 질병에서 치료받기를 꿈꾸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에 병들고 육신에 병들고 고통을 당하고 마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게 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게 하시며 로마 군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등허리를 채찍으로 때려 피투성이가 되고 찢어지게 한 것은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우리들의 병을 고칠 것을 꿈꾸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예수를 통하여 여러분과 내가 마귀에서 놓여남을 받고 치료되고 해방될 꿈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예수를 모셔들이면 하나님의 꿈이 우리 가슴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역사하셔서 마귀의 모든 굴레를 꺽어 버리시고 하나님께서는 그 하나님의 꿈을 통하여 손길이 역사하사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질병을 도말시켜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여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 삶 속에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또한 아담의 저주와 가난을 벗어나 아브라함의 축복과 예수님의 은혜를 인생들이 받아들이기를 꿈꾸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모든 아담의 지은 죄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저주를 예수님이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저주를 짊어짐으로 우리가 저주에서 벗어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것을 하나님은 꿈꾸셨습니다. 예수님을 베들레헴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말구유에 눕히시고 일평생을 풍찬노숙을 하게 하시고 마지막 십자가에 아무 가진 것 없이 매달려 돌아가시게 하신 것은 우리의 가난을 대신 짊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그 가난한 삶을 통하여 우리가 가난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부유하게 될 것을 꿈꾸고 계십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꿈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내가 저주에서 해방되기를 지금도 꿈꾸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기 위함이라”(갈 3:14,14)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8:9) 이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꿈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이 가지신 그 꿈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꿈이 우리 속에 역사하사 기적을 산출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대로 이루어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사망과 음부를 이기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 영광과 영생을 인생들이 받아들이기를 꿈꾸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꿈은 원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천국,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천국을 예비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백성들이 믿고 구원을 받을 것을 하나님은 꿈꾸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받아들여서 영생 부활을 얻고 천국 백성이 되기를 하나님이 꿈꾸고 계시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꿈을 받아들이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3절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고 말했으며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말했으며, 요한계시록 21장 23절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이 찬란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극치의 영광을 예비하신 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과 내가 믿고 구원받을 것을 꿈꾸셨습니다. 이 예수를 우리가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져서 우리의 삶 속에 하늘나라 영광이 충만하게 되실 것입니다.
역사상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꿈을 가슴에 받아들여 그 꿈 속에서 믿고 기도하며 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우리의 가슴속에서 자라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이기고 찬란한 천국의 영광을 성취하고야 맙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성령은 젊은이에게는 하나님의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하나님의 꿈을 꾸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지금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이 하나님의 영롱한 꿈을 심어 주어서 이 꿈을 통하여 여러분을 변화시키고 이끌고 여러분의 생애 속에 하나님이 뜻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하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아무리 우리 환경이 어둡고 캄캄하고 칠흑같을지라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이 여러분에 대해서 꿈꾸신 꿈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으로 받아들여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은 꿈이 없이 방황하고 죽은 나무 토막처럼 물에 떠내려가고 사는 인생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역사를 통하여 꿈이 없는 개인과 민족은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어려운 곳에서도 꿈을 버리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버리지 않고 그 꿈을 키워 주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하여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꿈을 우리 마음속에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셔서 운명과 환경을 극복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실 줄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 이삭과 야곱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 요셉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 우리의 가슴속에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하여 꿈을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우리 성도들 모두 다 꿈꾸는 사람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캄캄해도 가슴속에 억척같은 꿈을 갖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살아계신 우리들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에 품고 치료의 꿈을 우리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 주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치료의 꿈은 하나님의 것이오니 하나님이 그 꿈 가운데 역사하여 주셔서 악한 마귀의 일을 멸하여 주시옵시고 모든 병든 자를 고쳐 주옵소서. 마음의 병을 치료하여 주시옵시고 육체의 병을 치료하여 주시옵시고 하늘나라의 역사가 일어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너희 모든 마귀의 일은 멸함을 받을지어다. 귀신들은 떠나가라. 예수 이름으로 고침을 받을지어다. 건강과 생명으로 충만함을 입을지어다. 야웨 하나님께서 은총과 사랑으로 치료하여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꿈을 우리는 가슴에 받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으로 채워주시옵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채워주시옵소서.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도와 주시옵시며 영육간에 축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직장을 허락하시고 사업을 일으켜 세워 주시옵시고 문제를 해결하시고 일용할 양식을 얻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