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8월 30일
주일설교


제목: 뼈와 살이 있는 신앙인
성구: 겔 37:1-10
설교: 조용기 목사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뼈와 살이 있는 신앙인”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에스겔이 환상 중에 어느 골짜기를 갔는데 마른 뼈다귀가 골짜기에 가득하게 널려 있었습니다. 오래 죽었고 햇빛에 말라서 생기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에스겔이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명령하시기를 이 모든 뼈들에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 인줄 알리라 하셨다 했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는 포로로 잡혀 소망을 잃고 마른 뼈다귀 같이 좌절한 이스라엘이 다시 부활하여 본국에 돌아가 나라를 회복할 것을 예언한 위대한 드라마 였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또한 아담의 죄로 죽어 마른 뼈다귀 같이 된 인간이 다시 부활하여 새 생명을 얻어 살아날 것을 가르치는 교훈이기도 한 것입니다.

첫째로, 여러분 우리가 온전한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몸 속에 뼈가 완전해야 합니다. 사람이 뼈가 없으면 사람이 아니지요. 뼈가 부러졌으면 불구자가 되는 것처럼 신앙 생활을 사람으로 비교한다면 그 속에 온전한 뼈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뼈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과 율법입니다. 우리의 몸 속에 뼈가 완전하면 불구자가 안되지만 뼈가 부러져 있으면 불구자가 되어 우리의 행동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이 우리의 신앙 생활에 뼈입니다. 이 뼈가 완전하면 온전한 사람이 되고 뼈가 불완전하면 불구자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했으며 잠언서 6장 23절에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몸의 든든한 뼈처럼 신앙 인격 속에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이 든든하게 서야만 합니다.
여러분 계명과 율법이 뭡니까? 계명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지 않습니까? 네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 이것이 우리의 신앙 골격의 중심적인 뼈인 것입니다. 거기에 천국의 다른 여러 율법은 우리의 몸에 작은 뼈인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 큰 뼈가 있고 거기에 작은 뼈들이 연결되어 있어서 완전한 형체를 이룸과 같이 우리의 신앙 생활에 십계명의 뼈가 우뚝 서고 거기에 천국의 여러가지 가르침과 율법의 뼈가 연결되어서 온전한 형체를 이루어야 신앙이 설 수가 있습니다.
신명기 30장 15절로 16절에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뼈 없는 사람이 사람이 아닌 것처럼 계명과 율법이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런 신앙은 무속신앙이요 샤머니즘이며 복을 달라고 외우는 주술과 미신에 불과한 것입니다.
에스겔이 환상 중에 인간이 살아나기 위해서 먼저 뼈가 온전히 연결된 것처럼 신앙 인격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그 근본인 계명과 율법의 뼈가 연결이 되어 확실하게 서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교회를 세우고 열심히 교회에 왔다 갔다며 주여 주여 외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뼈 있는 신앙, 계명과 율법이 우리의 속에 온전히 서 있어서 그 계명과 율법을 따라서 사는 그런 신앙 생활이 되지 아니하면 그 신앙 생활은 불구자의 신앙 생활이요 낭패한 신앙 생활이요 혹은 패배한 신앙 생활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 본 그 마른 뼈다귀는 바로 율법과 계명인 것입니다. 이것이 합쳐져서 사람의 형태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우리 신앙 인격 속에 율법과 계명의 뼈가 온전히 서야 올바른 신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로, 여러분 온전한 신앙에는 배 위에 힘줄과 살이 입혀져야만 합니다. 뼈만 있으면 그것은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실험실에 가면 생물학실에 앙상한 사람의 뼈가 서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의 형체에 불과합니다. 율법과 계명만 가지면 신앙의 형체는 가지고 있어도 온전한 신앙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 뼈 위에 힘줄이 서고 그리고 살이 입혀지고 피부가 덮여져서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 중에 본 것은 먼저 뼈가 서로 온전히 연결된 후에는 그 뼈 위에 힘줄이 덮이고 그 위에 살과 가죽이 덮여 완전한 인간의 형태를 만든 것입니다. 신앙 인격의 뼈인 계명과 율법만 있어서는 온전한 신앙인이 되지 못합니다. 계명과 율법은 인간의 잘못과 죄를 지적하고 정죄함으로 인간은 자신을 잃고 절망하게 됩니다. 계명만 있고 율법만 있다면 계명과 율법에 비추어보면 우리는 도저히 그에 따라 신앙 생활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완전히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나는 결코 계명과 율법을 쫓아 살 수 없으니 포기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명과 율법만 가지고는 신앙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뼈다귀만 앙상해서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율법에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덮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엄한 계명과 율법을 감당키 위해서는 은혜의 힘줄과 살이 보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계명과 율법의 엄한 요구를 감싸주는 은혜의 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축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계명을 어기고 율법을 어긴 모든 죄를 주님께서 대신 다 짊어지시고 그 죄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 지은 죄만 갚은 것이 아니라 일평생의 지은 죄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갚아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항상 우리를 용서와 사랑과 용기의 부드러운 살로 감싸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베소서 1장 7절에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의 살이 우리를 감싸주지 아니하면 계명과 율법의 뼈가 밖으로 튀어 나와 우리가 아파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계명이 우리를 꾸짖고 율법이 우리를 심판하고 하면 우리가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명과 율법의 뼈가 서 있지만 그 뼈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감싸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힘줄이 되고 살이 되고 가죽이 되어 감싸고 있어서 우리가 혹시 율법을 범해도 예수님의 은혜가 그것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범해도 예수님의 은혜가 덮어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율법과 계명을 감싸고 그로 끊임없이 용서해주고 끊임없이 덮어줌으로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온전한 신앙의 인격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율법주의만 되면 율법은 계속해서 심판하고 계속해서 꾸짖고 계속해서 정죄함으로 우리는 죄악 투성이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가 없고 그대로 무릎을 꿇고 낭패하고 패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꾸짖고 계명이 우리를 심판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덮어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감싸주는 은혜의 힘줄로 은혜의 살로 은혜의 가죽으로 덮어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율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속에 있는 뼈는 딱딱합니다. 뼈는 아픕니다. 여윈 사람끼리 같이 있으면 뼈가 부딪혀요. 우리가 버스를 탈 때나 전철을 탈 때 옆에 빼빼한 사람이 서 있으면 굉장히 아프다고요. 뼈가 자꾸 부딪히기 때문에... 부부간에 같이 살아도 한 사람이 너무 빼빼하면 같이 있을 수가 없어요. 뼈가 부딪혀서 아프기 때문에 .. 뼈만 있으면 아파요. 율법만 있으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율법주의자들은 모두 사람을 비난하고 평론하고 심판하고 판단만 하기 때문에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감싸주는 것입니다. 포근한 살로 감싸주고 힘줄로 감싸주고 피부로 감싸주어서 부드럽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은혜가 같이 있어야 신앙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만 가지고는 온전한 신앙 인격이 될 수 없습니다. 은혜만 가지고는 뼈 없는 신앙 생활이 되기 때에 그것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율법과 계명이 반드시 선 곳에 은혜의 살이 감싸주는 이러한 신앙 생활이어야 비로소 참된 신앙 생활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9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뼈 없는 사람은 사람일 수 없고 뼈가 온전치 못하면 온전한 몸이 될 수 없음같이 계명이나 율법을 속에 확실하게 간수하지 않은 신앙생활은 신앙이 아니며 계명이나 율법을 어기고 살면 참된 신앙생활이 안됩니다. 뼈가 부러지고 밖으로 튀어 나온 그런 사람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로 19절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예수님 자신도 결코 율법이나 계명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이나 계명을 은혜로 감싸서 완전하게 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율법과 계명의 뼈다귀 위에 주님이 은혜의 힘줄과 살과 피부로 덮어서 온전한 신앙인을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뼈만 있으면 인간이 아닌 것처럼 계명과 율법만 가지고는 신앙인이 아닙니다. 뼈를 덮는 살이 있어야 인간이 되는 것처럼 계명과 율법을 덮는 예수님의 은혜가 있어야만 완전한 신앙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7절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그러므로 모세가 준 율법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감싸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이는 뼈가 없이는 형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율법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감싸면 완전한 신앙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알아야 될 것은 뼈만 있고 살만 덮었다고 해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의 환상 가운데 보니까 뼈가 모여서 사람이 되고 그 위에 힘줄이 덮고 살이 덮고 피부가 덮어서 완전한 사람이 되어도 아직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이 율법의 뼈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살이 덮여 있다고 해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 생기가 들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생기로 명하여 돌아오라고 하니까 그 사람들 속에 생기가 들어오니 그 사람들이 살아 일어나며 큰 군대가 되었다는 것처럼 우리도 율법의 뼈대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살을 입혔으면 그 다음 성령의 생기를 받아야 영적인 사람으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만 있어도 신앙이 안됩니다. 은혜만 가지고도 신앙이 안됩니다. 율법 위에 은혜가 입힌 곳에 성령의 생기가 들어와야 우리가 참된 신앙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스겔 선지자가 본 것처럼 뼈 위에 살이 덮여 온전한 인간의 형태를 가졌어도 아직 살아나지는 못했지 않습니까? 오직 생기를 명하여 그 몸에 들어가라고 했을 때에 살아나 일어났었습니다. 우리 신앙도 율법과 계명을 갖고 은혜의 살로 감싸 신앙인의 형체는 가졌다 할지라도 성령의 생기가 채워지지 아니하면 소위 말하는 살았다 하나 죽은 신앙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왔다 갔다 합니다. 율법을 잘 지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마음속에 품고서 삽니다. 그래도 전도도 하지 아니하고 착실한 신앙의 생기와 기쁨이 없습니다. 왜? 성령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니고데모는 율법주의자인 것입니다. 그는 유태인으로써 계명과 율법을 가졌으니 뼈다귀 인간인 것입니다. 뼈다귀 인간이 예수께 찾아오니까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보고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이 나이에 어떻게 어머니 배 속에 들어가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이해 할 수 없었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한 것은 뼈다귀만 가지고는 절대로 신앙 인격이 될 수 없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서 살이 붙고 그 다음에는 성령이 들어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영적으로 살아나지 않습니다.
에스겔이 보니까 뼈다귀가 연결되고 살이 붙고 피부가 붙어도 역시 죽어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인간은 아니었습니다. 생기가 들어오자 군대가 된 것처럼 우리들도 율법을 가지고 은혜를 받았어도 성령이 오셔야 하늘나라와 교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을 항상 인정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며 성령 충만한 생활을 간절히 간구해야만 합니다. 성령의 생기가 들어와 있어야 우리가 참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와서 신령한 생활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 사람은 영적으로 살아나서 이제는 영적인 세계와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대해서 전혀 모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에 대해서 말을 해도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이제 성령의 생기가 들어와서 살아나면 아버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을 알고 믿는 신앙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1서 5장 19절로 20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살아나면 성령께서 아버지를 소개해 주시고 아들 예수님을 믿고 알게 해 주시고 신령한 세계 속에 들어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하늘나라 권속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령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신령한 사람이 되기 전에는 육신의 양식만 있으면 충분했는데 우리가 이제는 성령으로 거듭나고 난 다음 신령한 사람이 되면 영적인 양식이 갈급해지는 것입니다. 육신의 양식만 먹고는 살 수 없습니다. 육신의 물만 마시고 살지 못합니다. 영적인 양식을 먹기를 갈급해 합니다. 그래서 이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늘 먹는 사람인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로 17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주의 말씀이 우리를 온전케 성장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자라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들어와서 신령한 사람이 된 사람은 그의 삶의 전체적인 근본적인 목적이 하늘나라의 의를 구하고 그 하늘나라를 구하는 삶인 것입니다. 먼저 할 것 먼저 하고 나중 할 것 나중 하는데 하늘나라의 의를 먼저 구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인간의 일들은 악세사리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명예, 지위, 권세, 부귀, 영화가 다 악세사리지 그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신령한 사람이 되면 계속적으로 영적인 변화가 다가오고 성장을 하게 됩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날로날로 신앙이 점점 자라서 믿음 소망 사랑이 자라고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게 자라납니다. 그리고 이 신령한 사람의 결국 목적은 아버지 나라, 아버지 집, 천국으로 가는 것이 최후의 목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그냥 왔다 갔다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신앙 생활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예수 믿지 않은 사람은 에스겔이 그 환상의 골짜기 가운데 본 해골들입니다. 완전히 말라서 죽어 버리고 생기가 없는 그것이 다 뿔뿔이 흩어진 해골들이 되어서 도무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면 제일 먼저 이 뼈들이 사람의 형체를 이룬 것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과 율법을 우리가 분명히 알 때에 신앙의 형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보혈로 말미암아 힘줄이 입히고 살이 더 나고 피부가 더 나와서 은혜로 폭신하게 계명을 감싸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죄를 지어도 용서를 받습니다. 우리가 넘어져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살이 부드럽게 품어 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율법으로 돌아옵니다. 계명으로 돌아와서 뼈가 있는 신앙 굳건히 선 신앙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성령의 생기가 들어와서 성령님이 우리와 같이 계심으로 성령이 우리를 하늘나라 권속으로 만들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 교제하게 만들고 말씀 속에 살고 기적 속에 살고 은혜 속에 살고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36절로 43절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갑자기 나타났어요. 제자들이 보고 놀랬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유령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제자들은 완전히 유령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친히 내 손을 만져보라 내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라 유령은 뼈와 살이 없다 나는 너희가 보는 것과 같이 뼈도 있고 살도 있지 않느냐 이것은 주님께서 가르친 중대한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뼈도 없고 살도 없는 신앙은 유령신앙입니다. 그것은 귀신 신앙입니다. 잘못된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반드시 뼈가 있고 살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예수께서 보라 내가 뼈가 있고 내가 살이 있지 않느냐는 것처럼 참된 신앙은 보라 계명과 율법의 뼈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의 살이 붙어 있지 않느냐 그리고 성령이 속에서 역사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나는 유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유령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신앙 생활에 뼈가 없습니다. 율법과 계명을 져버렸습니다. 율법과 계명이 없는 신앙은 그것은 샤머니즘이요 무속입니다. 그냥 복만 달라고 비는 것은 윤리와 도덕성이 없는 샤머니즘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 마음속에 몸 속에 완전히 계명과 율법의 뼈가 딱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 뼈 주위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용서와 사랑의 살과 피부로 감싸 놓으면 그래서 뼈와 살이 합쳐서 우리는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정상 인격자가 되고 거기에 성령이 와서 거해서 성령이 우리를 감화 감동하시고 인도하시고 천국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교제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지 말고 오늘 이 시간에 내 몸 속에 계명과 율법의 뼈가 부러지거나 뼈가 튕겨져 나오지 않았는가 잘 살펴보고 우리가 반드시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열심으로 지키면서 사는 신앙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윤리와 도덕을 져버린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어떤 사회와 국가도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면 그 국가의 형체도 무너지고 사회의 형체도 무너집니다. 우리 기독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계명과 하나님의 율법을 져버리면 교회가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신앙 인격이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의 참된 신앙은 우리가 우리 속에 착실히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의 뼈를 완전히 세워 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감싸야 하는 것입니다. 넘어지면 용서받고 부러지면 다시 세워주고 거꾸러지면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그런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를 감싸주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의 뼈대 위에 서나 은혜의 도움으로 우리는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서 건전하게 살아가는데, 이와 같은 우리들에게 성령이 임하여서 성령이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와 성령과 교통하게 하고 성령과 함께 우리가 말씀을 읽고 성령과 함께 예배 드림으로 이 땅에 살면서 하늘나라 백성으로 신령한 삶을 살며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며 하나님의 모든 기사와 이적과 능력을 믿음으로 체험하며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입술로 주여 주여 하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 믿는 향기를 전혀 나타내지 못할 때가 많사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기도 합니다. 주를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범죄하여 잘못된 길을 걸어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마른 뼈다귀 같은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다귀 같은 신앙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버지 살았다 하나 죽은 사람들입니다. 아버지 뼈다귀가 완전히 합쳐져서 사람의 형체가 되는 십계명과 하나님의 계명이 우리의 몸에 뼈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전히 우리 속에 계명의 뼈가 서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살이 입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과 용기와 힘을 주는 그 살이 우리 뼈를 감싸고 덮고 피부가 덮어서 내 아버지 온전한 신앙 생활을 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법이 있고 율법이 있고 은혜가 있고 모세가 있고 예수님이 계신 이런 신앙 생활을 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그 속에 성령의 불이 임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성령의 은혜가 넘쳐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 살며 함께 교제하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올바른 신앙인으로서 살다가 주님 오시는 날에 기쁘게 주님 앞에 서고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우리가 병에서 놓여남을 받는 것이요, 예수님의 간절한 소원은 우리가 치료받는 것이 아니옵나이까?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희생제물이 되셨사온즉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고 아버지께 간구하오니 하나님 아버지 오른 팔의 능력이 나타나주셔서 모든 병든 마음을 고쳐 주시옵시고 모든 병든 육체를 고쳐 주시옵시고 치료와 생명과 건강으로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병은 물러갈지어다. 악한 마귀와 귀신의 일은 도말함을 받을지어다. 우리 아버지여! 예수 이름으로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치료와 생명과 건강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내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왔습니다.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의 무거운 짐입니다. 주여 주님께서 맡아 주장하여 주시옵시고 우리 아버지께서 친히 경영하여 주셔서 직장을 주시고 사업을 번창케 하시고 삶의 길을 열어 주시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보여 주시옵소서.
야웨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들에게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의 성령이 넘치게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율법과 계명을 어긴 사람은 용서와 사랑을 얻어서 오늘 새롭게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율법의 뼈다귀와 건강이 완전히 서게 도와 주시옵시고 은혜의 살이 덮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에 의지하여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성령이 넘쳐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