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9월 20일
주일설교


제목: 무엇이 참된 십자가인가?
성구: 갈2:20-21
설교: 조용기 목사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무엇이 참된 십자가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국법을 어기고 감옥에 들어가 있으면서 자기는 십자가의 고난을 당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과연 그의 감옥 생활이 그의 십자가일까요?
현재 우리 민족이 당하고 있는 IMF의 경제적 고난이 우리 민족에게 지워준 십자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연 이 고난이 우리의 십자가가 될 수 있을까요?
대개 사람들은 아무 고통이나 고통만 당하면 자기에게 메워진 십자가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참된 십자가와 거짓된 십자가를 분명히 분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십자가는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짊어지고 나아가야 되고 거짓된 십자가는 단호히 벗어서 던져 버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했으니 예수님이 짊어지신 십자가는 어떤 것이었는가를 우리가 분명히 알아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걸머진 것이 외압에 의해서 강제로 짊어지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무슨 힘이 없어서 외부에서 주님을 강제적으로 십자가를 걸머지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은 자기의 잘못으로 붙잡혀서 십자가의 형벌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평생 죄를 지은 적도 없고 잘못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자원하여 인류를 구원하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러므로 스스로가 걸머진 것입니다. 자원해서 걸머진 것입니다. 인류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대신 고통 받기를 소원하셔서 주님이 택한 것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누가 강제로 짊어지운 것도 아닙니다. 무슨 예수님이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잡아서 처형한 십자가도 아닙니다.
요한복음 10장 17절로 18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스스로 자원해서 죽은 것이지 누가 강제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서 목숨을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것입니다. 예수님 말 한마디면 열두 영이 되는 천사들이 내려와서 그를 보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주님께서 순전히 자원하셔서 스스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걸머지셨을까요? 예수님은 죄를 대신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진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 하나님께 범죄하고 원죄를 짊어지고 태어났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 죄악의 더러운 인생들이 우리가 감히 하나님 앞에 절대로 나설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죄를 우리 힘으로 도저히 씻을 수가 없습니다. 표범이 자기의 얼룩을 없앨 수 없는 것처럼 이디오피아 사람들이 자기 피부를 희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자기의 생애 속에 있는 죄악을 스스로 정결케 할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죄 중에 태어났고 죄를 먹고 마시며 살았고 죄의 포로가 되어 있으므로 이 죄를 청산할 수 없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대로 있으면 영원히 멸망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걸머진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이것을 청산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걸머지고 여러분의 죄, 나의 죄를 다 걸머지고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 때문에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우리가 그를 통하여 우리가 죽은 것입니다. 우리의 죄 짓는 옛사람을 십자가에서 처형해 버린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순전히 우리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늘 우리는 무조건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죄사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 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를 잔뜩 진 그대로 못난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그 보배로운 피가 우리의 죄를 말갛게 씻어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고 말하셨습니다. 요한1서 2장 2절에는 저는 우리를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가 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죄에서 놓여날 길이 없습니다. 우리의 의로운 행위나 도덕적인 행위로 죄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온 천하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 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종교도 좋습니다. 철학도 좋습니다. 윤리와 도덕도 좋습니다. 그러나 용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밖에 우리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 다음 예수님이 십자가를 걸머진 것은 세속을 물리치고 성령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벌써 마귀가 점령해서 다스리는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 세상은 세속으로 꽉 들어찼습니다. 세속적인 죄악, 세속적인 거짓말, 세속적인 배반, 세속적인 음란 방탕 시기 분노 질투 그리고 미움 그리고 세속적인 오만과 교만, 도도히 흐르는 이 세상의 파동 속에 우리들은 그냥 나무통처럼 떠내려갑니다. 이 세속에서 주님께서 십자가를 걸머진 것은 이 세속의 왕 마귀를 멸하고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폐하고 우리 속에 하늘나라를 가져다주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세속을 다 쫓아내시고 우리 속에 하늘나라를 가져 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예수님이 우리 임금님이 되시고 성령이 오셔서 우리 보혜사가 되시고 천군 천사가 우리를 둘러 지키는 하늘나라의 역사가 우리 속에 일어나서 세속을 따라 살지 않고 말씀과 성령을 좇아 사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를 걸머지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는 마귀와 싸워서 마귀를 이기고 이 세속을 정복하고 우리 가운데 하늘나라가 임하게 한 것입니다. 오늘 예수를 구주로 믿으신 여러분 속에는 하늘나라가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영인 성령이 들어 와서 성령이 우리 양심을 통하여 밝고 맑고 환하게 우리를 이끌어 줌으로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 세속을 물리치고 원수 마귀를 물리치고 천국을 가져올 자는 전혀 없습니다. 우리의 힘과 능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못하리니 하늘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고 하신 말씀대로 우리 가운데 하늘나라가 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7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오늘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하늘나라의 영인 성령이 우리 속에 와 계시기 때문에 성령을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그리고 우리가 진리를 따라 살 수 있는 힘을 허락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또한 우리의 병을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 병이 많고 우리의 육신은 여러 가지 질병에 짓눌려 있습니다. 이 질병에서 우리는 치료받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나는 오늘 2부 예배에 설교한 토마스 트라스크 목사의 간증을 들었는데 미국의 저명한 부흥사 한 분이 암이 걸려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침상에 누워서 죽게 되었는데 의사선생이 발치에 있는 사모님을 보시고 이제 당신의 남편은 20분 이내에 운명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 건너편에 아무 이름도 없고 아무 직분도 없는 교회 나가는 그냥 평범한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그 할머니가 아침에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의 성령이 말씀하기를 너 건너편에 가서 저 유명한 부흥사 나의 종이 암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안수기도 해줘라. 그래서 그 할머니가 하는 말이 아니요 저는 안가요 저는 목사도 아니고 전도사도 아니고 집사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도 몰라주는 여자인데 내가 왜 가요? 아니요 네가 가라. 그래서 그 할머니가 일어나서 그 건너편 집 목사님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 사모님이 나오기에 내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와서 목사님을 위해서 안수 기도를 해 주라고 해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남편이 지금 혼수 상태에 있어요 운명 직전에 있는데 안되요. 아니요. 하나님이 날 보고 지금 들어가서 살리라고 하는데 운명이 아닙니다. 날 좀 들어가게 해 주세요. 그래서 그 부인을 설득해서 들어가니까 남편은 이미 숨이 턱까지 와있고 그 발치에 의사선생님이 서서 이젠 운명할 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무명의 할머니가 들어가서 이 목사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놓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 아들의 연약과 병을 짊어지고 가셨으므로 이 아들이 병들어 죽는 것은 주의 뜻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하나님이 이 아들을 살리시고 이 병마에서 건져 주시옵소서. 그 기도를 하니까 숨이 껄떡껄떡 넘어가던 그 분이 혼수에서 깨어나더니만 옆으로 눕더니 입을 딱 벌리고 암덩어리를 울컥울컥 토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깨끗이 나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을 통해서 나타난 것도 아니고 아무도 모르는 평범한 한 여성도가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이처럼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감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통해서 연약을 벗어버리고 병을 벗어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성경 이사야서 53장 5절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저주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못 박힌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 IMF라는 저주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 저주는 가시와 엉겅퀴를 생산합니다. 가는 곳마다 사업장에 가시가 나고 기업에 가시가 돋아 오르고 가정에 가시가 돋아 오르고 오늘날 우리 한국은 가난의 가시에 찔려서 가정이 패하게 되고, 온가족이 어제도 TV를 보니까 가족 모두가 자살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슬픔이 꽉 들어 차 있습니다. 이러한 저주의 문제, 이 가시와 엉겅퀴의 이 문제를 우리 인간의 힘으로 돌이킬 수가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정책을 해도 이것을 지금 우리 정부가 해결하지 못합니다. 여기에 축복의 바람이 불어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사태가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변화는 예수님만이 가져와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올라갔을 때에 우리의 가시와 엉겅퀴를 다 걸머지고 주님께서 저주를 짊어지고 올라가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살길은 예수 믿고 저주에서 해방되는 길이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하나님의 복이 임해야 문제가 해결되지요. 하나님의 복이 따르지 않는데 인간이 노력하고 애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됩니까? 나를 믿는 백성이 들에 가면 들이 복을 받고 집에 들어오면 집이 복을 받고 떡 반죽 그릇을 만지면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겠다고 했는데 복이 우리에게 따라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기 위해서 그가 십자가를 걸머지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의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걸머진 것은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통해서 죽음을 죽여 버리고 음부와 지옥을 멸하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활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죽고 장사지낸 바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영생 천국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주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심판을 받아 처절하게 죽었지만 그가 음부에 내려가서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사망과 음부를 다 멸하고 천국과 영생을 우리에게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네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걸머지셨습니까? 예수님은 이와 같이 인류를 죄에서 세속에서 질병에서 저주에서 사망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진 것입니다. 우연히 주님께서 십자가를 걸머진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는 주님의 일터요. 창조의 처소인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의 옛사람들을 다 청산시켜 버리고 그곳에서 우리를 새롭게 만드신 장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당하는 고난 중에 둘째로 무엇이 십자가가 아닌 것입니까?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종의 멍에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종의 멍에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졌는데 오늘날 사람들이 죄의 멍에를 걸머지고 아 나의 십자가다 그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것은 종의 멍에입니다. 내가 죄를 짓고 난 다음에 죄의 노예가 되어서 혹은 감옥에 들어가 앉으면서 내가 고난 당하는 것은 십자가의 고난이다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그것은 죄의 멍에요. 십자가의 멍에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미 그 멍에를 꺾어 버렸으니 회개하고 죄에서 놓여남을 받아야지 죄 짓고 고통당하면서 십자가라고 하면 아닙니다. 아편 중독이 되어서 이것은 십자가다 알콜 중독이 되어서 이것이 나의 십자가다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이것은 내 몸의 가시요 십자가다. 웃기는 소리 합니다. 그것은 마귀의 멍에이지 십자가가 아닙니다.
또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세상 풍속을 따라 살면서 세상에 사니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은 약하니까 나는 술을 안 마실 수 없고 거짓말 안 할 수 없고 도적질 안 할 수 없다. 나는 사기 안 칠 수가 없다. 세상이 다 그렇게 사는데 이게 내 인생의 십자가다. 웃기는 소리합니다. 이것은 마귀의 멍에이지 십자가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마귀의 멍에를 꺾어 버리기 위해서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속에 따라 살며 육체의 고통이 많다고 해서 이것이 십자가라는 것은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의 멍에이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꺾어 버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과 육체의 질병에 눌려 있으면서 이 병든 것이 나의 십자가다 나에게는 폐병이 십자가다. 내게는 관절염이 십자가다. 나에게는 이 척추가 아픈 것이 십자가다. 나에게는 눈이 안 보이는 것이 십자가다. 무슨 십자가가 그런 십자가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걸머진 것은 그런 것을 없애려고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이지 그것은 마귀의 멍에요 이것은 꺾어 버려야 될 것이지 질병이 우리의 십자가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면서 아 이것이 다 나의 십자가다. 웃기는 소리하네. 배고프고 굶주리고 고난 당하는 것 그것이 어떻게 십자가입니까? 여러분 IMF 한파가 와서 우리가 직장을 잃고 경제가 어려우니까 우리 민족이 십자가를 걸머졌다. 여러분 이것은 가난의 멍에요 저주의 멍에이지 십자가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바로 예수님께서 가난과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없애기 위해서 걸머진 것이 십자가지 그것을 걸머지고 있는 것은 그것은 멍에요 마귀의 멍에요 저주의 멍에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이 저주와 가난은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내가 너로 먹지 말라고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해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가난으로 말미암아 종신토록 수고해야 음식을 먹는 것은 이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그 결과로 가난이 온 것이지 절대로 가난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다. 축복의 결과는 이런 것입니다. 에덴 동산이 축복 받았을 때는 여러분 그런 가난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저주와 가난의 고통을 십자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꺽어 버려야될 멍에가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고통에 서 있으면서 죽음은 나의 십자가다. 죽음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없애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셨죠. 죽음도 여러분 최후의 원수는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원수입니다. 죽음은 원수의 멍에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부활하면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우리가 죽지 않고 예수님이 오셔서 그대로 부활하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왜냐하면 좌우간 죽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죽는다는 것은 괴롭지요. 육신의 장막집을 벗어버리고 천당에 가기는 하지만 죽음 그 자체는 하나의 큰 고통이요 괴로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께서 오신 것은 죽음에서 우리를 건져내사 영원한 천국으로 데려가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죽음 그 자체는 십자가 아닙니다. 죽음 그 자체는 우리가 정복해야 될 마지막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죄가 십자가다 세상의 풍속을 따라 고생하는 것이 십자가다. 마음과 몸에 병든 것이 십자가다. 저주와 가난이 십자가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절망이 십자가라고 불러서는 안됩니다. 그런 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러면 참된 십자가란 무엇일까요?

세번째, 여러분에게 우리가 겪는 참된 십자가란 무엇인지를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참된 십자가라는 것은 남을 구원하기 위하여 내가 고통을 당할 때에 그것이 참된 십자가인 것입니다. 남을 구원하기 위해서 내 스스로가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1997년에 세상을 뜬 테레사 수녀를 보십시요. 테레사 수녀는 유고슬라비아의 막고드니아 공화국의 유복한 가정의 1남 2녀의 막대 딸로 출생했습니다. 18살에 수녀원에 들어갔다가 인도로 옮겨 17년 동안 선교사로 봉사하다가 1940년 36살 때에 인도 시민권을 얻어서 캘커타 빈민가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병든 자, 죽어 가는 자들을 위해 생애를 바치고 가난한 자 중에 가장 가난한 자들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섬기라는 주의 계시를 받고 그곳에 들어가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더불어 목욕시켜 주고 그리고 그의 무릎을 베게로 하고 마지막 숨을 가두게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열악한 환경 가운데 들어가서 일했습니다. 자기가 고향 땅에 있었으면 막내둥이 귀염둥이 딸로서 좋은데 시집가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그가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 앞에 스스로 고난을 자원해서 구원을 전파하기 위해서 그렇게 고난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와 같이 테레사 수녀가 당한 고통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그가 자원해서 걸머진 고통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오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재산을 내어 던지고 직장을 버리고 자원해서 저 오지에 선교사로 간다면 그 생활은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러한 생활을 하나님께서 큰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또한 십자가란 복음을 위하여 스스로 자취한 고난을 십자가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1889년 49세의 나이에 사망한 데미안 신부는 독실한 신앙 가정에서 출생하여 어머니의 경건한 신앙의 유전을 받았습니다. 그는 19살에 루벤 신학교에 입학하여 수도원 생활을 시작하고 그 다음에는 1864년에 하와이 부나섬과 코아라 섬에서 9년간 선교하고 난 다음에 33살에 나환자들이 수용된 몰로카이 섬으로 갔습니다. 몰로카이섬으로 가니까 수많은 문둥병 환자들이 그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탄식하고 물고 찢고 싸우고 하루에도 수십명씩 죽어 가는데 이 시체를 파뭏고 아무리 전도해도 그 문둥병 환자들은 이 데미안 신부의 복음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너는 건강하지 않느냐. 우리는 문둥이이다. 그러므로 너는 건강하니까 그렇게 설교할 수 있지만 우리 문둥이가 되어 보라. 어떤가. 아무리 전도해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데미안 신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문둥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문둥이가 되어야 내가 저들에게 전도를 할 수 있으니까 주님이여 나를 문둥이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그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루에 보니까 문둥이가 되었습니다. 눈썹이 빠지고 코가 문들어지고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다음 나와서 말했습니다. 나의 문둥이 형제들이여 전에는 형제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문둥이가 오금을 파먹어 들어갈 때에 나의 문둥이 형제들이여 나의 말을 들으소서. 그때 몰로카이 섬에 있는 모든 문둥이들은 이 데미안의 복음 전도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오냐 너도 문둥이다. 문둥이가 되어서 우리에게 전도하니 너의 말은 참말이다. 그래서 몰로카이 섬의 나환자들이 다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고 문둥이의 지옥 섬이 천국 섬으로 변화 되게 된 것입니다. 그는 49세에 사망했는데 모든 사물을 다 정리하고 서류에 서명하고 조용히 침상에 누워서 모든 것을 전부 다 바친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 지금 이 완전히 가난한 이대로 죽고 싶다. 내 자신의 것이라고는 이젠 아무 것도 없다. 참으로 나는 행복하다. 그리고 난 다음 눈을 감았습니다. 이러한 삶이 십자가의 삶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스스로 자처한 고난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또 그것뿐 아니라 참된 십자가란 복음 때문에 외부에서 가해오는 고난인 것입니다. 예수를 버리면 고난을 안 당할 것인데 예수 믿기 때문에 고난 당할 때 그것을 십자가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스데반 사도나 12사도도 다 로마 10대 황제의 박해 속에 순교를 당했었습니다. 그들은 진짜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여러분 로마시대의 로마 기독교 박해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로마교회의 약 600마일의 두더지 같은 지하 동굴에 피신하여 300년 동안 10세대의 신자들이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오늘 카타콤에 묻힌 기독교 신자들만 해도 175만에서 400만명이나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많은 크리스찬들이 카타콤의 땅굴에 숨어서 무시무시한 핍박과 순교를 당하면서 그들은 신앙을 지켰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진실로 십자가를 걸머진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9장 23절로 24절에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했는데 십자가라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살아가는 것이 십자가의 생활인 것입니다. 내가 자원하여 남을 위해서 내가 고난을 자처하고 남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놓고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내가 사람들에게 핍박을 당하고 욕을 당하고 그리고 매일 같이 나를 부인하고 주를 따라가는 이러한 삶이 참된 십자가를 걸머진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대속하신 고난은 우리가 짊어져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십자가 아닙니다. 죄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세속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질병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저주와 가난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리고 죽음 그 자체도 십자가가 아닙니다. 이러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꺾어 버린 멍에에 불과한 것입니다. 참된 십자가란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스스로 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가는 고통,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 남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취한 고통, 내가 예수 복음 때문에 남에게 핍박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순교를 당하는 이런 것, 그리고 매일 매일의 나의 삶에서 내 육신이 정욕과 내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십자가에 못 박아 부인하고 예수를 따라가는 이러한 삶, 이것이 십자가를 걸머지고 따라가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된 십자가를 걸머지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나갈 때에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상급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마귀가 주는 멍에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내가 희생할 때에 그것이 십자가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참 십자가를 걸머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희생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십자가를 걸머지면 걸머질수록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며 하나님의 칭찬을 받고 훗날에 더 큰 상급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마귀가 주는 멍에를 십자가로 오해하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멍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꺾어 버리고 우리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걸머지는 것은 남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내가 희생하는 십자가를 걸머지고 내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따라가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진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이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야웨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병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연약과 질병을 다 갚아버리고 척결하고 말았사오니 우리가 병들어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는 마귀의 멍에요 십자가가 아니옵니다. 아버지 마귀의 멍에를 십자가로 꺽어버렸사오니 오늘 예수 이름으로 모두 다 고쳐주시옵소서. 마음의 병을 고쳐주시옵시고 육체의 병을 고쳐주시옵소서. 생활의 병을 고쳐주시옵소서.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주셔서 우리를 자유케 하여 주시옵시고 승리케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료를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모든 질병은 떠나갈지어다. 고통은 사라질지어다. 마귀의 일은 멸함을 받을지어다.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예수 이름으로 원하오니 주께서 가시와 엉겅퀴를 제하여 주시옵시고 그리스도의 축복이 임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아브라함의 복이 임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복을 주어야 우리가 살 수가 있사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않고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사옵니다. 야웨여 하늘에서 비가 내리듯이 아브라함의 축복의 단비가 내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이 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