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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0월 18일 주일설교 제목: 도전과 응전 성구: 수 1:5-9 설교: 조용기 목사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도전과 응전”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날 때 그날 하루를 맞이하는 것이 겁이 날 때가 많습니다. 다가오는 수많은 삶의 도전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도망치거나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아침이 다가오지 않고 밤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이 지구 떠나서 어느 곳에 피해 버리면 좋겠다는 그런 심정이 일어날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도전에 대하여 용감하게 응전하는 자만이 새로운 삶, 새로운 세계,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회피하는 자는 영영히 패배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도전에 응전하는 사람들만이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구약 시대 인물중에 사울왕과 다윗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사람이 다 똑같은 한 장면에서 거대한 삶의 도전을 받았는데 한 사람은 응전하기를 회피하고 다른 사람은 목숨을 걸고 도전에 응전한 결과 그들의 미래의 운명이 천양지차로 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블레셋을 대결해서 일대 접전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블레셋의 군대 장관 골리앗의 도전에 사울은 혼비백산했습니다. 그 군대들과 함께 골리앗만 나오면 숨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므로 골리앗이 산천을 쩡쩡 울리는 소리로 너희 가운데 나를 대적해서 싸울 만한 용사가 있거든 나오라고 외쳐도 아무도 나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던져진 도전에 응전하기를 회피했습니다. 이것이 매일매일 계속되었습니다. 그럴 때에 양무리를 치던 조그만한 어린아이 다윗이 형들을 위문하기 위해서 그 전쟁터에 왔다가 그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골리앗은 구척 장신이었고 눈이 종달만하고 귀가 손바닥만하고 그가 한번 외치면 산천이 진동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벌벌 떨고 도망을 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곳에 와서 도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도전에 대해서 그는 응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울 왕도 도망을 치고 그 역전의 용사들도 그 도전에 대해서 다 피하고 있는데 조그만한 초립동 다윗은 감히 응전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가 응전을 하려고 한 것은 그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응전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골리앗에 비해서 키도 작고 나이도 어리고 아직 전쟁을 해 본 경험도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마음속에 천지와 만물을 지은 하나님을 모시고 있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에 대해서 정의로운 분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저 원수를 치겠다는 그러한 용기를 가지고 도전에 대해서 응전을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과 언약없는 이방인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골리앗은 단지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저가 신이 아닌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이스라엘을 어떻게 이처럼 모욕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함에 그는 마음속에 의분이 끓어올랐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6절에 보면 그가 사울 왕에 와서 말하기를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렛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내가 나가서 도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염려했습니다. 사울왕도 염려했습니다. 군대들이 다 염려했습니다. 그는 투구도 쓰지 않고 갑옷도 입지 않고 칼도 들지 않고 창도 들지 않고 목자의 제복에 물맷돌 다섯개를 들고서 그는 골리앗을 대적해 나가려고 한 것입니다. 왜 그러냐면 그는 원수를 도전할 수 있는 자원이 있었습니다. 그 자원이 뭡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담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같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의 자원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능력이 없어요. 우리 스스로는 사울과 그 군대와 같이 다 물러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 도전해 다가오는 골리앗 같은 수많은 문제들을 우리가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을 자원으로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로 47절에 보면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이 얼마나 담대한 선언입니까? 그는 골리앗 앞에 떨지 않았습니다. 그는 골리앗보다 더 위대하고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며 시작과 끝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광대하고 영화롭고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하나님 편에 서서 그 골리앗을 바라볼 때에 골리앗은 사자나 곰같이 별 볼일 없는 짐승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담대히 도전해 나갔고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쳐서 무너뜨리고 블레셋을 멸하고 그날 전쟁에 대승을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이스라엘 중 유명인이 되고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승승 장구하여 이스라엘의 유명한 만성천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똑같은 장면에서 똑같은 도전을 받았으나 사울은 그 도전을 회피한 결과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그는 비참한 결말을 맺고 마는 것입니다. 똑같은 인생에 똑같은 도전을 우리가 당하지만 거기에 응전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우리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승리하고 살 것이냐 패배하고 주저앉을 것이냐는 우리 매일매일 다가오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류 역사상의 가장 무서운 도전은 바로 사탄이 가져온 도전입니다. 원수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꾀서 하나님을 배반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이 주신 이 세상과 그 모든 영광을 자기가 다 접수하고 아담과 그 후손들을 자기 종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아름다운 세상이 마귀가 신이 되고 마귀가 임금이 되어 아담의 후손들을 다스리고 그가 점령하여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도전입니다. 이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도전이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도전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응전하기로 결심하고 그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낸 것은 마귀와 그 세계에 대한 도전입니다. 마귀를 쳐서 물리치고 이 세계를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의 비장한 각오와 그 마귀의 일에 대한 도전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이 세상과 이 세상을 점령한 마귀에 대한 도전을 안 했었으면 여러분 우리는 영원히 마귀의 종이 되고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이 무시무시한 도전에 대한 응전을 했습니다. 그 응전의 장소가 바로 갈보리 십자가입니다. 쉬운 응전이 아니었습니다. 마귀는 주장을 합니다. 죄를 지은 영혼은 죽으리라고 했으니 다 죽어야 한다. 죽기 전에는 사람들을 건지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죽으면 다 지옥 가버리고 살아나지 못하니까 마귀는 큰 소리 했습니다. 그러나 죄 없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하시고 죄 없이 33년을 사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습니다. 참 하나님이 참 사람이 되셔서 모든 인류를 품에 안고 그 마귀의 도전에 응전해서 그는 십자가에 스스로 올라가서 못 박혔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를 품에 안고 그는 몸을 찢고 피를 흘리고 가장 처참한 고통을 당하고 마귀의 극악한 공격을 주님께서 견디어 냈습니다. 그래서 죄에 대한 도전에 대해서 응전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죄를 지은 영혼을 다 죽는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니 그러므로 한 사람도 구원할 수 없다는 거기에 주님은 응전하셨습니다. 그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로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그래서 그 피를 흘린 댓가로 말미암아 그는 모든 죄지은 인류에게 용서와 의를 창조해 내신 것입니다. 죄악의 도전에 대해서 주님이 자기 목숨을 바쳐 응전함으로 그 피로서 용서와 의를 창조해 내셨습니다. 이래서 누구든지 주를 믿으면 다 용서 받고 거듭나게 만들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마귀의 도전에 응전하사 모든 죄악을 다 심판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용서와 거듭남과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마귀는 그런 도전만 한 것이 아닙니다. 마귀의 나라에 있는 세속의 도전을 가지고 왔습니다. 마귀와 그 나라가 예수님께 도전을 해 왔습니다. 너는 이 땅에 발을 붙일 수가 없다. 이 땅은 우리에게 넘겨 준 땅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네가 내려올 수 없고 이 땅에 네가 너의 나라를 세울 수 없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이 마귀의 나라와 마귀의 도전을 십자가에서 끌어 앉고 마귀와 싸워서 마귀와 그 나라를 주께서 멸해 버린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렸습니다. 마귀의 무장을 해제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귀의 나라에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나라를 건설하셨고 성령이 임하시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늘 하신 말씀대로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못하리니 천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할 때에 나라에 임하옵소서 라고 기도하라고 한 것은 예수님께서 마귀와 그 나라의 도전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응전하시고 마귀와 그 나라를 멸하시고 여기에 하늘나라와 성령의 역사를 이 땅에 가져오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요한계시록 1장 6절에 말한 것처럼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가 오늘날 이제는 예수님을 모시고 하늘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늘나라가 우리를 통치하고 우리를 경영하십니다. 이제 하늘나라는 구만리 장천처럼 멀리 계신 것도 아니고 저 옛날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장차 올 것도 아니고 예수를 구주로 모실 때에 마귀와 그 나라는 우리 속에서 ㅤㅉㅗㅈ겨 나가고 하늘나라가 임하시고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속에는 하늘나라가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인 이 자리에는 하늘 나라가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늘나라요, 하늘나라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제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 에수님은 우리의 임금이시요,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채우시고 이끌어 주시고 천군 천사들이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적은 하나님 나라요 미니 천국인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까? 이것이 바로 마귀와 그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도전할 때 그리스도가 과감하게 십자가에서 그를 끌어안고 죽으심으로 마귀의 나라와 그 역사를 멸하고 천국과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우리가 살면서 마음에 슬픔과 고통, 육신의 질병, 이런 것이 우리의 행복을 빼앗아 갑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슬픔과 질병은 강물같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창조하셨을 때에 그곳에서는 슬픔도 질병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고 타락한 아담과 하와의 가슴속에 슬픔이 강물 같이 흘렀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 슬픔과 공허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와 같이 있는 어린아이도 슬프고 남편과 아내와 같이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슬프고 무엇인지 늘 공허합니다.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을 다 손에 쥐어도 가슴속에는 공허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 땅에서 무엇으로 그 마음속에 만족과 기쁨과 평안으로 채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버린 사람은 이 세상에서 쉴 곳이 없습니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으며 하나님을 가슴속에 모시고 살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사람은 세상의 그 무엇을 다 갔다 놓아도 절대로 마음에 참 기쁨과 만족과 삶의 의미와 가치를 누리지를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픕니다. 마음이 병들고 육신이 병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병과 슬픔의 이 도전에 예수님은 응전하셔서 주님이 십자가에 올라가실 때에 우리 슬픔을 친히 짊어지시고 우리의 질병을 그 몸에 담당했습니다. 이사야 53장 4절로 5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전적으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를 위해서 마귀의 공격에 응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슬픔을 가슴에 다 끌어안고 한없는 슬픔과 통곡 중에 십자가에 올라가셨으며 주님은 우리의 모든 질병과 연약을 그 몸에 다 걸머지고 그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지옥보다 더 무서운 처절한 고난을 십자가에서 당하셔서 이 도전에 응전하시고 이 모든 슬픔을 다 철폐하시고 모든 질병과 고통을 다 주님께서 다 멸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슬픔을 다 벗겨 버립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질병과 연약을 주님께서 다 없애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에 우리의 병과 연약과 슬픔을 다 짊어지워서 심판하시고 이를 제켜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슬픔으로부터 해방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치료가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건강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참 삶의 행복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저버리고 이 세상에 그 무엇을 가진들 우리의 삶에 참 행복과 기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쁨이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도전에 대해서 응전하셔서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삶을 창조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IMF를 통해서 우리의 생활이 참으로 어려워졌습니다. 우리의 씀씀이도 줄여졌고 수입도 줄여졌습니다. 그래서 한국 경제가 어려워집니다. 정부에서는 돈을 쓰라고 야단입니다. 돈을 쓰지 아니하면 기업이 다 무너지고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한국 경제가 돌아가지 아니하니 돈을 쓰라고 하는데 우리는 쓸 돈이 없습니다. 직장을 잃어버리고 월급이 줄어지고 그것도 마음대로 썼다가는 나중에는 굶주리게 됩니다. 이러므로 주머니를 묶게 됩니다. 이런 저주가 이 땅에 덮여 있습니다. 이것은 저주지 축복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집을 잃고 노숙자가 되는데 이게 축복입니까? 홈레스가 되어서 서울역 바닥에 가족을 데리고 나 앉아 있는 것이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저주인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 임한 심판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이 저주와 이 가난의 도전에 대해서 응전하사 그가 직접 가난한 것 아시죠?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베들레헴에 여관방에도 못 들어가고 짐승이 사는 우리에서 태어났습니까? 여러분 그게 축복스러운 탄생이라고 생각합니까? 거기에 가난이라는 말도 붙일 수 없는 처절한 빈궁 속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서 누울 자리가 없어 말구유에 누웠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너무나 가난하고 찌들어지게 궁핍한 삶이었습니다. 주님 친히 말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산새도 들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예수님이야 말로 홈레스의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집이 없었습니다. 풍찬노숙을 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그 손으로 저 무수한 별들을 지으시고 찬란한 태양과 밝은 달을 지으시고 산천초목을 지으신 그 분이 왜 이 땅에 와서 홈레스가 되었습니까?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고,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저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저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저주와 가난의 도전에 그 몸으로 응전하여 그는 우리 인생들에게 아브라함의 축복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히려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이 만일 전부 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그 나라인 교회를 섬기고 그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격려하고 믿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이런 문제는 눈 깜박한 사이에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강력한 태풍이 필리핀을 강타하여 뒤흔들어 놓고 대만을 내리 짓밟아 버리고 제주도를 향해서 북상해 올라 왔는데 이것이 한국으로 그대로 때렸다면 우리 한국에 그래도 지금 남아 있는 농작물은 다 절단 났을 것입니다. 수확을 하지 못한 농작물은 이제 못 먹게 되고 절단강산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순간적인 것입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기도도 안 나와요. 그런 태풍이 제주도로 왔다가 일본 큐슈를 향해서 일본열도로 피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 팔자 시간 문제입니다 여러분. 이게 만일 한국을 때렸으면 우리 한국은 이제 정말 명년에는 먹을 주식도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힘이 있다고 큰 소리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입김 한번에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고 낮추면 높일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죽이시면 살릴 자 없고 살리면 죽일 자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문을 닫으면 열 자도 없고 열어 놓으면 닫을 자도 없습니다. 우리 한국에 해야될 일은 오늘날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여러 정책과 모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축복을 하려고 작정을 하시면 순식간에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삶과 죽음, 저주와 축복이 하나님의 손길에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저주를 제하시고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저주와 가난의 도전에 십자가에서 그 몸으로 응전하셨습니다. 33년의 삶과 동시에 십자가의 그 몸으로 응전하셔서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축복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창조해 내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저주에서 건져 주시고 가난에서 해방해 주었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깊이 받아들이고 믿고 그것을 입으로 시인하고 가난과 저주의 골리앗을 향해서 피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간에 있어서의 가장 마지막 도전은 사망과 음부입니다. 사망과 음부를 이길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모든 사람은 다 죽고 다 음부로 내려갑니다. 이 도전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응전하셨습니다. 주님이 직접 당신이 죽음을 안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친히 음부로 내려가서 그 사망을 멸하고 음부를 멸하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주님께서 부활이요 생명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고 외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로 54절에 보면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이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 속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죽음은 이제는 영광스러운 삶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사망은 천국의 출발이 된 것입니다. 오직 새로운 현실과 세계 및 역사는 도전에 대한 단호한 응전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에 대해 십자가로 응전하여 새로운 피조물인 구원받은 성도들을 창조하고 새로운 삶을 우리에게 이룩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매일 매일 삶의 도전에 대하여 응전하고 새로운 삶을 건설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까요? 첫째로 우리가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여러가지 크고 작은 골리앗을 이기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인 오중 복음을 마음 판에 새겨 확실한 삶의 터전을 삼아야 됩니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것은 그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자원으로 삼았기 때문에 빈 주먹 들고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현실적인 크고 적은 여러 가지 삶의 현실에 골리앗의 도전이 올 때에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가슴속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이미 도전해서 응전하여 이기신 그 오중 복음과 삼중 축복을 깊이 깊이 알고 의지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자원이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골리앗의 외침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가서 이길 수 있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터전이 확고하여 흔들림이 없어야 담대히 응전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로 58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골리앗에게 도전하기 위해서는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을 항상 간구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미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돕기 위해서 보혜사 성령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보좌에 앉아 계시고 예수님은 일을 다 마치시고 그 우편에 계시지만 성령은 오늘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돕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와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고 꾸짖으시고 깨우치시고 가르치시고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우리 곁에 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을 항상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며 성령충만해 나갈 때 우리 마음속에 어떠한 생활의 골리앗도 당해도 이겨 나갈 수가 있는 담대함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하셨으니 성령은 지금 함께 계신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성령을 의지해야 우리가 우리의 삶의 도전에 이길 수가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통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늘 말씀을 읽고 늘 묵상하고 열심히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늘 먹음으로 우리 영혼이 살고 우리 마음속에 용기와 힘이 생기지 않습니까? 시편 119편 2절에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우리가 읽고 묵상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기도할 때에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실에 이겨 나갈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과 능력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현실에 이겨 나가기 위해서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용감하게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흔들리면 안됩니다. 히브리서 10장 35절과 38절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오직 나의 의인은 맏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으며 히브리서 13장 5절로 6절에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이러므로 다윗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강하고 담대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추수려서 강하고 담대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나아가는 하나님이지 뒤로 물러가는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인간의 능력이나 환경의 어려움에 낙심하지 말고 여러분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다윗처럼 도전해 나아가십시요. 그러면 우리는 매일매일 우리의 인생에 다가오는 골리앗과 같은 원수의 도전에 우리 주님의 능력으로 승리하고 새로운 삶을 창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환경이 날이 갈 수록 어려워지고 우리를 공격하는 스트레스는 마음의 허리를 휘게 만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도전을 감당하지 못하여 응전을 포기하고 패배자가 되고 자살도 합니다. 이때처럼 주님을 믿는 신앙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없습니다. 주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삶의 자원으로 삼을 때에 우리는 어떠한 역경에도 응전하며 새로운 삶과 역사를 창조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서 1장 9절을 여러분 기억해야 됩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매일매일 삶의 도전을 당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응전하지 못하는 사람은 패배하고 인생의 낙오자가 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그러나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심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도전에 응전에서 승리한 그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있으므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우리 배속에 깊이 간직하고 우리는 용감하게 마귀의 도전에 기도와 믿음으로 응전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오히려 어려운 역경을 위대한 성공과 승리로 변화시키는 삶을 살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마귀의 도전에 응전하사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과 기쁨과 평안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주님이 이미 도전해서 응전하고 승리한 이 질병에 대해서 간절히 간구합니다. 우리 몸에 아직 붙어 있는 이 질병을 예수 이름으로 다 쫓아 버려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멸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마귀의 일을 도말시켜 버려 주시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주의 권세와 능력으로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너희 악한 귀신아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 이미 패배한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너희 질병은 사라질지어다. 고침을 받을지어다. 하나님 아버지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제켜 주시옵소서. 가시와 엉겅퀴를 멸하시고 저주를 제하소서. 가난을 멸하소서. 주님의 은총과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비단결같은 손으로 우리를 어루만져 주셔서 용기와 힘을 얻게 도와 주시옵소서. 모든 눈의 눈물을 닦아 주시옵소서. 모든 귀에 주의 즐거운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마음이 강하고 담대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다가오는 모든 운명과 환경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도전하고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의 축복이 차곡차곡 쌓이게 도와 주시옵시고 날로 날로 전진하는 삶을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보혜사 성령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물댄 동산 같이 되게 도와 주시고 마음에 위로와 평강이 가득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나갈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모든 성도들 들어오며 나가며 꼴을 얻게 도와 주시옵시고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