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1월 1일
주일설교


제목: 용서와 화해와 사랑
성구: 엡2:12-22
설교: 조용기 목사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용서와 화해와 사랑”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현재 온통 갈등 천지입니다. 우리에게 불어닥친 IMF 한파 이후 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구조조정은 필수불가결하게 고용축소 정리가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대기업, 중소기업 등에 나타난 정리 해고 등이 노사 갈등이라는 진통을 가져온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제적 붕괴는 인간 관계의 붕괴, 가정의 붕괴로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서 우리가 살아 남고 이 극심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먼저 인간 속에 있는 갈등은 어디에서 그 시초가 발생되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지와 세계 속에는 원천적으로 갈등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이신 하나님이 사랑으로 지으신 천지와 만물, 그 가운데 인생 중에 갈등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넘치는 화해가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갈등이 시작한 이유는 타락한 천사장으로 말미암아 시작한 것입니다.
이사야 14장 12절로 15절에 보면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이처럼 원래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중에 가장 아름다웠던 루시퍼라는 천사장이 하나님과 동등 되려고 반역을 일으켜서 그때로부터 갈등이 이 우주 속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천사장과 그 천사장을 따르는 타락한 천사들과의 사이에 맹렬한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갈등은 곧장 인간 세계로 퍼져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아담과 하와를 지어 에덴 동산에 두고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베풀어주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오직 의와 평강과 희락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사탄이 들어와서 갈등을 심은 것입니다. 사탄이 와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께 등을 돌리도록 사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의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라는 것은 주인이 되는 실과라는 것입니다. 주권자가 되는 실과인 것입니다. 오직 주권자만이, 주인만이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지 종은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순종할 따름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온전히 순종하고 따라가느냐? 따라가지 않느냐? 이것을 시험하는 나무가 바로 선악과였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와서 여기에 갈등을 심어 놓았습니다. 하와에게 말하기를 정말 하나님이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다 먹지 말라고 하더냐! 하와가 아니라 모든 실과는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 그렇게 하셨다. 그러니까 사단이 하는 말이 그렇지 않다. 네가 저 실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너희도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하나님은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까 두려워해서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갈등을 심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처럼 발전하여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가? 하나님은 너무 질투와 시기가 심하지 않은가?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다스릴 수가 있는가? 이와 같은 갈등을 하와의 마음속에 심어 주었습니다. 그 갈등에 견디지 못하여 고통하고 고민하다가 그는 선악과를 따먹게 되고 그리고 남편된 아담에게도 선악과를 주어 먹게 하여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깊은 반역과 갈등의 골을 만들어 놓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등되려는 탐욕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과 대결 상태가 됨으로 그 마음속에 갈등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그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은 도망쳐서 수풀 뒤에 숨었다고 말했습니다. 벌거벗었다는 것은 양심이 벌거벗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를 지었으니 그 마음에 양심에 고통과 갈등이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죄를 짓고 나면 밤잠을 자지 못하고 마음에 갈등이 생깁니다. 양심의 고발 때문에 심한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온통 그의 존재가 벌거벗음을 느꼈습니다. 부끄러움과 수치가 꽉 들어찬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하고 반역했기 때문에 다가오는 양심의 갈등 때문인 것입니다. 그것은 곧장 부부의 갈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 하와를 비난해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준 여자가 나를 꾐으로 내가 그 선악과를 먹었나이다 그는 부부간의 갈등을 심히 느꼈습니다. 선악과를 먹게 한 하와에 대한 원망이 그 마음속에 꽉 들어차서 시작부터 하와에 대한 갈등이 꽉 들어 찼습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에덴에서 쫓겨 나와서 근본되는 땅을 갈며 농사를 지어 먹고 살 동안에 나은 자식이 첫 아들이 가인이고 둘째가 아벨이었는데, 가인과 아벨 두 사람도 그만 마음속에 서로 경쟁이 생겨 갈등이 생겼습니다. 가인이 만든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과 아벨이 만든 제단이 있었는데 가인은 자기 손으로 농사지은 것으로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양을 잡아 피를 흘려 제사를 지냈는데 하나님이 가인의 제단에는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아벨의 제단에는 불로써 응답한지라 가인이 아벨에 대해서 심히 분노하고 열등의식과 좌절감을 느껴서 그만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돌로 쳐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형제간에 갈등으로 말미암아 살인까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온 인류의 가슴속에는 쉬지 않고 갈등이 일어나고 이 갈등의 폭풍우 속에서 사람들은 고통 당하고 있습니다. 이기주의와 탐욕은 개인과 개인사이, 집단과 집단사이, 국가와 국가, 종교와 종교간의 끝없는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 주변을 살펴 볼 때에 우리의 가정이나 생활, 사회, 국가, 세계에 갈등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어느 곳이나 갈등으로 말미암아 분리되고 비난하고 공격하고 심지어는 죽이는 살상까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써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방법 밖에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부부간의 갈등이 일어나더라고 남편이 아내를 힘으로 눌러서 꿈쩍 못하게 하고 정복해 버리는 것입니다. 부자간의 갈등도 부모의 권위와 능력으로 자녀들을 억압해 버립니다. 형제간의 갈등도 힘 있는 형제가 힘 없는 형제를 눌러 버립니다. 이웃간에, 집단간에, 국가간에 갈등도 힘으로써 문제를 지금까지 해결하려고 애를 써왔습니다. 나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뉴욕의 신문에 소개된 것인데 뉴욕의 어는 공장에서 사장이 자기 얼굴을 닮은 고무인형을 크게 만들어서 매달아 놓고 누구든지 사장에게 갈등이 생기거든 와서 이 고무인형을 두들겨 패라고 했었습니다. 그 결과 직공들이 와서 얼마나 이 사장님 고무인형 얼굴을 팼던지 일주일에 한번씩 새로운 고무인형을 달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이 갈등은 힘으로써 해결하려고 합니다. 두들겨서 정복함으로 갈등을 해결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힘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더 큰 갈등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주먹은 주먹을 불러오고 폭력은 폭력을 불러옵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갈등이 더 증폭되었지 힘으로 갈등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이 갈등을 힘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용서와 화해와 사랑으로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보십시요. 이렇게 평행선에다가 이렇게 수직으로 나온 것은 갈등이 아닙니까? 하나는 평행으로 가려고 하는데 하나는 수직으로 가려고 하니 이게 갈등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는 바로 인생의 갈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가슴속에 가족간에 형제간에 이웃간에 사회 국가 세계에 있는 그 많은 십자가, 그 많은 갈등에 예수님께서 매어 달린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5절에 보면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하나님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골로새서 1장 20절에도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린 것은 그 십자가의 갈등에 주님께서 몸찢고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힘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희생제물을 통하여 용서와 화해와 사랑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갈등이 얼마나 심합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ㅤㅉㅗㅈ겨 났고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의 죄 때문에 인간을 저주했고 그 인간은 파멸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수평과 수직과 같은 갈등이 있습니다. 도저히 가까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매달리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도 우리를 향해 볼 때 우리의 갈등이 해소됩니다. 우리에 대한 모든 죄가 예수님을 통해서 다 심판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찢어 진 몸과 그 흘리신 피를 통해서 우리를 볼 때에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와 화해해 주시고 우리를 사랑해 주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바라보면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고 죽으셨기 때문에 그 찢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통하여 하나님을 쳐다볼 때에 하나님의 모든 진노가 사라지고 원수된 담이 사라지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갈등이 다 사라지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용서하고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이 갈등이 십자가에 예수님이 제물이 됨으로 말미암아 그 찢어진 몸과 흘리신 피로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게 되고 인간도 하나님을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되어서 이제 갈등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이 갈등에 예수님이 제물로 얹혀지지 않고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절대로 용서와 화해와 사랑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진하여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제물이 되기를 원하셔서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하나님은 손을 내밀어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어떠한 종교도 쓸 데 없습니다. 의식도 안되고 윤리와 도덕적인 행위도 안되고 선한 행실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파인 그 깊은 수렁을 건너 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서 자기 몸을 희생제물로 드림으로 갈등은 해소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여러분을 볼 때 아무 갈등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용서와 사랑을 가지고 여러분을 볼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처다 볼 때도 아무런 갈등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다 사라지고 용서와 화해와 사랑이 넘칠 따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힘으로 갈등이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고 주먹으로 때려서 갈등을 해소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용서와 화해와 사랑을 통해서 이 갈등이 해소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 제물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 제물이 되지 않고는 절대로 용서와 화해와 사랑으로써 갈등이 해소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잘못을 짊어지고 죽음으로써 용서와 화해와 사랑을 베푸신 우리 주님을 감사하고 찬미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제 로마서 5장 10절로 12절에 있는 말씀대로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이제는 우리를 화목케 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품에 안겨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과 갈등 상태에 있고 영원히 버림받을 수 밖에 없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갈등은 다 사라지고 오직 용서와 화해와 사랑만 넘치고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당신의 성령을 부어주셔서 우리의 마음속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게 만들어 주시고 영원한 미래의 소망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희생으로 말미암아 양심의 갈등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우리가 죄 안 지은 사람 어디에 있습니까? 죄를 지을 때마다 양심은 우리를 고소하고 참소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잠 못 이루는 밤을 얼마나 많았습니까? 아무도 말 안하여도 양심의 소리가 나를 꾸짖습니다. 양심의 고통이 다가오고 양심의 고통의 갈등이 옵니다. 우리는 양심의 갈등을 죽여 버리려고 애를 쓰고 양심을 무디게 만들지만 그럴수록 양심은 더 피투성이가 되어서 우리를 고소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마음에 양심의 갈등이 없으면 평안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양심의 갈등이 있는 이상 겉으로는 좋은 옷을 입고 번지르르 하게 살아도 영혼 속에 갈등은 그치지 않습니다.
이 가슴속에 있는 갈등의 십자가를 어떻게 해결합니까? 이 가슴속에 있는 갈등이 십자가 위에 예수 그리스도가 제물이 되었은즉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구주로 영접할 때에 내 양심의 갈등은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말합니다. 내 양심을 향하여 이 사람의 죄 때문에 내가 죽었다. 이 사람의 죄 때문에 내 살이 찢어지고 피를 흘렸다. 그러므로 이 사람의 죄는 내가 형벌을 받았으므로 내가 이 사람을 용서했으니 양심 너도 이 사람을 용서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 희생의 제물이 우리의 양심의 고소를 잠잠케 하고 용서와 화해와 사랑으로 넘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자기가 자기를 깊이 사랑할 수 있을 때에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용납할 때에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갈등과 분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미워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너 같은 놈은 살 필요가 없어 너 같은 놈은 나쁜 놈이야 너 같은 놈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을 비난하고 공격하고 자기 갈등과 자기 분열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쳐다볼 때에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 양심아 이제는 평안하라 내가 이 사람을 위해서 대신 죽었다. 이 사람을 위해서 그 많은 죄를 내가 대신 짊어지고 심판을 받아 몸을 찢고 피를 흘렸으니 내 피가 그 증거가 된다 그러므로 이제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내 스스로의 인격을 용서하고 내 스스로를 용납하고 내 스스로가 화목되어서 내 마음에 일치가 이루어지고 내 마음에 평안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7장 22절로 25절에 보면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 마음의 갈등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되었으니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우리 양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고 이제 성령으로 우리가 하나 되어 마음에 갈등이 사라지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갈등도 사라지고 우리는 화평이 꽉 넘치게 되는 이것이 비로소 마음에 평안과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남은 문제가 이웃과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이기주의와 욕심을 가지고서 이웃과 싸워서 흐트러지고 상처 뿐인데 이웃과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습니까? 자기의 이기주의와 욕심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마음으로 나올 때만 갈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관계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모두 다 자기 중심 자기 생각 자기 욕심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중심, 자기 욕심만 가지고 있는 이상 서로의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서로 투쟁만 계속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몸을 따르지 않고는 안됩니다. 여러분 사람이 하나님을 반역했지 하나님이 사람을 반역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얻어맞았지 사람이 얻어맞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상처 입은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우리와 갈등을 해소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이웃과의 갈등을 해소하려면 그 누구 한편에서 십자가를 걸머져야 하는 것입니다. 쌍방 중 하나가 십자가를 걸머지던지 두 분이 다 같이 십자가를 걸머지고 그리고 용서와 화해와 사랑을 베풀지 않고는 갈등이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39절로 4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이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인간이 살면서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갈등이 생기고 논쟁이 생기고 분쟁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갈등을 없애버리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십자가를 걸머지고 용서와 화해와 사랑을 베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오른편 뺨을 칠 때 상대방의 왼편 뺨을 내려치면 이것은 화해가 되지 않지만, 오른편 뺨을 칠 때 내가 그 아픔과 분노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면 화해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못할 게 뭐냐! 예수님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이 기뻐할 것을 바라보고 주여 내 손 잡아 주소서 나도 주와 함께 내 자신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용서와 화해와 사랑을 나타내겠습니다. 오른 뺨을 때려도 분이 안 풀어지지요 왼편 뺨도 때리세요 그를 통해서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메세지가 전달되는 것입니다. 나를 고소해서 속옷을 가지려고 할 때에, 여러분! 나를 고소해서 집을 가지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속옷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를 고소해서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아예 겉옷까지 벗어 주면서 ‘속옷가지고 만족하겠습니까? 겉옷도 가지고 가십시오’ 하면, 거기에서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메세지가 전달되는 것입니다. 억지로 오리를 가지고 하면 십리까지 따라가 주세요.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내가 희생됨으로 용서와 사랑의 메세지를 전달할 때에 비로소 갈등이 사라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TV 뉴스를 보니깐 서로 자동차가 앞 서거니 뒤 서거니 하다가 신호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니까 그 차에서 내린 사람이 칼로 앞에 있는 사람을 찔려 버렸습니다. 사소한 갈등입니다. 자동차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사람만 마음에 십자가를 걸머지고 ‘먼저 가세요’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면 됩니다. 안 죽을 것 아닙니까? 그 사소한 갈등으로 죽습니다. 부부간의 싸움도 그렇습니다. 큰 것으로 부부간의 싸움이 생긴 것이 아니라 사소한 말다툼 때문에 균열이 생기고 심지어는 이혼까지 됩니다. 남편이나 아내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여 내 손 잡아 주셔서 못박아 주옵소서. 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서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메세지를 보낸다면 한 손으로 소리가 나지 않듯이 두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그렇게 되면 갈등이 해소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 생활의 갈등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지만 우리가 어느 편이든지 십자가를 걸머지고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메세지를 전달하기 전에는 화해가 되지 않습니다. 갈등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적은 갈등으로부터 인간 생활에는 큰 갈등까지 있습니다. 우리의 일생에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갈등도 있습니다.
예들 들어 말하면 우리 독도 문제 같은 것입니다. 우리 독도 문제는 우리 한국은 역사적으로 민족적으로 독도는 우리 땅인데 일본 사람은 또 억지를 부리고 그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십자가에 매달려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려고 해도 그것 가지고서 일본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일본은 독도를 내놓으라고 합니다. 우리는 독도를 내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도저히 예수님 오시기 전에는 해결될 수 없는 갈등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사소한 갈등입니다. 부부간의 갈등, 부모 자식간의 갈등, 형제간의 갈등, 이웃간의 갈등, 사회 계층간의 갈등, 이러한 수많은 사소한 갈등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불행하게 되고 우리의 삶이 파괴되는데 이러한 일에서는 내 한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내가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메세지를 전달함으로 말미암아 갈등이 사라지고 행복이 다가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무섭고 영원한 갈등인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갈등, 인간의 양심과 인간에 대한 갈등을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 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용서와 화해와 사랑이 넘치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용서와 사랑이 넘쳐 갈등이 해소된 것입니다.
내 양심과 내 인간 존재에 대한 갈등도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용서와 화해와 사랑으로 갈등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실 때에 우리는 그를 통하여 하나님이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갈등이 다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통하여 예수님이 날 대신 고난 당하심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직 용서와 화해와 사랑만 넘칩니다. 또한 이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마실 때에 내 양심에게 말합니다. 양심아 잠잠하라 예수님이 날대신 몸찢고 피를 흘려 주심으로 내 죄가 다 용서를 받고 하나님께 용납함을 받고 사랑을 받고 있으므로 나는 하나님께 사랑 받는 사람이다 이제 양심아 너도 나를 용서하고 나와 화해하고 사랑할지어다 이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갈등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인류가 존재하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재앙입니다. 기독교 복음의 가장 위대한 것은 이 갈등의 십자가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못 박히셨다는 것입니다. 인간 때문에 상처를 입은 하나님이 오히려 때린 자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시고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손길을 내미신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받아들이고 우리도 주님과 함께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이웃을 용서하고 화해와 사랑을 베풀 때에 갈등의 골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곳에 사랑의 메아리가 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외에는 우리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여 주님 십자가에서 매달렸으니 나도 주와 함께 매달려 내가 죽고 나를 통해서 용서와 화해와 사랑이 넘쳐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도를 계속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온 세상은 갈등 천지입니다. 우리 마음도 갈등으로 꽉 들어차서 이리저리 찢겨 있습니다. 오늘 이시간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실 때에, 하나님이 이 갈등으로 힘으로 폭력으로 갈등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친히 하나님이 우리 짐을 대신 짊어지고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용서와 화해와 사랑으로 해결했다는 것을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 성찬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이여 하나님과 우리와 갈등이 해소되고 우리 양심과 우리 자신과의 갈등이 해소되고 우리 이웃과 우리 사이에 갈등이 해소된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예수님만이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리신 예수님만이 우리 갈등의 중재자가 되시고 그를 통해서 이제는 갈등도 싸움도 분열도 심판도 없고 오직 용서와 화목과 사랑만 넘쳐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감사합니다. 그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은 내 아버지 되시고 나는 하나님의 친 자녀가 되고 나는 화평을 이룬 몸이 되고 내 이웃과도 십자가를 걸머지고 용서와 화해와 사랑을 베푸는 우리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