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1월 8일
제목: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성구: 마태복음 11:28-30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인간은 태어 날 때부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태어납니다. 죄의 짐, 미움의 짐, 질병의 짐, 가난의 짐, 마음의 짐, 염려, 근심, 불안, 공포, 좌절, 절망, 그리고 죽음의 짐들을 짊어지고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현재 IMF 체제하에서 국민 전체가 내일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과 실직, 파산 등의 무거운 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들을 향하여 두 손을 활짝 펴시고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국가고 이웃도 감당치 못하는 무거운 짐 진자들을 하나도 없이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고 계실까요?

첫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예수님이 능히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실력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실력이 없는 사람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겠다고 말했다면 이 사람은 정신병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능히 이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 그 가운데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주님 중심으로 선 귀한 일꾼들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두라 평온에 큰 신상을 세워 놓고 바벨론의 모든 도백들과 지도자를 다 모아 놓고 신상 제막식에 참석하여 나팔을 불고 악기를 울릴 때에 다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라고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공중에 새도 떨어뜨리는 사람의 생명을 마음대로 주고 빼앗을 수 있는 그 당시 가장 무서운 왕이었습니다. 그런 임금님의 명령인데 누가 감히 그 신성 앞에 절하지 않겠습니까? 악기가 연주되고 나팔 소리가 나매 모든 사람들이 땅에 엎드려 그 우상에 절을 하는데 오직 사드랏, 메삭, 아벳느고만 서서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왕께 고하매 왕이 진노해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불러서 네가 과연 내가 세운 신성에 절하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다시 기회를 줄 터이니 악기가 연주될 때에 신사에 절을 하라 그렇지 않으면 7배나 더 뜨겁게 한 풀무에 너희를 던져 넣어서 태워 죽이겠다.
그때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한 말이 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다니엘 3:16-18)
그들은 단호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만일 왕이 우리를 그 불타는 풀무에 던져 넣어도 우리 하나님은 능히 우리를 건지십니다.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지지 아니하실 지라도 우리는 우상에는 절대로 절하지 않겠다는 신앙의 충절을 그들은 고백했습니다. 얼마나 분노했던지 왕이 특명을 내려서 풀무 불을 7배나 뜨겁게 하고 군인들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묶어서 그 풀무 불로 끌고 가다가 그 불길에 휩싸여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풀무 불 가운데 던져 넣었는데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곳에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세 사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제 4번째 사람이 와서 그들과 함께 손을 잡고 불 가운데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서 3장 24장 25절에 보면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옳소이다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바로 이 네 번째 사람이 누구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 고백과 그들의 충절의 고백을 좇아서 주님은 보좌에서 뛰어 내려 그 풀무 불 가운데 뛰어 들어 와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결박을 다 풀고 불의 세력을 멸하고 그들과 함께 불구덩이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한 말은 헛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실력이 있습니다. 불꽃 가운데서도 자기의 백성들을 구출할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의 권세도 예수님의 손에 있고 하늘의 권세도 예수님 손에 있습니다.
그는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끔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한 것이 아닙니다. 24시간 항상 어느 처소에든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대로라면 주님은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한 것이 내게 와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그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두번째로는 주님의 멍에를 메라고 했는데 주님의 멍에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옛날에 팔레스타인에서는 소로써 밭을 갈 때에 어미 소가 멍에를 걸머지고 새끼소를 멍에 밑에 같이 세워서 밭을 갑니다. 큰 멍에가 어미소 목에 걸려 있고 그 밑에 새끼소가 함께 서서 밭을 갑니다. 이것은 새끼소에게 밭을 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똑바로 걸어가서 밭고랑을 똑바로 갈게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농부가 “일랴” 하며 채찍을 때리면 어미소가 잔뜩 긴장을 하고 온 몸에 힘을 다 들이고 목에 심줄을 내면서 그 멍에를 끕니다. 그런데 새끼소는 그 옆에 그 어미의 밑에 들어 있기 때문에 걸어가도 조금도 힘이 들지 않습니다. 아마 새끼소는 가끔 가다가 어미를 바라보고 말할 것입니다. 왜 이렇게 힘을 쓰는가 나는 그냥 걸어가도 아무 힘도 안 드는데 어미는 온 몸에 혈관을 세우고 몸 전체에 근육을 뻣뻣하게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애를 쓰며 장기를 끌고 가는가? 왜 이러는 걸까? 아마 새끼소는 이해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멍에는 어미소의 목 위에 있습니다. 어미소는 그 뒤에 쟁기를 끌고 있습니다. 새끼를 그냥 어미소 밑에서 그 멍에 밑에서 따라갈 따름인 것입니다.
멀리서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새끼소가 어미소와 함께 멍에를 목에 걸고 끌고 가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새끼소에게 물어 보면 내 목에는 멍에도 있지 아니했고 나에게는 짐도 없고 나는 쉽고 가볍게 어머니 멍에 밑에 그냥 따라 갈 따름입니다. 그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가 배우라는 말은 바로 옛날의 팔레스타인에서 밭을 갈던 짐승들을 제자들이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비유해서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멍에라고 말했습니다. 너희 멍에가 아닙니다.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멍에는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위해서 멍에를 걸머지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 멍에는 바로 갈보리 산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갈보리산 십자가의 멍에를 그의 몸에 걸머지고 가셨습니다. 그 멍에가 끌고 간 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멍에를 걸머지고 끌고 간 짐은 당신의 짐이 아니라 바로 인류에게 내려진 짐, 여러분과 나의 짐을 예수님은 당신의 멍에에 끌고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멍에에 우리의 죄짐을 짊어지셨습니다. 아담, 하와 이후로 마지막 인류까지 지은 모든 죄를 예수님은 당신의 멍에에 걸머지고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짐은 무거웠습니다. 힘들었습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은 피를 흘리고 땀을 흘리고 살을 찢으면서 그 멍에를 걸머지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보면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말했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멍에에 우리의 죄짐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 멍에에 우리의 마귀와 세상의 종된 짐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 이후로 마귀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마귀는 우리 속에 세상을 가득 채워 놓고 세속으로 우리를 끌고 갔습니다. 하나님도 없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과 관계도 가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멀리 멀리 떠난 먼 나라에게 지옥을 향해서 줄달음쳐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귀와 세상의 종된 짐을 당신의 멍에에 걸머지고서 이 마귀와 세상을 주님께서 멸하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로 7에 보면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린 이제는 마귀와 세상의 종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마귀와 세상의 멍에를 대신 짊어짐으로 우리는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성령을 받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의 슬픔과 육체의 짐도 그 멍에에 걸머졌습니다. 예수님의 멍에에는 우리의 한없는 슬픔과 고통, 마음의 병을 걸머지셨으며 육체의 질병과 고통을 짊어지셨습니다.
이사야서 53장 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 멍에에 우리의 생활의 어려움의 짐을 짊어지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생활고를 허덕이지 않습니까? 그 생활고의 짐을 예수님이 당신의 멍에 위에 걸머지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1절로 33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짊어지워진 저주와 가난과 낭패와 실망의 짐을 다 옮겨서 당신의 십자가 멍에 위에 주님이 걸머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의 죽음의 짐도 그 멍에에 짊어지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54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살을 찢고 피를 흘리시면서 우리 죽음의 짐도 그 멍에에 걸머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멍에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입니다. 우리 인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짐입니다. 우리는 그 짐을 지고 모두 다 지옥으로 지옥으로 침몰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의 멍에 위에 우리의 짐을 다 거두워서 짊어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멍에 위에 우리의 짐을 짊어지고 땀을 흘리고 피를 흘리고 살을 찢고 온갖 고통을 다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손을 활짝 내밀고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너희는 내게로 와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주님께서는 나의 멍에를 메라는 것는 나의 멍에 밑으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어미 소가 멍에를 목으로 끌 때에 새끼소를 그 멍에 밑으로 들어오라고 한 것처럼 주님은 오늘 인류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멍에 밑으로 들어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 너희가 짐을 지고 있느냐? 이미 내가 짊어진 짐을 너희가 왜 짊어지느냐는 것입니다. 너희 죄짐을 내가 짊어지었고 마귀의 종된 짐도 내가 짊어지었고 슬픔과 고통도 내가 짊어지고 가난과 저주도 내가 짊어지고 죽음과 지옥의 짐도 내가 짊어졌는데 왜 네가 새삼스레 또 짊어지고 있느냐? 왜 그걸 짊어지고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길을 걸어가느냐 ?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내게로 오라 그리고 나의 멍에 밑으로 들어 오너라. 나의 멍에를 걸머져라. 예수님이 우리 대신 종의 멍에를 메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이제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멍에 밑에 들어가 우리의 짐을 모두 예수님의 멍에에 맡기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시편 55편 22절의 말씀을 한번 따라 읽으십시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IMF 체제로 실직, 해고, 파산, 깨어지는 가정, 자녀, 입시, 자녀문제 이러한 여러가지 문제로 우리 한국 사회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힘이 필요하고 용기가 필요하고 평안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에 너희가 이런 짐을 짊어지고 비틀거릴 필요가 없다. 내게로 오라 그리고 내 멍에 밑으로 돌아오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 요한복음 14장 20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이 아니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금방 주었다가 빼앗아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는 평안은 그리스도의 멍에 밑에 들어가면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내 짐은 옮겨지고 내 마음속에 평안이 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초조, 절망, 죽음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번째 주님께서는 내 멍에 밑에 들어와서 살아가는 길을 배우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멍에 밑에 들어가서 주님을 따라가는 길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주는 그 자유와 해방과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멍에 밑에 들어가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려면 예수님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온유함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로 8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온유한 마음이라는 것은 길을 잘 들인 마음을 말합니다. 여러분 말로 길을 잘 들이면 주인이 타고 마음대로 다닐 수 있잖아요. 소를 길을 잘 들이면 마음대로 밭을 갈 수 있지요. 개를 길을 잘 들이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죠. 여러분 가축들이란 길을 잘 들인 짐승들입니다. 옛날에는 거기 다 맹수들이었어요 그러나 길을 잘 들여서 사람과 함께 사는 가축이 되었습니다. 길들인 것이 가축이지요. 온유한 마음이라는 것은 여러분 길을 잘 들인 것입니다. 몇일 전에 술취한 주인을 밤새도록 가슴에 품고서 주인을 지켜준 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요. 주인은 개 망난이가 되어서 술이 취해 길거리에 쓰러졌는데 이 개는 주인을 깨울려고 어깨의 모든 옷을 다 물어뜯고 머리털을 다 물어뜯고 일으키고 그래도 안되니까 자기의 배를 굶으면서 주인 위에 자기 몸으로 엎드려서 감싸서 주인이 얼어죽지 않도록 했습니다. 내가 보니까 그 주인보다 개가 훨씬 좋은 것 같습니다. 주인은 개 같고 주인은 사람 같은데 이거 얼마나 길들임을 잘 받은 온유한 짐승입니까?
여러분 사실을 쉽게 나쁜 것을 보고 개 같은 인생이라고 말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개는 이렇게 주인이 개망난이라도 주인은 주인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온유함이란 것은 이렇게 길들임을 받아서 여러분 개떡같은 주인도 개가 섬기는데 우리는 만군의 하나님을 정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섬길 수 있는 그런 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한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길들임을 잘 받으면 순종하고 따라가지요 앞으로 가자고 하면 가고 뒤로 가자고 가고, 앉으라고 하면 앉고 서라면 서고 내 고집대로 살지 아니하고 주님 뜻대로 삽니다. 온유한 새끼가 어미가 가는 대로 그 멍에 밑에서 따라가지 않습니까?
이러므로 온유한 마음은 순종하고 잘 따르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유한 마음을 배워라. 나는 굉장히 온유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나는 아버지 하나님이 명하시면 죽기까지라도 복종한다. 아버지가 십자가 걸머지라면 십자가 걸머지고 죽으라면 죽는다. 나의 온유함을 배워라. 그러므로 천방지축으로 뛰는 마음에 길들임을 받게 하라. 순종을 배워라. 우리 신앙 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가는 마음인 것입니다. 순종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내 고집대로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낳고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으로 드리는 것보다 낫다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순종해야 예수님의 십자가 멍에 밑에서 우리가 따라갈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다음 주님은 겸손한 마음을 배우라고 말했습니다. 겸손한 마음이라 자기를 자랑하거나 자기를 의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잠언서 3장 5절로 6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겸손한 마음은 자기를 자랑하거나 자기를 의뢰하지 않는 마음인 것입니다. 주 예수님과 하나님을 자랑하고 주 예수님과 하나님을 의뢰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이라는 것은 주님을 굳세게 믿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죽도록 의지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한 번 믿었으면 그대로 믿음으로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5장 6절로 7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맡기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편 팔로 애굽에서 300만이 따라 나왔으나 그들이 광야에서 다 죽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못 들어간 이유는 그들이 온유하지 아니했습니다. 길들임을 받지 않고 순종을 안 했고 겸손하지 안 했습니다. 겸손해서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을 절대로 의지하고 따라가는 겸손한 마음이 있지 않고 어디가나 자기의 고집을 내세우고 자기가 아는체 자기들 주장을 했습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가정에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정말 피아노를 잘 쳐요. 피아노에 천재적인 소질이 있어요. 그런데 그를 가르칠 만한 선생이 오직 한 분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이미 은퇴하셔서 학생을 받아 드리리 않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이 그 어린아이를 데리고 그 선생님에게 한번만 이 어린아이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이 허락하는데 그 노선생 앞에서 어린아이가 피아노를 치는데 거기에 불꽃 같이 번뜩이는 천재성이 보였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은퇴해서 제자를 다시 안 받아 줄려고 했지만 그 아이의 피아노 솜씨를 보고는 그 마음에 불꽃이 올랐습니다. 이 놈을 내가 키워야겠다. 그래서 그 선생이 온 정렬을 다 퍼부어서 이 어린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습니다. 이 어린아이가 청년이 되었을 때에 그는 아주 유능한 피아니스트가 되었습니다. 그가 데뷔하는 날 음악당에는 사람들이 꽉 들어찼습니다. 선생님은 2층에 앉아 있는데 이 청년은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한 곡조 한 곡조 연주할 때마다 모두 다 매료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알콜 박수를 치고 그리고 돈을 던졌습니다.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 밑에는 돈이 일불짜리, 십불짜리, 이십불짜리가 수복히 쌓였습니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사람들은 감격해서 와서 그냥 돈을 던졌습니다. 박수를 쳤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청년은 발코니 위에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청년은 박수치는 사람들도 바라보지 아니하고 그 발 밑에 떨어지는 수많은 지폐도 바라보지 아니하고 오직 고개를 들어 발코니만 쳐다보았습니다. 일제히 사람들이 눈을 돌이켜 쳐다보니 그 발코니 위에 백발이 생생한 선생이 앉아서 그 제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그는 손을 주물럭거렸습니다. 그래 항상 위만 쳐다보라. 박수를 치는 사람을 쳐다보지 말고 발 밑에 떨어지는 돈을 바라보지 말고 항상 위만 쳐다보라. 항상 위만 쳐다보면 너는 끝없이 발전할 것이다. 여러분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저의 마음속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리 부귀 영화 공명이 많다고 할지라도 또 그렇지 않고 낭패와 실망과 고통을 당할지라도 우리가 위만 쳐다보고 살아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 우편에 예수 그리스도가 앉아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온유하여 순종하고 겸손하여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고 맡기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들어가서 그리스도와 함께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영원히 우리의 짐을 십자가로 청산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온유하고 겸손하게 주님을 따르고 굳세게 믿고 의지하면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여 우리의 짐을 다 주님께 내어 맡겨 버리면 예수님의 십자가 멍에 그늘 밑에 행하게 되고 우리의 삶은 쉽고 가볍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짐을 지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시편68편 19절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이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향하여 오늘 손을 내밀고 IMF 한파로써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 모든 것이 뒤흔들리고 불안하고 깨어지고 무너질 때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여 왜 네가 짐을 지느냐? 왜 네가 짐을 지느냐? 다 네게로 오라! 그 짐 내가 십자가로 다 걸머졌으니 그 짐 내 십자가에서 내려서 짊어지지 말고 내게 맡기고 내 십자가 밑에 들어와서 나와 함께 와서 가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너도 온유해서 순종하고 겸손해서 하나님 믿고 나오면 내가 책임져 주마! 내가 다 걸머지고 가주마! 내가 도와주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인생을 쉽고 가볍게 소망과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살아라. 그렇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주님을 향하여 우린 두 손을 활짝 들고 천부여 의지하옵소서. 손들고 옵니다. 주여 내 짐을 다 주님께 맡기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십자가 밑에 다 들어가서 주님을 따라가며 살겠나이다. 새로운 신앙 고백을 하고 오늘 예배를 마치고 나갈 때에 짐 다 예수께 맡기고 쉽고 가볍게 나가십시오. 불꽃 가운데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건진 예수님은 오늘날 이 세상의 불꽃 가운데서 여러분과 나를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주님이 우리 위해서 멍에를 걸머지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님 멍에가 인생고를 다 걸머지시고 이제 우리를 십자가 밑에 들어와서 함께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 짐과 너희 고통을 다 짊어졌으니 내 십자가 멍에 밑으로 들어오라는 주님 앞에 우리 다 나오게 도와 주시옵시고 우리 짐 다 주님께 맡겨 버리고 쉽고 가볍게 주님과 함께 즐겁게 인생을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오직 순종과 믿음으로 우리가 주님의 기적을 의지하고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주님이여! 우리의 병의 짐도 주님이 이미 짊어지셨습니다. 이천 년 전에 짊어진 짐이니 오늘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믿고 맡깁니다. 주님이여 가지가지 병을 주님께 내어 맡깁니다. 주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옮겨주시옵시고 권능으로 옮기시고 우리 몸에 있는 모든 질병의 가시를 뽑아버려 주시옵소서. 마귀의 일을 멸하여 주시옵시고 건강으로 채워 주시옵시고 치료와 생명으로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병마는 떠나갈지어다. 질병은 사라질지어다. 고통은 물러갈지어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도 예수께 다 맡겨 버립니다. 주님이 우리의 짐을 짊어지셨으며 가시와 엉겅퀴를 주님이 짊어지셨으며 주님께서 우리 저주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여 우리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의 저주를 제하여 주시옵소서. 가시밭길을 제하여 주시옵소서. 엉겅퀴를 제하여 주시옵소서. 눈물을 닦아 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여 상처를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평탄한 길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대로를 허락하여 주시옵시고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시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기적으로 채워 주시고 은혜가 넘쳐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이 충만하게 도와 주옵소서. 오늘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믿음과 순종과 은혜로서 모두 다 예수님의 십자가 멍에 밑에 들어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믿고 순종으로 십자가 밑에 들어가서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심을 감사하옵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