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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6일 제목: 침노하는 자만이 빼앗는 천국 성구: 히브리서 4:6-11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침노하는 자만이 빼앗는 천국”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다가오는 백성들에게 그 땅을 침노하여 점령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제1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쓸쓸하게 죽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점령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이 주신 그 땅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제2세대에 와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쫓아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아담의 후예로서 아담 광야에서 태어나 많은 고통과 슬픔을 겪으면서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2천년 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 제물이 되심으로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오중복음의 젖과 삼중축복의 꿀이 흐르는 땅으로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마태복음 11장 12절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비해 주신 가나안 천국도 침노해서 빼앗아야만 소유할 수 있지 가만히 앉아 있다고 해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우리에게 그냥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이룩하신 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나안을 얻기 위해서는 자격을 구비해야 합니다. 어떤 자격을 우리가 구비해야 예수님이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점령 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로, 확실한 지식과 명확한 꿈이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누군지 알지 못하면 우리의 실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이 무엇인지 분명히 모르면 우리들은 행동할 수 없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으므로 분명히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나깨나 꿈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고난 당하심으로 우리를 아담의 광야에서 구출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대속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건지셨다는 그 지식이 우리에게 확실히 있어야 우리는 그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공연히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몸 찢고 피를 흘린 것이 아무 의미 없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영원히 대속했다는 이 지식을 확실히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배로운 피와 그 고난을 통하여 다 청산되었다는 사실을 우리 마음속에 확실히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점령하고 우리를 포로로 잡았던 원수 마귀와 세상은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쫓겨 나가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국이 임하시고 성령이 우리를 점령하셔서 하늘 나라의 역사를 베풀어주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슬픔을 다 담당하시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고 가셨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 마귀에게서 우리가 빼앗아 낼 수 없습니다.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시고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시켜 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절대로 저주에서 해방된 일도 없고 가난에서도 해방된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원수들의 입을 통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바로 신학자들의 입을 통해서 주의 종들의 입을 통해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확실히 진리를 알지 못하면 그만 혼돈되고 미혹되어서 우리에게 준 그리스도의 가나안 땅을 점령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셔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시고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주신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 힘이 되는 것입니다. 알아야 침노해 들어가서 빼앗을 수 있습니다. 확실히 알지 못하며 마귀가 와서 자꾸만 우리에게 협박 공갈을 합니다. ‘거짓말이다 그런 일은 없다.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기적은 없다. 이미 지나가 버리고 그 시대는 사라졌다’ 여러 가지 거짓말로 우리를 미혹합니다. 이 마귀의 미혹을 우리가 이기고 분명하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대속한 그 진리를 깨달아 알아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총과 약속에 서서 밀고 나갈 수 있는 통뼈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옛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는데, 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받는 새 사람에 대한 명확한 꿈을 마음속에 갖고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꿈이 있어야 됩니다. 나는 십자가를 통하여 이런 사람으로 하나님이 만들어 주었으니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꿈이 있어야 합니다. 꿈이 있어야 그 꿈을 향해서 뛰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꿈이 없으면 살아갈 목표가 없습니다. 뛰어갈 목표가 없어요. 싸울 목표가 없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룩하신 새 사람에 대한 분명한 꿈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있는 것처럼 십자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은총을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꿈꾸고 있는 것처럼 소유하고 믿습니다로 밀고 나갈 때 비로소 마귀는 쫓겨 나가는 것입니다. 마귀가 그렇게 쉽게 물러가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확실한 지식과 흔들리지 않는 꿈을 가지고 있을 때에 우리에게 저항하다가 물러가지 그렇지 않고는 아주 우리를 비웃습니다. 진리를 모르고 여러분 그리스도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둘째로,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그리스도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진리를 알고도 그곳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의 뜨겁고 절박하고 간절한 소원이 없으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소원이 없는 사람에게 아무 역사도 안 합니다. 마가복음 10장 51절에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우리의 마음에 소원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소원이 없이 그냥 막연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 주님이 일하시지 않습니다. 마음에 뜨겁고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됩니다. 배가 고픈 사람이 먹을 것을 간절히 찾는 것처럼, 몸이 아픈 사람이 병 낳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처럼, 그리고 또 굶주린 사람이 그것을 벗어나고 싶은 원한에 사무친 소원이 있는 것처럼,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원한에 사무친 절절한 소원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불쌍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에게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십시요. 성경은 ‘그 원한’이라고 말했습니다. 내 원수에 대한 원수를 갚아 주세요 주님이 말씀하기를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갚아 주지 않겠느냐고 말씀했습니다. 마음에 한이 설인 그런 마음이 있어야, 그래야 목숨을 바쳐서 뜨거운 기도를 하고 부르짖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간절하고 뜨거워야지 지나가는 바람처럼 한번 휙하고 마는 그런 기도가 아닙니다. 꿈과 환상을 가지고 불타는 원한으로 절절한 소원으로 뜨거운 기도로 부르짖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러분 부르짖는 기도라는 것이 원한이 있지 않고는 부르짖지 않습니다. 아! 여의도순복음교회 부르짖고 시끄러워 못가겠다. 기도는 조용히 하는 것이다. 그것은 절박한 마음이 없을 때 조용히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절박하고 원한이 서린 사람이 어찌 부르짖지 않겠습니까? 부르짖으라고 말했습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구하고 찾고 부르짖는 것이 여러분 얼마나 간절한 것입니까? 이러므로 뜨거운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너희가 차던지 더웁든지 하라 미지근하면 입에서 토해 버리겠다고 말했습니다. 뜨겁게 주님을 간절히 찾고 기도하는 그러한 일이 있어야 우리가 마귀를 물리치고 예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셋째로, 단호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타협하는 믿음. 흔들흔들한 믿음을 가지면 안됩니다. 성경에는 의심을 하면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물결 같으니 이러한 사람은 쉽게 구하여 얻을 줄로 생각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마음의 선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약하거나 적은 자들은 주님께서 꾸짖었습니다. 왜? 믿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믿음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꾸짖었지 믿을 힘이 없는 사람을 보고 왜? 믿음이 적으냐? 꾸짖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을 주셨기 때문에 믿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마음의 선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광풍을 잠잠케 하실 때에 주님께서 제자들을 보고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꾸짖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꾸짖을 필요가 없지요. 믿음이 적은 자라는 것은 믿는 것을 택하지 않고 의심의 길을 택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물에 빠진 베드로에게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의심 안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믿음을 택하지 않고 의심을 택했기 때문에 물에 빠진 상태로 꾸중을 들었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 여자는 믿음을 택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믿음은 선택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굉장히 많고 나는 믿음이 적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 사람은 믿음을 택했고 나는 불신앙을 택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믿음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선택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적은 믿음을 가지면 꾸중을 듣고 큰 믿음을 가지면 칭찬을 받는 것은, 믿음이란 여러분의 선택에 좌우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단호한 믿음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이 100세가 되었을 때 그는 믿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능히 의심할 길이 많지만 그는 의심의 길을 버리고 믿음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로마서 4장 18절로 22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이 말씀에 보면 아브라함은 안 믿을 수 있는 조건이 많았습니다. 의심할 수 있는 조건이 허다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의심이나 불신앙을 택하지 아니하고 믿음을 택한 것입니다. 믿기로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나는 믿음의 길을 걸어간다 그렇게 택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 21절 22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에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이란 말은 선택 아닙니까? 내가 믿음도 오고 의심도 오는데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기로 결심하면 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 대해서 잘못 생각했습니다. 나는 믿음이 약해서 의심을 합니다. 나는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말은 거짓말입니다. 그는 의심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의심을 선택하고 믿음을 버리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안 믿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환경이 어렵고 미혹이 많고 시련이 많아도 마음에 믿기로 결심하면 믿을 수가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믿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감사하고 찬미하고 나가면 이러한 사람이 참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룰 줄 믿고 감사하고 아무리 역경이 다가오고 아무리 어려움이 다가와도 그것을 오히려 비웃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미하는 그러한 믿음을 가져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감각이나 환경적으로 역풍이 불어닥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물위로 걸어갈 때에 예수님만 계신 것이 아니라 바람도 불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데 왜 시련이 다가옵니까? 왜 예수 믿는데 고난이 다가옵니까? 왜 예수 믿는데 역풍이 다가옵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계셔도 환경에 다가올 시험과 환난은 똑같이 휘몰아쳐 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만 보고 나갔으면 파도가 아무리 높이 치고 바람이 아무리 불고 물보라가 아무리 쳐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는 그를 극복하고 예수님께로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만 바라보다가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고 두려워해서 물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죄도 있고 병도 있고 가난도 있고 슬픔도 있고 죽음도 있고 역경도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짱이 없는 사람은 그런 것을 바라보고 그만 벌벌벌벌 떨고 예수님을 포기해 버립니다. 배짱 없는 사람은 신앙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뱃속에 신앙을 가지고 배짱 있고 강하고 담대하게 믿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환경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묵상하여 용기를 가져야 됩니다. 나는 항상 다윗을 생각하면 감동합니다. 그는 초립동 어린아이였지만 대장군 골리앗을 바라보고 나갈 때에 그가 말하기를 “너는 칼과 창과 단창을 의지해 나아오거니와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를 의지해 나간다”고 말했습니다. 이것 대단합니다. 장신인 그 골리앗 장군 앞에 조그마한 초립동 다윗이 그 말하는 것을 보십시요. 칼과 창과 단창을 의지해 나아가느냐 나는 이스라엘의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해 나가노라 그 배짱이 얼마나 큽니까? 얼마나 강하고 담대합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목회해 오면서 우리 성도들에게 많은 원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심방해 주었는데 왜 우리 집에 이런 시련이 다가옵니까? 목사님이 기도해 주었는데 왜 더 아파집니까? 목사님이 축복해 주었는데 왜 어려운 일이 다가옵니까? 어려운 일은 다가오게 되어 있습니다. 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인데 마귀가 와서 훼방을 안 한다면 마귀가 없든지 죽었든지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살아 있고 마귀가 있는 이상은 결사적으로 훼방하는 것입니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살아 있는데 자기 나라를 빼앗기고 자기가 박살 나는데 가만히 있을 마귀가 어디에 있습니까? 반드시 축복을 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기미가 보이면 더 달려드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데 달려들 필요가 있어요?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일어나겠다고 생각하면 미리 와서 무지무지하게 물고 찢고 달려들고 야단법석을 합니다. 마귀가 한 발자국 먼저 와요. 하나님이 축복하시기 전에 낙심 시켜서 가라앉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우리가 일단 믿었으면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환경보다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강하고 담대해서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이란 강하고 담대하게 배짱이 없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은 없고 앞길은 칠흑같이 어두워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하고 웃고 나아가야지 조그만 어려움이 있어도 아이고 하나님이 나를 버렸구나 하나님이 축복해 준다고 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겨났을까? 아이고 이제 나는 망했네, 이젠 절단이네. 그러면 마귀는 좋다고 춤을 추고 자! 내가 하는 일이 먹혀 들어간다. 쉽게 먹혀 들어간다. 하나님이 역사를 해도 저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완전히 부정적으로 돌아섰으니 성공이다. 마귀는 좋아 뛰고 하나님은 슬퍼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지 않습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라고 하나님이 약속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사건건이 역경을 당하면 원망합니다. 역경은 다가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저주받은 땅에서 역경이 왜 안 다가옵니까? 다가오게 되어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그는 이길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역경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예 믿음의 모험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모험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역경이 올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그런 마음의 강하고 담대함이 있어야 우리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작은 승리에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다 점령하지 아니하고 들어가서 그만 타협을 했습니다. 여호수아 17장 13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민수기 33장 55절로 56절에 보면 “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남겨 둔 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우리가 주님을 믿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순식간에 십자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씩 조금씩 우리가 승리를 해 나아가고 먹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안수 기도 받았는데 왜 안 나았습니까? 안수를 받고 나았는데 30% 나았다. 그들이 30%만 나았다면 더 기도해서 50% 나아야 되고 70% 나아야 되고 90% 나아야 되고 100% 나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한꺼번에 물러가지 않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할 수 없어 밀려 나가는 그런 식으로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의 승리가 한꺼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낙심하면 안됩니다. 조금만 승리를 했다고 만족하고 이제는 되었다고 앉아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계속 밀어 제껴야 되는 것입니다. 계속 기도하고 계속 부르짖어 완전히 마귀가 뿌리가 뽑히고 도망을 칠 때까지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예수 믿었다고 해서 만족하지 말고 세상에 속한 것들도 따 쫓아내야 합니다. 술 먹는 것도 다 쫓아 내야하고, 담배 피웠던 것도 다 쫓아내야 합니다. 도박을 하는 것도 다 쫓아내어야 합니다. 세상의 중요한 것 다 쫓아내야 합니다. 그냥 믿고서 겨우 구원받았다는 것에 만족하면 안됩니다. 그 이외에 있는 땅을 다 점령해야 합니다. 다 쫓아내야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 이젠 되었다. 아니요! 구원받았으면 몸에 있는 병도 다 쫓아내야지요. 폐병도 심장병도 관절병도 당뇨병도 다 쫓아내야지요. 강인해야 합니다. 조그마한 승리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예수 믿고 겨우 살았다. 아니요! 내가 축복 받아서 남에게 축복을 해 줘야지요. 남도 도와주어야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열심히 일하고 더 축복을 받아서 하나님께 은총을 받도록 계속 가난을 밀고 내쫓아야 합니다. 우리가 점점 나아가서 100% 승리할 때까지 만족하지 말고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약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살아간 사람들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산 사람들로 구분됩니다. 다 같은 선민인데 광야에서 슬피 울다 죽은 선민도 있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 젖과 꿀을 빨면서 살다가 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차별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들 스스로가 그 길을 택한 것입니다. 자격을 못 얻은 사람은 광야에 있고 자격을 습득한 사람은 들어가서 점령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아담 광야에서 살다가 가는 사람들도 있고 예수님의 가나안에 들어가 살다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구분은 우리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격을 가져야 합니다.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꿈을 가져야 됩니다. 뜨거운 마음의 소원으로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됩니다. 단호한 믿음의 결단을 가져야 되고 그리고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다가오는 원수의 모든 역경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그마한 승리에 만족하지 말고 끝까지 몰아 붙여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다 점령할 때까지 밀고 나가는 그러한 자격을 구비하면 여러분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격을 구비하지 아니하면 겨우 구원받은 것에만 만족하고 한 발은 가나안에 넣고 한 발은 아담 광야에 두고 고통과 슬픔 가운데서 많은 은혜와 특권을 마귀에게 빼앗긴 채 살다가 천국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 주님이 원하시는 그대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그런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날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한 발은 그리스도의 땅에 들여놓고 다른 발은 아담 광야에 두고 많은 슬픔과 많은 고통을 당하다가 천국을 갑니다.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특권을 누리지 못합니다. 주님이 안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셨는데 우리가 점령하지 못합니다. 세례 요한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침노해서 빼앗아야지 가만히 앉아 있어서 되는 것은 아니오니 우리 아버지여 자격을 얻어서 모두 다 기도와 믿음의 용사가 되어 침노하여 빼앗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귀의 일을 멸하고 승리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