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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13일 제목: 목자와 양 성구: 요 10:11-16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목자와 양”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이 지구상에 가장 많은 목초지를 가진 나라는 아마 뉴질랜드일 것입니다. 그 나라는 거의 평지를 목초지로 개간해 놓았으며 양의 수가 인구 수보다 더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나라에는 목자가 양을 돌보는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양을 그냥 산과 들에 방목해 놓았습니다. 그 이유는 뉴질랜드에는 사나운 짐승 즉 사자나 호랑이나 이리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곳은 양들의 낙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땅은 거의 불모지이고 물도 구하기가 심히 힘이 듭니다. 거기에다 사나운 사자나 이리가 있어 자칫하면 양들의 생명을 늑탈합니다. 지형도 위험한 곳이 많아 참으로 음침한 골짜기 같습니다. 이곳에서는 목자 없이 양 홀로 생존하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이스라엘 광야는 마치 우리들이 사는 세상과 흡사합니다. 아담이 만들어 놓은 광야에서 사는 인생은 끊임없이 삶을 도적질하는 환경과 원수들에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생명의 꼴과 물을 구하기가 힘들고 삶의 길에 험준한 골짜기가 널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참으로 목자가 필요합니다. 목자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기막히게 고통스럽고 힘들고 위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우리 주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다윗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목자와 양의 관계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목자가 되신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시는 일에 관해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방황하는 주님의 양을 찾아 교회 우리로 모으는 일을 하십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사람들은 멀리 멀리 세상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아담 광야에서 방황하며 사나운 짐승에게 찢기고 험산준령에서 허덕이며 고통을 하다가 멸망에 처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신 것은 주의 양들을 먼저 찾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목자이기 때문에 당신이 기를 양을 찾습니다. 어떻게 양을 찾나요. 주님은 전도를 통해서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셨습니다. 전도하는 것이 미련해 보입니다. 우리가 이웃 사람을 붙잡고 전도해서 그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도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마다 저 사람이 내 몇 마디의 말에 전도를 듣고 회심을 하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런 마음에 의심이 늘 생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도의 어리석음을 듣고 사람들은 회심하고 예수께로 돌아옵니다. 왜냐, 우리의 목자는 전도를 통해서 자기 양을 구원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의 입술을 통해서 나오는 전도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광야에서 허덕이는 양을 찾아서 우리로 데리고 오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주님의 양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광야에 허덕이는 사람도 전도를 들을 때 ‘우리 주님의 음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양은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주님의 양이 아니면 주님의 음성을 듣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절로 3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우리에게 전도를 통해서 다가오실 때에 예수님의 양이면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마음에 감동을 받고 주를 따릅니다. 여러분들은 다 예수님의 양이시기 때문에 전도를 받았을 때에 거기에 감동을 느낍니다. 주의 음성을 따라 나와서 양의 우리인 교회까지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자 되신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당신의 양을 찾아 교회라는 우리로 불러 모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곳에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저가 흙으로써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어서 생령이 되게 했습니다만 오늘날 우리들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주님께서 새롭게 지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옛사람을 십자가에 다 데리고 올라가서 못 박아 몸 찢고 피를 흘려 다 장사지내버리고 부활을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야에 허덕이는 버림받은 그런 양이 아니라 우리에 들어와서 주님께로부터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를 받은 존재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의식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전혀 옛날과 다른 존재로써 주님이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용서 받고 의로운 자로 주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 속에 의의 인을 쳐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귀의 세상에서 우리를 건져내셔서 우리 속에 성령을 넣어 주시고 천국을 넣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들을 마음의 슬픔과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질병에서 치료함 받는 은총을 베풀어주시고, 저주에서 해방되고 가난과 절망에서 건짐을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되게 만들어 주시고,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얻은 이런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목자 예수님을 따라와서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옛사람 속에 살면 안됩니다. 우리는 새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자는 우리를 말씀과 생명수 성령으로 기르시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셔서 우리가 말씀의 꼴을 늘 먹고 기도를 통해서 생수를 마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가 자랍니다. 말씀이 없이도 자라지 못하고 성령의 생수를 마시지 않고는 자라지 못합니다. 말씀은 읽고 듣고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우리가 생수를 마셔들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로 38절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자라게 하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날로 날로 성장해서 장차 천국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모든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자격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애썼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듣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성령으로 생수를 마시고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날로 날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목자는 우리에게 시련과 고난을 통하여 세속의 껍질을 벗기고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에게 축복을 주심과 동시에 시련의 골짜기를 지나고 환난의 터널을 지나게 하는 것입니다.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옛사람의 껍질을 벗는 것입니다. 바나나 껍질을 벗기듯이 주님은 시련을 통하여 우리의 옛사람을 벗겨내고 더 깨어지고 더 순종하고 더 착하고 더 믿는 사람으로 변화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이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십시오. 그 시련을 통하여 여러분의 옛사람의 껍질이 벗겨지는 역사가 나타나고 육의 사람이 떠나가고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 받기 때문인 것입니다. 전혀 시련과 환난을 당하지 않는 신자는 변화 받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련을 통하여서 여러분은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 뒤를 돌아보십시오. 내가 크고 작은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나는 옛사람이 아니구나 그를 통해서 옛사람을 다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어서 나왔구나 그것을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의 선한 목자로서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마다 우리의 옛사람을 벗기고 새사람으로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목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육신의 세계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흐르는 물과 같이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기게 정을 두고 사는 사람은 나중에 세상과 함께 영원히 버림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양들을 불러서 교회라는 우리에 데리고 와서 주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자라게 한 이유는 종국적으로 영원한 천국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우리가 혼인 잔치를 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온 우주를 상속으로 받고 하나님의 권속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함께 살아질 존재가 아닙니다. 성경에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영이시라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분은 영입니다. 육이 아닙니다. 육만 되었으면 절대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인도의 원숭이가 그렇게 많지만 원숭이가 하나님을 찾고 종교를 가진 적은 없습니다. 절간을 세우거나 교회당을 세운 적은 없습니다. 왜냐 영이 없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으로는 지혜도 있고 꾀도 있지만 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저 아프리카의 키가 작은 피그미 족속으로부터 시작해서 눈집에 사는 에스키모인까지 사람이 있는 곳에는 전부 종교가 있습니다. 왜냐 그 속에 영이 있기 때문에 영은 갈급하게 영원자를 찾고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서 우상과 사신을 찾을 수 있지만 그 영은 갈급하게 영원한 것을 찾고 있습니다. 70년 전에는 공산주의가 무신론으로써 교육을 하고 그렇게 종교를 핍박을 했지만 70년 세월이 지나고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보니 소련에는 놀랍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불타게 일어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 사람은 그 속에 영이 있고 영은 영원을 사모하고 절대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주님은 우리 속사람을 건지셔서 영원한 천국의 영광에 함께 들어가게 하는 좋은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양들인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여러분과 나는 양입니다. 양이 이제 우리 목자이신 예수님을 찾아 따라 나왔으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목자의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말하는 것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목자를 신뢰하고 따라가면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푸른 초장에 뉘어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쉴 만한 물가에 가서 생명수를 마시게 하시고, 우리의 생명을 소생시켜 주시고 이 허망하고 죄악이 꽉 들어찬 세상에 정의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손잡아 이끌어 주실 것을 우리는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목자를 신뢰해서 따라가야 됩니다. 목자를 믿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 목자가 우리를 돌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일단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모시고 믿었으면 그 목자가 내 인생을 책임질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목자에게 맡겨 버리고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나는 목자의 것이요 목자를 따라갑니다. 우리의 목자는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좋은 목자입니다. 나를 부족함이 없도록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모든 일들은 주님이 돌보아 주십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돌보지 않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어는 목자가 양을 안 돌보는 목자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지금도 돌보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모든 삶의 필요를 충족해 주시고 우리에게 영적인 생명을 주시고 그리고 정의로운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시편 37편 5절로 6절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거룩한 성령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오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는 하나님 품에 있어 한 권속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목자를 따라서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목자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환난을 당했을 때에 절대로 버림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앙 생활을 하는 동안에 환난을 당하면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 나는 버림받았다고 당황을 하는데 목자는 절대로 양이 환난을 당할 때도 양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시편 23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다 떠나버렸을지라도 예수님은 주님의 권세와 능력과 인도하는 능력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를 이끌어 내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22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러므로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에 약해지면 안됩니다. 이 모든 일에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바울 선생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 지내시고 부활하시기까지 하신 예수님은 어떠한 환난과 고통도 안 통하신 것이 없고 어떠한 환난과 고통도 주님이 정복하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히 우리가 이길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홍수 때에 홍수 위에 좌정해서 우리에게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적고 큰 많은 시련과 환난의 홍수가 다가옵니다. 여러분 지난 여름 동안에 홍수가 다가와서 지나가니 한 동네가, 한 도시가 다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홍수란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에 다가오는 여러가지 역경과 환난의 홍수 위에 주님은 앉아서 홍수를 수레 삼고 우리를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환난과 고통의 홍수가 찾아올 때에 홍수만 바라보고 원망하고 탄식하고 도망치지 말고 그 홍수를 수레 삼고 찾아오시는 주님 앞에 꿇어 엎드려 깨어지고 회개하고 주님을 구주로 모시고 주님께 의지하면 주가 홍수의 수레에서 내리시고 홍수는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주님이 더 탈 필요가 없는데 홍수가 왜 옵니까? 홍수가 우리에게 오는 것은 우리를 깨뜨리고 우리에게 은총을 주기 위해서 주님이 홍수를 타고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단코 우리를 파멸시킬 수 없는 것은 환난이란 그 수레를 타고 주님이 오시기 때문에 환난을 당했을 때에 우리가 회개하고 깨어지고 두 손들고 나오면 주님은 오히려 그 환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더 큰 유익과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목자를 따라 갈 때에 이 세상에서 원수들에게 공격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많은 원수들이 우리의 살을 먹으러 오고 우리를 사로잡으러 오고 우리를 죽이러 온 것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처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가 목자가 있는 이상 원수들이 다가올 때에 좌왕우왕 하지 말고 우리는 전적으로 목자를 향해서 따라가야 될 것입니다. 시편 27편 1절로 3절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 하리로다” 시편 23편 5절에 “주께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서 싸워주시는 목자가 있습니다. 사자나 사나운 이리가 오더라도 우리가 사자와 이리와 싸울 수 없습니다. 목자가 싸워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싸우셔서 우리를 건져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원수가 오더라도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찬미하고 주께 의지하고 원수를 두려워하지 말 것은 원수가 오면 그 기회를 이용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진수성찬을 차리시사 우리를 잘 먹여서 원수보다 성하게 만들어 주시고 기름을 발라 잔이 넘치는 삶을 얻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국적으로 우리가 늘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갈 곳은 아버지의 집입니다. 이 땅에 우리가 영원히 있을 곳이 없습니다. 우리는 행인과 나그네와 같이 지나갑니다. 이 곳에 영원히 안주하겠다고 주저앉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금도 은도 부귀도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이 땅에 우리를 영원히 살게 만들어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신속히 날아갑니다. 종국적으로 인생은 모두 다 이 땅에서 떠나게 되고 그 건너편 세상에는 천국 아니면 지옥, 영광 아니면 영원한 수치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요한계시록 7장 17절에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임이러라” 우리가 아버지 집에 들어가면 그곳에서도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고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친히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네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울 선생도 친히 이 땅에서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안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목자는 그곳으로 이끌어 가기 때문에 우리의 목표도 언제나 하늘 아버지의 집을 우리의 삶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곳에서 절대로 다른 방향으로 돌이키면 안됩니다. 우리의 종국적인 삶의 목표는 아버지의 집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목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 때에 목자에 대한 온전한 헌신을 하고 살아야 됩니다. 목자가 양을 치는 것은 나중에 양의 털을 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과 같이 살 때에 여러분 주님이 우리에게 먹이고 입히고 축복을 해 주십니다. 이것이 양의 털이요 부귀 영화 공명이 다 양털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서 얻은 모든 부귀 영화 공명을 주님의 제단에 올려놓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아무 것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 부귀도 영화도 공명도 모든 것이 다 주님께로부터 왔음으로 모두 다 주님의 제단에 얹어 놓고 언제나 주님이 필요하시다면 주님께 내어놓는 헌신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했으며 고린도후서 9장 10절에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라고 하셨으니 마태복음 22장 37절에 주께서 말씀하신대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다해서 주의 제단에 얹어 놓고 ‘주님이 필요하다면 언제나 양털을 깎으십시요 언제나 주님이 내 것은 마음대로 사용하십시요’라고 하는 이와 같은 헌신의 삶을 가지고 우리 목자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은 육체의 생명도 제물이나 식물로 바칩니다. 필요하면 자기의 육체를 제단에 재물로 바치고 또 목자의 식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 삶을 거룩한 산 제물로 우리 아버지께 바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육체 속에 거하는 생명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 주의 종으로써 우리가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양이 해야 될 일입니다. 양은 우리 목자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믿고 순종하고 따르고 우리 목자에게 우리 모든 삶을 헌신하고 내어 맡기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목자와 양의 관계는 절대로 상호의존 관계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과 항상 함께 있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받지 않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우리들에게 의존하여 하늘 나라를 세우시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들은 영원 무궁토록 항상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요한복음 10장 14절로 16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의 육의 선민이라면 우리는 영의 선민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때 이스라엘에 들지 않은, 그 우리에 있지 않은 양, 이방의 양들도 주님이 다 인도해 내어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방의 양들로서 주의 인도를 받아 한 우리인 교회에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들은 목자 없는 양들이 아닙니다. 목자 없이 저 산과 들에 방황하는 사나운 들짐승이 아닙니다. 24시간 목자가 우리와 같이 계셔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귀한 어린 양입니다. 우리 목자는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우리 주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주님이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며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목자이십니다. 우리가 그를 바라보고 그를 믿고 그를 의지해 나아가면 그가 우리를 이끌어서 우리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양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 기도 -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버림받은 양이 아니요 목자 없는 들짐승도 아니요 주님께서 우리를 양으로 찾아 주시고 주님이 우리를 매일매일 돌보시고 길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님이시여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서 따라가는 양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라갈 때에 하나님의 그 크신 능력과 권세가 함께 하여 주셔서 항상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되 풍성히 주시며 모든 원수와 도적을 물리쳐 주시고 승리의 삶을 살다가 천국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전능하시고 선하신 우리 목자장 하나님이시여 예수 이름으로 간구하오니 오늘 목자장 예수 그리스도의 손길을 통하여 마음의 병, 육체의 병을 다 고쳐 주시옵소서 주님이 어루만지면 어떠한 병도 남아있을 수 없습니다. 악한 병마를 도말시켜 버리시고 몸에 박힌 가시와 엉겅퀴를 뽑아내어 주시옵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여 모든 어린양들을 고쳐주시옵소서. 마음의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슬픔을 제하시고 마음에 깊은 평안과 기쁨을 주옵소서. 육체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제하시고 치료와 생기와 생명으로 채워주옵소서 하나님이여 주님의 구원하심이 모든 사람 속에 충만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야웨 하니님이여 염려 근심 가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온 사람들 많습니다. 현재 한국이 통하고 있는 어려운 고난의 터널을 통해서 직장을 잃고 혹은 직업을 잃고 홈레스가 되고 고통 당하는 사람 많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여 오늘 이시간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목자께서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시옵시고 축복하여 주시옵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시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마실 것, 입을 것, 있을 곳을 허락하여 주시옵시고 부족함이 없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 부족함이 없겠다고 말씀하신대로 우리 성도들이 환난을 통할 동안에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옵시고, 은혜와 사랑의 손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주의 백성, 주의 양들인 성도들에게 성령으로 기름 부어 주시옵시고, 마음에 확신과 평안을 갖게 도와 주시옵소서. 마음에 의심이나 불안을 갖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의 불로, 불로 채워 주시옵소서. 은혜로 물댄 동산같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은총을 감사하옵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