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월 3일
제목: 우리에게 주어진 새해
성구: 히 11:1-6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새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가슴 설레이는 기대와 흥분 속에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아마도 금년에는 좋은 일이 있겠지. 좀 더 성공적이고 행복하며 기쁜 새해가 될 것이야! 문제는 사라지고 고통은 없어지겠지? 하나님의 축복이 올해는 꼭 다가올거야. 이와 같은 소원은 그렇게 될 수도 있고 그렇게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새해를 복되게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다가올 것이고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준비가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좋은 기회가 다가와도 그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가오는 새해에 우리에게 다가올 축복의 기회를 부여잡기 위해서 단단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준비를 하고 새해를 맞이해야 될까요?

첫째로, 분명한 꿈이 마음속에 있어야만 성공적으로 새해를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꿈이 있어야 흥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어떠한 꿈을 가질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가올 축복에 대한 분명한 꿈을 갖기를 명령하셨습니다.
창세기 13장 14절로 15절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여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분명히 바라보고 마음속에 자기가 소유할 땅에 대한 꿈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꿈을 가지면 보는 그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소유하기 전에 먼저 보라는 것입니다. 네 것이 되기 전에 먼저 확실하게 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점령할 땅의 모습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가슴속에 꿈을 새겨 주신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1절로 6절에 보면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분명한 비전을 주셨습니다.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너희 땅이다. 그러므로 강하고 담대히 하여 이 땅을 점령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에 아브라함도 분명한 비전을 가졌고 여호수아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분명히 가지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나가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에게 준 땅은 어디에 있습니까? 1999년 새해에 우리가 어떠한 꿈을 가지고 나아가며 무엇을 우리가 점령해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십자가의 대속으로 얻은 축복의 땅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를 흘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값 주고 사 놓은 땅을 우리는 분명히 바라보고 점령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에게 용서와 의의 땅을 마련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생의 죄를 용서받고 의롭다함을 얻은 그 땅을 바라보고 그 꿈을 가지고 그를 점령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또한 우리에게 세상과 마귀를 쫓아내고 천국과 성령을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천국을 점령하고 성령을 모시는 이 비전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점령해야 할 땅입니다. 천국은 우리 것입니다.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라 천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과 성령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입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슬픔이 사라지고 육신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을 치료해 주시는 기쁨과 치료의 땅을 점령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저가 실로 우리의 슬픔을 지고 우리의 연약을 담당하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그는 값을 주고 기쁨의 땅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었으며 치료와 건강의 땅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점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준 꿈입니다.
주님은 또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저주를 짊어지시고 우리 대신 저주를 받아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며 우리의 가난을 걸머지고 일생을 사심으로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해서 주님은 희생을 당하셨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주님이 허락한 점령할 땅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의 땅이요 형통과 부요의 땅을 점령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땅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바라보고 여호수아처럼 바라보며 들어가 점령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우리에게 약속의 땅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마음속에 간직해야 합니다. 이것을 들어가서 점령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 땅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것은 주를 믿지 않은 사람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이 아름다운 땅을 십자가를 통해서 예비해 놓았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깊이 마음속에 바라보고 이것을 마음속에 소유하고 기도와 믿음으로 우리는 주님이 주신 땅을 점령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이와 같은 분명한 꿈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꿈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안됩니다. 꿈이 없으면 아무 것도 점령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꿈을 가지고 믿고 기도하고 찬양하여 나아가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가 빼앗느니라 천국에 대한 분명한 꿈을 가지고 우리가 믿음으로 침노에 들어가서 주님께서 주신 십자가 밑에 젖과 꿀이 흐르는 그리스도의 가나안 땅을 다 점령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꿈을 마음속에 아로새기고 밤낮으로 묵상하고 밤낮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마음에 소유하고 믿고 부르짖고 나아가십시요.

둘째로, 새해에는 성령님의 손을 잡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지 않았더라면 광야를 성공적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광야는 태양 때문에 뜨겁고 전부 혼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구름기둥이 막아 주었습니다. 밤에는 광야는 춥습니다. 바위들이 추워서 꽝꽝 소리를 내며 터집니다. 그러한 곳에 성령의 불기둥이 그들을 훈훈하게 비추며 보호해 주었습니다. 우리들이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갈 동안에 우리의 힘으로 이 세상의 뜨거운 태양 같은 시련과 살을 애는 듯 추운 밤과 같은 고통을 이겨 나가기 위해서는 성령의 품어 주심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품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7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모실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다른 보혜사를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우리 곁에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로 하여금 이 광야 같은 세상에 내 던져 놓지 않으셨습니다. 삼위 되시는 하나님 성령께서 우리를 돕기 위해서 우리와 같이 와 계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돕기 위해서 시시각각으로 우리와 함께 행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11장 2절에 보면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임한 신은 지혜의 신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여러분에게 지혜를 주셔서 문제가 다가올 때에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성령께 간구하면 성령은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지혜의 신입니다.
총명의 신이십니다. 우리에게 아둔한 마음을 제하고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편과 환경을 깨닫고 현재와 미래를 깨달아 알아서 총명스럽게 행할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모략의 신이십니다. 우리에게 카운셀링을 주십니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깨달음을 주시고 우리에게 좋은 길을 허락해 주시는 신이신 것입니다.
성령은 재능의 신이십니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일을 시킬 뿐 아니라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아버지로서의 능력 어머니로서의 능력 부모로서의 능력 자녀로서의 능력 사회인으로서의 살아 갈 수 있는 능력과 힘을 성령은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지식의 영입니다. 우리에게 지식을 주셔서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 알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성령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항상 두려워함으로 섬기고 사랑함으로 따라 갈 수 있는 마음의 큰 감격과 변화를 주십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입니다. 이 세속에 살면서 썩어질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기름이 물위에 뜨는 것처럼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에서 분리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를 돕기 위해서 와 계신 위대한 가정교사인 보혜사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며 항상 성령께 간구하는 삶을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께서만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이 모든 길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의 문자가 아닙니다. 하나의 신학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성령은 지금도 이 자리에 와서 계시고 여러분과 함께 계시고 여러분 속에 계십니다. 성령은 잠잠하게 계시나 여러분께서 성령님을 인정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할 때에 성령은 혹은 꿈으로 혹은 환상으로 혹은 음성으로 혹은 묵시로 혹은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으로 혹은 마음의 넘치는 아이디어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인생을 혼자 살지 말고 위대한 가정교사인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우리가 살아갈 때에 우리는 이 새해를 성공적으로 살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새해를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삶의 순서를 혼돈치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인생을 살아가는데 먼저 할 것, 나중에 할 것이 분명히 있지 않습니까? 요사이 가정 교육을 잘 받은 자녀들은 식탁에 앉으면 부모님이 먼저 수저를 들어야 그 다음에 듭니다. 그러나 교육을 잘못 받은 자녀들은 부모가 잡수든 안 잡수든 지가 먼저 수저를 들고 먹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약한 자녀들인 것입니다. 벌써 이 세상에 사는 것도 먼저 할 것이 있고 나중에 할 것이 있습니다. 좋은 선물이 들어와도 먼저 부모님이 끌러보고 그 다음 자녀들이 끌러 보는 것입니다. 먼저 할 것이 있고 나중에 할 것이 있습니다. 질서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오늘날 학원에서 선생을 112에 고발하고 선생을 패고 그러고야 무슨 교육이 됩니까? 먼저 선생님을 공경하는 것을 배워야 그 다음 학문도 배우지, 선생님을 공경하지 아니하면 학문을 어떻게 배웁니까? 이 세상에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면 인생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마음속에 항상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늘 읽고 기도하며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먼저 하나님 말씀 읽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찾으라는 것입니다. 지상의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이니 성수주일하고 교회에 맡은바 직분과 책임을 열심히 다하여 지상 하늘나라인 교회를 잘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천국에 대한 강한 기대를 가지고 다가올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는 마음을 늘 먼저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늘나라가 언제나 제일 주제가 되어있고 우리가 먼저 그 하늘나라를 사모하고 찾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그 의를 구하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의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가 되심으로 예수님을 간절히 사랑하고 예수님을 항상 높이고 예수님을 항상 전도하고 사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늘 우리가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나를 먼저 구하고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면 그 이후의 문제는 우리 주님께서 책임져 주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마라 이것은 다 이방인들이 염려하는 것이요 너희 천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그 다음에는 주님께 우리의 필요한 것을 간구하고 기도할 때에 우리 주님은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응답하시고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채워주시고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다 영혼이 잘됨 같이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영혼이 잘 되지 않아요. 영혼이 잘됨 같이 그 다음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영혼을 망쳐 놓고 난 다음에야 범사가 잘 되면 뭐하고 강건하면 뭐합니까? 지옥의 자식이 되고 말 것이니. 예수님의 지극한 관심은 영원히 사는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원합니다. 이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행하면 그 이외에는 주님께서 얼마든지 범사 잘 되며 강건한 축복과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넷째로, 이제 새해를 우리가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삶을 항상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둡고 부정적인 것을 바라보는 자는 그 세력에 잡히게 됩니다. 매스컴은 언제나 밝은 것보다도 어두운 것을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밝은 긍정적인 기대보다는 늘 이마살을 찌푸리고 가슴을 치고 탄식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가 늘 신문이나 라디오나 TV를 보면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이 많이 나옵니다. 이 사실이 개혁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 인류가 생겨난 이후로 지금까지 나쁜 소식은 항상 있었습니다. 슬픈 소식도 항상 있었고 부정적인 것도 항상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정적인 것을 조장함으로 우리 생활이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어둡고 부정적인 것을 늘 바라보고 그것을 늘 탄식하면 그 세력에 잡힙니다.
욥기 3장 25절에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라고 말한 것입니다. 욥은 항상 자기가 폐가망신할 것을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결국 그 일을 당했을 때에 그는 고백하기를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다고 말한 것입니다.
잠언서 10장 24절에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부정적으로 살지 말고 늘 마음속에 긍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남에 대해서 늘 나쁜 점을 들추어내고 헐뜯지 말고 남에 대해서 좋은 점을 바라보고 그것을 칭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삶이 망할 것이다 안될 것이다. 절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 가운데 불꽃 같이 희망을 주는 것을 우리가 찾아서 그를 돋구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1998년 한해 동안 IMF라는 극심한 풍랑을 겪어 왔습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심한 진통을 앓았습니다. 수많은 부정적인 세력이 우리 한국 사회를 부여잡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우리가 희망을 불꽃을 바라보고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를 쓰고 힘을 쓰고 노력해 왔기 때문에 오늘 그 IMF를 우리가 피해 나갈 수 있는 길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바라봄의 법칙을 가지고 긍정적인 것을 바라보고 희망적인 말을 하고 희망적인 노래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항상 소망 중에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보면 긍정적인 세력에 잡혀 그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말했습니다. 능치 못할 일이 없으니까 우리가 부정적인 될 수가 없지요 긍정적이 되지요.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했었습니다. 여러분 가나안의 열두 정탐꾼이 들어가서 정탐을 하고 왔지만 열명과 그 말을 듣는 백성들은 다 들어가지 못하고 여호수아와 갈렙만 들어 갔습니다. 그들은 똑같이 가데스바네아에서 출발하여 똑같이 40주 40야를 가나안 땅을 관찰했지만 10명은 부정적인 관찰을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인 관찰을 했습니다. 부정적인 관찰을 한 사람은 그들이 와서 백성들에게 부정적인 보고를 하니까 백성들이 그 말을 듣고 전부 마음이 물 흐르듯이 녹아져서 땅을 치고 통곡하며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우리 장관을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자리에 나타나셨습니다. 10명을 불러내어 그 자리에서 죽이고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로 회진시켜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며 다 생명이 멸절되기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민수기 14장 7절로 9절에 보면 여호수아와 갈렙이 본 그 땅의 보고를 한번 들어 보세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얼마나 긍정적인 말입니까? 그러나 10정탐꾼은 말하기를 “아니라 우리가 탐지한 땅은 주민을 삼키는 땅이라 그 곳에 산은 높고 골을 깊고 성벽은 높고 그 곳에 사는 사람은 아낙 자손의 대장부라 우리가 보기에도 우리 스스로 메뚜기 같더라 우리가 그 곳에 들어가서 점령하지 못한다. 우리의 처자가 포로로 잡힐 것이라” 완전히 그들은 비극적으로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 결과 버림을 당했습니다. 왜 똑같은 곳에서 출발해서 똑같은 땅을 40일 동안 정탐하고 왔는데 10사람은 부정적이고 2사람은 긍정적이었습니까? 우리의 마음의 자세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믿으면 우리 마음속에 부정적인 힘이 들어올 기회가 없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성공도 실패도 기쁨도 슬픔도 건강도 질병도 성공도 낭패도 합동하여 종국에 하나님께서는 선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절대적으로 긍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환난이나 공고나 적신이나 위근이냐 기억이나 칼이라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사도 바울 선생은 말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인생관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없다 못한다 안된다가 아닙니다. 할 수 있다 주께서 같이 계심으로 능치 못함이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해를 바라볼 때에 억센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새해에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소용돌이치는 시대인 것입니다. 유럽이 유로화로 통일되고 경제적인 대결상태에 들어가고 온 세계에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여러움이 많습니다. 또 처처에 지진도 일어나고 기근도 일어나고 라니뇨 현상으로 기후의 거대한 변혁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가 살아 나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음지를 바라보지 말고 양지를 바라보며 할 수 없다를 바라보지 말고 할 수 있다를 바라보며 여호와를 바라보고 나아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데 우리가 왜 뒤로 물러갑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입니다.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선물로 주지 아니하시겠냐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운명이란 하나님의 손에 얹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알파요 오메가 되시고 처음이요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여시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시면 열 자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준비된 자에게만 하나님의 축복을 맡겨 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로 6절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에게 상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너희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너희에게 소망을 주는 것과 평안을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새해에는 우리 마음을 준비해서 어떤 환경에도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의지함으로 큰 축복과 승리를 가지고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새해가 우리에게 다가왔고 우리는 새해를 요리하면서 나아가야 됩니다. 우리에게 다가온 새해를 우리가 잘 요리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십자가에서 주신 오중복음과 삼중 축복의 꿈을 분명히 갖고 도와 주시옵시고, 우리를 돕기 위해서 오신 가정교사인 보혜사 성령님을 항상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며 성령의 도움을 받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성공적으로 인생을 살아 갈 수가 없사오니 내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사는데 아버지 부정적인 인생관을 저버리고 주 안에서 끝없는 희망과 긍정적인 마음의 태도를 가지고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고 먼저 할 것을 먼저 하고 나중 할 것을 나중에 하는 순서를 분명히 갖고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