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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2월 7일 제목: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성구: 눅8:49-56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두려움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정상적인 두려움과 비정상적인 두려움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두려움은 우리의 삶을 보존하는데 꼭 필요합니다. IMF 상황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두려워하여 절약하고 저축하는 것입니다. 추울 때 감기를 두려워하여 옷을 따뜻하게 입고 외출하는 것입니다. 길을 건널 때 자동차 사고를 두려워하여 좌우를 잘 살피는 것 이러한 두려움들은 필요한 두려움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존을 위해 필요한 두려움이 있는가 하면 완전히 비정상적이며 불필요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평소에 이유 없이 암이나 기타 중병에 걸리지 않을까 늘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혹은 갑자기 우환을 당하여 사업이 망하고 가정에 큰 불행이 다가오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또는 사람들에게 버림 당하고 사랑 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등등 이유 없는 공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공포는 대단히 파괴적입니다. 성경은 요한일서 4장 18절에 “두려움에는 형벌이 따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뜻은 비정상적인 두려움은 그 두려워하는 것이 실제로 다가와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두려움이란 그대로 내버려두어 방치할 수 없는 무서운 악이 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구약 성경 중에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번 살펴보십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욥의 체험입니다. 욥은 그 신앙 인격이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욥기 1장 1절에 보면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고 했습니다. 이만한 성도면 오늘날에도 최고의 신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욥은 하나님께 복을 받아 소유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욥기 1장 2절로 3절에 보면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이만한 재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머어마하게 복을 받은 부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욥에게 비극이 다가왔습니다. 삽시간에 어느 하루에 자손과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몸은 불치의 병이 들어 쫓겨난 상황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우리 욥기의 배후에 보면 마귀가 와서 하나님 앞에서 욥을 참소하고 그 결과로 욥을 처서 패가망신을 시킨 사실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왜 마귀가 욥을 감히 하나님 앞에 참소하여 욥을 패가망신 시켰을까요? 거기에는 욥의 고백이 있습니다. 욥기 3장 25절로 26절에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평강도 없고 안온도 없고 안식도 없고 고난만 임하였구나” 욥은 그렇게 하나님께 은총과 축복을 받고 살면서도 평소에 그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모르는 곳에서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유 없이 그는 두려워하고 무서워했습니다. 내가 어느 날 자손들 다 잃어버리고 내 재산 다 잃어버리고 불치의 병이 들어 쫓길 것이라는 그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습니다. 그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욥을 파멸하기 전에 먼저 그 마음속에 두려움을 심어준 것입니다. 마귀가 욥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심어 주고 그 두려움을 받아서 마음이 부정적이 되고 벌벌 떨고 있을 때에 그 욥을 마귀는 하나님 앞에 참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란 여러분 우리를 파멸케하는 형벌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데스바네아에 왔을 때에 12정탐꾼을 40주 40야 가나안 땅을 탐지하도록 보낸 사실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10정탐꾼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꽉 들어차서 오금이 오그라wu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의 눈으로 보고 두려움의 귀로 듣고 두려움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마귀의 파괴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신명기 1장 28절로 33절에 보면 “우리가 어디로 갈꼬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로 낙심케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너희 앞에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모세가 마지막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 앞에 강연한 말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마음속에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므로 10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그들은 마음이 모두 다 물을 부은 듯이 낙심하고 만 것입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화를 입었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임한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면서 다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강하고 담대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십시요. 그들이 마음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민수기 14장 9절에 보면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그 두 사람이 하는 말이 보십시요. 두려워 말라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는데 왜 두려워하느냐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가슴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넘쳐 났고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두려움의 노예가 되지 않고 두려움의 파멸에 참여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다가오는 두려움이라는 것은 우리를 도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의 손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두려움을 심어 놓고 마음이 부정적이 되게 하고 신앙을 빼앗아놓고 마귀는 하나님께 우리를 참소하고 우리의 두려워하는 것이 몸에 임하고 우리의 무서워하는 것이 환경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마귀의 궤계를 우리는 밝히 알고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신약 성경 중 두려워한 사람들을 우리가 알아보십시다. 회당장 야이로는 그의 딸이 죽었습니다. 너무나 귀여워하고 너무나 좋아하는 딸이 죽음으로 그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 나왔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장이 유대교에서는 이단으로 낙인 찍은 예수님을 찾아온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운명을 내어 던지는 행동인 것입니다. 회당장이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와서 그 앞에 엎드려 간절히 간곡하게 빌며 그를 집으로 청했다는 소식이 들어가면 그는 유대 사회에서는 목이 날아갑니다. 유대인의 대제사장이나 제사장이나 바리새인 교인들이 합쳐서 그를 성토하고 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식이 죽으니까 자기의 지위나 명예나 권세 같은 것은 아랑곳 없습니다. 그는 대중이 모인 자리에서 예수님 앞에 와서 꿇어 엎드려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딸이 죽었으니 와서 손을 얻어 낫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회당장 야이로와 함께 그 집에 가는데 그 종이 막 울면서 티끌을 날리고 옷을 찢으며 와서 말하기를 회당장님 당신이 떠날 때는 딸의 목숨이 경각에 붙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죽었습니다. 이제는 선생님 모셔와 봤자 이젠 필요 없다. 그 말을 듣자 야이로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그냥 무릎에 힘이 쫙 빠져 버렸습니다. 흔들흔들해서 눈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너희 딸이 살리라. 이게 얼마나 중대한 말입니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면 너희 딸이 산다. 그러나 두려워하고 신앙을 버리면 너희 딸은 죽는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면 예수님이 동행하시고 두려워하고 믿음을 포기하면 마귀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간단한 논리입니다. 믿음의 반대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따릅니다. 두려움은 마귀의 도구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얼마나 중요한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이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 마음을 가다듬어서 믿음을 굳세게 가진 결과에 주님께서는 회당장과 함께 그 집에 들어가서 베드로와 야곱과 요한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 그 죽은 딸의 손을 잡고 딸아 일어나라 하니 즉시로 일어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 믿음에는 그리스도가 함께 해서 기적을 이루신 것입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14장 25절로 33절에 보면 베드로가 두려워해서 물에 빠진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밤 사경에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왔습니다. 제자들은 바다에서 배를 젓고 가는데 너무나 지치고 피곤해서 역풍을 만나 고통 당할 때에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모두 다 예수님께서 유령인 줄 알고 고함을 칠 때에 두려워 말라. 나다. 그러자 베드로가 주님이며 나로 명하사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이것 아주 담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주님께서 오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믿었어요. 믿고서 그 밤바다 위에 걸어 나갔을 때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믿음은 기적을 언제나 동반합니다. 그가 그 환경을 바라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믿고서 나갈 때에 주님이 같이 하사 그 물위로 저벅저벅 걸어 주님께로 갔는데 그만 일진 광풍이 불어서 그 얼굴을 치매 그로 말미암아 두려움이 마음에 꽉 들어 왔습니다. 주님을 보는 눈을 바람과 파도를 보고 두려워한지라. 물에 빠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믿음과 확신이 그를 주님과 연결시켜 놓았지만 믿음을 잃어버리자 즉시로 하나님의 능력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파괴적인 세력이 그를 물 속으로 끌어 내렸습니다. 물에 빠지면 죽는 것입니다. 걸어가면 살고 빠지면 죽는 것입니다. 믿음은 물위를 걸어가게 하고 믿음을 잃어버린 두려움은 물에 빠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면 인생의 파도 위를 걸어가지만 우리가 주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면 인생의 파도 밑으로 빠져들어 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IMF 파도 위를 걸어가지만 예수님 믿음을 포기하고 두려워하면 IMF 파도 밑으로 빠져들어 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우리 운명의 갈림길이 되는 것입니다. 물위로 걸어 갈 것이냐 물에 빠져들어 갈 것이냐 여기에 바로 갈림길이 믿음이냐 두려움이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요. 3년 반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온갖 사랑을 다 받고 주님의 모든 기사와 이적을 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을 체험한 사람들인데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유대인들과 로마 군인들에게 잡혀 갈 때에 제자들이 모두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왜 그러냐? 두려움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 마음속에 두려움이 들어오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그 충성심을 다 잃어버리고 모두 다 뿔뿔이 헤어지고 만 것입니다. 두려움이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배반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주 예수님을 잘 믿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충성을 하는 것 같이 보여도 그 마음속에 두려움이 들어오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처럼 사람들이 다 주님을 다 버리고 도망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란 그만큼 무서운 마귀의 도구인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두려움은 다가옵니다. 어두움이 있는 것처럼 두려움이 다가옵니다. 어떠한 사람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살고 다른 사람들은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서 형벌을 당하고 파괴를 당하고 사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두려움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두려움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렵지요. 그러나 우리보다 훨씬 크고 어떠한 두려움보다 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것을 알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제가 시골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에 우리 집은 부산으로 다 이사를 가고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살았는데 우리 할머님이 나이가 많으시고 힘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집에 오기까지는 논두렁 길을 걸어서 산비탈을 걸어서 집으로 와야 하는데 숲이 우거지고 오른쪽 왼쪽에는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굉장히 무섭습니다. 그런데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어둡고 깜깜한데 간이 벌렁벌렁 하는데 그때는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님도 안 믿을 때니까 아휴 오늘 이젠 죽었구나 매일 같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산꼭대기 위에서 언제나 내가 올 때쯤 되면 아무 힘도 없는 우리 할머님이 거기 앉아서 용기와 오냐! 그렇게 고함을 쳤습니다. 그 할머님 소리만 들으면 내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하고 용기가 생겨요. 조용기인 제가 용기가 생겨요. 왜냐하면 그래도 나 혼자보다는 할머니가 같이 계시면 혹시라도 여우나 이리가 왔다가도 도망칠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나서 할머니 빽으로 마음에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여러분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두려움이 한 길로 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로 31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참새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난 것을 알면 우리의 마음속에 평안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속에 넘치면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요한1서 4장 18절 말씀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그것을 보세요. 하나님 안에서 넘쳐나오는 사랑이 우리를 채우면 두려움이 물러간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받아들이면 두려움은 우리에게 물러갑니다. 두려움은 형벌을 가져옵니다. 두려움은 반드시 두려움에 해당하는 벌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해서 우리의 마음이 늘 두려움에서 해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3절로 39절에 말씀으로 한번 들어보세요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그 끈끈한 밧줄에서 우리를 끊을 힘은 우주 가운데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셔들이고 예수님을 사랑한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겨 나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밖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지요. 그러나 예수님 안에는 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늘 하나님과 교통할 때에 우리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늘 기도하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와서 담대해집니다. 여호수아 1장 5절로 9절처럼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것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율법, 즉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하고 하나님과 교통하면 하나님이 같이 계신 것을 알게 되고 그리 되면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며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믿음으로 나갈 때에 하나님이 하는 일마다 형통케 해 주겠다고 약속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스가랴서 4장 6절의 말씀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을 위로하고 평안을 주셔서 두려움에서 해방하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돕기 위하여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성령님이 이 자라에 와 계십니다. 성령님을 인정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환영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모셔들이면 아멘 하십시다. 성령 보혜사가 바로 우리의 위로자인 것입니다. 우리를 위로하사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시고 두려움이 없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 두려움을 이기고 살려면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서양에 이런 우화가 있어요. 어떤 농부가 마차를 끌고 콘스탄티노플이라는 도시로 들어가는데 누가 올라타거든요. 돌아보니까 아주 흉하게 생긴 마귀 할멈이라. 앗, 네가 여기에 왜 올라 타냐! 나는 호열자를 가져오는 마귀 할멈인데 내가 성중에 들어가서 몇 사람 목숨을 빼앗아 갈 사람이 있다. 어떻게 내가 믿을 수 있느냐? 네가 몇 사람 목숨을 빼앗을 것이라는 걸. 아니다 정말이다 그러면서 칼을 하나 주면서 내가 이 몇 사람 이외에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거들랑 나를 찾아와서 이 칼로 나를 찌르면 내가 죽을 것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성중에 들어오자 그 마귀 할멈이 탁 뛰어 내렸는데 얼마 있지 않다가 콘스탄티노플 도시에 호열자가 돌았다는 소리가 터지자 수백 명이 죽어 나갔습니다. 그래서 이 농부가 화가 나서 그 칼을 들고 찾아다니다가 마귀 할멈을 찾았습니다. 네가 몇 사람만 데려간다고 했는데 수백 명이 죽었으니까 이 칼을 받으라고 하니까 그 마귀 할멈이 하는 말이 내가 죽이기는 몇 사람 밖에 안 죽였는데 다른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고 다 죽었지 않느냐. 내가 죽인 것은 몇 사람밖에 안되는데 다른 사람들은 소문 듣고 지레 겁을 내고 다 죽었다. 여러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독일과 일본군과 싸운 미국 병사들 중에 전쟁에서 죽은 사람은 30만 명입니다. 그런데 그 자식들을 전쟁에 보내 놓고 두려워해서 마음에 공포심을 가지고 심장마비로 죽은 부모 형제들은 100만 명입니다. 전쟁에 나가서 죽은 사람은 30만 명 밖에 안되는데 두려움으로 떨은 그 가족들은 100만 명이나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얼마나 무서운 파괴적인 행위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지요. 최근 의학계에서 발표한 것을 보면 두려워하는 사람은 심장에 펌프가 약해져서 심장 마비나 뇌졸증에 걸려 죽을 확률이 많다고 그런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로 6절에 보면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히브리서 10장 37절로 38절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 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뒤로 물러가지 말고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두려움은 마음에 침입해 들어오는 마귀의 손입니다. 이를 그대로 두면 우리의 삶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우리는 주 예수의 십자가 은혜를 힘입어 강하고 담대하게 두려움을 내어쫓고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주께서 우리와 같이 하여 주셔서 우리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여 주는 것입니다. 크든 적든 우리 마음속에 다가오는 두려움을 여러분 받아 드리면 안됩니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따라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경제적인 위기로 말미암아 두려움이 확산되어 있습니다. 사용자도 노동자도 그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고 우리 시민들의 가슴속에도 두려움이 있습니다. 내 아버지 두려움이 우리를 파괴합니다. 두려움 때문에 우리가 강하고 담대함을 잃어버리고 그리고 위축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주 예수 이름으로 간구하오니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은 우리들은 하나님이 좋으심을 우리가 의지하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기도하고 나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주께서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와 같이 계시고 오른팔의 능력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심으로 우리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로 나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죽음 자체조차도 우리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이 죽음을 죽이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두려움을 다 내어쫓아 준 것을 감사 드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지극히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 호흡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 이름으로 아버지께 간구하오니 몸에 병든 사람들을 주님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우리의 라파, 의사가 되시옵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 병을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아버지 예수 이름으로 간구하오니 모든 사람에게 안수하여 주시옵시고 모든 사람 몸 속에 있는 병을 다 멸하여 주시옵시고 쫓아내어 주시옵소서. 마음의 슬픔을 쫓아내어 주시고 육체의 병을 다 멸하여 주시옵시고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건강과 생명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야웨 하나님이여! 오늘 이 시간에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짐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주를 앙망하오니 야웨 하나님이여 그 오른팔의 능력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 속에 가시와 엉겅퀴를 제하여 주시옵시고 아브라함의 복이 임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쳐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오! 주의 성령이여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우리 가운데 운행하여 주옵소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느니라. 내가 너를 내 눈동자같이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고 돌보고 있노라. 내 품에 안긴 나의 백성들아 나를 바라보고 마음에 강하게 하고 담대하여 살지어다.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지어다.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내가 결코 너를 버리지 아니하며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한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이와같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하옵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