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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2월 28일 제목: 환희와 고난 성구: 히12:1-2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환희와 고난"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 중 잘 웃고 낙천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시지요. 그런 사람은 삶에 다가오는 여러 가지 고난을 잘 이겨 나갑니다. 쉽게 웃고 마음에 즐거움을 가지고 낙천적인 사람은 인생을 쉽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좀처럼 웃지 않고 우울해 하며 비관적인 인생관을 가진 사람은 고난을 잘 이겨내지 못합니다. 고난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고통을 당하고 파탄에 이를 때가 많습니다. 마음에 환희는 고난을 극복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생활이 고통스럽고 어려울수록 때때로 마음속에 환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만 합니다. 마음에 즐거움보다 고난을 이기게 하는 좋은 약은 없습니다. IMF로 온 사회와 국가 개인과 가정이 우울할 때일수록 우리는 마음에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얻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즐거움이 있으면 이 모든 것을 이겨 나갈 수 있는 힘이 우리 마음속에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환희 체험과 고난에 대한 승리를 우리가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이가 30세가 되셨을 때 요단강에 나가 세례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문이 열렸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는데 하늘에서 성령이 마치 비둘기와 같은 형상으로 예수님 위에 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셨습니다. 그럴 때에 하늘에서 우렁찬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아들이라" 예수님은 이 체험을 통해서 그 영혼 속에 말로 다할 수 없는 황홀함을 느꼈습니다. 큰 기쁨을 그 마음속에 받아들였습니다. 그가 만천하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아들이라는 선언을 얻게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마음의 큰 기쁨이 있었기 때문에 그 다음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아 광야에 나가서 40주 40야 금식을 하며 마귀에게 혹독한 시련을 겪어도 그 고난을 주님께서는 유유히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만난 그 놀라운 기쁨의 체험이 그 영혼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마귀의 시험 같은 것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마귀의 유혹도 능히 이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도 요단강에서 체험한 그 놀라운 환희, 이것이 그 마음속에 모든 시련을 이길 수 있는 큰 힘이 되고 능력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를 걸머지고 고난을 능히 이긴 것을 보고 우리는 감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걸머지기 전에 하나님과 만난 거대한 환희의 체험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가는 길에 제자를 데리시고 변화산 산하에 왔었습니다. 아홉 제자를 그곳에 두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예수님이 산꼭대기에 올라가셨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서 기도를 하는데 제자들이 보니까 갑자기 예수님이 변화됩니다. 그 옛날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모습으로 그 얼굴이 태양같이 빛나고 그 입은 옷이 어떠한 빨래하는 사람이 세탁을 해도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이 찬란하게 빛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문득 예수님 곁에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선지자를 대표하는 엘리야가 서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놀랬습니다. 그런데 그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에게 보고를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것과 사흘 후에 부활하실 것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를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여 이곳에 있는 곳이 좋습니다. 우리가 초막셋을 짓겠으니 하나는 주를 위해서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하겠나이다. 그러자 구름이 모여오고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면서 그들을 감쌌습니다. 제자들이 너무 놀라서 떨고 있는데 그 구름 가운데서 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 그 음성만 들어라. 순식간에 구름은 사라지고 모세와 엘리야도 온데간데 없고 예수님만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다시 한번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놀라운 은혜를 받고 끝없는 환희를 체험했습니다. 태초의 하나님과 함께 했던 그 모습으로 변화 받는 체험도 했고 모세와 엘리야가 와서 그에게 보고하는 보고도 받았고 하나님이 또 다시 제자들을 보고 모세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오직 예수님의 말만 들으라 그 환희의 체험이 예수님의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변화 산상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만난 그 큰 기쁨 때문에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제자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원수의 손에 잡혀 혹독한 시련과 고통을 안나스와 가야바의 뜰에서 당하고 빌라도의 뜰에서 모욕과 조롱을 당하고 결국에는 십자가를 걸머지고 그가 갈보리 산에 올라가서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히고 높이 매달려 피와 땀을 흘리며 죽는 혹독한 고통을 당했어도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그가 변화 산상에 하나님과 만난 그 환희, 그 큰 기쁨이 그 영혼 속에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기쁨이 예수 그리스도로 십자가를 걸머지고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라도 그가 광야에 고난받기 전에는 요단강에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놀라운 환희가 있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변화 산상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나 큰 용기와 힘을 얻는 환희의 체험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역시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환희의 체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당하고 괴로움을 겪고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와 땅끝까지 충만히 채울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고난 당하신 후에 제자들의 절망이 이루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기대와 꿈이 다 무너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예수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서 메시야 왕국을 세울 것이고 로마의 통치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실 것이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열두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리에 들어가시는 그 꿈이 마음속에 꽉 들어차고 기대가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보고 난 다음 그 꿈과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로마 총독 정부와 종교 지도자들이 무서운 핍박을 가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모조리 다 잡아서 처형하라 그래서 제자들은 밖에 안심하고 나갈 수가 없어서 그들은 이 집에서 저 집 지하실로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음속에 예수님을 배반한 죄책감으로 몸부림을 쳤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에게 잡힐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다 버리고 도망을 쳤습니다. 3년반 동안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며 그와 함께 먹고 자고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 절대로 그리스도를 배반 안하겠다고 서약을 한 그들이 순식간에 예수님을 다 버리고 도망을 쳤다는 그 죄책감이 그들 영혼 속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또 그 형편으로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나 처자를 다 버리고 정신이상자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전국을 누비고 다닌 그들이 이제는 패배한 사람으로 빈손 들고 고향 땅으로 나갈 체면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제는 버림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제자들은 이제는 어떻게 먹고 살지 그들의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한 열흘 동안 기도하고 난 다음에 오순절 날에 갑자기 그들 모인 곳에 하늘에서 쏵 강한 바람 소리가 나더니만 서로 쳐다보니까 서로 머리 위에 불의 혀같이 갈라진 것이 타고 있습니다. 그러자 모두 다 온 몸에 전율적인 감동을 느낍니다. 그들 영혼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그들은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며 그를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살아 계심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었다가 삼일만에 부활한 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온 인류에게 영원한 천국의 영광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 그 진리를 순식간에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도 살고 죽어도 살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영원한 희망이 있는 것을 순식간에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제자들의 마음속에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넘쳐 흘렀습니다. 소망이 넘쳐 흘렀습니다. 그들은 뛰고 구르고 고함치고 춤추고 울고 외쳤습니다. 너무나 기쁨에 벅차서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문을 박차고 나가니까 그 요란한 소리를 듣고 수천명의 예루살렘 사람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 근처에 모인지라 베드로는 그들에게 나아가서 담대하게 설교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를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구주로 삼았느니라.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삼천여 명의 사람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그런 큰 영광을 체험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 충만함을 받은 놀라운 환희가 그들로 하여금 나가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담대하게 전도하게 만들었으며 그 이후로 수차례 감옥에 투옥을 당하고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매를 맞고 그 제자들이 사도요한 한 사람만 남겨 두고 다 순교를 당했지만 한사람도 그리스도를 배반한 적이 없습니다. 왜 오순절 다락방에서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함 받는 체험, 그 놀라운 환희가 그들 일생을 점령했었습니다. 그 일생동안 다가오는 수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극복하고 나갈 수 있는 영적인 정신적이 힘이 그들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바울도 한가지입니다. 그는 원래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열렬한 유대교 신자였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끝까지 추궁해서 감옥에 잡아 가두고 스테반을 죽일 때 그는 스데반을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키고 그들을 지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의 허락을 받아서 이웃나라에 있는 시리아의 다메섹에 피란 가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고 죽이기 위해서 사명을 가지고 말을 타고 종자들과 함께 다메섹으로 가다가 12시에 저 멀리 다메섹에 보이는 지경에 가서 갑자기 하늘에서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그에게 내리 비췄습니다. 너무 밝은 빛에 너무 눈이 부셔서 그는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그는 엉겹결에 물었습니다. 주여 뉘시이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여기에 사울은 한없는 감격을 느꼈습니다. 그가 멋도 모르고 교회를 핍박하고 그리스도를 핍박했는데 이제는 알고 보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고 그의 일생은 다메섹에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눈이 어두워졌으나 다메섹 직가라는 곳에 가서 아나니아의 집에 가서 그는 안수를 받고 그리고 눈이 떴습니다. 그 이후로 사울은 그 이름이 바울로 변화되고 그 영혼 속에 그리스도를 만난 그 환희, 그 황홀함, 그 기쁨이 얼마나 충만했던지 그는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그의 일생을 그리스도에게 내어 던졌습니다. 그리스도를 열렬히 핍박하고 교회를 훼파하던 그가 목숨을 바쳐 교회를 세우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바울은 이방에 나가서 수없이 매를 맞고 감옥에도 갇히고 돌로 얻어맞아 죽었다가 깨어나기도 하고 파산되어 사흘동안 바다 위에 떠 있기도 하고 마지막에 그는 로마에서 순교를 당했지만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그 황홀과 그 기쁨, 그 체험이 그 일생의 모든 시험과 환난을 이기고 나갈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도 항상 그 환희의 체험이 있어야 성공적인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과 만남을 통해서 얻는 기쁨이 없이는 우리는 신앙도 전도자도 승리자도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삶의 고달픔과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여름 뜨거운 날에 때때로 소낙비 내리듯 환희의 소낙비를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즐거움에 소낙비를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을 내 삶의 깊은 곳으로 구주로 모셔야 됩니다. 바로 예수님이 우리의 기쁨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는 우리의 슬픔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슬픔을 십자가에서 다 청산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영혼에 기쁨의 원천이 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내 마음속에 모셔들이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우리의 영혼 속에 기쁨의 샘이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8절로 11절에 보면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주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님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특성은 그 마음속에 기쁨의 원천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기쁨의 원천이요 기쁨의 샘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적극적인 만남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내 중심으로 모시면 그를 통해서 기쁨이 넘쳐납니다. 돈으로 오는 기쁨이 아닙니다.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세상 쾌락을 통해서 오는 기쁨이 아닙니다. 이것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입니다만 그리스도 속에 있는 기쁨은 영원토록 솟아나는 기쁨의 샘물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기쁨이 있어야 우리가 이 세상에 모든 고난을 이기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셨고 기쁨은 너희 삶의 힘이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쁨의 근원 되신 예수님을 내 삶의 깊은 곳으로 구주로 모셔들이는 그런 체험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정규적으로 주님과 교통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말씀을 읽고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세상의 염려 근심 불안 초조 고통들이 마치 티끌과 먼지와 같이 우리의 마음에 쏟아집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영혼이 시들어지고 약해지고 병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이 모든 것을 씻어냅니다. 우리 영혼의 모든 먼지와 티끌을 씻어내고 우리 마음속에 낀 안개와 모든 구름을 다 제켜냅니다. 우리 마음을 청산합니다. 매일 아침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고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 기쁨의 샘이 또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먼지와 티끌이 막히면 안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읽는 것과 기도를 계속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 마음을 청소해서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기쁨이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교통이 있을 때에 그 마음속에 그치지 않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2절에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말했습니다. 기쁨의 복을 받습니다. 시편 119편 49절로 50절에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우리가 말씀을 읽으면 소망이 생기고 말씀이 우리 마음을 살리는 생기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여러분 가장 큰 기쁨의 원천은 불세례인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하고 성령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이 오순절날 임할 때에 제자들은 그 고통과 좌절과 절망에서 벗어나와 큰 기쁨을 가지고 폭발하는 기쁨으로 그들은 목숨을 바쳐 복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이 성령 충만은 우리의 마음속에 큰 기쁨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순복음 교회가 다른 교회보다 더 폭발적인 부흥을 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성령세례 받고 성령이 주시는 기쁨 때문에 견디지 못하여 이웃으로 나가서 열심으로 전도하고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기 때문에 교회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 기쁨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성령충만 받고 성령 재충만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기쁨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14장 17절로 18절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성령이 오시면 우리의 마음속에 의가 오고 평강이 오고 기쁨이 넘쳐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충만을 항상 구하고 늘 우리와 같이 계신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게 될 때에 성령의 불길이 우리 마음속에 기쁨으로 가득 채워 놓는 것입니다. 넷째로, 사랑으로 주님을 섬길 때에 마음속에 기쁨이 넘칩니다. 주의 사랑 비췰 때 기쁨 오네 근심걱정 물러가고 기쁨 오네라는 찬송이 있는 것처럼 사랑을 내가 받고 사랑을 내가 줄 때 마음속에 기뻐지는 것입니다. 육신으로써도 서로 이성간에 사랑을 해도 정신없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시간가는 줄 모르는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받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에 여러분 마음속에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 사랑은 받을 때보다도 줄 때가 더 기쁩니다. 받는 것도 기쁘지만 내가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기쁨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 남편이 기뻐요. 아내가 남편을 사랑할 때에 그 마음속에 기쁨이 와요.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게 될 때에 내 마음이 기뻐요. 사랑 받을 때보다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에 기쁨이 우리 마음속에 채워지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4절로 15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우리가 주를 사랑하면 하나님의 적극적인 도우심이 우리 생활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0장 35절은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우리가 관심도 기울여 주고 염려도 같이 해주고 기도도 해주고 사랑도 해주고 도움도 베풀고 그렇게 할 때에 우리에게 복이 옵니다.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돌려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주리라. 내가 그러므로 사랑해 주려고 애를 쓸 때에 내 마음속에 큰 기쁨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 사랑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사랑을 주려고 애를 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섯째로, 남을 기쁘게 할 때 나도 기뻐집니다. 남을 슬프게 하면 나도 슬퍼집니다. 남을 비난하고 공격하면 내 마음속에도 검은 구름이 점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에게 흙칠을 하려면 내 손에 먼저 흙을 칠해야 합니다. 남을 욕하려면 내 마음속에 벌써 나쁜 생각이 들어 와야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절대로 남을 괴롭히고 자기가 괴롭지 않은 사람 없습니다. 남을 험담하고 자기가 마음이 기뻐지는 법이 없습니다. 남을 할퀴고 자기 마음속에 쾌감이 오질 않습니다. 빌립보서 2장 3절로 4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이기주의적인 삶을 살면 그에게는 행복도 기쁨도 없습니다. 자꾸만 할 수만 있는 최대한도로 남을 도와주고 남을 기쁘게 하고 남을 행복하게 하고 남을 성공시킬 때에 내게 큰 보답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우리는 주님을 믿고 주님의 축복을 기대하고 살 때에 마음에 기쁨이 넘칩니다. 우리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삽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를 흘리기까지 우리를 대속하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내 친 아버지가 되고 나는 하나님의 친자녀가 됩니다. 온 세상 다 날 버려도 나를 버리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도 나를 도와 줄 수 없어도 나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을 수 있고 외칠 수 있고 통곡할 수 있고 울 수도 있고 호소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가 나와 같이 계시고 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희망을 주고 은혜를 주고 복을 주고 영원한 천국까지 주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야고보서 1장 17절에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아버지는 변화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우리와 같이 있어서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도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염려와 근심을 맡겨야 기쁨이 옵니다. 마음에 염려와 근심이 있으면 뼈로 썩게 합니다. 그러나 염려와 근심을 다 맡기고 우리를 도와주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게 될 때 우리 마음속에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든 짐을 다 맡기고 염려하지 말고 마음에 언제나 홀가분해 있을 때에 마음에 기쁨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쁨 즉 환희의 체험은 삶의 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기름입니다. 환희가 있으면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장차 다가올 기쁨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을 능히 이기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얻는 기쁨은 그 뒤에 더 큰 슬픔을 동반합니다. 세상 기쁨은 고난을 이기는 힘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얻는 기쁨은 인생을 승리로 살 수 있게 하는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기뻐하라 다시 네게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이 기쁨은 우리가 개인으로나 가정으로나 사회 그리고 이 어려운 때를 살아갈 때에 큰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이상 패배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기쁨이 있는 이상 우리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즐거움이 있는 이상 뒤로 물러가지 않습니다. 기쁨은 끝없는 능력과 힘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두워도 그 어두움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진실한 기쁨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충만할 때에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여 내게 성령으로 채워주시고 기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기쁨의 소낙비를 맞게 도와 주시옵소서. 기쁨의 세례로 채워 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께 늘 기쁨을 구하고 기쁨을 받아서 운명과 환경을 이기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님조차도 하나님 안에 있는 기쁨 때문에 시험도 십자가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하나님께 받은 성령 충만의 기쁨 때문에 일생을 주께 맡기고 수많은 투옥과 매맞음과 고난을 통해서도 이기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오늘 IMF를 통해서 우리 한국 국민들의 가슴속에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원망 탄식 좌절 절망의 안개구름이 꽉 들어 차 있습니다.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상실해 버리면 내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앞길은 캄캄해집니다.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여 돈으로 오는 기쁨이 아니고 좋은 환경으로 오는 기쁨이 아닙니다. 호의호식으로 오는 기쁨이 아니고 하늘로 오는 기쁨입니다. 예수 믿고 성령충만하여 기쁨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쁨을 가지고 운명과 환경을 극복하고 나가 이길 수 있게 도와 주시옵시고 영원한 기쁨의 고장인 천국까지 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