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3월 21일
제목: 율법과 사랑
성구: 마18:21-35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율법과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영어에는 시어머니를 Mother-in-law 즉 '율법적인 어머니'라고 법이 정해준 어머니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며느리는 Daughter-in-law 즉 '법적 딸'이라고 합니다. 법이 정해준 딸이라고 그렇게 부릅니다. 그러므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율법적인 관계이지 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고래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결코 부드럽지 않은 긴장의 관계였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항상 상대방의 결점을 찾아 판단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냉기가 도는 긴장이 떠나지 않습니다. 며느리 전화에 접수된 1만6천여 건의 상담 중에 고부 갈등이 44.3%이고 가족, 부부, 경제적인 갈등은 불과 10% 내외에 불과한 것입니다. 또한 시어머니들도 며느리에 대한 불만 하소연이 굉장히 많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율법의 관계가 아닌 애정의 관계입니다. 거기에는 이해와 동정과 긍휼과 사랑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어머니와 딸 사이에는 항상 따뜻한 온기가 감돌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맺어진 인간 관계에는 언제나 심판과 형벌이 따릅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맺어진 인간 관계에는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따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 관계는 어떠한 관계가 맺어져 있습니까?

첫째로, 구약의 선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인류의 장자로서 인류의 대표자로서 제사장의 나라로서 선택하여 관계를 맺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사 시내 광야에 진을 쳤을 때 시내산에 강림하시고 모세를 통하여 선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계약의 조건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준수할 때에 선민의 특권을 누리나 만일 율법을 범하게 되면 엄한 심판과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 관계의 첫 시작은 율법적인 관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율법은 반드시 형벌이 뒤따릅니다. 율법을 어기면 준엄한 형벌이 따릅니다.
출애굽기 20장 5절로 6절에 보면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도덕적인 법인 십계명을 주셨고 또 일반적인 민법도 주셨고 그 다음 의전법을 주셨습니다. 이래서 그 법을 어길 때는 하나님께서 준엄한 심판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관계의 법은 내 앞의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이렇게 하시고 이 네 가지 율법을 범할 때는 용서 없고 가차없이 사형에 처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길 때는 하나님은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가차없이 사형에 처했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법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는데 부모를 저주한다는 사형에 처하라고 출애굽기 21장 11절에 말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고 했는데 고의로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하라고 출애굽이 21장 12절에 말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고 했는데 간음한 자는 돌로 치거나 불로 살라 사형에 처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도적질하지 말라. 내 이웃을 거짓 증거하지 말라. 내 이웃을 탐하지 말라. 이러한 법들도 어기면 그 법에 해당되는 형벌을 받아야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에 처하지 않은 법을 처한 자는 반드시 하나
님 앞에 피 흘리는 제사를 드려야 용서를 받았습니다. 번제를 드리거나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감사제사 이러한 제사를 드려서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 제단에 바쳐야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말씀한 것처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율법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은 인류를 대표해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었습니다. 율법 앞에서는 사람이 꼼짝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 아래 놓이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율법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면 우리의 모든 행위를 늘 감찰 당하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행위에 잘못이 있으면 거기에 대해서 용서 없는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가정에도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간에 율법의 관계를 맺어 놓으면 남편은 아내를 심판하고 아내는 남편을 심판하고 부모는 자식을 심판하고 자식은 부모를 심판합니다. 율법은 잘못을 잡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잘 하는 행동을 칭찬하기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온 가정이 율법주의적인 가정이 되면 심판으로 꽉 들어찬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상처투성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율법적 관계에 있을 때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점점 멀어지고 사람은 하나님을 피하려 하고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하나님과의 계약이 깨어지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율법을 다 어기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결국에는 구약은 깨어졌습니다. 선민 계약은 깨어지고 이스라엘은 포로로 잡혀서 앗수르나 바벨론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요? 구약에서 율법의 관계는 완전히 파탄에 이르고 깨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젠 인류와 새로운 언약을 맺기 위해서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는 인간으로 태어나시고 율법 하에 태어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로 7절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의 몸으로 태어나게 하셔서 인간이 되게 하시고 또 율법 하에 유대인으로 태어나게 하셔서 그 율법을 주님이 다 지키고 준수하시고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지은 죄를 주님이 대신 다 짊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율법 아래 지은 모든 유대인의 죄악 뿐 아니라 이방인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고 제물이 되어서 이를 청산하기 위해서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용서와 은혜와 자비와 사랑의 계약을 맺으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영원히 속하셨습니다.
요한1서 1장 7절에 보면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그의 제사는 영원한 제사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무한한 과거와 무한한 미래가 합쳐진 것임으로 주님 한 제사로써 이제는 과거의 모든 제사를 다 포함시키고 미래에 영원히 제사를 다 주님을 통해서 갚아 버린 것입니다. 이러므로 죄를 지은 사람은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제사를 드리는데 예수님의 한 제물로 영원한 번제, 영원한 속죄제, 영원한 속건제, 영원한 화목제가 다 드려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은 예수의 한 제물로 영원히 우리가 온전케 되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가 영원히 용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24시간 용서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항상 용서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완전한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율법을 영원히 완성시키고 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우리의 죄를 잡기 위해서 주신 것인데 그 율법을 주님께서 완전히 이루시고 그 율법이 죄로 잡는 것을 영원히 갚아 버렸기 때문에 율법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 범죄자가 없으면 경찰이 필요가 없습니다. 범죄자가 없는데 왜 경찰이 필요합니까? 죄가 없는데 죄를 잡을 율법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 죄를 갚아 버렸기 때문에 영원히 율법은 잡을 것이 없습니다. 율법이 네가 죄 지었다고 하면 예수님께서 내가 피로 갚았다. 이 율법이 장군하면 예수님은 멍군해 버립니다. 항상 이 율법이 아무리 사람을 정죄해도 예수의 피가 영원히 그 죄를 갚아 버렸기 때문에 율법은 효력이 없습니다. 무능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예수의 십자가를 통하여 율법을 패하여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율법의 정죄 하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서 살지 율법의 정죄 하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과 선민 계약을 맺자 그 조건으로 율법을 주셨지만 이제 신약에서는 예수를 믿자 영원히 용서받은 우리들에게 신약의 조건으로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시사 성령이 우리를 감화 감동시키시고 변화시키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도록 한 것이기 때문에 신약의 법은 바로 성령의 법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고 성령과 함께 사는 것이 신약의 조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영원히 제하여 버리고 마셨습니다.
성경 말씀 히브리서 10장 8절로 10절에 보면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이러므로 에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율법은 우리를 도와주는 거울에 불과한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심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거울을 통하여 우리 인생의 삶에 먼지가 묻었느냐 때가 묻었느냐 그걸 보여주는 거울에 불과한 것이지 율법은 우리의 심판의 자리에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영원히 격파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인류를 잡은 것은 인류가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났기 때문에 죄의 고리에 마귀가 자기의 고리를 걸어서 인간을 종으로 삼은 것입니다. 인간이 죄인인 이상 죄의 고리에 마귀가 언제나 종의 고리를 걸어서 우리를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해서 쫓겨났기 때문에 마귀의 종이 된 것입니다. 온 인류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마귀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죄의 고리가 꺾어 졌으니 마귀와의 관계가 끊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죄가 용서함 받았는데, 이제는 죄로 말미암아 정죄함 받지 않았는데, 죄 때문에 우리를 잡고 있는 원수 마귀는 이제 잡고 있는 고리가 꺾어졌으므로 우리와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모든 정사과 권세를 하나님은 다 허물어 버렸습니다.
골로새서 2장 15절에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그 흘리신 피로 여러분을 죄에서 놓여나게 함으로 죄의 고리에 걸려있는 원수 마귀의 모든 정사와 권세를 다 파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제는 마귀와 관계가 없습니다. 마귀가 한 길로 왔어도 우리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와 관계가 없는데 왜 우리가 마귀 앞에 두려워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앞에 마귀는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하루 이틀이 아닌 영원히 멸하여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십자가의 보혈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 조건을 영원히 폐하여 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람이 의로운 행동을 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이러한 인간 조건을 주님께서 영원히 폐하고 만 것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 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만 하는데도 불구하고 빈 손 들고 나아감에도 불구하고 오직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홀로 십자가에서 공로를 다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완성한 곳에 우리는 조금도 보탤 수 없고 조금도 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이루셨기 때문에 그러므로 완전히 이룬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 거기에 우리가 선한 행위를 보태거나 빼거나 해서는 결코 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그러므로 여러분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로 구원 받은 것이기 때문에 천당에 올라가도 영세토록 우리가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 좀 보세요. 내가 좋은 일을 해서 하나님 앞에 구원받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할 만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신 것을 영세토록 감사하고 찬미하며 자랑할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죄도 다 멸하시고 율법도 멸하시고 마귀도 멸하시고 인간의 행위도 다 멸하시고 오직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은 용서와 자비와 긍휼과 사랑을 폭포와 같이 퍼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보시는 시각은 옛날과 다릅니다. 이제는 율법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바라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용서와 자비와 긍휼과 사랑으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다시 말하면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보는 시각이 아니라 어머니가 친딸을 보는 시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 성도들은 다 며느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시아버지 시어머니였고 언제나 법적인 관계로 보았기 때문에 냉기가 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하나님은 우리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아니라 우리 친아버지 친어머니가 되고 우리는 친자식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냉기가 없습니다. 이제 여기에는 오직 우리를 바라볼 때에 용서와 자비과 긍휼과 사랑으로 하나님이 바라보십니다. 여러분 부모가 자식을 볼 때에 어떻게 봅니까? 언제나 자식을 용서와 긍휼과 자비와 사랑으로 봅니다. 자식이 잘못하면 속이 상하지만 심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욕을 하면 자꾸 변명을 하지요. 분명히 잘못 했는데도 자꾸 부모는 변명을 합니다. 자기 딸이 잘못한 것은 언제나 변명을 하지요. 며느리가 잘못한 것은 파헤치고 달려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하나는 사랑의 관계이고 하는 율법의 관계인 것입니다.
내가 신앙 상담한 한 분이 자기 며느리 때문에 상당히 속이 상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 며느리 때문에 속이 상한다고 상담한 그 분이 그 다음 내게 신앙 상담하려 와서는 시집간 딸을 그 시어미니가 미워한다고 속이 상해 못 견디겠다고 상담하러 왔습니다. 자기 며느리 밉다고 상담한 그 분이 자기 딸은 변호하고 보호하고 그 딸이 얼마나 착하고 마음이 순하고 좋은 딸인데 그 시어머니가 구박하고 박대한다고. 사람이 여러분 서로 인간 관계에서 율법적인 관계를 보면 언제나 잘못된 점을 심판하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로 맺어지면 언제나 용서하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고 사랑으로 보고 허다한 허물을 덮고 품에 안으려고 하는 이런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경 시편 103편 13절에 "아버지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라고 말했고 이사야 49장 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우리들의 삶은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우리가 살아야 되겠습니까? 한번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아가서 물었습니다. 주님 형제가 내게 범죄하면 몇 번 용서해 주어야 할까요? 일곱 번만 용서해 주면 되겠지요. 그것도 굉장히 큰 마음먹고 말한 것입니다. 일곱 번 용서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 마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칭찬할 줄 알았는데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하루에 4백 9십 번 죄를 짓고도 와서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하면 용서해 주라. 이것은 율법의 관계에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입니다. 이것은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만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식은 하루에 일곱 번 일흔 번 죄를 짓고 와서도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하고 오면 속이 상하지만 쥐어박지는 못합니다.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고 허물을 덮으려고 하지 일곱 번씩 일흔 번씩 용서하는 그 마음은 부모와 자식간의 마음이요, 큰 마음 먹고 일곱 번 용서해 주는 것은 아직도 율법적인 마음이 많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정말로 놀라운 이야기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천국은 그 종들과 회개하려던 임금과 같으니 회개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종 한 사람을 데려와서 빚을 갚아라. 일만 달란트는 우리 한국 돈으로 계산하면 약 144억입니다. 144억을 빚진 종을 불러다가 빚 갚아라. 그 종이 엎드려 내가 빚을 갚을 것이 없습니다. 주인이 말하기를 이 몸도 종으로 잡고 처자들과 모든 것을 팔아서 갚도록 하라. 이 사람이 엎드려서 간구하고 통곡을 하고 말미만 주면 갚겠나이다. 망한 사람이 여러분 144억을 어떻게 갚습니까? 주인이 불쌍히 여겨서 그냥 놓아보내자. 다 탕감했다. 없는 것으로 하자. 그래서 이 사람은 나오면서 할렐루야 춤을 추고 감사하면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나왔는데 기분 나쁜 일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친구 한 사람인데 이 사람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을 진 사람이었습니다. 일만 달란트대 일 데나리온 이것은 육십만대 일입니다. 아주 형편없이 빚을 진 동료를 만나자 멱살을 잡고는 야 이놈아 내 빚을 갚아라. 시간만 주면 갚겠습니다. 웃기는 소리하네. 그래 내 돈은 흙에서 나오는 줄 아냐! 이 자식아 끌어다가 고발해 가지고서 감옥에 가둬 놓았습니다. 같은 친구들이 들으니 너무 비참하거든요. 144억이나 용서받은 사람은 불과 얼마 안 되는 백 데나리온 조그마한 빚진 친구를 빚 안 갚는다고 그냥 감옥에 가뒀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에게 가서 아ㅤㄹㅚㅆ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임금은 굉장히 분노했습니다. 나는 그가 빌기에 내가 거금을 용서해 주었는데 그래 자기가 조그만 죄지은 것을 용서해 주지 못하고 감옥에 가두다니 그놈을 잡아오너라. 당장 잡아오니까 이놈을 감옥에 쳐넣어서 그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고생을 떡을 먹이고 고생의 물을 먹이라. 그래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너희도 각각 이웃의 죄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리라.
여러분 이 말은 굉장히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사회적으로 고통과 괴로움과 좌절과 절망의 감옥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왜 그 감옥 속에 들어가 있습니까? 이것은 내가 하나님께 용서와 사랑을 받은 만큼 이웃을 용서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감옥에 넣은 것입니다.
성경에는 요한복음 13장 34절로 35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마태복음 5장 23절로 24절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누가복음 6장 27절로 28절에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것 정말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관계를 율법과 심판이 아닌 용서와 자비와 긍휼과 사랑의 관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율법 하에 살지 않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 새 언약의 은혜 하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시내산 하나님의 보좌에서는 율법과 심판이 내려왔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그것을 다 받아서 피로써 다 청산해 버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율법은 다 청산되고 죄도 다 청산되고 마귀의 고리도 꺾어지고 인간의 행위도 다 사라졌습니다. 오직 그곳에서는 용서와 자비와 긍휼과 사랑만 넘쳐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언약 하에 살면 우리도 그리스도를 닮아서 이제는 그리스도의 은혜로써 용서와 사랑을 가지고 인간 관계를 맺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께 형언할 수 없이 큰 사랑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 빚을 이웃에 우리는 갚아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심적 육체적 생활상의 고통을 처하여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이웃을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곤고와 괴로움의 감옥에 가두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병 고침 받으러 옵니다. 아무리 안수 기도해도 병 고침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나님께 엎드려 회개하고 자복하고 원수진 사람들을 다 용서하고 난 다음 그 다음 기도하면 하나님이 즉각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제 용서와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가진 심판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가 아닌 친어머니와 친딸의 관계를 원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으로써 하나 되어 끝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고 사랑하고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손해 나지 않느냐? 우리가 손해 나면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은 용서와 자비와 긍휼과 사랑을 베푸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사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납게 주먹을 쥐고 치고 남을 심판하고 고통스럽고 괴롭게 하는 것이 잘 살게 되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우리의 모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사랑하시며 햇빛같이 밝은 얼굴로 우리를 품에 품어주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로 쉬게 하리라고 그 아버지의 품에 안기어서 하나님의 은총을 넘치게 받고 사는 이상 우리도 그와 같은 은혜와 사랑을 이웃에 베푸는 우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시내산 안경을 벗어버리고 갈보리산 십자가 안경을 끼십시오. 율법의 안경을 벗어버리고 여러분은 은혜와 사랑의 안경을 끼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언제나 용서와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 가면서 인간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날 우리의 사회에 이와 같이 살벌하고 사납고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가 다 율법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다 나쁘다는 그러한 심판의 마음을 갖고 살기 때문에 상처투성이가 됩니다. 아버지 율법적인 남편 앞에서는 아내가 견디지 못하며 율법적인 아내 앞에서는 남편이 견디지 못합니다. 부모가 율법적이 되면 자식이 부모 앞을 떠나갑니다. 이웃이 율법적이면 그 동네에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서로서로 심판하고 정죄하고 서로 고통을 주는 우리들이 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 갈보리 십자가를 통하여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받아서 우리의 개인과 가정과 생활에서 서로 서로 이해하고 동정하고 용서하고 자비와 긍휼을 가지고 살아가는 마음으로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자비와 긍휼과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백성 중에 마음과 몸에 병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픈 데 손을 얹고 주를 앙망하오니 그 크신 능력과 권세를 나타내 주시옵소서. 사람의 약이나 병원에서 고치지 못하는 병도 많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고 하나님은 우리의 위대한 의사가 되시옵니다. 아버지여 오른손의 능력을 베풀어 안수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사람들을 고쳐 주옵소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고통과 괴로움에서 놓여남 받게 도와 주시옵소서. 악한 마귀에게서 해방을 얻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깨끗이 고쳐 주옵소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질병과 고통은 각자의 몸에서 사라질지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어다. 고침을 받을지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치료의 역사를 베풀어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아버지 하나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왔사오니 이 짐 내려 놓게 도와 주시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손길이 나타나 우리를 붙들어 우리를 도와 주옵소서. 악한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나타내 보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축복과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성도들에게 희망이 생겨나고 좋은 일이 일어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