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3월 28일
제목: 허상과 실상
성구: 히11:1-3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허상과 실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허상은 거짓되고 헛된 것을 말합니다. 실상은 진실되고 참된 것을 말합니다. 아담은 마귀의 꾐에 빠져 허상을 믿고 따랐다가 인생이 파탄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그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된다고 거짓되고 헛된 소리를 했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허상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은 파멸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생각에 거짓되고 헛된 것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진실되고 참된 것입니다. 그 반면 세상은 진실되고 참되게 보일지라도 결국 언제나 거짓되고 헛된 허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허상에 사로잡히면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아무리 허상에 둘러쌓여도 실상을 부여잡고 나아가면 진실하고 참된 것에 도달하고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 구약 시대에 있어서 아브라함이 체험한 허상과 실상을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받은 하나님의 귀한 종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형언할 수 없이 큰 언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3절에 "여호와는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어머어마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것은 환경이 어떻게 되든 진실되고 참된 실상입니다. 실상 아브라함은 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하나님의 복이 그와 함께 따르도록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만 그 실상을 놓쳐버리고 환경이라는 엄청난 허상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그와 그 가족들과 함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나아갔습니다만 가나안에 큰 기근이 들어 있었어요. 햇빛이 내려쪼이고 물은 다 마르고 산천초목은 불탔습니다. 그곳에 있으면 죽을 것 같습니다. 마귀는 와서 아브라함에게 속삭였습니다. 너 이곳에 가면 너도 너의 처도 롯도 다 굶어죽는다. 하나님이 너에게 복을 주신다는 말씀은 참이 아니다. 허상이었다. 너 애굽으로 내려가라. 그곳에 좋은 살 곳이 있다. 아브라함은 여기에서 하나님은 순종에서 가나안땅에 가면 복의 근원이 되겠다고 했는데 여기에 오니까 여기에 오니까 복은 커넝 기근이 들어와서 물이 다 마르고 온 천지가 다 불탔습니다. 어는 것을 믿어야 될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실상입니까? 현실의 환경이 참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되고 헛된 허상입니까? 마귀의 말과 현실이 거짓되고 헛된 허상입니까? 거기에서 아브라함은 혼돈이 생겼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실상이기 때문에 실상을 부여잡고 아무리 햇빛이 내려쬐이고 가뭄이 다가오고 물이 마르고 산천초목이 불타도 나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니까 이곳에 눌러 앉아 있는다고 앉아 있어야만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상으로 부여잡아야 합니다. 말씀만이 실상입니다. 그 이외에 모든 환경은 허상입니다. 실제는 있는 것 같으나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허상에 눌려서 하나님의 실상을 버렸습니다. 실상 그는 가나안 땅에 복 받은 사람인데 실상을 버리고 허상을 좇아서 애굽에 사는 것이 좋겠다. 애굽에 좋은 삶이 있겠다. 그것은 실제 그런 것 같으나 실제는 허상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에 내려가서 좋은 삶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귀의 꾀임이요 아브라함의 자기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거짓되고 허상입니다. 그런데 그런 허상을 따라 애굽에 내려갔다가 얼마나 낭패를 당했는지 말로 헝용할 수 없습니다. 부인을 빼앗기고 그 삶은 처참한 환경에 빠졌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떠나서 환경이나 감각을 따라 그것을 추구했다가 얼마나 큰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허상에 빠져서 그는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아브라함은 상당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이제는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만이 실상이요 그 외에 모든 것은 실제 있는 것 같으나 거짓되고 헛된 것이라는 교훈을 배운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가 되고 그 아내의 나이 90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생각할 때에 그의 감각적으로 볼 때는 어림도 없는 말입니다. 나이가 100살이고 아내의 나이가 90인데 감각적으로 이성적으로나 경험을 통해서 보게 될 때에 자식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제 경험을 통해서 배웠기 때문에 아니야 내가 감각으로 느끼는 것도 허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허상이다. 경험도 허상이다. 하나님 말씀만이 진실하고 참된 실상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실상을 굳세게 부여잡았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6절에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37절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감각과 이성과 경험이라는 허상을 버리고 단호히 말씀의 실상을 부여잡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볼 때에 저 사람 돌았다. 정신 없는 사람이다. 100살에 90살된 아내를 통해서 자식을 낳겠다는 허망한 생각에 빠졌다고 비웃었지만 아브라함은 말씀만이 실상이요 그 이외의 모든 감각이나 이성이나 경험은 거짓되고 헛된 허상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말씀에 서기로 작정했습니다.
로마서 4장 18절로 22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없는 중에 믿었습니다. 그것은 왜냐 실상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은 실상입니다. 참되고 확실한 것입니다. 그 이외 그가 느끼는 것과 그가 생각하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전부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모두 허상입니다. 말씀에 반대되는 것은 모두 다 참된 것 같으나 거짓된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거짓되고 헛된 것 같으나 실제는 말씀은 실상입니다. 왜?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두번째로, 신약성경에 보면 풍랑이 이는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이 체험한 허상과 실상을 우리가 알아보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4장 35절로 41절의 내용을 보면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라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쳐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막4:35-38)"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주의 말씀만 참되고 진실한 실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저편으로 건너 가지고 말했으면 건너가는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바다가 넘쳐흘러도 건너가는 것입니다. 왜 주님의 말씀은 실상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참되고 올바른 말씀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허상에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바다를 건너가다가 큰 광풍이 돌발했습니다. 하늘이 먹장구름이 덮이고 큰 바람이 불고 파도가 태산처럼 높아졌다가 내려치니 물이 가득하고 배가 기우뚱거리며 물에 빨려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지들은 배가 침몰한다는 허상에 사로잡혀 절망했습니다. 감각적으로는 물이 가득 차 있으니 빠지지요.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이제는 파도에 침몰해 들어가니까 그들 어부로서 경험해 봐도 이런 파도가 치면 침몰합니다. 모든 것을 보아서 인간적인 감각이나 이성을 통해서 볼 때에 배가 침몰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우리가 저택으로 건너가자고 했었으니 무엇을 믿어야 할 것입니까? 그런데 여기에 제자들은 물이 가득하니 배가 가라앉아 버린 것입니다. 경험으로 보아서도 이젠 침몰한다. 그 허상에 놀랐습니다. 허상은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배 뒷편에 팔 베개를 하고 주무십니다. 왜 예수님은 편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실상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실상은 건너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실상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허상에 빠져 그들은 심히 동요하고 절망했습니다. 예수님 주무시는 것을 깨워 일으켜서 살려달라고 하니 예수님이 잠에서 깨어나서 허상에 뜬 제자들을 꾸짖었습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막4:39-41)"
허상에 들떠서 죽는다고 고함을 치고 아우성을 치는 제자들을 보고 주님이 왜 실상을 믿지 못하느냐.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어도 내가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고 했으면 가는 것이다. 내 말은 실상이다. 참되고 올바른 것이다. 이 외에 말씀에 반대되는 현상은 아무리 눈에 보이고 귀에 만져지고 맛보아지고 느껴지더라도 그것은 허상이다.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왜? 거짓되고 헛된 것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요동을 쳤느냐고 주님께서 꾸짖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기도를 보면 요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소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하니라 요나는 그 뱃속에 들어 있는데 물고기가 요동치고 물고기의 소화액이 온 몸에 덮쳐오고 냄새가 나고 심장소리가 들리고 위장이 흔들리고 그는 언제 소화가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난 다음 하나님 앞에서 말하기를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다고 합니다. 요나는 말하기를 이 모든 것은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물고기 뱃속에 있는 것과 소화액이 내게 덮혀오는 것과 심장소리가 들리고 위장이 흔들거리고 물고기가 요동치고 하는 이 모든 것은 다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나는 이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이미 내 기도를 들으셨고 하나님께서 나를 건지신 것을 믿기 때문에 나는 말씀을 믿지 환경을 믿지 아니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요나는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물고기 뱃속에서 건져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신앙 생활 가운데 우리가 꼭 알아야 될 것은 우리의 감각은 거짓되고 헛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성도 거짓되고 헛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경험도 거짓되고 헛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다 거짓되고 헛된 허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참이요 진실한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말씀 이외에는 다 허상입니다. 허상에 우리가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말씀을 알고 말씀에 섰으면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던지 말씀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우리는 생각하고 말씀을 따라 보고 말씀을 따라 느끼고 말씀을 따라 말해야 됩니다. 말씀 이외에는 다 거짓되고 헛된 허상입니다. 말씀만이 진실하고 참된 실상인 것입니다.

세번째, 우리가 오늘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십자가 밑에서의 허상과 실상을 우리가 진실하게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악이 꽉 들어찬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죄가 사람들을 붙잡아 부패하고 파괴시킵니다. 죄가 우리를 멸망으로 이끌어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밑에 나아가면 죄는 하나의 거짓되고 헛된 허상에 불과하고 죄는 무력화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실상은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와 의가 성취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죄는 이제 허상입니다.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죄의 협박과 공갈을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왜 실상은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그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죄의 값을 갚고 죄를 다 무력화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버리고 말아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상 우리들은 죄에서 해방되고 죄에서 용서를 얻고 의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실상 우리는 용서와 의로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죄의 협박과 공갈은 허상입니다.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죄를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히 용서받고 넉넉히 이기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다 의로운 사람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세상과 마귀의 권세는 거짓되고 헛된 허상입니다. 세상이 다가와서 세속의 파도를 가지고서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멀리멀리 떨어져가게 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없는 곳이 세상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나오고 난 다음 세상을 만들었는데 그 세상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들이 가정에도 계시지 않고 사업장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요. 하나님을 멀리 떠난 것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마귀가 사람들을 유혹하여 도덕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합니다. 세상과 마귀의 권세가 굉장히 큰 것 같지만 십자가 밑에 가면 다 허장성세한 것이고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왜냐? 실상 예수님께서 세상과 마귀를 십자가에서 이기시고 우리에게 천국과 성령을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그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혀 있습니다.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세상의 모든 권세를 멸하고 마귀의 모든 정사와 권세를 멸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천국이 임합니다. 천국이 임한 증거로서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이 임금이 되시고 성령이 보혜사가 되시고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오시고 천사들이 우리를 둘러 진치는 새로운 세계 속에 우리는 들어와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계가 아니라 내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 가족에 하나님이 계시고 직장에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계신 천국이 임하여 계시며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상 예수님께서 세상과 마귀를 이기시고 우리에게 천국과 성령을 주셨으므로 세상과 마귀라는 허상에 잡혀서 살지 않습니다.
요한1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귀의 일을 멸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2절에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이제는 우리 속에 세상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충만히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어디를 살펴보아도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는 세상이 없습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이 계시고 집에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의 생활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있지 세상이 있지 않습니다. 어느 곳에나 성령이 계시지 마귀가 우리에게 역사하지 못합니다. 세상과 마귀의 권세는 거짓되고 헛된 허상입니다. 예수님과 성령은 우리에게 실상으로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슬픔과 질병은 거짓되고 헛된 허상입니다. 이 세상은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슬픔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도 병들고 생활도 병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십자가 밑에 나아가면 예수님이 슬픔과 질병을 청산하시고 우리에게 기쁨과 치료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실상을 가지고 살아야지 허상에 잡혀 살아서도 안됩니다.
이사야 53장 4절로 5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것은 실상입니다. 실상은 우리 그리스도 안에서 슬픔에서 해방되고 질병에서 치료받고 하나님 앞에 기쁨과 건강을 얻은 것이 실상입니다. 슬픔과 질병은 이제 거짓되고 헛된 허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허상에 협박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허상에 놀라서도 안됩니다. 허상은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실상 여러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슬픔과 좌절과 절망과 질병에서 놓여남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것이 실상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려도 내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실상은 실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기를 너는 슬픔에서 놓여남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아프지만 실상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는 고침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허상을 믿을 것이 아니냐 실상을 믿고 따라갈 것이냐 마음에 결정해야 될 것입니다.
저주와 가난은 거짓되고 헛된 허상입니다. 이 세상에 저주와 가난이 많아요. 또 우리 현실은 직장도 잃고 우리 실생활이 가난하고 살기가 어려운 것도 많습니다. 그것이 뼈에 사무쳐 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십자가 밑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에 저주와 가난은 거짓되고 헛된 허상입니다. 실상 예수님은 저주와 가난은 대신 청산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실상입니다. 실상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저주와 가난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청산했습니다. 지금 저주와 가난이 큰 세력으로 밀고 달려들지라도 우리는 그를 바라보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거짓되고 헛된 허상아 너희 협박과 공갈에 넘어가지 아니한다. 실상 나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은 사람이다. 예수님 안에서 저주를 이기고 가난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려도 좋다. 파도가 치고 바람과 저주가 내 뱃속에 가득 차서 배가 가라앉으려고 해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 예수님께서 나와 같이 계시고 실상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너희 가난을 대신 짊어졌다고 말씀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실상과 허상사이에 방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무엇이 허상인지 무엇이 실상인지 알고 실상에 서서 허상을 보고 우리는 손가락질하고 이 거짓되고 헛된 것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죽음과 음부는 거짓되고 헛된 허상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한 이치 아니냐? 죽는 것은 사실 아니냐? 우리 가정에도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리 할머님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다. 혹은 부모 형제가 돌아가신 일이 있을 게 아니냐! 그리스도 없을 때는 그것이 실제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밑에서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면 죽음과 음부는 거짓되고 헛된 실상입니다. 왜? 바울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사망과 너 이기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사망이 너희 쏘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예수님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만일 땅에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죽음과 음부는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실상 같이 보이지만 십자가 밑에 나오면 그것은 거짓되고 헛된 허상입니다. 실상 예수님은 사망과 음부를 정복하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이룩하신 실상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눈에 아무 것도 안 보이고 귀에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우리의 감각이나 우리의 이성이나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볼 때 그것이 참되게 보이지 아니할지라도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하나님 말씀 위에 모든 것은 참된 것 같으니 거짓이요, 실상 같으나 허상이니라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거짓된 것 같으나 참이요 허상 같으나 실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세게 서서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을 믿고 말씀을 말하고 말씀을 따라 나아가면 종국에 가서 이것이 참되고 실질적인 것이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감각이나 이성이나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허상의 포로가 되어 거짓되고 헛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실상이 어떠하더라도 현실이 어떠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실되고 참된 실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것은 모두 다 허상입니다. 허상을 따라가는 자는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을 따라가는 자는 현실적으로 암담하고 캄캄하고 절망적인 것 같더라도 실제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나타나서 어둠은 빛으로 죽음은 삶으로 패배는 성공으로 좌절은 승리로 변화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상을 잡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실상을 잡고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 두바이 성회에서 외친 것이 그것입니다. 실상에 서라. 하나님 말씀만이 실상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실상이다. 그 이외 것은 다 거짓되고 헛된 것이나 그 거짓과 헛된 것을 따라가는 자는 나중에 좌절하고 절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말씀과 예수님만이 실상이라고 제가 외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실상입니다. 그 안에서 여러분은 용서를 받은 것이 실상이요 그 안에서 천국과 생명을 받은 것이 실상이요, 그 안에서 기쁨과 치료를 받은 것이 실상이요, 그 안에서 축복과 은혜를 입은 것이 실상이요, 그 안에서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받은 것은 실상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힘차게 붙드십시오. 이것 속에 여러분이 힘차게 서서 사십시오. 그 이외에는 다 거짓되고 헛된 허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유로 우리는 허상에 꽉 들어찬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세상의 가는 길은 거짓되고 헛된 길입니다. 이 허상에 잡혀서 사람들은 무엇이 있는 줄 알고 방황하다가 다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지옥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사람들은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부귀나 명예가 행복의 실상이라고 부여잡았으나 물거품으로 허상에 불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그곳에 참으로 기쁨과 소망과 사랑과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상입니다. 허상의 물거품을 붙잡고 낭패하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실상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붙잡고 영원한 믿음 소망 사랑 온유 평강 희락을 얻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악하고 거짓되고 추한 원수 마귀의 일을 다 멸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축복의 실상 속에 들어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실상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실상은 우리는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을 얻었습니다. 실상 우리 속에 천국이 들어와 있고 성령이 들어와 있습니다. 아버지 실상을 붙잡고 허상에 끌려가는 우리들이 되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너희 거짓되고 헛된 원수 귀신아, 거짓되고 헛된 질병아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각자의 몸에서 떠나갈지어다.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예수 이름으로 말미암아 고침을 받을지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상 고침을 받았으니 그 실상이 이루어질지어다.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고 건강과 생명과 자유를 누리게 될지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주의 백성들에게 복을 내리시옵소서. 이것이 실상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넘치게 채우심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짓된 저주와 마귀에게서 해방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도와 주시옵소서. 천국이 임하시고 성령으로 충만 충만 충만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