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4월 4일(부활절)
제목: 예수님의 부활과 길
성구: 요 14:1-7

오늘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의 부활과 길" 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울창한 숲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 경험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빌딩 숲이 우거진 대도시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느꼈던 낭패감, 당황함, 공포감 등은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삶에서 성공과 축복의 길을 잃고 낭패와 좌절과 실망에서 방황하게 될 때 참으로 이것은 슬픈 일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은 다 길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길을 확실히 알고 찾아서 성공과 축복의 삶을 살고 어떤 사람은 광야 같은 세상에서 끝없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들에게 참된 길이 계시기 위한 것입니다.

첫째로, 실제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용서와 의의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의 종입니다. 인간은 자아의식이 생길 때부터 양심의 죄책과 정죄감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어떠한 삶도 그 양심 속에 죄책으로 고민하지 않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도덕적인 노력과 수많은 종교에 의지합니다만 그러나 의롭게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죄 없이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33세의 생애 동안 율법을 다 지키셨습니다. 흠 없는 삶을 살아 주님께서 온전히 우리 인류를 위한 어린양 희생 제물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주님께서 대신하기 위해서 그는 십자가에 올라가 몸을 찢고 피를 흘리고 처참하게 죽음을 체험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죄로 인하여 사망의 감옥에 들어 가셨다가 그 죄를 다 청산하시고 3일만에 사망의 감옥에서 부활하려 나오셨습니다. 주님께서 만일 부활하지 못했다면 우리의 죄 값으로 죽음의 감옥에 들어가셨기 때문에 그는 죄를 갚지 못한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그가 우리 죄 값으로 죽음의 감옥에 들어가서 3일 후에 부활하신 것은 죄를 다 청산해 버렸기 때문에 감옥에 있을 필요가 없어 부활해 일어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제 예수님은 영원한 용서와 의의 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가르치시는 분이 아니라 그 자신이 바로 우리의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면 용서와 의의 길을 우리 가슴속에 얻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사람들은 모두 다 용서와 의의 길을 찾지 못하고 수많은 노력과 애를 쓰면서 종교의 숲 속에 방황하고 있지만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길이 되십니다. 예수께서 용서의 길이요 의의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신 사람은 바로 용서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며 의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요,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 아니라 길을 찾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러므로 영원히 죄와 불의와 추악과 절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용서와 의의 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사람은 더 이상 방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방황하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 길이 있습니다. 예수가 바로 우리의 용서와 의의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천국과 성령충만의 길이 되십니다. 아담이 타락하여 마귀의 종이 된 이후에 인간은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마귀의 종으로 잉태되고 마귀의 종으로 태어나서 살고 있습니다. 마귀의 나라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귀신들과 더불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취하여 살아 왔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세상과 마귀에게 점령당하여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을 한 번 찾아서 물어 보세요. 하루 살면서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생각하느냐고요. 전혀 그런 일이 없습니다. 마음이 온통 마귀와 세상으로 점령되어서 썩어질 것만 가득히 들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1서 2장 15절로 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세상에 침략해 오셨습니다. 쳐들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을 전파하시고 십자가에서 마귀와 세상과 부등켜안고 싸워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마귀와 세상을 끌고 주님께서 죽음을 통하여 그를 정복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완전히 이기셨습니다. 마귀와 세상의 최후 무기인 죽음 속으로 들어 가셔서 3일만에 죽음을 격파하시고 마귀를 무장 해제하시고 이 세상을 이기시고 부활하사 천국과 성령을 모시는 길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리켜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바로 여러분과 나의 길입니다. 천국 길이요 성령충만 길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슴속에 모시면 바로 천국 길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으며 성령충만의 길이 우리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 길을 통하여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며 그 길을 통하여 성령충만의 체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2절로 33절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을 모신 자는 그 안에 천국이 임하여 계시고 성령이 임하여 계십니다. 여러분 속에 천국이 임하여 계시고 성령이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그 증거로 여러분께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예수님을 만왕의 왕 만주로 삼고 믿으며 성령이 같이 계시며 말씀의 양식을 먹으며 기도 드리며 또 천군과 천사들이 우리 주위에 포위하고 우리를 옹위하고 있는 것을 믿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은 여러분께서 그리스도를 믿고 세상과 마귀가 쫓겨났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셋째로, 기쁨과 치료의 길 되신 예수님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데 하나님을 등지고 나온 아담은 생명샘에서 끊어지고 끝없는 부패 행렬 속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영이 죽어 부패하고 마음이 부패하여 병들고 육체가 부패해 병들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서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 인본주의로 살고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으로 산다고 하지만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은 모두다 터진 웅덩이입니다. 물을 채워 놓을 수 없습니다. 그곳에 기쁨도 소망도 삶의 목적도 가치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기쁨도 평강도 잃어버린 인생은 비참합니다. 하나님이 바로 기쁨이신데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기쁨을 떠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부귀 영화 공명을 얻어 잠시 기쁜 것 같지만 그것은 거짓되고 헛된 허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것 속에 슬픔과 고통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그 영혼 속에 샘솟는 기쁨은 오직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올 때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쁨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즐거움이 넘친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 속에 넘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미움으로 꽉 들어차고 탐욕으로 병들고 슬픔으로 가득한 것이 오늘날 인생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육체의 질병에 사람들은 매일 같이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모든 고통을 걸머지고 십자가에 매달린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에 우리의 슬픔으로 그 등이 휘어졌습니다.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다 걸머지셨습니다. 우리의 연약과 병듬과 고통을 다 걸머지고 마음의 괴로움을 다 걸머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지상에서 태어난 인류 중에 가장 큰 슬픔과 고통을 걸머지고 십자가의 죽으심을 체험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를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들어 가셨다가 3일만에 슬픔과 질병과 고통을 모두 다 정복하고 주님께서 이기셨기 때문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지셨으면 부활 못합니다. 지셨으면 그 무덤 속에 잡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그가 우리의 모든 슬픔을 청산해 버리시고 우리의 마음의 고통을 청산해 버리시고 우리의 연약과 질병을 다 이기신 증거를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기쁨과 치료의 길을 보여 주시는 분이 아니라 예수님이 바로 기쁨의 길이요 예수님이 바로 치료의 길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바로 기쁨의 길 속에 들어 온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 믿은 사람은 치료의 길에 들어선 사람인 것입니다. 그 길에서 예수님을 찾고 부르짖으면 거기에는 기쁨이 넘쳐나고 치료와 건강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길을 가르치는 분이 아니라 길이 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길 속에 바로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넘쳐 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로 25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서 12장 3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바로 예수님이 바로 기쁨의 우물이요 바로 기쁨의 길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치료의 길이요 건강의 길입니다. 그 길속에 우리가 걸어가며 부르짖을 때에 우리 속에 기쁨이 넘쳐나고 치료와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이 길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감추인 길인 것입니다. 오직 마음을 깨뜨리고 회개하고 나올 때에 성령이 이 길 되신 예수님을 보여 주심으로 이 감추인 길 속에 들어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예수님께서는 형통과 축복의 길이 되십니다. 이 예수님은 형통과 축복을 보여 주는 분이 아닙니다. 그 자신이 형통과 축복의 길이 되신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삶의 형통과 축복의 길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더 많은 학위를 가져야 되고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하고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더 많은 줄을 잡아야 하고 그래서 형통과 축복의 길로 들어서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담은 에덴에서 쫓겨난 후 가난과 저주의 가시 밭에서 살았고 오늘 인류도 그 가시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가시밭에서 길을 찾아 방황하며 피투성이가 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아서 17장 5절로 6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이처럼 주님을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아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이 광야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의 댓가는 바로 여러분과 나를 저주와 곤고와 가난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자기의 몸으로 생활로 저주와 가난을 담당하시고 부활하심을 통하여 그 모든 저주와 가난을 무덤에서 다 청산하시고 우리에게 형통과 축복의 길이 되신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했음이라 이는 그리스도의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저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저희 가난하심으로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여러분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와 가난을 그 몸에 걸머지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 장사지내 무덤에서 그를 다 청산하고 부활의 승리로 일어나셔서 오늘날 여러분에게 축복과 형통의 길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거기에 형통이 가득합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바로 거기에 축복이 가득합니다. 예수님이 그 길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그 길을 통하여 형통을 강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길을 통하여 축복의 강물이 넘쳐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길 안에 들어오십시오. 예수의 길 안에서만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하나님의 복이 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는 하나님의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 그 길을 통해서 우리에게 넘쳐 들어오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의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길을 가르치는 분이 아닙니다. 생명의 길이 되십니다. 이 세상의 태어난 위대한 종교가들은 모두 다 길을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공자도 참되게 사는 길을 가르쳤습니다. 석가도 인생을 깨닫고 사는 해탈의 길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길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길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길이 되신 것입니다. 여러분 죽음은 미로 속에 빠진 사람들은 다시 살아나지 못합니다. 사람이란 죽고 난 다음에는 다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 미로 속에 한번 들어간 사람은 되돌아오지 못합니다. 영생의 길을 가르친 선생이나 성자나 종교인들도 죽음에 빠진 이후에 되돌아 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느 무신론자가 불란서 임금님에게 가서 임금님 내가 새 시대 종교를 하나 만들겠습니다. 그러니까 임금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죽었다가 부활하면 내가 그 종교를 믿겠거니와 자네가 죽었다가 부활하지 않은 이상은 아무리 멋있는 종교를 만들어도 나는 믿지 않겠네. 그 말이 맞습니다. 여러분 어떠한 종교를 전파하고 어떠한 철학을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그가 직접 몸으로 죽었다가 부활하기 전에는 자기가 가르치는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예수님만이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이기심으로 부활하셔서 생명의 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 이외에 부활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 이외에 부활의 신앙을 전파한 분이 누가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시면서 우리에게 시 한수도 남겨 놓지 않았습니다. 논물 한 페이지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은 수많은 사람들은 그 부활의 성령을 통하여 영감을 받아 위대한 시인도 되고 위대한 창작가도 되고 위대한 예술가도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흑암을 직접 몸으로 감당해서 이기시고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 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로 15절에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우리는 죽음을 무서워하여 죽음의 종이 되어 불안과 공포 속에 떨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이제 사망의 줄을 끊어 버림으로 죽음의 공포에 몸부림치는 우리에게 영원한 해방과 자유를 주셨습니다. 바울 선생같은 사람은 담대하게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사망을 경멸하고 조롱했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예수님께서 자신 있게 말했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 죽음은 없어지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예비해 놓으신 내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는 한 과정이라는 것을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우리에게 죽음이 영원한 절망의 동굴이 아니라 저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터널이 된 것을 우리가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죽음의 터널을 통하여 저 세상으로 건너갑니다. 더 영화롭고 맑고 밝고 환하고 소망차고 기쁨이 넘치는 세계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만큼 우리에게 큰 빛과 소망을 주는 사건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은 그 길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위해서 길을 만드시지요. 그러나 그 길은 항상 예수님이 바로 그 길이 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수가에 와서 그 창일한 바닷가에서 갈 길을 몰라 좌절과 절망에 처했습니다. 뒤에는 바로왕의 대군대를 거느리고 도로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으러 왔습니다. 이제는 갈 길이 없습니다. 모세와 더불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만드셨습니다. 홍해 가운데 길을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홍해수가 열렸다고 하지만 그 열린 홍해수가 다른 분이 아닌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홍해수를 여시고 그 길은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생명과 승리와 축복의 길을 내셨고 그 길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길을 통해서 용서의 강물이 넘쳐납니다. 예수님의 길을 통해서 의의 강물이 넘쳐납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길을 만드신 분이 아니라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길을 통하여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그 길을 통해서 성령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길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길을 통해서 하늘의 기쁨이 우리에게 쏟아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길을 통해서 치료와 건강이 넘쳐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찾았습니다. 그 길 속에서 우리 하나님을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길을 통해서 하나님은 형통을 퍼부어주십니다. 그 길을 통해서 축복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길을 찾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른 데서 길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형통과 바로 축복의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생명길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바로 생명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부어주십니다. 예수님의 길을 통하여 부활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늘 영광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는데 바로 예수가 아버지와 우리와 직통하는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주님께서 길 되심을 확실히 증명한 것입니다. 사망도 예수님의 길을 막지 못했습니다. 마귀와 세상도 예수님의 길을 막지 못했습니다. 슬픔도 괴로움도 질병도 예수님의 길을 막지 못했습니다. 저주도 가난도 예수님의 길을 막지 못했습니다. 죽음도 절망도 지옥도 예수님의 길을 막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길로서 오셔서 이 모든 장애물을 다 극복하시고 주님께서 승리자인 것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부활하심으로 이제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에게 참 생명의 길인 것을 확실히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다른 길로 가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 속에 들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을 마음속에 모셔들이고 이 길 속에 뛰어 들어가서 이 길 안에서 하나님을 찾고 이 길 안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이 길 안에서 하나님께 믿음으로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이 길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오늘도 용서와 의를 넘치게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천국과 성령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기쁨과 치료가 넘쳐 나게 해 주십니다. 형통과 축복을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영생과 천국의 영광이 여러분 속에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인 것입니다. 그 부활하신 예수 속에 아버지가 역사하시고 이 아들을 통해서 우리는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천년 전에 무덤 문을 헤치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영원한 믿음 소망 사랑의 원천이 되고 우리에게 미래를 살아갈 목적과 방향과 의미와 가치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 예수! 예수만이 우리의 삶 속에 무궁 무진한 참 보배가 되신 것입니다. 오늘 이 길 안으로 뛰어 들어 오십시오 이 길 안에 들어온 사람은 이 길을 통해서 아버지와 직통하니 아버지께 모든 것을 고하십시오. 아버지가 여러분이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시고 여러분의 가슴속에 길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이룩하신 오중 복음과 삼중 축복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모든 사람은 길을 찾고 있으나 광야 같은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길이 되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방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예수님이 바로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이 되셨습니다. 우리에게 장벽으로 쌓였던 모든 죄와 질병, 저주와 절망, 죽음의 골짜기는 무너지고 그 장애물은 다 제거되고 그리스도가 이김으로 밝은 길이 되신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 이 길을 통해서 우리 모두 다 아버지의 은총과 축복 속에 들어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힘차게 기도하고 부르짖고 믿고 외치고 나아가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총과 복을 다 받아 들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땅에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베푸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