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4월 18일
제목: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성구: 시 23:4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란 말은 별로 기분 좋은 말은 아닙니다. 죽음이란 어둡고 캄캄하고 외로운 골짜기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란 반드시 육체적인 죽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 아닌 내적 마음에 경험하는 죽음도 있습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그것이 자기의 존재적인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육체적인 자기 종말이나 정신적인 자기 종말은 모두 다 고통스럽고 두려운 체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을 주시기 전에 우리들로 하여금 반드시 크고 작은 죽음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사망의 골짜기를 통과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수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은 75세에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 땅을 향해 출발해 나아갔지만 가나안 땅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큰 기대를 걸고 자기 아내와 조카와 일가 친척과 종들을 거느리고 의기 양양하게 가나안으로 들어 왔지만 그곳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처참한 기근이었습니다. 햇빛은 내려 쪼이고 산과 들은 다 말라버리고 물은 없었습니다. 짐승떼는 다 죽고 같이 온 일가 친척 종들은 다 뿔뿔이 헤어져 가고 종국적으로 남은 것은 자기와 자기 처와 조카 그리고 빈 손 밖에 없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그는 이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애굽에 내려갔다가 자기 아내조차 빼앗기고 외로운 삶을 사는 너무나 처참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것이 그에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체험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정신적인 죽음의 고비를 겪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죽은 자와 방불한 자라고 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삭도 역시 한 가지 입니다. 이삭은 이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이지만 그러나 그는 한 20살쯤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모리아 산에 와서 각을 떠서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야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사흘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에 와서 제단을 쌓고 난 다음 갑자기 아버지가 그를 잡아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그를 묶어 장작 위에 얹어 놓고 발로써 머리를 밟고 칼을 들어 목을 자르려고 했습니다. 그 찰나에 하늘에서 천사가 아브라함, 아브라함아 네 독자 이삭을 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그는 죽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참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났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생애에 끊임없는 은총과 축복과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도 보면 야곱이 얍복강에서 당한 시련은 과연 죽음과 같은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외아저씨 집에 20여년 동안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처자를 거느리고 고향 땅으로 돌아오다가 형이 그를 죽이기 위해서 4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외 아저씨는 다시 아람으로 오면 살려 놓지 않겠다고 했는데 형은 400인의 군대를 거느리고 죽이러 오니 그는 완전히 샌드위치가 되었습니다. 가족들을 다 강 건너 보내고 자기 혼자 강 이편에서 상황을 살피고 쪼그리고 있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밤에 와서 덤비고 말았습니다. 이 놈아 건너가라 처자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고 생사를 같이 하라. 야곱은 아니올시다 처자가 죽더라도 내 소유를 다 빼앗기더라도 나는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밤새도록 씨름했습니다. 기어코 순종하지 않으니 천사가 손을 들어 환도뼈를 치니 환도뼈가 어그러지고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젠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형이 와도 도망을 칠 수 없어요 완전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그는 통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께 내어 맡길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운명을 걸고 얍복강을 아침에 건너가서 처자들을 앞서서 형을 향하여 걸어갔었습니다. 400인의 군대를 거느리고 동생을 죽이려고 오던 형이 그 절름발이가 되어서 절뚝거리며 오는 동생을 바라보고 측은한 마음이 생겨 말에서 내려 그를 끌어안고 통곡을 하며 울고 화해하고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하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요셉은 보십시오. 17살에 형들의 미움을 사서 애굽의 종으로 팔렸습니다. 그래서 장자 13년 동안 그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하면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짐승과 같은 생활을 하며 정신적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서 2년 이상의 세월을 감옥에서 정신적인 고통과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난 다음 애굽의 국무총리로서 등극하게 된 것입니다.
모세도 한 가지 입니다. 모세는 40에 이스라엘을 도와주려고 하다가 바로의 미움을 사서 도망을 쳐서 그 이후에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했습니다. 인적이 끊어진 곳에 오직 바람소리 뜨거운 태양 모래 밖에 없는 그 곳에 양떼를 몰고 그는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울고 통곡하고 그의 죽음을 체험했습니다. 온 미디안 광야가 그의 무덤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정신적인 무덤을 통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한 이후 80에 하나님이 그를 떨기나무에서 다시 부르셔서 은혜를 주시고 지팡이 하나를 들고 애굽으로 건너가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오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다 정신적인 극한의 고통과 죽음을 체험한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그들은 다 지났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했을까요? 그냥 하나님은 축복을 줄 수 없을까요? 왜 우리의 삶 속에 크고 작은 많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체험이 다가올까요?

그것은 첫째로, 우리가 주인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하여 깨뜨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종 아닌 주인이 되겠다는 주장인 것입니다. 오직 우주 가운데 주인은 하나님 한 분 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지극히 사랑하셨지만 주인 되는 것은 허락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는 다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는 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었습니다. 선악과라는 것은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주인만이 이것이 좋다 나쁘다를 결정합니다. 종은 따라가지 결정권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꾀임을 받아 그만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처럼 주인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종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될 것인데 주인이 되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주에 하나님과 인간이 주인 다툼을 하게 됩니다. 두 주인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ㅤㅉㅗㅈ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은 배속에 잉태될 때에 타락한 인간으로 잉태되고 태어났을 때 타락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죄인이요 주인 행세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반항하고 불순종하고 자기 스스로가 선악을 판단하며 자기 마음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인간은 안 좋다고 그럽니다. 하나님은 나쁘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 좋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다툽니다. 하나님과 씨름합니다. 하나님과 경쟁합니다. 서로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인간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에덴에서 쫓겨나고 인간은 그 긴 세월을 통해서 고통과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이사야1장 2절로 4절에 보면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여러분 사람들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인본주의에 서서 이제는 자기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서 삽니다. 사람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는데 그 첫째는 생명의 근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팠는데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주인이 된 인간이 깨어져서 복종하는 종이 되기 위해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옛사람을 죽여 버리고 벗어 던져 버리고 새롭게 거듭나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요 종으로서 거듭나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육을 통해서 안됩니다. 훈련을 통해서 안돼요. 죽어야 됩니다. 고난을 통해서 죽음의 체험을 해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시고 하나님이 사용하시려고 하는 자마다 크고 작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 123편 1절로 2절에 보면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종의 눈이 그 성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 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주인이 모든 권한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이 좋고 나쁜 것을 결정합니다. 종은 주인을 쳐다보고 기다릴 따름입니다. 주인이 결정하는 것은 행할 따름이지 종이 주인 앞서서 좋다 나쁘다를 결정할 권한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주인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키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우리 마음대로 할 권한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좌편으로 가라고 하면 좌편으로 가고 우편으로 가라고 하면 우편으로 갑니다. 선택은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종할 따름인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게 하는 이유는 회개시키기 위하여 그런 것입니다. 사람이 평안할 때는 자기 반성을 하지 않습니다. 편안하고 좋으니까 그냥 자기 생각대로 삽니다. 그러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환난과 고통이 다가오면 그때는 양심에 손을 얹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고통 속에 들어 갈 때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반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가르치심을 통해서 통회하고 자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항상 평안한 날만 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우리가 늘 반성하고 깨달아서 변화를 받기 위해서는 환난과 고통을 당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하는 것은 종국적으로 우리에게 굉장히 좋은 것입니다.
에스겔서 18장 30절로 32절에 보면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고 사망의 길을 떠나 생명의 길을 택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다가오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은 통회하고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이유는 순수한 믿음을 갖기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는 눈에도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도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캄캄합니다. 절망입니다. 동서남북 어디를 보아도 도울 자 없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친구들도 다 떠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일가 친척들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나 혼자 오직 사망의 물에 빠져 허우적입니다. 그러할 때에 의지할 곳이 전혀 없습니다. 순수한 믿음 하나님 밖에는 의지할 곳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내 지혜도 총명도 모략도 재능도 지식도 다 떠나갔습니다. 옛날에 자기 자랑하던 것 다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먼지와 티끌에서 뒹구는 지렁이 같이 되었습니다. 이래서 그런 인간 교만 다 버리고 인간 자랑 다 버리고 오직 한 가지 믿음만 가지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향하여 부르짖는 순수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러한 순수한 믿음을 갖도록 훈련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하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지 아니하면 인간은 지푸라기라도 잡을 것이 있으면 인간은 그 지푸라기를 잡습니다. 그러나 정 잡을 것이 없으면 그때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로 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는 시련을 통하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온전한 믿음을 얻게 해서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순수하지 못하고 우리가 믿습니다라고 말을 하더라고 그것은 많이 혼탁된 그런 믿음이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하여 순수하고 뜨겁고 열렬한 믿음으로 우리가 변화 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시험과 환난의 골짜기에 들어 설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수가에 와서 앞에는 창일한 홍해수요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그들을 도로 잡으러 와서 완전히 샌드위치가 되어 이제는 갈 곳이 없게 되었을 때에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홍해수를 가르고 이스라엘을 구출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평안하고 안전하게 살 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난 당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그 권세와 능력으로 우리를 건져 주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통할 때에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당했기 때문에 오늘 성경에 그곳에서 하나님이 나타난 위대한 기사와 이적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의 고난을 통해서만 완전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기회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기적의 시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망의 출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고난 당할 때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영광을 나타낼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주님께서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께 영광을 받게 되었다고 말했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영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38편에 7절에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는 인간이 고난에 처했을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인간을 건져준 그 영광의 이야기로 꽉 들어 차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섯째로,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는 것은 더 큰 은혜를 받고 더 큰 복을 받기 위한 그릇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에 우리는 질그릇이라고 말했습니다. 질그릇 흙을 가지고서 주님이 그릇을 만듭니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깨뜨리고 하나님이 사용하기 합당한 그릇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련과 환난은 우리에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징조가 되는 것입니다. 보통 때는 변화가 없어요. 그러나 환난과 고난을 당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서 내가 깨어지고 눈물 범벅이 되고 고통을 당할 때에 그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새로운 그릇으로 만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새로운 그릇으로 만들어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담을 수 있게 일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것은 여러분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뜨려야 주님께서 귀한 그릇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원래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 때에 흙을 가지고 와서 흙을 씻고 난 다음에는 그 흙을 깨뜨립니다. 그냥 막 기계 속에 넣어서 찢고 몽둥이로 때려서 그 진흙을 깨뜨려 가지고서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녹로에 앉아서 그릇을 만들지요. 이러므로 사망의 체험은 우리를 깨뜨려서 완전히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제조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고통을 우리가 참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고집을 다 깨뜨리고 징계를 주어서 훌륭한 은총을 베푸십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에서 11절에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하나님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하여 우리를 새롭게 하고 우리를 징계해서 변화를 받게 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더 크고 아름다운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일평생을 살면서 적고 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반드시 지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와 같이 하는 사람은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와 같이 계셔서 주의 지혜와 주의 능력으로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공장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더 큰 희망을 주는 하나님의 산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조차도 죽음의 터널을 통해 부활의 영광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통하지 않았더라면 부활의 영광스러운 아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통하지 않았더라면 인간의 죄악을 대속할 수도 없고 인간 속에 있는 세상과 마귀도 축출할 수 없고 예수님이 죽음을 통하지 않고는 우리의 슬픔과 질병도 대속할 수가 없고 우리에게 있는 저주와 가난도 물리칠 수 없으며 사망과
음부도 철폐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죽음을 통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다 청산하고 정복하고 극복하고 영광스러운 부활로 일어나서 오늘날 우리에게 의의 원천이 되고 천국과 성령충만의 원천이 되고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과 치료의 원천이 되고 우리에게 변영과 축복의 원천이 되고 우리에게 영생과 부활과 천국의 원천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 것은 그때는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이지만 지나고 보면 오늘날에 온 인류의 운명을 새롭게 하고 우주의 역사를 새롭게 하고 우리의 미래에 영원한 희망을 주는 가장 영광스럽고 위대한 사건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옛사람을 훌훌 던져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몸에 붙어있는 지긋지긋한 옛사람을 아무리 공부를 해도 안 벗어집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벗어져요. 아무리 도덕적인 훈련을 해도 안 벗어져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 이 허물이 벗겨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갈아입고 영광스러운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변화될 때에 그 골짜기를 벗어나게 되고 그 후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우리가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 적은 사망이 다가오면 적은 부활이 다가오고, 큰 사망이 다가오면 큰 부활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적은 고난은 적은 축복을 약속하고 큰 고난은 큰 축복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동등 그 이상의 축복이 종국적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의미 없고 무의미한 고난은 절대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무의미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다 목적과 계획이 있어 여러분과 나에게 시련과 환난과 고난을 당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이 계획한대로 그 맑고 밝고 환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선조들도 주를 잘 믿은 사람들은 모두 다 크고 적은 환난을 당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 변화 받았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에게도 역시 크고 작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다가오고 우리에게 좌절과 절망이 다가옵니다. 이것은 모두 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뜨리고 변화시켜 아버지의 뜻대로 새로운 그릇을 만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채워주고 복을 채워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여 우리가 여러 가지 사망과 음침한 골짜기를 통하는 경험을 할 때에 낙심하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고 좌절하고 절망하여 주저앉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고 희망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고 찬미하며 나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믿고 견디며 찬미하고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영광의 아침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오늘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간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그 자비의 손길과 권능의 손길을 나타내 주셔서 모든 병든 자 안수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의 병을 고쳐 주옵시고 육체의 질병을 고쳐 주옵소서. 병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줄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병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병을 고치기를 원하셔서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병을 다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저가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간구하오니 주께서 모든 병든 자를 다 고쳐 주시옵소서. 흑암의 세력을 멸하여 주시옵시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마귀의 일을 멸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의 불같은 능력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질병과 고통은 각자의 몸에서 물러갈지어다. 나오라. 물러가라. 떠나갈지어다. 소멸될지어다. 주 예수 이름으로 고침을 받을지어다.
야웨 하나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왔사오니 이 짐을 다 맡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도와주셔서 온전히 깨어지고 변화받게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축복의 그릇으로 만드셔서 하늘문을 열고 넘치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옵시고 아브라함의 복으로 채워 주시옵시고 가시와 엉겅퀴를 제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이여 주의 은총과 축복으로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행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모든 사람에게 성령으로 채워 주옵소서. 성령의 위로를 통해서 우리가 세상을 이겨나갈 수가 있사오므로 뜨거운 세상의 햇빛을 피하고 살아갈 수 있는 성령의 위로의 구름으로 우리를 덮어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성령충만, 성령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이여 천국이 각자의 속에 다 임하여 있사오니 천국 속에서 영광스럽게 승리의 삶을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