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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 9일 제목: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성구: 에베소서 5:22-6:4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인류 첫 가정은 하나님께서 이룩해주신 에덴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아담과 하와 부부가 에덴 낙원에서 삶의 보금자리를 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마귀의 꾐에 빠져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반역하고 아담은 하와를 원망하고 하와는 뱀을 원망하고 상처투성이가 되어 에덴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안 계신 세상에서 이룩한 가정은 얼마 안 가서 가족 분쟁이 일어났고 장남 가인이 차남 아벨을 돌러 쳐죽이는 비극이 가정에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인류 첫 조상이 이룩한 가정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행복한 가정을 갖기 위해서는 실패한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서 많은 교훈을 배워야만 할 것입니다. 첫째로, 행복한 가정의 절대적인 조건은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모시고 섬기는데 있습니다. 시편 127편 1절로 2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하나님 없이 집을 세우고 성을 지키고 고생하고 수고하는 것이 다 결국에는 헛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됩니다. 우리의 가정에 하나님 나라 중심으로 살고 우리 가정 생활 전체 속에 그리스도의 의가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2절로 6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면 하나님이 이처럼 복을 주셔서 어떻게 행하든지 축복이 넘쳐날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의 근원이 하나님인 이상 우리 하나님을 중심으로 가정에 섬겨서 하늘나라를 간절히 사모하고 그 의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에 깊이 모셔들이고 살면 여러분 복의 문이 우리 가정에 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정 예배를 드리고 성수 주일을 하고 십일조를 반드시 실천해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맞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행복한 연결이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가족이 다 뿔뿔이 헤어지고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이 시점에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라도 가정 예배를 드립니다. 주일날은 꼭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주일에는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과 우리와 하나가 되어 산다는 확실한 신앙의 증거를 보여 주어야 될 것입니다. 신명기 6장 5절로 7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그러므로 가정에 자녀들에게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것이 마음에 깊이 깊이 알려지도록 교육을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여서 기도 성회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을 가정에 모시고 모든 마귀의 훼방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연의 공해로 꽉 들어찬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공기가 부패하고 물이 부패하고 우리가 먹는 양식이 모두 다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의 영적인 정신적인 삶을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정신적인 오염을 내어ㅤㅉㅗㅈ기 전에는 정화하기 전에는 행복이 있을 수가 없지요. 그러므로 기도 생활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도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고 말씀하셨음으로 가정에 모여서 기도할 때에 주님이 가정에 임재하여 계신 것입니다. 시편 112편 1절로 3절에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섬길 때에 그 가정에 의롭고 부귀와 재물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행복한 가정은 먼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지고 그것이 실천될 때에 가정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원만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남편으로서의 특권과 의무가 있습니다. 남편은 가정의 머리라고 성경에 말했습니다. 남편은 가정의 리더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가정에서 남편은 머리로서 가정에 리더로서 존경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가정에서 남편이 존경을 받지 못하고 남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아버지 대접을 받지 못하면 이것은 죽지 뿌러진 새와 같습니다. 날지 못합니다. 그 사람은 세상에 나아가서 아무 것도 못합니다. 요사이 가정이 사랑으로써 존경으로써 이루어지는 가정이 아니고 돈이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이 큰 낭패입니다. 지금 길거리에서 잠을 자고 있는 사람에게 언제 집으로 돌아가겠느냐고 물어 보면 모두 다 똑같이 돈을 벌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돈이 집입니다. 아내의 사랑과 자식의 사랑, 존경 이런 것이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돈이 가정을 이룬다고 하기 때문에 물질 만능주의 가정은 언제나 깨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남편은 돈이 있든지 없든지 가정의 리더로서 머리로서 존경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나 자녀들은 남편이나 아버지를 존경해야 합니다. 가정의 중심이요, 기둥인 남편이나 아버지가 존경받지 못하고 리더가 되지 못하면 그 가정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리고 남편은 부드럽고 따뜻하며 자상스럽고 이해와 동정심이 많은 남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9절에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오늘날 아내를 괴롭게 하는 남편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남편이 권위주의로만 가정을 이끌어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따뜻하며 자상스럽고 이해와 동정심이 많아서 가정에 남편이 들어오면 온 가정 분위기가 훈훈하게 봄바람이 부는 그런 가정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 가정법률상담소에 들어오는 상담 문제의 59%가 이혼 문제입니다. 가정에 59%가 지금 이혼 문제로 말미암아 골머리를 앓고 부모 갈등이 17%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남편은 이기주의 자기 쾌락주의자가 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인지 자기만 생각합니다. 아내도 나만 섬겨라. 자식들도 나만 섬겨라. 그래서 집에 와서 고함 고함치고 호통하는 그런 이기주의 자기 쾌락만 생각합니다. 무엇이든지 나만 잘먹고 나만 잘 입고 나만 행복하면 된다. 그리고 아내나 자식들은 내 쾌락과 내 행복의 이용 가치에 불과하다 이러한 삐뚤어진 생각을 가진 남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7절에 보면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아내와 사이가 삐뚤어지면 기도가 막힌다고 했습니다. 많은 남편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것은 아내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고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을 때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이 막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은 이기주의나 자기 쾌락주의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처자를 부당하고 아내의 꿈을 이루어지는 남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뼈가 으스러지더라도 남편 된 이상은 취로사업을 하든 동냥을 하든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가족을 먹여 살릴 힘이 없으면 자기의 주권을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은 결혼해서 아내를 데리고 왔으면 아내가 그 남편을 통해서 자기 꿈을 이루고 자녀들도 아버지를 통해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다해서 뒤를 받들어 주는 이러한 남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 되기가 쉬운 줄 압니까? 절대로 쉽지 않아요. 그러므로 이런 각오를 하지 않고는 장가가지 말아야 합니다. 남편 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혼해서 자식만 낳으면 남편인 줄 아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아내로서 특권과 의무가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라고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내는 반드시 남편의 사랑을 요구할 특권이 있습니다. 남편의 귀여움을 받아야 할 특권이 있고 또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원래 남편이 열심히 일해서 경제적인 수확을 얻어서 가정을 돌볼 수 있도록 그렇게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 경제적인 데서 나옵니다. 경제력이 있으면 가정의 리더쉽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찌하든지 경제력이 있어야 합니다. 경제력이 없으면 가정을 이끌어 갈 수가 없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살리고 이끌어 나아가야지요. 아내는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고 그 다음 아내로서 의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남편이 한 마디 말하면 열마디 대꾸하고 남편이 좌하면 우하고 우하면 좌하고 그렇게 되면 콩가루 집안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실 때에 하나님은 남녀에게 인격적인 동등한 권한을 주었지만 그렇지만 가정을 이루는 데에 있어서는 순서가 있습니다. 남편이 가정의 머리요 리더요 아내는 남편을 내조하고 그리고 복종하고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아내의 마음속에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남편에게 복종할 마음이 없어지면 벌써 아내로서의 의무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런 가정은 끝없는 고뇌가 따르는 것입니다. 언제나 남편은 아내의 내조를 통하여 용기백배합니다. 제가 늘 말하는 것처럼 왜 오늘날 남편들이 홈리스가 되어 있습니까? 자식도 있고 아내도 있는데 왜 서울역 지하도에 누워 있습니까? 그는 집에 돈 버는 것이 겁이 나서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왜 아내가 남편을 진실로 내조한다면 돈 못 벌어 온다고 그냥 구박을 하고 바가지를 긁어서 남편으로 위축되어 집을 뛰쳐나가게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어려울 때일수록 아내가 남편에게 힘을 실어 주고 용기를 주고 능력을 주면 그 사랑에 감격해서 어떠한 육체 노동이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남편이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아내가 내조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언제나 역사를 통해서 배울 때에 훌륭한 남편 뒤에는 훌륭한 아내가 있습니다. 수많은 역경 중에도 힘과 용기를 실어 주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다가 너무 힘들고 어려워 하나님이 자기를 버린 것 같아 낙심해서 그만 드러누웠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방안에서 가만히 들어보니까 그 부인이 마루에서 아이고 아이고 울고 있는 것입니다. 완전히 상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면서... 누가 죽었소 물어 보니까 하나님이 죽었어요. 하나님이 죽다니? 부인이 곧 하나님이 안 죽었으면 당신이 하나님을 믿고 종교개혁을 하고 그렇게 낙심해서 완전히 드러누울 수 있습니까? 가만히 보니까 이처럼 믿던 하나님을 떠나서 낙심하는 것을 보니까 틀림없이 하나님이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장례 지낸다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크게 남편이 크게 각성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내가 왜 낙심하겠는가? 그래서 종교개혁을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편은 의외로 아내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말 한마디가 남편을 죽이기도 하고 용기를 주기도 하고 낙심을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에 대해서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용기를 주고 힘을 주고 위로를 주고 그래서 일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서 14장 1절에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집을 세우는 여인이 있는가 하면 자기 손으로 그 집을 다 허무는 여인도 있는 것입니다. 아내는 반드시 가사를 돌보고 자녀를 잘 양육해야 될 의무가 있습니다. 잠언서 31장 30절에 보면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이 세상에 아무리 고와도 세월이 지나가면 고운 것 다 없어지잖아요? 아름다운 것도 다 사라지잖아요? 그러나 마음속에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가정을 돌보는 여인, 이것은 진실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날 남편과 아내가 손을 합쳐서 행복의 사냥꾼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냥하는 사람이 산과 들로 다니면서 짐승을 찾아서 사냥을 하지 않습니까? 남편과 아내가 서로 손을 맞잡고 행복을 사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편과 아내가 함께 살면서 약점을 파헤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 치고 약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산도 멀리 있을 때는 참 아름답게 보이지만 금강산도 직접 가 보십시오. 그곳에 뿌러진 나무, 흩어진 쓰레기, 튀어나온 바위 별로 아름답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산과 사람은 멀리서 보면 좋은데 가까이에서 보면 허물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허물이 있기 때문에 사람을 위해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서로 약점을 파헤치지 마십시오. 약점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다 서로서로 개성도 다르고 교육도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자라온 배경과 가정도 다릅니다. 어떻게 둘 다 똑같을 수 있습니까? 이러므로 약점을 서로 보안하는 것이 부부지! 약점을 서로 파헤치는 것이 부부는 아닙니다. 서로 절대 비난하지 마십시오. 아담은 하와를 비난하고 하와는 뱀을 비난하고 형은 아우를 비난하고 아우는 형을 비난하고 그래서 아담과 하와의 가정이 파탄에 이르고 말았지 않습니까? 누가복음 6장 36절로 37절에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부부간에 서로 비판하고 정죄하면 결국에 그 가정은 파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간에 행복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넓게 가져야 됩니다. 마음이 좁기가 대통만 해가지고서 남편이 이말 하면 부인이 왈칵 성을 내고 부인이 이말 하면 남편이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 그런 가정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마음을 열어서 넓게 가져야 합니다. 오해 잘하고 화 잘내면 깊은 물이 되요. 남편이 오해를 잘하고 화를 잘 내면 부인이 입을 닫습니다. 또 부인이 자꾸 오해를 잘하고 화를 내면 남편도 입을 닫아 버립니다. 서로 대화가 끊기는 것입니다. 서로 기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로 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혹시 사람이 살면서 분이 날 때가 있지만 절대로 해지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해가 지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록 분을 품고 있으면 사단이 틈을 타서 파괴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옛말에 한 가정보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더 쉽다고 말했습니다. 나라 다스리는 것은 경찰 병력도 있고 검찰도 있고 군대도 있어서 나라 다스리기에는 쉽습니다. 그러나 가정을 다스리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돈이 집은 지으나 사랑이 가정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서 돈으로써 호화로운 별장도 가지고 좋은 집도 짓지만 그러나 가정은 돈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사랑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절대로 사랑을 가지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들 때에 갈비뼈를 취해서 만든 것은 갈비뼈는 심장에 가장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간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이지 이성의 관계도 아니고 폭력의 관계도 아닙니다. 부부간의 문제를 이성이나 이론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또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해도 안됩니다. 어찌하든지 애정으로 해결하려고 해야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존경하고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존경하고 아내도 남편을 존경하고 서로서로 잘난 점을 자꾸 칭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평소 부부 싸움이 아주 심해서 화를 삭히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세운 한 부인이 가만히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우리 남편을 변화시켜서 잘 살아야 되겠다. 그래서 하루는 백지에다가 남편의 잘난 점과 장점을 잔뜩 적어 가지고서 편지 봉투에 넣어 남편 포켓에 출근할 때 넣었습니다. 그 남편이 회사에 가서 앉아 있는데 그날 남편에게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결혼하고 난 다음 평생에 그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전화를 한 적이 없어요 "여보 너무 애쓰지 말고 건강 조심하고 꼭 점심 잡수시고요" 이 여자가 뭐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점심때에 포켓에 손을 넣어 보니까 편지 봉투가 하나 있어요. 편지 봉투를 열어 보니까 아내가 자기에 대한 장점을 모조리 다 적어 놓았습니다. 이런 좋은 장점을 많이 가진 남편을 내가 알지를 못하고 내가 결점을 들어서 비난한 죄를 회개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까 굉장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집에 오니까 그 방안에 남편의 장점을 적어 가지고서 사진틀을 만들어서 방에 걸어 놓았습니다. 남편이 감동을 해서 그날부터 남편이 회사에 가서 연예 편지를 쓰는 거예요. 하루에 한통씩 그래서 온 가정이 화목해지고 부부간에 굉장히 좋은 삶을 살게 되었다는 그런 글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부부가 서로 살면서 뭐가 자기 잘 났다고 '미안해요' '잘못했다'는 말을 못합니까? 고집을 세워가지고서 내가 남편인데 뭐가 미안해 잘못해도 미안하다 말 안하고 부인은 부인대로 내가 나도 자존심이 있는데 내가 뭐 미안하다 잘못했다 말을 하느냐 그렇게 되면 안됩니다. 미안합니다 잘못했어요. 하는 말이 기름을 치는 것입니다. 톱니바퀴에 기름을 치는 것입니다. 미안한 것을 미안하다 하면 좋잖아요. 내가 잘못했으면 그냥 잘못했다고 말하면 되지 뭐가 그렇게 인격에 손상이 가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습니까? 여러분 미안합니다. 그리고 잘못했어요 이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그 가정에 화목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미안해요' '잘못했습니다' 그것을 남편에게 말하세요. 아내에게도 그렇게 말하고요. 또한 상대를 섬기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자꾸 남을 섬기려고 해요. 말로써 행동으로써 상대를 자꾸 도와주고 섬기려고 애를 쓸 때에 내게 대접이 돌아오고 섬김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나는 딱 팔짱 끼고 '너 나를 섬겨라' 그러면 조금 섬기다가 에라 치워 버려라. 내가 종이냐, 시종이냐 그리고 마는 것입니다. 가정의 생활은 산울림의 법칙으로 내가 외치면 저쪽에서 외침이 울려오는 것처럼 상대를 섬기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리고 조그마한 고마움부터 감사를 표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만큼 감사할 줄 모르는 민족이 없습니다. 한국사람은 감사를 안 합니다. 저도 가만히 목회하면서 수많은 도움을 베풀었지만 감사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도 감사하지 않은 사람을 보고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열 사람의 문둥이를 고쳐 놓았는데 아홉 사람은 그냥 가버리고 그중 한 사람만 와서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내가 열 사람 문둥이를 고친 것이 아니냐 아홉 사람은 어디 가고 이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만 와서 감사하느냐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구원으로 보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너무나 무관심하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태양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공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오곡 백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에게 생명의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와 찬양을 그렇게 기뻐하십니다. 우리 인생도 한 가지입니다. 적은 일도 나를 도와주면 감사합니다. 서양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이 다른 것은 서양 사람들은 감사하다는 말을 잘 합니다. 밥 먹다가 숟가락 하나 줘도 땡큐, 길 좀 비켜 주어도 땡큐, 먼지 하나 털어주어도 땡큐, 우리 한국에는 숟가락 주면 탁 받습니다. 길을 비켜주면 길을 비켜주는 것이지 뭐 감사하느냐, 아내가 남편의 옷 먼지를 털어주면 마땅히 할 일을 했지 내가 감사할게 뭐야. 이게 안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감사를 받을 때에 영광을 느끼는 것입니다. 큰 것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적은 것도 감사를 하라고요. 일본 사람들도 가만히 보면 조그마한 일에도 감사합니다. 감사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길을 좀 비켜주어도 감사합니다. 그릇을 하나 줘도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많이 하세요. 이것은 돈 안들이고 힘 안들이고 서로서로 관계를 잘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더합니다. 부부간에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서로 아주 친밀함이 있습니다. 그 친밀함이 있기 때문에 부인이 남편을 위해서 조그마한 애를 써주는 것도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먼지를 털어주면 고맙다고. 신발을 내주거든 신발을 내주어서 고맙다. 특별히 음식을 잘 만들었으면 칭찬을 많이 해야 합니다. 당신 솜씨 참 좋다. 정말 고맙다. 한번 박수를 쳐주자 아이들과... 얼마나 좋습니까? 맛이 없어도 그냥 먹어 버리고 맛이 있어도 그냥 먹어 버리고 모른 척 하고 그런 목석같은 인생이 어디에 있어요. 그리고 남편이 화장품 하나라도 가져오거들랑 거듭 거듭 감사를 하세요. 남편이 가져온 것 여보 나 화장품을 가져 왔어... 가져왔어? 이제는 그만 남편이 애라 그까짓 것 가져와도 고맙다고 하지 않는데 뭘 이런 짓을 해 바보 같이. 그런 생각을 합니다. 화장품을 가져오거들랑 화장품을 감사하고 남편 보는 앞에서 바르고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정말 좋아요. 하세요. 다음에 꼭 사줄께. 또 남편이 옷이라도 사주걸랑 그거 별로 안 좋아도 보는 앞에서 자꾸 입어야 합니다. 옷 참 멋있다. 하얀 거짓말을 좀 붙여도 괜챦아요. 내가 그 옷 입고 나가니까 친구들이 다 부러워하더라. 그래, 그러면 다음에 더 좋은 옷을 사줘야지. 그 감사하다. 고맙다 그 말 왜 못해요? 감사를 풍성히 하라고요. 사소한 것으로 다투고 사소한 것으로 사람들은 감사를 감동으로 받습니다. 감사의 인색한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적은 불이 큰 숲을 태웁니다. 적은 불평이 큰 분쟁을 가져오고 적은 감사가 큰 영광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부부간에 어떠한 일에도 감사로 당연지사로 받아들이지 말고 감사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입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해서는 항상 자녀와 친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권위주의로 일방적인 교육만 하지 말고 자녀들도 인격을 가지고 있는 이상 자녀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이 세상에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우리는 함께 산다는 공동체 의식을 길러주어서 교회에 와서도 함께 예배드리고 그리고 함께 여행도 하고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소년소녀 가장도 돌봐주고 양로원도 방문하게 하고 이래서 인생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와 강한 자와 다 함께 손을 잡고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내 이기주의로 모든 사람을 내가 이용만 하고 산다고 생각하면 나중에 수없이 많은 갈등을 일으키게 되고 결국에는 범죄 행위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부모에게 대해서 해야 하는 일은 효는 백행지 대본입니다. 이 세상에 효가 모든 행위의 근본입니다. 부모를 잘 받드는 자식은 아내도 충실하게 돌보고 사회에도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불효한 자식은 아내도 돌보지 아니하고 사회에서도 정상적인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에 아내가 남편이 부모에게 효도하려면 허리춤을 잡아당깁니다. 왜 그 많은 돈을 주느냐! 왜 아버지 어머니에게 헌신적으로 하느냐? 이렇게 해서 효도를 못하게 하는 아내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자기 눈을 자기 손가락으로 찌르는 것입니다. 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은 남편은 부인에게도 충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회에서도 존경받는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3절에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출애굽기 20장 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부모 공경과 함께 하나님은 생명을 길게 하고 복 받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해야될 일은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어 심사 행동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말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만만하게 대하고 부모에 대해서 나쁜 말로 욕을 하고 비난하고 비평하는 것은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지 않습니다. 효라는 것은 부모를 공경해서 언어 심사 행동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이 효입니다. 잠언서 23장 25절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무엇을 해서 부모를 기쁘시게 할까? 그런 것을 생각하고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 그것이 효입니다. 그리고 부모를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게으르고 자기 생활도 하지 않고 처자도 돌보지 않는 그런 것은 부모를 근심하게 하고 욕되게 합니다. 주색잡기에 몸과 마음을 침탐하는 자식이 있으면 부모를 욕되게 하지요. 무례하고 범죄 등으로 말미암아 사회에 무리를 일으키면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이지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지 않는 것이 부모에게 효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를 보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 4절에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것은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잘 공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까마귀도 자기의 어미를 먹여 살리고 보양을 합니다. 사람인 이상 부모를 공양하지 않고 부모를 갔다 내어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는 부모에 대해서 언제나 효를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슴속에 깊이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효는 100가지 행동 중에 가장 중심 되는 것입니다. 백행지대본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회 생활을 해야 합니다. 가족이 모두 봉사와 교제에 참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경건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온 가족이 주일날 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경건히 섬기는 이와 같은 교회 생활이 행복을 가져오는 굉장히 중요한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혼인 잔치에서 물이 변화여 포도주를 만드신 주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큰 변화를 갖다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와서 가족단위로 좋은 가족들을 친구로 사귈 수 있습니다. 인생은 혼자 살 수 없지요. 나쁜 친구는 우리의 행위를 부패케 합니다. 같이 와서 주를 경외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좋은 가족 단위의 친구를 얻을 수 있음으로 같이 하나님을 섬기고 함께 서로 교제할 수 있는 좋은 친구를 얻을 수 있으니 교회가 참 좋습니다. 그리고 예배 후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으므로 요사이 바쁜 세월에 좀처럼 가족이 함께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므로 예배 후에 시간을 내어서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점심 식사나 하고 저녁 식사라도 함께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모임을 가지고 대화를 가질 수 있으면 행복을 가질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불행한 가정은 지상에 살면서 지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를 돌보며 사랑하고 이해와 동정을 같이 하며 따뜻하게 품어주고 협력하는 가정은 위로와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 땅에서 가정이 행복해야 그 모든 삶이 형통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불행하면 모든 일에 파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가화만사성이란 말이 바로 그 말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주신 가정이라는 이 아름다운 성을 잘 가꾸어서 행복을 누리다가 하늘나라의 영원한 가정으로 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정을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섬김으로 잘 가꾸어 나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행복을 찾는 사냥꾼들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과 우리 부부간, 부모 자식간 그리고 가정과 교회간 이 모든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놀라운 복을 허락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