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5월 30일
제목: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라
성구: 누가복음 18:1-8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 나아와서 “주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그와 같이 간청을 했습니다. 기도하는 법을 알면 기도는 하늘문을 여는 열쇠가 되며 하나님의 팔을 움직이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기도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를 시작할때에 어떻게 시작해야하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오자 말자 자기가 요구하는 바를 부르짖어 간청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기도는 먼저 하나님께 나와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제켜 놓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마음을 하나님 중심으로 두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4절에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감사가 하늘문을 열어 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찬송이 하나님 앞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문도 열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도 아니하고 부르짖고 외쳐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 간다고 말했습니다. 하늘 나라는 감사가 하나님의 문을 여는 것이고 찬송함으로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를 시작할때 만사를 제켜 놓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감사하고 무엇을 찬양할까요? 여러분 우리가 살아오면서 생명을 주시는 모든 자연 환경에 대해서 깊이 감사하고 하나님께 찬양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태양을 우리는 매일매일 감사해 본 적이 있습니다. 값없이 우리가 숨쉬는 이 공기를 감사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마시고 사는 물을 감사하며 우리가 서서 사는 이 대지와 오곡백과를 주신 하나님, 건강과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 본적 있습니까? 우리는 매일매일 같이 저 태양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공기와 물로 인하여 감사하고 우리의 대지와 오곡백과로 인하여 감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만들어 주신 이 모든 일을 인하여 깊이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찬양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셔서 그가 십자가에 못박아 몸 찢고 피를 흘리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용서해 주시고 의로움을 주셨으며 거기에서 세상과 마귀를 내어 쫓아 주시고 천국과 성령을 주시고 그곳에서 슬픔을 제하시고 기쁨을 주시고 질병을 제하시고 치료와 건강을 주시고 저주를 제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고 사망과 음부를 제하시고 천국과 영생과 부활과 영광을 허락해 주신 것을 찬미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주신 것을 우리가 감사하고 찬미하지 아니하면 하늘의 문도 열리지 아니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궁정으로 들어 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기도는 어떠한 형편에 있던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 우리 하나님 앞에서 깊이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악이 가리워 있으면 하나님이 노하시고 섭섭해하고 계시면 우리의 기도가 응답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 15절로 18절에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위락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앞에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다 회개하고 자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감추는 자를 긍휼이 보시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는 주께서 용서하시고 구원의 손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앞에 늘 회개의 기도를 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서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간절한 마음. 마음에 마지못해서 드리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마음에 뜨거운 열성을 가지고 배속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시간 우리에게 기도 드릴때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거기에 대한 예수님이 가르치는 말씀을 깨달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때 한계를 뛰어 넘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기도는 하는데 조금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다가 하다가 나중에는 지치고 피곤해서 쓰러졌을때에 그 한계를 뛰어 넘는 그런 기도를 해야 하늘에 상달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예를 들어 말하기를 한 도시에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입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 불쌍하고 힘 없고 짓밟힌 가난한 과부가 한 사람있었습니다. 이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 이 불의한 재판관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주소서 하되 이 재판관은 도무지 무관심 했습니다. 이 과부가 부르짖든 말든 그는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르짖는 과부는 부르짖다 부르짖다 지치고 낙심되고 피곤했습니다. 이젠 시간 싸움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은 말하기를 시간을 걸면 네가 내가 와서 부르짖다가 지치고 그만 포기할 것이다. 이 과부는 나는 죽기아니면 살기로 내 마음에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이 분에게 와서 부르짖어야 되겠다 그래서 이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는 시간을 두고 밀고 당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내를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또 원수 마귀는 우리의 기도를 최대한 도로 막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두고 밀고 당기는 것입니다. 마귀는 생각하기는 이정도 막으면 저 사람이 낙심하고 뒤로 물러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정도 기다리면 저들이 그만 신앙을 포기하고 말지 않겠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계를 뛰어 넘는 인내가 필요하다가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기도 응답이 더디고 의심 마귀의 공격이 격심해 지면 하나님의 무심함이 원망 스러워지고 마음에 낙심이 될때가 있습니다.
시편 42편 10절로 11절에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이나 오늘이나 우리가 기도를 할때 지치고 피곤하고 낙심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겨야 응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죄악의 고비를 넘겨야 되는 것입니다. 좌절하고 절망하여 이제는 쓰러질 수밖에 없다고 하는 그 고비를 넘겨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4절로 5절에 성경에 말씀하기를 그 불의한 재판관이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하도 이 과부가 끈질기가 계속오니깐 나중에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이제는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번거로워서 괴로워 견딜 수가 없으니 이젠 내가 응답하여 주겠다. 한계를 뛰어 넘는 인내를 가지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고비를 넘겨야 됩니다. 낙시과 좌절의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다니엘이 자기 동료들과 함께 이스라엘의 운명을 알아보기 위해서 기도하라 나가서 강가에서 기도할때에 열흘이 기도 응답이 없고 보름이 지다도 응답이 없습니다. 친구들은 다 낙심하여 돌아가고 말았고 다니엘 혼자 남아서 스무날동안 기도했습니다. 스무하루째 갑자기 하늘 문이 열리고 찬란한 영광을 나타낸 천사가 다니엘에게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다니엘아 니가 천날 기도할때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어 응답을 내게 명하심으로 내가 오다가 공중에 권세 잡은 마귀 군대가 나를 20일 동안 막음으로 마귀가 대처하고 있으나 군장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줌으로 내가 소식을 가지고 왔다가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한계를 뛰어 넘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치고 피곤하고 좌절하고 절망한 그 고비를 넘겨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세계적인 부호였던 어펠라는 친구의 꾀임에 빠져서 금이 나오지 않는 폐광된 광선을 막대한 돈을 주고 샀으며 재산을 다 투자해서 그 금광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금강을 많은 인부를 들여서 깨고 깨고 보니 아무 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돌맹이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금광의 인부들은 돈을 내 놓으라고 대모를 하고 거세게 달려듭니다. 오도가도 못한 완전하 빈털털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금광 앞에 엎드려서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는 예수를 믿는 그날부터 성수주일했고 하나님앞에 십일조를 한번도 도적질한 적이 없습니다. 어찌하다가 내가 이 폐광에 이렇게 돈을 투자하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게 되었습니까? 이제는 지치고 피곤하여 한계쯤에 도달했습니다. 이젠 더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럴때에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말씀하기를 고요하고 잠잠하고 평안을 가져라 그리고 일어나서 좀더 파라. 하나님이여 이젠 팔 기력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한계를 뛰어 넘어라 그래서 이 사람은 돈을 빌려서 인부를 동원해서 또 금광을 파기 히작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습니다. 저런 무모한 일을 어떻게 하느냐 그러나 좀더 파고 들어가자 금은 나오지 아니하고 갑자기 검은 물이 솟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석유가 터져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석유를 팔아 거대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계를 뛰어 넘어야 기도 응답이 옵니다. 기도는 금광을 파 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치고 피곤하고 낙심되고 이 이상더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그때에 그 한계를 뛰어 넘어 기도하면 마귀도 물러가고 하나님도 너 진실한 믿음으로 기도하는 구나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얼마동안 기도하다가 응답이 오지 않으면 그만 낙심하고 좌절하고 지쳐 버려서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기도하는 방법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기도할려고 할때에 유창하게 기도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있는데 유창하게 기도를 어떻게 계속할 수 있는 것입니까? 유창하게 할 수 없어요
마태복음 6장 7절로 8절에 “또 기도할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말을 많이 하면 응답하는 줄 알고 온갖 말을 다 사용해서 기도를 중언부언합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그렇게 하지 말아요 하나님이 이미 우리 마음의 소원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간단 명료하게 계속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 과부이 기도를 우리가 본 받아야 합니다. 이 과부는 다른 소리 안했습니다.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는 그는 봄에도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주소서 봄이 가고 여름이 와도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주소서 여름이 가고 나무잎이 지는 가을이 다가와도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소서 가을이 가고 눈이 와서 머리에 눈이 덮여도 엎드려서 같은 말을 합니다. 내 원수의 대한 원한을 갚아 주소서. 이 과부의 유창한 기도 때문에 응답 받은 것 아닙니다. 그의 끈질긴 기도 때문에 응답을 받은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할때 유창한 기도를 할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단순한 기도를 자주 자주 하십시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단순한 마음에 소원을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7장 8절에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그 기도가 맥 없는 기도가 아닙니다. 강 청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떼를 쓰고 고집을 부려야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과자 달라고 할때 안 주면 떼를 써서도 안되면 드러누워가지고 발버둥을 치면서 과자달라고 부르짖어 하는 것 같이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할때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리고 강청을 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장 5절로 8절에 보면은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참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예수께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밥 중에 왔는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웃 친구집에 가서 친구여 밤중에 먹을 것이 없으니 떡 세덩이만 빌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안에서 들여오는 소리가 이 사람아 이미 나는 일을 다 끝마치고 내 아이들과 함께 침실에 들었으니 다시 옷을 입고 일어 나 떡 세덩이를 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친구는 어떻게 했습니까? 떼를 쓰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친구여 떡을 달라, 친구여 떡을 달라 그는 나의 사랑하는 친구여 아름답고 귀한 친구여 나의 동기 동창이여 마음이 귀하고 고운 친구여 이때 희생적으로 일어나서 나에게 떡을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소리 안 했습니다. 떡을 딸라 떡을 달라 떡을 달라 ..... 계속해서 그는 부르짖어 외쳤습니다. 이와 같이 떼를 쓰고 고집을 부르니깐 안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가 네 친구됨으로 인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시끄러워서 주겠다. 그래서 떡을 주었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주님께 기도할때 이와같이 강청을 하는 것입니다. 때를 쓰고 고집을 부르면서 그렇게 기도를 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기도할때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의심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6절로 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마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마음이 흔들흔들해서 하나님이 정말 응답해 주실까? 아닐까? 믿어 볼까? 말까 끊임없이 마음이 갈라져 있으면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께 응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고해야합니다. 믿음으로 고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외에 다른 것에 서면 안됩니다. 여러분 환경이 폭풍우와 같이 다가와서 응답 안된다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감각이 안된다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경험이 안된다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것에 귀를 기울이면 곧 마음이 흔들리고 요동하게 됩니다. 오직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 일획도 변할 수 없는 말씀 위에 서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바라보고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을 말하고 말씀 위에 서서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말씀을 따라갑니다. 말씀에 서서 기도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말씀 이외에 여러분 어떠한 곳에 서 있어도 안됩니다. 말씀에 서서 기도하면 기도는 거의다 응답해 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7절로 11절에 “구라하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으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이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고하고 부르짖을 때에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의심의 화살을 쏟아 부칩니다. 끊임없이 화살에 불을 붙여 가슴에다가 쏘아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와서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너 안된다, 너 응답 못 얻어 낸다. 너 이제 병들어 죽는다. 이렇게 죽는다 병들어서 너는 버림 받는다. 너는 사업에 반드시 실패한다 너는 못한다 마귀는 언제나 와서 무시무시하게 부정적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불 화살을 쏘아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우리 성도들은 조그마한 꿈을 자꾸 꾸는데 그 꿈이 맞아 들어 갑니다. 그러니깐 나중에는 하나님 말씀보다도 자꾸 꿈을 꾸고 꿈이 맞아 들어가니깐 꿈을 말씀보다 더 의지했다가 나중에 마귀가 이렇게 꿈을 맞게 해 주다가 나중에는 거대한 일을 일으킵니다. 큰 무시무시하고 좌절되고 절망적인 말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보다 그것을 믿고 그만 불안과 좌절과 절망으로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죽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떠한 꿈이 오더라도 어떠한 환상과 계시가 눈 앞에 다가온다고 해도 말씀에 어긋나면 믿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만이 진실인 것입니다. 꿈과 계시하는 것이 말씀과 틀릴때는 그것은 가짜입니다. 말씀과 일치 될때는 그것은 참이지만은 말씀에 어긋나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의심을 받아 드리지 말아야합니다. 도대체 마귀의 의심에 귀를 기우리면 자꾸 침소 붕대해 지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어릴때에 세끼 꼬면서 여러가지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때 내가 들은 이야기 중에 도깨비가 밤에 나타나거들랑 처다보면 하늘끝까지 키가 높아지기 때문에 자꾸 내려다 보라는 것입니다. 자꾸 내려다보면 조그만하게 작아진다고 합니다. 그 민간에서 돌아가는 우화이지만은 마귀의 말을 자꾸 처다보면 마귀의 말이 한없이 커지는 것입니다. 마귀가 하는 의심의 말을 내려다보고 바라다보면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해야 합니다.
로마서 4장 19절로 22절에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여기셨느니라” 믿음을 갖고 나아가겠다고 결심했는데 어떠한 자매님이 와서 목사님 나는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내 마음 속에 믿음이 없어요. 거짓말입니다. 그것도 마귀에게 속았습니다. 그는 느낌을 가지고 믿음을 확인합니다. 믿음은 느낌과는 틀립니다. 믿음은 마음의 결단입니다. 성경에는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믿음을 주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느끼든 안 느끼든 하나님이 믿음을 분량대로 주셨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분량대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을 느낄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께서 마음에 결심하고 믿기로 작정하면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아무 느낌이 없어도 그냥 믿는 것입니다. 억척같이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낙심하기를 거부해야 되는 것입니다. 낙심을 받아 드려서는 안됩니다. 낙심은 바로 항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가 낙심하면 마귀에게 손들고 항복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믿음에 굳게 서서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낙심은 절대 금물입니다. 어떠한 환경에 의해서도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복음은 희망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희망입니다. 낙심을 받아 드리면 그는 그로부터 파멸에 이르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로 2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으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를 바라보고 우리는 낙심하거나 뒤로 물러가는 일어 없어야 됩니다. 오직 믿고 버티어야 되는 것입니다. 버틴다는 것은 여러분 중요합니다. 내가 기도하고 부르짖었으면 이제는 하나님 앞에 버티는 것입니다. 오직 믿고 나는 절대로 물러 갈 수 없다. 있는 힘을 다하여 버티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실상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로 2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받은 줄로 믿고 버티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좋게 환경이 다가오면 버틸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환경을 따라 움직일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으로 운명과 환경을 창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결심을 하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버티고 또 버티고 나아가면 불의한 재판관 같은 원수 마귀는 뒤로 물러 가고 하나님은 웃으시면서 보좌에서 네 믿음이 참되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시험과 환난을 당하고 공고에 처할때에 그것을 이기고 나아갈 수 있는 무기는 바로 믿음 밖에 없습니다. 이웃도 도와 줄 수 없습니다. 친척도 도와 줄 수 없습니다. 나ㅤㄹㅏㄷ 도와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돕는 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바라보리라 나의 도움을 얻을 수 없고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라고 시편 기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기도 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18장 7절로 8절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여기에 밤낮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밤에도 부르짖고 낮에도 부르짖고 그 부르짖을때 어떻게 부르짖어야 하느냐 마음에 원한을 가지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한을 갖고 기도해야합니다. 한 맺힌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저 재미로 하는 기도 아닙니다. 오다가다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응답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좋은 그런 기도가 아닙니다. 한 맺힌 기도. 한 이란 것이 얼마나 깊습니까?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며 한 맺힌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여 나를 들어주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이 말할 수 없이 무서운 수렁에서 나를 건저 주옵소서. 경제적인 파탄의 수렁에서, 가정의 파탄의 수렁에서, 생활고에서 주여 나를 건저 주옵소서. 한 맺힌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 기도를 드리되 인내하고 참고 낙심을 이기고 또 인내하고 참고 한계를 뛰어 넘어 버티고 억지를 부리고 고집을 부리고 외치면서 믿음으로 기도할때에 여러분은 승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여러분 쉽게 응답되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기도를 훼방하는 원수 마귀가 처초에서 결사적으로 기도를 막고 또 우리의 기도가 진실되고 참된 믿음인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가 시험에 통과 되면 그때로 부터 믿음은 운명과 환경과 역사를 변경 시키는 것입니다. 상상 할 수 없는 크고 비밀한 일이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아버지 하나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기도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두고도 그것을 받지 못하고 굶주려 죽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탕자가 말한 것처럼 내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 양식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 집에는 먹을 양식이 많습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하는 모든 은혜가 예비되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그곳을 가는대는 마귀가 막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시험하는 시험도 거기에 있습니다. 이것을 뚫고 나아가기 위해서 아버지 오늘 우리가 설교 들은대로 우리의 마음을 무장하고 나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뒤로 물러 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잠시 잠깐이면 오실이가 오시리니 지체지 아니하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아버지 이와 같은 결단있는 신앙을 갖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