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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6일 제목: 강도 만난 자의 이웃 성구: 눅 10:30-37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만화나 비디오도 폭력물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영화 또한 그 종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폭력으로 멍든 사회입니다. 언어 폭력이 있는가 하면 각계 각층에서 행해지는 '왕따'라는 폭력, 정치적 폭력, 무력에 의한 폭력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참으로 마음을 놓고 의지하고 살아갈 수 있기가 힘이 듭니다. 이와 같은 삶의 현장 속에서 우리는 진실된 이웃을 과연 발견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진실된 이웃에 관해서 오늘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째로, 강도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 보면 한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있는 것을 다 빼앗기고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의 비극은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내려갔다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분명하게 타락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고 예배가 있고 찬송이 있고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을 떠나고 예배와 찬송과 신앙을 던지고 세상인 여리고로 향해서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따라 세속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니까 강도를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있는 것 다 빼앗기고 얻어맞아 만신창이가 되어 피투성이가 되어 드러눕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인류가 오늘 고난 중에 있는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에덴을 아담과 하와가 떠났습니다. 에덴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요, 거룩한 처소요, 예배와 찬양이 있는 처소요, 축복이 있는 처소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꾀임을 받아 그 예루살렘과 같은 에덴을 떠나서 세상으로 향했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욕심과 탐심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미움과 시기와 분노와 질투와 원한이 꽉 들어찬 것이 세상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이 예루살렘과 같은 에덴을 떠나서 세상으로 나와서 마귀에게 엄청나게 얻어맞은 것입니다.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는 그러한 고통 속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아담과 하와는 오늘날 그 후손과 더불어 피투성이 속에 있습니다. 영은 죽고 마음은 갈기갈기 원망, 시기, 분노, 질투, 미움으로 찢어졌습니다. 육신은 병들고 생활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에 피투성이가 되고 좌절과 절망 속에 살다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비극적인 강도 만난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강도 만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귀한 것을 다 상실하고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목적도 방향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강도 만나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누가 건져줄 수 있습니까? 누가 도와줄 수 있습니까? 두번째로, 그의 말씀 가운데 이 강도 만난 사람의 주위를 지나가던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강도 만난 사람 주위에 제일 먼저 지나간 사람이 제사장이었습니다. 여러분 제사장이란 사람은 율법을 준수하고 율법을 보존하고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난 다음에는 준엄하게 꾸짖고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고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왜 제사장이 지나갔을까요? 여러분 율법은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서 보낸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그 속성은 죄를 잡기 위해서 율법을 보낸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폭로시킵니다. 그리고 그 폭로된 죄에 대해서 준엄한 심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율법은 병들고 죄짓고 약한 사람을 도와주고 살려주고 붙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지적하고 죄악을 폭로하고 그 나타난 죄에 대해서 엄격하고 준엄한 심판을 내리는 것이 그 율법의 본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은 율법의 준수자로서 이 강도를 만나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사람을 보게 되었을 때에 그는 그에게 도움의 손을 베풀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을 보고 준엄하게 꾸짖을 따름인 것입니다. 어찌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서 여리고로 내려갔더냐! 어찌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고 찬송하고 기도와 믿음이 있는 처소를 떠나 세속으로 내려갔느냐! 나쁘고 고약한 사람 너는 죄인이다. 너는 인정사정 돌봐줄 사람이 못된다. 그렇게 꾸짖고 난 다음에 심판하고 떠나가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율법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율법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신 것은 그들이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주신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교만해서 자기들의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스스로 의롭게 살 수 있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인류를 대표해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 율법은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인간들의 죄악이 깊고 더럽고 추한가를 폭로시키기 위해 준 것입니다. 구원받을 만한 율법을 주었으면 구원이 율법으로 말미암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구원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폭로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받고 난 다음에 한 사람도 율법을 지킨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어기고 죄를 짓고 하나님께 준엄한 심판을 받았을 때 그들이 피할 곳은 제사 밖에 없었습니다. 속죄 제물이나, 속건 제물이나 짐승을 잡아 대신 죽여서 피를 흘려야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가르친 것은 인간이 아무리 율법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고 해도 구원의 길은 없고 율법 행위를 통해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가 결코 없고 결국에는 누가 대신해서 피를 흘려 죽어서 죄를 갚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짐승의 피는 일시적으로 죄악을 덮을 수 있으나 영원히 죄는 사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짐승이 죽고 피가 강물같이 흘렀지만 이 모든 것은 장차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율법에서 구출해 주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제물이 되어서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를 흘릴 것을 예언적으로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도 여러분 우리들이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앞에 하나님이 율법으로써 여러분을 심판하고 저 스크린에 여러분의 죄악을 다 낱낱이 다 드러나게 하신다면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혀온 여자를 모세의 제자들이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보고 그들이 한 말이 주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이 여자를 돌로 치라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나이까? 이 말에 예수님은 곧장 허리를 숙여 글을 적었습니다. 아마 틀림없이 주님께서 십계명을 적었을 것입니다. 주여 당신은 이 여자를 어떻게 하겠나이까? 예수님께서 고개를 들어 큰 사람부터 적은 사람까지 살펴보시고 난 다음 준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써 이 여자를 처라. 그리고 주님이 엎드려서 손가락으로 글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어깨 너머로 적는 그 글을 보니 예수님은 그들 속에 감추인 모든 죄악을 하나도 남김 없이 다 폭로시켜 놓습니다. 율법을 따라서 주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죄를 다 폭로시켜 놓습니다. 그들이 보니까 그 돌로 쳤다가는 그 다음에는 자기들이 돌에 맞을 차례입니다. 한 사람도 남김 없이 큰 사람으로부터 적은 사람까지 모두 다 돌을 내어버리고 도망을 처 버리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그 자리는 조용해지고 사람은 다 가 버리고 여자 혼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여자여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 보라 너는 정죄하는 자가 있느냐? 주여 없나이다.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집에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보면 여러분 남을 율법으로 정죄하는 사람은 똑같은 율법으로 자기도 정죄를 받고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율법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율법의 그 밝은 빛 앞에는 우리의 모든 더럽고 추악한 죄가 다 드러나고 우리는 심판을 당할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율법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율법은 절대로 여러분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은 이 도적을 만나서 피투성이가 되어서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을 조금도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여러분이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죄짓고 병들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여 쓰러졌을지라도 율법은 여러분을 도와주지 못합니다. 율법을 여러분을 심판할 따름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잠시 후에 레위 사람 한 사람이 종종 걸음으로 내려왔습니다. 레위 사람도 이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가만히 보더니만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고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레위 사람은 의식을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성전에 와서 성전에 모든 기명을 올바른 곳에 갔다 놓고 그것을 소지하고 그것을 반질반질 닦고 그리고 성전 기구를 옮기고 하는 이와 같은 의식을 집행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속이 빌수록 겉을 더 화려하게 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속이 꽉 들어차면 겉은 아무렇게나 합니다. 그러나 속이 빈 사람은 겉을 휘황찬란하게 꾸며서 무엇이 있는 체 하려고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함이 없으면 교회도 외면을 치장합니다. 강단을 아름답게 치장하고 장엄하게 하고 그리고 주의 종들도 굉장한 옷을 입고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하게 나타납니다. 이것은 내용이 없기 때문에 겉을 치장하는 것입니다. 겉을 장엄하게 하는 것입니다. 의식과 형식을 통하여서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여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의식과 형식 속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이 레위 사람은 의식과 형식을 주장하는 사람인데 이 강도 만나 피투성이가 된 사람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께서 형식적인 장엄한 것이 여러분에게 도움을 베풀 것이라고 생각하면 너무나 어리석은 것입니다. 형식적 의식적으로 장엄하게 꾸민 교회에서 여러분에게 성수를 뿌리고 여러분에게 손을 얹고 기도를 해 주고 하는 이런 것을 통해서 구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대단한 잘못인 것입니다. 구원은 의식과 형식을 통해서 오지 않습니다. 의식과 형식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필요합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을 더 장엄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데 효과를 냅니다. 그러나 그 속에 구원의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레위인은 의식을 집행하지만 이 강도 만나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도와주지 못하고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아니하여 한 사마리아인이 짐승을 타고 지나가다가 이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보고 그는 불쌍히 여기사 짐승에서 내려서 이 사람을 품에 안고 거기에 기름을 바르고 상처에 포도주를 붓고 붕대를 가지고서 상처를 감아 주었습니다. 혹시 그 당시에는 붕대가 없으면 자기 겉옷을 찢어서 붕대로 만들어서 그 아픈 상처를 감아 주고 그 짐승에 태워서 주막집을 데려 갔습니다. 여기에 사마리아인이 한 것을 보십시오. 이 사람은 제사장처럼 꾸짖지도 아니하였고 레위인처럼 형식적 의식적인 것을 집행하고 지나가지도 않았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이 강도 만나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기름을 붓고 포도주를 붓고 자기 옷을 찢어 붕대로 만들어서 감아주고 치료해 주었습니다. 이 분이 누구를 상징하고 있습니까? 이분은 모세의 제자도 아니요, 레위인 같이 의식을 집행하는 자도 아니요 선한 사마리아인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 오신 것도 아니요, 우리의 생활을 장엄한 의식으로 꾸며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를 고쳐주고 살려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기 위해서 오십니다. 성경에는 내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잃지 못했느냐 하는 것처럼 주님은 여러분과 나에게 긍휼을 베풉니다. 왜 자식이 부모를 신뢰할 수 있습니까? 부모는 항상 자식을 불쌍히 여깁니다. 자식은 부모를 불쌍히 여기지 않지만 부모는 언제나 자식을 볼 때에 긍휼한 마음으로 봅니다. 그 자식이 어릴 때나 청소년 때나 장년이 되어도 부모는 언제나 자식을 볼 때에 불쌍한 마음이 마음속에 생기고 긍휼한 마음이 생깁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사 여러분과 나를 불쌍히 여기시사 도와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여러분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지나가지 않습니다.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우리를 구체적으로 도와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걸머지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정죄와 절망을 다 걸머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그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 몸을 찢고 피를 흘린 댓가로서 하나님께 받은 그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그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덮어주시고 그 은혜의 붕대로 우리를 감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선한 사미라아인 같이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을 우리에게 부어주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절대로 예수를 구주로 깨닫고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 영이 죽었기 때문에 장님이요, 귀머거리요, 우리 마음은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심으로 어두운 영의 눈을 밝혀주시고 어두운 영의 귀를 열어 주시고 마음에 깨달음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고 할 자가 없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기름을 부으사 우리를 깨우쳐서 예수를 믿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다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서 기름을 부어 주셨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으면 주님께서 그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덮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보배로운 피는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쏟으신 피이신 것입니다. 그 보혈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의 일체 과거의 죄를 다 용서하시고 일체 미래의 죄를 다 용서하시고 영원히 우리의 죄를 다 도말시켜 버리고 마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보혈 속에서는 우리가 용서와 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보혈을 통하여 원수 마귀와 세상은 쫓겨 나가고 천국과 성령이 우리 속에 와서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었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 속에 세상이 쫓겨 나가고 성령이 와서 계시고 하늘나라가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 백성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피만 흘리신 것이 아닙니다. 그 몸을 다 찢었습니다. 붕대로 만들어서 우리를 감싸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자기 몸을 찢어서 붕대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상처를 싸매어 주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싸매어 주셔서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슬픔을 다 제켜 버리고 기쁨으로 주님께서 새 살이 돋아나게 해 주셨으며 육체를 싸매어 주셔서 육체의 가지가지 질병과 고통과 괴로움에서 우리를 치료하여 주시고 해방시켜 주시고 우리의 생활을 싸매어 주셔서 가시와 엉겅퀴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저주와 가난에서 우리를 치료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아 몸을 찢고 피를 흘려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강도 만나 피투성이가 되어 세상 길에 쓰러진 우리들을 품어서 우리를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인자가 오는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선한 사마리아인이 이 사람을 짐승에 실어 주막집에 갔다 줬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오늘 생각하고 싶은 것은 이 주막집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주막집은 바로 교회가 주막집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에는 약 5만의 주막집이 있습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도 천국 가는 주막집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막집에 와서 그를 돌봐주고 은전 두닢을 두시면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 사람을 돌봐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갚아 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떠날 때에 무엇을 남겨 주었습니까? 주님께서는 땅 한마지기 남겨 놓지 않고 옷 한벌도 주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여기에 은전 두닢을 남겨 줬는데 이것은 성경과 성령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주막집 된 교회에 남겨둔 것은 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늘에서 내려온 성령이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이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이 와서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과 성령을 주시면서 이를 가지고 치료하라 오늘 우리를 치료하고 살릴 수 있는 힘은 말씀과 성령의 능력 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지식이나 학문이나 철학으로써 절대로 우리를 살리지 못합니다. 세상 인간의 지혜와 지식은 우리에게 아무런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 일획도 변할 수 없는 말씀이 우리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영혼 속에 들어와서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마음을 변화시키고 생활을 치료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갖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은전 두닢을 주셨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이 강도 만난 사람을 돌봐 주었습니다. 이 사람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도록 만들어 줘라. 여러분 교회에 와서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치료받지 못하고 돌봄을 받지 못하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오늘 여기에는 주 성령이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을 치료하고 돌보아 주어서 건강을 회복하고 여러분이 주 안에서 영혼이 잘 되게 만들어 주시고 범사에 잘 되게 만들어 주시고 강건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는 놀라운 역사가 교회 속에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치료하고 온전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나는 처소인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 말씀하기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올 때 반드시 갚아 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어떠한 부비가 든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이제 주님의 사업을 하면 많은 부비가 듭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짓고 교회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부비가 듭니다. 마태복음 6장 20절로 21절에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짓고 교회를 경영하기 위해서 많은 부비가 듭니다. 이 부비는 우리가 쓰면 쓸수록 주님께서 그곳에 30배 60배 100배로 해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하늘에 가서 갚음을 받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십일조를 드리고 헌금을 드리고 건축헌금을 드리고 교회를 위해서 부비를 드려 그 주막집을 잘 정비해서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도록 하는데 협조하는 것이 부비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선교 사업을 위해서 우리가 물질을 드리고 헌신하는 것은 부비를 드리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로 7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선교 사업을 위해서 부비를 쓰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매년마다 선교 사업을 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57개국에 537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57개국에 537명의 선교사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번에 우리 선교 헌금 작정을 했는데 작정 인원이 3902명밖에 없습니다. 금액으로는 삼억사천만일백일십오만오천원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70만 성도 가운데 선교 사업에 부비를 던진 사람은 오늘 현재로서는 3902명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시작이니까 그런 줄 압니다. 앞으로 우리 성도 여러분 모두들 선교 사업을 위해서 부비를 쓰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갚아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부비를 쓰면 내가 갚아 주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사회 봉사를 위해서, 구제를 위해서 부비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서 11장 24절로 25절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고린도후서 9장 9절로 10절에 "기록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회에 나가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비를 씀으로 저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전달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세계는 굶주리고 있습니다. 1분에 34명이 굶주리고 있고 하루에 5만명, 1년에 1천8백만명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그들은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고 우리가 부비를 쓰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북한동포 사랑후원금으로 옥수수 일천개 마을 보내기 운동을 했는데 지금 작정한 사람 수는 36702명이고 작정 헌금은 이억오천이백만구천원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옥수수 39톤과 비료 1800톤을 북한으로 보냈습니다. 이것도 북한에 고통 당하는 우리 동포들에게 우리가 부비를 쓰고 그리스도의 자비의 손길을 베풀어서 그 강도 만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에 우리가 헌신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교회는 교육사업을 위해서 부비를 써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가 부비를 써서 많은 후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교육시킴으로 말미암아 이 사회를 하늘나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세대학을 경영하고 있으며 우리는 또 미국의 베데스다대학을 경영하고 있고 오늘날 순신 학원도 우리가 경영하고 있는 것은 교육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늘나라를 전파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의료 사업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는 것은 우리가 부비를 많이 써서 착한 일을 넘치게 하라고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비기독교인들이 우리 기독교인들을 보고 뭐라고 비평을 하는지 압니까? 미션투데이 5월 20일자에 발표한 것을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이 너무 이기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31%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비인격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23%, 위선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19%입니다. 이와 같이 안 믿는 사람들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을 비평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우리대로 크게 회개하고 이 안 믿는 사회에 강도 만나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와 더불어 자비의 손길을 베풀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교회는 늘 폐지 수집도 하고 우리가 헌옷 모으기도 하고 동전 모으기 운동, 사랑의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폐지 수집 운동으로 우리가 심장병 어린이를 도와준 것도 3천명 이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이와 같이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부비를 사용해야 될 것입니다. 강도 만나 자의 참된 이웃은 예수님이시고 이 예수님의 사업을 위하여 부비를 쓰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된 참된 이웃인 우리들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과 나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참된 이웃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가 피투성이가 되어 이 세상에서 죽어갈 때에 주께서 오셔서 우리를 살려 주었으므로 우리는 이 예수님 모시고 오늘날 강도 만나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위해서 부비를 쓰고 사랑을 쏟아서 하늘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 교회가 사명을 다하고 안 믿는 세상에서 칭찬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만 구원 받으면 된다. 나만 잘 살면 된다. 다른 사람이야 죽든 말든 내가 무슨 상관이냐 그래서 이 제사장처럼 율법주의자가 되어 심판만 하고 지나가고 이 레위인 같이 치장만 하고 지나가고 도움을 베풀지 아니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선한 사마리아처럼 우리는 마음속에 자비와 긍휼을 가지고 심판 대신에 사랑을 베풀고 의식과 형식 대신에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있는 힘을 다하여 예수를 전도하고 그 그리스도의 성령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역사를 전달해 주고 그리스도의 붕대를 감아 주는 사랑을 전달해 주고 저들이 다 천국 가는 주막집에 모여서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도록 주와 함께 많은 부비를 써서 온 천하 만국에 복음을 증거하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날 우리들은 참된 이웃을 발견하기가 힘이 듭니다. 모두 다 제사장이 되어 심판만 하고 모두 다 레위인이 되어 의식과 형식만 집행하지 충심으로 우리를 사랑해서 우리를 치료해 주려고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사마리아인 참된 구주로 오셔서 당신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셔서 우리의 모든 죄과를 도말하시고 성령을 주셔서 살리시고 보혈로 죄를 씻으시고 그 몸을 찢어 몸을 붕대로 삼아 우리를 치료하여 주시고 복 내려 주시고 영생을 얻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품에 품으시고 우리를 돌보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주님이 주신 말씀을 우리가 힘차게 가슴에 품고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며 나아가 이 복음을 온 천하 만국에 전하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