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6월 27일
제목: 나도 변화될까요?
성구: 요2:1-11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나도 변화될까요?"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2장 1절로 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 가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결혼을 하게 되면 남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약혼한 여자 집에 아침에 가서 예식을 드리고 난 다음 오후에 그 아내 된 여인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와서 그때부터 잔치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하루만 잔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먹고 마시고 노래부르고 춤추고 어떤 때는 일주일이 넘게 잔치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에 이 혼인 잔치가 한참 무르익고 있는데 예수님과 예수님의 어머님과 제자들이 초청을 받았는데 큰일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잔치 집에서는 큰 비상이 걸렸으나 포도주를 마련한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어머님께 부탁하매 예수님 어머님이 예수님께 오셔서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정색을 하시고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감히 어머님보고 여자라고 말합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신 분이기 때문에 마리아가 그에게 부탁하는 것을 다 들어준다 그렇게 소문이 나면 오늘날 카톨릭에서처럼 주님보다 마리아를 더 중시하고 마리아를 통해야 예수께 온다는 이런 잘못된 사상이 전파될까 주님이 두려워하셨기 때문에 단호하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그렇게 말씀하시고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이때 마리아는 하인들을 보고 저가 무엇을 시키든지 그대로 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예수님께서 하인들을 보시고 그곳에 걸레통 6개가 있는지라 물을 아구까지 채우라 하셨습니다. 물을 채우니 그것을 퍼다가 연회장에 갔다 주라 하매 물을 퍼다가 가져다주니 연회장이 그 물을 마시고 깜짝 놀랬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잔치 집에는 처음에는 좋은 포도주를 내고 나중에는 물 섞는 나쁜 포도주를 내어주는데 이 집에는 처음부터 좋은 포도주를 내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저도 가나에 가서 예수님이 포도주를 만든 그곳에 가니까 거기에 있는 신부가 저에게 포도주 한잔을 줍니다. 그래 포도주를 받아서 빨간 포도주인데 마시고 난 다음 가만히 나오다가 생각하니까 이게 아닙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으면 흰 포도주지 왜 빨간 포도주입니까? 그래서 도로 돌아왔습니다. 이 빨간 포도주를 잘못 마셨다. 왜냐하면 연회장이 포도주를 받았을 때 빨간 포도주 같으면 대번에 알텐데 물로 된 포도주인지라 몰랐다. 그러므로 흰 포도주를 달라고 그러니까 도로 흰 포도주를 가져다주어서 포도주를 두 잔을 마셨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 주님께서 물을 변하여 포도주를 만드는 위대한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이 기적을 통해서 상당히 배울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로,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아무리 인간적으로 노력하고 애써도 모자란 것이 많습니다. 인간은 역사 이래 생존과 행복에 필요한 것을 채우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항상 식량이 모자라고 옷이 모자라고 살 곳에 모자라고 건강이 모자라고 돈이 모자라고 행복이 모자라고 어느 곳에 가나 모자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모자라는 삶은 정상적이 삶은 아닙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을 때 먼저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모자란 것이 하나도 없이 예비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소상히 아시고 모든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살 때 모자란 것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후부터 아담과 하와의 생활 속에는 끝없는 모자람이 생겼습니다. 타락이전에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것을 예비하셨기 때문에 전혀 모자람을 몰랐지만 하나님을 등지고 인간이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가려고 했을 때는 모든 것이 결핍한 것 뿐입니다.
예레미야서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자기가 웅덩이를 아무리 파내어도 물이 저축되지 않아요. 항상 모자라요. 그러므로 바로 이 가나의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모자란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무엇을 해도 모자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정부도 모자란 것이 너무 많고 사회단체도 기업도 가정도 생활도 노력을 하지만 여기 모자라고 저기 모자라고 여기 터진 웅덩이이고 저기 터진 웅덩이인 것입니다. 이 모자람을 어떻게 채울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혼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모자란다고 했을 때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태어났고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마리아는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능력으로 그것을 해결하려고 야단법석을 떨지 않고 모든 것을 능히 채우는 예수님께 부탁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마리아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정황에도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잘 알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인들을 불러다가 예수님이 무엇을 명령하든지 그대로 해라. 질문하지 말라. 그대로 시키는 대로 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환경에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 길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 지금 우리와 같이 계신 예수님도 우리의 어떠한 정황에도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주님은 알고 계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찾지 않고 자기의 지혜나 수단이나 방법에 의지해서 동분서주하다가 낭패를 당합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주님을 찾아 나오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보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채우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주님을 떠난 삶은 언제나 모자란 삶을 살고 늘 빈 그릇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가나의 혼인 잔치에 예수님이 와 계시고 예수님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줄 알고 계시기 때문에 마리아가 와서 그리스도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오늘날도 여러분의 삶 속에 무엇이 부족하면 여러분이 예수께 와서 부탁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알고 계신 것입니다.

둘째로, 이 집에 보니까 결례통 여섯 개가 있었습니다. 돌항아리 여섯이 있었다. 여섯이란 숫자는 상징적인 의미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여섯은 세상 숫자요 인간 숫자인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갈 동안에는 텅 빈 결례통처럼 빈 항아리처럼 되어 있는데요. 이 결례통이라는 것은 원래 유대인들이 물을 채워 놓고 항상 손발을 씻고 하나님께 예배도 드리고 손발을 씻고 음식도 먹고 손발을 씻고 잔치도 참여하고 하는 목욕통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결례통 여섯 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례통은 속이 깨끗해야 물을 채우지 속이 더러운 나무잎사귀나 흙이나 벌레들이 득실거리면 거기에 물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 결례통에 물을 채우라고 할 때는 먼저 결례통을 깨끗이 씻고 내부를 정결하게 해야 그 결례통에 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 결례통 여섯 개는 바로 여러분과 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인 것입니다. 우리의 결례통인 우리의 마음이 깨끗함을 입어야 주님께서 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에게 기도로 응답하고 채우기 전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다.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1절에 보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를 깨끗하게 합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가 더러워졌는지 깨끗해졌는지 비춰주는 거울인 것입니다.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고 자기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지 안 묻었는지 어떻게 압니까? 거울을 들여다봐야 하는 것처럼 오늘날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들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영적인 거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명에 비추어서 우리를 정결케 해야 합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나의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등이요 빛이 되어서 어두움을 밝혀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주님 앞에 채움을 받기 전에 하나님께 나와서 우리 결례통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 십계명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비춰봐야 합니다. 네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다른 신을 둔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상에 절하지 말라. 우상에 절한 죄가 있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지 못하고 장난으로 부른 죄가 있으면 회개하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성수 주일 못한 죄가 있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에게 공경하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미워했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했으면 그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간음하지 말라 음란하고 방탕한 삶을 살았으면 완전히 회개하고 하나님께 자복해야 합니다. 이웃을 도적질하지 말라 이웃을 도적질하는 것은 하나님의 십일조를 도적질한 것이나 이웃을 도적질한 것도 회개해야 합니다. 내 이웃을 거짓 증거 하지 말라 이웃 사람에 대해서 거짓말하는 것, 이것도 회개해야 합니다. 내 이웃을 탐하지 말라 이웃 사람 잘 되는 것 배가 아파서 그를 끌어내리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말을 만들어서 공격하는 것 이런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결례통이 깨끗해야 합니다. 더러운 통에 하나님께서 물을 채우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결례통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깨끗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가 정결함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도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했고 9절에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회개만 하면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써 우리가 정결하게 되고 깨끗함을 얻고 죄를 한번도 안 지은 것처럼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결례통에 물로 채우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물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물은 성령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로 39절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때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결례통에 물로써 채우라는 것은 여러분과 나에게 성령으로 채움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며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성령이 우리를 통해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말고 더 기도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오순절 날에 제자들이 한 열흘동안 전심으로 기도하니 하늘에서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고 불이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더라 방언으로 말할 때까지 성령으로 충만하라 방언이라는 것이 바로 성령이 충만해서 넘쳐흐르는 소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다 성령이 와 계시지만 성령이 넘치면 넘치는 소리가 납니다. 그 넘치는 소리가 바로 방언인 것입니다. 우리가 방언의 소리가 날 때까지 성령의 충만함을 간구해서 우리의 이 결례통이 입구까지 물이 가득해야 합니다. 성령이 가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우리의 삶 속에 성령으로 충만함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으로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 뜨거운 심정으로 간절히 구하면 성령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우리 실업가 이야기를 들었는데 성령 충만함이 받고 싶어서 늘 마음에 간절한 마음이 있었으나 특별히 기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어서나 앉으나 늘 하나님이여 성령으로 충만한 세례를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마음을 가졌는데 하루 아침에 밥상을 받고 식기도를 하는데 식기도하면서 하나님이여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자 성령이 떨어졌습니다. 막 진동을 하고 방언을 하고 밥상이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날 아침에는 성령 충만해서 밥도 못 먹고 출근을 했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이 간구하면 언제 올지 모릅니다.
D. L 무디 위대한 주의 종은 그 요란스럽고 복잡한 뉴욕 거리를 걸어가면서 하나님이여 성령으로 채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는데 그 길거리에서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빨리 빨리 찾아서 친구 집에 들어가서 엎드려 기도했는데 성령이 얼마나 넘쳤던지 견디지 못해서 하나님이여 이제는 그만 채워 주시옵소서. 더 채우면 내가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미국을 흔드는 위대한 부흥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이 결레통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채워야 합니다. 예수 믿지 않은 사람은 이 통이 더러워서 그 몸에 세상이 꽉 들어차고 마귀가 꽉 들어차고 온갖 세상의 더러움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을 때 마귀와 세상이 다 쫓겨 나가고 보혈로 정결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넘쳐 나야 하는 것입니다. 결례통에 물로 채워라 성령으로 채워라.
그 다음 또 말씀은 물로서 표현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성령으로 충만함 받았으면 말씀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어떻게 마음에 충만할까요? 그것은 말씀을 묵상함으로 마음에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면 충만하지 않아요 묵상은 말씀을 마음속에 충만하게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돌아가시고 그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의롭게 하신 것을 한번 깊이 되씹어 보고 되씹어 보십시오. 그러면 믿고 용서함 받아 의롭게 된다는 말씀이 마음속에 충만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과 마귀를 멸하시고 우리의 속에 하늘나라로 채우시고 성령으로 채우신 것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여러분 속에 그 말씀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서 우리의 모든 슬픔을 짊어지고 우리의 모든 질병을 짊어지고 가신 것을 한번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다고 했었으니 우리의 질고를 다 십자가에 걸머지고 등에 피를 흘리고 가신 예수님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슬픔을 다 제하시고 주님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생수 같이 채워 주시는 그리스도를 묵상해 보십시오. 그를 깊이 생각해 보고 그 은혜를 생각해 보고 우리가 묵상하면 그 은혜가 마음속에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는데 가시와 엉겅퀴를 걸머지고 우리 대신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높이 달려 몸 찢고 피 흘려 고통 당하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나의 저주를 걸머지시고 나의 가난을 걸머지시고 나의 낭패와 실망을 걸머지시고 저렇게 벌거벗고 십자가에 못 박혔구나. 예수 그리스도가 날 대신 고난 당했음으로 나는 가시와 엉겅퀴와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되었구나. 이것을 깊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그 말씀을 묵상할 때 그 말씀으로 말미암은 믿음이 마음에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죽음을 걸머지시고 그곳에서 고난 당하시며 주께서 죽으시고 장사 지내시고 음부에 내려 가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생각해 보고 또 반추하고 또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마음속에 천국의 영광과 기쁨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항상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그 다음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그냥 건성으로 듣고 흘려 버리지 말고 내가 하나님께 은혜 받기를 원하면 그 약속의 말씀을 마음속에 반추하고 반추하고 묵상하고 묵상하면 그 말씀이 마음속에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인 성령과 물인 말씀으로 우리의 결례통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럼 네번째,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말했습니다. 이 떠간다는 말은 바로 기도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 14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이제 말씀도 충만하고 성령도 충만하기 때문에 기도로써 휘져으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례통에 물을 채워 놓고 이제 하인들이 물을 뜰 때 그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처럼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하고 말씀이 충만하면 기도로써 성령과 말씀이 충만한 우리의 속을 이렇게 뒤 휘저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생각할 수 없는 변화가 다가옵니다. 악한 자는 선한 자로 변화됩니다. 흉한 자는 의로운 자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톨스토이가 말하기를 자기는 예수를 믿기 전에 굉장히 악한 사람이었는데 흉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자 말자 그 다음 주님께서 그에게 와서 그의 악한 생각을 선한 생각으로 악한 마음을 선한 마음으로 추한 삶을 거룩한 삶으로 변화시켜 주었다고 그는 간증을 했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변화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들어와서 음란하고 방탕한 자는 거룩한 자로 술주정뱅이는 깨끗한 사람으로 도박하는 자는 도박에서 벗어나고 허랑 방탕한 자는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성령과 말씀이 와서 우리를 물로 포도주를 변화시키는 것처럼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믿음 소망 사랑으로 채워주시고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채워주시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마음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더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성공 실패는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마음에 이뤄지는 것이 밖으로 넘쳐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에 변화가 와야 가정도 변화되고, 마음에 변화가 와야 사회도 변화되고, 마음에 변화가 와야 국가도 변화되는 것입니다. IMF도 우리의 국민의 마음속에 변화가 와야 완전히 이 IMF를 피하고 우리가 잘 살게 되는 것이지 아무리 행정적인 개혁을 해도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되지 않고는 여전히 그대로 있으면 또 다시 그 옛날로 돌아갑니다.
돼지를 아무리 목욕을 시켜 좋은 넥타이를 매어서 안방에 요 위에 앉혀 놓아도 그는 곧장 그곳을 돼지 소굴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돼지 마음이 변화되지 않는 이상 환경을 아무리 변화시켜 놓아도 돼지는 역시 돼지인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은 예수 믿고 성령 받고 말씀으로 충만 받고 기도하면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9절에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말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로 18절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령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충만하면 기도하는 것마다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과 말씀은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십시오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이것을 어떻게 변화시킵니까?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더라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성령이 운행하실 때 그때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그때 말씀과 성령이 역사하매 빛이 있으라 하니 흑암 가운데 빛이 생겨났습니다. 궁창이 생겨나라 하늘과 땅 사이에 물이 갈리고 푸른 하늘이 생겨났습니다. 온 세상의 물은 한 곳으로 모이고 땅이 드러나고 열매 맺는 나무가 생겨나라 하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성령이 운행하고 주께서 말씀을 주시매 해와 달과 별들이 있으라 하매 그대로 되었으며 공중에 나는 새와 물고기가 있으라고 하니까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흙으로 지어서 생기를 불어넣으니 생령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여러분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마음이 많지 않습니까? 마음이 낭패와 실망을 당하여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습니다. 가정이 부부 싸움과 불협화음으로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습니다. 사회가 분쟁으로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정치가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이런 것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길은 성령의 역사와 말씀과 기도만 있으면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변화여 포도주를 만들어서 그 집안에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주님께서 질서와 의와 생명과 부요와 아름다움을 가져온 것처럼 오늘날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성령 충만 말씀 충만 기도 충만만 하면 흑암은 변하여 광명이 되고 무질서는 변하여 질서가 되고 죽음은 변하여 생명이 되고 가난은 변하여 풍요가 되는 변화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변화시키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종교만 주고 의식의 옷만 입혀 주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이나 주고 교훈이나 가르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의 생애 속에 들어와서 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이웃 사람이 깜짝 놀랄 정도로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변화를 가져오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변화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변화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시고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물은 포도주로 변화하고 포도주는 빛이 곱고 향기가 있고 취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되 보기에도 곱고 성품이 향기롭고 그리스도로 취해 버린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모자라는 것을 가득하게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변화시키는 하나님은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 여러분의 삶 속에 부족함이 없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이 시간에 예수님께서 두 손을 활짝 내미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로 나오십시오. 예수께 여러분의 생명과 운명을 내어 맡기십시오. 성령을 충만히 받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기적이 오늘도 여러분 가운데 놀랍게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를 찾아 오셔서 우리에게 변화를 일으켜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성품을 변화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여 이 땅에 변화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모든 면에 모두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에는 금년보다 소망 찰 수 있사옵니다. 그 변화의 힘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망을 철폐하시고 생명으로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을 감사합니다. 변화의 힘인 성령 충만과 말씀 충만과 기도를 가지고 오늘날 우리 모든 생활이 가나의 혼인 잔치처럼 변화 받게 도와 주시옵소서. 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여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가 넘쳐나게 도와 주시옵시고 나날이 변화의 기적으로 가득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