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7월 4일
제목: 살아있는 동안 늘 문제는 있다.
성구: 히 5:7-10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살아있는 동안 늘 문제는 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일생은 항상 문제의 산과 들, 골짜기를 지나며 살아갑니다. 문제가 없는 날은 무덤 속에 들어가는 그날인 것입니다.
미국의 Wilson 대통령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항구적인 세계평화를 가져올 기구인 국제연맹 창설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꿈은 미국 상원에 의해 부결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속이 상하고 충격을 받은 대통령은 그만 치명적인 병이 걸려 죽음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음속에 미 상원에 대한 원한과 미움으로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상원 놈들이 나를 죽인다고 그렇게 늘 말했습니다. 그때 Wilson 대통령인 홍보담당 비서관이었던 인생 철학자 napoleon Hill이 대통령의 병상을 방문하여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대통령 각하, 각하의 꿈은 크고 위대합니다. 그것이 상원에 의하여 부결된 것은 큰 손실입니다. 그렇지만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십시오. 지금 이후 백년이 지나고 나면 국제연맹이 있었든, 없었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 사건은 역사의 한 사소한 사건으로 세인의 기억에조차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함을 푸시고 용서하시고 평안히 눈을 감으소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과연 Wilson 대통령이 비분강개하여 원통해서 고혈압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어 병상에서 고통 당하다가 죽었지만 지금 사람들의 마음에는 Wilson 대통령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구성되었다가 실패한 국제연맹도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벌써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사라져가고 말은 것입니다.
한 개인의 문제는 죽음과 함께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자에게는 그림자처럼 문제는 늘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보면 구약의 인물들 중에 위대한 하나님의 축복 받은 종들도 문제없는 인생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는 75세에 갈대아 우르 고향산천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왔는데 가나안 땅에 무시무시한 기근이 들어서 참으로 기막힌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자기 아내와 조카 롯과 많이 데리고 온 종들과 일가친척들이 먹을 양식도 물도 다 떨어졌습니다. 그 많은 짐승떼들은 다 굶어서 쓰러져 죽었습니다. 이 중대한 문제에 봉착해서 그는 말할 수 없는 정신적인 고통과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택한 종이요 그렇게 복 받은 사람이었으나 문제없는 인생은 아니었습니다. 할 수 없는 애굽에 피난하러 내려갔으나 애굽 바로에게 그 아내를 빼앗기고 그는 정말 눈물로 세월을 지낸 문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문제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후에 하나님의 자비로 다시 아내를 찾아서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 왔지만 가나안 땅에서 소유지가 좁고 녹초지가 적은데 조카 양떼들의 목동들과 자기의 목동들이 서로 싸우고 아저씨인 자기와 조카인 롯과 싸움이 붙어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아저씨와 조카간에 분열이 일어나 싸우는 그런 중대한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선택받은 사람이었지만 문제가 없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그는 살 동안에 나이 85세가 되어 자기 아내의 권유로 아들이 없기 때문에 하갈을 취하여 첩으로 삼았더니 그가 잉태됨에 본처인 사라와의 무시무시한 논쟁으로 말미암아 가정에 보통 문제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어 하갈을 쫓아내었다가 천사가 도로 돌려보내매 집에 돌아오고 하는 그런 문제에 부딪혔고 그 다음 100세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을 젖 땔 때에 첩에서 난 이스마엘이 그의 아들 이삭을 놀리는 것을 보고 사라가 분노하여 아브라함에게 와서 저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그래서 아브라함은 눈물을 머금고 그의 첩 된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의 운명을 하나님께 부탁하고 물 한 부대 어깨에 걸머지우고 내어쫓아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까? 그는 하나님의 택한 사람이요 믿음의 조상이라고 초대받았으나 그의 일생은 문제 투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기근에서 구원한 요셉은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형들의 시기를 당해서 17살에 아라비아 대상에서 종으로 팔려서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서 낮선 애굽 땅에 종으로 팔려가 애굽의 임금님의 보디가드인 보디발의 집에 종이 되었습니다. 종살이의 그 고달픔과 괴로움과 서러움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형제들 중에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인데 문제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문제 투성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겨우 살게 되어서 10년의 종살이에 총무가 되었는데 그만 보디발의 아내에게 무고를 당해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래서 정처 없는 2년의 세월 동안 감옥에서 눈물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문제가 없었습니까? 요셉에게 한없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30세에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그는 총리대신이 되었지만 7년 풍년 후에 7년 기근의 그 어려운 고비를 모든 애굽 사람과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양식을 먹이고 살리는 거대한 문제에 봉착하여 그 문제를 안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서 살아갔었습니다. 나중에는 형제들이 다 자기에게 의탁해 살려 왔고 그 형제들을 용서하고 그 형제와 그 처자들을 먹여 살리는 그러한 문제도 그는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구약 시대에 대표적인 인물인 모세라든지 또한 아브라함이라든지 요셉이라든지 한 사람도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신약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고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 중에도 문제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은혜와 축복은 받았어도 문제는 인생 생활을 떠나가지 않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우두머리요 장자였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말하기를 나는 감옥에도 같이 가고 죽은 데도 같이 가겠다고 맹세 했지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힐 때 버리고 도망쳤고 그 다음 안나스와 가야바의 뜰에서 심판을 할 때 멀리 따라 갔다가 조그마한 계집아이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세번째는 저주하고 맹세하여 가로되 나는 저를 도무지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다가온 그 정신적인 폭풍우와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죄책으로 말미암아 몸부림을 치는데 자기 앞에서 부인한 그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죽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한 정신적인 고뇌와 죄책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잃고 좌절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고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 보고 난 다음에도 그 좌절은 너무나 깊어서 예수님의 제자 되는 것을 포기하고 옛날 고기잡이로 돌아가자고 갈릴리로 내려가서 다시 낡은 그물에 먼지를 털고 배를 수선하고 고기잡이를 떠났던 이와 같은 비참한 사람이었습니다.
오순절 이후 전도사역을 시작하고 난 다음에도 그는 계속해서 투옥을 당하고 매를 맞았습니다. 헤롯왕에게 잡혀서는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 하루 전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나타나서 그 감옥 문을 열어주므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경험도 있습니다. 그는 나중에 로마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하도 핍박이 심해서 도망을 치는데 아침 햇살과 함께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로마로 들어가기에 쿠오바디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렇게 물은즉 주님께서는 네가 버리고 간 양무리를 돌보기 위해서 내가 로마로 돌아가노라 그는 그에 크게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서 잡혀 주님은 십자가에 바로 못박혔지만 나는 주님을 배반한 사람이기 때문에 바로 못박힐 자격이 없다고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전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위대한 종 베드로도 그의 일생에 끝없이 당한 분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 교인들을 잡으러 가다가 대낮에 주님이 광명한 빛 가운데 나타나셔서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하심으로 주시여 누구니이까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거꾸러져서 눈이 장님이 되었다가 다메섹에 들어가서 아나니아에게 안수를 받고 예수 믿고 성령 받고 세례 받고 눈을 떴습니다. 곧 그리스도를 전도하다가 그를 죽이려고 유대인들이 성문을 지키매 할 수 없이 다메섹 성에서 바구니를 타고 줄에 매달려서 내려와 도망을 쳤습니다. 예수를 믿자말자 그는 큰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오니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들을 냉대하고 받아 드립니까? 전에 교회를 훼파하고 성도들을 감옥에 넣었던 사람이 왔다고 하니 아무도 그를 대면해 주지 못하고 헬라파 예수교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하매 그는 자기의 고향 땅 다소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광야에서 3년 동안 기도하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방 선교사가 되어서 1차 2차 3차로 해외 전도를 났지만 가는 곳마다 얻어맞고 감옥에 갇히고 파선 당하고 끝없는 문제를 당한 바울이요 결국에는 로마에서 그는 목이 베어서 순교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생각하기에는 나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너무나 문제가 많다. 내 가정이 문제가 있고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들이 문제가 있고, 내 직장에 문제가 있고, 나의 사업과 나의 생활에 너무나 문제가 많다. 사는 것이 고통스럽다, 괴롭다 그렇게 좌절하고 슬퍼하는 사람이 많이 있겠지요. 그러나 여러분보다 먼저 살았던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나 일꾼들도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은 받았지만 문제없이 산 사람은 한 분도 없습니다. 인생에서 죄 없이 산 분은 한 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예수님조차도 33년 동안 말할 수 없이 많은 문제에 부딪혔고 핍박을 받았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죽으시기까지 했습니다.
이러므로 문제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불티가 하늘로 올라감같이 인생은 고난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욥은 말했습니다. 이처럼 여러분 여러분과 나의 삶에는 항상 문제들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나는 문제를 당했으니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나는 문제를 당했으니 믿음이 약한 사람이다, 나는 문제를 당했으니 이제는 파멸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위대한 용사들도 문제를 당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시련과 문제를 당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오늘날 문제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에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 중에 살아갈 것인가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께서 문제없는 사람을 찾아가려거든 오산리 기도원에 공동묘지를 찾아가십시오. 그곳에 누워 있는 분들에게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여러분에게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절대로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다 하나님이 나를 덜 사랑한다 내 믿음이 약하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극복하고 그 문제로 우리의 삶에 양식으로 삼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내게 다가오는 문제는 내게 던져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문제를 당하면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 왜 김씨, 박씨, 조씨도 안 당해야 하는데 왜 내가 이 문제를 당해야 하느냐? 그렇게 자꾸만 왜 내가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말고 여러분 문제가 다가오거들랑 이 문제는 내게 던져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쉽게 말하는 운명은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운명은 다 똑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세 전에 하나님이 정해서 내게 다가오게 한 것 내가 피할 수가 없습니다. 내 운명이지요. 그러므로 누구 때문에 누구 탓으로 왜 내 팔자가 기구해서 이러느냐 이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문제를 당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무정하실 수가 있느냐고 탄식을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코 앞의 일도 모르는데 하나님은 영원을 두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이 행하는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어떻게 알고 순식간에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을 합니까? 지금 안된 것이 나중에 될 수도 있고 지금 고통이 나중에는 행복으로 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를 당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문제를 당했을 때 이웃과 환경에 대해서 분노와 적개심을 가집니다. 아무개 때문에 그렇지 너 때문에 내가 고통을 당했지. 분노와 적개심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도 버려야 됩니다. 우리가 현재에 처해서 우리가 문제를 당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지어준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그 문제에 반항하지 말고 그 문제를 내 생애 속에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 생활 속에 문제는 궁극적으로 우리 조상과 우리 죄 값으로 다가오는 것이지 우리 조상의 죄, 우리 인류의 죄, 국가의 죄, 사회의 죄, 내 죄 결국 죄 값으로 이 땅의 문제는 끊이지 않습니다.
시편 107절 10절로 12절에 "삶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므로 수고로 저희 마음을 낮추셨으니 저희가 엎드려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인생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하나님께서 친히 육의 몸을 쓰고 오셔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몸을 찢고 피를 흘렸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이 문제 때문에 직접 이 땅에 찾아오셔서 십자가에 죽는 고통을 당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에 씨랜드에서 화제사건으로 23명의 어린 고사리같은 귀한 자녀들이 불타 죽었습니다. 난 내 마음에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그 어린아이들이 자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힘도 없는데 불 속에 생화장을 당할 때 얼마나 뜨겁고 고통스럽고 괴로웠겠습니까? 몸서리칩니다. 왜 그런 일을 당했습니까? 왜 그 문제가 왔습니까? 결국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죄 때문에 온 것입니다.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아먹고 업자의 농간에 넘어 간 것과 그리고 씨랜드를 만든 사람이 국가법에 의해서 건축법에 의한 정확한 건설 공사를 하지 않고 얼렁뚱땅 했기 때문에 또한 아동을 인솔한 교사들이 무책임하게 아동들을 지키고 같이 있지 아니하고 자기들끼리 먹고 마시고 놀았기 때문에 뭐 여러가지 어른들의 복합된 죄로 말미암아 이 씨랜드의 어린아이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이 중대한 문제를 가지고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이것은 인간의 죄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바로 그 인간의 죄를 없이 하기 위해서 얼마나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하며 눈물을 흘리고 몸부림을 치면서 죽음을 체험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이 만든 이 죄악으로 인한 문제는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서 53장 6절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문제가 다가올 때 그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해도 안되고 이웃을 원망해도 안되고 왜 내게 이런 일이 다가왔냐고 반박하거나 저항해서도 안됩니다. 문제를 당했거든 이것을 내게 배정된 주어진 운명으로 생각하고 이것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문제와 함께 투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문제에 부딪쳤을 때 반항하고 원망하며 하나님께 등을 돌릴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진실한 신앙인은 여하한 문제에 부딪칠지라도 그것을 회개의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문제가 다가올 때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내게 속한 운명적인 사건임으로 내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17절로 18절에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통회하고 자복하고 깨어져서 문제가 당하였을 때 내 스스로를 조명해 보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돌봐 주실 수 없지만 회개하고 깨어진 사람을 하나님이 돌봐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가 다가왔을 때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오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더욱 말씀을 읽고 믿음과 순종의 길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죽을 때까지 말씀으로 살지 아니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세상을 따라 세상 떡으로만 살지 않나 생각하고 하나님 말씀을 간절히 찾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6절로 117절에 보면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에 항상 주의하리이다" 문제에 부딪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이나 사람을 원망하고 저항하고 반항하는 기회로 삼지 말고 회개하고 깨어지고 하나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그런 기회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문제를 당하면 동분서주하지 말고 사람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려고 하지 말고 문제 해결을 위하여 전심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냥 기도하지 말고 배속에서 우러나오는 한 서린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정성을 다하여 온 심령을 다 기울여 우리 주님께 구원의 손길을 간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39편 12절에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같으니이다"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 간구할 때에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성경에는 환난 날에 내가 너와 함께 너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환난 때에 나를 부르라 그러면 내가 너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으며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당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날 수 있는 때가 왔다가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의 기회인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가 없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오면 하나님의 능력도 나타날 기회가 온 것입니다. 홍해수 사건이 안 일어났으면 홍해수가 갈리지는 기적이 일어날 턱이 없습니다. 쓴 연못물을 만나지 않았으면 연못물을 달게 하는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40년 광야에 물도 없고 양식도 없는 곳에서 방황하지 않았으면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만나로 먹이고 바위에서 물이 터져 마시게 하는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도 나타날 기회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문제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는 기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에 하나님을 찾아야지 사람을 찾으면 안됩니다.
성경에 보면 아사가 발에 병이 났는데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의원을 찾다가 죽었다고 그렇게 성경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아사 왕이 발에 병이 났는데 그는 치료하는 하나님이 나타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을 찾았으면 그가 고침을 받았을 것인데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의원을 찾다가 죽었다고 성경이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하나님을 그 문제에 초청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을 알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십시오. 새벽기도 철야기도 혹은 금식 기도하면서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문제에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당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는 문제를 당해서 기도할 때 그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7절로 10절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써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은혜를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난 다음 내가 원하는 대로 될 때도 있고 내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갈 때도 있지만 그러나 어떻게 되었든 문제를 당해서 내가 문제를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오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미 알았은즉 좋든 나쁘든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신 것임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섯째로,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방향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응답이 되어도 감사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응답이 안되어도 고통스럽더라도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4절로 15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은 통곡을 하면서도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재산 다 잃어버리고 그의 자녀들 다 잃어버리고 아내가 자기를 배반하고 나가고 온 몸이 병이 들어 잿더미에 벌거벗고 앉아 기와장으로 몸을 긁고 앉았어도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통곡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원망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어진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든 주인이요 우리는 그의 소유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하든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드릴 자격밖에는 다른 자격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만든 소유물을 가지고 마음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사 반역하고 거역하고 죄지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시사 십자가에 우리 대신 못 박고 몸 찢고 피 흘려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다 대속하시고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들을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하나님께 나와서 구원을 얻으라고 하는 이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께 대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독생자를 주셔서 그 사랑을 확실히 증명해 주었는데 그 사랑의 하나님께 그 일생을 내어 맡기고 우리는 주님을 따라가야만 할 것입니다.
욥기 1장 21절로 22절에 욥의 말을 기억하십시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기 23장 10절에 그는 고백하기를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나는 내 앞길을 모르지만 주님은 아십니다. 좋으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내가 단련을 받고 난 다음에는 정금같이 귀하게 되어 나올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일생을 사는 동안 문제 투성이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얻을 수 있고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이 세상에 죄인만 시험과 환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경건한 자들도 시험과 환난을 당하고 문제에 부딪칩니다. 아버지 문제가 다가올 때 이상한 일같이 생각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운명으로 생각하고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 문제가 부딪칠 때 회개할 기회를 삼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기회로 삼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문제가 다가왔을 때 하나님께 몸부림치며 부르짖어 기도하는 기회로 삼고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나타날 수 있는 기회로 삼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문제의 결과에 겸허히 순복하고 좋든지 나쁘든지 받아들이고 눈물로 감사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렇게 할 때 문제는 나중에 오히려 변하여 우리에게 큰 축복으로 변화되고 황금같이 되어 나올 것입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그러므로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날 때에 우리는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 같이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연단을 주시는 기회인줄 알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그 문제를 소화하고 나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