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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7월 11일 제목: 하나님은 왜 나를 멀리 하실까? 성구: 시 15:1-5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은 왜 나를 멀리 하실까?”란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 중 제게 종종 이와같은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저는 왠지 하나님께서 너무나 멀리 계신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저를 좋아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을 예수님 안에서 택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좋아하시지 않을 리가 없었습니다. 안 좋아하는데 왜 하나님이 택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을까요? 그러나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거하실 수가 없어서 우리를 멀리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 우리 심령이 답답하고 기도가 나오지 않고 영적인 고통이 다가옵니다. 이러한 생활을 계속하게 되면 마음이 굳어지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불신의 담이 쌓이게 되고 심령이 세상 잠에 빠지거나 죽어갑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께로부터 꾸짖으심과 시험과 환난과 체찍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전에 기쁘게 출입하고 하나님의 성산에 함께 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 갈등과 긴장이 없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이 있고 끊임없는 긴장상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갈등과 긴장을 제하고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는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서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성품은 의로우신 것입니다. 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불의 부정 부패를 가슴에 품으면 하나님과 갈등 관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정의로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 아바 아버지로 부르면서 우리의 가슴속에 불의와 부정과 부패가 들어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죄를 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갈등을 해소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살든지 안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든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7절로 9절에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의를 마음속에 품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부정과 부패는 패망과 파멸의 온상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지방 정부 관리의 부패와 부정한 사업가의 유착이 가져온 씨랜드 사건의 비극을 보십시오 1999년 6월 30일 밤중 화재로 유치원생, 교사 23명이 비극적으로 사망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부정과 부패는 패망과 파멸의 온상이 되고 언제고 비극적인 사건을 일으키고 마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부정하고 부패한 개인이나 사회 국가는 조만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의를 버리면 하나님께 버림당한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33장 15절로 16절에 “오직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 보장이 되며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먼 눈으로 바라보게 될 때에 우리는 정의롭게 사는 것이 큰 축복이요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불의와 부정과 부패가 있는 이상.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사랑할 수 없고 교제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려면 매일같이 부정한 마음, 부패한 마음을 회개하고 실천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허위나 거짓, 속임수 등을 가슴에 품으면 하나님과 갈등 단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거짓이 꽉 들어차고 입술을 열면 늘 거짓말을 말하고 허위를 말하며 남을 속이고 등치는 일을 하면서 교회에 와서는 주여 주여 아무리 부르짖은들 하나님이 그런 사람과 같이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은 진리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이 오면 거슬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며 항상 거짓말을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심판을 당하였냐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과일을 다 먹되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 너희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는데 마귀는 와서 아담과 하와에게 말하기를 아니라 너희가 이 실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 결단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 대신에 마귀의 거짓말을 믿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한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8장 44절 이하에 보면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마귀의 하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속이려 하거나 속이면 성령은 진리의 영이신지라 그 사람의 마음에서 떠나가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보십시오. 초대교회에 거대한 부흥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이 감화 감동을 입고 자기 재물을 하나님께 바쳐서 영광을 돌리는 것을 보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사람들 앞에서 칭찬 받고 싶었습니다. 자기 재물들을 팔았습니다. 자기 재물 자기가 파는 것은 죄가 아니지요. 그러나 그 중에 얼마는 숨겨 놓고 난 다음 부부간에 의논해서 베드로 앞에 재물을 가지고 와서 바치면서 말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가진 모든 재물을 다 바친 것입니다. 그때 성령께서 베드로를 통해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희 속에 사탄이 가득해서 하나님의 성령에게 거짓말을 하게 하느냐! 재산이 있을 때는 네 것이요 팔고 난 다음에도 네 것인데 왜 그것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느냐 그러자 하나님의 침을 받아서 아나니아는 그대로 쓰러져 죽고 그 아내도 와서 똑같은 거짓말을 하다가 쓰러져 죽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짓하는 자와 같이 생활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거짓을 품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떠나고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거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거짓 위에 쌓은 삶은 모래성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1994년 성수대교가 무녀졌잖아요? 그래서 죽은 사람만 32명입니다. 그것이 왜 그렇습니까? 부실공사에다가 부실 감독입니다. 거짓으로 공사하고 또 유착해서 감독기관이 거짓으로 감독해서 결과는 성수대교라는 서울시민이 사용하는 교량이 무너진 것입니다. 거짓의 토대는 이처럼 반드시 언제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래성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삼풍백화점이 왜 무너졌나요? 1995년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져서 사망자만 506명, 부상 940여명의 비극적인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것도 부실 시공이요 관리 소홀인 것입니다. 거짓으로 시공하지요. 그럼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물건을 사고 파는 백화점을 여러분 거짓으로 부실하게 시공하고 감독도 유착해서 부실 감독을 하고 그 결과로 거짓의 모래성 위에 세워진 그 백화점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가짜가 판치는 삶이나 사회나 국가는 하나님의 심판 하에 있습니다. 결코 거짓이 한 세대를 지나서 성황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공산주의를 보십시오. 공산주의는 완전한 거짓의 토대 위에 선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한 세대가 지나자 공산주의는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거짓이 영원히 통할 것이라고 하는 것은 괜한 사고인 것입니다. 거짓은 모래성입니다. 언제고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이기 때문에 영원히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 진리의 하나님이 거짓을 마음에 품고 거짓의 혀로써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를 들을 리가 없으며 거짓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 아바 아버지라고 올 때 하나님께서 밀어 내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충성스러운 분이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로 15절에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여기에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충성스러우신 분이신 것입니다. 결코 배반하거나 배신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돌아가는 그림자도 없습니다. 이기주의적이고 배은망덕하고 배신하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성격상 하나님과 거슬립니다. 하나님은 충성스러운 하나님입니다. 진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배반이나 배척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은 마음속에 배은망덕한 마음을 가지고 이기주의적이고 배신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해서 아버지가 그것을 받아줄 수 있나요? 아담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배신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서 천지와 만물을 예비해 주셨고 아름다운 에덴을 준비해 주셨고 지극한 사랑으로 사랑해 주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등지고 대적한 원수 마귀의 말을 듣고 마귀와 합작을 하고 하나님께 배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배신자를 용납했습니까? 그대로 에덴에서 내어쫓아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얼마나 큰 사랑으로 독수리 날개에 태워서 애굽으로 인도하여 저 광야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갖다 주었건만 잘 먹고 잘 입고 배부르니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상을 섬기고 하나님께 배신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용납했습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포로로 잡혀서 나라가 망해져 버리고 지상에서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배은망덕하고 배신한 자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3년이 넘도록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그는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먹는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세세무궁토록 그는 저주받은 삶을 살았습니다. 모든 주를 믿는 사람들이 모두 다 가룟 유다를 미워합니다. 배신자입니다. 그는 역사 이래 대표적인 배신자입니다. 그는 스스로 목메어 부르르 떨다 창자가 터져서 죽지 않았습니까? 배신이 꽉 들어찬 사회는 망합니다. 오늘날 우리 정치적 이합집산을 보십시오. 이렇게 모였다가 이렇게 헤어지고 배신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사랑과 신뢰가 사라진 사회가 건장하게 설 것으로 생각하면 큰일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말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충성스러운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언제나 자기의 개인의 이기주의 삶의 편의를 따라서 이리 가고 저리 뛰고 배신하고 배반하는 이러한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를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충성스러운 마음을 저버리고 언제나 간사스럽게 아부하고 배신하는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복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의 기도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회개하고 마음에 충성심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네째로,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술 취하고 방탕하며 음란하고 도덕적으로 문란한 삶을 살고 잇는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나요? 하나님은 거룩한 분입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분이십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많이 숫자적으로 늘어났지만 한국사회에 조금도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하는 이유는 주여 주여 입술로 부르짖으면서 술 취하고 방탕하며 음란하고 도덕적으로 문란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교회가 정화되지 못했습니다.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성도들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에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로 17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데 이 성전을 술독으로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그 속에 즐거워하겠습니까? 이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이 우리 속에 왕국을 건설하고 계시는데, 예수님이 만왕이 왕이요 만주의 주로써 우리에게 거하시는데 예수님이 술독에서 헤엄질 치겠습니까? 이 거룩한 성전에 담배 연기로 채워 연기가 이 성전을 더럽히고 파괴하고 있는데 거기에 하나님의 성령이 즐겁게 거하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인데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면 하나님께서 창기와 같이 거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므로 도덕이 무너지면 개인도 나라도 망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부도덕한 사람하고 함께 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왜 멸망했습니까? 그들이 음란하고 방탕하고 남색하고 여색하고 이러하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소돔과 고모라 성을 완전히 멸망시켜버리고 만 것입니다. 완전히 뿌리채 멸망시켜 버리고 만 것입니다. 불과 유황의 비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습니다. 역사상 가장 크고 위대한 나라를 세웠던 로마제국은 왜 멸망했습니까? 로마제국 멸망사에 보면 로마제국이 그렇게 강성했으나 망할 때는 이혼률이 급증하고 자녀들이 탈선하고 국가가 세금을 너무나 중과세하고 온 국민이 사치 낭비하고 쾌락주의를 추구하고 잔혹한 스포츠를 즐기고 그리고 인구는 감소되고 종교가 부패되어 정신적인 문화가 무력화되므로 로마는 내부에서부터 붕괴했습니다. 한 나라가 외부의 침공을 받아 무너진 것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언제나 내부가 부패해서 내부가 썩어서 문드러질 때 외부에서 약간만 건드리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1절에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 하자”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워 왔습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이 올수록 우리는 세상의 더러운 것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 위해서, 성령충만하기 위해서는 성전인 우리가 청결하고 깨끗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더럽고 추한 자와 같이 계시지 않은 거룩한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용납지 않으십니다. 성경에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철이나 나무로 만든 우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말씀하기를 골로새서 3장 5절로 6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마음에 탐심과 욕심이 가득하면 그것이 우상숭배가 되기 때문에 거할 곳을 얻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탐심이 있고 욕심이 꽉 들어차면 그 앞에는 하나님도 계시지 아니하고 형제도 없습니다. 탐심과 욕심이 있으면 그 사람은 죄의 노예가 되어 코에 끌려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늘의 루시퍼를 보십시오. 그는 가장 아름다운 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는 천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도 마음속에 욕심이 들어와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니 부패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내어쫓아서 마귀가 되었습니다. 이사야서 14장 13절로 15절에 보면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밑에 빠치우리로다” 천사장 루시퍼도 그 마음속에 탐욕이 들어오자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를 섬기는 우상숭배자가 되고 하나님께 쫓겨나서 마귀가 되었습니다. 아담도 여러분 터무니없는 욕심 때문에 타락하지 않았습니까? 지음을 받은 자가 어떻게 창조자가 될 수 있습니까? 그 욕심과 탐심 때문에 아담과 하와도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욕심과 탐심은 자기의 분수를 뛰어넘는 욕망으로 반드시 인간을 빗나가게 하며 종국적으로 파멸을 가져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 자기의 분수를 알고 그 분수 안에 사는 것은 높은 지혜인 것입니다. 수많은 고관대작들이 줄줄이 쇠사슬이 묶여서 감옥에 들어간 이유는 결국에는 욕심과 탐심 때문에 지혜를 잃어버리고 눈이 어두워져서 죄를 범하고 결국에는 파탄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은 욕심과 탐심이라는 우상숭배하는 자와 같이 할 수가 없으므로 이러한 죄를 우리가 척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하나님은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1절로 13절에 보면 한 바리새인과 세리가 한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를 합니다. 바리새인 교인은 형식주의자입니다. 율법주의자입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기도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이 아니하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래 두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반드시 드리나이다 이렇게 자기 자랑을 했습니다. 바리새인 교인은 위선자요 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기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죄인입니다. 그는 하나님 성전에 와서 가슴을 치면서 감히 눈을 떠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성경은 말하기를 누가 더 의롭다함을 입고 나갔느냐 자기 자랑하는 바리새인 교인이 아니라 가슴을 치고 자기 죄를 자백한 세리가 더 의롭다함을 입고 나갔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여 내 원수가 내게 죄를 지으면 몇번 용서하면 좋겠습니까? 일곱번씩 용서하면 좋겠습니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고 했었습니다. 나중에 주님께서 하루에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죄를 짓고 회개하거든 용서해 주라고 했습니다. 용서에는 회개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회개치 않는데 무조건 용서를 하면 불의와 범죄를 조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지었는데 그대로 용서하노라 용서하노라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리셨으나 회개하는 자만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자만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지 회개하지 않는 자를 주님께서 용서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 이웃이 우리에게 범죄하고 난 다음에 우리에게 와서 회개하거든 용서해 주고 회개 안 하는데 무조건 하고 난 널 용서해 준다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회개하는 자를 언제나 용서하고 사랑하는 그러한 성품을 가져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일곱째로, 하나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자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말했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고 말했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 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생각하기에는 사나운 사람 무력행사를 한 사람 주먹진 사람이 땅을 차지할 것 같은데 역사는 언제나 온유한 개인이나 민족이 차지하고 풍부한 화평으로 즐겼습니다. 사나운 짐승은 언제나 저 깊은 산 높은 절벽을 타고 다니면서 험한 삶을 살지만 온유한 짐승인 닭이나 소나 개나 말이나 양이나 이러한 짐승들은 평지에서 사람의 보호를 받고 삽니다. 온유한 자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고 겸손한 자를 하나님이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 선생을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 옆구리에 가시가 나게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로 10절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바울 선생을 약하게 만들어서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랑을 못하게 하셨습니다. 내 지혜로 내 총명으로 내 지식으로 내 능력으로 이루었다고 못하게 하기 위해서 사단을 보내어서 그 옆구리에 가시가 되어 늘 찌르게 합니다. 허약함을 견디지 못하여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고 사단을 쫓아 달라고 할 때 네가 약할 때 내가 강하다 네가 약해야 겸손하게 나를 의지하게 된다.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게 하시고 겸손한 자를 주님께서 높이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환경에도 보십시오. 빈 수레가 더 요란합니다. 속이 텅빈 사람이 어디에 모여도 큰 소리하고 말 많이 합니다. 어떤 모임에도 와서 자기 주장 많이 하고 고함치고 야단법석하는 사람은 속이 빈 사람입니다. 속이 꽉 들어찬 사람은 그렇게 요란스럽게 날뛰지 않습니다. 우리가 추수 때 보면 바람이 불어서 흔들리는 것은 쭉쟁이 입니다. 알맹이가 들은 이삭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나 쭉쟁이는 자기가 잘났다고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하고 흔들거립니다. 언제나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시위하는 사람은 쭉쟁이입니다. 알맹이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백년가약의 혼례를 하고도 몇 년이 못되어서 갈라서는 부부를 보니다. 그 이유는 성격 차이라고 말합니다. 성격의 차이로 항상 서로 부딪치고 갈등하게 되면 사랑도 박살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거역하고도 하나님을 우리편으로 모시려고 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행동인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받아들여 우리를 다스릴 때에 진정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 이유없이 나를 멀리 할 턱이 없습니다. 아무 이유없이 물리칠 일이 없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말씀한대로 이 하나님의 일곱까지 성품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우리가 회개하고 우리가 깨어져서 하나님께 순복하고 나오면 하나님은 우리를 얼싸안고 품어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의 손을 잡고 함께 동행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를 긍휼이 보시고 자비롭게 보아 주시옵소서. 우리가 입으로 주여 주여 하면서도 우리 행위는 하나님께 너무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속에 불의가 가득하고 거짓이 넘쳐 납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배신하고 이웃을 배반하고 배신합니다. 우리 아버지 우리의 삶속에 거룩함이 없어 온 세상에 더러움이 꽉들어 차 있고 우리의 발걸음에 욕심과 탐심의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미워하고 사랑하지 아니하며 온유하고 겸손하지 못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을 거역하고 아버지와 함께 거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집에 우리가 어찌 함께 거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버지여 가슴을 치고 회개한 세리같이 하나님 오늘 우리의 가슴을 치고 회개하고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보혈로 씻음을 받고 용서하고 깨어지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과 함께 성산에 거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우리의 기도가 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빛과 소금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