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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 8일 제목: 천국을 침노하는 자 성구: 마11:12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천국을 침노하는 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어느 군사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니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배 이상의 병력과 화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실에 비춰볼 때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례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느니 침노하는 자가 빼앗느니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천국의 축복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힘과 노력을 기울여 기도와 믿음으로 쳐들어가야 하며 조금도 타협함이 없는 단호한 결심으로 빼앗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다고 해서 천국이 우리에게 굴러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값 주고 사셔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축복의 약속도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한 땅 가나안을 점령할 때 치열한 전투를 해서 빼앗은 것처럼 기도와 믿음의 맹렬한 전투를 통해서 마귀를 물리치고 빼앗아 소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준비해야 될 마음가짐이 당연히 필요한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가 점령해야 될 약속의 땅을 마음속에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어디를 들어가서 무엇을 쳐서 빼앗는가를 모르고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빼앗아 소유할 땅의 지경을 분명히 여호수아에게 말씀한 것처럼 우리가 들어가서 쳐서 빼앗아야 할 은혜의 땅도 분명히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기 1장 3절로 4절에 보면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분명하게 어디에서 어디까지의 땅을 점령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7장 13절로 15절에 보면 그 땅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해 주겠다는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로 번성케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케 하시리니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우승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하사 너희가 아는 바 그 애굽의 악질이 네게 임하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임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수아에게는 땅을 점령할 지경과 그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어떠한 은총을 주실 것을 분명히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예수님 십자가를 통해서 대속하사 주신 은혜의 땅을 분명히 알게 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죄에서 용서받고 의롭게 함을 얻는 그 땅을 점령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마귀와 이 세상이 점령하고 있는 땅을 점령해서 천국과 성령 충만한 곳으로 만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예수님 십자가를 통하여 질병을 멸하고 치료의 땅을 점령하며 슬픔을 멸하고 하늘의 기쁨의 땅을 점령하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주를 물리치고 축복의 땅을 점령하며 가난을 물리치고 부요의 땅을 점령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망과 음부를 물리치고 부활과 천국과 영생의 땅을 점령하여 우리가 그 땅에 들어가서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주님 오시기 600여년 전에 벌써 주님이 얻으실 이 땅에 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 4절로 5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허락해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예비한 것처럼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막연히 종교적으로 형식적으로 바라보지 말고 그 십자가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한 새로운 세계, 새로운 땅을 예비해 놓은 처소란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떠나서 우리는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잃어버린 그 땅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몸을 찢고 피를 흘려 그 형언할 수 없는 큰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에게 값으로 사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을 점령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큰 죄의 용서의 땅이 있습니까?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할 인생들, 자기 스스로 볼지라도 더러운 걸레와 같고 넝마같은 수치와 곤욕으로 꽉 들어찬 그 삶 속에서라도 예수님께 나아가 기도하면 그 보혈로 씻음 받고 그 수치와 곤욕을 다 벗어버리고 의의 옷을 입고 영광 가운데 주님께 나올 수 있는 그 땅을 점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ㅤㅉㅗㅈ아내고 하나님 없이 인본주의로 살고 마귀가 꽉 들어차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땅의 자랑을 따라 사는 인생들을 주님께서 마귀와 세상을 다 멸하시고 천국으로 채우시고 성령으로 채우시는 이 아름다운 땅을 점령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질병으로 고통 당하며 괴로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 스웨덴에 가서 내가 느낀 것은 그 나라는 복지국가로서 얼마나 잘 사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청년들도 18살만 되면 남녀 할 것 없이 집을 떠나면 정부에서 스스로 직장을 가져 일어설 때까지 생활비를 다 대줍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정부에서 대주며 모든 실업 수당과 병원비를 다 대줍니다. 물론 세금은 천정 모르게 높습니다. 제가 보니까 세금을 자기 수익의 60%에서 70%까지 국가가 세금을 떼어갑니다. 그러나 그런 복지국가에서도 사람이 너무 안일하니까 국민의 70% 이상이 매일같이 마음이 우울하게 됨으로 그것을 이겨 나갈 수 있는 약을 먹어야 생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의 70% 이상이 정신적인 고통으로 약을 먹어야 됩니다. 온 세상은 병들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질병을 제하고 하나님의 기쁨으로 채우는 가나안 땅을 점령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점령해야 돼요. 그리고 가난과 저주의 땅도 물리치고 축복의 땅으로 점령해야 되고 죽음의 영원한 멸망을 제끼고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점령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값 주고 사 놓았는데 점령하는 것은 우리가 점령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주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너희에게 주었다고 했지만 그 땅의 한치 한치를 치열한 전투를 통해서 빼앗은 것이지 그냥 걸어 들어가서 얻은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땅이 무엇인지 우리가 십자가 밑에서 분명히 깨닫고 우리가 나아갈 목표를 확실히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천국을 침노해서 빼앗기 위해서는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 내 것이 되지 않았는데 아직 내 손에 못 넣었을지라도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보고 마음속에 소유한 그 사람이 그 땅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합니다. 꿈은 꾼 사람은 그것이 터무니없이 보일지라도 내 것으로 마음에 소유하고 나가면 그러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바라보고 소유한 사람,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3장 14절로 17절에 보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주님께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시기 전에 먼저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그 땅을 내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것, 바라보지 못하는 것, 꿈꾸지 못하는 것을 주님께서 주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인류가 성취한 모든 위대한 성취는 그 가슴속에 함께 꿈꾸던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입니다. 다윗이 조그마한 목동이었는데 어떻게 골리앗을 쳐죽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사울왕과 더불어 모든 역전의 용사들이 골리앗을 보고 다 기절초풍을 하고 뒤로 물러갔는데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서 나갔습니다. 왜냐 다윗이 골리앗을 볼 때는 곰과 사자로 보았습니다. 사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가 아버지 양을 치다가 곰과 사자가 와서 양의 새끼를 물어가면 따라가서 빼앗고 달려들어서 수염을 쳐죽였습니다. 그 경험으로 그는 골리앗을 볼 때 곰과 사자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짐승을 치는 것처럼 나아갔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가나안 땅을 침략하여 빼앗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주님이 허락하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마음속에 소유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가 몸 찢고 피 흘려 값주고 사신 것을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마음속에 소유하고 꿈꾸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용서받고 의롭게 된 것을 마음속에 꿈으로 간직해야 합니다. 천국과 성령충만이 내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을 꿈꿔야 되고 내가 고침 받고 하나님의 기쁨으로 충만한 내 자신을 꿈꿔야만 되는 것입니다. 저주에서 벗어나고 가난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축복에 이르는 내 자신을 항상 꿈꾸며 살아야 됩니다. 사망과 음부를 벗어버리고 영광의 천국에 들어가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세토록 사는 나의 모습을 늘 마음속에 꿈꿔야 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꿈꾸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바라보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지고 음울하고 부정적이 되어서 낙심하고 탄식하는 사람들은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주께서 이루어주신 것을 마음속에 꿈을 꿔야 되는 것입니다. 자나깨나 십자가를 바라보고 내가 꿈꾸고 있을 때에 성령은 그 꿈을 통해서 나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고 꿈을 꿀 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맹렬하게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쳐들어갈 때는 우리는 기도로 쳐들어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 갈 때 그들은 무기를 가지고 전력을 기울여 쳐들어간 것처럼 우리는 맹렬히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맹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레미야서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부르짖는다는 것은 그냥 앉아서 조용히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맹렬하게 외치는 것입니다. 시편 57편 2절에도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고 말했습니다. 부르짖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조용하게 점쟎게 기도하라는 것은 마귀에게 속은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어린아이와 같이 부르짖고 맹렬히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주 자주 반복하여 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88편 1절로 2절에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의 앞에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기도로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며 주의 귀를 나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소서" 밤에도 부르짖고 낮에도 부르짖고 주야로 자주 자주 주님께 부르짖어야 우리가 침공해 들어가서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코 낙심치 말고 승리할 때까지 매달려야 합니다. 누가복음 18장 1절에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말씀했다고 하시고 7절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그러므로 여기에 보십시오. 밤이나 낮이나 집중적으로 주 하나님께 마음의 소원을 아뢰며 마음의 원통함과 한 서린 기도를 외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가끔 가다가 한 번씩 생각나면 기도하고 지나가 버리는 그런 기도를 가지고 천국을 침노하는 기도는 안되는 것입니다. 뜨겁게 기도하고 자주 자주 반복하여 구하고 결코 낙심하지 말고 승리할 때까지 매달리는 그런 기도를 해야 마귀를 훼파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는, 우리가 강하고 담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 있으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외국에 가서 부흥회를 할 때 종종 그것을 느낍니다. 낯도 설고 물도 설고 사람도 설고 문화도 다릅니다. 그러한 사람들 앞에 들어가서 복음으로써 정복하고 굴복시키고 예수를 믿게 하고 병을 고치려고 하면 마음에 굉장히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두려워하면 벌써 안됩니다. 우리 나라야 문화가 같고 얼굴도 같고 같은 동포끼리니까 실수를 해도 용납이 될 수 있지만 외국에서는 실수를 하면 용납이 안됩니다. 웃음거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는 굉장히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져야 되는데 그냥 강하고 담대하게 해달라고 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적어도 3시간 이상을 주님 앞에 꿇어 엎드려서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그 기도의 부담이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그냥 나가면 마음이 태풍이 불어오는 것같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한 3시간 동안 하나님께 매달려서 부르짖어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나면 마음속에 닻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것이 다가와도 마음에 닻이 내려와 있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많은 대중을 손에 잡고서 웃고 울리고 당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냥 마음속에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다 하나! 둘! 셋! 한다고 해서 담대함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기도의 묵상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교제가 있어야 강하고 담대하지. 강하고 담대하고 싶은 사람은 첫째도 기도하고 둘째도 기도하고 셋째도 기도하고 오랜 시간을 가지고 하나님과 함께 지낼 때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가 이 뱃속에까지 스며 내려오면 강하고 담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6절로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침노해 들어가기 전에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 ! 담대히 하라 !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렇게 강하고 담대하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강하고 담대하지요. 다윗이 얼마나 강하고 담대했습니까? 왜 다윗은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울과 그 백성은 하나님을 몰랐어도 다윗은 그가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고 담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오. 하나님을 어떻게 압니까? 오늘날 하나님을 우리가 알려고 계속해서 환상을 주시옵소서 꿈을 주시옵소서 묵시를 주시옵소서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환상이나 계시를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말씀과 친하면 하나님과 친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하나님과 친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하고 친할수록 담대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8절로 9절을 보면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하시고 난 다음 강하고 담대하게 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강하고 담대히 하며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을 알라고 하는데 그것을 아는 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는 길이 최선의 길입니다. 말씀을 깊이 깊이 깨달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 앞에 기도로써 교통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으로 옷 입게 되고 하나님의 성령이 속에 들어오게 됨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이 너무나 좋습니다. 왜냐하면 강하고 담대하지 않고는 온 천하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뼈아프게 느낍니다. 더구나 우리 한국에서 저 구라파로 가면 무조건하고 멸시하고 달려들려고 합니다. 무조건하고 서양사람들은 동양사람에게 우월감을 가지고 우리를 누를려고 달려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뚫고 그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 나간다는 것은 강하고 담대함 없이는 안됩니다. 서로 쳐다볼 때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쳐다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강하고 담대하려면 눈을 쳐다보다가 돌려버리면 그때부터는 지는 것입니다. 눈을 마주쳐도 똑똑히 마주쳐보아야 하고 언어 심사 행동이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죄인들이 거꾸러지고 마귀가 쫓겨나는 것입니다. 서양마귀는 동양마귀보다 동양사람을 더 무시하고 달려듭니다. 동양마귀 쫓아내는 것은 힘이 덜 들어도 서양마귀 쫓아내는데는 힘이 듭니다.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자기 하나님을 알고 기도를 통하여 친해지면 하나님으로 옷 입고 나가는데 누가 감히 대적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삶이 하나님으로 옷 입고 나가면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나안 복지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강하고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다섯째로, 우리는 강하게 주장하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을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믿고도 그만 입으로 부인해 버리고 반대적인 말을 하면 안됩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구원조차도 내가 마음에 믿고 난 다음에 입으로 나는 구원받았다고 강하게 시인해야 하지 아무리 마음에 믿고도 나는 구원 못 받았다고 하면 취소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왜 입으로 시인하느냐? 하나님으로 기억나게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차 재차 입술로 주장함으로 하나님으로 기억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62장 6절로 7절에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하나님을 기억나게 합니다. 자꾸 입으로 하나님 말씀을 시인함으로 하나님을 기억나게 해서 하나님이 쉬시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말씀을 이룰 때까지 말씀을 기억나게 하라 입술로 자꾸 시인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13장 31절에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기억을 하도록 입술로 시인하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3절에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했으니 아버지 앞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거듭거듭 입술로 시인함으로 하나님으로 기억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입술로 나를 시인함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용기를 부어주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말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만 말씀하고 마귀에게만 말하고 이웃에게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도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35절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뒤로 물러가지 않기 위해서 자신에게 용기를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아 마음을 잠잠히 하라 이 사람아 왜 두려워하고 놀라느냐 하나님이 같이 계시지 않느냐 두려워말고 놀라지 말라 저는 가끔 내 마음에서 들려오는 내 음성을 들을 때가 많습니다. 제가 갑자기 마음에 실망하면 "야 이 사람아 왜 실망하느냐" 그런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성령의 음성인 줄 알았으나 내 영혼 속에 있는 내 영혼의 목소리였습니다. 내가 내 스스로를 향해서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라 희망을 져버리지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우리가 입술로 자꾸 시인하면 그것이 내 귀로 들어가서 내게 용기를 주고 내게 믿음을 주고 내게 힘을 주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격려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강하고 담대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술로 자꾸 시인하면 마귀에게 파괴를 가져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파괴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섶을 태우는 불과 같고 바위를 깨뜨리는 몽둥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자꾸 시인하면 마귀가 그 말씀 때문에 자꾸 약해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29절에 보면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마귀를 결박하려면 마귀를 약하게 만들어서 묶어 버리면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입술로 자꾸 말씀을 시인하면 말씀을 가지고 마귀를 자꾸 공격해서 마귀를 약화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입술의 시인은 마귀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져옴으로 입술로 늘 시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입술로 자꾸 시인하면 성령께 검을 들려 드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에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말씀했고 히브리서 4장 12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이러므로 말씀은 성령의 검이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자꾸 시인할 때 성령은 말씀의 검을 가지고 마귀의 영통을 찌르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소유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마귀가 못 들어가게 그것을 막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말했으니 우리는 침노에 들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이 어떠한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고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꿈을 꾸고 그리고 난 다음 천국을 향해서 맹렬한 기도를 하고 그리고 우리는 입술로 강하고 담대한 시인을 하며 쳐들어가면 주님이 예비한 천국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가나안 땅을 다 점령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슬프게 했습니다. 우리도 주 예수께서 피 흘려 이룩하신 은혜의 약속을 다 소유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해야 주님이 십자가에 고난 당한 것이 무효가 되지 아니하고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룩한 그 은혜의 동산에 하나님은 다 들어가서 여러분이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승리의 삶을 살도록 간절히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할 때 무슨 말로 다 감사를 드리오리까?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사 십자가에 못박아 몸 찢고 피 흘리게 하심으로 우리를 위해서 20세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예비해 놓았으며 그곳에 우리의 용서가 있고 그곳에 천국이 있고 그곳에 치료와 기쁨이 있고 그곳에 형통과 축복이 있고 그곳에 부활과 영생이 오직 이것을 확실히 알고는 내 아버지여 단호한 각오와 결심으로 기도를 하고 밀고 나가고 꿈으로 확실히 소유하고 믿음으로 굳세게 잡고 입으로 시인하고 밀고 나가고 나가면 내 아버지 하나님, 주님이 주신 가나안 땅을 다 점령할 수가 있사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처음 나온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말라 죽었으니 후손들은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광야에 지나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사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자비와 긍휼의 아버지시여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린 그 공로를 의지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간구하오니 야웨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들을 품에 품어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약속한 사랑과 은총으로 채우주시옵소서.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값주고 사신 치료를 오늘 이 시간에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과 권세를 베풀어 안수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의 병을 고쳐주시옵시고 육체의 병을 고쳐주시고 건강과 생명을 가득하게 채워 주옵소서.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신 주 예수님, 예수 이름으로 간구하오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오른손으로 안수하여 주시옵시고 악한 마귀의 일을 멸하여 주시옵소서 멸하여 주시옵소서 멸하여 주시옵소서 멸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고쳐주시옵소서. 건강과 생명으로 채워주옵소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치료함을 받을지어다 받을지어다 받을지어다 받을지어다. 야웨 하나님이여 성령의 뜨거운 불세례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의 생명으로 가득하게 채워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온 사람들 그 짐을 내려놓게 도와 주시옵소서. 가시와 엉겅퀴에서 해방을 얻게 도와 주시옵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신 하나님의 축복으로 채워 주시옵시고 아브라함의 복으로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희망으로 채워 주시고 용기로 채워 주시고 능력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야웨 하나님이여 우리가 기도할 때 모두 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영광으로 채워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