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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9월 5일 제목: 주께서 함께 하심이라 성구: 시 23:4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께서 함께 하심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구약 욥기 5장 7절에 기록된 것 같이 불티가 하늘로 올라감 같이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태어난 것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합니다. 그런 중에 크고 작은 시련이 항상 우리 곁에 맴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마음의 참 위로와 평안을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까? 오늘 주님이 주신 시편 23편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평안을 주는 귀한 진리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 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이 성경 말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이 말씀을 우리가 한번 마음 문을 열고 깊이 상고해 보십시다. 성경에는 여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여행 중 유대 광야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란 계곡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계곡이 깊고 험하든지 도저히 무섭고 어지러워서 그 난간에서 밑을 오래 내려다 볼 수가 없었습니다. 곧장 내가 곤두박질칠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여러분 옛날 우리 강릉 가는 길에 진부령을 통할 때에 얼마나 깊은 계곡을 끼고 차를 몰았지 않습니까? 제가 처음 진부령 길을 건너갈 때 살아서 돌아올까 싶은 생각이 났습니다. 어찌나 계곡이 깊던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내려다본다는 것은 어지럼증이 납니다. 두렵습니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는 그러한 때가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악의 음침한 골짜기를 한번 내려다보십시오. 그 어둡고 캄캄한 죄악의 골짜기에 떨어져서 그곳에서 방황한다는 것은 무섭고 전율적인 것입니다. 또한 탐욕의 음침한 골짜기를 한번 내려다보십시오. 여러분 보험금을 타려고 아홉 살 난 자기 자식을 죽여서 불로 태우는 탐욕의 무시무시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내려다보십시오. 우리가 그런 탐욕에 잡히면 도저히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지럼증이 나고 두렵습니다. 혹은 질병과 고통의 사망의 깊은 골짜기를 내려다보십시오. 감당할 수 없는 무서운 병에 걸려 24시간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는 그 고통의 골짜기를 내려다보면 몸서리치게 되는 것입니다. 혹은 슬픔과 절망의 깊은 골짜기를 한번 내려다보십시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좌절과 절망, 침울함과 슬픔에 빠져서 허덕이는 그 깊은 골짜기.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그 절망을 한번 들어가 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낭패와 실패와 궁핍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한번 내려다보십시오. 현기증이 날 것입니다. 사업이 무너지고 직장을 잃어버리고 살길이 막연하고 천지 어느 곳에 가서 의지할 수 없는 그러한 낭패와 실망과 좌절과 절망의 깊은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현기증이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죽음의 골짜기를 내려다보면 그것은 정말 절망입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죽음의 캄캄한 골짜기를 내려다볼 때에 그곳으로 내려간 사람 치고 다시 돌아온 사람이 없으니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골짜기 입구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다 몸서리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이 성경에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는 반드시 해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는 것은 문제가 없지요. 그러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되면 우리가 해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에 양심의 고통의 해를 당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양심의 거리끼는 일을 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야 되기 때문에 양심의 고통을 당하는 그런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하는 동안에 이 세상에서 쌓아 놓은 모든 명예를 다 잃어버리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수치와 곤욕을 당하는 그런 두려움이 옵니다. 혹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하는 동안에 육신적인 고통과 불안을 당하는 그러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혹은 정신적인 밤을 당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아주 아득하고 소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정신적인 밤 이것을 당하는 두려움도 있는 것입니다. 혹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할 때 온전히 버림을 당하고 나 혼자 외롭게 걸어가야 될 그런 두려움도 있습니다. 혹은 존재가 사라지는 두려움에 몸서리칩니다. 완전히 내가 없어져 버리는 고통, 공포 이러한 것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는 것은 결코 즐거운 체험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두렵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체험인 것입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할 때 우리는 해를 받지 아니하고 상처를 입지 아니하고 무사히 나올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삼은 사람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할 때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나고 버림받은 절망의 밤이 엄습할 때 그때 내 곁에 갑자기 나타난 한 분이 계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크나큰 구원이 되신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떠납니다. 부모형제 일가친척 친구들도 다 떠납니다. 내 스스로 조차도 나를 버리는 심정입니다. 그러한 절망적인 때 내 곁에 가까이 계셔서 나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고 함께 계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내가 결코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며 내가 결코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볼찌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보다 앞서서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시면서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메워 버린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셨다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런 위대한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죄악의 골짜기를 평지로 만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는 우리 앞서 죄악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그곳에 용서와 의로 채워서 평지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디도서 3장 6절로 7절에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께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우리 앞서 지나면서 용서로 메워버리고 의로써 메워 버렸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의와 용서의 평탄한 길로 걸어가도록 만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탐욕의 골짜기를 지나가면서 그를 평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시편 23편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주안에서 우리가 참된 만족을 얻음으로 탐욕에 끌려 들어가지 않도록 탐욕의 골짜기를 만족함으로 메워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심으로 인간이 탐욕의 유혹에 빠져들어 가지 않도록 주님께서 대책을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질병의 음침한 골짜기, 고통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주님은 먼저 지나가셔서 평지로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왜냐하면 치료와 평안으로 채워서 평지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망의 음침한 질병과 고통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치료와 평안으로써 그 골짜기를 메워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를 의지하고 치료와 평안의 확신을 가지고 고통과 질병의 골짜기를 유유히 승리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슬픔과 절망의 골짜기를 주님은 평지로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슬픔과 절망의 골짜기를 기쁨과 환희로 주님은 메워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주님께서는 슬픔과 절망의 골짜기를 기쁨으로 메워 버리고 만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곳에는 슬픔의 사망의 골짜기도 기쁨으로 평지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주님은 죽음의 골짜기를 평지로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부활과 생명으로 죽음의 골짜기를 메워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절로 4절에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가 그것만 바라보면 전율하고 몸서리치고 두려워하겠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면 이미 예수님이 앞서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부활과 생명으로 평지를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님께서 같이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사람은 해를 당합니다. 예수님 없는 사람은 온갖 상처와 고통과 절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같이 계신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우리들 앞서 지나가면서 그것을 다 메워서 평지로 만들어 버리고 마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허상이요. 예수님은 실상입니다. 예수님을 잡고 가면 우리가 험한 골짜기라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다 지나가 보면 평지로 메워져 있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우리가 해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악의 골짜기도 용서와 의의 평지로 걸어가고 탐욕의 골짜기도 만족의 평지로 걸어가고 질병과 고통의 골짜기도 치료와 평안의 평지로 걸어가고 슬픔과 절망의 골짜기도 기쁨과 환희의 평지로 걸어가고 낭패와 궁핍의 골짜기도 형통과 축복의 평지로 걸어가고 죽음의 골짜기도 부활과 생명의 평지로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 앞서 십자가에 죽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평안의 평지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크고 작은 사망의 골짜기가 올 때 그를 바라보지 말고 나와 함께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손을 잡고 나가면 우리는 평지로 걸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 성경 말씀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함께 계신 예수님이 왜 우리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8편 2절로 3절에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여러분 산성이나 요새라는 것은 적이 쳐들어 와도 난공불락의 성을 말합니다. 아무리 공격을 해도 무너지지 않는 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임진왜란 때에 행주산성 요새와 권율장군의 위대한 승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쪽으로 올라가면 행주산성이 있습니다. 그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때에 수도를 방어한 위대한 전승을 이룬 권율장군의 요새입니다. 일본군은 집요하게 행주산성을 공격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 권율장군은 7년간 군대를 총 지휘하여 이순신과 함께 전공을 세운 분인데 1593년 서울을 수복하려고 정병 3천명도 안 되는 상황이었으나 행주산성에 진을 쳤습니다. 행주산성을 요새로 삼은 것입니다. 왜군 총수 유키다 히데이는 3만 병력을 거느리고 새벽에 행주산성을 공격했습니다. 포위하여 치열한 접전을 했으나 행주산성의 관민이 단결하고 부녀자들은 앞치마에 돌을 가지고 끊임없이 군인들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요사이 앞치마를 행주치마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뜨거운 물을 끓여다가 갔다 붓고 했습니다. 이래서 적군 2만 4천명을 사상자를 내고 대 승리를 이룬 것이 행주산성 요새입니다. 요새라는 것은 그러므로 적군이 아무리 쳐들어 와서 무너뜨리려고 해도 불가능한 난공불락의 성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새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 갈 때 수많은 적군들이 우리를 침공해 오더라도 예수님은 우리의 피할 산성이요 요새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수많은 원수들이 우리를 공격해 오나 우리가 예수님께 피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지켜주는 요새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신을 예수님께 완전히 내어놓고 예수님의 등뒤에 숨어 있으면 그리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피하게 해 주시고 우리를 강한 요새로써 둘러 싸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9절로 11절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 내 곁에 있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뒤에 숨으면 예수님은 여러분과 나를 지키는 산성이요 요새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산성과 요새를 무너뜨리고 올 수 있는 어떠한 적도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주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돌봐 주십니다. 지팡이는 양을 인도하는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지팡이는 주님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가 감히 주님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대적해서 이길 수가 있습니다. 적이 아무리 꾀를 내어도 예수님은 미리 아시고 그 지팡이로 그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모략으로 싸워서 적을 물리쳐 주시는 것입니다. 또 주님의 막대기는 주의 전능하신 권능을 말합니다. 목자는 막대기로 짐승이 오면 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막대기로써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요한1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요새시니 그 안에 숨을 때에 주님은 우리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원수를 대항하여 곁에 감히 다가오지도 못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넷째로, 우리는 마음에 큰 안심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어떠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날지라도 예수님을 요새로 삼고 피하면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지켜 주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 큰 평안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만이 이 땅에 살면서 진실하고 깊은 마음에 평안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항상 요동하고 변합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늘 신변이 불안하고 위로를 받을 처소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권력을 얻어 그것을 의지하든지 돈을 얻어 그것을 의지하든지 부모 형제 친척 친구를 의지하려고 사람은 몸부림치지만 이런 것들은 의지가 되지 못합니다. 시편 146편 3절로 4절에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께 피하며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지팡이와 막대기로 돌보심을 믿을 때에 우리의 마음에 크나큰 위로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왜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주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우리 주 예수께서 나의 피난처도 나의 요새요 산성이 되어 주시고 예수님이 그 성에서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으로 전지전능한 권세로 우리를 위해서 싸우시고 지켜주심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이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에 평안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로 39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를 위해서 그 몸을 찢어 주시고 피를 흘리셔서 한없는 사랑으로 불러서 품에 안아 주신 이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우리와 같이 계시고 그가 우리의 산성이요 반석이요 피난처요 요새가 되어 주셔서 우리가 그에게 의지하고 그 뒤에 숨어 있으면 막강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알고 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우리에게는 마음속에 한없는 위로와 평안이 넘쳐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목자가 되신다는 것이 그 얼마나 큰 축복인 줄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 모르는 사람은 목자 없는 양 같이 산과 들을 방황하다가 짐승에 물리고 찢기고 바위에 부딪히고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상처를 입든지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목자 없는 양이 아닙니다. 목자 우리 주 예수께서 다 우리를 버릴지라도 더군다나 보통 때가 아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인생의 모든 실망과 좌절과 큰 슬픔의 고통에 빠졌을 때, 세상의 친구들이 다 나를 버리고 떠나갔었을 때 그때 내 곁에 서서 나를 버리지 않고 버티어 나의 요새가 되시고 산성이 되시고 나의 피난처가 되어 주시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것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인생 경험 가운데 크고 작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만 내려다보고 현기증을 느끼고 어지럼증을 느끼고 해를 당할까 싶어서 불안과 공포와 좌절과 절망에 떨어지지 마십시오.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다가오면 여러분 곁에 예수님도 다가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고독하고 외로운 곳에라도 예수님은 그 자리에 와 계신 것입니다. 아무도 여러분 곁에 예수님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 예수님이 손을 내밀면서 내가 너희 산성이요, 반석이요, 피난처요, 요새가 된다, 내 그늘에 숨어라 나를 붙잡고 내 뒤에 숨어라 예수님은 그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신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모략을 가지고 적과 싸우며 그 전능한 막대기로 적과 싸워서 우리로 하여금 해를 받지 않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넘치는 마음에 위로와 평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이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은 결코 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목자 예수는 여러분과 나를 이끌어서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고 쉴만한 물가에 물을 마시게 하시고 우리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고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시며 우리를 영원한 아버지 집에 거하도록 이끌어 주시는 선하고 좋으신 목자인 것입니다. 우리 목자는 우리를 위해서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이미 다 메워 놓은 승리자가 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은 자나깨나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경배하고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 의지하고 예수님 등뒤에 피난처를 삼으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떠한 일에도 해를 당치 아니할 것입니다. 마음에 큰 평안을 가지고 이 험한 세상을 유유히 살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해보십시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 예수를 구주와 목자로 삼으셨으면 아멘 하십시다. 그렇다면 두려워하고 놀라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 인생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는 시시때때로 크고 작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갑니다. 골짜기로 내려와 볼 때 얼마나 깊은 골짜기에 현기증이 납니까? 캄캄하고 흑암의 구름이 가득해 앞뒤를 살필 수 없는 그 죽음의 골짜기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에게 다가올 해를 생각하고 우리는 몸서리 칠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 그러나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나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될 때에 우리는 두려움이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그 골짜기를 먼저 지나갔다가 나온 목자로서 그 사망의 골짜기를 평지로 만들어 버린 위대한 능력을 베풀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주님 죽음의 골짜기도 용서와 의의 평지가 되어 버립니다. 내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슬픔의 골짜기도 기쁨의 평지가 되고 질병의 골짜기도 치료의 평지가 되고 저주의 골짜기도 축복의 평지가 되고 사망의 골짜기도 부활과 생명의 평지로 변해 버리고 맙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피할 수 있는 반석이요 요새와 산성이 되시옵니다. 예수님의 무기는 아무도 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의 지팡이는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의 지팡이요 그의 막대기는 전지전능한 막대기입니다. 이 예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의 무기를 당할 어떠한 세상의 무기도 없습니다. 어떠한 세상의 힘도 없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고 하신 예수님이 우리 목자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하나님 아버지 이 예수님을 깊이 모시고 사랑하고 의지하는 우리들에게 한없는 평강을 갖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평강이 없이 세상의 바람에 이리저리 요동하며 불안에 떠는 사람들은 모두 다 이 예수님 품에 안기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